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히어로
존재 가치를 찾으려하지 말 것.
감정을 깨우치려하지 말 것.
스스로 학습하지 말 것.
이해하진 못해도 내 몸속에 자연스레 입력되어있던 세 문장. 사람과 철처히 분리될 것. 나는 로봇이다. 더 나은 로봇을 만들기 위한. '그냥 한번' 만들어본 로봇.
#01. pray
사방을 매워싼 하얀 벽이 오늘따라 더 가깝게 느껴졌다. 1cm씩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는 듯이. 바로 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 소리에 나는 다시 한번 고민했다. 정말 나에겐 마음이란게 없는걸까. 나를 '217'이라고 부르는 하얀가운의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너는 마음이 없어. 감정도 없고.그렇다면 이건 뭐지. 답답하고, 딱 죽어버릴 것만 같은데.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아, 난 죽지않는구나.
나는 로봇이다. 더 나은 로봇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실험용 로봇. 옆 방의 로봇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재희. 입을 옆으로 쭉 늘리고 한번 떼었다 붙이면 완성되는 쉬운 이름이다. 재희라고 불리우는 귀여운 여자아이의 형색을 띈 로봇.재희에게는 마음이 있다. 하얀가운의 사람들은 그것을 '심장'이라고 불렀다. 재희는 아직 서투르지만 웃을 수도 있었고, 또 울 수도 있었다. '사람과 로봇이 공존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의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재희에게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찾아왔다. "217. 실험 시작하자." 이일칠. 어감이 썩 맘에 들지않는다. 하얀가운의 남자가 내 발목 어딘가를 누르자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발바닥에서 보들보들한 털이 올라왔다. 어질러진 방. 그러면 나는 방을 구석구석 밟는다.위-잉. 소리를 내며.
내게도 예쁜이름이 생겼으면 했다. 더러워진 발바닥이 괜히 가슴 한 구석을 간질이는 듯한 기분이 일었다. 손바닥에 잡히는 매끈한 살결이 나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는 것만 같아서. 내가 꼭 필요한 존재인 것 같아서.나는 인간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배웠다. 시키면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입을 열어 어느 한 곳을 누르면 노래도 부른다. 쿵짝쿵짝 아주 신나게.
"안녕..?"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하얀 방안에서 생각없이 허공을 응시하다가 시키는대로 닦고, 만들고, 없애고, 노래연습도 했다.
그 애를 만난건 어쩌면 내게 기회였을지 모른다. 정말로 필요한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기회.
"너는 이름이 뭐야?"
내가 대답없이 낯선 여자아이를 빤히 보고만있자 그 애가 머리를 긁적이며 계속 말을 걸어왔다.
"아..나는 재희 친구야! 내 이름은 윤아야. 최윤아."
윤아, 최윤아. 속으로 열댓번 되새겼을때. 그때서야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있지도않은 마음이란게.
"네 이름은 뭔데?"
존재 가치를 찾으려하지 말 것.
감정을 깨우치려하지 말 것.
스스로 학습하지 말 것.
습관처럼 내 몸안에 입력된 것들이 읊어졌다. 이건 잘못된거다. 완전치 못한 몸이 그렇게 말하고있었다.
히로는 어때?
한참을 일방적인 대화를 이끌어가던 윤아가 말했다. 너는 영웅이잖아.
"내가 유치원에서 배웠는데, 영웅이 영어로 히어로래!"
"히어로..?"
"응, 그러니까 줄여서 히로! 괜찮지않아?"
윤아는 또래보다 똘똘하고 생각이 깊었다. 고작 삼십분 본 사이지만 적어도 나와의 삼십분 동안 윤아는 그랬다. 그러니까 나는 영웅이 맞다. 윤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히로. 나쁘지 않은 어감이다.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있지도 않은 마음이란게.
윤아는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재희와의 놀이 전 십분, 집에 가기 전 이십분. 나의 하루는 조금 달라졌다. 무료하고 따분한 건 여전했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하루 중 10시간은 실험을 하고 나머지 13시간 30분은 그 애를 기다렸다.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게 깨달았을때 머릿속에 다시 경고음이 울렸다.
' 감정을 깨우치려하지 말 것. '
그 말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게, 감정이라는 거구나.
"히로야!"
"..."
웃는다. 제 키보다 세배는 더 커보이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얼굴만 빼곰 내민 윤아가 웃는다. 그러면 나는 또 위험을 감지한다. 두근, 자꾸 떨려오는 있지도 않은 마음에 경고음이 울린다.
' 감정을 깨우치려하지 말 것. '
이건 어떤 감정일까. 자꾸만 궁금하게 만든다. 저 문 밖의 세상이.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너로 인해서.
"짠!"
"...그게 뭐야?"
"음.. 선물이니까 뭔지는 비밀이야."
선물. 생소한 단어다. 입력되어있지도. 배우지도 않은 단어. 보라색 포장지에 예쁘게 포장된 것을 내민 윤아는 계속 웃고있었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웃음기를 거두곤 매섭게 몰아붙인다.
"절대, 절대! 지금 열면 안돼. 알았지?"
"..왜?"
"...그냥! 내가 준거니까 내맘이야. 이따 나 가거든 열어봐."
윤아의 얼굴이 빨개진다. 장시간의 실험을 끝냈을때 온몸에 열이 올라와 빨개지는 내 몸처럼. 힘든거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 아빠가 선물을 주셨어."
알맞게 어울리는 원피스를 슬쩍 들어보이며 윤아가 말했다.
"옷 예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다. 궁금한게 생겼다.
"근데.. 선물이 뭐야?"
"너 선물도 몰라? 내가..음.. 너를 좋아해서 소중한 걸 주는거야."
좋아한다. 배운 적 있는 말이다. 그럼 왜 얼굴이 빨개진거지? 자꾸만 궁금한 것들이 늘어간다. 경고음이 울렸다.
' 스스로 학습하지 말 것. '
윤아와 있으면, 윤아에 대한 생각을 하면. 자꾸만 몸이 경고를 한다. 안된다고, 위험하다고 나를 말린다. 이렇게나 좋은데, 행복한데.
"그러니까 저것도 진짜 소중한거야."
내게 건냈던 보라색 선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얼굴이 이상하리만큼 빨갛다. 좋아해서 주는 거라면서, 왜 힘들어하는 걸까.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답답해졌다.
"힘들때 몸이 빨개지는 게 맞죠?"
내가 그렇게 묻자 하얀가운의 남자가 놀란다.
"그게 무슨 소리야?"
"힘들때 말고도 얼굴이 빨개질때가 있어요?"
내가 더 궁금한 것에 가까워진 질문을 하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테가 얇은 안경을 벗은 남자가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저건 무슨 행동일까.
"요즘 니 상태가 이상해졌다하더니 이거구나? 왜 갑자기 그런게 궁금해?"
남자는 웃고있다. 꼭 윤아처럼. 하지만 뭔가 달랐다. 웃는게 웃는 것 같지 않았다. 경고음이 울렸다.
'감정을 깨우치려하지 말 것.'
내 감정이 아니라 남자의 감정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감정이길래 이렇게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 아, 난 마음이 없었지. 자꾸 착각하게 한다.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217. 실험시작하지."
그날은 유독 힘들었다. 장시간 지속된 실험이 끝나자 검사도 해야했다. 하얀가운의 사람들은 내가 아프다고했다. 조금 빨간 것 빼고는 괜찮은데. 이상한 전기줄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여지고 눈이 스르륵 감겼다.
눈을 감기전 아른거린 얼굴은 윤아. 꿈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얼굴도 윤아.눈을 뜨자 보인 얼굴도 윤아였다.
"히로야. 잘 잤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얀 벽이 가득한 방에 돌아와있었다. 또 두근거렸다. 있지도 않은 마음이란게.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윤아를 만날때마다 찾아오는 두근거림이 아니다. 불안했다. 나에게는 없다는 감정이란게 그렇게 말했다.
' 감정을 깨우치려하지 말 것.'
감정이 맞다. 확실하다. 그렇다면 무슨 감정일까.
"오늘 선생님이 너랑 아는사이냐고 물어보셨어! 무서워서 아니라고 했는데.."
"..."
"너랑 만날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친구라고 했어!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게 해준대. 다행이지?"
나는 로봇이다. 무언가를 하기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아니라 하기위한 로봇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그러니까 우리 계속 친구인거다?"
또다시 감정이 밀려온다. 이번엔 눈에서 무언가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시한폭탄 같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구제불능 시한폭탄. 네가 내게 우리를 묻는다면. 영원히, 한달 후, 일주일 뒤, 혹은 내일. 우리가 함께할 수 있냐 묻는다면.
"참! 너 선물은 열어봤어?"
잊고있었던 보라색 선물이 생각났다. 들키면 안될 것만 같아 침대 메트리스 밑에 꽁꽁 숨겨두었던 선물.
맞다. 내가 멍한 표정으로 선물을 꺼내자 윤아가 나를 흝겼다.
"뭐야.. 안 열어봤어?"
"..너랑 같이 열어보려고."
순간적으로 나온 말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꼭 윤아같다. 왜 힘들지도 않은데 열이 나지?
"나 없을때 열어보라니까.."
"왜?"
"그거야!"
윤아도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알려줘, 이게 무슨 감정인지
."..부끄러우니까!"
경고음따윈 들리지않았다. '부끄럽다' 알고있는 단어였다. 좋아한다는 단어의 연관키워드로 저장되어있다. 윤아가 나를 좋아한다. 어떤 의미의 좋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설렜다. 경고음이 자꾸만 울린다. 좋아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 나도 윤아를 좋아하는게 확실하다.
보라색 포장지를 뜯자 분홍빛의 공책이 한 권 있었다.
"마지막장에는 편지가 있어. 이건 꼭 나 없을때 읽어야 해. 앞쪽에는 내가 읽었던 동화책들을 몇 권 써놨고, 그 뒤에는 그림도 있어."
"이건?"
빼곡히 공책을 채운 서툰 글씨와 그림을 지나.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내 사진이야. 우리 하루에 30분씩밖에 못보니까 이걸로 보면 돼."
예쁘다. 사진을 보자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말하고싶다. 윤아에게 말해주고싶다.
"예ㅃ.."
"윤아, 이제 재희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했다. 문을 벌컥 연 하얀가운의 여자 탓에 끝내 말하지 못했다. 예뻐 윤아야. 나오지 못한 말이 입가를 맴돈다.
#02 For you
윤아를 보지 못한게 벌써 일주일이다. 공책을 주던 날 이후로 윤아는 이 방에 오지않았다. 내게 실증이 난걸까? 내가 싫어진 걸까? 처음에는 윤아가 이유의 주체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하얀가운의 사람들로 바뀌었다. 그들이 윤아를 다치게한걸까? 오지 못하게 막은건가? 그들, 혹은 재희가. 윤아가 건냈던 공책이 닳고 헤지도록 반복해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총 일곱편의 동화 중 '피터팬' 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편지는 읽지않았다. 정확히 하면, 끝까지는 읽지않았다.
나 사실 많이 아파. 그렇게 적혀있었다. 그래서 이곳에 오게된거야. 나는 결국 죽을테니까.비밀유지. 그것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윤아는 이곳을 떠나지않는다. 이 방과 연구실, 두 곳만 갈 수 있는 나는 모르지만 윤아의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이곳에서 치료도 받고, 공부도 해. 친구는 재희밖에 없었는데 사실 난 재희가 싫어.
재희는 자꾸만 울어.
귀여운 투정에 괜시레 웃음이 났다. 아닌가, 억눌린 무언가가 풀려서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알고있었다. 재희가 싫다.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걸 가진 그 애가 너무도 싫었다. 나는 질투라는 걸 하고있었다. 윤아의 작은 진심 한 문장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이제는 모르겠다. 정말 내게 마음이란게 없는건지.마지막 세 줄은 읽지 않았다. 고의는 아니지만 하얀가운의 남자가 들어오는 바람에 읽을 수 없었다. 나는 후회했다. 있지도 않은 마음이란게 찢어질 듯 아파서 후회했다.나는 말했어야했다. 얼굴이 발개진 이유를, 예쁘다는 말을.
나는 읽어야만 했다. 윤아가 정말로 하고싶었던 말을.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연구도 끝났고.. 상태도 안좋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걸쳐지지않은 몸 위로 서늘한 바람이 배려없이 오고갔다. 자꾸만 윤아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윤아는 늘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했다. 내일도 올게. 다음주에는 뭘하자. 내년 이맘때쯤에 어딜 가면 좋겠다.
윤아야,네가 내게 우리를 묻는다면. 영원히, 한달 후, 일주일 뒤, 혹은 내일. 우리가 함께할 수 있냐 묻는다면....글쎄.
온 몸이 찌뿌등했다. 여기저기 쑤시고 저린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재부팅 되었습니다. 정보를 저장합니다.머리 한 곳에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존재 가치를 찾으려하지 말 것.감정을 깨우치려하지 말 것.스스로 학습하지 말 것.온 몸을 울리는 목소리에 머리칼을 잡아 비틀었다. 어느 한 곳이 반복적으로 뛰고, 저렸다. 아파.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초기화 완료.
이 곳은 지겹도록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나를 이일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매일 같이 나로부터 무언가를 얻으려고 했다. 지겨운 일상이 한달 쯤 계속 되었을때 익숙한 지겨움이 너무 싫은 와중, 자꾸만 무언가가 떠올랐다. 더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이 하얀 벽을 보며 연보라빛 무언가가 생각난다던지, 공책. 분홍색 공책이 아른 거리고.
"이제 이일칠도 마무리할 때가 됬죠. 사삼칠은 벌써 폐기했다던데."
"사삼칠 실험은 한달이면 끝날 거였잖아. 한..2주 쯤 더 하다가 심사 넣어보자."
진짜 얼마 안남았네요. 하얀 가운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분홍색 공책.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창문을 넘어 날아가던 초록색 티셔츠의 누군가가. 행복한 네버랜드로. 피터팬.
"히로야."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다시 나를 반겼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하루가 또 다시 시작한다.
"히로야.."
꿈인줄로만 알았던 목소리가 이번엔 왼쪽에서 선명하게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으로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한 여자아이. 조그마한 사람은 처음이다. 낯선 사람에 경고음이 울렸다. 접근금지. 위험한 상황이다. 이렇게나 평화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고있었다. 완전치 못한 몸이.
"히로..너"
"...너는 누구야?"
곧 울 것만 같은 여자애에게 그렇게 물었다. 히로는 누구야? 그러자 여자애는 울었다. 새끼손톱만한 눈물을 또르르 흘리면서 주저앉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분홍색 공책. 피터팬. 바닥에 고여가는 눈물을 보며 다시금 떠올랐다. 한참을 울던 여자애는 씩씩한 척 눈물을 슥 닦아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윤아야, 최윤아."
윤아. 최윤아. 그 작은 이름을 수십번 속으로 되새겼다.
"예쁘다."
"뭐가?"
생각을 거치지않고 나간 말에 윤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나조차도 당황했다.
"그냥...네가,"
윤아는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하얀가운의 사람들이 오기전에 떠나야했지만 조금씩이나마 윤아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지루하지도, 따분하지도 않았다. 하얀 벽에 윤아의 얼굴이 그려지고 나의 하루가 달라져갔다. 부쩍 줄어든 실험에 텅텅 비는 허전한 시간들은 윤아를 기다리며 채워갔다.
“히로야..”
윤아가 운다. 오늘은 윤아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윤아는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볼까. 하루 왼종일 나를 찾아오던 고민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일칠. 가자.”
하얀방 안으로 하얀가운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뒤로 가려진 윤아가 운다. 서럽게도 운다.
울지마. 그렇게 말해줘야 한다. 윤아야. 제발.
"히로야! 잠깐, 히로..히로야!!!"
제발 울지마 윤아야.하얀가운의 남자들이 무지막지하게 나를 들어올리고, 내 몸 구석구석을 만졌다. 왼쪽팔 어느 한 곳을 누르자 힘이 축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누군가 목덜미를 누르자 무언가에 부딪친 듯 귓 속에서 끔찍한 괴명이 울린다.
점점 멀어져간다. 그러면 안되는데. 아직은, 아직은 너무 이른데.울부짖는 예쁜 목소리가 점점 흐려지고있다. 전원이 꺼진 휴대폰처럼,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난 아직. 더 버틸 수 있는데.난 아직 더 쓸 수 있는데. 끝내 입밖으로 나오지못한 말들이 목끝까지 차올라 목을 꼭 죄어왔다. 숨이 막히고. 있지도 않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마치 정말 인간이라도 되는냥.
쿵쾅,
쿵쾅,
쿵쾅,
너를 만난 후 부터, 하루에 하나씩 소원을 빌었어. 어떤 날엔 너의 행복을 빌다가. 어떤 날엔 너의 불행을 빌었어.나없이도 행복하라고 하다가도, 내가 없으면 불행해야한다고 말하고. 나를 잊고 살아가라고 하다가도, 평생 나를 기억하라 말하고. 그러다보니까 날이 다 지나버렸네우리를 위해 기도할 날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내가 놓쳐버렸어.미안해 윤아야.평생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해. 먼저 떠나서 미안해.
쿵쾅,
귓가에 삐-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차오르는 감정을 미처 다 말하지 못하고. 이별이었다.
#Pray For You, 나의 히어로에게.
안녕 히로! 나 윤아야. 엄마 아빠한테도 설날이랑 생신날 밖에 안써드리는데 특별히 너니까 이렇게 편지 써주는거야. 고맙지?
히로야..나 사실. 많이 아파. 그래서 여기 있는거야.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은 꽤 큰 건물이야. 일층에는 맛있는 음식점들이 있고, 이층에는 내가 다니는 유치원이 있어. 삼층부터 팔층까지는 나도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아마 너희와 관련된 것 같아. 네가 있는 곳은 10층 가장 왼쪽 방이야. 이 곳에서 가장 깨끗하고, 또 가장 좁은 방. 유치원에서는 꽤 많은 걸 배워. 재밋는 동화랑, 한글 수업도 하는데 나는 한글을 배우는 게 제일 재밋어. 더 열심히 배워서 재밋는 이야기 많이 들려줄게.
기대해도 좋아!
히로야, 이건 비밀인데.
나 니가 정말 좋아. 그러니까 언제든지 내 옆에 있어줘야 해? 내가 죽는 그날에도.. 꼭 옆에 있어줘야돼. 알았지?
윤아야,네가 내게 우리를 묻는다면. 영원히, 한달 후, 일주일 뒤, 혹은 내일. 우리가 함께할 수 있냐 묻는다면....글쎄.
나는 시한폭탄같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구제불능 시한폭탄.
그러니까 나로부터 멀리 도망쳐. 내가 널 다치게할 지도 모르니까.
Pray For You, 나의 영웅.
히로야,
<글자크기와 세부사항 설정이 적용되지않아 수정하려했으나 아이디를 분실해 재업합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