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과학이다

by WHigh2 posted Dec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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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제대로 해봐 인마!" 오늘도 잔소리로 시작하는 주방일. 지긋지긋하다. 우리의 주방장 박상진은 얼마나 잘났는지 주방일을 하는 우리에게 화만 낸다. 지는 오더만 내리지 일이나 하나. "야! 제민이, 웍(wok)질을 얼마나 알려줬는데 아직 그거 하나를 못해?" "웍질이 너무 어려운데 어떡해요!" "니놈 머리통을 돌팔매질 할 수는 없잖아!" 박상진은 언제나 이렇게 애들이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되도않는 아재개그로 응수한다. "야 황원태 넌 또 뭐해! 도수가 이렇게 낮은 술을 넣으면 그냥 증발만 되잖아! 제대로 안하냐!" 이젠 나한테까지 난리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요리는 과학이야. 애들아 알겠어? 과학을 알아야만 요리를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놈의 요리는 과학이다, 과학이다. 2년차된 햇병아리들 데리고 이리 난리다. 주방장이라는 호칭이 아깝다. 그러던 중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얘 좀 봐라? 여기가 군대니? 애들을 왜 갈구고 난리야?" 갑자기 들어온 예린 선배에 박상진은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애들이 뭣도 모르고 하길래..." "야 이 새끼야! 짬밥 좀 처 먹었다고 얼마 안된 애들한테 난리치냐? 말 많다?" 우리의 구세주다. 박상진은 항상 다혈질이지만 무서운 예린 선배가 있으면 이빨 빠진 호랑이다. "....죄송합니다." 박상진은 꼬리를 내리고는 우물우물 대답했다. '..고마워요.' 나는 선배에게 눈으로 말했다. 애들도 다 그렇게 눈짓을 주었다. 선배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야, 우리 그냥 여기 관두고 다른데 알아볼까? 박상진 저 새끼 꼴사나워서 볼 수가 있어야지 원."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레 제민이가 제안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데 사장님께서 좋은 분이시고 우리같은 경력이 낮은 사람들한테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이 정도 주는데도 드물잖아. 그냥 여기서 일 해. 박상진한테는 봉사한다치고."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폐해지. 아오, 빌어먹을!" 제민이는 갑자기 분개했다. "왜 난리야 임마. 제대로 요리사가 돼서 다른 데 취직하면 되지."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취직하기 전까진." 나와 제민은 걸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제민이와 나는 대학교에서 만났다. 외식조리학과를 같이 나오고 마음이 잘 맞아서인지 금방 친해졌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었는데 대학교에서 친구가 생겨서 참 다행으로 여긴다. 여기서 승훈과 도현도 만났고 우리와 동갑이어서 터놓고 지낸다. 나와 제민은 건널목에서 인사를 하고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집에 도착했다. "왔냐." 깜깜함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집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거실을 지나 방으로 향했다. 방에 한 발짝도 내딛기 전이었다. "너 요리 계속 할거냐?" 나는 아버지의 말씀의 의도를 알아 한숨을 쉬었다. "예." "허구한 날 요리만 해서 어떻게 벌어먹고 살래? 지금 돈으로 네가 밥벌이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난 아버지께 아직 방을 향한 채로 서서 대답했다. "아버지, 전 아직 시작 단계예요. 이제 2년 됐는데 아직 별 수입이 없는건 당연하죠. 좀만 경력을 더 쌓으면 돈을 더 벌 수 있..." "취직도 늦게 해서는 퍽도 벌어먹고 살겠다! 그놈의 요리 하겠다고 몇 년을 잡아먹었는지 알긴 해? 그리고, 너 고등학교 때 말했지. 공무원 되면 안정적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다고! 근데 왜 사서 고생에다 돈도 못 벌어!" 아버지는 내가 공무원의 길을 가길 바라셨지만 나는 요리를 택했다.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거고 경력을 쌓아야 돈을 벌텐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는 아버지께 화가 치밀어올랐다. "처음부터 돈 잘 버는 사람이 어딨어요! 경력 몰라요 경력? 아버지는 회사 바로 들어가면 돈 잘 벌 것 같아요? 경력이 더 쌓여야 돈 벌죠! 나도 아직 그 단계라고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길을 안 갔다고 해서 날 인생의 패배자 취급하지 마세요!" 나는 방으로 쿵쿵 들어가 옷을 벗고는 집어던졌다. "젠장!" 나는 드러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현재 돈을 많이 못 버는 건 사실이지만 요리 전공이라 어떻게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고 경력이 좀 쌓이고 공부한다면 금방 자리 잡을 수 있을 텐데 그걸 몰라주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하지만 제일 화가 나는 것은 난 요리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걸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말하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태도다. 난 진짜 요리를 하고 싶은데...

 

 그렇게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고 박상진에게 채이고 채이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영업이 끝난 후 사장님께서 박상진과 예린 선배를 제외한 제민과 승훈, 도현과 나를 부르셨다. "다들, 이리로 좀 와봐요." 우리는 무슨 공지사항이 있나 싶어 홀에 있는 테이블에 마주앉아 사장님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사장님께서 입을 열으셨다. "여러분들께서 요리 경연대회에 참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직 2년차 밖에 안된 애들을 데리고 요리 경연대회에 나간다고?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저희는 아직 2년차인데 벌써 요리 경연대회는 이르지 않을까요?" 기나긴 침묵 끝에 그 정적을 깨며 도현이가 말했다. "에이, 아냐. 무슨 일 있겠어? 예린 선배가 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잠자코 있던 승훈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 후 바로 들려오는 사장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 "예린씨는 경연대회에 못 나갈 겁니다." 우리는 모두 당황했다. 나도 당황해 물었다. "그럼 박상, 아니 주방장님은요?" 순간 본명이 나올 뻔 했다. 다행이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상진씨도 못 나갈거예요." "왜 저희만 요리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하시려는거죠?" "경력의 제한이 있는 아마추어 대회라 그런 것도 있지만 전 여러분의 실력을 믿기 때문에 요리 경연대회에 참가시켜 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갑작스레 눈 앞이 깜깜해졌다. 아직 박상진한테 못 한다고 까이기만 하는데... "아마추어 대회라면 저희도 큰 부담이 없긴 한데... 상금은 얼마죠?" 승훈은 물었다. "500만원이요." 사장님께서 태연하게 대답하셨다. 우리는 다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으로 사장님을 주시했다. "아니 일개 아마추어 대회에서 상금을 500만원씩이나 줘요? 저희는 아직 대회에 나갈 실력이 안 되는데..." 제민이는 자신이 없는 듯 말했다. "저는 상금을 바라고 여러분들을 대회에 참가시키는게 아니예요. 여러분의 실력을 좀 향상시키고 좋은 경험을 만들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예에? 저는 상금을 바라는ㄷ..." 승훈은 눈치없이 말했다. 나는 서둘러 승훈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닥쳐. 이럴 땐 가만히 있는거야."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넉넉하죠? 자 그럼 다들 내일 봅시다." 그러시고는 사장님은 사무실로 총총 들어가버리셨다.

 

 집으로 걷는 도중, 제민과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야, 오늘 박상진 표정 봤냐? 크크! 예린 선배 오늘 완전 사이다였다. 평소에도 애들 잘 챙겨주시긴 하지만." 제민이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인간의 몸에는 물이 70%를 구성하고 있다고 하지. 근데 예린 선배의 몸에는 사이다가 70%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동의했다. "완전 사이다긴 하더라. 아마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런 사이다는 찾을 수 없을 거다." "아 참, 나, 어제 사장님 좋은 분이라고 말했던 거 취소한다." "왜, 갑자기 경연대회에 말도 없이 참가시켜서? 나도 걱정이긴 하다. 솔직히 하고 싶진 않은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하고 싶진 않은데, 꼭 해야만 해." "돈 좀 작작 밝혀라 새끼야. 상금이 500만원이래도 너무 밝히는 거 아니냐?" 갑자기 제민이가 흐흣하며 웃고는 말했다. "아냐 이 새끼야! 이 경연대회에 나가야만 내가 요리사를 할 수 있어. 거기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인정하시겠지." 제민은 알 수 없다는 듯 갸우뚱했다. "인간의 언어를 해라. 뭐라는거야? 인정한다는건 뭐고? 누군데?" "알 거 없어. 나 먼저 간다!" 나는 제민의 어깨를 툭 치며 먼저 뛰어갔다. 뒤늦게 제민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아버지께 인정받을 일만 생각하며 계속해서 뛰었다. 나는 점점 웃음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부터 우리 넷은 예린 선배와 박상진의 지휘 아래 레스토랑 영업 종료 시간인 9시 이후에 요리 특강을 받게 되었다. 항상 버럭하기만 하던 박상진은 선배 앞에서 그저 순종적인 강아지일 뿐이었다. 나는 그 '특강'을 받고 나면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내가 좀 더 성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진짜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았다. 또한 우리는 레스토랑의 정기 휴무일인 월요일에 모여서 요리를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토론을 했다. 경연대회 날짜가 촉박했기에 우리는 항상 분주했다.

 

"메인 메뉴는 소고기 치마살 스테이크로 하기로 했고... 플레이팅은 뭐로 할까? 무난하게 새싹?" 내가 먼저 제안했다. "새싹은 좀 별로고...다른 플레이팅 재료들이 필요해." 제민이 대답했다. "체리나 사과 같은 과일로 할까? 아니면 그걸 좀 졸여서 소스 겸 플레이팅을 해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도현이 제안했다. "과일도 좋기는 한데... 글레이징(Glazing - 익은 음식의 표면을 윤기나게 코팅시키는 조리법)한 채소들은 어때? 요즘엔 당근을 설탕으로 글레이징해서 입가심용으로 쓰면서도 플레이팅을 하더라고." 승훈이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괜찮네."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름 훌륭해." 모두 동의했다. "좋아. 그러면 설탕으로 글레이징한 당근을 플레이팅과 동시에 입가심용으로 두고... 과일은 플레이팅에는 너무 조잡해 보일 수 있어. 아스파라거스를 기름에 살짝 볶고 글레이징한 당근을 오른쪽에 배치시키고, 가니쉬(Garnish, 음식의 외형을 돋보이게 하거나 맛을 더해주기 위해 음식에 곁들이는 것.)한 양송이버섯을 왼쪽에다 배치시키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여기까지 불만 있거나 제안 있는 사람?" 나는 총정리하였다. 애들은 다 불만이 없다는 표시로 고개를 저었다. "플레이팅은 이걸로 완벽해. 이제 디저트에 대해 좀 생각해보자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좋아, 이번엔 예행연습이다." 나는 애들과 토론한 것을 미리 연습해보려 재료들을 사 가지고 깜깜한 집속에서 주방의 불을 켰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하지만 주방과 거실의 거리가 짧은 편이었지만 문이 닫혀있는 상태라 난 개의치 않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티티티틱 탁! 가스레인지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불을 만들었다. 지글지글! 프라이팬에 둘러진 기름은 불길이 타오르듯 달궈지며 열기를 뿜어냈다. 치이이익! 프라이팬에 미리 소금을 뿌려둔 고기가 익으며 침샘을 자극하는 소리와 냄새를 풍겼다. 스으으윽 착! 고기는 뒤집어지며 선명한 고동색으로 익은 밑면 한 쪽을 드러냈다. 철컥 쿵쿵쿵! 프라이팬... 아니 이건 문고리 소리다! "한밤중에 뭐해, 임마?!" 갑자기 아버지께서 문을 여시고는 내게 소리치셨다. "요, 요, 요리 연습해요!" "미친놈아! 민원 들어와 빨리 처 자!" 나는 화들짝 놀란 가슴을 주체 못한 채 어서 가스레인지를 껐다. 그리고 나의 눈에 들어온 한 면만 익은 애매한 소고기. 냉장고에 넣어뒀다 나중에 구울 수도 없고... 레스토랑에 가서 그냥 다시 구워야지 싶어 냉장고에 그 고기를 넣었다. 난 한숨을 하 쉬며 생각했다. '그래도 반반이니 요즘 트렌드에는 뒤쳐지지 않겠군...‘

 

화요일 점심, 점심 시간을 사용하여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요리 경연대회에서 사용할 메뉴를 선택하고 있는 중이었다. "첫 번째로 낼 전채 요리(입맛을 돋우는 역할. 영어로는 Appetizer, 애피타이저. 프랑스어로는 오르되브르)는... 메인이 스테이크로 나올 거니까 생선을 좀 써 봐도 될 것 같은데." 승훈이 제안했다. "첫 번째로 내면 살짝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두 번째로 생선을 사용했지만 무겁지는 않은 요리를 내고 첫 번째엔 육류나 어류를 사용하지 않은 상큼한 요리를 내는 게 좋겠어. 무난하게 오렌지 참소라 샐러드가 괜찮을 것 같은데." 제민의 제안이었다. "음 좋아. 디저트로 파인애플 소르베(프랑스어 표기로 Sorbet, 소르베, 영어 표기로 Sherbet, 셔벗. 과일 주스를 얼린 것)를 하기로 했으니까... 전채 요리 차갑고... 메인 요리 따뜻하고... 디저트 차가우니까... 다른 전채 요리로 따뜻하게 콩소메(Consomme, 프랑스식 맑은 수프)는 어때?" 승훈이 동의하며 방법을 제시했다. "프랑스에서는 다소 천박한 음식 취급은 했지만... 뭐 상관없겠지. 브라운 스톡(Stock, 넓은 의미로는 살코기, 뼈, 생선, 채소 등을 우려낸 육수, 좁은 의미로는 그렇게 우려낸 육수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고형화한 조미료)하고 미르푸아(Mirepoix), 부케 가르니(Bouquet garni), 머랭(Meringue)이 필요한데, 쉽게 말하자면 당근, 다진 양파, 셀러리와 파슬리, 월계수 잎, 마지막으로 달걀 흰자. 근데 콩소메를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내가 물었다. "끓이는 것만 45분. 제한 시간은 50분." 도현이 대답했다. "꽤나 오래 걸리네. 브라운 스톡까지 거기서 만들긴 무리고 전날 끓여서 식힌 다음에 가져와야겠다. 그래도 우리 레스토랑이 명색이 프렌치 레스토랑이고... 조합을 봐 왔을 때 콩소메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 같다. 시작 할 때 콩소메부터 건드려야겠네."

 

 다음 날 우리는 레스토랑 주방에서 정신없이 일을 했다. 요리하고 있는 스테이크에 열중하며 고기를 뒤집으려던 찰나, 갑자기 사장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경연대회에 나가게 될 네 분 이리로 와봐요." 사장님께서는 우리를 개인복으로 갈아입게 하시고는 레스토랑 밖으로 이끄셨다. 그런 사장님의 발길을 따라 간 곳은 다름 아닌 프렌치 레스토랑. 우리가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중인데 타 프렌치 레스토랑을 가다니?! 어쨌든 우리는 사장님을 따라 그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조용한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자, 제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대회에 참가시켜서 죄송합니다. 경연대회에 대한 메뉴나 조리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과의 의미로 이렇게 한번 식사를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또한 프렌치 레스토랑에 오면 우리 레스토랑에 없는 메뉴들도 꽤 있을테니 참고하시면 어떨까 하고 오게 되었어요." 사장님께서는 미안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곧 음식들이 차례차례 나왔다. '추석에 전 부치면 속 느글거려서 전 못 먹는 것 같은 느낌일까...' 추석은 조금이지 우리는 항상 프랑스 요리를 하기 때문에 그 아름답고 다채롭다는 프랑스 요리 앞에 앉아있자니 속이 울렁거렸다. 누구 하나 포크를 들 생각을 못했다. ...승훈이만 빼고. "야, 맨날 이런 음식만 하는데 넌 안 질리냐?" 내가 사장님께 들리지 않도록 말했다. "왜? 맛만 있구만!" 당당한 승훈이었다. "그래, 네가 못 먹는 게 없다는 걸 깜빡했다." 나는 비꼬았다.

 

"대회에서 만들 메뉴는 다 정했나요?" 요리가 나오기까지 차를 두고 있던 그 때 사장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셨다. "아, 네. 순서대로 콩소메, 오렌지 참소라 샐러드, 소고기 치마살 스테이크, 마지막으로 파인애플 소르베를 할 예정입니다." 사장님께서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셨다. 난 그 의도를 알아채고는 바로 목소리를 장난스럽게 만들고는 대답했다. "지금 오르되브르(Hors-D' oeuvre, 식사에서 제일 먼저 제공되는 식욕을 돋워주는 요리)가 두 개 있다고 생각하셨죠? 정답입니다. 근데 요즘엔 또 퓨전이 유행하죠. 프랑스와 한국의 퓨전입니다. 보십시오. 정통 한식당에 가면 가장 먼저 구절판을 주지 않습니까? 구절판의 재료들을 보면 채소가 대부분이고 육류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는 해산물이 들어간 전 같은 음식들이 서서히 나오며 육류가 나오게 되죠. 프랑스에선 오르되브르로 찬 음식을 내놓는 것을 고급으로 하고 앙트레(Entree, Entry에서 나온 입구, 처음의 요리)로는 뜨거운 음식을 내놓는 것을 고급으로 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한국에선 한국법을 따라야죠. 어차피 프랑스의 식사로는 오르되브르 - 앙트레 - 본요리 - 프로마주(치즈) - 후식이 기본인데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프로마주를 그냥 주진 않지요. 요즘 유행하는 퓨전을 해봤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은 뜨신 국물 없으면 안 돼서 저급요리 취급당하는 콩소메를 넣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사장님께선 날 보고 빙긋 웃으셨다. "말만 길지 내용은 실없네요. 하핫, 농담입니다. 일리 있네요. 여긴 한국이지 프랑스 요리를 한다고 굳이 프랑스의 방법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죠." 제민이는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근데 퓨전은 모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합체 대사 아니냐?" 우리는 모두 하하 웃었다.

 

식사가 끝난 뒤 제민과 나는 집으로 같이 걸어갔다. "맛은 괜찮았는데, 왜 소고기를 주로 하는데 육회는 없지?" 제민이 궁금한 듯 물었다. "육회는 한국 음식이잖냐. 내가 퓨전 우려먹었다고 육회하고 스테이크까지 퓨전 하려고 하냐?" "아니 뭐 둘 다 맛있는데 아쉽다 그거지." 그 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날 스쳐지나갔다. "야, 야. 내가 좋은 생각이 났는데." 하며 내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봉지에 담겨있는 어제 한 면만 구운 소고기를 주었다. 나는 빙긋 웃었다. "육회랑 스테이크를 한 번에 먹을 수 있어. 먹을 거냐?" 제민도 빙긋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난 제민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 '또라이 새끼....‘

 

"오, 뭐예요. 벌써 대회 명단에 저희가 들어간 거예요?"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분주히 하고 있던 어느 날 잠시 화장실에 갔다 나와 보니 애들이 종이를 사장님께 건네받고는 보고 있었다. 그 것은 다름 아닌 요리 대회 팜플렛. 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


- 심사위원 명단


- 이해린 심사위원


- 김재진 심사위원


"근데 심사위원이 두명 밖에 없네요? 아마추어 대회라 그런 건가요?" 나는 궁금해 물었다. 사장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마추어 대회라 그런 건지 심사위원은 그리 많질 않네요. 게다가 대부분 투표 형식을 사용하는데, 두 명이 토론을 한 이후 우승자를 결정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인데..." 사장님께서 끄덕이셨다. "아마 여러분들과 나이는 비슷할텐데 명문대학교를 1년 조기졸업한 영재들이라고 해서 심사위원으로 뽑혔대요." "대학교 조기졸업은 1년이 최대일텐데... 대단하긴 하네요. 뭐, 그런 거 중요할 거 없고 저희 명단이나 봐야죠. 저희가 몇 팀이죠?" "2팀이요." 사장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눈길을 2팀 쪽으로 끌었다.


- 2팀 참가자 명단


- 황원태


- 김도현


- 안제민


- 차승훈


 나는 놀랐다. "오, 진짜 나와 있네요." "왜 내가 맨 마지막이야?" 승훈은 불평했다. 그런 승훈을 보고는 도현은 크크 웃었다. "주최측에서 우리 요리 실력을 알고 차례대로 배치해 뒀나보지." 승훈은 본인 성격답게 발끈했다. "뭐야?" 그 때 도현은 뭔가를 발견했다. "야,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승훈도 멈추고는 보았다. 난 애들의 반응이 이상하여 팀 이름쪽을 보았다. '핵노답...4인방...' 승훈은 잠시 할 말을 잃고는 아름다운 명대사를 읊었다. "실화냐?" "아니 근데 이거 누가 팀 이름을 만든 거예요? 저흰 이런 거 토론하지도 않았었는데?" 제민은 당황해서 물었다. 사장님도 역시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음... 아마 대회 신청 할 때 팀 이름까지 정했을텐데... 제가 신청을 부탁드렸던 분이 누구더라..." 그 때 누군가의 당당한 외침. "제가 신청했습니다. 제가." 박상진이다! 박상진은 주방에서 나온 채 웃음을 잔뜩 띠고는 당당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희가 딱 그래 보이던데, 어떠냐? 친절하게 외국인들을 위하여 영문명까지 달아줬지. 'Nuclear Non-Answer Four Guys'라고. 어때? 정말 주옥같은 이름 아니냐?" 우리는 잠시 할 말을 다시 잃고는 박상진에게 도약했다. "이런 주옥같은 놈을 봤나, 하는 말마다 주옥같네! 야, 밟아! 밟아!" 우리는 박상진을 넘어뜨리고는 밟았다. 박상진의 입 밖으로 항복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억... 케헥! 야.. 애들아! 애들아! 잘못했어! 어헉! 아윽!"

 

 메뉴 선정이 끝난 우리는 한바탕 얻어맞은 박상진에게 요리법을 배우게 되었다. 장난기 많고 남 탓 잘하던 박상진은 어디가고 사뭇 진지해진 모습만이 남았다. "너희들 소고기 채끝살 스테이크 할 거라고 했던가?" "예." "그러면 일단 소금 뿌리는 방법부터 알려줘야겠네. 일단 소금을 제대로 뿌리지 않으면 그 스테이크는 완전히 망했다고 할 수 있어. 두꺼운 스테이크 내부로 소금들이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모푸쿠>의 한국계 셰프 '데이비드 장'이 말했듯 '스테이크를 구울 때 겨울 뉴욕 길거리에 쌓인 눈만큼' 소금을 뿌려야 해." "그럼 소금은 언제 뿌리면 돼요?" 도현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야. 스테이크 내부에 바로 소금이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에 삼투압을 통해 고기의 수분이 빠져 나와 소금과 섞여 표면으로 올라와 염지액이 되었다가 다시 스며드는 시간, 40분. 굽기 40분 전에 소금을 뿌려. 대회 시간이 50분이니까 그냥 가장 먼저 시작할 때 소금을 뿌려둬. 던니스(Doneness, 익은 정도)는 어떻게 할거야?" "미디움(Medium)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대답했다. 박상진은 끄덕였다. "조리용 온도계 사용할거지? 옆면에 찔렀을 때 레어(Rare)는 49도, 미디움-레어(Medium-Rare)는 52도, 미디움은 54도야. 잘 알아둬. 이제 남은 날이 한 달도 안 남았지? 경력 얼마 안 된다고 기죽지 말고 잘 해라.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요리는 과학이다." 웬일로 박상진이 오글거리는 멘트까지 해댄다. 우린 잠시 감동했다. 박상진이 갑자기 생각난 듯 멈칫했다. "참, 상금 500만원이니까 너희 4명이 100만원씩 가지고, 내가 지도했으니까 나한테 100만원 줘라. 아니면 집단폭행죄로 너희들 경찰에 다 신고한다. 알았지?" 우린 박상진의 당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역시 어디 가지 않은 박상진이었다.

 

영업이 끝나고 홀 정리를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하지만 요새는 요리 연습을 하느라 레스토랑에 두 시간이나 남아 있는다. 평소보다 피곤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요리 대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요리를 완벽히 끝내겠다는 집중력 때문인지 나를 비롯한 박상진이 칭하는 '핵노답 4인방'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피곤한 줄도 몰랐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시간은 넉넉했다. 그 넉넉한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바쁘게 준비했지만 항상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넉넉했던 나날들은 지나가고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요리 대회는 바로 내일,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너 요즘 맨날 늦는다? 사장이 막노동이라도 시키디?" 깜깜해진 자정에 가까운 밤에 집에 들어오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냥 요리 대회가 있어서 배우고 연습하느라 늦는 거예요." "언젠데?" "바로 내일이요." 나의 대답을 끝으로 아버지와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장본인은 다름 아닌 아버지. "원태야." "예." "너, 진짜 요리 하고 싶냐?" 나는 아버지께서 무슨 대답을 바라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예." "너, 지금 내 입장에서 굉장히 한심해 보인다는건 아냐?" 역시 그놈의 시비다. 난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하지만 제가 뚫은 좁은 광산 속의 통로고 이제 돌아갈 길은 없어요. 그리고 그 통로를 더 뚫다 보면 금광석이 나올 거고요." "그 통로를 더 뚫기 전에 그 광산의 붕괴는 생각 안 하냐? 이제 요리는 거의 붕괴 직전이야. 곧 몇 년 안 돼서 요리사를 대체할 인공지능이 네가 지금 파고 있는 광산을 붕괴 시킬 거라고." "하지만 인공지능이 처리하지 못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도 훨씬 많아요. 요리도 아직까진 그중 하나고요." "좋아. 인공지능이 이식된 요리 기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자. 하지만 네가 요리사가 된다는 확신도 없잖아? 1등을 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성의 끈이었을까. 나는 무의식중으로 집을 뛰쳐나왔다. 어렴풋이 아버지께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으나 나의 뇌는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을 거부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가로등이 환히 켜져 있는 가로수길을 걷고 있었다. 난 고민을 하다가 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야. 나 너희 집에서 오늘 하룻밤만 자도 되냐?" "뭐? 아니 뭐 상관은 없긴 한..." "간다." 나는 제민의 말을 싹둑 잘라버리고는 제민의 자취방에 뛰어갔다.

 

난 제민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여, 빨리 오네.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 제민이 궁금한 듯 갸우뚱하며 물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어, 음. 뭐. 그냥. 일이 좀 있어서." "알았어. 나 라면 끓여 먹을 건데 너도 먹을 거면 하나나 두 개 더 끓인다. 먹을 거냐?" 나는 라면을 먹을까 생각했지만 화가 나서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니. 배 안 고파." "알았어." 나는 제민이 라면을 끓이는 동안 가만히 앉아서 화를 가라앉혔다. 그러는 동안 화는 많이 가라앉았고, 제민이 라면 받침대를 놓고 라면 냄비를 들고 올 때쯤 내가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작스럽게 엄청난 허기가 나를 덮쳐왔다. "야, 나 한 입만." 라면을 먹으려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들고 막 입에 넣으려던 멈추고는 제민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엄청난 분노가 섞여있는 듯한. 내가 반쯤 익힌 소고기를 제민에게 주었을 때처럼 난 제민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형 같은 새끼...‘

 

다음 날 난 제민과 함께 택시를 잡아 타고는 요리 경연대회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아직 도착한 팀은 별로 많지 않았고, 그 곳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사장님과 예린 선배, 박상진이었다. "여, 왔냐. 핵노답 4인방 중 2명." 박상진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얻어터졌건만 정신을 못 차린 듯 싶다. 그런 박상진을 외면하고 사장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는 예린 선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오늘 경연대회인데 힘내라. 많이 떨리니?" 선배는 반갑게 대답해주었다. "흠, 좀 그렇기는 한데 많이 준비해서 막 그렇게 막막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나와 제민은 싱긋 웃었다. 순식간에 대답을 무시당해버린 박상진은 다소 시무룩해보였다.

 

요리 경연대회 시작 시간에 임박하자 많은 팀들이 도착하였다. 이윽고 승훈과 도현도 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시작 시간이 되자 심사위원들이 경연장 맨 앞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 심사위원석에 앉았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듯 나이는 우리와 비슷해보였다. '왼쪽에 착석한 사람이 이해린 심사위원, 오른쪽이 김재진 심사위원인가보군.' 나는 바로 스캔을 시작하였다. '이해린 심사위원은 똑똑하고 차분해 보인다... 왜인지 모르게 중학교 1학년 1학기 1회고사에서 전교생 311명중 전교 4등을 했을 것처럼 보이는군. 그에 반해 김재진 심사위원은... 흐리멍덩하고 똑똑해보이진 않는군. 또 왜인진 모르겠지만 중학교 1학년 1학기 1회고사에서 전교생 311명중 전교 30등쯤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이야....' 내가 스캔을 마쳤을 때 쯤 진행자가 나와서 진행을 시작하였다. "요리를 펼쳐라! 여러분만의 요리를 펼치십시오! 환영합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수 소리는 경연장을 가득 채웠다. "그럼 각 심사위원 분들의 소개가 있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이해린 심사위원과 김재진 심사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요리 심사를 맡게 된 이해린입니다." "어, 음. 반갑습니다. 저도, 여러분의 요리 심사를 맡게 된 김재진입니다. 여러분을 만나 기쁩니다." 다시 한 번 경연장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고, 심사위원들은 착석하였다.

 

 진행자는 진행을 이어갔다. "자 그럼 팀 소개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 팀은, '요리에 반하다' 팀! 소개 멘트는 '요리로 심사위원들을 반하게 만들겠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야, 요리에 반하다가 뭐냐? 겁나 구리고 느끼하네." 승훈이 갑자기 우리에게 귓속말을 했다. "닥쳐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잖아." "아 맞다 빌어먹을..." 진행자는 계속 진행을 이어갔다. "자, 그럼... 두 번째 팀... 오우! 팀 이름이 특이합니다. '핵노답 4인방' 팀! 소개 멘트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 이거 소개 멘트 누가 쓴 건가요? 어쨌든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경연장에서는 큰 웃음이 일었다. 그리고 우리는 쓰는 줄도 몰랐던 소개 멘트에 당황했다. "아 박상진 이 새끼 소개 멘트까지 이따구로 적어놨어! 아주 인성.." "흐흐흐흐." 제민이 분개하여 울분을 터뜨리는데 갑자기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름 아닌 도현의 웃음이었다. "야, 얘 실성..." "크흐흐흐흐..." 근데 웃음도 전염된다 하지 않았던가. 제민도 웃음에 전염됐는지 낮은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그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담담함을 유지하던 승훈도 자제력을 잃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민도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흐흐흐.." "히히히히히히히!" "끅끅끅끅끅..." "크흐흐흐흐흣.." 우리는 다 실성하여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생각을 잃어버렸다. "대환장 파티군요!" 진행자가 한 마디 했다.


 "자, 그럼 여덟 팀 모두 소개를 마쳤구요! 이제 심사위원분들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이해린 심사위원과 김재진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들었다. "제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역량도 부족한데 이런 요리 대회에서 심사를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심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해린 심사위원은 싱긋 웃었다. "저도 이해린 심사위원님과 같은 처지긴 하지만 전 제가 심사를 할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전 대단한 사람이니까요! 하하, 농담입니다. 감사합니다." '뻔뻔함의 극치로군...'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진행자가 다시 멘트를 시작했다. "자, 그럼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한다....' 나는 눈을 감고는 심호흡을 했다. "제한 시간은 50분이며, 주제는 양식입니다! 타이머를 맞춰주십시오! 요리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타이머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야!' 나는 눈을 부릅 뜨고는 식재료들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우선 소금을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숙성된 소고기 채끝살에 소금을 폭설이 지나간 듯이 뿌렸다. "우선 콩소메와 샐러드 먼저 시작해! 소르베는 녹고, 스테이크는 식으니까!" 나는 외쳤다. 도현은 브라운 스톡을 먼저 끓이기 시작했고, 승훈은 물을 끓이며 참소라를 삶을 준비를 했다. 또한 제민은 파인애플 소르베 아래에 깔 파인애플 껍질을 벗겨냈다. 경연장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고, 내 심장은 그 소리들이 개의치 않은 듯 떨며 더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나는 소금을 다 뿌리고 나서 재빠르게 콩소메에 들어갈 당근, 양파, 셀러리를 손질했다. 도현도 나를 옆에서 도왔다. 그 사이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20분 남았습니다!" 진행자가 현재 상황을 알려주었다. 승훈은 참소라를 삶아 식힌 후 먹기 좋게 잘라내어 미나리와 오렌지, 참소라가 색감이 좋게 어우러지고, 그 위에 연겨자를 뿌린 오렌지 참소라 샐러드를 완성했다. "샐러드 완성했어!" "잘했어! 일단 저기 위에 올려놔!" 나는 음식을 나를 바퀴가 달린 선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시 후 나와 도현은 다진 쇠고기, 머랭, 당근, 셀러리, 양파, 파슬리를 헝겊에 걸러 맑고 투명한, 하지만 먹음직스러운 콩소메를 완성했다. "콩소메도 끝났어!" 나는 외쳤다. 그리고 몇 분 후에 제민은 얼려놓은 파인애플 간 것을 이용해 아래엔 파인애플, 중간엔 파인애플 소르베, 그리고 가장 위에는 바닐라빈과 그 위에 새싹이 얹어져 있는 예쁜 파인애플 소르베를 완성했다. "8분 남았습니다! 서둘러주세요!" 진행자가 다시 시간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한숨을 돌렸다. "이제 끝난건가? 후, 떨린다." 승훈이 말했다. "그런 것 같다. 이제 종만 치면 되는데.. 빨리 쳐. 빨리 칠 수록 우리 음식의 시식 순서가 더 빨라지니까." 제민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도현이 종을 치려는 찰나, 제민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 갑자기 제민의 얼굴이 경직이 되며 창백해졌다. "왜 그래?" 우리는 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우리 메인디쉬!" 우리는 다 경직이 되어 서로를 쳐다봤다.

 

"일단 빨리 가스레인지 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도현이는 우선 센 불로 크러스트(Crust, 스테이크의 겉면의 바삭한 부분)를 만들고, 승훈이는 아스파라거스랑 양송이 버섯을 손질하고 구워! 글레이징한 당근은 만들었고, 제민이는 구울 때 옆에서 도와줘. 빨리!" 나는 지시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현재 남은 시간은 6분. 크러스트를 형성하는데 2분, 굽는 시간 5분... 시간이 모자라... 포기해야 하나?' 나는 반 포기 상태로 절망스러운 표정이 저절로 나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구울 수 있는 거... 횟집에서 주는 생선구이 철판? 철판은 너무 느리게 식어... 심사 도중에도 계속 가열하면 반칙... 가만... 횟집... 과학... 과학적으로...? 잠깐!' 나는 조리도구 보관함으로 달려가 미친 듯이 도구들을 찾았다. 그리고는 발견했다. "있다...!" 나는 애들에게 달려갔다. "애들아!" 그러고는 우리가 박상진에게 지겹도록 까이고 욕 먹으며 들어왔던 바로 '그 말'을 꺼냈다. "요리는, 과학이다!" 내가 들고 있었던 것은 횟집에서 쓰던 판. 흔히 콘치즈를 담아 가열하여 나올 때는 뜨겁다가도 곧 있으면 식는 이 콘치즈 판이 스테이크를 익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애들도 이 걸 보고는 어떻게 마음이 통했는지 다 얼굴이 환해졌다.

 

"크러스트가 형성됐으면, 일단 약불에 한 면만 조금 더 구워! 저기 판 가열하고, 30초쯤 남으면 그 때 반대편 면을 판에다 구워!" "알았어!" 남은 시간은 1분. 다른 팀들도 우리 사정을 알았는지 흥미진진하게 구경했고, 심사위원들은 우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30초 남았습니다! 한 팀만이 남은 상황!" 나는 한 면만 익혀진 스테이크를 들어 뜨거운 콘치즈 판에 올렸다. 구워진 한 면은 먹음직스러운 갈색 빛을 띄고 있었다. "글레이징한 당근, 구운 아스파라거스, 가니쉬한 양송이버섯을 접시 위에 먼저 올려! 심사 때가 되면 그 때 스테이크 올릴게!" 그 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0! 9! 8! 7!" 제민은 접시 플레이팅을 완성했고 선반에 접시를 올려 놓았다. "6! 5! 4! 3!" 나는 콘치즈 판에서 치이익 소리를 내며 고기가 익는 소리를 확인했고, 선반을 향해 뛰어갔다. "2!" 나는 뛰어가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종을 향해 다시 뛰었다. "1!" "띵!" 1이라고 카운트다운을 하는 소리와 함께 청명한 종소리가 압박감이 가득한 경연장을 새로이 가득 채웠다. "2팀, 음식 완성했습니다!" 나는 외쳤다. '제발, 무사하길!‘

 

 심사위원들은 가장 빨리 음식을 완성한 팀부터 음식을 시식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심사위원분들께서 시식을 하신 후에 심사평을 하지 않고 결과 발표 이후에 우승 팀만 심사평을 하실 예정입니다. 먼저 종을 친 5팀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진행자가 말했다. 고기가 타거나, 혹은 안 익거나, 기적같이 잘 익거나.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저 떨며 운에 맡길 뿐이었다. "최소 20분 동안은 둘테니... 안 익더라도 레어까진 익겠고 타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겠어." 나의 물음에 도현이 답했다. 나는 완전히 망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오르되브르와 소르베에 신경을 좀 덜 쓰고 스테이크에 신경을 썼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종을 친 2팀의 음식을 심사할 차례입니다." 진행자는 말했다. "우선 내가 나가서 세팅할게." 난 그렇게 말하고는 떨리는 마음으로 선반을 이끌고는 심사위원석으로 이동하였다. 나는 먼저 오르되브르인 콩소메를 서빙했고, 그 다음 오렌지 참소라 샐러드를 서빙했다. 그리고 메인 디쉬인 스테이크를 이미 플레이팅이 된 접시에 올리기 위해 스테이크를 들어올렸다. "원래 스테이크는 먼저 접시에 올린 후 플레이팅을 하는데, 남은 열을 통해 익힌 후 접시에 올리는군요! 좋은 임기응변입니다." 진행자는 말했다. 심사위원들도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나는 마지막 파인애플 소르베까지 서빙한 후 심사위원들의 시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심사위원들은 콩소메와 샐러드를 차례대로 먹어보고는 끄덕였다. 그 다음 심사위원들이 스테이크를 시식하기 위해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하였다. 난 시력이 안 좋은 탓에 스테이크의 익힌 정도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스테이크를 시식한 심사위원들의 무반응은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파인애플 소르베까지 심사위원들의 시식이 끝난 후에 난 심사위원들이 먹은 음식 접시를 들고 심사위원석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그 때 김재진 심사위원이 나를 불렀다. "잠시만요. 혹시 그 스테이크를 익히신 판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어리둥절하였다. "물론입니다." 나는 김재진 심사위원에게 콘치즈 판을 가져다 건네주었다. 김재진 심사위원은 콘치즈 판의 열기를 확인하려는 듯 손등을 콘치즈 판 가까이에 가져갔다. "흠, 좋습니다." 김재진 심사위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나에게 콘치즈 판을 돌려주었다. 나는 내려오며 불안한 마음에 콘치즈 판의 열기를 손등으로 확인하였다. 열기는 미적지근하여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너무 덜 익었던건가?' 난 의미심장한 김재진 심사위원의 웃음에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난 팀 자리로 돌아왔다.


 시식이 끝난 후, 심사위원들은 우승 팀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탈락하겠지?" 도현이 시무룩해하며 말했다. "메인 디쉬를 이렇게 허무하게 망쳤다는 것이 큰 타격이겠지..." 제민도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나는 말했다. "지금 메인 디쉬를 망친 것이 가장 큰 후회일텐ㄷ..." "쉿, 조용히 해. 이럴 땐 후회가 없다고 말하는거야." 나는 분위기를 좀 바꾸기 위하여 승훈의 말을 자르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몸만큼은 속일 수 없다고 했던가. 내 몸은 긴장감에 점점 떨리기 시작하였다.

 

긴장감이 나의 발 끝부터 조여와 손까지 차가워졌을 때쯤 토론이 끝났다. "그럼 우승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우승 팀 발표는 이해린 심사위원님께서 진행하시겠습니다." 진행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해린 심사위원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우선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설령 우승하지 못하시더라도 모두들 훌륭하셨고 앞으로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나이 어린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요." 이해린 심사위원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경연장에서도 작은 웃음이 일었다. "자, 이제 우승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긴장감은 여전히 나를 짓눌렀고 조여왔다. 경연장 전체는 정적을 유지하며 나와 다를 바 없이 모두 긴장감에 휩싸인 듯 했다. "우승 팀은 바로..." 난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는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하였다. 이해린 심사위원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 2팀, '핵노답 4인방' 입니다! 축하합니다!" "어?" 우리는 이해린 심사위원의 뜻밖의 대답에 놀라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우리는 어안이벙벙하여 멀뚱히 서 있었다. 박수 소리는 우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날아올랐고, 사장님과 예린 선배의 함성 소리는 나의 귀를 파고들었다. "야! 우리 진짜 우승했어!" 우리는 긴장감과 억압감을 몰아내고 우리를 에워싼 행복감에 취해 서로를 얼싸안고는 함성을 질렀다. 심사위원들은 우리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그럼 심사위원분들의 심사평이 있겠습니다." 진행자는 말했다. 먼저 이해린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들었다. "우선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메뉴들이 전체적으로 훌륭했고, 콘치즈 판을 이용하여 스테이크를 가열하셔서 타거나 아예 안 익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미디움으로 아주 잘 익었습니다. 순발력에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해린 심사위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김재진 심사위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어, 음. 저도 잘 먹었습니다. 저도 굉장히 걱정했던 부분이, 저 열로 스테이크를 어찌저찌 잘 익혔다 치더라도 레스팅(Resting - 일종의 뜸 들이기. 가열한 스테이크를 다른 따뜻한 그릇에 옮겨 잔열로 육즙이 빠져나가 고기가 퍽퍽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과정)을 하지 않으면 맛이 없거든요. 근데 예상 외로 육즙이 살아있었고 부드럽더군요. 제가 그래서 콘치즈 판을 달라고 부탁해서 열기를 확인한건데, 빨리 식는 콘치즈 판이 스테이크를 익힘과 동시에 레스팅 작업까지 동시에 하지 않았나 싶네요. 의도치는 않으셨겠지만 굉장히 신박한 방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진 심사위원은 마이크를 놓았다. "요리는 과학이라더니, 과학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행자도 한 마디 했다. 나는 콘치즈 판을 쓰는 방법이 통했고 생각치 못했던 부분까지 잡아준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야, 우리 사진이나 찍자!" 다른 팀들이 가고 심사위원들이 내려오자 제민이 제안했고 난 즐겁게 그 제안을 수락했다. "사장님하고 예린 선배 좀 모시고 와." 난 관중석으로 달려갔다. "사장님, 저희랑 사진 한 번 찍으시죠." 난 사장님께 제안했다. "물론이죠. 수고했어요 원태씨. 아 참. 저기 아버님 와 계시던데 한 번 뵈세요." "아버지요?" 난 당황했다. 그리고 정말로 사장님께서 가리키셨던 곳에 아버지께서 저만치서 날 보고 계셨다. 난 또 무슨 시비를 걸러 오셨나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버지께서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또 무슨 시비를 거시려고요?" 난 퉁명스럽게 물었다. 뜻밖에도 아버지는 빙긋 웃으셨다. "아니, 그런 거 아니다. 너 요리 계속 하라고." "예?" 난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잠시 이해가 안 갔다. "너. 요리 계속 하라고." "진짜요?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어요?" 난 놀라서 물었다. "별 거 아니다. 너 요즘에 웃는 것도 잘 못 보고 항상 의욕이 없어 보였는데, 이번에 요리 하는 걸 보고 네가 요리를 하면서 진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식이 행복하면 그걸 따르는 게 부모의 도리 아니겠니. 그리고...." '그리고...?' "인공지능이었다면 너 같은 재빠른 판단을 하지 못했을 거다." 아버지께서 빙긋 웃으셨다. "...고마워요 아버지." 난 감동하여 눈물이 고였다. "물론 인공지능이었다면 메인 디쉬를 까먹는 심각한 사고 따위는 저지르지 않았겠지. 허허!" 갑자기 눈물이 눈물샘으로 쏙 들어갔다. 정말이지 무드 파괴자시다. "아, 아버지는 진짜..." 난 아버지가 농담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아버지께선 여전히 웃고 계셨다.

 

"부자의 다정한 화해와 대화라니. 아, 감동적이어라!" 박상진, 아니 우리의 주방장이었다. "지금 100만원 어찌저찌 빼돌리시려고 그러시는거죠?"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농담이지. 사진이나 같이 찍자!" 난 박상진, 아니 주방장과 아버지와 사장님을 모시고는 심사위원과 우리 '핵노답 4인방'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야, 애들아! 명대사나 좀 날려보자! 요리는 뭐다?" 우리의 주방장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도 크게 대답했다. "과학이다!" 찰칵. 셔터음이 경연장에서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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