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OKE

by 티오냥 posted Oct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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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E






텅 빈 방구석에 주저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켁."


맛도 없는 주제에 냄새만 고약한 녀석이지만 이상하게도 이놈을 끊어버릴 순 없었다. 타들어간다. 담뱃불이 붙은 저쪽 끄트머리부터 내 핏기 가신 푸른 입술에 물린 이쪽 끄트머리까지 거북이마냥 느릿느릿, 그러나 또 그와는 상반되게 위협적으로 타들어간다. 파르르르르. -질끈.


창문을 통해 사람이 보인다.

요 녀석을 입에 물고서 창밖을 구경하는 게 최근의 일상이 되었다. 정말이지 밥 먹고 할 짓이 없긴 없었던지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되돌아보면 늘 이것 말고는 하루 온종일 딱히 한 일이 없는 것 같았다. 한심도 하지. 이러니까 다들-. …….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발가락으로 시선을 옮겼다. 새카만 매니큐어로 못나게 칠해진 내 발톱이 꼭 서리 낀 유리창에 진흙덩이를 엉망으로 붙여놓은 것만 같다. 못났어, 못났지, 정말.


이제 그만 뱉어달라고, 그러든가 말든가 눈치 없이 저 혼자 열심히 타고 있던 담배가 입안에서 발버둥을 쳤다. 가여운 마음에 담배를 잠시 입에서 떼어 연기를 밖으로 뿜어내었다.


"콜록콜록-."


독한 연기가 폐 속 깊이까지 파고들어 숨이 턱 막혀왔다. 쇳소리 섞인 기침을 토해내고 또 토해내었지만 여전히 폐와 목구멍이 불덩이에 덴 듯 뜨끈거렸다. 그 기분 나쁜 감각에 손가락에 턱하니 걸쳐져 있던 망할 녀석을 내 못난 발톱에 비벼 껐다. 검은 발톱을 뚫고서 생살 깊숙이까지 그대로 전해져오는 그 열기가 참으로 ○ 같았다.


꺼진 담배를 다트 던지듯 방문에 집어 던졌다. 명중할 듯 결국엔 추락. 그렇게 쌓인 담뱃재들과 담배개비들이 벌써 야산을 이루고 있지만 청소할 마음은 제로. 시선을 아주 조금만 왼쪽으로 돌리면 거기엔 또 다른 산이 있다. 먹다 남은 김밥과 어떻게든 한 입 얻어먹으려 빌빌 기는 파리가 잔뜩 꼬인 컵라면, 바닥에 진득이 붙은 사탕들이 벌써 수십.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제 남은 게, 딱 컵라면 하나.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되었나 싶지만 홀가분히도 후회는 없다.


오늘은 웬일인지 이 호화로운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단지 귀찮단 이유만으로 쭈욱 넘기지 않고 방치해둔 달력이 눈에 띄었다.


"그래, 오늘은 귀찮지 않으니까."


꼭 엉덩이에 본드칠을 한 것처럼 땅바닥에 턱 눌러앉아 지내왔던 내가 정확히 1달 만에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간신히 일으켜 세운 몸이 마지막으로 서있던 그 날보다 확실히 약해졌다. 세상이 핑글, 한 바퀴 하고도 반을 더 돌다 제자리로 돌아올 지경이니 말은 다 했지 뭐. 터벅터벅. 온갖 오물이 다 묻은 바닥을 맨발로 밟고 지나 달력으로 걸어갔다.


벌써 한 달이 지났어.


벌써 한 달이나 지났어.


벌써 한 달씩이나 지나버렸어.


달력을 넘기자 별표로 범벅이 된 날짜가 보였다. 7월 31일. 바로 오늘.


탁자에 놓아진 핸드폰을 켜자 문자메시지가 잔뜩 수신되었다.


[너 어디야?] +호구 06-31 20:15


[어디냐고] +호구 06-31 20:21


[씹냐? ○발 씹어?] +호구 06-31 20:23


[개○끼. ○발 니가 먼저 만나자며] +호구 06-31 20:23


[너 진짜 무슨 일 있냐] +호구 06-31 20:37


[애들이 너 찾더라] +호구 07-02 08:17


[오빠! 요즘 왜 애기 보러 안 와?♥ 화끈하게 -()] +010xxxxxxxx 07-05 17:03


[대출 상담은 xxx-xxxx으로! 그 어느 곳보다 친절하게 -()] +xxxxxxx 07-08 01:23


[그러고 보니까 할 말 있다며 뭐였냐?] +호구 07-19 19:00


[언니, 엄마가 언니 찾아] +박다영 07-24 21:59


[박다은 고객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마트 직원 일동] +02xxxxxx 07-31 00:00


[생일 축하한다] +호구 07-31 00:12


호구새○, 속도 없지. 내 대타 서느라 꽤 고생했을 텐데, 날 대신해 사장한테 꽤나 깨졌을 텐데 잘도 생일 축하 메시지 따위를 보내는구나. 역시 호구새○.


핸드폰 액정에 비친 시간, 오후 6시 44분. 어째 창밖에 차들이 많더라니.


바닥에 흩어진 쓰레기들을 대충 밟고 지나 어언 한 달 만에 방문을 열었다. 늘 방안을 지배하고 있던 퀴퀴한 냄새들이 빠져나가고 상쾌한 공기가 조금씩 주위로 퍼져 들어와 기분이 오묘했다. 마지막쯤은-


조금은 사람 사는 집 같게끔, 조금은 살아있는 사람 같게끔.


샤워를 하고, 때에 찌든 옷을 갈아입고,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던 쌀들을 깨끗이 박박 씻어 밥을 안치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썩은 음식들을 다 내다버리고, 머리를 단정히 묶고, 겉옷을 걸치고, 거미줄이 쳐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간만인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고…. 이것 또한 '마지막쯤은'이다. 마지막쯤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을 테니.


근처 슈퍼에서 맛있어 보이는 반찬 몇 개를 샀다.


"8000원입니다."


그 사이 또 가격이 오른 게 괘씸하다. 혀를 끌차고 짜증스럽게 슈퍼를 나와 집에서 나오기 전 주머니에 찔러 넣어둔 담뱃갑을 꺼내 담배를 한 개비 뽑았다. 이게 다 탈 때까지만 산책을 하다 들어가자, 그렇게 다짐하고 정처 없이 걸으며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데 자꾸 탁, 탁, 탁, 불 튀는 소리만 들리고 좀처럼 불이 붙지 않는다. 되는 일이 없구나 싶어 마지막이란 기분으로 플린트 휠을 세게 돌리는데 그제야 불이 들어왔다. 불도 붙지 않은 채 뻘쭘히 입에 물려만 있던 담배에 드디어 불이 붙고-!


신경을 라이터에서 주위로 전환시켰다. 어느 새 해가 저물어가는 해질녘이나 그 밑에서 열심히 뛰노는 아이들이나 적당히 섞여드는 백색 소음이나. 그 모든 게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처음부터 좀 이럴 것이지. 야속함에 허탈한 웃음만 허허 나온다.

바로 옆 벤치에 앉아 저들끼리 왁왁거리며 열심히 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앗차, 담배가 벌써 네 개비 째다. 바본가, 나. 지금의 내가 너무도 가엾고 우스워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혼자 큭큭거리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다 또 술이 당겨 소주를 네 병씩이나 사선 한 손에는 소주 세 병이 담긴 검은 봉지를, 또 다른 손에는 이미 뚜껑이 따진 소주를 들고 담배 한 번 뻐끔, 술 한 번 꿀꺽 하며 흐느적흐느적 길을 거닐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상쾌한 기분인지. 그렇게 길바닥에서 술에 떡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차저차 그럴싸한 케이크까지 하나 사들고서 겨우 집으로 무사귀환했다. 당장이라도 정신이 아득히 멀어질 것 같았지만 오늘만큼은 제정신으로 버티자며 세수까지 완벽히 하고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갓 지은 새 밥과 알뜰히 담긴 바깥 반찬들 대신 케이크와 소주들을 거실에 전시했다. 촛불 대신 담배를, 음료 대신 소주를.


그야말로 마구 퍼먹고 마구 퍼마시고 마구 피웠다. 제정신으로 버티긴 개뿔, 차라리 이대로 얌전히 잠드는 것이 더 제정신인 짓이겠지 싶다. 옆으로 쓰러진 초록색 병들의 숫자만큼 정신도 반쯤 돌아 달콤한 케이크를 온몸에 마구 묻히고 거실을 뛰어다녔다. 길에서 봤던 그 아이들처럼. 무언가 부족하다 싶어 화장실로 직행해서 돌돌 말린 하얀 두루마리 휴지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래, 불꽃놀이다. 불꽃놀이를 하는 거야. 취한 몸이라 몇 번이나 플린트 휠이 헛돌았지만 그럼 뭐 어떠랴, 붙기만 했음 됐지. 휴지가 활활 타오르고, 케이크가 담뱃재와 뒤엉키고, 천장이 담배연기로 온통 자욱해지고. 딱 오늘 본 해질녘의 공원 같다. 알딸딸하게 취해 더 퍼져라, 더 퍼져라, 좋다고 박수까지 치며 소리를 질렀다. 쥐불놀이를 하듯 휴지 끝을 잡아당겨 마구 허공에 흔들었다. 불붙은 휴지가 바닥을 구르고, 담뱃재와 케이크가 뒤엉킨 곳에 그 불이 옮겨 붙고, 엎질러진 술들에 또 옮겨 붙고…. 거실이 온통 새빨간 노을로 물들었다. 예쁘다, 예뻐.


노을로 가득 찬 거실 한 구석에 의자를 놓고 서서 천장에 긴 못을 박았다. 쿵, 쿵, 쾅, 쿵, 쾅. 그리고는 경쾌히도 박히던 그 못을 망치로 두드려 90도로 휘게 만들었다. 같은 방향으로 몇 개를 더 박고, 이번엔 또 정반대 방향으로 마주보게 몇 개를 더 박았다. 이 정도면 됐나. 뿌듯해하며 의자에서 내려와 이번엔 정확히 한 달 전, 그 어느 때보다 더 의미 있고 더 보람찬 생일을 위해 준비해둔 물건들을 서랍장에서 꺼냈다. 다시 의자 위로 올라가 서로 마주본 꼴로 뒤엉킨 못들을 청 테이프로 단단히 휘감아 고정시키고 그곳에 밧줄을 묶었다.


"It's The Show Time!!"


집 안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쇼 타임을 외쳤다. 올가미 모양으로 추욱 늘어진 밧줄에 목을 끼우고 이 날만을 위해 아껴둔 장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딸깍, 딸깍, 탁, 탁, 딸깍, 탁. 한참을 헛돌던 바퀴가 이번엔 제대로 플린트와 부딪혀 불을 뿜어냈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올 정도로 폐 속 깊이 담배를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푸우 뱉었다. 그리곤 가슴을 지배하는 벅차디 벅찬 기분에 배실배실 웃으며 몸을 지탱해주고 있던 의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켁, 켁, 콜록콜록, 케엑―"


후회는?


그 순간 주마등처럼 지난날들의 기억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힘들지는 않냐고요? 하하, 물론 힘들죠. 힘들지만, 무대 위에 서 있으면 잠시나마 제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악착같이 노력할 겁니다. 노력해서, 꼭 카메라 앞에 서고 말 거예요. 두고 보세요.’


‘뭐? 회사를 관둬? 미쳤구나, 미쳤어! 어떻게 들어간 회산데 그걸 그렇게 막 그만둬! 언제 철들래, 언제 철들래! 꿈? 얘가 정말, 꿈같은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얼른 가서 제가 잠시 미쳤었다고 싹싹 빌어! 무슨 애가 저렇게 철이 없다니. 우린 너 뒤치다꺼리 해줄 능력 없다. 헛소리 말고 일자리나 다시 알아봐. 뭐? 집을 나가? 그래애, 나가. 나가! 나가서 굶어 뒤지든 얼어 뒤지든 네 마음대로 해! 이제 난 너 같은 철없고 말 안 듣는 딸 없는 거고, 너도 이제 가난하고 잔소리 많은 엄마 없는 거야. 엄마 죽거들랑 그때나 찾아와서 엄마 말 들을걸 하고서 후회하지나 말아! 알겠어? 아이고, 이제야 발 쭉 뻗고 잘 수 있겠네! 뭐해? 당장 짐 안 싸고!’


‘아, 네 잘 봤습니다. 다른 하시는 일은 없으시고요? 아, 예, 그러시군요. 열정이야 뭐, 다들 말하는 거야 쉽지요. 아니요, 저희끼리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말입니다, 박다은 씨.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뵙거든요. 그런데 박다은 씨 같은 사람, 오늘만 벌써 몇 번째 뵙는 것 같아서요. 입으로만 열정, 열정. 하지만 결국 다 재능이고 재력이거든요. 노력으로 메우기엔, 글쎄요. 실력에서 티가 나죠. 수고하셨고요. 자, 다음 분 들어오시죠.’


‘제대로 연기, 배워보신 적 없으시죠? 그랬다면 무언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잔액이 부족하여 결제하실 수 없습니다.]


‘야속하게도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란 게 있는 법이었죠. 다 허울 좋은 말들이에요.’


물론, 없다. 오늘은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고 푸욱 잘 수 있을 것 같다.






"띠롱"


[엄마가 미안하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줄게. 해봐, 배우. 잘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이만 집으로 돌아오렴. 네가 좋아하는 미역국도 끓여놨어.] +사랑하는 우리 엄마 07-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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