생명찾기

by 파랑새 posted Nov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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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찾기




 4년 아니, 7년 아니, 적어도 10년은 되었겠다.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 맞는다면 족히 14년은 되었겠다. 한데 일찍부터 이 길에 들어섰던 일은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에 주말 안으로 작품을 출품하고 나면 정규 학업은 끝이 난다.

 그동안 수차례 상도 받고 간간이 그림 청탁도 받을 만큼 나름은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놓인 졸업작품이라는 것이 가면 갈수록 보면 볼수록 마음에 영 내키지 않는다. 물론 담당 지도 교수님과 동료의 지지를 받고 있는 터라 눈 딱 감고 출품하고 나면 그뿐이다. 하지만 마무리할 때부터 뒤틀리기 시작한 불편한 심사는 갈수록 더했고 기억으로는 그동안 작품 때문에 한 번도 없었던 짜증이 급기야 터져 나오고 말았다. 사실 어제저녁엔 순간 칼로 발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떨기도 했다. 그 순간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사실이지 6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을 한순간 충동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랬다. 분명히. 

 전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부모님 덕에 웬만한 사람은 언감생심 20평 작업실엔 수년간 몰두해온 흔적들로 어지럽다. 그런데 지금 그 어지러운 한가운데 나와 졸업작품이 긴장감으로 팽팽히 맞서 있다. 자칫했으면 발기 찢어져 너절할 뻔했던 유화 100호가 나와 바투 서 있는 거다. 

 사실 마무리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완성된 작품이나 다름없다. 굳이 있다면 캔버스 가장자리에 언뜻언뜻 물감이 가지 않은 곳에 물감을 바르는 일이다. 한데 인제 그것도 거의 끝났기 때문에 작품을 학교로 운반하는 일만 남아 있다고 해야 옳을 거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남았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흔쾌히 제출하고 싶은 마음을 되살리는 일이다.

 내 작품 중 지금까지 이만한 수작은 보지 못했다며 모두가 다 입을 모았지만, 왠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들의 지지와 말에 무작정 동의할 수 없었다. 무언가 빠져 있는 느낌, 뭔가 결정적인 것이 쏙 빠져 버린 졸작이라는 느낌이 제출 시한이 다가올수록 걷잡을 수 없는 거다. 문제는 그 빠진 것이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거다. 미련하다고 자책도 해 보았다. 평생을 드려 해야 할 일에 기대치가 너무 큰 것이 아니냐고, 이 작품은 마지막이 아니라 인제 시작일 뿐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정 부족하면 나중에 보완하면 될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급기야 어제저녁에 그런 욱하는 마음이 들고 말았던 거다.

 

 “이중섭이 따로 없네. 이중섭이 다시 부활한 거야.”


 교수님과 동료들의 진담 반 농담 반의 말을 들을 만큼 이중섭을 닮은 화풍은 지난 2년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성과도 있었고 거기다 앞으로 작품 활동하는데 적잖이 힘이 될 만큼 입지가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부모님의 사업도 호황이라서 물질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 힘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 그림 그린답시고 앞으로 생활고를 염두에 둔 주위 동료의 눈엔 나는 행운아 중에도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그 행운은 앞으로 작품 활동하는데 큰 동력이 될 거였다. 하지만 이렇게 탄탄대로의 길이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 얼토당토않은 일에 발목을 잡혀 오도가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가로세로 1m 크기의 창으로 들이친 햇살이 바투 버티고 선 캔버스에 막혀 바닥으로 내려앉지 못하고 도중에 잘렸다. 그동안 색의 변화를 염려해 햇볕을 피해 구석진 곳에 놓아준 작품을 인제 마무리 작업한답시고 자리를 옮겼는데 공교롭게도 햇볕이 드는 곳에 놓아둔 탓에 캔버스에 햇살이 잘린 거다. 잘린 햇살은 느닷 잘린 부분을 이으려고 애를 썼다. 급기야 캔버스 곳곳에 있는 밝은 톤의 물감이 있는 곳을 파고들었다. 그 탓에 처음 의도한 그림의 느낌이 일순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어딘가 조금 부족한 그러니까, 어제까지 고민하고 있었던 뭐가 빠진 걸까? 하는 차원의 그런 느낌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판이하고 희한한 느낌을 주는 그림으로 보였다.  

 문명의 이기들을 들고 이고 힘겨워하는 가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연상되는 그림으로 변해버렸다. 뿌연 화면 아래 눌려 있는 사람들은 영락없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 속에 있는 사람들을 닮았다. 결국, 캔버스 뒤에서 기를 쓰는 빛 때문에 작품의 화풍과 작품 속에 담았던 나의 의도와는 판이한 그림이 되고만 거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 박수근 화백의 그림과 꼭 닮았다고 한들 박수근 화백의 그림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서정성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일그러지고 변형된 마치 어떤 온전한 것에서 기형이 있다면 그런 형태의 그림이다.

 창으로 들이친 빛이 사선을 긋고 천천히 옮겨가는지 일그러진 가족들도 빛을 따라 옮겨 가는 것 같았다. 이러다 가족 모두가 캔버스 밖으로 걸어 나올 것 같아 일순 위태위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잠시 뒤 햇살이 캔버스 뒤에서 짠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하면서 객쩍은 걱정은 일단락되고 남은 건 여전히 황망한 생각만이 오롯하다. 

 “뭐가 빠진 거지?······ 갑자기 웬 호들갑이야! 정말······ 미치겠네.”

  

 아침에 약속해서 오후에 만난 자칭 나의 멘토라는 언제나 밝고 대찬 지영 선배는 줄곧 내 고민을 우습다고 한다. 그러다 이야기 말미에 가서 4년 동안 휴학 한번 안 하고 쉽게 공부한 탓에 복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는 예전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쏟아내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예전에 그러지 않던 선배가 갑자기 왜 그러냐는 질문에 망망대해로의 행해를 앞둔 사나이에게 일침을 놓은 거라며 잘라 말하고 그만이다. 

 “자러 갈까?”

 “이번엔 잔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그동안은 됐고?”

 “장난 아니야. 선배.”

 “그럼 그동안은 장난이었어?”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미친 새끼.”

 “선배.”

 “생명? 생명을 그리고 싶다고 했니?”

 “선배 살살 말해요. 여기 사람 다 보잖아요.”

 “왜? 창피해? 쪽팔려?”

 “선배.”

 “인마, 내 배 속에서 너 새끼가 여러 번 죽었다는 거 알지?”

 “선배!”

 “그게 생명이야. 미친 새끼야.”

 “······.”

 그림 그리다 말고 툭 하면 선배랑 자고 나면 더 잘 그릴 것 같다며 졸랐던 건 사실이지만, 그 일이 그림과 상관없다는 것은 선배가 더 잘 알 터인데 밝디밝은 선배가 오늘따라 왜 그런지 모를 일이다.


 “야, 성재야. 나도 졸업하기 전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야겠다. 철학은 무슨······.”

 “그래도 전공은 살려야 하지 않을까?”

 “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철학으로 당장에 먹고 살 수 있냐? 어디 교수직이나 하면 모를까.”

 “그래도······.”

 “아니면, 영양사 자격이나 따서 일찌감치 너 뒷바라지하고 살까.”

 “선배······.”

 “왜 싫어? 부담돼?”

 “웃겨 선배······.”


 언젠가 황홀경의 여운이 아슴아슴 멀어질 쯤에 풀어헤친 머리를 가슴팍에 올려놓고서 넌지시 장래 이야기를 꺼냈던 선배는 오늘처럼 다툰 날이면 누구의 잘못을 떠나 쿨 하게 언제나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전화가 없다. 심사가 심하게 틀리긴 틀린 모양이다. 

 낙엽이 시꺼먼 도로 위를 황망히 쓸려 다니는 모습은 무거운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한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 너머 길 건너 푸드 트럭 포장마차에서 나온 하얀 김이 어지러이 미친 듯 사위로 사라져간다. 그 밑으로 옹기종기 모여 서성이는 사람들이 연신 뭔가를 입으로 가져가며 웃고 떠든다. 싱싱하고 살아 펄떡이는 느낌이다. 느닷 그 반대급부로 죽어 있는 내 모습에 전율했다. 인제 애물단지가 된 졸업작품이 전율하는 내 위로 돌연 무너져 내리는 듯해 일순 호흡이 턱 하고 막혔다. 거리의 어둠이 검고 육중했다.  

 포장마차에서 우동이며 어묵을 먹었던 지영 선배와의 기억이 검고 무거운 느낌을 비집고 나른하게 밀려들었다. 구구한 뭔가가 속에서 올라올 쯤에 멀리 경음기를 길게 누르며 달려드는 자동차의 긴장감을 놓칠세라 일순 돌아봤다. 혼비백산해 황급히 달아나는 정체불명의 짐승이 언뜻 보이다 사라졌다. 순간 지영 선배와의 기억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선배와 헤어진 후 여태 돌아다녔지만 남은 거라곤 선배와 다툼으로 인한 후회도 아니고 자괴감도 아닌 허기만이 남았다. 정말이지 남은 거라곤 허기뿐이다. 지영 선배의 생각도 물론 없다. 그녀가 알면 얼마나 섭섭할까?

 혹여, 지영 선배가 이런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그래서 그 난리를 친 건가?······ 사실 나도 몰랐던 일이다. 지영 선배와의 신경전을 이렇게 쉽게 잊을 줄이야!······ 이런 일은 없었는데······ 마음 졸이며 뜬 눈으로 밤을 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변한건가? 마음이······ 모르겠다.

 물론 졸업작품전도 작품전이지만 졸업하면 지영 선배랑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최근 들어 했긴 했다. 하지만 선배가 눈치챌 만큼은 아니었는데······

 쉼 없이 피어오르는 라면의 누른 김은 아까 포장마차에서 본 하얀 김과 형태는 닮았지만, 어딘가 느긋한 모습에 생동감이 없어 보였다. 라면과 두 줄의 김밥은 낮부터 허기진 배를 쉬이 달래지 못했다. 아니, 속 어딘가에서 부대꼈는지 아릿아릿했다. 

 

 “왜, 어디 아픈 거야?”


 지영 선배가 조금은 크고 까만 눈동자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간혹 했던 말이 아릿함 속에서 살아났다. 아릿함이 잠시 잊었던 지영 선배와의 기억을 이어주며 은근히 몹쓸 놈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그리 반감은 들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관계를 하고 나면 생각이 번뜩이는 걸 느껴.”

 “그런가?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는 아니더라도 어떤 싸이코틱한 철인처럼?”

 “뭐? 싸이코틱?······ 치······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같은 거. 아니, 내가 여자라는 느낌이 들어.”

 “······.”

 “근데, 성재는 넌 거짓말이지? 나와 자고 나면 그림이 잘 그려진다는 거.”

 “아니······.”

 “진짜?······.”

 “응. 작업이 잘 돼.”


 무슨 작업이 잘 된 건가 싶다. 순전히 거짓말이다. 단지 욕정에 이끌린 짐승과 같은 행위에 지나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영 선배가 아이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함께 고민해 보았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다녀왔어?”

 “응.”

 “많이 아팠지?”

 “혹, 다음에 간다면 같이 가자. 보호자가 있네 없네 하는 통에 창피해 죽겠어.”

 “조심하자. 인제.”


 그때뿐이다. 지영 선배가 배란일을 정확히 계산했다며 콘돔 사용을 반대했고 그 일로 번번이 아이가 들어선 것은 전적으로 지영 선배 탓일 거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일에 관한 책임에서 나도 쉬이 벗어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왠지 콘돔을 한다는 건 계산된 사랑 행위로만 여겨져 싫어. 마치 의식 없는 몸뚱어리의 징글징글한 욕정의 투레질 같은 거랄까. 적어도 사랑할 때만큼은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 살아있는······ 뭔가 모든 것을 내던지는 그런 헌신적인 사랑 같은 걸 하고 싶거든.”

 “그럼 밖에다 할까?”

 “그것도 싫어. 콘돔을 한 거나 마찬가지야. 사정하는 너를 속으로 느끼고 싶으니까.”

 “자꾸 아이가 생기잖아.”

 “아이?······ 낳을까?”

 “선배.”

 “걱정 마. 인마.”

 

 내가 말한 생명이라는 말에 지영 선배가 왜 그렇게 발끈하며 화를 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거기다 난데없이 아이 이야기까지. 나는 단지 정규과정 학업을 마치며 나름은 심혈을 기울였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이 보면 볼수록 밋밋해서 뭔가 살아 있는 생동감 같은 것이 없다는 취지였는데 왜 그렇게 발끈했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분명 평소와 다른 지영 선배다.

 마지막 남은 김밥 토막을 막 입으로 가져갈 쯤에 누군가 식당 TV를 켰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석굴암의 본존불이 화면 가득 들어차 가게 안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귀에 익은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본존불의 기에 눌려 나지막하고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직선과 곡선 그리고 평면과 구면 거기다 방형과 원형의 조화가 석굴암 석굴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이야기가 눈과 귀를 붙들었다. 

 식당을 나온 나는 왠지 걸음이 바빴다. 꼭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한참 만에 나는 졸업작품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작품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움직이고 싶다고, 숨을 쉬고 싶다고 하는 작품이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나는 서 있었다.


 조심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접촉사고가 나고 말았다. 뒤에서의 약한 추돌이었다. 하지만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했다. 이럴 때 지영 선배라도 있었으면 어쩌면 간단히 해결될 것 같았는데 아침 내내 전화 받지 않는 지영 선배가 야속했다. 누가 그랬는지 이럴 때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언뜻 생각 날쯤에 추돌한 차량의 운전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다가왔다. 말이 이렇게 펄떡이며 살아있는 느낌은 난생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다. 오늘 난생처음 겪는 느낌이 여러 개다. 

 그러나 아무리 경험 없어 보인다 해도 누가 잘못한 것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는 상황을 놓고 막무가내는 좀 곤란해 보였다. 어딘가에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전화가 걸려 왔다. 선배였다.

 “선배. 뒤에서 추돌한 사람이 고래고래 고함지르네.”

 “확실한 거야? 뒤에서 추돌한 거?”

 “그렇다니까? 신호대기 중에 그랬어. 아마 블랙박스에도 남았을걸.” 

 “그럼, 싸우지 말고 경찰에 신고해. 그리고 보험 회사에도. 그런데 많이 부셔진 거야?  넌 괜찮아?”

 경찰이 왔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고 추돌 자는 갔다. 펄떡이던 말은 그렇게 소리 없이 힘없이 사라져 버렸다. 살아있어 보여도 정작 죽어 있는 게 있었다. 가짜였다. 

 직선인지 굽은 거리인지 1km라지만 굽이굽이 돌고 도는 거리는 수 킬로는 돼 보였다. 물론 토함산의 높이가 800m가 안 된다니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올라가는 길은 엄청나게 돌고 돌았다. 그야말로 선의 미학을 만끽하게끔 오래전 길을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나 여하튼 휘돌아 가는 길은 멀고도 한참이다. 하기야 지영 선배의 말처럼 이번 여행에서 뭔가 느끼고 오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곡선의 미학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돌고 돌아 올라선 곳에서 맨 먼저 만난 것은 주차요금 징수원이다. 지금까지 없던 멀미가 일시에 일었다. 생목에다 급기야 욕지기가 나왔다. 이 높고 먼 곳까지 올라왔다면 수고했다든지 찾아 주어 감사한다든지 해야 할 게 아닌가! 돈을 요구해? 그럼 이곳까지 걸어서 오라는 말인가? 하기야 넓기도 넓어 주차장 만드느라 돈도 많이 들어갔을 만도 했다. 

 한데 산 정상에 이미 질서 있게 주차한 차들의 모습에서 돌연 엄숙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지 모를 일이다. 멀리 동해가 보일 듯해 망원경을 세워 둔 곳에서 고개를 들어 그 방향을 쳐다봤다. 수없이 많은 산봉우리 너머에 희끗희끗 보이는 게 동해쯤으로 여겨졌다. 동해를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 터. 마치 동해를 꼭 봐야 할 것처럼 망원경의 수가 많았다. 

 “어디 가나 돈이다. 여기도 500원······.”

 붉게 물든 나뭇잎 몇 개를 간신히 매단 나무들이 칼바람에 벌벌 떨고 있는 모습에 나까지 춥다. 왼편으로 타종한답시고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대낮에 타종하는 이유가 뭔지 모를 일이다. 주차장이 막 끝나는 지점 오른편으로 간이 포장마차로 보이는 곳에 여러 사람이 모여 뭔가를 먹고 있었다. 어묵이었다. 따듯한 뽀얀 김이 머리를 풀고 허공에서 사위었다. 사람들은 연신 입을 벌렸다 오므리기를 반복하며 바빴다. 사고 처리 할 땐 몰랐던 추위가 산에 오르자 갑자기 달려드는 것 같아서 국물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포장마차로 향하다 그만두었다. 형색으로 봐선 그들은 하나같이 한 팀이었다. 한 팀인 사람들 틈에 들어가 이방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돌아서는 등 뒤로 들려오는 소리가 귀를 잡았다. 차에 가면 맥주 상자가 있다고 했다. 추워 못 마신다는 이야기, 마시면 열이 날 거라는 이야기, 일단 절을 빠져나가고 보자는 이야기 그리고 볼 것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뒤엉켜 들려왔다. 저들의 이야기를 추론해 본다면 저들은 석굴암 석굴에 있는 본존불을 보고 왔고, 인제 전세해서 타고 왔던 관광차를 타고 갈 거였다. 그리고 차 안에서 술을 마시고 흔들 거라는 생각까지 추론이 가능했다. 저들은 어묵을 먹으려고 이곳까지 오는 미련한 짓을 했던 거다. 토함산 정상에서 먹는 어묵이 얼마나 맛있지를 느끼려고······

 저들에게 원형과 방형과 곡선과 직선 그리고 평면과 곡면의 미학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런 면에서 나는 꼭 한 가지를 붙들고 가야 할 당위성이 갑자기 생겨 버렸다. 저들을 향해 어묵 발언을 한 내가 적어도 말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꼭 그렇게 해야 했다. 

 

 “또 생명이니 뭐니 하며 징징대면 그땐 죽는다. 너.”


 거기다 지영 선배가 한 이 말 또한 한 가지를 꼭 찾지 않으면 안 될 당위성으로 나를 밀어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그 모든 것보다 20평 작업실에서 어쩌면 지금쯤 숨이 막혀 죽어 있을지 모르는 졸업작품을 살리고 그 작품으로부터 깨끗이 해방될 수 있는 열쇠를 찾지 않으며 안 되는 절박함 때문이라도 한 가지를 아니, 생명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난데없는 절박함에 의아하다.

 처음 이중섭을 닮아가면서 어느 순간 나만의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중섭이 좋아했던 고갱의 작품도 피카소의 작품도 멀리하고 고흐의 굵은 선에 심취했었다. 그 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완연히 김성재만의 화풍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지지에 힘입어 6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인 끝에 졸업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그 작품이 출품 직전 작가의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고 있는 거다.

  사실 집을 나설 때 작품으로부터 해방 될 수 있는 그런 뭔가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하지만 답답한 심경으로 길에 오른 건 사실이다. 거기다 느닷없는 절박함까지 보태졌지만,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냥 쉼 없이 달려왔던 길을 한 번쯤 일탈해서 잠깐이라도 쉬고 싶어 그랬다. 그동안 쉼도 없고 너무 조급한 나머지 작품에 뭔가 빠뜨린 건 아닌지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영 선배와의 관계도 이번 여행을 나서게 하는데 한몫했다.

 한데 굳이 이곳 석굴암을 선택한 것은 막연한 여행보다도 식당에서 접했던 그 내레이션의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까 하는 차원에서였다. 하지만 기왕 이곳까지 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내려가는 것보다 무엇인가 하나 정도는 얻어 가고 싶은 마음은 무작정 길을 떠난 일에 조금은 당위성을 부여한다고 해야 하겠다. 

 머리 위에서 잎을 몇 개 달고 벌벌 떨고 있는 나무 탓인지 계단을 오르지만, 주차장보다 더 춥다. 타종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렸다. 돈을 주고 치는 타종 소리라는 게 금방 느껴졌다. 깊지 않은 천박한 소리. 그럼에도 여전히 한쪽에 줄을 섰다. 무슨 염원을 담아 치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적어도 숙연한 불자나 보살들을 위해서라도.

 차를 운전해 혼자 오를 땐 몰랐는데 입장료를 내고 석굴로 향하는 진입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중학교 때의 기억이 오롯이 살아났다. 조금 전처럼 자동차를 타고 빙글빙글 돌며 올랐던 길을 닮았지만, 발로 걷는 느낌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불어나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한데 관람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들의 걸음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과 사뭇 다른 결연한 모습이 느껴졌다. 뭔가 꼭 결딴을 내고자 하는 것처럼.

 관람을 마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친 걸음으로 무표정하게 걸어 나왔다. 별로 웃을 일이야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들어갈 땐 적어도 지금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처럼 이런 모습쯤은 하고서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한데 그 어디에 결연함이나 밝음, 하다못해 우울하거나 슬픈 모습조차도 쉬이 알 수 있는 얼굴 찾기가 힘들다. 부처님께 호되게 꾸중이라도 들은 것인가. 그러고 보니 석굴에 가까워지자 내 마음도 벌써 무거워져 있는 느낌이다. 거기다 관람하러 가는 사람들도 아까보다는 말 수가 적고 조용조용했다. 

 좁장한 돌계단을 오르기 전 계단 옆에 있는 감로수 약수를 꼭 받아 마셔야 하는 것처럼 몰려든 사람들에 편승해 물을 마셨다. 입안이 얼얼했다. 어묵 국물이 언뜻 떠올랐다.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둔 돌계단이나 신라 도공들의 작업 현장은 쇠락한 태곳적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 느닷 떠오른 나의 20평 작업실의 인위적인 기계 냄새는 역하고 비렷다. 돌계단은 하루에도 무수한 사람이 오르는 탓에 위태해 보이기도 했다. 순간 돌계단을 줄을 지어 올랐던 수십 년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그때 앞의 녀석이 멈칫멈칫하며 장난을 쳤던 일이 기억났다. 

 석굴암 석굴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수학여행으로 처음 왔을 때나 식당에서 TV로 봤을 때나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인파에 떠밀려 본존불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까지 온 나는 일순 힘을 주어 버텼다. 그리고 통로를 약간 벗어나 밀려드는 인파를 피해 잠시 한쪽으로 물러섰다. 스님 한 분이 만 원만 내면 스님께서 대신 기도해 주신다면서 보시하라는 말씀을 쉼 없이 하셨다. 스님의 말씀은 석굴을 가려놓은 유리벽에 부딪혀 통로 쪽에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종용했다. 하지만 누구 한사람 등록하는 이 보이지 않았다. 

 단박 눈에 들어온 것은 유리벽과 본존불 그리고 사진 촬영이 안 된다는 안내문과 어둑한 조명 탓에 희끄무레한 석굴의 전체적인 느낌이 전해져 왔다. TV에서 본 것과는 확연히 다른 쇠락한 느낌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석굴 안에 본존불을 포함한 38체의 조각상이 있다지만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압도적인 본존불의 중량감은 영혼을 짓누르는 것 같아 일순 두렵기까지 했다. 혹여 본존불 아래에서 기도한다면 단박 질식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객쩍게 들다 말았다.

 낮인데도 전실은 어두웠고 뒤로 본존불이 있는 주실은 인공적인 등으로 밝혀놓았는지 은은하지만, 인공적인 느낌은 없었다. 근래 본존불 아래에 균열이 났다는 말은 당장은 확인할 길이 없어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좁은 공간에서의 관람과 석굴 안의 어두운 조명 탓에 선과 직선 거기다 평면과 구면 그리고 방형과 원형이 확연하게 식별되지 않았다. 물론 첫인상에서 느꼈던 둥글둥글 하다는 느낌은 있다지만 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조화는 어디에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수년간 그림을 전공한 자로서 일반인들보다 선에 관한 민감함은 남다를 것인데 그 민감함은 어떤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무엇을 두고 선의 절묘한 미학이라고 했는지 원······.”

 혼자서 투덜거리는 자가 이상했던지 키가 큰 남자가 돌아다보았다. 물론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가까이에서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말한 것이겠지만, 당장 화가의 눈엔 그 선의 미학이 들어오지 않았고 공감도 되지 않았다. 신라인들의 건축양식과 그들의 지혜를 익히 알고는 있다지만, 오늘만큼은 쉬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된 우둔한 자의 감성일 수도 있겠지만. 

 언뜻 지영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피식 웃었다. 뭔가 하나를 붙들려고 했던 우둔함에 대한 실소였다. 지영 선배의 어두운 모습이 또다시 떠올랐다. 밝디밝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습하고 어두운 모습만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가슴이 쿡 했다. 숨이 일순 멈췄다. 본존불의 염력인가!······ 난데없이 살생을 자행한 죄과를 묻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 마치 석상이 된 듯한 느낌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무섭고 겁이 났다. 누구 한 사람 보는 이 없었다. 다만 본존불만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슴이 타들어 갔다. 이러다 죽을 거였다. 그 순간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유리벽에 부딪힌 스님의 보시하라는 말씀이 나를 깨웠다. 하지만 추스를 겨를도 없이 다시금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으로 또다시 휘말려 들어갔다. 

 선의 미학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어느 지점쯤인가에서 선은 사라지고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며 만들어 내는 기묘한 환상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댔다. 기막힌 환상은 신비를 자아냈고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기묘한 체험에 황홀할 뿐이다. 선이 문제가 아니라 빛에 따라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을 눈으로 목도 했다. 어쩐 일인지 지영 선배가 또 떠올랐다. 밝디밝은 모습과 어둡고 침울한 모습이 번갈아 눈앞에 떠오르더니 사방천지가 핏빛으로 변하는 통에 놀라 환상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환상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인파에 떠밀려 석굴을 막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빠져나가고 있는 내 목덜미를 끝까지 부여잡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신라인들은 석굴 안의 38개의 조각상과 석굴의 구조를 빛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만들었다는 깨달음 그것이었다. 

 “음과 양의 조화를 말하는 건가······.”

 석굴을 빠져나와 주차장까지 가는 걸음은 숙연한 걸음 그야말로 입을 다문 아까 그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고 또 그들의 어두운 모습은 감히 숙연한 모습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걸음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그냥 발걸음이었다. 어묵 국물을 연신 들이켰다. 아까 술타령을 하며 웃고 떠들던 그들도 나와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던가! 나도 떠들고 싶다. 지영 선배가 옆에 있었다면 무슨 말이든 마구마구 쏟아낼 것 같았다. 어묵을 먹어도 인제 당당하다. 국물을 마셔도 당당하다.   

 

 어떻게 왔는지 다시 그림 앞에 서 있다. 그림도 내 앞에 서 있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모르나 어둑한 작업실이 느껴졌다. 불을 켜자 불분명한 것들이 일시에 확 하고 살아났다.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아니, 수년 전부터 어제까지 몰랐던 경험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림도 차분히 나를 받아들였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6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인 내 작품이 나와 대화를 시도 하고 있었다. 내가 앉으면 따라 앉았고 긴 숨도 따라 했고 눈이 가는 곳을 따라 하나하나 반응했다.

 일어나 불을 껐다. 모두가 잠잠했다. 하지만 유독 100호 작품은 나를 따라 숨을 쉬었다.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인제 그림은 내 수중에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 있었다. 그토록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던 작품은 그렇게 홀연히 내 곁을 쉬이 떠나려 하고 있었다. 아니 떠나가고 있었다.

 

 지영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밝디밝은 대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둠까지 품고서 거기에 그냥 있었다. 

 “선배 어디에요?”

 “어디긴 집이지. 다녀왔어? 그리고 사고 처리는 잘한 거야?”

 “응.”

 “나한테 죽을 일은 없는 거지?”

 “유감스럽게도 그런 거 같아.”

 “웃겨.”

 “뭐가 웃겨?”

 “그냥.”

 “오늘같이 잘까?”

 “어이쿠, 산에 서 뭔 일이 있었나?”

 “빛을 보았어.”

 “빛을 봤는데 자고 싶어?”

 “그냥 선배가 좋아서.”

 “그러면 그동안엔 안 좋았다는 말이야?”

 “그런 말이 아니라······ 더 좋아졌다고.”

 “허, 웃겨······ 혹여 산에 가서 미쳐온 건 아니겠지?”

 “당근.”

 “여하튼, 네가 본 빛 자주 보거라. 하하.”

 “나 지금 간다.”

 “알았어. 집 앞으로 와 나갈게. 너 오늘 잘 생각 마.”

 “알아서 해.”

  

 밤을 나면서 내 속에 굳게 자리를 튼 지영 선배를 새삼 느끼며 집으로 달려왔다. 왠지 떨리는 마음으로 작업실 문을 열었다. 익숙한 물감의 기름 냄새가 반갑다. 그리고 아침의 은은한 미명 아래 깨어난 작업장은 수년간 보아왔던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100호 작품으로 다가가 앞에 앉았다. 캔버스 위에 덕지덕지 올라앉은 물감에서 기름 냄새가 물씬하고 풍겼다. 문명의 이기로 말미암아 가족들 간의 어둡고 깊고 깊은 괴리감이 담긴 졸업작품은 부족한 것 없이 완성되어 펄떡이는 메시지를 전하러 작업실을 나가고 싶어 했다. 나는 얼른 전화기로 심부름센터 전화번호를 찾았다.                        




끝.   

       

 

                       

1. 성   명  : 전  흥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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