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잊지 못할 첫사랑

by 러온 posted Nov 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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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잊지 못할  첫사랑

강아, 사실 난 항상 네가 부러웠어. 나도 너처럼, 아니다. 그냥 여느 내 또래의 아이들처럼 그 나이에 맞게 밝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그게 마냥 쉽지만은 않더라고.
있잖아, 그 아이들은 항상 웃고 있었는데, 난 그게 참 부러웠어. 그냥 웃고 있는 건데 뭐가 부럽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난 그 애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거든. 아무리 나를 애써 달래가며 겨우 웃음 지어 봐도 그 애들처럼 정말 밝고 순수한 웃음은 지을 수가 없었어, 난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 그 아이들처럼 행복해지고 싶어서 항상 거짓 웃음을 지었어집에서는 몰래 이불 속에서 혼자 숨죽여 울다가도 학교에 가면 행복한 척 웃음을 지은 거야,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데. 난 매일 그렇게 웃으면 행복해질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니었어, 다 내 착각이더라고불행하게도 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 그 이후론 그냥 웃지 않았던 거 같아, 이렇게 거짓 웃음을 짓는 게 더 초라한 거 같아서.
이제 와서 말할 수 있는 거지만 솔직히 나 처음엔 네가 싫었어. 너는 그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행복해 보였거든. 넌 그 아이들 속에서 가장 빛나는 아이였어. 넌 언제나 무리의 중심이었고 모두 그런 너를 좋아했으니까.
그 당시에 네가 받던 용돈은 내가 한 달을 겨우 아르바이트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고 그런 널 보며 난 널 꽤나 질투했던 거 같다. 나 바보 같지, 넌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나 혼자 괜히 열등감을 느껴 널 질투하니 말이야. 나도 널 질투하는 내가 정말 싫었어.
그래서 난 항상 생각했어. 난 불행한 아이라고, 세상에게 버림받은 아이라고, 또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태어나면 안 됐을 아이라고 말이야. 난 신을 원망했어, 그리고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꼭 말하고 싶었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냥 내 또래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나이에 맞게 순수하고 밝은 웃음을 짓고 싶을 뿐인데. 그냥 단지 이거만 바랬을 뿐인데 왜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건지 말이야.
난 그냥 내가 그렇게 불행하게 태어난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 적어도 강이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강아, 나 너를 만나고 나서부턴 불행하기만 했던 내 삶이 달라졌어. , 네 덕분에 거짓 웃음이 아닌 진심에서 나오는 웃음이 뭔지 알 수 있게 됐어. 내가 부러워하던 그 아이들의 웃음을 나도 지을 수 있게 된 거야.
아마 나 그때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내 인생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던 그때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한심한 삶을 살고 있었을 거야.
진심으로 고마워, 강아. 너무 캄캄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던 내 인생 속 한 줄기 빛이 되어준 너를 잊지 못해.
 
너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와 내가 처음으로 얘기를 나눈 건 아마 학교 옥상에서였던 거 같아.
난 힘들 때마다 옥상을 갔었어. 옥상을 오르며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옥상에 가는 이유가 뻔하지 뭐, 아 나한테만 뻔한 건가? 너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나 죽으러 간 거야.
난 정말 죽고 싶었거든. 죽을 용기로 살아가라 혹은 내 삶이 뭐가 그리 불행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원망스러웠어. 내 입장이 한 번도 되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자기 입장에서만 말을 하니 말이야. 너를 만난 그날은 다른 날보다 좀 더 버티기 힘들더라고, 정말 그날은 끝을 낼 생각이었어.
 
, 미안. 아무도 안 올 줄 알고.”
? 아 아니, 하던 거마저 해도 되는데.”
아니야, 네가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 근데 옥상에는 무슨 일이야?”
아 뭐 그냥.”
아아.. 그냥 온 거구나, 알겠어.”
 
그래서 나, 마음을 비우곤 계단을 올라 옥상을 갔는데 거기서 너를 만난 거야. 나와 눈이 마주친 넌 정말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눈에 띄게 당황해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급하게 버리더라.
너는 짧게 끊기는 내 대답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날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더 이상 열지 않았다. 그렇게 너와 옥상에서 몇 분을 보냈던 거 같다, 아무 말 없이.
 
, 하늘아.”
.”
진짜 미안한데 여기서 네가 본 거 비밀로 해주면 안 될까? 너랑 나만 아는 비밀.”
, 알겠어.”
 
그렇게 너와 시간을 보내다가 넌 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리곤 옥상에서 내가 본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던 거 같다. 난 그런 네 부탁에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을 했고 넌 뭔가 다행이라 생각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나, 네가 내 이름을 부른 순간 널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나조차 잊어가고 있던 내 이름을 네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나만 너를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너도 날 알고 있었나 봐.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나를.
너와 처음 말을 나눈 게 옥상에서라는 거지 난 강이 너를 이미 알고 있었어, 앞에서 말했듯 넌 눈에 띄게 정말 행복해 보였고, 그리고 이 학교를 다니며 널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너를 좋아했잖아.
그래서 나 네가 내 이름을 말해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했어, 나 그때 좀 놀랐다? 당연히 네가 나라는 애 이름을 모를 줄 알았거든.
 
약속하는 거다? 고마워 진짜.”
별것도 아닌데 뭐.”
 
정말 별것도 아닌데 넌 환하게 웃으며 내게 고맙다고 하곤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다. 그리곤 난 네 옆에서 그냥 옥상에서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쐤다.
우리, 그날 처음으로 얘기를 나눠 본 거였는데 강이 넌 왠지 오래도록 알고 지냈던 친구인 마냥 네가 편했던 거 같아.
 
아 근데 하늘아, 나 냄새 많이 나? 향수라도 좀 뿌릴까?”
아니, 진짜 괜찮은데.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가 자꾸 그러니까 말하는 건데 사실 나도 펴, 그거. 그니까 걱정하지 마.”
? 야 잠시만, 그럼 너도 담배 피우러 여기 온 거야? 말도 안 돼.”
? 뭐가 말도 안 돼? 필수도 있지 뭐. 난 괜찮은데 아까운 담배는 왜 버린 거야.”
, 진짜 그렇게 안 생겼는데. 안돼, 너 피지 마. 나도 이제 안 피울래, 같이 끊자. 이거 원래 내가 먹으려고 산 건데 너 줄게. 무슨 맛 좋아해?”
아 난 괜찮아, 너 많이 먹어.”
난 딸기 맛 제일 좋아해, 왠지 너도 그럴 거 같아. 사탕 버리지 말고 꼭 먹어라? 나 간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넌 내게 담배 냄새가 많이 나냐고 물었다. 난 담배가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꾸 혼자 신경을 쓰는 거 같길래 그냥 나도 담배를 피운다고 네게 거짓말을 했다. 네가 자꾸 날 보며 눈치 보는 게 신경 쓰였거든. 내 말을 듣곤 너는 눈을 크게 뜨더니 그럼 너도 담배를 피우려 옥상을 왔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네 성격상 나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을 거라 생각이 되어 귀찮아서 그냥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던 거 같다.
그랬더니 넌 내가 정말 담배를 피운다고 생각했나 보다. 넌 방금까지 담배를 피우고 있던 건 잊은 건지, 나에게 같이 담배를 끊자고 했다. 그리곤 내게 사탕 여러 개를 보여주며 무슨 맛을 좋아하냐 물었다. 난 그런 너의 호의가 싫어 거절했는데 넌 뜬금없이 딸기 맛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리곤 내 손을 자기 멋대로 가져가더니 손 위에 딸기 맛 사탕을 올려주더라고. 난 그런 너에게 사탕을 다시 돌려주려고 했는데 넌 꼭 먹으라는 말만 남기고 혼자 가버렸다.
난 얘가 나한테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늘아, 아무래도 오늘도 엄마 늦을 거 같아.”
엄마, 그러면 밥은 어떻게 할까?”
미안, 알아서 먹어.”
 
우리 집은 끼니조차도 제때에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어머니가 바쁜 탓에 밥을 못 먹은 거도 맞긴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날 낳으시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었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으려 항상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러 다니셨다.
그래서인지 난 밥을 제때에 챙겨 먹지 못해 항상 온갖 병을 달고 살았는데, 아이들은 내가 거지라서 더럽다고 나를 피하더니 그 이후론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점점 이런 내 삶이 익숙해져갈 때쯤에 네가 나타났다.
강아, 너는 그 아이들과는 달랐어. 다른 아이들에 섞여 같이 웃음을 짓는 너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였고, 너의 그 거짓 없는 해맑고 순수한 웃음을 볼 때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착각에 들게 했던 너였는데. 그런 네가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나에게 다가와 준거야.

야 이 하늘! 나 축구하는 거 봤냐? 내가 골 넣었는데.”
아니, 내가 너 축구하는 걸 왜 봐?”
, 너무해. 다음부턴 꼭 봐야 돼!”

와 대박, 야 하늘아! 나 네가 공부 알려줘서 20등 올랐어. 너 진짜 최고다.”
내가 알려준 건 별로 없잖아. 그냥 네가 열심히 해서 잘 본 거일 거야.”
아니야, 네가 알려줘서 그래.”

이 하늘, 나 우울해. 나 위로해주면 안 되냐?"
 
넌 언제나 많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난 너와 어울리지 않는 아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난 그런 너에게 잘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던 거 같아. 그런데 넌 자신이 골을 넣었다고 자랑을 하질 않나, 내 덕분에 성적이 올랐다고 내 손을 잡곤 기뻐하기도 했고, 우울할 땐 나를 찾아와 네 얘기를 한참 동안이나 하기도 했다.

쟤좀 봐봐. 완전 해골이다, 해골. 뼈밖에 없어. 징그럽다 그치.”
그러게, 근데 누구야? 처음 보는데.”
쟤 꽤 유명해. 아빠도 없고 그래서 완전 가난하다는데? 거지라서 옷도 다 물려받아서 입는대.”
 
애들이 또 내 얘기를 한다. 다 들리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누군가 뒤에서 내 얘기를 하는 건 아주 익숙한 일이니까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냥 이런 거 이제 익숙해져서 신경 쓰지 않을 만한데, 이상하게 아직도 저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니들이 뭔 상관인데.”
강이? 네가 이 반은 왜 왔어?”
, 내가 묻는 거에나 대답해. 니들이 뭔 상관이냐고. 이하늘이 뼈밖에 없든 옷을 물려받아서 입던 뭔 상관이냐니까?”
아니.. 그냥..”
꼴도 보기 싫으니까 빨리 가, 너네. 나 지금 너네 진짜 어떻게 해 버릴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신 쟤 앞에서 이런 얘기 꺼내지 마.”
근데 네가 무슨 상관인데! 난 그냥 애들이 하는 얘기 한 거 뿐이야
뭔 상관이냐고? 내가 쟤 좋아해, 그것도 엄청 많이. 쟤가 저런 표정 짓는거 보기 싫어. 짜증난다고.”

그런 내 앞에 또 네가 와 주었다. 나를 대신하여 그 아이들에게 화를 내주었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해주었다, 강이 네가. 그런데 난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못하였다.
아마도 난 이런 모습을 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내 얘기를 네가 모르기를 바랬기 때문이겠지. 너에게만은 이런 내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었는데, 또 네 앞에서 초라해졌다. 바보같은 나는 나를 도와준 네게 괜히 화풀이를 했다.

괜찮아?
.”
“..........”
네가 뭔데 끼어들어. 그냥 가만히 있지. 왜 자꾸 내 일에..”
미안.”

네게 들키기 싫어 화냈던 내 마음을 넌 알았던걸까? 넌 화를 내고있는 내게 그냥 미안이라고 그렇게만 말하였다. 난 더이상 너에게 뭐라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냥 모른 척 해주는 너에게 정말 고마웠고 네가 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너에게 물었던 거 같아.
 
,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뭔데? 와 네가 나한테 궁금한 것도 있어? 대박. 다 말해줄게, 말해봐.”
.. 넌 친구도 많으면서 왜 맨날 나한테 말 걸어주는 거야? 내가 불쌍해?”
뭐야, 그게 질문이냐? 그야 당연히 네가 좋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
내가 좋다고?”
, 넌 모르겠지만 너 좋아한 지 꽤 됐어.”
나를? ?”
몰라, 친해지고 싶어서 너한테 말 거는 건데 나 좀 밀어내지 말아라. 나 진짜 이제 좀 속상하려 그래. 네가 진짜 나 싫어하는 거면 안 그럴게. 내가 너한테 말 거는 게 싫어?”
아니, 싫진 않아.”
정말? 그럼 이제 나 밀어내지 않을 거야?”
.”
 
난 너를 질투하고 너를 싫어했는데 강이 넌 내가 좋다고, 친해지고 싶다고 말해줬어. 내 싫지 않다는 사소한 한 마디에 눈에 띄게 밝게 웃던 그런 너를 내가 어찌 밀어낼 수 있을까, 난 너와 친구가 됐고 너와 나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어딜 가든 붙어 다녔다.
 
하늘아, 많이 아파? 아씨, 왜 맨날 아프고 난리야 너는.”
뭐래, 나 괜찮아. 원래 이래. 신경 쓰지 마.”
원래 그런 건 뭐야! 그리고 네가 아픈데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나 만나기 전에도 맨날 이랬단 말이야? 짜증 나.”
 
엄마도 내 건강 상태를 신경 써주지 않았고, 심지어 나조차도 내 몸 상태에 무심하였는데, 넌 어째 나보다 더 아픈 것 같은 눈으로 쳐다보며 날 걱정해줬다.
넌 내가 밥을 챙겨 먹지 못해 아픈 걸 알았는지 매점에서 온갖 종류의 빵을 사와서는 갖다 주곤 했다. 그리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 자존심이 상할까 봐 괜히 이상한 변명까지 하더라고.

, 그냥 내가 먹으려고 샀는데 이제 배불러서 못 먹겠어. 남았는데 너 먹을래?”
그래, 고마워.”

난 너의 마음이 뭔지 잘 알았기에 그렇게 네가 거짓말 치는 걸 난 모른 척하고 다 받았어. 넌 내게 삐뚤빼뚤한 귀여운 글씨로 빨리 나으라며 편지까지 써주었으며 근처 약국에서 온갖 약을 사다 주기도 했다. 난 이때 누군가가 날 챙겨주고 걱정해준다는 게 이렇게 따뜻한 일이구나 하고 알게 됐다, 네 덕분에.
 
, 이 하늘! 빨리 나와, 영화 보러 가자.”
뭐야 이 강? 왜 벌써 왔냐? 그리고 우리 집 오지 말라 했잖아!"
 
너와 함께인 시간들은 언제나 편안하고 즐거웠으며 난 너를 만나고부터는 날 불행한 아이로 혹은 버림받은 아이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널 만나고 나서부턴 난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생각하게 됐던 거 같다. 넌 내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줬으니까.
 
강아, 너와 함께였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난 아직도 절로 웃음이 나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 너와 헤어지던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하늘아, 우리 오늘 떠날 거야.”
뭔 소리야 엄마? 갑자기 떠난다니.”
그러게, 너네 아빠 때문에 뭔 고생이냐. 그놈들이 우리 집 벌써 찾아냈나 봐. 오늘 밤에 바로 떠날 거야. 준비하고 있어라.”
엄마, 안 가면 안 돼?"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학교나 가. 인사할 애 있으면 하고 오던가.”

언젠가 이사를 갈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게 될 줄은 몰랐지. 아마 네가 없었더라도 떠나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웠을까? 학교에 가면 너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도 정말 많이 했던 거 같아.
 
하늘아, 오늘은 오렌지 맛이야. 먹어.”
난 필요 없고 너한테만 필요한 거 같은데? 너 많이 먹어, 진짜로. 너 벌써 손 떨린다. 그냥 피라니까?”
아 안돼! 끊을 거라니까?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되지.”
 
너는 내 말에 잠깐 웃더니 오렌지 맛 사탕을 꺼내서 내 주머니 속에 넣어줬다. 우리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넌 평소와 다름없이 내게 사탕을 주었고 우린 또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적인 얘기를 했던 거 같다.
언제 말할지,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을 그렇게 했는데 막상 네 앞에만 서면 떠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네가 날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차마 너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던 거 같아. 미안해, 차마 네 마지막 모습을 울고 있는 모습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랬나 봐.

하늘아, 나 너 좋아하는 거 같다.”
, 그 말 좀 그만하라니까. 네가 나 좋아하는 거 잘 알겠으니까 그만 말해도 돼~”
싫어. 계속 말할 거야, 네가 나한테 좋아한다고 말해줄 때까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넌 나에게 항상 좋아한다고, 정말 많이 좋아한다고 이렇게 말해줬어. 난 알고 있었어, 네가 날 얼마나 좋아했는지. 네 눈을 보면 다 알 수 있었거든. 그런데 난 그런 널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장난 식으로 넘기고 항상 네 마음을 모른 척했어.
그런데 나 떠날 때가 되어서야 다른 하나를 더 알게 됐어, 네가 날 좋아해 줬던 만큼 나도 널 많이 좋아했다는걸. 난 그냥 네가 같이 있으면 편하고 재밌는 단순히 그런 존재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나 널 정말 많이 좋아했나 봐. 이걸 떠나기 전에서야 알다니 좀 슬프더라고.
 
! 잠시만 강아.”
, ?”
.. 나 너 많이 좋아해.”
 
평소와 다름없이 너와 하교를 하며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는데 난 네 이름을 다시 부를 수밖에 없었어. 너는 핸드폰에 집중해 있다가도 내가 작게 네 이름을 부른 걸 들었는지 고개를 돌리더라고. 그런 너에게 난 내 진심을 전했어, 정말 많이 좋아한다고. 어쩌면 네가 날 좋아하는 거보다 정말 많이 널 좋아하고 있다고.
넌 나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는지 그 말을 듣곤 정말 놀란 듯 한참을 날 쳐다보더니 이내 밝게 웃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웬일이냐? 네가 이런 말도 해주고. 이 말이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인지 몰랐네, 앞으로도 많이 말해줘. 아 맞다. , 나도 너 좋아해. 그럼 나 진짜 간다.”
.. 잘 가.”
 
강아, 정말 고맙고 많이 좋아해. 내가 이런 말을 잘 못해줘서 네가 가끔 서운해했잖아. 이제야 너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해주네. 네가 날 정말 좋아해 줬다는 게 느껴졌었어, 잊지 않을 거야.
그날이 너와 내 마지막 날이었는데, 우린 그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넌 내게 앞으로도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해달라고 했는데 난 그런 너에게 잘 가라는 인사만 건넸다.
강아, 우리 언젠가 길을 걷다가 그런 말을 했었잖아. 우리 몇 년이 지나도 이렇게 언제까지나 둘이 함께하자고, 절대 헤어지지 말고. 미안해, 강아 너와 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날 네게 말도 없이 혼자 그렇게 사라져 버려서.
 
하늘아 뭐 해?”
강아! 벌써 온 거야? 그냥 잠깐 옛날 생각 좀 했어.”
, 너 보고 싶어서 그냥 빨리 왔어. 옛날 생각이면 예전의 나 생각한 거네, 맞지.”
응 맞아, 어렸을 때 생각하면 또 뭔가 마음이 좀 아련해. 그때 생각하면 그냥 너한테 너무 미안하다.”
또 괜히 죄책감 가지지 마. 그때 헤어진 거 너 때문 아닌 거 알아, 어쨌든 우린 다시 만났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냥 그때 함께하지 못한 게 미안해서.”
하늘아, 앞으로 계속 함께하면 되잖아, 절대 헤어지지 말자. 우리 다시 만난 이상 넌 이제 내 옆에서 못 떨어져.”
 
그렇게 10년간 떨어져 지내던 우린 1년 전 정말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함께 하고 있고. 너와 내가 다시 만난 건 1년 전 어느 카페에서였나?
그때 우리 정말 우연이었지만 난 그게 운명이라 생각한다. 1년 전 실수로 지갑을 잃어버려 하루 종일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뭐야,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야지, 여보세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길 가다 지갑을 주웠는데, 혹시 지갑 주인분 맞으신가요?”
, 아 제 지갑 주우셨구나. 감사합니다 진짜, 제가 지금 바로 거기로 갈게요!”

전화를 받았더니 어떤 남자가 내 지갑을 주웠다며 어떤 카페 이름을 대곤 여기로 오라고 말해줘서 난 기쁜 마음에 바로 그 남자에게 달려갔다.
 
하늘아,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난 아직도 그 시절의 너를 잊지 못해. 키도 작고 삐쩍 마른 널 보며 그냥 좀 안쓰럽다는 생각과 널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어.
네가 딱히 무슨 말을 하거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네게 눈길이 가게 되더라고. 아마 네가 정말 예뻐서 그랬던 거 같아.
그런 너를 옥상에서 만난 거야. 그날 너와 처음 얘기를 나누었을 때 나 정말 기뻤어, 네게 말을 걸고 싶어도 항상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못 걸었었거든.
그런데 나, 하늘이 네가 공허하게 하늘을 쳐다보는 게 정말 싫었어. 정말 금방이라도 네가 내 옆에서 없어질 거만 같았거든. 넌 어딘가 모르게 뭔가 슬퍼 보였어.
그래서 나 매일 너에게 찾아갔어. 매일 너에게 내 얘기도 하고 그냥 이것저것 많은 얘기를 건넸던 거 같아. 넌 처음엔 날 경계하는 거 같더니 계속 찾아가니 조금 익숙해졌는지 내게 조금은 경계를 풀더라고.
언젠가 네가 나에게 네가 왜 좋냐고 물어봤지. 난 네가 좋은 이유가 없었어, 처음엔 그냥 네가 조금 궁금해서 다가갔던 건데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어 가더라고. 난 그냥 이유 없이 하늘이 네가 좋았던 거 같아.
너는 항상 어딘가가 아팠는데 그런 너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 그 조그마한 몸에 온갖 병을 달고 사는 너에게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주고 싶었어.
그래서 정작 아픈 너보다 내가 더 난리를 쳤나 보다. 언제나 네 옆자리를 지켜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파.
나 너와 헤어지던 날을 잊지 못해. , 유난히 그날에 내게 잘해준 거 알아? 네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해줬을 때 정말 행복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였을 줄이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왜 못 느꼈을까.
다음 날 학교를 가니 네가 전학 갔다는 말을 하더라고. 나 네가 떠난 날 정말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울었던 거 같다. 마지막으로 네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지. 넌 끝까지 나한테 친절하지 못했어. 난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좀 허전해.
 
, 여기요. 그렇게 뛰어오실 필요는 없는데, 여기 지갑이요.”
기다리게 하면 죄송하잖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내게 지갑을 건네주더니 날 계속 빤히 쳐다보길래 이상한 기분이 들어 말을 걸었다.

아 얼굴에 뭐 묻었나.. 왜 자꾸 쳐다보세요..?”
아니요, 근데 제가 연락처가 있는지 찾아보다가 얼떨결에 지갑 안에 있는 편지를 봤는데 혹시 본인 거신가요?”

아 쪽팔리게 이 사람이 그 편지를 봤나 보다. 강이가 예전에 내가 아플 때 나에게 빨리 나으라고 써준 편지가 귀엽기도 하고 우리 사이에 남은 게 그거밖에 없어서 지갑에 넣어두고 다녔는데 이 사람이 그걸 봤을 줄은 몰랐다.

.. . 옛날에 제가 좋아했던 애가 써준 거예요, 물론 지금은 못 만나지만.”
“.........“
근데 그건 왜요?”
, 제 아는 사람이랑 닮으셨네요.”
내가 흔한 얼굴인가? 아니, 근데 편지는 왜 물어보신 거냐니까요?”
.“
..? 반말한 거야 지금? 뭐 하세요?”

이 남자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반말을 하길래 어이가 없어서 그 사람의 눈을 탁 쳐다봤다.

하늘아.. 그때 왜 말도 없이 떠났어? 난 너 떠나고 얼마나.. 너 떠난 날 난 네가 오다가 다친 줄 알고 그날 하루 종일 너 찾아다녔어. 근데 넌.. 그 뒤로 학교도 안 나오고, 난 진짜..”

이 남자는 말을 겨우 이어가더니 한숨을 쉬곤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난 이 사람의 말을 듣곤 누군가에게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게 뭔..”
나 얼마나 힘들었는데, ..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지금까지? 나는 아니야, 진짜 매일 너 생각하고, 힘들어서.. 너 때문에 진짜 힘들어서 죽어버릴 거 같았다고. 근데 넌 나 기억 못하는 거야?”

난 이 사람의 눈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예쁜 눈동자를 가진 너, 이 강이다. 이 사람 이 강이구나. 내가 아무 말하지 않고 계속 널 쳐다보자 넌 내게 뭔가 더 말을 하려고 했다. 난 네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그냥 바로 네 품에 안겨버렸다, 아주 익숙한 네 품에. 여전히 키도 크고, 덩치도 크네. 너한테서 나는 향도 그대로인 거 같아. 그날 네 품에서 펑펑 울며 우린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서로를 껴안고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우린 여전히 함께이다. 우리의 애틋함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우린 이제 절대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고마워,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되어준 강아.

이제서야 말하게 되네. 나랑 결혼하자 하늘아, 평생 함께해주라. 너와 함께했던 18살 그 시절에도, 너와 함께하지 못한 10년 동안도, 그리고 지금도 널 많이 좋아해.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어. 난 네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하다. 빨리 너랑 같이 살고 싶어. 결혼해줄래?”
, 결혼하자. 그런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이제 10년 전의 그런 일 절대 없을 거야.”
하늘아, 사랑해.”
나도.”

넌 그 말을 끝내곤 날 꽉 끌어안더니 잠시 놓곤 날 내려다보곤 내 양쪽 볼을 손으로 감싸더니 내 입에 키스해줬어. 그리고 내게 사랑한다고 속삭여줬는데 정말 네 품은 따뜻하고도 편안했던 거 같아. 강아, 우리 앞으론 정말 헤어지지 말고 영원히 함께하자. 지금 잡은 손 절대 놓지 말자. 이제 네가 없는 나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강과 하늘 우리의 이름처럼 항상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의 곁에 있어주자. 18살의 나도, 10년이 지난 28살 현재의 나도 변함없이 강이 너를 정말 많이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