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밤은 무서운 게 아니예요>

by 참바람 posted Dec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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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무서운 게 아니예요

 

 

김    선   애

 

 

 

 

낮과 밤은 정확하게 반반씩 존재하지요.

낮은 12시간, 밤도 12시간입니다.

낮은 더 밝게 빛나라고 해가 하늘에서 비치고 있고요.

밤은 혹시 어두운 길을 가다가 넘어질까 봐 달빛으로 은은하게 어둠을 살짝 비추어 주고 있어요.

우리 잠 잘 때 사이드 등을 켜 놓고 자는 것과 똑같은 밝기지요? 그걸조도라고도 하지요?

또 누군가가 깜깜한 밤길을 가다가 심심할까봐 이야기 상대로 별들도 나와 길동무를 해 줍니다.

별들은 함께 동행하며 밤길을 걷는 이가 무섭지 않도록 소곤소곤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주지요.

 

밤을 무서워하지 마세요.

밤은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밤은 충전하는 시간일 뿐이예요.

핸드폰이 피곤하면 어떻게 돼지요?

밧데리가 다 달아서 밥 달라고 보채지요. 그렇죠?

그걸 우린 '방전'이라고 해요.

그럴 때마다 우린 밥을 줘야 해요.

밧데리를 충전하도록 전기 콘센트에 꽂아 둬요.

배가 빵빵해지면 이젠 배부르다고 소릴 또 지르지요.

그만, 됐어요. 배 불러요...”

다시 핸드폰은 기운이 팔팔해져 통신이 원하는 광속도로 !’하고 빠르게 접속이 돼요.

인터넷도 빵빵터지고요. 내가 검색하고 싶은 내용들도 속전속결로 찾아줘요.

핸드폰은 기운 나는 음식으로 충분히 보충 했으니 다시 일을 열심히 하는 거지요.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요.

우리도 밥을 먹어야 기력이 생겨 공부 하고, 책도 보고, 놀러도 나가고, 일도 하고, 운동도 하죠?

하지만, 저녁이 되면 힘이 다 빠져버려요.

우리 몸의 밧데리가 방전되기 전이라는 소리죠.

그걸 피곤하다. 지친다. 자고 싶다.’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이 쉬고 싶다고 강제로 우릴 재우려는 것이기도 해요.

그럴 때는 잠을 자면 돼요.

내 영혼은 우리가 자는 동안 몸 밖으로 나가 실컷 자유비행을 하고 다시 자기 집인 몸 속으로 들어오지요.

그럼, 잠을 자는 내내 누가 우릴 충전시켜 줄까요?

그건 말이죠.

밤이란 에너지체가 우리 몸을 온전히 감싸 안아요.

따뜻한 이부자리 속으로 ~’ 들어간 것처럼 포근하게말이죠.

그때부터 마치 전신이 MRA, 컴퓨터 단층 촬영을 받는 기계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우리의 몸은 하늘나라 공장으로 입고가 돼는 거예요.

그 곳에서 우린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무상으로 안전점검을 받으러 하늘의 정비소로 들어가는 거지요.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우리에게 하루 동안 쓸 에너지들을 우리 몸 구석구석에 전기를 보내 다시 대낮에 활동하며 쓸 수 있도록 만땅으로 충전해 줘요.

또 어디 고장 난 곳은 없나 꼼꼼이 정비사에게 점검을 받고 나서 하늘나라 공장에서 출고가 되는 거예요.

여기까지 이해가 좀 됐나요?

그게 바로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순간이지요.

하늘에서는 우리가 공포에 질릴까봐, 혹여 두려움에 쌓이게 될까봐 밤을 선물로 주는 거예요.

잠잘 때 우린 창에 달린 암막 커텐을 치지요? 왜 칠까요?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잠을 편안하게 자기 위해서지요. 안 그런가요?

하늘에서는 무선으로 우리 모두를 날마다 정교한 컴퓨터인 CCTV로 우리들을 일일이 전부 보고 있어요.

우리의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 마음까지도 다 스캔 하지요.

생각, 잡다한 모든 잡념까지도요.

한 마디로 모르는 게 없다고 보면 돼요.

어떻게 보느냐고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우리나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스마트 폰을 들고 다니죠? 거기엔 전선이 없어요.

줄이 없는 데도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간에 우린 아주 멀리 떨어진 가족과 친구들에게까지도 삽시간에 연락을 취할 수 있지요.

개인 식별 핸드폰 번호만 누르면 우린 누구에게도 구속 받지 않고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안부 전화로 당장이라도 목소리을 들을 수 있지요.

외국에 있어도 우린 대화를 나눌 수 있고요. 영상통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그 전기, 전파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로도 감지하기 어렵지만 우린 고마운 전기인 전파가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알아요.

서로 전화가 가능하게 하잖아요. 모든 방송 매체가 다 그래요. 라디오도 그렇고요. 텔레비전도 그렇죠.

콘센트를 꽂고 스위치를 누르고 주파수를 맞추기만 하면 라디오가 나와요. 내가 원하는 그 프로그램도 들을 수 있지요.

TV는 안테나가 별도로 달려있어 그 안테나로 전파를 쏴주면 그 파장에 따라 다양한 채널에서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경기, 공연 장면들을 집안에 앉아서 편안히 볼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이랑 똑같아요. 우린 하늘과도 그렇게 접선을 하는 거예요.

하늘은 우리에게 전파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콘센트에 해당해요.

이해가 됐나요?

 

석유가 있어야 전기는 각 가정으로, 산업체로, 일터로 공급이 돼지요?

하늘에서 주는 전류는 우주 어느 곳에나 있어요. 굳이 우리가 찾으러 다닐 필요조차도 없고요.

더더군다나 돈 주고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요.

모두가 공짜니까요. 순전히 공짜면서, 평생 무료 A/S도 해 주지요.

우리 몸이 그렇다는 거예요.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가요?

석유는 비싸고요. 우리는 산유국이 아니라, 일부 아랍국가에서 사서 쓰고 있어요.

또 선진국에서는 앞다퉈 투자를 해 석유를 착출하지요. 부자 나라는 석유를 싼 값에 펑펑 사다 쓰고 대기를 오염시켜요. 그러나 가난하고 못 사는,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는 그 환경 오염이 된 대기 중 떠돌아 다니는 먼지와 오염물질들을 별다른 여과장치도 없이 다 흡입하고 마시며 살아야 해요.

너무 불합리하지 않나요? 그런 악조건들이 우리를 부자로 살고 싶도록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부채질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심성은 날로 더 무서운 얼굴들이 돼 가고 있고요.

마음 속은 더 욕심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만들지요.

, 얘기가 딴 곳으로 흘러가려 하네요.

여기서 이 얘기는 그만 해야겠어요. 화가 자꾸만 나려고 하니까요.

우리가 하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야 겠어요.

 

하늘은 우리 모두를 그렇게 너와 나, 우리를 연결하는 선이 없어 보여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시켜 놓고 우릴 보고 있어요. 마음 속까지도 들여다 보지요. 놀랍지요?

 

무선이란 것은 선이 없은 걸 말하지요. 전선줄이 연결이 안 돼 있는데도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다 걸려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전류가 항시 우리 주변에 흐르고 있다는 증거예요. 전기는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전기가 모아져 전선줄을 타고 흐르면 그 소리가 미약하게나마 들려요. ‘찌찌지찟~’하고 말이죠.

 

강한 전류는 고압전류라고 하지요.

고압 전류가 흐르는 곳 가까이에 가면 전류의 흐르는 소리가 마치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처럼 세게 들려요.

우리도 가까이 가게 되면 감전이 될 수도 있어요.

<주의> 표시가 빨간색으로 크고 굵은 글씨체로 써 있잖아요.

위험하다는 표시가요.

 

이제부터는 우리 주변엔 전부 전류가 흐르고 있다고 가정하셔야 돼요.

실제 그러니까요.

눈에 안 보여도 전파가 흐른다는 증거니까요. 알았죠?

너무 가늘어서 안 보일 뿐인 로 다 연결 돼 있는 거예요.

더 놀라운 것은 전봇대를 보세요.

온갖 전선줄들이 얽기설기 도깨비 시장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어요.

무선으로 된 줄은 걸어 다니고, 버스 타고 다니고, 자가용을 타도, 비행기를 타도, 배를 타도 그 줄은 서로 엉키지가 않아요. 왜 그럴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하늘에서 일부러 만들어 놨을 지도 몰라요. 만약에 우리 눈에 보여 봐요? 아마 꼬인 줄들을 매일 푸느냐 하루를 꼬박 다 보낼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싸움도 많이 일어날 것 같아요.

지금도 서로 더 많이 땅을 차지하려고, 더 많이 부자가 되려고,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안 그런가요?

 

다시 설명하자면, 보이지 않는 전파는 이런 거예요.

우리가 숨을 쉴 때 공기가 우리 몸 속으로 들락날락하는 것도 안 보이지만, 콧구멍을 막아 봐요.

그럼 답답해서 숨이 막힐 것 같아 헉헉거려요. 그거랑 똑같아요.

하늘에서 무상으로 영원히 공급되는 전류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끊어지지 않고 넉넉히 배급해 줄 거랍니다.

잠잘 때 숨을 쉴 수 있고, 가슴의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는 게 다 전파가 흐른다는 증거예요.

그러니, 낮과 밤은 분리 될 수도 없고 떨어지지도 않아요.

밤은 낮에 활발하게 순환하던 모든 삼라만상을 푹 쉬게 해 주는데도요, 우린 어떻게 밤은 무섭다고 하는 거지요?

밤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 우리의 피부 숨구멍 뿐 아니라, 몸의 구멍이란 구멍으로 신선한 산소를 주입해 주어 활력소를 공급해 주지요. 콧구멍, 귓구멍, , 똥구멍, 소변 구멍, 피부, 땀구멍 등등등 으로요.

밤은 공기를 순환시켜 놔요. 아침에 봐요. 새벽 공기가 얼마나 상쾌한지 알잖아요?

 

하늘에서는 별들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를,

해에게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를,

달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를

우주 전체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힘들을 조금씩 걷어다가 우리 몸속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해요.

자연 만물들이 밤은 충전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나요?

 

밤에 잠을 안 자면요.

그날 하루가 무척 피곤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충전하지 못 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가기 때문이지요.

눈도 감기고, 무슨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고, 횡설수설하고, 헛말만 반복하고, 정신도 혼란스럽고, 몸도 쑤시며 아픈 이유가 다 잠을 설쳤거나, 안 잤기 때문이지요.

그런 말 있잖아요? 밤에 잠만 잘 자도 만병 중 대다수가 사라진다는 말이요?

없나? 내가 만들어 낸 말인가?’

아무튼 전 들은 것 같아요. 사실이니까요.

이런 즉슨, ‘!’ 밤에는 편안하게 쉬어야 한다니 깐요.

 

그럼 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돼나요? 그 분들은 아침에 대신 자잖아요.

낮에도 하늘이 내려와서 또 특별히 충전을 시켜줘요.

 

하나 물어 볼 게요.

무서운 일, 사고, 사건, 나쁜 일들은 주로 언제 많이 일어나는 줄 알아요?

도둑질도 마찬가지고요.

밤중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상하고, 이해가 안 가는 일들은 대부분 낮에 벌어지죠.

그것도 아주 많이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요.

그에 비하면 밤에는 아주 쬐게, 일어나는 것 뿐이예요.

새발의 피라고 해야 하나? 눈꼽만큼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요.

우린 밤에 도둑이 들어온다고 생각하지만요.

그 도둑은 사실 알고 보면 손에 꼽을 정도라고 보면 돼요.

그 정도로 밖에 얼마 안 된다는 소리겠지요?

우린 그것도 모르고 굉장히 부풀려서 밤을 조심하라는 말들을 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또 흔히들 그렇게 말들을 소문으로 퍼뜨리기도 해요.

우리들도 그런 줄 알고 지금껏 살아왔잖아요. 그렇죠?

 

또 다시 물어 볼 게요.

살면서 밤에 도둑 몇 번이나 맞아 봤나요?

아마도 한두 번 정도가 되지 않나요?

사적인 희귀한 사건을 기억하는 건 아마도 특별하기 때문일 거예요.

개인적으론 희귀하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사건들은 또 매스컴에도 관심거리가 못 돼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흔한 하나일 테니까요.

사회적으로 큰 사건, 사고들은 흔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대형 사건이 되는 거지요. ‘

빅 뉴스가 되는 것 말입니다.

매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을 누가 신문기사나 방송에 내 보내려고 하겠어요.

그런 시시껄렁한 뉴스를 누가 보기나 하겠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대부분 벌건 대낮에 도둑들이 더 활기를 띄고 있다는 것과 기세을 부린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예요.

퍼센트로 따지고 보면 ‘95%’는 대낮에 도둑들이 더 활개를 치고 다녀요.

굉장히 많다는 뜻이죠.

 

우리가 착각하고 사는 게 또 있어요.

밝은 대낮은 밝아서 잘 보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착시 현상이 있어요.

눈을 뜨고 있고, 내가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도둑이 침입을 못할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죠.

실제로는 우린 눈을 뜨고도 아주 많이 속임수에 당하고, 도둑도 더 많이 맞아요.

거짓말에도 더 많이 속고요. 남의 말에도 쉽게 넘어가지요.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제 생각인데요. 도리어 눈이 부시면 앞이 더 안 보이는 경우는 아닐까요?

문제는 우리가 방심하기 때문이예요.

방심은 금물이라고 하지만 말이죠.

쉽사리 방만한 마음을 내려놓기란 또한 쉽지가 않잖아요?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아주 많기 때문이지요.

 

밤의 경우를 볼까요?

밤에는 내 마음의 문도 빗장을 단단히 하지요.

어둡기 때문이기도 하고 잘 안 보이니까 조심하려고, 넘어질까 살금살금 다니기도 하잖아요.

또 우리가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으면 말도 당연히 안 하게 돼 실수를 적게하지요.

남에게 상처 줄 말도 하지 않게 되고요.

움직일 일도 없잖아요. 자면서 뒤척이는 일 밖에는 요.

그런데 사건, 사고가 생기겠어요?

도리어 가족끼리 서로 한데 뒤섞여 잠을 자다보니 가족의 정도 새록새록 싹이 트게 되지 않을 까요?

가만히 보면 부부의 사랑은 어둠 속에서 더 활발하게 에너지체로 왕성하게 활동을 개시하는 것 같아요.

생명을 탄생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매우 분위기가 ‘UP’되는 찰라기도 하고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해요.

창조의 능력 말이예요. 제가 하는 말은 모든 생명체를 두고 하는 말이예요.

새 생명체를 탄생시킨다는 것은 창조하는 능력을 갖었다는 의미지요.

창조는 하느님이 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모든 생명체가 바로 창조력을 갖고 태어나지요.

 

무생물이라 여기는 존재들 얘기도 늘어놓고 싶지만 여기서는 주제가 안 될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넘기려고 해요.

다음에 시간될 때 다시 무생물이라 여겨지는 존재들에 대해서 수다를 떨어 볼까 싶기도 해요.

 

다시 밤에 대한 스토리로 돌아가 보도록 하지요.

신기하게도요. 병원에서 조차도 밤에는 환자들이 덜 아플 뿐만 아니라, 모두 깊은 수면에 빠지지요.

위급한 일도 콩알만큼 발생할 뿐이예요.

밤에 엠브란스가 앵앵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도 그건 매우 아주 극소수에 불과해요.

밤에 불이 났다고 소방차가 출동해도 대낮에 일어나는 일들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예요.

 

밤은 우리에게 하루를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공장입니다.

타임 캡슐과 같은 존재라고 하면 딱 좋겠네요.

밤은 우릴 아주 편안하게 끌어안아 줍니다.

눈을 감고 죽은 듯 잘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밤이란 사실 잊지 마세요.

'죽음'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죽음이 무섭지 않아질 거예요.

엄마 품에서 포근하게 자는 아기처럼, 바로 죽음도, 잠자는 것도 우주의 품속에서 잠시 잠드는 거랍니다.

 

밤도 낮만큼 이제부터는 좋아해 줄 거지요?

낮에 밝게 웃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밤이란 사실을 잊지 마세요.

밤이 없었더라면 우린 웃을 수가 없었을 지도 몰라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입안이 까칠까칠해 먹을 수도, 식욕이 떨어지니 먹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르지요.

입맛이 있어야 맛있게 먹을 것 아닌가요?

잠을 못 자면 충전이 안 돼 즐거움도, 행복도, 기쁨도, 생각도 다 마비가 돼 버리잖아요.

바보 멍충이처럼 화만 나려해요. 짜증도 폭발하니까요. 그런 경험 많이 해 보셨지요?

내가 가끔은 화를 버럭버럭 내고 싶다. 내가 가끔은 성질을 많이 부린다.

내가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다 잃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증세들이 평소와 다르게 일어나는 체험들 각자 해 보셨지요? 바로 그거에요.

잠을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말이죠.

이와같이 생활 자체가 중단이 되고 말지요.

 

그런 불행은 필림이 끊어진 영화를 보는 것과도 닮았어요.

지지지지~’하고 소리 나는 필림이나 테이프 소릴 들어본 적 있지요?

차도 기름이 없으면 가다가 덜덜덜거리다가 피식~’하고 멈추지요?

배가 고프면 밥 달라고 뱃속에서 꼬르륵소리가 나지요? 그것이랑 똑같아요.

밤은 그런 역할을 합니다.

 

왜 우린 지금까지 밤을 진짜 못 쓸 어둠으로만 여겼을 까요?

이제부터는 밤도 대낮 못지않게 똑같은 마음으로 애정을 갖어 주세요.

암 덩어리, 불필요한 존재, 무가치한 무엇, 마치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대하지 말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해요. 알았죠?

 

밤은 하늘과 내 몸이 자동시스템 장치 돼 있어

힘을 보충하러 충전소로 들어가는 주유소!

밤은 나의 몸 속의 피를 새로 갈아주기 위해 교환하는 시간!

밤은 나의 영혼를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물을 뿌려 주는 공간!

밤은 내 몸의 죽은 세포를 싱싱한 세포로 교체하기 위한 나의 에너지 공장!

밤은 내 감정을 더 풍성하게, 반짝거리게 하기 위해

정비를 받으러 들어가는 정비소!

이만하면 밤은 친구 이상이 아닐까요?

 

깜빡, 까먹을 뻔했네요.

저도 밤에 무언가를 하면 영감이 팍팍 떠올라요.

밤 도깨비처럼 기운이 세지고 팔팔해 지죠.

뭔가 일을 해도 후다닥진행이 돼요.

대부분의 예술한다는 분들, 특히 글쟁이들은 거의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나요?

밤이나 새벽에 미뤄왔던 글들을 쓰죠?

영감이 팍팍팍불똥이 튀기 듯, 떠오를 때 써야 훌륭한 작품이 탄생이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요?

아마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요?

그건 애인과 데이트 하는 거지요.

사랑하는 애인과 데이트를 하니 당연히 흥분이 될 거구요.

절절하게 사랑하고 싶지 않겠어요?

사랑의 글들이 줄줄줄조기 엮듯 엮어져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안 그런가요?

밤은 어떤 특정 부류의 존재들에게는 영감을 받는 시간 공간이란 것도 이참에 필수로 알아두세요.

 

지금까지 제가 허벌나게 밤에 대해 떠들어 댔잖아요. 부탁이 있는데요.

이제부터는 밤을 진짜로 무서워하지 마세요.

죽음도 무서워하지 말고요.

특히 앞으로는 이란 단어에도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노력해 봐요.

이란 용어에도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애써 봐요.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세상의 많은 음울하고, 암담하고, 고통스런 단어와 용어들이 갖었던 검은 속살, 검은 의미들이 최소한 50% 이상 하얗게 바뀔 수 있다고 봐요.

더러운 뜻으로 해석이 되도록 인간이 만들어 써왔던 낱말들이 재탄생되어 나올 가능성을 두고 전 얘기하는 거랍니다.

그렇게 되길 바라니까요.

앞으로의 세상은 밤이란 단어가, 어둠이란 의미가 세탁소에서 깨끗하게 빨래가 돼 나오듯 반짝반짝 눈 부셨으면 좋겠어요.

다림질까지 말끔히 돼 주름조차도 쭉쭉 펴지길 바래요.

이란 용어에 주렁주렁 달렸던 맛없는 말, 싱거운 말, 가치 없는 의미, 불행, 협착꾼과 같은 의미들의 깊은 주름이 활짝 펴지길 바랍니다.

 

잘못 해석되고, 곡해된 언어들을 이젠 제 자리로 되돌려 놓을 때라 봅니다.

편견을 갖고 보면 ‘50%’밖에는 보지 못하죠. 생각도 그 수준에서 밖에 못 하게 돼요.

‘50%’ 인생을 살다가 가실 거라면 모르지만, 본인이 원하면 그렇게 50% 인생으로 사셔도 돼요.

그렇지만,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그 고집불통이었던 편협한 사고의 싹을 잘라내고, 뿌리를 뽑아 버린다면 어떨까요?

하루 아침에 그 뿌리가 완전히 캐내어진다는 일이 어렵겠지만요.

이번 계기가 도래해 시발점이 된다면요?

이란 용어를 포괄적으로 보면요.

악습, 악행들도 이 외에 잘못 학습된 인식물, 사회적으로 통념되던 관념들이 모두까지 포함시킬 수 있게 되겠죠?

우리도 모르게 내면화 돼버린 전통이라고 대대로 물려받았던, 사회 풍습이라고만 우겨왔던, 가족력이라고만 고집해 왔던, 민족성이라고만 지켜왔던 해악들도 서서히 뽑히지 않을 까요?

, 자유를 선포하고, 해방을 선포하기 위해 드리는 글이지 강요는 아니랍니다.

개인의 기준에 따라 고착화될 수도, 바뀔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요.

어리석은 어떤 이가 살아 가는 내내 고집불통처럼 붙들고 살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요.

다만, 내가 깊이 있게 어둠, , 깜깜함, 암흑...이런 단어를 스스로 판단을 내려 정말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식대로 판단을 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자발적으로 판단을 내려 결정한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을 뿐이예요.

안타까운 현실은, 자신의 선택이라면 우린 모두가 ’, ‘어둠을 부정적으로 대다수가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라 여겨지거든요.

몇 몇의 추종자들에 의해 그렇게 암암리에 몸에 베게 만든 것이잖아요?

지금 전 그런 불명확하고, 불쾌하게 돼버린 함축된 의미들을 훼까닥뒤집어지길 바라는 거니까요.

저를 위한 것일까요? 아니요.

모두 본인들을 위한 거예요. 앞에서도 말했듯 자유, 해방을 스스로에게 선포하고 공표하기 위해서지요.

얽매인 게 없으면 얼마나 자유롭겠어요.

옹졸한 사고의 틀이 부숴지고, 깨지고 나면 벽이 없기 때문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져요.

훼방 놓는 게 없다는 것은 어디든 원하는 곳, 내키는 곳, 생각하는 곳에 바로 가 닿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나를 제약하는 틀에 갖어 두게 되면 그 속에서 나올 수가 없어, 나의 사고의 확장을 할래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고리타분한가요.

그게 좋으면 그렇게 계속 하면서 ~’살면 되고요.

이왕이면 확 트인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자들이 되길 바라지요.

창문을 쬐게 열어두면 미풍이 들어오는지도 안 들어오는지도 몰라요.

공기의 순환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요.

창문을 활짝 열어두면 한순간에 집안의 공기가 확 틀려져요.

내 마음의 창도 이와 다름이 없지요.

무슨 소린지 아시겠죠?

 

음침하게 사용돼 오던 단어, 음흉하게 기록돼 오던 뜻이 바뀌어 밝은 해와 같은 의미로 쓰여지지 말라는 법 있나요?

아니, 제 생각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악용이 돼 왔던 용어들이 새 세상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어요.

모두 새 옷처럼 드라이 해 나오는 말들이 되리라 굳게 믿고 또 믿어요.

나쁘게 쓰인 단어들도, 어둡고 칙칙하게 쓰이기만 한 이란 단어처럼 현세는 의미를 다시 다듬어 표현하는 수법과 기술, 노력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죠.

그 의미를 밝고 화사하게 색칠을 하다보면 말이죠.

어느새 마음에 누군가가 와서 뿌려놓았던, 아니 세상이 내게 암묵적으로 심어 놓았던 ''이란 단어에 부여했던 고약한 냄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겠죠?

부정직한 의미로 담아 놓았던 단어의 뿌리들이 썩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저절로 뽑힐 거예요.

 썩은 이가 뽑히듯 말이예요.

그럼, 세상은 다시 지금보다 더 밝고, 활기차고 명랑해 질 거예요.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천진난만하게 될 거예요.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예요.

어른들은 어른다워야 한다고 해요. 어른다운 게 대관절 무엇이죠?

전 그 뜻을 모르겠더라고요. 이 나이를 먹었어도 말이예요.

사람들은 천진난만한 어른들을 보면 도리어 깔보고, 얕잡아 보고, 우습게 봐요.

막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때마다 속이 상하기는 하지요.

 

, 부정적인 언행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지는 그런 멋진 세상을 날마다 꿈꿔 봐요.

동그라미가 되기까지는 풍파에 시달려 온 세모가 있었지요.

세모가 있기까지에는 험난한 세상에서 발길질 당했던 네모가 있었어요.

네모세모의 존재는 어떤 덩어리가 되고자 하는 들의 집합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들은 서로 뭉쳐 덩어리가 됐어요. 덩어리가 바로 네모세모지요.

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들이 한 줄로 나란히 손을 잡았더니, ‘이 됐지요.

들은 다시 차곡차곡 쌓여 이 되고, ‘동그라미가 된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이란 원초적 단어의 해석을 원점으로 돌릴 필요가 있어요.

만 그런가요?

우리가 대다수 악용하는 대부분의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단어들에 새 이미지를 부여하도록 애써보자고요.

밤무대에서 빛나는 무희들처럼 이란 용어에도 반짝이를 달아봐요.

그럼 이 본래 가졌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듯해요.

또 인간들에 의해 강제로 강탈당했던 이란 단어 본래의 가치를 찾아주면 어떻까요?

심사숙고해 법원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증빙 자료가 요구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구구절절 자신을 변호하고, 설득하기 위해 변명할 건덕지도 없어요.

 

이란 진짜 본성이 가엾지 않나요?

난 최악의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는지 가요?

인류가 탄생하고 나서 서서히 이란 녀석에게 부여했던 잔인하고, 악독하고, 모질게 탈색시켜 버렸던 밤의 입장이 되어 보자고요.

세상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편리를 위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의미대로만 살아야 했던 의 권리를 되찾아 주자고요.

이제야 진짜 참뜻을 되돌려 주는 거지요. 찬성하시나요?

 

작금의 ''을 다시 조명해 보고나니, 글쎄 밤은 아주 온순더라고요.

매우 성실하고 착하기도 해요.

그 동안 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속이 아리고 쓰렸을까를 생각하니 제가 할 수 있는 짓을 하기로 작정을 하게 됐어요.

글로 메스를 든 것이지요.

전 글도 보시다시피 뒤죽박죽이고, 지그제그로 왔다리 갔다리 하며 잘 집중도 안 되고 정리도 폼나게 되지 않아요. 그렇죠?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용기를 내 보기로 했어요.

밤에 대한 해석을 좀 색다르게 채색해 보았으면 좋을 것 같았지요. 밤이 무지하게 좋아하겠는 걸요?

부족하지만, 어줍잖지만 자기에 대해서 이렇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권리를 찾아 주려고 하니 말이죠.

제가 좀 더 똑똑하였더라면, 야물딱스러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해요.

을 더 잘 변호하고, 설명하고 진정한 밤의 장점을 살려주며 소상히 밝혀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전 좀 부족하지만 펜을 놓을 수가 없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어요.

그렇다고 저의 어리버리한 점을 나무라는 건 아니예요.

 

빛의 삼원색이 뭔지 알지요? 빨간, 초록, 파랑입니다.

빨간색과 초록이 합쳐지면 노란색이 되고요, 초록색과 파란색이 하나가 되면 청록색이, 빨간색과 파란색이 합체가 되면 주황색이 돼요.

하지만 그 모든 색을 합치면 흰색이 나옵니다.

흰색은 색을 모조리 흡수하면 만들어져요. 다시 토해 내 빛으로 발산하는 것이지요.

그걸 낮에 비추는 해에 견준다면요.

밤은 까만 색, 어둠이지요. 까만색은 낮에 비쳤던 모든 색들의 잔치상을 쉬게 하려고 이불을 덮어주는 거예요.

다음날 더 밝은 빛으로 살라고요.

너무 착한 밤입니다.

우린 해석의 한 끝 차이로 이렇게 많은 차이, 견해를 발견할 수 있게 돼요.

그런 해석을 할 능력은 바로 사고의 확장공사를, 리모델링을 하려는 시도에서 생긴 건 아닐까요? 계속 세상에서 익혀왔던 낡아 빠진 언어들, 익숙한 낱말들을 재창조하려고 전 도전하고 있어요.

우리 다 같이 그런 도전에 뛰어들어 가 볼까요? 그럼 세상은 더 환하게 빛날 거예요.

빛나게 하는데 한 표 던질 분을 만나고 싶네요.

 

어둠에서 솟아난 빛이여! 찬란하라!

밤에서 잉태된 빛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