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by 물주머니 posted Aug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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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그와 결혼하면 영화 같은 삶이 펼쳐질 거라 기대했다. 하긴 그 생각이 틀리진 않았다. 다만 장르가 예상 밖이었을 뿐. 롱테이크로 도입부 신만 십여 분을 잡아끄는 예술영화.

어느 명절 날 귀성객들로 꽉 막힌 도로 한 복판에 차가 꼼짝없이 정체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내게 언젠가 자기가 쓴 영화 평론의 한 문장을 읊어주었다. 느림의 회복. 곧 남편 특유의 느리고 둔한 혓바닥에 별안간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밖에 방향 표지판 아래에서 붉은 야광봉을 흔들며 교통정리를 하는 신호수가 차창 앞에서 기웃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눈치 채지 못한 남편은 누구를 향해 말하는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신호수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남편 대신에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무덤덤하게 그냥 지나가버렸다. 열기가 오른 남편의 목청이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말투는 느긋했다. 그거 알아? 인간에겐 적정치의 엔진 활성 속도가 정해져 있다는 거. 그건 딱 심장 박동 만큼이거든. 그런데 감히 그 한계를 벗어났다간 피가 어디로 솟구칠까? 신체구조가 그렇게 생명 기준점을 그어놨는데도 불구하고 인류는 기어이 그 경고의 경계를 뛰어 넘어버렸단 말이지.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도는 원래의 제 속도가 아니야. 훨씬 웃도는 스피드로 인생을 질주하는 셈이지. 인류에게 주어진 속도는 두 발로 걷는 속도 딱 그만큼이 제 속도란 걸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잊고 살고 있거든. 아니,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사실이 자명하다는 것조차 모르는지도 몰라. 바로 귀 옆에서 오토바이 한 대라도 쌩하고 지나가봐. 엔진소리가 고막을 긁어대면 그렇게 쌍욕을 해대면서도 출근 시간에 늦을까봐 부랴부랴 결국은 자기들도 부글대는 엔진 위에 엉덩이를 턱하고 깔고 앉게 되는 꼴이잖아. 모순투성이라니까. 사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도 고속화 된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붙인 말에 불과해. 솔직히 그 단어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인위적이잖아. 느림이란 원래 정상인데도 불구하고 요즘은 괜히 부정적인 어감의 부류로 팽개쳐진 것 같단 말이야. 생각해 봐. 지금 어딜 가도 느림보, 굼벵이, 나무늘보 같은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찾아볼 수 없잖아? 멀쩡한 두 다리로 제 속도로만 다니기만 한다면 교통사고든 충돌사고든 무고한 피를 볼 일은 없을 텐데. 사람들은 돈을 거는 도박에는 그렇게 치를 떨면서 정작 자기 목숨을 베팅하는 순간들에는 무감각하단 말이지. 그러니까 여보. 지금 이 상황은 그렇게 나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라는 거야.

나는 장장 열 시간이 걸려 도착한 시댁에서 부침개를 모조리 태워 먹고 말았다. 도끼눈을 하고 나를 노려보는 시어머니를 향해 당신 아드님이 말한 느림의 미학 한번 맛 좀 보셔요 라고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시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남편의 벌어진 턱 사이로 드러난 굳은 혓바닥을 보자 그만 전의가 사그라들고 말았다. 남편과는 달리 나는 내 말에 책임을 질 치기 정도는 있었어서 새까맣게 타버린 부침개를 홀로 묵묵히 씹어 삼켰다. 아주 느리게. 남편의 굳은 혀를 보면서.

 

너무 한가해서 미칠 것 같은 오후다. 아직 이십 년은 더 뒤에나 걱정 할 갱년기가 벌써 찾아온 걸까. 어릴 때도 또래에 비해 조숙하긴 했어도 이제 중년으로 접어드는 시기까지 신체 변화가 서둘러 오는 걸 보면 무엇이 더 남들보다 일찍 올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남편의 차가 오다니는 길목 위의 나무를 바라본다. 실은 남편을 기다린다기 보다는 정확히는 남편이 가져올 충전기를 기다린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다.

그때 얼마간 내 시선이 멀리 가 있는 동안 내 손 안이 꿈틀거렸다. 작은 아기의 손이 꼼지락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기는 신생아답지 않게 얌전했다. 오히려 철없는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럽게 가만히 누워 보채는 일 하나 없이 의젓하게 엄마 품에 안겨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이렇게 얌전했다고 듣지는 못했던 것 같았는데. 그렇게 엄마를 빼닮지 않은 아기를 바라보며 아기가 점점 자라면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부푼 상상해보았다. 어쩌면 아빠를 닮아 태생부터가 답답하긴 해도 글 몇 자를 품 팔아 그런대로 남 부럽지 않을 만큼 잘 먹고 살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아니면 자라면서 점차 엄마를 닮아 뭐든 앞서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로 둥글지 못할 팔자를 지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하얀 도화지 같은 얼굴로 순하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니 예상은 무너지고 이 아기는 엄마 아빠 우리 두 사람 중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나는 이런 기분에 기뻐해야할지 아니면 아쉬워해야 할지 미묘하기만 했다.

머리 아픈 생각을 흩어내려고 나는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저 멀리 있는 나무 위 높은 가지 끝에 걸려 있는 둥지를 바라본다. 새 한 마리 날아오르지 않는 저 둥지가 무슨 재미가 있다고 보게 되는 건지 처음에는 나조차도 의문이 들었지만 점차 깨달은 것은, 아마도 그건 저 둥지가 이따금씩 가지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흔들리는 모습이 둥지 속에 있는 아기 새들도 답답해서 가끔씩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이라는 상상을 하노라면, 언젠가 그 아기 새들이 다 자란 날개를 펼쳐 둥지 밖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기다려지곤 한다. 다만 퇴원하기 전까지 그 장면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남편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좀 늦는다. 아기의 손을 쥐고 있지 않은 나머지 다른 한 손으로 괜히 배터리가 나간 게임기만 만지작댄다. 만일 내가 남편에게 다시 그곳으로 가겠다는 말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면 남편은 길길이 날뛰며 한시라도 빨리 와줄까.

 

온종일 배가 지끈거리던 명절 밤이었다. 복통은 새까맣게 탄 부침개를 먹은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생리를 하지 않았다. 부부의 삶을 좋게든 나쁘게든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릴 만한 변화에 관한 소식을 알린 이후로도 남편은 유별나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 말은 즉 우리 부부의 생활은 마치 하룻밤 사이의 꿈을 관통한 듯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갈 나날들이 예고된 셈이었다.

남편의 일과는 달력의 검은 날이든 빨간 날이든 새벽에 일어나서 작업 방에 틀어박혀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오전 오후 내내 스크린 앞에서 중간 중간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가 기계처럼 책을 꺼내어 보고는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고, 또 그러다 무슨 규칙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일정한 타이밍에 노트북 키보드를 타다다닥 두드렸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는 왠지 과일을 서걱 써는 소리와 닮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일 때 나는 타닥 소리와 비슷했지만 남편이 방에서 나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아이러니 하게도 나 배고파 이 단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였다.

방에서 남편이 내는 소리들이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처럼 그렇게 나는 영화도 믿지 않았다. LCD판 너머의 화면 속에서 남편은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현실의 처방전을 공들여 제조한다. 그런 모습을 이따금씩 무표정하게 바라보면서 나는 남편과는 달리 삶은 가상과 현실을 엄격히 구분 지을 줄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내 자존심은 남편의 방에서 생산되는 고료에 한 수 접고서, 그저 냄새가 올라오는 개수대 위에서 저녁을 차리며 단념한 채 묻어 둘 뿐이었다.

흔한 자택 근로자들의 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넌더리나는 풍경들은 남편의 방에서 만큼은 예외였다. 남편은 담배로 탑을 쌓지도 찌그러진 맥주캔을 바닥에 늘어놓지도 않았다. 술 담배를 안 하는 남편에게 안 좋은 점이 있다면 남편이 어떤 타이밍에 무슨 말을 하더라도 우스갯소리로 흘려 넘길 얘기는 없다는 것과 전업주부로서 남편의 방에 들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방에 들어갔다가 곧장 다시 나온 나는 소파에 앉아 다른 할 일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출산까지 남은 예상 시간은 아마 반 년 정도. 남편은 보나마나 꾸준히 쳇바퀴 속을 굴러다닐 게 뻔하다. 멀리서보면 태만처럼 보이는 그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본다는 건 뭔가 곤충의 탈피과정을 초단위로 관찰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기대를 꺾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남편은 이미 진화의 종착점까지 와버린 성인 남성이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날개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곳 어디에서 찾아야 했다. 태아한테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내 일상을 제대로 굴러가게 해줄 수 있는 속도란 어디에 있을까. 마침내 내게 안성맞춤인 곳을 찾아냈다.

 

에라이 니미럴. 오늘도 공쳤구만. 옆에 있던 남자가 욕설을 퍼붓고 자리를 뜬다. 나도 가슴이 뻥 뚫린다면 욕이라도 시원하게 내지르고 싶었지만 아기에게 어느새 귀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혀를 살짝 물었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속도감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흙먼지가 좀 날리고 찌든 담뱃재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통에 역한 냄새가 진동한다는 건 불쾌했지만 온 신경을 시신경에만 쏟는 다면 이곳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말들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주행이 끝나자 나는 얼마간 내가 내기를 건 쪽이 이겼는지도 졌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검정색 경주마가 남편 몰래 본 어느 로맨틱 영화의 새드 엔딩을 떠올리게 했다. 그건 어쩌면 양 눈가에 가리개를 붙인 말들이 제 아무리 죽기 살기로 달리더라도 결국은 저 트랙을 벗어 날 수 없다는, 어떤 불우한 생의 한 단면을 너무 적나라하게 제시하는 영화의 결말부를 보고나서의 우울한 기분이 불현듯 밀려온 탓일 것이다. 저 야생의 근육으로 광기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더라도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면 대체 얼마나 더 빨리 달려야만 하는 걸까.

경마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주변 여기저기서 육두문자가 난무했다. 나는 아기의 귀가 있을 법한 자리에 두 손을 포개어 얹고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얼굴이 붉어진 사람들 덕분에 오늘 도로는 과속차량들로 뻥 뚫릴 것만 같았다.

 

둥지가 다시 미묘하게 흔들린다. 나무 아래로 지나가는 차가 일으킨 바람 탓일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방금 지나간 차는 빌빌 기어가느라 나뭇잎 한 장 날려버리지 못하는 남편의 차였으니까. 곧장은 아니더라도 얼마 있다 보면 남편이 이리로 올라올 것이다. 남편이 바리바리 무얼 더 가져오든 충전기만은 제대로 가져와 줬으면 좋겠다. 읽고 앉아있다간 산후 조리원에서 정신병원으로 병상을 옮기게 될 것만 같은 자기 취미에 맞춘 소시오패스의 책들은 극구 사양이다. 영화랍시고 가져오는 것들도 하나 같이 사람 속 뒤집어 놓는 것들이었다.

지난 번 경마장에 다녀 온 날 저녁이었다. 오전 중에 뭘 하고 왔냐는 남편의 물음에 나는 딱히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남편과 한바탕 언쟁이 벌어진 이유는 배팅한 금액에 붙은 0의 개수 때문이었다. 산모의 우울한 기분을 핑계 삼아 남편의 기를 제법 몰아붙이자 남편은 기가 찼는지 오히려 태교를 구실로 나를 역으로 몰아세웠다.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싸움은 무의미했다. 더군다나 우리 부부같이 서로를 이해하기엔 높은 벽들이 듬성듬성 놓인 굴곡진 관계에선 더욱이 그랬다. 결혼생활에 무의미한 암벽등반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 그건 그저 진만 빠질 뿐이다. 그냥 에둘러 가거나, 넘을 생각을 포기하면 가정의 평화는 얼마든지 유지될 수가 있다. 그날 저녁 남편은 영화나 한 편 보자고 제안했다. 사실 그건 제안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게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이 내게 영화를 보자고 말한 일은 의외였다. 사실 우리가 같이 앉아 영화를 본다는 일이 결혼 후엔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겐 영화 감상은 돈줄을 부여잡는 일이고 일개 주부인 내겐 영화란 현실과는 분리된 그저 그런 가십거리인 만큼, 그것을 같이 본다는 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공감으로 공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여실히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냉정한 현실파악에 있어서는 평으로 벌어먹는 남편 스스로가 더 잘 알면서도 남편은 기어이 DVD가 꽂혀있는 서가로 향했다. 나는 조용히 밥상을 치우고 커피를 내렸다. 그러면서 세 잔 정도면 영화가 시작하고 절반 까지는 졸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각오를 깨물었다.

 

별일 없었지? 남편이 별 의도도 없는 질문을 하면서 들어왔다. 충전기는 가져왔어? 나는 반대로 의도가 분명한 질문을 던졌다. 남편의 이마가 언짢은 듯 주름이 살짝 찌그러지는 표정을 한 번 짓고는 이내 돌아서서 가방을 뒤적였다. 내가 안 가져 오려다 혹시 또 난리라도 피울까봐 여보 몸 생각해서 가져온 거니까 제발 적당히 해 알겠어? 남편은 확인을 얻으려는 듯 말끝을 올렸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콘센트에 충전기를 꼽고 게임기에 연결했다. 전원이 들어왔다. 평소에 기계 같은 거에는 손도 안 대던 사람이 뭣 때문에 그 난리야. 그게 그렇게 재밌어? 남학생도 아니고 치고 박는 걸 말이야. 그것 때문이 아니야 기록이라고. 무슨 기록? 올 클리어 최단 시간 기록. 게임 시작 전 로딩을 기다리는 동안 남편 쪽에서 껄끄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굳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더라도 입술을 늘어뜨리고 불만을 표현할 단어를 고르고 있을 남편의 얼굴이 익숙하게 그려졌다. 야밤의 산 속에 둥둥 떠다니는 살쾡이의 눈빛, 그런 눈으로 남편은 영화를 깎아내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얼굴을 그런 식으로 깎아보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무슨 게임이야? 남편이 기껏 고른 단어가 고작 이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 것이라니.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평론 속에선 고정관념을 깨니,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을 이은 형식의 파괴니, 또 역사가 발전시켜 온 고결한 페미니즘 같은 말 따위나 끼적이면서 정작 저 혓바닥은 아직 계몽이 덜 된 모양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조금 더 빨라졌을 뿐이다. 남편이 참지 못하고 또 입을 열었다. 여보랑은 어떤 부분에 있어선 말이 안 통한다는 거 이해는 하겠는데 그래도 사람 성의가 있으면 시늉이라도 좀 해봐라 응? 남편이 말하는 성의라면 아마 그날 함께 본 영화를 염두에 두고 내뱉은 말일 것이다. 사실 함께 보았다는 표현이 애매하다 싶을 만큼 우리 두 사람 각자가 서로 다르게 영화를 봤지만.

 

토리노의 말. 종말의 세상에서 카메라는 느긋하게 수레 끄는 말을 십 분간 훑고 있었다. 그건 마치 남편과 함께 사는 삶 같았다. 나는 졸음을 쫓기 위해 오전에 보았던 힘차게 달리는 말들을 떠 올렸다. 100m 200m 500m 1000m 상상은 점점 과격하게 치달아 어느새 경마장을 뛰쳐나온 말이 남편의 차를 들이박는다. 차 앞 범퍼에는 무언가가 쿵 떨어졌고 차 안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난리 통에 가물가물하던 정신이 둔기를 맞은 듯 번쩍하고 화끈거렸다. 뭐야, 자는 거야? 그래 그래 내가 졌다. 그만보자. 남편이 리모컨 종료 버튼을 건성으로 눌렀다. 화면이 꺼지자 내가 물었다. 그래서 저 말은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데? ? 방향 말이야. 어디서부터 잠든 거야? 집으로 갔었잖아. 그건 봤어. 그럼 알면서 왜 물어봐? 아기가 궁금하대. 남편이 어이를 잃은 눈으로 바라본다. 벌써부터 아기가 어떻고 저떻고 핑계를 시작했느냐며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그 날의 대답은 핑계가 아니었다. 그 후로 아기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나는 그 이후로 아기를 구실로 남편을 부려먹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렇게 남편에겐 긴, 내겐 짧은 시간들이 지나 아기가 태어났다.

 

사람을 가장 미치게 하는 게 뭔 줄 알아? 아침에 눈을 떴을 때야. 눈 떴을 때 오늘도 이렇게 누워있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 그렇게 자신이 폐인 같다는 생각이 하루의 첫 순간이라면 어떨 것 같아? 여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남들은 종일 뒹굴 거리며 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피하지 못할 바엔 그냥 이 순간을 누리라고. 카르페디엠 이란 말 들어봤어? 남편은 그 뒤로 혓바닥에 탄력이 붙었을 때처럼 이야기를 늘어놨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교사와 학생들이 나오는 영화에 관한 평론이었다. 게임 로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도중에 말을 끊었다. 한 줄로 추려봐. 남편은 머뭇거렸다. 그러나 남자의 자존심이란 게 뭔지 별 시답잖은 말도 거창하게 내뱉었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란 말이야. 남편은 마치 모든 울분과 영혼을 쏟아내고 난 뒤의 숭고한 승리를 예견한 사람처럼 기세등등하게 숨을 쌕쌕댔다. 내가 말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지, 지금 이 순간을. 근데 당신, 당신이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 나 울고 있잖아.

 

늦은 밤까지 지루한 영화를 봐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에 잠깐 눈을 좀 붙였는데도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고 말았다. 새벽에 한 번 깼긴 했었는데 눈이 영 침침해서 다시 잠이 들고 말았던 게 탓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없었다. 어느 영화제에 참석할 일정이 있었다는 걸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읽고서야 그날 아침에 알았다. 문자를 읽는 도중 전화가 걸려왔다. 시어머니였다. 나는 도로 누워 눈을 감고 전화기를 베개 옆에 올려놓고서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어머니.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요.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하니. 네 서방 아침 든든하게 차려 먹이고 보냈지? 먼 길 가는데 출발하기 전에 잘 멕이 둬야지. 네 그럼요. 두 그릇이나 먹고 일찍 나섰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침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고? 야야, 원래 아침은 조금 먹는 애가 아니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그만큼이나 먹어. 그러게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일까요. 저쪽에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무 예의가 없었나 신경이 쓰였다. 하긴 이쪽에선 워낙 통화도 용건만 하고 끊는 타입이라 시어머니 입장에선 곱게 들릴 리가 없다. 침묵을 어떻게 깰까 고민하는 사이 저쪽에서 먼저 말을 뗐다. 병원은 잘 다니고 있니? 의사 선생님이 뭐라 하든? 순탄하대요. 예정된 날짜에 맞춰서 나올 거래요. 그래? 다행이구나. 너 성질머리 닮아서 손가락도 다 자라기도 전에 못 참고 뛰쳐나오면 어쩌려나 싶었는데. 뭐든 너무 급해서도 너무 늦어서도 안 되지. 항상 제때가 있는 법이란다. 그렇죠. 정말 다행이에요. 대답을 하고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편 닮아 육손이 될 때까지 세월아 네월아 틀어박혀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나 보지? 그때 갑자기 시어머니의 가라앉은 음성이 파고들었다. 너희들은 참 어떻게 그렇게 닮았니.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남편은 집사람이 몸이 안 좋아서 그냥 나섰다고 하던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시어머니의 도끼눈이 눈에 선할 따름이었다. 너희 결혼하기 전부터 비슷한 구석이 있었어. 너희 둘 다 지나칠 만큼 자기 하나만 고집스러운 거 말이다. 시어머니의 말씀도 듣고 보니 그 말도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너무도 닮은 면이 있어서, 어쩌면 그 점 때문에 한계점만큼 가까워지고 나면 그 이상으로 친밀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건 속도와 관련이 있는 걸까.

 

아기는 고른 숨소리로 병실에 은은한 생기를 채워주고 있다. 반 뼘 정도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아기의 얼굴을 굴러다니며 나긋하게 재우고 있었다. 나는 게임기의 볼륨을 낮추다가 아예 소리를 꺼버렸다. 어차피 현란하게 움직이는 화면만 보면 되니까.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지자 온 신경이 눈에 쏠렸다. 또 눈이 침침해졌다. 산후 후유증이라기엔 임신 중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 기술이 한 번 빗나가자 그만 최단시간 클리어는 물 건너갔다는 걸 알았다. 나는 게임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 봤다. 둥지는 지난 번 보다 더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저러다 큰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나왔어. 남편이 오는지도 몰랐다. 아마 인간보다 청력이 네 배나 밝다는 강아지조차도 남편의 차가 굴러오는 소리는 못 들을 거다. 아직도 그놈의 오락이나 하고 있는 거야?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잔소리부터 늘어놨다. 자세히 보니 남편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술을 마신 것 같았다. 생전 술은 가까이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대낮부터 왜 이렇게 마신거야? 왜냐고, ? 지금 왜 마셨냐고 물어보는 거야? 남편의 꼬부라진 혓바닥은 가뜩이나 느린 발음을 엉망으로 더 뭉개버렸다. 내 삶이 엿 같아서 마셨다 응? 밖에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우러러 보는 남자를 집 안에선 벌레만도 못하게 봐. 내 혓바닥에서 쏟아 나오는 말이 다 얼마짜리 말인지 알아? 너는 그걸 공짜로 듣고 있는 거야. 아니, 내가 돈을 벌어다 주니까 돈을 받으면서 듣고 앉아 있는 거라고! 그런데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것도 모자라 아예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해도 눈도 안 마주쳐. 이 따위로 대우 받는 게 남편 맞아? 무슨 짓이야 당신 그러지 마! 미쳤어? 남편은 내 무릎 위에 얹어진 게임기를 집어 벽으로 메다꽂았다. 게임기는 정확히 두 조각으로 분해되었다. LCD판은 산산조각이 나고 튀어나온 납작한 칩은 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그때 남편에게서 어떤 변화를 감지했다. 남편이 내지르는 소리와 인간의 평균 수치를 훨씬 초월한 심장 박동이 유리 파편이 처참하게 깨지는, 아니 시원스럽게 깨지는 소리와 뒤섞이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온갖 다채로운 색상으로 일렁거리는 남편의 얼굴에 영화 속으로부터 모니터를 뚫고 나온 캐릭터들의 얼굴들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소란을 들은 간호사가 이쪽으로 들이닥쳤다. 뭐하시는 거예요. 여기 조리원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고 계신다고요. 남편은 옆에서 재잘대는 간호사 쪽으로 돌아보더니 나지막이 읊조렸다. 피해? 야수와 같은 남편을 본 간호사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바로 나야, 나라고! 그때,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기의 울음소리. 그 소리는 바로 내 손끝 쪽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병실은 순식간에 하나의 소리 앞에 모든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내 호흡도 멈춘 것처럼 아주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우린 조리원을 나왔다. 쫓겨난 건 아니지만 더 좋은 꼴을 볼 수도 없는 곳일뿐더러 나부터가 더는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아기를 안고 있었고 남편이 트렁크에 이것저것 짐을 실었다. 대리 부른다. 됐어, 내가 해. 당신 취했잖아. 방금 다 깼어. 남편답지 않게 단호한 말투였다. 그래서 나는 그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이 허세를 부린 것에 불과하단 걸,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타려다 그만 머리를 부딪쳐 나자빠질 때 알아봤다. 거봐. 전화 한다. 내가 하지 말랬잖아. 그럼 어쩌라고. 남편은 다리를 쭉 펴고 주저앉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찢어진 남편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지금껏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저 살가죽에서 지금 이 순간 뜨뜻하고 끈적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자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결혼 전에도 못 느꼈던 설렘을 이런 상황에서 느꼈다. 그럼 내가 할게. 남편은 그 말에는 딴죽을 걸지 않았다. 얼른 조수석에 타기나 해. 아기 이리 줘. 안 돼. 지금 술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알아? 그러면 아기를 안고 운전하겠다는 거야?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래도 꺼림칙하고 저래도 찝찝한 상황. 모쪼록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는 게 상책이었다. 안전벨트 매고 아기 너무 꽉 잡으면 안 돼.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출발하기나 해. 나는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고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주차장을 빠져 나와 길에 접어드는 순간 그때, 눈이 갑자기 또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뿌연 것이 각막에 들러붙은 듯 걸쭉하고 기분 나쁜 증상이었다. 나는 그 순간 브레이크를 밟았어야 했다. 그러나 내 몸은 항상 가속 페달에 최적화 되어 있었고 나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마침 그때 옆에 있던 남편이 재빠르게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밟았다. 차는 달려야할지 멈춰야할지 갈피를 못 찾고 타이어가 찢어지듯 비명 같은 소리만 질러댔다.

옆 좌석을 보았을 땐 남편이 아기를 감싸 안은 채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행히 심한 충돌은 아닌 모양이다. 팔다리도 약간 저리기만 할 뿐 별 탈 없이 움직였다. 범퍼에서 연기가 치솟아 차창 앞이 뿌연 연기로 가려졌다. 차량상태를 보기 위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니, 사실은 두려웠다. 충돌 뒤의 짧은 순간 범퍼에 전해졌던 진동은 분명 무언가 부딪치는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솟아오르는 연기 사이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범퍼 위엔 나무로 엮은 바구니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은 없었다. 연기를 걷어내고 자세히 들여다 본 순간 머리가 아찔하고 몸에 한기가 돋았다. 둥지다. 내가 늘 바라보고 비상의 광경을 기대했던 둥지. 둥지 속의 아기 새들은 비상하지 못했다. 나는 지저귀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하고 그것들의 싸늘한 시체 앞에 서있다. 그때 차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울음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으려 죽은 새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누가 내고 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아무래도 사고의 원인은 가속 페달을 밟은 탓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핸들을 잘못 잡았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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