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모 : 늦춰진 나날들

by 쓰레빠신어 posted Nov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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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춰진 나날들


1. 시간 마을  

  검은 승용차가 달려와 약국 앞에 섰다. 은백색의 외투와 짙은 검은색의 선글라스를 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있어 거지 같은 인상을 주는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참이었다. 시원한 얼음과 알싸한 커피 향이 짙게 배어있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약국에 있어야 시간이 잘 간다. 그러나 불청객 한 사람으로 인해 소중한 나의 시간이 방해를 받았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뚜벅뚜벅 나를 향해 걸어오더니 묻는다.

학생, 뭐 좀 물어보자

선글라스를 벗으며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시원하게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내려놓고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답한다.

무엇을 물어보시게요?”

시간 마을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아까부터 거슬리던 반발이 두 번이나 튀어나왔다. 초면에 길을 물어보는 자가 반발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나는 못 들은 척 약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어디 다음에도 반발로 지껄이면 엉뚱한 방향으로 알려줘야지

학생,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고 있잖아!, 왜 못 들은 척 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며 다시 묻는다.

아저씨, 아무리 학생이라도 길 물어보는 입장이면 정중히 물어봐야죠, 초면에 반발하시면 어느 누가 좋게 대답하겠어요?”

시원하게 내뱉었다. 아메리카노 마시는 시간까지 빼앗긴 나로서 할 수 있는 복수였다.

, 학생으로 보여서 반발한 거지, 미안하게 됐네.”

시간 마을은 약국에서 멀어요. 약국 앞 사거리에서 포천 방면으로 가시면 됩니다. 가는 길이 매우 좁고 구불구불해 정신 차리지 않고 운전하면 바로 죽을 수 있으니 박카스 한 병 사 마시면서 가세요. 졸음 쫓는데 박카스가 최고예요.”

나는 아저씨에게 박카스 한 명을 드렸다. 돈을 바라고 드린 것이 아니지만 아저씨는 조금 전 반발로 물어본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탁자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아저씨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다시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최신 음악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들으며 미쳐 다 마시지 못한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들이킨다. 네비게이션에 검색되지 않는 마을이 시간 마을이다. 워낙 오지라서 그런지 네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해도 표시되지 않는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이 네비게에션 업체에 항의해서라도 검색되도록 해야 하는데 다들 귀찮은지 불편을 감수하고 살고 있다. 네비게이션에 검색이 되어야 응급상황이 발생해 119를 불렀을 때 구급차가 신속하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아프지 않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개인 자가용이 있는 사람들은 병원으로 신속히 갈 수 있지만 나와 같이 가난해 차가 없는 집은 구급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검색이 안 되는 상황이 더욱더 신경 쓰인다. 시간 마을은 네비게이션 뿐만 아니라 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는다. 내가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오지 마을을 표시할 가치를 못 느꼈을 것이다.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러한 오지 마을이 시간 마을이다.

내가 약국에서 일하는 것은 오지마을을 벗어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약국이기 때문이다. 약국에 나와 일하면 외지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되고 라디오 방송까지 수신이 되어 바깥세상 소식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나에게 있어시간 마을은 교도소와 같이 답답한 곳이다. 교도소를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해방된 공간이 약국이다.

약국에서 일하고 오후 5시가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자전거를 타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한참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교도소로 들어가는 것처럼 즐겁지 않다. 도로 주변은 가로등이 적어 어둠이 가득하고 산에서 들려오는 야생 짐승 소리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섭다. 항상 어디서 어떤 동물이 튀어나와 나를 공격할지 걱정하며 가야 하는 긴장되는 퇴근길이다. 그래서 약국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우왕 청심환을 종종 가지고 나온다.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하루 이틀 정도 지난 것은 약국 사장님께서 버리거나 나보고 가져가라고 하는데 그것을 잘 보관하고 있다가 퇴근길에 한 알씩 먹으면서 오는 것이다. 그러면 야생짐승으로부터 공격받아 죽을지 모르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

자전거로 30분 정도 가면 마을 입구가 보인다.

시간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다른 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이라 나이를 천천히 먹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시간 마을에서 최고의 힐링을 누리고 가세요!’

도대체 내비게이션에 검색도 안 되는 마을을 누가 찾아온다고 자주 찾는 곳입니다.’라는 거짓말을 넣었을까? 생각할수록 기가 찰 노릇이다.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살면서 외부 손님이 오는 것을 보긴 했어도 자주찾아오는 정도는 절대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내가 사는 마을이니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며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저런 것까지 신경 쓰면 머리만 아프다. 마을을 소개하는 표지석을 지나 100m쯤 더 내려가면 가장 먼저 초등학교가 보인다. 시간초등학교는 내가 졸업한 모교이다. 내가 다닐 적에는 전교생이 10명인 분교 중의 분교였다. 지금은 저출산과 노령화로 5명까지 줄었다. 초등학교는 과거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거의 없는 유일한 곳이다. 초등학교를 지나면 윗마을이 보인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배다리를 경계로 북쪽을 아랫마을, 남쪽을 윗마을이라고 부른다. 북쪽이 지대가 더 높아서 윗마을로 불리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지대가 더 낮은 남쪽을 윗마을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이름을 지어야 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것 중의 하나가 6?25 한국 전쟁 당시 북한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착한 마을이라서 북쪽을 남쪽보다 신성하지 못한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쪽에 더 가까운 저지대 마을을 윗마을로, 북쪽에 가까운 고지대 마을을 아랫마을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룬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세월이 많아 흘러 세대교체가 되어 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은 모두 돌아가셔서 시간 마을의 옛 추억을 생생히 전해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는 사라졌다.

내 집은 윗마을에 있다. 그래서 더 깊숙이 들어가야만 하는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의 거리도 200m 이상 되어 만약 우리 집이 아랫마을이었으면 무서움을 느끼며 더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왕 청심환을 더 많이 먹으면서 가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배다리를 지나기 전에 자전거를 그만 탈 수 있게 된 것이 축복이자 신이 주신 큰 선물이었다. 집에 도착해 자전거에서 내릴 때까지 30분 이상을 두려움이 떨던 나는 부모님이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심신의 안정을 되찾는다.

      

2. 접근 제한 구역 

   내 집에서 아랫마을을 지나 산 중턱으로 가다 보면 접근 제한 구역이라는 곳이 나온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접근 제한 구역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다. 왜 접근을 제한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해들은 바가 없지만, 위험한 장소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접근을 막는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먹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최근에 부쩍 그곳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마을에 나와 나이가 같은 시간초등학교 동창생 인재가 있었다. 인재는 부모님께서 나라의 큰 인재가 되라는 의미로 작명을 했으나 부모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공부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귀가 후에 책상에 앉아서 공부한 적이 없다. 나는 그래도 공부에 관심이 있어 열심히 했으나 내 친구는 놀기만 했다. 공부를 너무나 하기 싫어해 부모님께서 개명하려고 했으나 개명하기 위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포기하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재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이다. 나는 인재와 여름방학을 맞이하며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방학을 보낼까 생각하다 접근 제한구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계획한다. 학교에서 여름방학 계획표를 작성하는 시간에 틈틈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접근 제한 구역은 군인들이 감시하는 감시탑이 있어 군인들의 감시망을 피해서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재와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 하나는 땅굴을 파서 지하로 들어가는 방법, 하나는 나무를 이용해 타잔처럼 넘어가는 방법이다. 땅굴을 파는 방법은 장비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기전이라 포기하고 나무를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운 좋게 접근 제한구역과 아랫마을을 가로지르는 큰 밤나무가 있었다. 여름이면 풀이 무성히 자라나고 나뭇잎도 커다랗게 성장한 시기라서 주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방학식을 마친 나는 인재와 함께 밤나무까지 갈 수 있는 조그마한 오솔길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아랫마을에서 한참을 돌아가는 방향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감시탑의 군인은 아랫마을과 감시탑 사이에 있는 언덕 때문에 우리가 길을 내는 장소를 쉽게 감시할 수 없었다. 작업은 우선 풀을 쓰러뜨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낫을 이용해 억센 풀은 잘라내고 발로 다져가며 밤나무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전진해 나갔다. 이렇게 며칠을 고생한 끝에 마침내 아랫마을을 돌아 밤나무까지 연결되는 길을 만들 수 있었다.

인재야, 길을 다 만들었으니 하루는 상황을 지켜보자!” 내가 비장한 모습으로 인재에게 말한다.

만약 마을 사람이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 계획은 다 헛수고가 될 거야인재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우선 길을 풀로 덮어 놓고 제한 구역 안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봐야겠어.” 나는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우리는 제한 구역 안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들어가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들어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단순히 들어가는 것으로는 일이 너무 커진 것이다. 힘들게 들어간 만큼 무엇인가 놀라운 성과를 얻어내야만 했다.

그럼 나는 들어가서 지내는데 필요한 먹을 것과 옷가지 등을 준비해 놓을게인재는 들어가서 숙박을 할 생각이었다. 나도 인재의 생각에 동의했다. 기왕 들어간 거 최대한 오래 머물다가 나올 생각을 했다. 나는 인재와 헤어지고 난 뒤 집으로 와서 내일 접근 제한 구역으로 떠나는데 필요한 물품을 배낭에 넣었다. , 소시지, 과자, 물 등등 그리고 책상에 쪽지를 남겼다.

엄마 아빠 나 인재하고 자전거 타고 배낭여행 좀 다녀올게요. 사전에 말씀드리면 허락하시지 않을 것 같아 이제 말합니다. 배낭여행에 필요한 물건은 집에 있는 것 다 털어서 준비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인재와 같이 떠나는 여행이니 사고 없이 다녀오겠습니다.’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쪽지를 남겼다. 인재도 나처럼 쪽지만 남겼다. 우리 부모님과 인재네 부모님이 친하셔서 큰 걱정은 덜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쪽지를 남기고 나는 내일부터 시작될 큰일을 잘 마칠 수 있도록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 나는 오솔길을 덮고 있던 풀을 걷어내며 앞으로 갔다. 뒤따라 인재가 오고 있다. 인재는 주변에서 우리를 보는 사람이 있나 확인하면서 따라왔다. 여름이라 앞으로 한 발짝 나가는 데도 힘이 부쳤다. 땀은 이마를 흘러 얼굴 전체로 퍼져 나갔고 윗도리는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조금만 쉬고 물 좀 마시자!” 인재는 타는 갈증에 그만 주저앉았다.

여기, 빨리 마셔, 최대한 빨리 들어 가야 해나는 조급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접근 제한 구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엄청 혼나는 것은 뒤로하고 경찰서에 끌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가 하는 짓은 장난을 넘어선 위험한 짓이었다.

조금만 가면 밤나무가 나와, 빨리 가자!”나는 인재를 다그치며 앞으로 나간다.

엎드려인재가 황급히 몸을 숙인다.

마을 사람이야, 가만히 있어!” 인재는 나에게 우리의 계획을 망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인 마을 사람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됐어, 다시 출발해!” 인재는 마을 사람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앞으로 가라고 한다.

나는 천천히 간다. 한 발짝, 한 발짝이 무겁고 힘들다. 밤나무 아래에 도착한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서 가방에 싸 온 간식을 먹으며 3~4시간을 기다린 후 저녁이 되어서 다시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다 왔다. 우선 가방을 울타리 안으로 던져나는 인재에게 말한다.

~~, 철퍼덕, 철퍼덕내 가방과 인재 가방이 울타리 안으로 날아가 바닥에 나뒹군다.

내가 먼저 올라가서 너를 잡아줄게인재는 몸이 나보다 무거워 내가 먼저 올라가서 끌어당기기로 했다.

빨리 올라와 내가 당길게나는 인재를 당긴다.

아씨 너무 힘드네, 우리 그만둘까?” 인재가 갑자기 나약한 말을 내뱉는다.

여기까지 온 거 그냥 해보자, 언제 해보겠어, 그리고 저 울타리 안에 무엇이 있기에 접근 금지 구역이 된 건지 궁금하지도 않아?, 걸린다고 해서 우리를 죽이기야 하겠어?” 나는 당당히 말하면서 인재의 나약한 마음을 다시 달랜다. 인재를 끌어당긴 나는 울타리를 넘어 접근 제한 구역 안으로 늘어진 나뭇가지를 잡고 타잔이 된 것처럼 하늘을 날아올라 울타리를 넘었다. 그리고 뒤이어 인재도 넘어왔다. 덩치가 큰 녀석이 날아오는 것이 운석이 떨어지는 것 다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했다. 인재가 착지하는 곳에는 커다란 발자국이 남았다.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발자국을 모두 지우고 나뭇잎으로 잘 덮었다. 그리고 조용히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밤이라 주변에는 풀벌레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나와 인재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아무도 듣지 못하고 우리만 들을 수 있도록 숨죽이며 안으로 갔다. 접근 제한 구역 안으로 들어오는 데 도움을 줬던 밤나무는 우리들의 시선에서 저 멀리 사라져갔다.

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부모님은 어떤 마음일까? 너무나도 조용한 접근 제한 구역 안에서 휴식을 취하던 나는 생각했다. ‘내가 여기 온 것을 알아채셨을까?’, ‘아니야, 학생 두 명이 여기에 갈 거라곤 상상도 못 하시겠지’, ‘예전에도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서 별다른 걱정을 안 하실 거야나는 스스로 질문하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한 답을 내려 나갔다. 인재도 그랬다. 우리는 밀려오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이제 밤나무는 보이질 않는다. 접근 제한 구역 안의 모습은 밖에서 상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수풀이 우거진 숲속 같았다. 인재와 내가 실망을 하면서 다시 되돌아 나가려고 마음을 먹던 찰라. 덜커덕 무엇인가에 걸려 인재가 바닥에 넘어졌다. 땅속에 있어야 할 쇠파이프가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흙이 쓸려 내려가 노출된 것 같은 쇠파이프에 인재의 발이 걸려버린 것이다. 쇠파이프는 매우 긴 듯 보였다. 쇠파이프를 따라 우리는 안으로 걸어갔다. 서서히 수풀이 걷히고 넓은 들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니.’ 밖에서 보았을 때 울창한 숲만 존재할 것 같은 곳이었는데 들판이 눈앞에 있으니 놀라웠다. 나는 인재에게 물었다.

인재야, 정말 신기하지 않냐?”

. 들판이 있을 줄을 꿈에도 몰랐는데, 잘 들어온 것 같다.” 인재는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신기한 얼굴을 하며 대답한다.

들판은 폭은 좁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들판 가운데 부분 가로지르는 철조망이 남북의 군사분계선처럼 놓여있었다. 철조망 가장자리에 녹슬고 자물쇠로 굳게 잠긴 문이 있었다.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심하게 녹슬어 있는 자물쇠를 주변에 있던 돌멩이로 내리쳤다.

철퍼덕자물쇠가 떨어졌다.

들어가 볼까?” 나는 인재에게 묻는다.

좋지, 이거 흥미진진한데인재는 한껏 흥분해있었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익~끼익~’고막일 때리는 강렬한 마찰음이 들린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면서 안을 살핀다. 한 참 살폈을까 나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주변보다 풀과 나무의 숫자가 적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는 전부 다 땅바닥으로 휘어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콩나물 머리가 뿌리 쪽으로 자라듯 ...., 몇몇 나무의 나뭇잎은 하늘 방향으로 자라는 것을 포기하고 땅바닥 쪽으로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확연히 다른 나무와 풀의 모습에서 이곳이 다른 곳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3. 실종사건 

   배낭여행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들은 집에 오질 않았다. 외출해서 늦은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연락 두절 상태인 경우는 없었다. 서희와 인재 엄마는 서둘러 경찰서에 가서 실종신고를 했다. 두 아이가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 지났던 모든 길과 주변 야산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보, 우리 서희 잘 있는 거겠죠?” 겁에 질린 서희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그렇지, 서희가 길을 잃고 조난 당 할 아이도 아니고 낯선 사람을 따라갈 성격도 아니라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곧 돌아오겠지.” 속으로는 아내보다 더 걱정을 하는 서희 아빠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곳곳에 전단을 뿌리고 공개적인 수색작업을 하고 있으니 곧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야서희 아빠가 다시 한 번 아내에게 긍정의 힘을 준다.

서희 부모님만 난리가 난 게 아니다. 같이 떠난 인재의 부모님은 더 안절부절 이었다. 외동아들이라서 더 그랬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터라 아들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밤이면 접시에 물을 받아 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달님, 달님, 우리 인재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주세요, 인재 없이는 저희가 살 수 없어요, 제발 부탁입니다. 꼭 무사히 돌아오게 달님이 도와주세요.’ 너무나도 간절한 바람이었다.

며칠 후 아이들의 흔적을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서희와 인재의 부모님은 황급히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를 가는 길은 매우 멀게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시간의 흐름이 느리다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지만 이날만큼은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것처럼 멀게 느껴진 것이다.

경찰이 찍어놓은 사진 속에는 풀밭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길이 있었다.

아이들이 여기에 있었던 듯합니다. 길을 내면서 지나간 것 같아요.” 경찰은 확실에 찬 눈빛으로 두 아이의 부모님께 브리핑한다.

이게 아이들이 만든 길이라 구요?” 믿지 못하겠다는 서희 엄마의 대답이었다.

발자국 크기를 보니 인재 발 크기와 같은 것 같아인재 엄마는 경찰의 설명에 동조하는 식으로 대답한다.

발자국을 보면 종류가 다른 신발을 신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 크기도 서로 비슷하고요. 신발의 종류가 두 개라는 것은 두 사람이 지나간 것을, 크기가 비슷하다는 것은 체구가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찰은 이번에는 확실한 증거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제 서야 서희 엄마는 경찰의 말에 신뢰를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흔적을 찾았으니 추가적인 성과가 나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셔도 되겠습니다.” 경찰은 빨리 쉬고 싶은 듯 부모님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왜 저쪽으로 갔을까?’ 서희 엄마는 생각에 잠겼다. 서희가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약국을 왔다 갔다 하는 길과는 정반대에 위치하는 곳이라 경찰의 발표를 100% 믿지 않았다. ‘?’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다양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접근 제한 구역으로 들어갔으리라는 생각은 안전히 배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속 시원한 답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생각의 전환, 발상의 전환이 없는 서희 엄마에게 접근 제한 구역으로의 여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종된 두 아이를 찾기 위한 노력은 발자국이 발견된 후 더욱더 활기를 띠게 되었다.

      

4. 강렬한 이끌림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는 차를 몰아 시간 마을로 들어선다.

여기가 시간 마을이로구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감격의 혼잣말을 내뱉는다. 남자가 시간 마을을 다시 찾은 것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서희가 태어나기도 전) 시간 마을에 놀러 왔다가 길을 걷던 젊은 여성을 차로 치었다. 여성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워낙 밤늦은 시간에 일어난 데다 주변에 가로등과 CCTV가 없어 목격자가 존재할 리 만무했다.

에이, 재수 없어, 걸어가려면 제대로 걸어가지, 차가 가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쩌란 말이야!’ 상부는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차에서 내린다.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보는 사람도 없었을 테니 그냥 도망가자단번에 결단한다.

상부는 따끈따끈한 온기가 가시지 않은 여자를 차 트렁크에 싣고 내달린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지대가 높은 곳으로 차를 몬다. 차는 더욱더 깊숙이 들어간다. 막다른 길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연다. 아직도 따뜻하다. 어깨에 들쳐메고 안으로 들어간다. 수풀이 다리를 휘어 감는다. 가시 돋친 나무에 옷자락이 찢어진다.

아 뭐 이렇게 무거워땀을 주르륵 흘리던 상부는 여자를 바닥에 내던졌다. 여자는 정육점에 놓여있는 고깃덩어리처럼 바닥에 나뒹군다. 여자를 놓고 흙과 풀로 덮은 후 왔던 길로 돌아오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여자가 있는 곳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았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빛이었다. 상부는 빛이 났던 곳으로 가보았다. 시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움푹 파였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동시에 상부는 땅바닥에서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족쇄를 찬 것처럼 힘을 주어도 다리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씨, 이게 뭐야, 왜 다리가 안 움직여욕을 내뱉는다. 상부는 주변 풀 가지를 잡고서, 있는 힘껏 다리를 들어 올린다. 다행히 이번에는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앞으로 기어갔다. 잠시 뒤 다리를 잡아당기던 강한 힘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뭐지?, 왜 갑자기 아무런 힘도 안 느껴지는 거야?’ 상부는 조심스레 다시 발을 들이민다.

역시나 강한 힘이 느껴진다.

신기하네, 시체가 놓여있던 곳에서만 힘이 느껴지고 거기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더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동차로 여자를 치어 죽인 것도 무서운데 이상한 힘까지 느껴지니 상부는 더 지체할 수 없었다. 시체도 사라진 마당에 빨리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상부는 왔던 길로 있는 힘껏 뛰기 시작했다.

누가 봤다면 어떡하지?’ 자신의 잘못을 목격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어두운 숲속에서 누가 목격했다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속말을 하면서 뛰어갔다. 한 참을 뛰어 뒤에 차를 세워둔 곳으로 되돌아 왔다. 시간 마을을 지나 강원도를 가는 도중에 생긴 예기치 못한 사고 때문에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체 되었다. 전혀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죽은 여자를 버리고 간다니.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었다. 차 열쇠를 돌려 시동을 켠다. 엔진 소리가 요동친다. 엔진 소리에 마을 주민이 깰까 조심조심하면서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 마을을 빠져나온다. 자동차의 배기음이 커질수록 마을을 벗어난다는 안도감은 더욱더 상부의 마음을 휘어 감는다.

      

5. 신비로운 통로 

    나는 풀과 나무가 다른 곳과 확연히 다르게 자라고 있는 곳을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서서히 그곳으로 발을 내디딘다. 인재는 나를 뒤 따라오고 있다.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내가 먼저 앞서가는 것이 서로에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보는 사람이 있나 살핀 후 한 걸음 나아간다. 한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몇 걸음을 걸었을까? 갑자기 나의 발을 끌어당기는 강한 힘으로 철퍼덕 주저앉고 만다. 인재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내가 있는 곳으로 황급히 뛰어온다. 그리고 인재도 주저앉는다. 너무나 강한 힘이 나와 인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강력한 네오디뮴 자석에 끌리는 철 조각처럼 우리는 땅바닥에 당기는 강한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다. 이대로 갇혀 있을 수는 없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소리를 지르는 순간 접근 제한 구역을 지키는 군인들의 고막을 진동시키기 때문이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친 지 몇 분이 흐른 후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나와 인재는 좁은 통로 모양으로 된 길을 따라 지하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자유낙하 할 때 느끼는 무중력 상태를 느끼면서 정신을 잃는다.

아이 차가워!” 뺨을 때리는 차가운 물에 의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드넓은 강가가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인재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누구야? 누가 내 뺨을 때린 거야?” 하며 벌떡 일어난다.

서희야, 여기가 어디야인재는 나에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인상을 쓰며 묻는다.

분명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쳤고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떨어진 것까지는 기억에 남는데.” 나는 기억을 더듬어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왔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머리 위를 쳐다본다. 우리가 떨어졌다면 분명히 떨어진 통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 위에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새파란 하늘이었다.

우리가 저기서 여기로 떨어 진 거?” 나는 인재에게 물었다.

떨어져서 여기에 왔으니 그렇지 않을까?” 모처럼 진지하게 생각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명확한 답을 했다.

시계를 보았다. 조금 전에 다리가 강한 힘으로 옴짝달싹 못 할 때의 시간이 밤 9시 정도 였으니 적어도 10시는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시계는 밤 9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떨어진 후 정신을 차릴 때까지 고작 5분밖에 안 흐른 거야?” 나는 너무나 이상해 인재에게 묻는다.

그러게, 적어도 30분 이상은 지난 것 같은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가 정말 어제 같거든, 5분 전의 일을 어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 인재의 논리적인 대답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5분 사이에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할 따름이었다. 왜 시간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천천히 흘러간 것일까? 깊은 생각을 했지만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우리는 우선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서 어디로 가 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6. 활기를 띠기 시작한 수색 작전 

    사라진 두 아이를 찾는 수색은 계속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남겨놓은 발자국을 발견하면서부터 수색 속도는 빨라졌다. 발자국을 따라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의 눈에 접근 제한 구역 울타리 안으로 길게 뻗어 있는 나무가 보였다. 발자국이 나무 주변에서 끊긴 것을 경찰은 놓치지 않았다.

발자국이 나무 아래에서 끝났어.” 수색 대장 경찰이 동료 경찰에게 말했다.

혹시, 나무를 올라가서 건너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요?” 대장 경찰에게 말한다.

~, 접근 제한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고?, 그것은 미친 짓이지, 거기가 어떤 곳이라고, 아닐 거야!” 대장은 애써 아니라 믿고 싶은 티를 팍팍 내며 대답한다.

사실 대장은 접근 체한 구역 안으로 두 아이가 들어갔을 것이라고 100% 확신했다. 왜냐하면, 시간 마을 주변에서 일어난 대부분 실종사건이 접근 제한 구역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종사건의 공통점은 접근 제한 구역 안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 실종자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그래서 수색을 하면서도 두 아이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접은 지 오래였다. 부모 앞에서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속마음과 다른 말을 했지만.

대장은 예전에 해왔던 것처럼 접근 제한 구역 안을 수색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실종사건의 열쇠를 찾을 수 있는 조그마한 단서라도 나오길 바라면서 접근 제한 구역 출입문을 군인들의 도움을 받고 열었다. 예전에도 들어왔던 곳이지만 들어올 때마다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은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래도 경찰인 이상 이겨내야 한다. 동료 경찰과 의경을 모두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을 펼친다. 4개 조를 이루어 동서남북 위치에서 중심부를 향해 수색하는 방법을 쓴다. 첨단 장비까지 동원한 대대적인 작업이었다.

뭐 특이사항 있는지 조별로 브리핑하도록 해!” 대장은 조에게 명령한다.

“1조는 북쪽에서 출발해 중앙으로 왔습니다. 수색 결과 특이사항 없습니다.”

“2조는 남쪽에서 출발해 중앙으로 왔습니다. 수색 결과 특이사항 없습니다.”

“3조는 동쪽에서 출발해 중앙으로 왔습니다. 수색 결과 특이사항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4조는 서쪽에서 출발해 중앙으로 왔습니다. 수색결과 아이들의 먹나 버린 간식 포장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초콜릿 포장지와 단팥빵 포장지입니다.” 똑같은 브리핑에 실망하던 대장의 귀에 포장기라는 단어가 쏙 들어왔다.

포장지라고?, 포장지 당장 국과수에 보내 DNA 감식 해봐, 아이들 타액이나 지문이 묻어있을 수 있으니!” 대장은 어렵게 발견한 단서가 훼손되지 못하도록 최대한 통제를 하면서 국과수에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여기에 들어왔다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동쪽, 서쪽, 북쪽으로 걸어가 봤자 산으로 막혀있어 그쪽으로 갔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남쪽으로 가면 마을이 있어 아이들이 마을로 왔다면 아이들을 본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격자는 나오지 않았다. 정말 기묘한 실종 사건이다. 대장은 이 사건을 반드시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불타올랐다.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실종사건과는 다르게 결정적 증거인 포장지가 발견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증거가 발견되면 해결의 문턱은 한층 더 가까워진다. 대장은 아이들은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7. 가위눌림 

    여자를 죽이고 시신을 유기하고 온 날부터 악몽은 시작되었다. 여자가 꿈속에 나타나 상부의 가슴과 목을 조르고 가슴을 칼로 찌른다. 상부의 가슴에는 분수처럼 피가 솟구친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몽롱해진다. 의식은 서서히 사라져간다. 잠을 자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든다. 그리고 잠시 후 상부의 몸은 돌덩이처럼 굳는다. 육체를 움직일 수 없다. 의식은 사라져 가다 육체가 움직이지 않을 때 더욱더 강하게 떠오른다. 죽어가던 의식이 되살아난다. 의식은 명령을 내리고 반대로 육체는 명령을 거부한다.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의식이 강렬하게 명령을 내릴 수록 육체는 더 강렬하게 거부한다. 무섭다. 깊은 낭떠러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져있다. 그리고 울고 있다.

나를 누가 강하게 잡아당겨, 몸이 찢어질 것 같아, 제발 꺼내줘여자의 간절한 울음소리다.

안 돼, 내가 너를 죽이는 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와 너밖에 몰라, 그러니 제발 사라져줘상부는 여자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그만 나타나라고.

왜 내가 사라져 주어야 하는데? 이미 너 때문에 나는 사라졌잖아, 사라진 나에게 사라지라고 하다니? 그렇게는 못 해여자는 남자를 더욱더 괴롭혔다.

내가 차게 치이고 낭떠러지 속으로 떨어졌으니 너도 당장 죽어주면 좋겠어. 내가 너를 죽일 거야.” 여자는 상부의 목을 서서히 조여 나간다. 상부는 손을 쓸 수 없다. 몸이 의식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소리친다.

나를 좀 내버려 둬!”

상부는 잠에서 깨어났다. 악몽은 15년 동안 반복되었다. 상부의 몸무게는 30kg 이상 빠졌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한 상부는 집 주변 점집을 찾아 해결 방법을 묻는다.

요즘 악몽에 시달려서 죽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부는 점쟁이에게 묻는다.

억울하게 죽은 여자 영혼이 네 주변을 맴돌고 있어, 영혼을 달래줄 방법은 여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일이야!” 점쟁이는 정답을 말하듯 강한 자신감을 가득 담은 조언을 해준다.

대신 네가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주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 알리면 아무 소용없어, 무조건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다녀와야 해!” 점집을 나서는 상부에게 점쟁이가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혼자서, 혼자서, 혼자서점쟁이의 말이 너무나도 마음에 쓰인다. 15년 전 혼자서 두려움에 떨며 여자를 유기하고 온 그곳을 다시 찾아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그러나 15년 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막을 수 없었다. 상부는 점집을 나온 그 날 짐을 챙겨 시신을 유기한 시간 마을로 차를 몰았다. 시간 마을은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오지였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다. 고속도로와 비포장도로 국도를 지나가길 여러 번, 집에서 출반한 지 3시간이 흐른 끝에 시간 마을로 들어가는 첫 도로를 만났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와서인지 입이 아프다. 차에 준비하고 온 박카스를 한 병 마신다. 목 넘김이 시원하다. 15년 전 사고만 없었더라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는 것인데.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나 이미 세월은 많이 흘렀다. 과거를 생각하며 사색에 잠길 필요가 없다. 상부는 다 마신 박카스 병을 ~’ 던져버린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간다. 그런데 순조롭게 나아가던 상부는 갈림길에서 멈춘다. 갈림길이 나온다고는 들은 바 없었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마침, 맞은편에 약국 하나가 보였다. 두통을 이겨내기 위한 약을 사면서 길을 물어보려고 들어간다.

약국 안에는 학생이 있었다. 학생에게 시간 마을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본다.

학생, 뭐 좀 물어보자학생은 대답이 없다. 건방지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어른이 물어보면 대답하는 것이 도리인데 그 도리를 무시하고 있다. 상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다시 물어본다.

학생, 시간 마을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여전히 모른척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어본다. 이번에는 선글라스를 벗고 물어본다. 반말과 선글라스,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아 최대한 밝은 인상을 유지하며.

학생, 아저씨가 시간 마을에 가야 하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갈림길이 나와 어디로 가는지 몰라 길 물어보려고 왔단다.”

그때야 학생은 나에게 눈길을 준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대답한다.

약국 앞 사거리에서 포천 방면으로 가시면 됩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약국에서 받은 박카스 한 병을 한입에 마신 다음 차에 올라탄다.

구불구불한 길이라 조심히 가야 한다.’ 학생이 해준 조언을 되새기며 가속페달을 밟는다. 15년 전에도 가속페달을 세 개 밟는 바람에 여자를 치어 죽였다. 그때의 악몽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에는 최대한 약하게 밟았다. 자동차는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졸음과 힘겨운 사투를 벌였을 나였지만, 오면서 마신 두 병의 박카스 때문에 졸음으로 고통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카페인 때문에 더 흥분되는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더 어려웠다. 자동차는 한참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움직였다. 경사가 심하고 직선 구간이 없는 도로라 멀 리가 왔다. 졸음보다 더 상부를 귀찮게 하는 것이 멀미다. 집에서 급하게 출발하는 바람에 늘 챙기고 다니던 구급약 통을 두고 왔다. 구급약 통에는 운전할 때 방해가 되는 멀미를 예방할 수 있는 멀미약과 해열제, 밴드, 연고, 소독약 등이 있다. 시내 운전을 할 때는 사용하지도 않는 구급약이 너무나 간절했다. 그러나 지금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상부는 이를 약물로 운전을 했다. 그리고 구불구불한 구간을 빠져나오고 난 뒤 잠시 차를 세우고 시원한 공기를 마신다. 시원한 공기가 콧속을 때린다. 그러나 알싸한 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시체가 썩을 때 나는 불쾌한 냄새가 짜증나게 한다. 주변을 둘러 살펴본다. 그러나 시체 썩는 냄새라 날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상부는 생각했다.

혹시, 그 여자의 냄새인가?, 내가 자기한테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한 건가?, 빨리 와서 나를 구해달라는 무언의 명령인가?’

서둘러 차를 타고 시간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에는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시간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다른 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이라 나이를 천천히 먹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시간 마을에서 최고의 힐링을 누리고 가세요!’

15년 전에는 볼 수 없었다.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시간 마을에는 많은 변화가 있던 것임을 짐작했다. 차를 더 몰아 개울을 가로지르는 배다리라는 곳을 지난다. 그리고 윗마을로 진입한다. 거기서부터는 15년 전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당시 여자를 유기하기 위해 차를 세워두었던 곳도 그대로 있었다. 상부는 예전처럼 차를 세운다. 이번에는 그때와는 다른 차이다. 여자의 피가 흥건했던 차는 폐차 된 지 오래고 최근에 새로 장만한 고급 승용차다. 시간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친 고급스러움이었다. 차를 다 세운 후 앞으로 올라간다. 여자를 버릴 때는 없었던 철조망 앞을 가로막는다. 아래로 철조망을 따라 내려간다. 다행히 울타리에 구멍이 나 있었다. 야생짐승이 와서 녹슨 부분을 물어뜯어 생긴 구멍이다. 몸을 최대한 바닥에 붙인 상태로 기어들어 간다. 땅에서 새어 나오는 습기가 배를 적힌다. 너무 축축하고 차갑다. 여자를 버릴 때 느꼈던 따뜻한 피와는 다른 차가운 물이었다. 몸을 다 빼낸 상부는 옆에 있던 마른 나뭇잎으로 물기를 닦아 낸다. 그리고 천천히 여자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간다. 여자가 잠들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여자를 버리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여자를 잡아 당기듯 낚아챈 것을 보았기 때문에 여자의 시체가 땅바닥 얕은 곳에 묻혀 있을 것이라만 생각했지 실제도 묻혀 있는 것을 보고 도망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부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딘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지고 왔던 술과 떡 등 제사 음식을 바닥에 뿌리고는 영혼을 달래기 위한 주문을 외운다.

가엽게 떠난 젊은 여자여, 인제 그만 이승을 떠나 그대가 가야 할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잘 못 했습니다. 그대의 노여움을 제가 다 안고 더 성실히 살아가겠습니다. 저도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남은 생에 반성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노여움 푸시고 편안히 잠드소서.’고 통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주문을 다 읽고 난 뒤 라이터 불로 종이를 태워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잠시 뒤 밝은 빛과 함께 여자의 영혼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강한 폭풍이 몰아친다.

인제 그만 떠나 그거라, 여기는 당신이 더 찾아와서는 안 되는 곳이다. 너무나도 강한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위험한 곳이다. 그대를 용서할 테니 어서 가서 성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해라!’ 여자의 영혼이 상부에게 말했다. 상부는 고개를 끄덕인다. 영혼이 사라지고 강하게 몰아치던 바람은 이내 잠잠해지고 평온을 되찾는다. 상부는 차로 되돌아 왔다. 시간이 꾀 흐른듯하지만 시계를 보니 5분 정도 흘렀다.

‘5분 동안 이일이 일어난 거라고?’스스로 묻는다. 그러나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주 강력한 힘은 무엇이고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간 것 같은 느낌은 무엇인지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도 생각에만 머물 뿐이다. 이유에 대한 답이 없는 끊임없는 질문과도 같았다. 상부는 여자의 영혼을 달랬다는 것에서 위안으로 삼는다. 자신을 괴롭혔던 악몽의 시간에서 벗어나 이제는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며 차에 올랐다.

      

8. 강력한 중력의 세계 

    인재와 나는 주변을 살펴본다. 여기에 떨어졌을 때 느껴지던 강력한 힘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몸이 적응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배운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한 것이다. 몸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지지 않으니 움직이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나는 수월해진 몸을 이용해 바다에서 낚시할 수 있는 작살을 만들기로 했다. 집을 나올 때 싸 온 간식이 모두 떨어져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가방에 있던 휴대용 칼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날카롭게 깎았다. 집 근처에서는 볼 수 없는 열대지방 나무였다. 그리고 보니 열대지방 나무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시골 사는 나로서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바다가 펼쳐지고 우거진 열대 우림이 있는 곳이 신기했다. 날카로운 칼이 완성되었다. 나는 시험 삼아 물렁물렁한 땅바닥에 던져본다. 작살을 깊숙이 박혔다.

이 정도면 됐어날카로운 작살을 보니 뿌듯했다.

인재야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보자!”나는 재촉하듯 말했다.

좋아, 큰 물고기 잡아 보자고.” 인재도 고기 잡을 생각에 들떴다.

바닷물 속으로 잠수를 했다. 신비로운 세계였다.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중 맛있게 보이는 참돔 한 마리가 보였다. 어머니를 따라 수산물 시장에 갔을 때 보던 물고기라 생김새를 잘 알고 있었다. 고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작살을 던졌다. 작살은 고기의 배를 관통했다. 시뻘건 피가 시야를 가렸다. 피 냄새를 맡고 위험한 물고기가 오기 전에 서둘러 물 밖으로 나갔다. 물고기는 숨이 간당간당했다. 나는 바닥에 내던져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인재도 뒤이어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물 밖으로 올라온다. 물고기는 처음 보는 종류다.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참돔 맛은 먹어봐서 알고 있었다. 인재가 잡아 온 고기 맛을 먼저 보고 싶었다. 서둘러 장작불을 피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을 보며 고기 손질을 시작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여기에 떨어지고 나서 먹은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었다. 나의 고기 손질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장작불도 활활 타올랐다.

와 정말 맛있겠다. 냄새부터가 죽이는데.” 구워지는 고기를 보며 나와 인재는 군침을 흘렸다.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참돔과 정체모를 고기가 다 구워졌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진한 육즙이 터졌다. 신비로운 맛이었다. 집에서 프라이팬에 구워 먹던 고등어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고기 비늘과 뼈까지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고기는 금세 자취를 감췄다. 인재가 워낙 큰 물고기를 잡아 와서 허기를 달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맛있게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못 돌아간다면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밀려 왔다. 접근 제한 구역이 왜 접근 제한 구역이었는지 생각해봤다. ‘우리처럼 이렇게 조난 당할까봐?’ 생각하다 보니 잠이 쏟아진다. 인재와 나는 나무 그늘 아래 바나나 잎으로 돗자리를 만들어 지친 몸을 눕힌다. 그리고 걱정하던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바닷바람이 우리의 볼에 살랑살랑 스친다.

주르륵, 주르륵 비가 내린다. 나는 인재를 깨워 동굴 속으로 피신한다. 동굴 속은 고용했다. 평온했다. 여기에 오기 전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이었다.

인재야, 밖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자, 분명 나가는 곳이 있을 거야!” 나는 여기서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었던 시간 마을과는 너무나도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남극대륙 근처에 묻혀있는 아틀란티스와 같이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 같았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땅으로 잡아당겨 지는 강한 힘이 느껴지는 곳,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 어떤 세상일까?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오랫동안 있고 싶은 곳은 아니다. 나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동굴 바깥은 바다이니 동굴 안으로 더 들어가 보자. 내가 TV에서 봤는데, 동굴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반대편 출구가 보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 인재는 동굴 안으로 계속 들어가 보는 것을 권했다.

좋아 그러면 그렇게 해보자나도 동의했다.

가방에서 손전등을 켜고 앞으로 나가본다. 신비로운 동굴이다. 과학 교과서에서 볼 법한 동물이 보였다.

과거로 돌아온 것인가?’ 그렇다. 나는 우리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한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이다. 빛의 속도보다 큰 속도로 떨어진 듯하다. 그래야만 시간이 거꾸로 흘러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 시간에 들은 지식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접근 제한 구역 내에 무단 침입하고 발을 디뎠을 때 강한 힘으로 빨려 들어가듯 떨어진 것이 이해가 되었다. 중력이 너무 강해서 떨어지는 속도가 매우 큰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 팽창이 일어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때문이다.

이제 강한 중력이 만들어졌던 이곳을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굴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간다.

동물의 흔적보다 신비로운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다양한 광물이었다. 심지어 다이아몬드도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 한 움큼 집어넣는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아주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작은 출구가 보였다. 후다닥 뛰어갔다. 그리고 밖을 보았다. 밖은 우리가 무단 침입했던 접근 제한 구역과 너무나도 닮은,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는 숲이었다. 손으로 돌멩이를 걷어내고 나는 인재와 바깥으로 나온다. 그 순간, 출구가 닫히고 우리가 지나온 동굴은 자취를 감추었다. 동굴과 바다가 사라진 것이다.

뭐지?, 동굴이 사라졌네!” 너무 놀라워 뒷걸음질 쳤다.

이곳은 우리의 움직임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우리가 제대로 길을 찾으면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숲으로 갔다. 완벽히 재연해 놓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같은 장소였다. 인재와 함께 발을 내디뎠던 곳을 찾는다. 있었다. 똑같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발을 내디딘다. 이번에는 빠른 속도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의식을 잃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깊은 생각에 빠진다.

      

9. 수색 작전의 종료 

   접근 제한 구역 안으로 아이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확신한 경찰 대장은 몇 날 며칠째 수색을 벌였으나 더 이상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살해되었을 가능성도 작다고 보았다. 살인 사건으로 볼 정황도 없어서 우선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방법을 택했다. 워낙 오지 마을이라 주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단 1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근 들어서야 범인이 밝혀졌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봤을 때 범죄 발생률이 가장 최저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서 살인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수색 작전을 중단한 뒤 대장은 접근 제한 구역의 된 이유를 생각했다. 그래서 관련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냈다.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한 곳, 유난히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이상한 곳이라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시가는 계속 이어진다. ‘이곳은 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실종이 많이 일어난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관련 당국에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사실을 제보한 사람들 때문에 과학자도 참여했다. 그리고 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지 밝혀낸다. 중력의 세기가 너무 강해서 느리게 가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강한 중력이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만든 것이다. 그 후 나라에서는 이곳을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는 접근 제한 구역으로 정하게 된다. 실종사건이 중력의 세기가 강한 것과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가는 것하고 연관되어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기사는 그렇게 끝나고 있다. 과학적 지식이 없던 대장은 기사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접근 제한 구역이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0. 검거 

   여자의 영혼을 달래주고 돌아온 뒤 상부는 경찰서에 자수한다. 예전 실종된 여자를 차로 치어 죽인 법인이라고. 영혼을 달래주면서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여자의 슬픈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악몽에서 벗어났다. 여자의 영혼이 자신을 용서했듯, 나도 법 앞에 서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여자를 죽인 후 어떻게 했습니까?”

왜 바로 자수하지 않았나요?”

지금 자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자세히 대답했다. “여자는 우연히 차로 치어 죽인 것이고 너무 무서워 시간 마을 주변에다 유기 했으며 유기 후 악몽과 고통에 시달리다 시신을 유기한 곳에 가서 위로했다.”

그러면 접근 제한 구역 안에다가 유기한 것인가요?” 기자가 물었다.

그 당시에는 접근 제한 구역이 아니었으나 나중에 제가 시신을 유기한 곳에 접근 제한 구역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상부는 대답한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상부는 구치소로 이송되었다. 이제 판결만 바랄 뿐이다.

 

11. 귀가 

   눈을 떴다. 익숙한 곳이다. 접근 제한 구역이었다. 나는 인재를 깨웠다. 그리고서는 접근 제한 구역으로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기 시작한다. 누군가 수색을 했는지 주변 풀은 다 쓰러져 있었다. 우리를 찾았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울타리에 가까워질수록 집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졌다. 울타리에 다다랐다. 여기로 넘어오기 위해 올랐던 나무도 그대로 있었다. 울타리를 기어올라 윗마을로 내려간다.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몸은 너무나 가벼웠다. 마치 달 위에서 닐 암스트롱이 두둥실 점프할 때의 가벼움처럼.  서로 부모님께 혼날 걱정을 뒤로하고 인재와 배다리 근처에서 헤어진다. 누가 볼까 봐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간다.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리고 누웠다. 지난 일들이 다 꿈만 같았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 강한 중력 등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나중에 인재와 다시 접근 제한 구역을 찾았을 때는 지난번과 같은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강한 중력에 의해 발을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이상한 현상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우리의 실종 사건은 무사히 집으로 귀가한 것으로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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