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파괴와 동경

by SpecialFreezer posted Aug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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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파괴와 동경

K는 매일매일 자신의 조각상을 조각한다. 
그는 제일 처음 동상을 만들기 위한 반죽을 하는 게 가장 무섭다고 말하고는 한다. 
반죽을 보면 무지한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면서. 그래서 그는 반죽 작업 시에 구토를 자주 한다.
그렇게 그 나름의 고충을 딛고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동상의 초기 틀이 갖춰진다.
초기의 동상 형태는 마구 흩뿌려놓은 폴록의 그림처럼 뒤죽박죽 하고 혼란하다. 
오히려 이게 더 복잡해서 구토가 날 지경인데 그는 이 단계의 동상은 나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그가 형태를 구체적으로 만들면서 동상의 형태가 완전히 구축된다.
완성작은 언제 봐도 완벽하고 신기하다. K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미묘한 부분 하나까지 닮아있기 때문이다.
173cm의 키, 몸무게 66kg의 건장한 남성평균의 몸,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박혀있는 그의 이목구비,
아직은 나쁘지 않은 피부 질감 등 그의 신체 하나하나가 잘 표현되어있다.
누가 보기에도 완벽한 완성작이지만 그의 뇌 속에서는 아직 이게 완성이 아닌가 보다.
K는 한쪽 손에 상당히 묵직한, 중량 10kg의 아령 1개를 들고 온다.
그리고 다른 한쪽 손에는 큰 카메라 하나를 들고 온다.
그리고서는 아령을 잠시 내려놓고,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켠다.
그리고서 그는 다시 아령을 들고 자신의 동상을 보면서 눈에 모든 악감정을 담아낸다.
그리고 분노,후회,열등감 등의 단어들을 마구 내뱉어내며 자신의 감정을 하나로 집중시킨다.
그러고 있을 때 그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향해서 소리치는 사탄처럼 보이기까지 할 정도이다. 
그러다 그러한 분노들이 서서히 웃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갑자기 미친 것처럼 웃기 시작한다.
그의 웃음이 절정에 이르게 되어서 완전히 정신병자 같아 보일 때쯤, 그는 아령으로 동상의 얼굴을 박살 낸다.
그리고 서서히 몸과 팔, 다리까지 박살 낸다.
완전히 동상이 깨져버리는 그 순간 그는 미칠듯하게 웃던 웃음을 싹 굳힌다. 
그리고서는 갑자기 막 울기 시작한다. 눈물이 코를 타고 내려와서 땅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눈물방울의 세기가 강해서인지, 작업실이 적막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눈물은 작업실의 바닥에 떨어져, 큰 소리를 내며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무참하게 깨져버린 동상은 조각들로 흩어져서 비싼 유리꽃병이 깨진듯한 형태로 되어있다.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한 조각들과 투명한 눈물이 그의 작업실에는 매일 흩어져 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대략 2시간쯤 지나간 것 같다. 그는 눈물을 거두고 다시 무표정한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하지만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표출하는 탓에 부은 얼굴과 푸르면서도, 붉으면서도, 노란 그의 눈은 돌아오지 않는다.
K는 그 조각들을 쓸어담아서 봉투에 마구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끄고 나서 봉투를 작업실 구석에 대충 처박아둔다.
그는 절대로 이 작업을 할 때 비디오를 확인하지 않는다.
K는 자신의 이러한 행위가 진정한 예술이라고 자부하곤 한다. 
자기파괴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자기해방이라면서 오묘한 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속으로 그를 궤변론자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이상한 궤변이 좋다. 
자신의 동상을 파괴하는 K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K에 대한 동경을 느낀다. 
그는 항상 나를 자기모순에 빠뜨린다. 
나는 나를 이겨낼 수 있는 존재인가? 나는 과거의 나를 깨버리고 나아갈 주체적인 사람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시원스럽게 답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매번 철저하게 자신을 파괴한다.
과거의 후회와 자책에 빠져서 나날을 보내는 나로서는 그의 그런 모습에 두려움과 동경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매번 새롭게 부셔내고 이겨내는 'K'와 함께 한지도 벌써 15년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K를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