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변

by 멍토로 posted Dec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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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변



간밤에 더 기온이 내려갔는지 으슬으슬 찬 기운에 잠에서 깼다. 전기요의 스위치를 확인해보니 역시 전원이 꺼져있다. 처음 전기매트를 구매할 때 만원인가 2만원을 더 주고 자동 off 기능이 있는 것을 구매했더랬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전원이 꺼지니 화재예방을 위해서도 그게 좋을 거 같았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 했는데 어쩌다보니 간밤에 추워서 깨지 않으려면 자기 전에 전원을 한 번 더 껏다 켜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긴 듯하다. 아니면 초저녁잠은 피하는 수 밖에..

그때 방 문 너머 익숙한 트로트의 음율이 적막을 깨고 요란하게 들려온다. 저 가수가 장윤정이였던가? 문득 의문이 드는 순간,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왜요. 그러니깐 왜 전화를 안받아요?.....뭐요?.....핸드폰도 뺏겼어? 하이고~ 아주 사람잡네...

차뺏고 폰뺏고 아주 난리났네...근데 그걸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어휴 증말...그러니깐 맨날 그렇게 당하지...“

 

아무래도 상대는 엄마가 요즘 만난다는 실장아저씨인 듯하다. 엄마가 실장 아저씨를 만난 건 2년 전이다. 5년 전에 아빠가 빚만 남긴 채 어의 없이 죽어버리자, 엄마는 그동안 자신의 인생이 억울했는지 1년을 누워 지냈다. 매일 먹고 자고 누워 있다 보니 엄마의 몸은 점점 불어갔다. 몸집이 커지면서 진화하는 몬스터를 보듯 나는 엄마가 저대로 불고 불어서 터져버리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틈을 보다 엄마를 데리고 인근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운명처럼 산꼭대기에 있는 조용한 암사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날부터 엄마는 주구장창 그 절로 향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엄마는 점점 몸의 바람이 빠지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 이였다. 한 번의 진화를 거듭한 엄마는 더욱 강력한 필살기를 품은 몬스터처럼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았다. 그래 원래 진화를 한 이후에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어. 전투를 끝마칠수록 레벨 업 되는 몬스터처럼 엄마는 점점 진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목주를 시작으로 불교서적, 향초, 향로, 목탁, 승복 같은 불교용품들이 엄마의 무기가 되어 하나 둘씩 엄마의 방을 채워갔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는 내 머리통만한 문어가 들어가 있는 해물 탕을 사주면서 그 실장아저씨를 내게 소개했다. 함께 공부하고 있는 ‘도반’이라고도 했으며 어디 조그만 목재회사의 실장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어색한 몇 마디 인사말이 오가고 실장아저씨가 다소 겸연쩍은 미소를 머금으며 쓰고 왔던 비니를 벗자 해물 탕 속의 문어처럼 반질반질하게 혈색이 좋은 민머리가 나타났다.

나는 어쩐지 좀 웃음이 나기도 해서 해물 탕으로 시선을 옮겨 벌겋게 익고 있는 문어다리를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이제 막 7개를 세고 있던 찰나 서빙 아주머니가 가위를 들고 오더니 싹둑싹둑 힘 좋게 문어다리를 하나씩 잘라냈다. 아직 하나를 못 찾았는데...가위에 난도질되어 여기저기 흩어진 문어다리를 주시하며 나는 마저 찾지 못한 문어다리 한 개를 계속해서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초반에 수줍은 기색을 보이던 아저씨는 소주 한잔이 들어가자 이상하게 말이 많아졌다. 생전에 우리 아버지도 술만 마시면 말이 참 많았는데...그래서 그런지 나는 말이 많은 사람도 별로고 술을 먹는 사람도 별로이지만 술을 먹고 말이 많아진 사람이 제일 싫었다. 아저씨는 나의 엄마가 불쌍한 사람이라며 연신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래요. 우리 엄마는 불쌍한 사람 이예요. 평생 무능력하고 술만 먹는 남자를 만나 소처럼 일만 했고 죽고 나서도 그가 남긴 건 온갖 병원비며 도박 빚 이였어요. 그건 아빠가 너무했죠. 그래요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자예요. 라고 같이 응수를 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실장아저씨는 내게 실장아저씨가 되었다. 별다른 호칭이 떠오르지도, 그렇다고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뭐해서 나는 그를 실장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리고 엄마는 주말이면 실장아저씨와 전국 팔도에 있는 절을 찾아다니며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나는 퍽 실장아저씨가 딱히 싫은 이유도 없고 집을 나갈 때면 신나서 짐을 꾸리는 엄마의 모습을 본 뒤로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외출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실장아저씨에게 아내가 있고 건장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엄마의 외출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불안한 기색을 엿 보일 때면 엄마는 그냥 같이 공부하는 사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요사이 실장아저씨는 자신의 아내한테 엄마의 존재를 들킨 거 같았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주말에 집에만 있는 게 벌써 3주째다. 엄마는 전화를 끊고는 짜증이 났는지 벌컥 내 방을 열고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내 방을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 방에 어지러워진 물건들이 꼴 보기 싫은 건지, 아니면 내 몰골이 싫은 건지, 아님 내 존재 자체가 싫은 건지...연신 이것도 치우고 저것도 치우고 하며 목적어는 수많은 고유명사들을 가리켰지만 눈빛은 정면으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엄마, 대체 치워버리고 싶은 게 뭐예요? 라고 대꾸를 하려다 그만 두고 슬금슬금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책상 위에 어제 마시다 남긴 커피가 하얀 잔 속 에서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먹을까 말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결국 꿀꺽꿀꺽 삼켜 넣었다. 마치 쓴 한약을 먹은 듯 입안에는 온통 역겨움이 감돌았다. 얼른 몸이라도 움직여 이 불쾌함을 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소일거리를 찾아 방을 둘러보았지만 별달리 치울만한 것도, 할 일도 없어보였다. 어제 입고 벗어 놓은 외투가 의자에 삐딱하게 걸려 있을 뿐 물건들은 평소의 그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청소기나 한번 돌리지 싶은 생각에 거실로 나가 청소기를 찾았다. 그 사이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부재를 알아차리자 이상하게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 적막감이 돌기 시작한다. 나는 이 적막감이 싫었다.

tv를 틀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 한 음악방송 프로그램에서 멈추었다. 화면에는 한 여자 아이돌 그룹이 빨간색 짧은 원피스를 입고 발랄한 음악에 맞춰 요염하게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려있는 소품들처럼 시선을 뗄 수 없는 빤짝거림이 묻어났다. 그게 조명 탓인지 아이돌 그룹의 예쁜 얼굴 탓인지, 카메라에 클로즈업으로 얼굴이 잡힐 때마다 멤버 한 명 한 명 모두 그 작고 예쁜 얼굴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한껏 더 예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예쁜 얘들이 싫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나를 왕따로 만들던 아이도 오목조목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 형 이였다. 그 예쁜 얼굴로 나와 함께 놀던 친구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나와 놀지 말라며 귓속말을 해대면 이상하게 주문이라도 걸린 듯 그 말은 들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 날부터 나한테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친구들이 떠나가고 혼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나에게 따라오라며 나를 골목길에 있는 작은 문방구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더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멀뚱히 서서 그 아이가 고르는 물건들을 바라봤다. 머리빗, 볼펜, 수첩, 귀여운 동물 스티커 등이 내 손바닥 위로 쏟아졌다

 

“계산해”

 

그리고 나는 그대로 물건들을 들고 계산대로 들고 갔다. 하나씩 물건을 계산하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동물 스티커를 들더니 유심히 관찰했다. 겉봉지에 검은 색 잉크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응? 이게 뭐야 왜 이런게 묻었지?”

“아줌마, 저기 잔뜩 묻어 있어요. 이런 거, 다 묻었던데...”

“뭐야? 어디...”

 

그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아주머니가 계산을 하다말고 몸을 옮기자 그 아이는 바로 몸을 길게 쭉 뽑아 아주머니가 서 있던 곳에 진열 되어 있던 담배 갑들 중 하나를 뽑아 본인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 민첩한 손동작은 가히 아이의 손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재빠르고 정확했다. 구석에서 혼자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해대던 아주머니는 계산대로 돌아와 안에는 안 묻었으니 괜찮지 않냐며 계산대에 올려 진 물건들을 하나 둘 검은 봉지에 담으며 얼마라고 얘기했다. 거스름돈을 돌려받은 기억이 나는 걸 보니 만원이 넘지는 않았던 듯 싶다. 그 아이는 문방구를 나와 로봇처럼 굳은 채 서 있던 나를 잡아끌고 학교 뒤편의 작은 언덕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손에 들려있던 검은 봉지를 채가더니 제 가방으로 물건들을 쏟아 붓고는 그 얼룩이 묻은 스티커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건 너 가져”

 

그리고 가방을 그대로 바닥으로 내팽개쳐 놓고는 땅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리와 너도 앉아”

 

그 아이의 뒤로는 얼키설키 작은 묘목들이 둘레를 형성하고 온갖 잡초들이 듬성듬성 풀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아이를 따라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윽고 그 아이는 보란 듯이 양 쪽 치마 주머니에 있던 물건들을 내 앞에 꺼내 놓기 시작했다. 작은 미니향수, 틴트, 머리끈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거기엔 담배 한 갑도 있었다. 물건들은 모두 새 것 이였다. 그 아이는 마치 본인의 전리품들을 자랑하듯 물건들을 한번 쓰윽 둘러하더니 나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그 미소를 보자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에게서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걸 느꼈던 거 같다. 그것은 내 또래의 아이들이 선배 언니나 잘난 어른들을 만나면 느끼는 두려움 비슷한 그 어떤 것 이였다. 그 아이는 저 멀리 던져 놓은 가방을 다시 끌어와서는 뒤적뒤적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연예인들의 얼굴 스티커로 도배가 된 종이 필통이 나타났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필통 뚜껑을 열자 형형색색의 필기구들이 나타났고 그 아이는 그것들을 거침없이 바닥에 쏟아 붓고는 빈 필통 곽을 연신 바닥을 향해 흔들어댔다. 그러자 필통의 바닥면이 조금씩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흡사 스팸 통조림에서 스팸을 꺼내듯 바닥에 있던 종이 바닥면이 어느 정도 위로 솟아오르자 그 아이는 바닥면 귀퉁이를 잡고 단숨에 그것을 뽑아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작은 라이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아이는 나를 향해 다시 씨익 웃어 보이며 꺼낸 라이터를 바닥에 던져놓고는 조심스럽게 담배 갑을 들어 겉을 감싸고 있던 투명한 비닐필름을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그리고 톡톡 담배 한 개 피를 꺼내어 왼손에 들고 나머지 오른손으로 라이터의 불을 당겼다. 푸른색 투명용기 안에 라이터 기름이 찰랑찰랑 움직이며 맑은 다홍빛의 불꽃이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라이터 불을 담배 머리에 갖다 대자 담배 끝부분에 전류가 일듯 조금씩 타들어가며 하얀 연기가 피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그 아이의 손에서 담배에 붙이 붙는 모습을 집중하며 바라봤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 손에 불이 붙은 그 담배 대를 천천히 쥐어 주었다. 나는 그것이 내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 줄도 모르고 그 아이가 다시 담배 한 개 피를 꺼내 똑같이 불을 피우는 모습을 마치 처음 보는 영상처럼 집중해서 바라봤다. 이윽고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듯 그 아이는 나를 향해 다시 씨익 웃어보였다. 그 아이의 작고 하얀 손가락 사이에서 실타래 같은 담배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담배 피워봤어?”

“아니”

“큭큭큭......한번 피워보자”

“싫어”

“왜?”

“매울거 같애”

“큭큭큭”

 

연신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신나하던 그 아이는 잠시 웃음을 거두고 시범이라도 보이듯 천천히 본인의 손가락에 걸려있는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담배 끝을 이 사이에 물고는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씨익 웃어보였다. 하얀 담뱃대와 그 아이의 하얀 이가 묘하게 어우러져 그 아이의 얼굴이 더욱 빛이 났다. 그 순간 그 아이는 흐읍 하고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이윽고 그 아이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굴뚝 위의 연기처럼 후욱 하고 뿜어져 나왔다.

 

“어때? 멋있지? 숨 쉬듯이 들이쉬고 내뱉으면 되. 그럼 하나도 안 매워”

 

나는 그 아이의 주변으로 흩어지는 하얀 담배 연기의 실루엣을 쫓다가 다시 내 손에 들려 있는 담배를 바라봤다. 마치 죽은 듯이 그 어떤 미동도 없이 처음 쥐어준 그 모양 그대로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죽은 걸까?

 

“내 담배 불이 꺼진 거 같아..”

“큭큭큭 아냐 살았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서 불어봐”

 

나는 마치 담배에 인공호흡이라도 하듯 신성한 몸짓으로 천천히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후 하고 불자마자 따가운 담배연기가 목구멍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고 때마침 차가 지나가면서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 아이는 서둘러 바닥에 흐트러진 물건들을 가방에 쑤셔 넣고는 내가 놀라서 떨어트린 담배와 본인의 담배를 모아 열심히 발로 땅에 짓이겼다. 담배는 그대로 흙속에 파묻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인기척이 들리던 곳에서 반대쪽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 아이를 따라 큰 도로가로 나왔을 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를 향해 그 아이는 언제 숨을 골랐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봐”

 

그렇게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뿐하게 뒤돌아 가는 그 아이를 나는 멍하니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그 아이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내게 다가와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교실 안은 시간이 멈춘 듯 이상한 적막이 흘렀다. 그 이후로도 내 옆에 앉아 나에게 친근하게 구는 그 아이를 교실 안의 친구들은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차츰 내 곁을 떠나갔던 친구들이 하나둘 먼저 말을 붙이더니 전처럼 반의 모든 여자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예전처럼 친구들과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로 수다를 떨거나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천천히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3학년으로 진급 하면서 나는 그 아이와 다른 반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차츰 내 일상에서 그 아이의 존재가 거의 잊혀져 갈 때 쯤 돌연 그 아이가 전교생의 이목을 받는 핫이슈로 떠올랐다. 중학교의 마지막 겨울방학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 이였다. 그 아이가 따돌린 한 여자아이가 담임 선생님에게 그 아이를 고발했고 여기저기 그 아이에게 한 번씩 따를 당했던 아이들의 사례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점점 교무실에 소식이 퍼지고 다른 반, 다른 학년으로 소식이 퍼지면서 어느새 그 아이는 학교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한 극악무도한 불량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소문이 무성하게 커져 정말로 학교 최초로 퇴학이라도 당하나 싶은 순간, 그 아이의 사건은 반성문 몇 장과 부모면담으로 조용히 일단락 됐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과 하교를 하다가 저 멀리 쓸쓸하게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한번 본 뒤로는 그 아이를 본 일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 예쁜 얘들을 보면 이상하게 온 몸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듯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쳐지고는 했다. 그것은 내 몸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접근금지’와 같은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 보내는 것과 같았다.

 

tv속에서는 또 다른 아이돌 그룹이 나와 연신 가늘고 긴 팔다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좀 전의 아이들과 입은 옷, 춤 동작들이 미묘하게 달랐지만 이상하게 얼굴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마치 같은 소속사에서 표정 연습을 시킨 것처럼 연신 카메라에 대고 좀 전의 아이돌 그룹들과 비슷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말 인형이라도 된 걸까? 이상한 기시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어느새 시간은 점심시간을 지나 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마침 먹을 것도 살 겸 밖에 나갈까 하다가 엄마의 심부름이 생각났다. 엄마는 곧 회사를 그만 둘 거라고 했다. 한동안 수입이 없을 테니 실업급여라도 받아야 한다며 내게 실업급여 절차에 대해 프린트 해놓으라고 했다. ‘그만두고 뭐 할 건데’라고 묻는 내 질문에 엄마는 그저 무심하게 ‘절에 갈거야’ 라고 한마디 툭 내뱉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12월의 바깥공기는 차가웠다. 저 멀리 PC라고 빨갛게 크게 써 놓은 간판이 허름한 회벽 건물들 사이에서 촌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1층은 고기를 팔던 식당 이였는지 돼지고기의 부위별로 가격이 쓰여 있는 포스터와 홍보 스티커들이 지저분하게 벽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폐업을 한 건지 장사를 잠시 접어 둔건지 가게 안은 썰렁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게 입구를 지나 건물 안에 있는 계단으로 들어서자 PC방 상호명과 화살표가 벽면 한 쪽 구석에 초라하게 붙어 있었다. PC방은 3층에 있었다. 장사를 안 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한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계단을 오를수록 찌든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3층에 다다르자 검은색 스티커로 조잡하게 래핑 되어 닫혀 진 문고리에 OPEN이라는 쓰여 있는 팻말이 허술하게 걸려있었다. 문손잡이를 당겨 안으로 들어서자 이상한 전자음과 함께 데스크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일어났다. 나는 갑작스럽게 정면에 나타나 나를 주시하는 여자의 눈빛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여자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무료한 표정으로 자신의 임무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듯 그저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1시간이요”

“1,000원이요”

“여기 프린터도 되나요?”

“200원이요. 프린터 하고 저기서 받아 가시면 되요”

 

화장기 없는 여자의 얼굴을 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장단 200원이라고 종이로 써 붙인 볼품없는 작은 레이저 프린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는 24인치 쯤 되어 보이는 모니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어두운 조명아래 모니터의 깜깜한 화면이 더욱 깜깜하게 보였다. 여자가 적어준 패스워드를 받아 구석 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 컴퓨터를 켜자 얼마 안 있어 모든 걸 빨아들일 듯 블랙홀인지 은하계인지 알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화면 하단에는 종료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알리는 노란 메시지 창이 하나 떠 있었다. 익숙하게 인터넷 아이콘을 찾아 더블 클릭하자 초록색 네이버 창으로 접속되었다. 검색창에 ‘실업급’까지 쳤을 때였다. 어딘가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나는 데스크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데스크의 여자는 여전히 무료한 표정으로 미동도 없이 본인의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소리의 근원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저 멀리 반대편 가장자리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헤드셋을 쓴 검은 두상이 움직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반쯤 일어나 구석자리를 주시했다. 검은색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헤드셋을 끼고 잔뜩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여자아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모니터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대고는 거의 코를 박듯이 하고 앉아 있었다. 커다란 모니터에 가려져 소녀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여학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낄낄댔다. 주기적이거나 또는 그렇지 않는 여학생의 웃음소리가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사람도 얼마 없는 곳에서 분명 그냥 크게 웃어도 될 법한데 소녀는 본인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느라고 기괴한 웃음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찾았다. 둘러보니 들어온 입구 벽면에 왼쪽 방향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는 듯 화살표 하나가 벽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들어서자 가림막 벽 뒤로 작은 화장실 표시가 붙은 문이 나타났다. 화장실은 남녀공용인 듯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화장실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와 락스와 같은 세재 냄새가 뒤섞여 지독한 악취가 났다. 화장실 안에는 난방이 안 되는지 한기로 가득했음에도 진한 나프탈렌 냄새를 맡듯 아찔한 냄새가 어딘가에서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 변기를 지나 칸막이 화장실을 열자 오물로 가득한 화변기가 나타났다. 발로 변기 위에 물내림 레버를 눌렀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물이 나오지 않아 누군가 싸놓은 대변과 온갖 오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듯 싶었다. 나는 그대로 화장실을 나와 데스크에 있는 여자에게로 갔다.

 

“화장실에 물이 안내려가요”

“아..물이 얼었데요”

“그럼...”

“나가면 오른쪽으로 큰 건물 있어요. 거기 1층에 화장실 있으니깐 거기로 가세요”

 

여자는 애초에 PC방 안에 있는 화장실의 상황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얼굴로 무덤덤하게 얘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에 오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한겨울이라도 냄새가 심할텐데..아니면 아예 못 들어가게 뭐라도 써붙여 놓지..괜히 기분만 언짢아 지자 억울한 생각이 들어 한마디 하려다가 문득 고등학생 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은 시골에 있는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여고였다. 꽤나 언덕이 높아 등교를 할 때면 언제나 씩씩거리며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했다. 아침도 안 먹은 빈속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게 웬만한 운동보다 체력소모가 커서 근처에 사는 아이들조차 기숙사에 입사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어느 한 겨울에 학교 배수관이 얼어 하루 종일 학교 건물 전체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 이였다. 전교생이 180명 정도 됐는데 건물 3층 전체에 물이 나오지 않으니 화장실의 모든 칸은 금세 소변과 대변으로 가득 찼다. 아마 처음에 화장실에서 대변을 눈 누군가는 당연히 물이 나올 거라 생각하며 대변을 봤을 테고 그 다음에 온 누군가는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서 깨끗한 다른 칸을 찾아 이용했을 것이고 화장실이 급했던 누군가는 깨끗한 다른 칸을 찾다 찾다 결국엔 참지 못하고 누군가의 변 위에 또 변을 누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파가 낳은 화장실 대란은 3일 동안 이어졌고, 그나마 기숙사에는 물이 나왔기에 학생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기숙사로 몰려들어 수업을 빼먹는 아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들어간 화장실에서 단단하게 얼어버린 남이 싸놓은 똥을 신기한 듯 바라본 적이 있다. 그리고 친구 몇몇과 논술 수업을 받으러 가는 차 안에서 무심하게 똥 이야기를 건넸다.

 

“왜 똥은 더러운 걸까?”

웬 갑자기 드러운 똥 얘기를 하냐며 낄낄대며 웃어대는 친구들 사이로 한 아이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남의 똥이니깐 더럽지”

냄새가 나서, 생긴 게 좀 그래서 이런저런 대답을 떠올렸지만 의외의 답변 이였다.

 

“그럼 내 똥은 안 더럽냐?” 라고 다른 아이가 이야기하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그래 똥은 다 더러운거지. 근데 남의 똥보다 내 똥이 덜 더럽게 느껴지지. 네 똥 냄새는 맡아도 남의 똥 냄새는 맡기 싫잖아?”

 

그 순간 뭔가 다들 수긍하는 듯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더러운 똥이야기는 그만하자며 수다는 다른 이야기들로 옮겨졌고 차안은 그새 여고생 특유의 떠들썩한 웃음으로 가득 찼다. 왜 하필 지금 진지하게 똥 이야기를 하던 그 아이의 무뚝뚝한 표정이 떠오른 걸까? 그 아이는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똥이야기를 했던 걸까? 잘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말없이 PC방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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