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by 젊은과홍수 posted Nov 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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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는 사이가 퍽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유치원부터 고등학생인 지금까지 같은 동문이니까.

한땐 옆집 이웃으로 문만 열면 네 집 내 집 없이 드나드는.

 

몇 년 전 그녀가 이사를 갔지만 그래도 우린 여전히 같은 학교를 다녔다

손을 잡고 등교를 하거나 장난을 치며 하교를 하는 일이 나에겐 꽤나 즐거운 일이라 그저 영원하기만을 바랐다.

 

나는 그녀가 좋았다.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날씬하고 무엇보다 미소가 선한 그녀는 공부도 곧잘 했다.

주위에선 그녀의 엄마가 잠도 안 재우고 공부시킨다며 수군거렸지만 아주머니께선  내가 놀러 갈 적마다 서글서글하게 웃으시며 재미난 영화도 자주 보여주셨다.

물론 과외를 하는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이었지만.

 

나는 우리의 우정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 너 그거 봤어? 어제 우리 오빠들 정말 멋졌어!!"

 

어제 본 음악 프로그램에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왔다.

나는 고삼인데 철이 없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며 그 아이돌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분명 그녀도 나처럼 그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배시시 웃으며 내일 당장 이야기꽃을 피우리라.


나는 그녀가 좋았고 그녀도 나를 좋아했다.

우린 단짝이니까.

 

"? .. 못 봤어"

 

예상치 못한 답에 나는 당황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서로 누가 멋있네, 누가 노래를 잘했네, 시시덕거릴 생각이었다.

 

그녀는 힘없는 대답이 나를 어떠한 두려움으로.

 

처음으로 그녀와 내가 달랐던 순간이었다.

 

 

 

"... 그래.. 그럼 어제 뭐 했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입술은 열리지 않고 다만 살짝 미소만.

 

나는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처음으로 그녀와 내가 침묵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물어진 입으로 학교로 향했다.

 

, 수업 잘 들어!”

 

나의 인사에 그녀는 싱긋 웃음.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아픈 게 분명하리라.

 

'아마도 감기가 걸렸겠지. 아주 심한 독감.! 그래 그러면 말하는 것도 티브이 보는 것도 힘드니까 그럴 거야.'

 

어떠한 긴장감이 머릿속에 자꾸만 자꾸만.

나는 필사적으로.

 

쉬는 시간마다 그녀의 교실로 향했지만 줄곧 문제집을 풀어대는 모습에 옆에만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 밥도 먹지 않겠단다.

 

속이 안 좋아. 너 혼자 먹어.”

 

억지웃음으로 나를 안심시키는 그녀가 어딘지 낯설었다.

우린 단짝인데.

 

매번 쉬는 시간 떠들고, 매일 점심시간 같이 먹고, 등교도 그리고 하교도 우린 함께.

그런 그녀와 나인데.

 

봐봐, 어디가 아픈 거야그래서 티브이도 못보고, 밥도 못 먹고, 이상한 생각말자

 

걱정스러운 마음과 묘한 안도감.

 

 

 

"~~~집에 가자~~"

 

담임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그녀의 반으로 달려오며 외쳤다.

지나가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나를 보며 금붕어 똥이라 웃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어선생님이 꿀밤을 살짝 먹이며 복도서 조용히 해야지 하셨다.

맞은 이마를 문지르며 히히 웃었다.

 

~ 아파요!‘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그녀 반으로 가려는 내게 그는 네 쌍둥이 아까 먼저 가더라 했다.

 

나는 심장이 덜컹.

 

억지로 웃으며 아 맞다! 먼저 간다 했지 지어내 말했다.

집에 오는 내내 눈물이 자꾸만 자꾸만.

 

불 꺼진 방안에 아무렇게 가방을 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가만히 보니 참았던 서러움이 꾸역꾸역 목구멍에 차올라 결국 얼굴을 감싸 쥐고 울었다.

방문을 두드리는 엄마 목소리를 귓등으로 넘기며 돌아누워 또 한참을 그렇게.

 

나와 그녀는 단짝이니까.

 

밤늦도록 그녀의 연락은 없었다.

여전히 아침까지도.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가 항상 만나던 등굣길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어젠 너무 아파서 먼저 간 걸 거야

우리 담임선생님 종례가 원래 길잖아 어떻게 참고 기다리겠어? 분명 그랬을 거야'

 

다급한 혼잣말은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고 나는 점점 더 무거운 기분으로 걸었다.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다행히 여전히 그녀는 우리가 만나는 자리에 서있었으므로.

절망에 가까웠던 걸음은 어느새 신 난 토끼걸음이 되었다.

 

"어제 왜 먼저 갔어? 아팠어?"

"..."

 

그녀는 답이 없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조용히 걸었다.

 

힐끔대는 나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나에게 웃으며 한마디.

 

"오빠들 신곡 좋더라"

 

나는 얼굴에 완연한 미소를 그리고 다시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매일 듣는다는 둥 그제 음악 쇼에선 누가 윙크를 했다는 둥 나는 신이 나 지껄이며 걸었다.

 

나중엔 노래까지 부리며 춤도 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거려도 개의치 않고 일부러 더욱 신나게.

 

나와 그녀는 다시 예전과 같을 수 있을 거란 믿음.

 

어제의 이상기류는 잠시 잠깐의 사춘기일 뿐 우린 여전히 단짝이었다.

서로를,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단짝. 분명 난 그렇게 믿었다.

 

나를 보며 웃어대는 그녀의 눈빛이 왠지 아파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이리라.

 

점심시간 내내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그래도 간혹 미소를 보이긴 해 나는 그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 계속 나불댔다.

 

각자의 반으로 헤어질 때까지 나는 절박하리만큼 그녀에게서 예전의 우리를 돌리려 했다.

아니 예전의 그녀로.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선생님들의 수업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5교시 쉬는 시간,

그녀가  없었다.


어디갔냐 묻는 나의 말에 한 아이가 몰랐냐며 의아한 말투로 대답해준다. 조퇴를 했다고.

 

나는 마침내 그녀와 나 사이의 틈을 보았다.

 

다시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

 

서러움이 울컥거리는 걸 참고선 반에 돌아와 털썩 앉았다.

하루 종일 엎드리는 걸로 모든 과목을 대신했다.

 

하나둘 걱정스러운 물음들도 다 귓전으로 돌리고 하교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기다렸다.

 

 

 

그녀는 오늘밤도 연락이 없다.

 

거칠게 던진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침대를 등지고 앉아 그녀의 변화에 분노했다.

 

"나쁜 계집애"

 

양말을 아무렇게 벗어놓고 침대에 벌렁 누워 다시 한번

 

"못된 계집애"

 

더 이상 스스로 위로할 핑계를 생각하지 않았다.

미운 감정이 목구멍을 자꾸만 친다.

 

 

 

 

아침에 등굣길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와 그녀의 틈이 한 뼘 더 갈라졌다.

부러 걸음은 힘차게 두 팔을 씩씩하게 음악소리를 높여가며 혼자서.

 

쉬는 시간 그녀가 한번 찾아왔다.

 

나에게 우유를 주며 웃었다.

 

나는 무섭게 치켜뜬 눈으로 책상만 노려보고 있었다.

팔짱을 낀 두 팔이 저릿할 정도로 힘을 꾹 주구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서글프게 웃었다.

 

"네가 싫어진 게 아냐. 그냥."

 

"그냥 왜?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초췌해 보이는 얼굴이 눈앞에 보이고 살짝 흘러내린 안경이 애달프게 매달려 있다.

 

"벌레가 점점 많아져."

 

그녀는 한번 더 웃으며 돌아갔다.


나는 왜 그녀가 우는 것처럼 보였을까.



아이들은 수근 거렸다.

며칠째 어울리지 않는 우리를 보며 싸운거냐 묻거나 어서 화해하라 거들기도.

나는 그럴 때 마다 아니라고, 서로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우린 고삼이니까 그런거라며 어줍잖은 핑계로 에둘렀다

 

가끔 몇 발자국 앞에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이 약 올라 일부러 앞서기라도 할 치면 그녀는 힐끗 눈길 한 번 주곤 다시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 모습은 당장이라도 고꾸라질 듯, 처박힐 듯, 애처롭게 비틀거렸다.

 

그녀와 나의 틈은 이제 닿지 못할 만큼 저 멀리.

 

입시공부로 좋아하던 음악프로 마저 보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있자니 더 답답하고 좀이 쑤셔 괜히 가방정리를 했다.

책상위로 탈탈 털어놓자니 툭하고 굴러 떨어지는 우유 하나.

퉁퉁 유통기한을 넘긴 우유는 곽이 터질듯 부풀어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녀가 생각나 서럽고 화나는 마음에 그대로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대충 치운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우린 이제 친구가 아닌걸까.

 

서러운 마음이, 미운 마음이 한꺼번에 덮쳐온다.

훌쩍거리던 울음은 어느 새 엉엉 소리를 내버렸다.

 

책상 위 우리 사진.

나는 브이를 그녀는 하트를,

 

드르륵거리는 핸드폰 진동에 잠이 깼다.

한밤중 누가 문자를 보냈나 싶어 화면을 보니 그녀다.

반가운 마음에 확인 버튼을 누르려다 이내 괘씸한 생각이 들어 다시 내려놓고 전원마저 꺼버렸다.

 

'나쁜 계집애' 속으로 내뱉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녀가 죽었다.

 

어젯밤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했다.

 

힘들다고 했단다.

꿈을 포기하고 해야 하는 공부가.

 

그녀가 죽었다.

 

어젯밤 옥상에서 차가운 땅으로 뛰어내렸다 했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했단다.

답답하다고.

 

 

나는 슬며시 핸드폰 전원을 켰다.


울수도 없는 슬픔이 밀려온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가슴을 짓눌러 호흡조차 할 수 없게.




그녀의 메시지.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더 이상 못 버티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