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
“요 근방에 인문계 고등학교 있는 거 아시죠? 거기서 여고생 하나가 자살했답니다.”
나는 입으로 가져갔던 믹스 커피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달달한 식후 커피가 씁쓸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상하게도 늦잠을 자 지각을 한 날이었다. 언제나 일등으로 출근해 서를 정리하고 조용한 공기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던 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왁자한 출근에 기분이 이상했다. 게다가 오늘 처음으로 보고된 사건이 간밤에 술 취한 사람들의 이야기 따위가 아니라 이런 사건이라는 것도 어딘가 찝찝했다. 게다가 그 사건이 내 담당사건이라는 것도. 아침부터 묘하게 풀리는 하루였다.
우리 서에 나보다 일 년 정도 늦게 들어온 후배가 사건을 정리한 파일을 가져다주었다. 파일 앞에 ‘학교폭력’이라고 적힌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나는 믹스커피가 담긴 하얀 종이컵 내려놓고 천천히 파일을 읽었다. 이름은 신이현. 18세.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애였다.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사건을 학교폭력에 초점을 맞춰 수사해 달라고 한 것도 어머니였다. 파일 위쪽에 교복을 입고 찍은 증명사진이 클립에 끼워져 있었다. 앞머리를 길게 기른 검은 머리에 슬며시 올린 입꼬리가 단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친구가 많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뭐, 그게 아니니까 자살을 했을 테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쓴 입맛을 삼키며 파일을 읽다가 조금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할머니가 유명한 무당이라고?”
“아,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꽤 유명한 무당이었나 봐요.”
“얘도 그랬을 가능성은 없고?”
후배가 멋쩍게 씩 웃었다.
“그건 이제 학교 가 봐야 알겠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가보자고. 학교에는 연락해 뒀지?”
“집에 먼저 들리지 않으시고요?”
후배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학교 먼저 가자.”
후배가 손을 이마에 대며 빠릿한 모양새를 만들었다. 내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종이컵을 들어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종이컵을 구겨버렸다. 경찰서의 커다란 유리문에 햇살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날이 참 좋았다.
“평소에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조용하고… 평소에도 다니던 애들하고만 다녔어요. 저도 친해지기 어렵더라고요. 워낙 숫기도 없고, 특이한 애라서…”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선생이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신이현의 담임교사였다. 나는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인 종이컵을 만지작거렸다. 또 믹스커피였다. 입이 달아지려했으나 예의상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특이하다면, 어떤 점이?”
여선생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 사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여선생은 망설이면서 꾸역꾸역 대답을 했다.
“이현이네 할머님이 유명한 무당이신데, 그 애도 약간… 그런 쪽에 뭔가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이런저런 소문은 많았는데-물론 대부분 헛소문이었지만요-아마 귀신을 본다는 건 사실이었을 거예요. 그러다보니 그 후에도 애들이 꺼려해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여선생은 입에 담기 싫은 말을 하는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얼마 전에… 누름 굿을 받았거든요.”
내가 눈썹을 치켜 올리자 여선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내림 못 받게 하는, 억누르는 굿이요. 귀신을 봤을 거라는 것도 이것 때문에 추측해보는 거죠.”
나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못 봤습니까? 귀신이라던가… 그런 걸요.”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우울한 낯빛이었다.
“그건 저도 모르죠.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믿을 수 밖에 더 있나요.”
하긴, 그렇다. 정말 영적인 능력이 있었는지는 본인 말고 누가 더 알겠는가.
나는 신이현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선생도 더 말할 것이 없는 눈치여서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 친했다는 애들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좀 그렇고… 어, 내일 정도면 어떨까 싶은데요.”
여선생은 군말 없이 알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뒤 학교를 빠져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후배는 묘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학생들에게 신이현에 대해 물어보고 온 참이었다.
“뭐 좀 알아낸 건 있어?”
학교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를 타며 내가 물었다. 후배는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별 건 없어요. 그냥 음침한 애였다는 애들도 있고, 애는 괜찮아 보이는데 다가가기 어려운 애라고 하는 애들도 있고. 말이 다 다르던데요. 대부분 안 친해서 잘 모르겠다는 식이었어요. 신이현이 친하게 지냈다는 애들이 네 명 있는데, 걔들 말고는 신이현에 대해서 다들 잘 모를 거라고…. 걔들을 파 봐야죠. 팀장님은 뭐 좀 알아내셨어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일 그 친구라는 애들을 만나봐야 알 것 같다.”
후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창 너머에 햇살을 받은 학교 건물이 보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보이는 커튼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평화로운 움직임이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다음으로 간 곳은 신이현의 집이었다. 이미 증거가 될 만한 물건들은 거의 다 챙겨 놓은 후였다. 나는 우울한 얼굴로 서 있는 신이현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 후 신이현의 방으로 들어갔다. 평범했다. 방울이나 대도(大刀)같은 물건은 없었다. 문 앞에 붙어 있는 부적도 여느 집에서나 붙여놓는 건강을 비는 부적 정도로 밖엔 안 보였다.
내가 옆에 서 있는 순경에게 물었다.
“뭐 발견된 거 있나?”
아직 군인 티를 못 벗은 순경이 경례를 한 후 깍듯하게 대답했다.
“딱히 눈에 띄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집 안을 다 둘러봤지만 발견되는 건 없었다. 무엇보다 유서가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보통 자살을 하면 속죄의 의미든, 복수의 의미든 유서를 남기는 게 보통인데, 그게 없었다. 속죄도, 복수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수사 이튿날, 다시 학교에 가자 신이현의 담임교사가 아이들을 소개해주었다. 이지윤, 김지환, 박도현, 권승재. 평소 신이현과 가장 친했다는 네 명이었다.
아이들은 교무실로 불려온 게 불편한 건지, 아니면 내 존재가 껄끄러운 건지 하나같이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뭔가 찔려서가 아니라 그냥 불편해서였다. 척 보기에도 참 착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자, 그럼 누가 먼저 나랑 이야기를 해볼까.”
간단히 소개를 마친 내가 짐짓 쾌활하게 물었다.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여선생은 내가 면담을 하러 온 거라고 했지만 말이 면담이지, 사실 취조나 다름없었다. 우선 남자아이들부터 시작할까, 생각하던 순간 누군가 손을 들었다.
“제가 먼저 해도 될까요?”
손을 든 건 여학생 중 한명이었다. 머리가 허리까지 오도록 길고, 눈동자가 맑았다. 차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아이들에게 교실로 돌아가 있으라고 말했다. 여학생은 내 뒤를 따라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실은 좁았다. 둘이 앉아 있는데도 그다지 널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딱 의자 수만큼 6명이 들어오고 나면 미어터지지 않을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손을 든 여학생은 조용히 내 앞에 앉아있었다. 내가 미리 받아놓았던 생활기록부를 넘기며 말했다.
“이름이?”
“이지윤이요.”
목소리가 한결같이 차분했다. 표정도 덤덤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되려 내가 더 떨리는 것 같았다.
“신이현과는 언제부터 친구였니?”
“중학생 때부터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거든요.”
나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이지윤은 동요 없이 둘이 친해진 과정, 다른 아이들,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가끔 좀… 섬뜩하긴 했지만, 이현이는 착했어요. 소심하지도 않았고, 남을 제대로 배려할 줄 아는 애였거든요.”
문득 신이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림굿은 이현이의 의지로 받은 게 맞아요. 물론 저희도 받으라고 했지만, 가장 원했던 건 본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후로는 저희도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확실히 뭔가 달라지긴 했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는 느낌이었죠.”
“평소와 비교해서 어떤 점이 가장 눈에 띄었는지 기억나니?”
방금까지 술술 잘만 대답하던 이지윤이 이 질문에 머뭇거렸다. 할 말이 없어 고민한다기보단 대답을 해야 하는 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좀…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힐끔. 그녀가 내 눈을 쳐다봤다. 나는 애써 그 눈빛을 무시하며 다음 질문을 고르는 척 했다.
“뭔가 남긴 건 없고?”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학교 폭력일 가능성은 있니?”
별로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이지윤의 대답도 즉각적이었다.
“아뇨.”
단호하게 말하는 이지윤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이지윤의 얼굴을 마주보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교실로 돌아가 보라고 했다.
이지윤이 나가자 상담실은 텅 빈 것 같았다. 둘만 있어도 비좁아보이던 상담실이 혼자 남아있으려니 다른 방들이 그렇듯 썰렁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착한 애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확실히 학교폭력으로 가져갈 사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애들에게 굳이 아픈 기억을 꺼내 입 밖으로 내게 하는 게 맞는 일일까…
한숨이 나왔다. 파일 위쪽에 꽂힌 신이현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파일을 넘겨버렸다.
면담은 계속됐다. 두 번째는 권승재였다.
평범했다.-나도 내가 뭘 기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실망과 안도가 동시에 등 뒤를 덮쳤다. 옆집 고등학생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말투에서 속이 깊다는 게 느껴졌다. 신이현 이야기를 하는 게 썩 즐거워보이지는 않았지만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줬다.
“뭔가 남기고 간 건 없고?”
그는 우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있었으면 좋았겠죠.”
“학교폭력일 가능성은 없니?”
역시 즉각적인 대답이 날아왔다.
“전혀요. 친구는 적었지만 학교폭력은…”
권승재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름굿을 받은 후에 뭔가 달라진 점은 없었니?”
권승재는 잠시 생각하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평소보다 더 알기 어려워졌다고 할까요.”
그 말을 하며 권승재는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만 어색하게 올라간, 미안하다는 얼굴의 미소였다.
나는 고맙다고 말한 뒤 권승재를 교실로 돌려보냈다. 그리곤 나도 서로 돌아갈 시간이 돼서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신이현의 서류와 면담 내용을 적은 종이를 좀 더 살펴본 뒤 자리에 누웠다. 몇 번이고 봤지만 도움이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신이현이 왜 죽었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학교폭력이라기엔 너무도 좋은 아이들이 있고, 괴롭힘을 증명할 만한 것도 없었다. 학교 애들도 괴롭힘에 시달리던 애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뭔가 숨기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었다. 그저 무관심할 뿐이었다. 신이현은, 뭐랄까…
신이현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마음이 무겁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밤잠을 설쳤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신이현의 친구들이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만큼, 어느 시구에나 나올 것처럼 올곧은 아이들이었다. 분명 말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건 그들의 괴로움 때문일 것 같아 굳이 캐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머릿속을 비우려고 노력하며 눈을 감았다. 억지로 잠에 드는 것은 생각보다 괴로웠다.
깊이 잠을 자지 못해 몽롱하게 깨어있는 상태가 반복됐다. 잠에 들었다가도, 수업시간에 졸다 일어나는 것처럼 갑자기 눈이 떠지고, 다시 잠에 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창밖은 고요했고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몽롱하게 깨어난 일이 몇 번째인지 모르게 되었을 때쯤, 우연인가 싶을 정도로 문득, 발견했다.
검은 머리칼이 커튼처럼 나부꼈다. 흐린 광경으로 보이는 얼굴이 부드럽게 나를 바라봤다. 단정히 교복을 차려입은, 너무도 평범해 보여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신이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했던 얼굴이 날 마주봤다. 마주친 눈동자가 검었다. 그 익숙함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가 몸을 돌려 나를 마주봤다. 담담한 얼굴이었다. 나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른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은 달아나버린 게 틀림없었다. 아니, 지금 내가 잠들어 있는 건가? 내가 멍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뚫어져라 쳐다보게 만드는, 어딘가 관능적으로 보이는 미소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듯한 그 미소를 바라보며, 공기 중에 우아하게 흩어지는 머리칼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면담은 박도현이었는데, 가장 친구의 죽음을 맞은 사람 같았다. 턱 언저리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는 단발머리가 이지윤과는 정반대였다.
“많이 슬프니?”
목소리에 기운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물었다. 그 말에 박도현은 고개를 조금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고 묻는 얼굴도, 힐난하는 눈빛도 아니었다. 그저 왜 그런 걸 묻는 거냐고, 순수하게 궁금해 하는 얼굴이었다. 내가 별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박도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조용한 대답이었다.
박도현 역시 특별한 건 없었다. 마지막은 김지환이었다.
“걔가 뭘 보든 우린 별로 신경 안 썼어요.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도움이 될 때도 있었고요. 전에는 다른 소리가 들리는 걸 힘들어했는데, 굿을 받은 후에는 뭔가… 멍해졌다고 할까요. 내림굿을 받기 전에는 다른 소리를 안 들으려고 우리한테 더 신경 쓴 거였죠.”
시니컬한 분위기의 남학생이었다. 짧게 쳐올린 머리가 짙은 눈썹과 잘 어울렸다. 꽤 인기 있을 법한 인상이었다. 내가 물었다.
“학교폭력일 가능성은 없니?”
그의 짙은 눈썹 사이로 주름이 생겼다.
“학교폭력 아니에요.”
그리곤 불쾌한 어조로 덧붙였다.
“학교폭력이었으면 우리가 걔 친구겠어요? 그리고 우리 학교 애들은 무서워서 신이현 못 괴롭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그냥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속이 꽉꽉 막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신이현을 본 게 언제지?”
“그 날 학교에서요. 애들이 학원가는 날이어서 학교 끝나고 바로 헤어졌어요. 그게 마지막이에요.”
목소리가 침울했다. 그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냥 쳐다본다기보단 관찰하는 것 같았다. 나도 잠시 그를 바라봤다.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하는 눈빛이 마주치고, 이윽고 시선이 떨어졌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면담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신이현의 교실을 다시 둘러보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이제 이 학교도 한동안 올 일이 없을 것이다.
이층 계단을 오르는 데 학교장이 날 불러 세웠다. 마치 날 기다렸다는 듯, 교장실 앞 계단에 서 있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검은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듬성듬성 하얀, 중후한 분위기의 중년 남성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차는 녹차를 부탁했다. 이윽고 티백을 담근 종이컵을 든 교장이 상석에 앉았다. 내 앞에 뜨거운 녹차가 놓였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교장은 태연한 체하며 입을 열었다.
“아, 별건 아닙니다. 음… 수사는 잘 되고 계신가요?”
“예, 뭐.”
“뭔가 발견된 게 있습니까?”
“특별한 건 아직 없습니다.”
나는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대화는 주제를 피해가는 듯 맥이 없었다. 사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교장은 이런 일이 적성에 안 맞는 듯 했다. 그는 입을 계속 우물거릴 뿐 무어라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으시면 그만 가볼까요?”
내가 묻자 그는 손을 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제야 떨어지지 않던 입이 떨어졌다.
“혹여 우리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만한 게 발견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럽니다… 허허.”
민망한 웃음이 씁쓸하게 교장실 안을 울렸다.
“우리 학생들이야 워낙 착하니까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일 의심스러운 것이 발견된다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교장실을 나왔다. 녹차를 마신 속이 메슥거렸다.
신이현은 2반이었다. 저녁시간의 교실 복도는 조용했다. 애들 사이에 어색하게 서서 괜히 눈치 보게 만드는 것보단 나았다. 교실에도 아무도 없기를 바랐다.
“아.”
눈이 마주치자 이지윤이 먼저 내뱉었다. 놀란 것치곤 담담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면담 이후 첫 만남이었다.
“어, 그래.”
내가 다가가자 신이현의 자리에 서 있던 이지윤이 자리를 비켜줬다. 내가 책상 속, 책상 위의 낙서-없었다-를 보고 사물함까지 열어보는 과정을 이지윤은 말없이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만 가야겠다싶어 몸을 일으키는데 이지윤이 조용히 물었다.
“뭐 찾으세요?”
내가 고개를 돌려 이지윤을 바라봤다. 늘 그렇듯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수사 기밀이야.”
이지윤이 픽 웃었다. 나는 몸을 돌려 나가려다가, 문득 웃는 얼굴을 처음 본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질문이 튀어나왔다.
“넌 밥 안 먹어?”
이지윤은 의외라는 얼굴로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이어트 중이라서요.”
아, 그래. 무미건조한 말을 끝으로 나는 교실을 나왔다.
그 후 며칠은 평범했다. 신이현의 어머니에게 학교폭력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을 전하고-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무덤덤한 반응이 돌아왔다-자살을 한 이유는 찾지 못했으나 사회적인 문제는 없어 보여서 적당히 수사를 마무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짓는 건 취향이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윗선에서도 적당히 마무리하고 다른 사건에 집중하라고 말이 많았다. 자기들이 수사하는 것도 아니면서 참견이 참 많다.
신이현의 사건 파일을 정리하는데 문득 유서가 없다는 게 생각이 났다. 그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끝난 사건을 더 파헤쳐봐야 내 힘만 빠질 뿐이었다. 파일은 더 정리할 것도 없이 빈약했다. 시원하지 못한 텁텁한 마음도 같이 덮어버렸다. 벌써 밤이었다. 이제 슬슬 퇴근이나 할까. 무거운 몸을 일으켜 철제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서에 남아 있던 후배들이 피곤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밤공기가 생각보다 찼다. 4월의 마지막 날. 아직 겨울이 남아있었다. 서둘러 차에 타려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녹색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박재헌 형사님 맞으신가요?”
상대의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했다.
“네, 제가 박재헌입니다.”
상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한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권승재입니다. 잠시 만나 뵙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한적한 동네 놀이터였다. 그들은 놀이터 옆에 선 정자에 앉아있었다. 다들 사복을 입은 채였다. 교복을 벗은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다가가자 모두 일어나 인사를 했다. 나는 손을 저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밤의 놀이터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둡게 잠긴 놀이기구들과 고요한 공기 중에 울리는 모래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 흙냄새와 폐 속으로 스며드는 서늘한 공기. 그 차분한 어둠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그늘진 얼굴 위에 눈동자만이 반짝였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승재가 말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래서 할 말이 뭐지?”
아이들은 잠시 침묵했다. 서로 눈치를 보는 것 같았으나 이내 이지윤이 입을 열었다.
“드릴게 있어요. 수사하시는데 꼭 필요한 거예요.”
나는 말없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지윤은 잠시 망설이는 듯 했고,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이현이 일기장이에요.”
박도현은 가방에서 가죽으로 된 작은 다이어리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박도현을 바라보며 일기장을 받았다. 표지가 반질반질하게 닳은, 꽤 오래 쓴 듯한 일기장이었다. 첫 장을 펼쳤다.
3월 16일
세상이 조용하다. 애들이랑 말할 때는 애들 목소리 밖에 안 들리고, 침대에 누우면 시계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밖에 안 들린다. 원래 세상이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나 싶다.
3월 19일
집에서 혼자 티비를 보는데 문득 소름이 돋았다. 티비 속에서는 저렇게 시끄럽게 떠드는데, 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이 온통 텅 비어버린 것 같다. 그들이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뭐야?”
내가 중얼거리자 권승재가 말했다.
“내림굿을 받고 나서부터 이현이가 쓴 일기예요.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저희가 일기를 써보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진짜 쓰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죽기 전날에 도현이한테 그걸 줬어요.”
나는 말없이 일기를 몇 장 더 넘겼다.
3월 23일
혼잣말을 하다가 문득 이젠 그들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공허함과 상실감이 동시에 다가온다. 총에 맞은 것처럼 이리저리 찢겨진 구멍이 있는 것 같다. 무엇도 들어오지 못하고 통과해버리게 만드는….
3월 27일
아아, 지겹다. 터질 듯한 공허함. 정말 내가 그들을 그리워하는 걸까? 나는 그들을 좋아한 적도 없고, 그들은 언제나 내게 소음일 뿐이었는데. 그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도, 나는 왜 이토록 이 공허함을 견딜 수가 없는 걸까. 단 한 순간도 그들을 친구나, 가족이나, 호의적인 존재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마저도 의심스럽다.
4월 1일
애들이 나를 보는 게 느껴진다. 어리둥절해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질 것처럼, 두려움과 애정이 뒤섞인 눈이다. 전과 다름없이 정말로 좋은 아이들이다. 변한 건 나뿐이었다. 그런 내가 그 눈을 보고 미소를 짓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지?”
“형사님을 더 속이고 싶지 않아서요.”
권승재는 잠시 사이를 두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게 없으면 수사도 의미가 없으니까요. 학교 분위기도 마음에 안 들고….”
이지윤이 조용히 말했다.
“이현이는 학교 폭력 같은 걸로 죽은 게 아니에요. 형사님도 아시잖아요.”
이제야 나는 이 애들이 내게 왜 이 일기장을 주는 건지 이해가 됐다. 나는 멍하니 그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다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문득 이런 친구들을 가진 신이현이 부러워졌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다. 고맙다.”
그들도 내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한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일기를 다 읽었다.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일기는 대체로 짧았고, 내용은 생각보다 안타까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신이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맞는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일기를 다 읽고 나니 몸도, 정신도 피곤해서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밤, 다시 신이현이 나타났다. 이번엔 내 옆에 앉아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도 나를 바라봤다. 싱긋, 미소를 지었다.
“꿈인가?”
우습게도 그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 신이현이 대답했다.
“글쎄요.”
“신이현이지?”
“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밤공기에 신이현의 머리칼을 하늘하늘 흔들렸다. 창이 열려 있었나… 아니, 그게 지금 중요한가. 신이현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자살을 했어?”
질문은 차가웠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담담했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숨소리만으로도 깨질 듯한 가벼운 침묵. 내가 입을 열었다.
“그들이 소중했나?”
그들이 누구를 말하는 지는 신이현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원하는 말을 들은 것처럼 더욱 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답은 짧았다.
“아뇨.”
긴 머리채가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그녀의 한쪽 눈이 반쯤 가려지고 콧날이 두드러져보였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넌… 평범해 보이네.”
오래된 감상이었다. 그러나 입 밖에 낸 건 처음이었다. 그 말에 신이현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말했다. 목소리가 처음으로 자조적이었다.
“전, 줄곧 평범해지고 싶었는데…”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신이현을 여전히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 담긴 내 모습이 검었다. 신이현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친구에게 지어줄 법한 단순하고 수수한 미소였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잠이 몰려와 의식을 덮쳤다.
수사가 끝났다. 학교폭력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공표했다. 이유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여느 사소한 사건들처럼 무난하고, 평범했다.
일기는 여전히 내게 있다. 돌려주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기회가 없었달까. 그렇지만 그걸 다시 꺼내 읽은 적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일기가 여전히 잉크로 새긴 듯, 뇌리에 남아 있다.
4월 24일
그들이 소중했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나로 만들어 준 거였을까. 줄곧 평범해지고 싶었는데. 그러나 평범해진다는 건 다른 사람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일 뿐, 결국 나는 그 누구도 아니었다. 우습게도,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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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임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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