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사과
우리 집 담벼락 옆에는 사과나무 하나가 붙어있다. 거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과 가운데서 유독 한 사과만이 담을 넘어 우리 집 마당에 몸을 걸치고 있는데, 하루 종일 바람을 타고 흔들거렸다. 크기도 크고 생긴 것 마저 중력이 잡아당긴 타원 모양이라 마치 내 심장처럼 보였다. 뭐, 심장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나는 항상 등교하기 전에 신발끈을 묶으며 흔들리는 사과를 별 의미 없이 쳐다본다. 하지만 오늘 저 사과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평소와 달리 다소 무거웠다. 왜 그럴까, 라고 생각해보니 어제 미진이와 떡볶이집에서 했던 대화가 문제였다.
*
“넌 오늘도 얻어먹어?”
이년이 떡볶이를 잘 먹다가 또 시작이다. 분명 자기가 사준다고 가자 그랬으면서…….
“깜박하고 돈을 안 들고 왔어.”
나는 우물우물 떡을 씹으며, 늘 그런 듯 돈을 안 챙겨왔다는 핑계를 댔다.
“에휴, 어떻게 맨날 까먹어? 너 붕어니?”
“붕어? 아니거든?”
매일 듣는 미진이의 생색이었지만 붕어라는 말은 좀 거슬렸다. 얘는 무슨 할 말만 없으면 시비부터 걸더라. 그리고 사람한테 붕어가 뭐야, 붕어가. 자기는 열네 살까지 나만한 붕어를 본 적도 없으면서.
“장진희, 그냥 돈 없으면 없다고 해. 또 뻥 치지 말고!”
얘가 아침부터 똥을 밟았나, 아니면 재현이가 집에 안 데려다줘서 나한테 화풀이 하나. 나도 지기 싫어서 손에 든 나무젓가락을 쾅 내려놓고 맞받아쳤다.
“진짜 집에 돈 있거든? 떡볶이 가지고 쪼잔하게.”
미진이는 내 말에 나의 자존심에 획을 긋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흥, 뻥치시네. 핸드폰도 없는 게.”
“돈 있다니깐! 핸드폰도 네가 산 거 아니잖아!”
“넌 핸드폰 사주는 사람도 없잖아. 그거 보단 낫지, 거지 아줌마!”
거지란 말을 듣고 홧김에 큰소리 친 이때의 장면을 바꿔볼 수 있을까? 당연히 안되니 지금 후회하고 있다.
“너 내가 돈 가져오면 어쩔래?”
“어쩌긴 어째. 여태껏 얻어먹은 거 다 갚아야지!”
“그래, 이깟 떡볶이 사주면 되지.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데!”
“오, 돈 많으면 납작 만두랑 순대도 사주시겠네. 고마워서 어쩌나?”
“다 사주면 될 거 아냐!”
*
‘다 사주면 될 거 아냐! 다 사주면 될 거 아냐! 다 사주면…….’
미진이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메아리가 되어 내 머리 속에 계속 울렸다. 내가 미쳤지. 공책 살 돈도 겨우겨우 받는데, 무슨 돈으로 떡볶이, 순대, 납작 만두를 산담?
한숨을 쉬며 뻐꾸기 아저씨의 배에 달린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삼십분, 곧 학교 가야될 시간이었다. 시계가 등교시간에 다가갈수록 내 걱정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 걱정의 반은 내가 가난해서 돈이 없다는 사실이 탄로 나는 것이고, 나머지 반은 앞으로 얼굴도 들지 못 하고 다닐 것 같은 쪽팔림에 대한 걱정이었다. 돈을 가져가지 못해 수업시간 내내 책상에 얼굴을 박고 있을 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부엌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희야! 밥 먹어!”
밥 먹으라는 소리가 마치 얼른 먹고 학교 가라는 소리처럼 귀에 걸렸다. 일어나기 싫어하는 내 마음을 겨우 일으켜 부엌 옆에 딸린 거실로 갔다. 엄마의 말을 쫄래쫄래 따라온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걸 보니 오늘 아침밥도 된장찌개인가 보다.
조그만 집이라 몇 발자국만 옮기니 금방 밥상에 다다랐다. 반찬은 내 예상대로 어제도 보고 이틀 전에도 본 된장찌개 아줌마였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또 보네요.
나는 우리 집에서 떠날 줄 모르는 이 분을 달갑지 않은, 일명 썩은 미소로 맞이하며 거실 마룻바닥에 털썩 앉았다. 평소라도 먹기 거북한 분인데 지금의 걱정 태반인 상태론 도저히 숟가락이 잡히지 않았다.
“얘, 밥 안 먹을 거니?”
밥상에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앉아 흰 쌀밥만 힘없이 노려보고 있으니, 엄마가 한소리 했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힘없는 손으로 축 처진 숟가락을 쥐고 힘겹게 된장찌개 한 숟갈을 떠서 입으로 던졌다. 아오, 구수해.
“후, 아침밥은 꼭 먹어야 힘이 난다고 몇 번을 말하니?”
깨작깨작 대는 내 수저질에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남기지 말고 시간되면 알아서 학교 가, 알겠지? 엄마는 아빠 회사에 뭐 좀 갖다 주고 올게.”
“네, 알겠어요.”
엄마는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좀 더 지켜보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옷장을 열고 닫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조촐한 치마를 입은 엄마가 머리를 대충 묶고 방에서 나왔다. 암만 근처라도 그렇지 좀 꾸미고 나가지…….
색이 바랜 꽃무늬 치마를 걸친 시골 아주머니는 씻지도 않은 얼굴로 부엌에 가서 까만 봉투에 이것저것 담았다. 그리고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고 문을 열었다. 신고 가는 흰 단화마저도 비닐봉투처럼 새까맸다.
“엄마 갔다 올게!”
“잘 다녀오세요~”
나도 학교를 잘 다녀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숟가락만 든 채 된장 속에 떠있는 두부를 보고 있다가 된장찌개 뚝배기의 뚜껑을 닫았다. 구수한 냄새가 좀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 갈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싶어 뻐꾸기 아저씨의 배를 보니 일곱 시 사십오 분이었다.
나는 십오 분 사이에 더더욱 무거워진 마음을 겨우 들고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구석에 자리 잡은 촌스러운 왕비 화장대에 걸터앉아 거울 앞에 올려져있는 빗을 집어 들었다. 머리를 빗기 위해 거울을 바라보니 내 얼굴에는 누가 봐도 ‘걱정 가득’이라고 써져있었다. 거울아, 거울아. 내 걱정 좀 없애주오.
난 내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으로 안 아프게 풀었다. 얼추 머리가 단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문득 거울 왼쪽 모서리 아래로 시선이 갔다. 모서리 아래쪽에 허름한 갈색 물건이 비춰있었다. 고개를 돌려 침대 위를 보니 그 물건만 내 눈에 박혀 다른 사물들은 아예 보이지 않는 그런 착각이 들었다.
거울에 비친 허름한 갈색 물건은 다름 아닌 엄마의 가방이었다. 그 가방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 검정색 물감이 떨어져 검게 물들어지는 탁한 기분을 느꼈다.
‘아, 아까 엄마가 나갈 때 가방도 안 챙기고 갔었지? 칠칠맞게……. 그나저나 저 가방은 몇 년 째 쓰는 거야? 다 낡아서 고물상 아저씨도 안 받겠다.’
검은 생각이 나를 덮쳐 나는 다른 생각을 해보려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내 몸은 슬그머니 가방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집에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지만, 내 다리는 조심스러웠다.
꿀꺽.
가방이 방심한 채 누워있는 침대 앞에서 나는 침을 한 번 삼켰다.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으나, 내 손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천천히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가방 지퍼에 얹히고 입구를 열었다. 지이이익 하고 열린 가방의 입 속에서는 휴대폰부터 시작해 갖가지 화장품과 물건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수십 가지 물건 중에서 유일하게 지갑만이 빛나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빼내어 얼마가 들어있는지 보았다. 초록색 지폐가 수십 장이나 끼워져 있었다. 다행이다. 이 정도면 한 장 쯤 빼도 모르겠지?
나는 불안한 희망을 품으며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바지 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티가 안 나게 지갑을 다시 넣고 가방을 잠갔다. 빗도 제자리에 올려놓고, 화장대 의자까지 화장대 밑으로 완전히 밀어 넣었다.
뻐꾹! 뻐꾹!
여덟시를 알리는 뻐꾸기시계 알람 소리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는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재빨리 책가방을 메고 방을 나와 신발을 꺾어 신은 줄도 모른 채 대문으로 달려갔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담벼락 옆 사과나무를 힐끔 보았다. 우리 집으로 튀어나온 사과 하나가 바람도 안 부는데 흔들리고 있었다.
*
‘두근두근’
집을 나선 후부터 심장이 나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심장에서 들리는 말을 무시하려고 어제 봤던 만화를 계속 떠올려 보지만, 주인공의 얼굴이 나타나기도 전에 내 심장 소리를 듣고 도망을 갔다.
커져가는 심장 소리만큼 퍼지는 불안함에 바지 주머니 속에 든 만 원짜리를 꽉 쥐었다. 애꿎은 손만 아팠다. 열차를 탄 느낌이 이럴까? 걷는 동안 지나가는 풍경들이 스쳐가듯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나는 천천히 걷고 있는데…….
“진희야, 학교 가니?”
갑작스레 날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말을 건넨 사람은 채소 아주머니였다. 괜히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놀랬던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네, 학교 가요.”
“얼굴이 왜 이리 울상이니? 불러도 땅만 보고?”
아직도 내 얼굴에 ‘걱정 가득’글자가 써져있나 보다.
“그냥 학교 가기 싫어서요.”
“호호, 그렇구나.”
내 대답이 꽤나 적당했는지 아주머니는 귀엽다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민성이 댁 가게에서 계모임 할 거라고 엄마한테 말 좀 해줘. 참, 시간은 다섯 시. 전해줄 수 있지? 영 전화를 안 받아서…….”
“엄마가 아침에 아빠 회사에 가서요. 학교 마치고 말씀드릴게요.”
“아, 그래? 좀 부탁 할게! 학교 땡땡이치지 말고. 호호.”
나는 끄덕끄덕거림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아주머니를 지나 다시 학교로 향했다. 채소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준 덕분인지 긴장한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계모임 시간을 몇 번 되새기며 걱정 반, 잡생각 반을 하다 보니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걱정이 하나도 없는 척 연기를 하며 일부러 느긋하게 반으로 올라갔다. 복도를 다 올라간 뒤, 일학년 삼반 문 앞에 멈춰 서서 삐걱대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 창문 쪽 맨 뒤에서 두 번째 책상에 가방을 올렸다.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아마자 황미진 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책상 앞에 왔다. 거만하게 팔짱까지 끼고 말이다.
“오늘도 돈을 깜빡했겠지. 거지 아줌마?”
거지 아줌마. 잠시 참을 인자 세 번을 머릿속으로 새겼다.
“오늘은 돈 있거든?”
돈을 들고 왔다는 내 말에 미진이는 ‘어쭈?’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호, 웬일이래? 장진희 님께서?”
“학교 마치고 알아서 사줄 테니깐 시비 걸지 말고 가만히 계셔.”
나도 팔짱을 꽉 끼고 거만하게 미진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돈 들고 오시긴 하셨나 보네. 근데 어쩌나? 나 오늘 배터지게 먹을 거라 점심도 안 먹을 건데?”
“그러시던가. 나도 오늘 많이 먹을 거라 점심 안 먹을 건데?”
우리는 팔짱 낀 상태로 서로를 노려보다 미진이가 먼저 자기 자리로 갔다. 학교 끝나면 결판나겠지, 라는 뒷모습이었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떡볶이집에서 쓸 돈을 대략적으로 짜보았다.
떡볶이 일 인분에 천 원. 순대가 천오백 원. 납작 만두도 천오백 원. 다 두 개씩 시키고, 미진이 이년이 콜라를 좋아하니깐 콜라까지 시키면 천 원. 다 합치면 보자……. 구천 원이네. 비상금 천 원까지 있으니 모자랄 일은 전혀 없을 거야. 좋아, 완벽해. 오늘 저 싸가지 콧대를 납작 만두처럼 납작하게 눌러주겠어.
딩동~
대충 짜려던 떡볶이 값을 가격까지 맞춰보며 아주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수업 종과 함께 국어 선생님이 들어와 책을 펴고 뭐라 뭐라 설명했지만, 당연히 선생님의 말은 ‘방과 후 미진이 콧대 눌러주기’계획으로 인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딴 생각을 하는 동안 수업 종과 쉬는 시간 종은 몇 차례 술래잡기를 끝냈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좀 있으면 떡볶이집에서 우쭐대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보니 훔친 돈에 대한 걱정은 거의 사그라들어 있었다.
잠시 후, 교실 안으로 배식 당번들이 깡통 로봇 같은 은색 반찬통을 들고 왔다. 미진이에 대한 나의 자존심, 아니지 분식을 배터지게 먹을 것이기 때문에 점심을 먹을 생각은 없지만, 메뉴가 궁금해서 배식대 근처를 기웃거려 보았다.
오 마이 갓.
슬프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파게티가 나왔다. 아주 통통한 면발에 소스마저 먹음직스럽게 빨겠다. 거기다 후식은 유기농 딸기가 듬뿍 들어간 새하얀 요플레였다.
꿀꺽.
조금만 먹을까? 어디 맛만 봐볼까? 스파게티님이 행차 하셨는데 안 먹으면 예의가 없는 거야. 나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곧게 세웠던 자존심을 약간만 기울여 식판이 있는 쪽으로 갔다.
식판을 집으려 몸을 숙이기 직전에 어디선가 번갯불로 지지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안 봐도 황미진의 시선이지만, 그쪽을 쳐다보았다. 역시 황미진이었다. 그것도 비웃음을 참고 있는 아주아주 얄미운 표정.
미진이의 책상 위는 오늘 진짜 배터지게 먹을 작정인 지 텅 비어있었다. 잠깐 기울었던 나의 자존심이 다시 천장을 향해 꼿꼿이 세워지며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발걸음에 요플레라도 집어갈까, 생각했지만 관뒀다.
‘두 시간만 버티자.’
교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열두 시 십 분. 오늘 학교가 두시 반에 마치니 두 시간 정도는 충분히 오기로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진희야. 밥 안 먹어?”
배식대를 노려보며 독기를 뿜어대는 나에게 짝궁인 민수가 말을 걸어왔다.
“배 아파.”
“음, 그렇구나…….”
내 까칠한 대답에 민수는 머쓱해진 얼굴을 하며 젓가락으로 스파게티를 돌돌 말았다. 상냥하게 물어본 민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적어도 오늘만은 단단히 마음먹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배식 당번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던 스파게티를 잔반통에 쏟아 붓자 내 정신도 콸콸 쏟아지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정신이 다 바닥나는 걸 모면한 나는 배식 당번들이 반찬통을 들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아, 배고파. 아침 먹고 올 걸……. 엄마의 말은 예로부터 틀린 게 없었다.
어찌 어찌 해서 점심시간을 버텨내고 수학 시간이 찾아왔을 때, 위기도 같이 찾아왔다. 잡아먹을 게 없는 위에서 재물을 바치라는 듯 위액을 화산처럼 뿜어냈다. 가뜩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수학 문제라 칠판에 집중도 안돼서 통증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몇 분 정도는 그런대로 버틸 만 했는데 삼십 분에 가까워지니 진짜 배가 녹는 것 같았다. 하늘에 계신 떡볶이 신님 제발 도와주세요!
“자, 오늘 수업은 이까지만 할까?”
“예!”
웬 걸? 수학 선생님이 오 분 일찍 수업을 마쳐주셨다.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중앙 복도 정수기로 달려가 물을 한 컵 가득 담아 원 샷 했다. 그러자 아우성치던 위액들이 얌전해졌다.
‘후, 이제 한 시간만 버티자.’
배 속에다가 물 한 컵으로 샤워를 해준 뒤, 다시 교실로 들어와 마지막 과목이 뭔지 보았다. 사회시간. 망했다. 이건 수학 보다 강적이다. 무얼 하면 한 시간을 쉽게 때울까, 고민하고 있는데, 사회 선생님이 수업 종도 울리기 전에 들어오셨다. 종도 안 울렸는데 벌써 오시다니…….
“62쪽 인구분포도에 대해 펼쳐보세요.”
빨리 오신 것도 모자라 선생님은 곧바로 진도를 나가셨다.
“인구분포도의 정의는 인구…….”
사회 선생님의 말을 열 글자쯤 들었을 때쯤, 내 두 눈은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향했다. 하늘은 지금 나의 심정과 다르게 맑고 파랬다. 잠시 동안 구름이 조용히 떠내려가는 풍경을 보다가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런가 싶어 교탁을 쳐다보니 열심히 수업을 하고 계시던 선생님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고개를 앞뒤 좌우로 돌리고 나서야 반 아이들 또한 연기처럼 증발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쾅!
갑자기 열리는 교실 문소리에 나는 들고 있던 샤프를 떨어트렸다. 미처 샤프를 주울 생각도 들기 전에, 오늘 아침 안방에서 보았던 헌 갈색 가방이 무리를 지어 교실로 들어왔다. 누가 미는 사람도 없는데 움직이는 가방이 신기할 법도 했으나, 이 갈색 무리들이 나를 둘러싸자 신기함 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가방들은 나를 둘러싸기 무섭게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수히 많은 스파게티 줄기가 튀어나와 내 주위로 몰려왔다. 가만히 있으면 저 스파게티 쓰나미에 내가 잠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내 몸은 밧줄로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스파게티 면들은 살아있는 문어발같이 기어와 내 다리를 칭칭 감고 계속해서 올라왔다. 거기다 올라오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몇 초도 안돼서 허벅지, 배, 가슴을 타고 올라와 나의 목까지 감아버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 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굳어버린 목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연노란색의 줄기는 순식간에 내 입까지 막아버렸고, 점차 눈으로 넘어와 나를 암흑천지에 가둬버렸다. 스파게티에 감긴 몸을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했지만 답답함과 무서움만이 내 마음 속까지 잠식했다. 속에서는 계속 이렇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누가 좀 살려주세요!
딩동~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에 반응하여 엎드려 있던 내 얼굴이 들려졌다. 꿈이었다. 하긴, 가방이 저절로 움직일 수도, 스파게티면이 나를 감을 수도 없지…….
하지만 너무 생생한 꿈이라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조회를 마칠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신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황미진이 내 앞에서 정신이 반 쯤 나간 내 얼굴을 보며 한심한 듯 보고 있었다.
“야, 너 뭐해?”
“잠이 덜 깼어.”
“쯧쯧. 수업시간에 잠이나 자고. 한심하게.”
다행히 아직 삼분의 일 정도는 정신이 나가있어 화도 안 났다.
“빨리 나와. 나 배 엄청 고프거든.”
드디어 콧대를 눌러줄 시간이 왔다.
복수심 때문에 훔친 돈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잊어버린 나는 책가방을 빨리 싸고 미진이를 따라 나갔다. 헌데 교실을 나선 후부터 옆 반 미진이 친구인 수연이가 따라 붙어 우리와 계단을 내려가고 학교 정문까지 갔다. 학교 정문까지 그냥 같이 가나보다 생각했지만, 뭔가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셋이서 정문을 통과하고 떡볶이집에 도착했을 때 내 예감은 불안하게 적중했다.
“수연이도 같이 먹어도 되지?”
떡볶이집 앞에서 황미진은 특유의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연이도?”
한 박자 느린 내 대답에 미진이는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
“어. 너 돈 많이 들고 왔다며?”
내가 언제?
이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돈이 있다고 했지, 언제 많다고 했냐. 이 붕어야.
“네가 엄청 많이 시킨다고 미진이가 나 보고 도와달래.”
안 그래도 화를 참고 있는데 수연이도 거들었다. 미진와 잡담만 하다가 나한테 처음 꺼낸 말이 그거니?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며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내 자존심은 이제 저 멀리 안드로메다 별로 사라져 찾을 수 없을 거야.
“그래, 같이 먹자.”
이 말과 함께 내 주머니 속 만 원과 비상금 천 원을 움켜지며 떡볶이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맨 처음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빠르게 눈과 머리를 굴려 떡볶이, 순대, 납작 만두 가격을 확인했다. 다행히 내 기억 속 가격과 똑같았다. 다시 한 번 확실한 계산을 끝낸 후, 자신이 찬 목소리로 미진이에게 말했다.
“떡볶이, 순대, 납작 만두 두개씩 시키고 콜라까지 사주면 되지?”
“사람이 셋인데 떡볶이 두개로 누구 코에 붙여?”
두 번째 불길함이 나를 찾아왔다.
“아줌마, 여기 떡볶이 삼 인분, 순대랑 납작 만두 이 인분씩 주세요. 콜라도 하나요!”
뭐? 떡볶이 삼 인분?
나는 눈과 머리를 동시에 풀가동 시켜 계산을 다시 했다. 떡볶이 삼천 원, 순대 삼천 원, 납작 만두 삼천 원, 콜라 천 원. 합이 만 원. 위기는 넘겼다. 하지만 비상금이 천원뿐인 내 주머니는 아직도 불안해했다.
‘여기서 콜라, 떡볶이 말고 뭐 하나라도 더 시키면 난 끝이야.’
이런 내 속마음을 읽은 듯 미진이가 기습 공격을 했다.
“흠, 부족할라나? 더 시킬까, 수연아?”
“이 정도면 될 것 같긴 한데…….”
수연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수연이에게 잠시 고마움이 들 뻔 했지만, 떡볶이가 삼 인분이 된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런 마음이 다시 들어갔다.
“먹다가 부족하면 더 시키면 되지. 돼지 아줌마.”
궁지에 몰려있는 나지만 일부러 황미진을 자극 시키려고 세게 나갔다.
“뭐? 나 많이 못 먹거든, 거지 아줌마?”
운좋게 다이어트에 민감한 분이라 효과가 있었다.
“살 디룩디룩 찌고 싶으면 더 드셔.”
“이 정도면 충분하거든?”
말을 마친 미진이의 얼굴 보니 더 시킬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주문을 끝내고 난 후, 우리는 묵묵히 떡볶이와 등등을 기다리며 각자 알아서 시간을 때웠다.
나는 가격표만 쳐다보며 멍 때리고, 미진이랑 수연이는 자기들 휴대폰을 만지면서. 황미진의 휴대폰은 공주병에 걸린 사람답게 휴대폰 케이스에 반짝이는 돌에다가 꽃이 막 그려져 있었다. 알록달록한 황미진의 모든 물건이 싫은 나였지만, 솔직히 저 휴대폰은 좀 부러웠다.
“얘들아, 이모가 너희들 단골이라고 많이 퍼왔다.”
황미진 휴대폰 케이스의 돌 개수를 오십 개 정도 세고 있을 때,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큰 쟁반에 떡볶이랑 순대, 납작 만두를 담아 가져왔다. 아주머니 말대로 몇 개는 더 집어준 듯 양이 상당했다. 그리고 오늘 떡볶이의 신이 나를 도와주는지 이모가 김밥 한 줄도 서비스로 대령해주셨다. 이모 나이스!
“흥, 너희가 아니고 나 때문에 단골이 됐지.”
“시끄럽고 먹기나 해.”
이 말이 끝나기 전부터 황미진은 굶주린 하이애나 마냥 떡볶이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나도 상당히 배가 고팠지만, 혹시나 양이 모자를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아, 맞다. 콜라도 시켰지?”
나는 콜라까지도 시킨 걸 강조하고 싶어 큰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떡볶이를 조금이라도 덜 먹기 위해 콜라를 찾는 척 시간을 끌었다. 느릿느릿하게 젤 안쪽에 있는 콜라를 꺼내서 자리로 돌아갔다. 역시 애들 먹는 소리부터가 남다르다 했더니 벌써 반 이상이나 먹어치웠다.
“천천히 먹어.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그러나 내 말은 보기 좋게 떡과 함께 씹히고, 애들의 젓가락질은 끊임없이 떡볶이, 순대, 납작 만두, 김밥을 왔다갔다 거렸다. 김밥에 떡볶이 국물을 묻혀 먹고, 그 국물에 또 순대를 담가먹고, 납작 만두 안에 떡볶이를 넣어 말아 먹는 등 별의별 방법이 다 나왔다.
몇 분을 허겁지겁 먹던 둘이 슬슬 배가 불러 콜라를 홀짝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마음껏 먹었다. 나도 미진이의 납작 만두로 떡볶이 말아먹기를 따라하며 배를 좀 채우자, 접시들이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후, 배부르다.”
적당히 먹은 나였지만, 많이 먹은 척 했다.
“야, 나 진짜 돈 안들고 왔으니깐 알아서 해.”
내가 만 원이라는 거금이 없을까봐 미진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 걱정 마세요, 알아서 사줄거니깐. 이모, 여기 계산요!”
나는 의자에서 도도하게 일어나 만 원을 꺼내들고 계산대로 갔다.
“아이구, 오늘은 많이도 먹었네. 딱 만 원이야.”
만 원 가지고 별말씀을. 나는 들고 있던 만원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주머니께 건네주고 먼저 떡볶이집을 나갔다. 나를 따라 미진이와 수연이가 차례대로 나왔고, 나는 으쓱대며 말했다.
“어때, 배 터지겠지?”
“떡볶이 가지고 무슨.”
“아까 거지처럼 주워 먹더만. 네가 만 원치 반은 먹었을 걸?”
“흥, 너도 만만치 않았거든. 근데 만 원치 진짜 많긴 하더라…….”
“맞아, 맞아. 다 못 먹을 뻔 했어.”
만 원 정도는 그냥 쓰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별 내색은 안했지만, 미진이와 수연이가 만 원어치의 양에 대해 얘기하자 통쾌함이 올라왔다.
“이제 집에 가자. 숙제해야 돼.”
혼자 기쁨을 만끽하며 이 기분을 집까지 가져가기 위해 하지도 않을 숙제를 들먹였다.
“그냥 가려고? 디저트도 안 먹고?”
세 번째 불길함이 천 원 밖에 없는 나의 불안한 주머니를 덮쳤다.
“디저트 어떤 거?”
지금의 쿨한 모습의 영향인지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물었다.
‘제발 싼 거. 제발 싼 거. 제발, 제발, 제발!’
“아이스크림?”
다행이다. 오백 원 밖에, 아니 오백 원이나 하는 아이스크림이지만 내 껄 빼고 산다면 천 원, 딱 내 전 재산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천 원을 꺼내 역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미진이에게 주었다.
“여기 천 원. 난 매운 거 먹으면 배 아파서 너희 둘이 사먹어.”
“오, 디저트까지 사주게? 웬일이야?”
미진이는 떨리는 내 손의 천 원을 낚아채고, 수연이와 함께 옆에 있는 슈퍼로 들어갔다. 아오, 좀 공손히 받아 가면 안 되나 몰라?
둘은 슈퍼로 들어가고 얼마 안돼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나왔다. 근데 돈이 남을 리가 없는데 미진이는 다른 한 손에 초록색 음료수 캔을 들고 있었다. 또 자기 혼자 뭘 먹으려는 거야.
“자.”
미진이는 자기가 들고 있던 음료수를 나에게 내밀었다. 왜 초록색인가 했더니 매실 주스였다. 순간 말이 안 나와 건네주는 주스를 받고 한참을 쳐다봤다.
“매실 주스가 배 아플 때 좋데. 그리고 오늘 덕분에 배터지게 먹었어. 땡큐.”
“나도 맛있게 먹었어. 고마워, 진희야.”
가만히 얼어있는 나에게 미진이와 수연이가 고맙다는 말을 했다. 방금까지 느끼던 통쾌함은 어느 샌가 날아가 버리고 무슨 따뜻한 게 막 올라왔다.
“우린 저쪽 길로 갈게. 잘 가!”
미진이가 뒤돌아 가면서 흔드는 손을 나도 모르게 받아주며 둘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애들이 희미한 점이 되어 골목길을 돌아 없어지고 나서야 얼어있던 몸이 풀렸다. 나는 오른팔을 들어, 쥐고 있는 매실 주스를 한 번 쓱 보고 뒤돌아서 집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주스가 생각나 계속해서 주스를 쳐다보다가 앞을 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내 입가의 미소가 자꾸 길게 늘어져서 뿌듯함이 새어나왔다. 친구들에게 떡볶이를 사주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이었다니? 내 돈으로 친구들에게…….
잠깐, 내 돈?
불현듯 아침에 뻐꾸기시계를 본 기억부터 엄마가 대문을 나간 장면 그리고 내가 그 갈색 가방 속에서 만 원을 빼내는 모습이 내 눈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자 학교를 오면서 느꼈던 걱정과 불안함이 다시 살아나다 못해 합쳐져 꿈속의 쓰나미처럼 나를 감았다.
침착 하자, 침착해. 아까 지갑에 만 원짜리가 수십 장 있던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그렇게 돈이 많은데 한 장 없어진 걸 어떻게 알겠어?
그러나 불안함 때문에 흔들리는 나의 심장은 걱정을 내보내고 싶은 것처럼 심하게 뛰었다.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이 상태는 내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 더욱 심해졌다.
‘제발, 엄마가 집에 없게 해주세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가방에서 열쇠를 힘겹게 꺼내 대문 열쇠구멍에 넣고 천천히 돌렸다.
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총 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대문을 살짝 밀자 녹슨 철들이 무서운 소리를 냈다.
“진희야, 왔니?”
대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딸꾹질을 한 것처럼 몸이 화들짝 놀랐다. 하필 이 시간에 엄마가 마당에 놓인 나무 평상 위에 앉아 멸치를 까고 계셨다.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일단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자.
“네! 다녀왔어요!”
윽, 긴장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가방 내려놓고, 엄마 멸치 까는 것 좀 도와줘.”
엄마는 내 큰 목소리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엄마와 단둘이 앉게 생겼다. 최악이다.
“방에 가방만 나두고 올게.”
나는 좁은 마당을 달팽이 마냥 일부러 느리게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도 천천히 풀어 시간을 끌며 문마저도 조심히 열고 나갔다. 방을 나와서는 멸치 까야 되니 손을 씻는다면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매일 귀찮다며 대충 씻던 손이었지만, 지금은 손톱 사이사이까지 깨끗이 씻었다. 그러고 내 운명을 정해줄 평상 위에 올라가 엄마를 마주 보고 앉았다. 건너편에 담을 삐죽 튀어나온 사과가 보였다.
“오늘 학교는 어땠니?”
“그냥 보통이었어요.”
엄마가 묻는 말에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교는 지금 마쳤고?”
“아뇨, 두시 반에 마쳤는데 미진이랑 놀다 왔어요.”
두시 반이라는 말을 꺼내자 갑자기 아침에 채소 아주머니가 부탁했던 일이 떠올랐다. 계모임 시간이 다섯 시랬지? 잠시만, 다섯 시? 다섯 시에 나가시면 밤에 돌아오시잖아?
“아, 엄마. 채소 아주머니가 계모임 다섯 시에 할 거라고 전해달래요. 민성이집에서.”
“그래? 멸치 좀 까고 있어봐.”
내가 계모임 시간을 알려주자 엄마는 멸치를 까던 손을 털고 방으로 들어갔다. 분명 나갈 준비를 하러 가신 걸 거야.
그러나 꽃단장을 위해 들어간 줄 알았던 엄마는 내 기대와 다르게 허름한 강색 가방을 들고 나와 평상에 다시 앉았다.
“후~ 곗돈이 세달 치나 밀려서 이번 달에 십이만 원이나 내야 되는 거 있지?”
엄마의 손은 지갑을 찾으려는 듯 가방 안을 휘저었고, 도망 갈 일 없는 지갑은 금방 잡혀 나왔다. 엄마는 지갑을 꺼내고 그 안에 얼마가 있는지 세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 엄마 뒤쪽을 보니 담을 넘어온 사과가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불안 한 게 어째 떨어질 것 같은데…….
“어, 이상하다? 만 원이 어디 갔지?”
툭.
사과가 아침부터 심하게 흔들린다더니, 결국 살포시 땅에 떨어졌다. 그 조용히 떨어져 나는 소리가 나에겐 내 영혼을 뒤흔들 만큼 크게 들렸다.
이메일 주소 : ay737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