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없는 자식

by 황혼 posted Dec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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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없는 자식

 

 고등학생인 영호는 무난한 가정 환경에서, 넉넉하진 못해도 결코 부족하다 하지 못할 가정에서 살아왔다. 아버지는 비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으실 지라도 분명 영호와 동생들을 사랑하셨고, 아름다우신 어머니는 항상 곁에서 영호를 지켜보며, 영호의 학교 생활을 도와주시고, 응원하셨다. 1살 밑의 남동생 자호와도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로 유지해왔고, 4살이나 차이나는 여동생 민희에게도 듬직한 오빠 노릇을 해왔다 말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가정의 장남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집을 자주 비우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의 집안일을 열심히 거들면서도,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촉망을 받는 모범생으로, 학생들의 부러움의 대상인 우등생으로 지내왔다.

 

 2013년의 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0년이라는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20여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사랑을 어떠한 흠집조차 없이 견고하게 이어갔다. 영호에겐 그렇게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러리라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흐르는 알 수 없는 기류를 느낌에도, 그저 다정한 모습만을 보아 여느때와 다름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 월요일이지? 정영호, 이번주 주번은 너다.”

 

 , 선생님

 

 자 그럼, 오늘도 열심히 하도록 하고, 민주는 교무실로 잠깐 따라오자

 

상쾌한 아침의 기분을 채 느낄 새도 없이, 영호는 도구함에서 빗자루를 꺼내 들고있다. 주말 내내 쌓인 먼지를 들이마시며 교실을 쓸고 닦아내고 나니, 숨 돌릴 틈도 없이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좋은 아침~!”

 

수학 선생이 교실문을 열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특별히 나쁘다고 할 아침은 아니지만, 월요일 아침인걸 뻔히 알면서 좋은 아침이라는 소리를 해대는 저 선생은 양심이나 언어능력 둘 중 하나는 결여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 그래서, 이 엑스 더하기 육! 이라는 식에, 삼 엑스 하고 칠!을 더하면 오 엑스에 십이다~. 이해했지? , 오늘은 여기까지.”

 

알고싶지도 않은 내용을 쉴새없이 내뱉는 수학이 1교시의 끝을 알린다. 이번주는 가정 방문 주간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수업은 없다. 2교시 종이 치자 다시 담임이 문을 발칵 열고 들어온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오늘은 가정 방문이 있다. 오늘 방문 대상자는 이승훈, 정가연, 정영호 니까 세 명은 선생님이랑 같이 가고, 나머지는 자습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귀가해도 된다.”

 

 차려! 경례!”

 

 행복하세요~”

 

반장이 구호를 외치자 개학 첫날에 정한 우리 반만의 방식으로 인사를 올린다. 아직도 이 대사를 뱉노라면 손가락이 오글거려 미칠 지경이지만 보름이 되어가니 그러려니 적응이 되는 것 도 같다.

 

가정방문은 간단하다, 말 그대로 가정에 방문하여 학생의 부모를 찾아뵙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인사나 나누면 끝이다. 승훈이와 가연이는 먼저 끝났고, 집이 가장 먼 영호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다. 선생님과 단 둘이 차에 타 있으려니 어색한 공기가 무겁게 영호를 짓누른다.

 

엄마~ 나왔으니까 문열어~”

 

초인종을 누르고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는 전업 주부이고, 아버지는 중소기업의 차장이시다. 항상 아버지는 이 시간에 회사에 계시기 때문에, 열쇠를 들고 가는걸 자주 잊어먹는 영호는 어머니를 불러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다.

 

아들 왔니. 옆에 분은 누구시고?”

 

회사에 계셔야 할 아버지가 상기된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신다.

 

우리 담임 선생님. 오늘은 가정방문이라 같이 왔는데. 아빠는 아직 출근을 안했나봐요?”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지신다. 자세히 보니 부엌에 있어야 할 그릇들이 깨진 채로 현관에 나뒹굴고 있다.

 

선생님이시구나, 안녕하세요, 영호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영호 담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가정 방문은 다음에 하셔야 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영호는 당분간 학교를 나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영호와 선생님 모두 무언가 벌어졌다는 것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 학교를 나가지 못한다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일이 분명하다.

 

….,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버님. 영호 출석에 관한 건 영호에게 말씀해주시면, 영호가 저에게 연락할겁니다.”

 

선생님이 긴장한 모습으로 인사하고 떠나가신다. 현관을 들어서니, 모든 가구는 다 부서져 있고 깨져있다. 엄마는 부엌에서 무어라 소리를 질러대며 물건을 모두 때려부수고 있다.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얼마나 된다고 소리를 빽빽 질러?! 나도 너 같은 남자 필요 없어,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아내가 바람을 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봤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하고 내 집에서 나갈 준비나 해, 도장부터 챙기고, 애들은 내가 키울거야, 영호 너는 잠깐 나가있고 아빠가 연락할 때 까지 동생들이랑 잠깐 밖에 있어.”

 

상황을 대충 짐작한 영호가 조용히 짐을 풀고 다시 나간다. 그날 밤, 보름달이 낮과 같이 환하게 비추는 그 날 밤에, 영호의 어머니는 그대로 떠났다. 아버지는 영호와 동생 자호, 민희를 불러모아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주며 우리들 인생에 더 이상 엄마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삼촌에게 삼 남매를 맡기며, 삶이 안정되면 다시 같이 모여서 살자고 약속하시고는 다시 떠나셨다. 영호네 집은 아버지의 벌이가 꽤나 충분한 턱에 물질적으로 부족함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나, ‘안정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돈의 충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2개월 즈음이 지나고, 다시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셨다. 아버지와 동연배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을 옆에 두고, 이제는 이 사람이 너희의 어머니라고, 처음에는 어색해도 좋은 사람이니까 잘 지내보자고 말씀하시며, 이제 다시 모여 살 수 있다면서 집으로 함께 돌아가자고 하셨다. 새엄마는 인상이 선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송은선, 후해보이는 인상의 아줌마였다. 아버지는 이제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삶을 살자며 아이들에게 말씀하셨고, 우리는 떠나간 엄마를 아주 잊지는 못했지만, 착해 보이는 새 어머니와의 생활에 대한 기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새엄마는 그저 착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사람정도였다. 아직까지는 서로의 사이에 어색함이 맴돌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아직은 그 누구도 너무도 가까이 드리운 검은 그림자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영호도, 동생들도.

 

물론 조금 변화가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모두들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2개월간 회사 일을 정리하시고, 교사인 어머니에게 경제력을 맡기며 본인은 전부터 배우길 원하시던 신학을 파고들기 시작하셨다. 영호는 아슬아슬하게 결석 일수를 맞추면서 유급을 면했다. 물론 이 뒤에는 담임 선생님의 노력이 있었음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의 인자하심과 중학교 때부터 소문이 난 영호의 모범적인 행실 덕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학교를 다니고 새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아이들은 그녀가 바뀌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부드러운 말씨로 아이들을 훈계할 뿐이었던 그녀가,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점점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아졌다. 언젠가부터 영호는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하면 맞는다는 공포를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이내 그 공포는 수십 번 현실이 되었다.

 

너희는 개돼지만도 못 한 놈들이야, 개돼지도 맞으면 고쳐져, 너희는 수십 번을 말해도 바뀌는게 하나도 없잖아.”

 

새엄마 은선은 아이들을 한 시간에 걸쳐서 구타하고는, 세 불쌍한 아이들을 무릎 꿇히고 말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하고, 성적이 아무리 높으면 뭐해, 사람새끼 흉내도 못내는 것들이, 이거 봐, 이거, 내가 방을 치우라고 몇 번을 말해야 드디어 말귀를 알아먹어?”

 

창틀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먼지를 기어이 찾아낸 은선이 심장에 비수를 꽂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화가 화를 부른 은선은 걷잡을 수 없이 격양되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백과사전을 영호의 얼굴에 던진다.

 

!!”

 

 인것도 같고 인것도 같은 매서운 소리를 내며, 단단한 둔기가 영호의 얼굴에 적중한다. 코피가 터져서 온 몸을 적시는 것도 모르는 채, 영호는 그저 잘못을 빈다. 하지만 은선은 영호 쪽은 보지도 않고 책상 위에 있는 연필꽂이를 그대로 다시 한 번 던진다.

 

피를 닦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영호의 얼굴은 마치 영화에나 나올법한 피범벅이 되어있다. 끝내 그 처참한 모습을 확인한 은선이 아주 잠시나마 당황하지만 너 같은 새끼는 더 맞아도 싸다며 폭행을 이어간다.

 

나는 너희 정씨 집안이랑은 더 이상은 못해먹겠고, 이제 내가 알아서 살거니까 너희 애비 집구석에 기어들어오면 그렇게 전해, 엄마가 짐승들이랑은 못살겠다고 나가버렸다고.”

 

너희들을 포기하겠다. 는 선언이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는 이 순간에, 이상하게도 미소가 지어졌다. 이미 떠날 마음을 먹고 있었는지 금방 짐을 챙겨서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은선을 보고, 영호는 그저 드디어라는 단어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영호와 동생들은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삑, , ,

 

도어락 소리가 울리며, 캐리어를 끌고 새엄마가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발소리가 온 집안에 울릴정도로 무섭게 들어오는 은선은 잠궈 놓지도 않은 캐리어를 내던지고 아이들에게 걸어왔다.

 

너는 왜 엄마가 간다는데도 안잡아, 왜 아무도 가지말라고 안잡아?”

 

아까 맞은 자리에 앉아있던 영호는 버텨내기 힘들 정도로 가혹한 발길질을 받아가면서, 은선이 던진 빈 캐리어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짐은 애초에 챙기지 않았고, 모든 행동은 전부 연기였다. 폭행의 동기를 또다시 얻어낸 은선은 온 몸의 힘을 실어 세차게 아이들을 밟아댔다.

 

바뀐 것은 없었다. 아이들은 저 멀리 직장에 있는 아버지가 들어주시기를 그저 소원하며, 결코 들리지 않을 것임을 가슴에 사무치도록 느끼면서도 그저 목을 놓아 울었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있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셔도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먹는 것, 입는 것, 그 외 자잘한 모든 것들이 그녀의 손에 달려있었고,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모르는 척 묻어가며,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신학을 선택한 자신의 행동이 후회되어 그토록 사랑하던 신조차 원망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주머니에 남은 것이 없었다.

 

7월이 이제 끝나가고 있었지만, 영호는 아직까지도 교복 동복을 착용하고 다녔다. 온 몸이 피멍으로 뒤덮혀서 하복 교복은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한 벌 밖에 없는 동복을 한 학기 내내 입으며, 계절에 맞지 않은 복장을 착용했다며 수없이 많은 벌점을 받아가면서도 영호는 하복에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는 그리할 수 없었다. 흘러 넘친 피눈물이 교복을 적셨고, 여벌이 없는 영호는 눈물을 훔치며 하복을 꺼내 들었다. 결석을 했다간 다시 주먹이 날아올 것이다. 하루 이틀이라면 차라리 맞겠다 할 정도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이었지만, 영호는 감히 세탁비를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세탁소에 피묻은 교복을 들고 간다는 것 조차 부끄러워 견디지 못 할 것만 같았다.

 

온 몸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이면서 등교한 영호는 그 날 아이들의 놀림거리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싸웠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상처였다. 아이들 사이에선 영호가 조폭에게 시비를 걸려서 집단구타를 당했다던지, 패싸움에 가담했다던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난무했고, 영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면서도 상처들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제 맞은 상처가 아물면, 오늘은 새로운 이유가 생겨서 다시 맞았다.

 

영호는 끝나고 나 좀 잠깐 보자.”

 

종례 시간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잠시 영호를 불러냈다. 선생님 께서는 영호의 몸에 상처가 꾸준히 생겨나는 것을 주의 깊게 보고 계셨다면서, 너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이유를 말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아무것도 아니에요그냥 싸운거에요.”

 

네가 끝까지 나에게 말해주지 않겠다면, 나도 너를 여기서 내보낼 수 없다.”

 

선생님이 평소와는 달리 엄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시간은 이미 5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해가 지기 전까지 정말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결국 또 맞을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한 영호는 어렵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은…. 엄마가…”

 

30분동안 영호가 처한 환경에 대해 대화를 나눈 선생님 께서는, 경찰에 신고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분명한 범죄다, 영호야. 너희 어머니는 이렇게 해서는 안돼. 선생님이 너희 어머니와 가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경찰을 부르는 수 밖에는 없다.”

 

결국 영호가 애원하며 아버지의 사직과 가정의 경제권 구조까지 모두 설명해 드린 뒤에야, 이내 선생님은 조용히 아버지에게 통화를 해 보기만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영호를 보내셨다.

 

그렇게 며칠이 조용히 흘러갔다. 물론, 영호의 집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 같은날들의 연속이었다.

 

방학이 시작되고, 영호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교에서 주관하는 모범생 해외 답사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동생들은 안된다는 어머니를 삼촌이 나서서 고등학교 입학 전에 많이 놀아야 한다고 우기시며, 중학교 2학년인 사촌동생과 함께 호주 여행을 떠났다.

 

영호야, 선생님이 방학 동안에 꼭 방법을 찾아볼게. 갔다 오면 모든게 다 잘 풀려있을거야. 아버지랑 선생님이랑 계속 연락하고 있으니까, 즐겁게 다녀와라.”

 

공항에 배웅을 나오신 선생님께서 영호의 두 손을 맞잡고 하신 말씀이었다. 선생님이 아버지와 연락을 하겠다고 말씀하신 그 날 이후로, 영호와 동생들, 그리고 아버지는 연락의 횟수가 부쩍 잦아졌다. 내용은 단순한 안부나 인사가 전부였지만, 이미 아버지와 영호, 자호, 민희는 어느 때보다 더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해외 답사 장소는 유럽이었다. 근대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유럽의 각국을 다니면서, 문화적, 예술적인 성지들을 둘러보며 감탄하면서, 영호는 아직까지 아파오는 통증도 잊은 채 즐겁게 한달 남짓한 시간을 보냈다.

 

사막 속의 샘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귀국이 눈앞에 다가온 유럽에서의 마지막 밤에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공항에 오면 선생님에게 연락하거라. 같이 가야 할 곳이 있다.’

 

? 어디를요?’

 

자세한 것은 만나서 전부 말해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와서 연락만 해라

 

의미를 추측하기 힘든 말씀만을 남기시며, 선생님께서는 좋은 밤 되라고 전하셨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귀국 당일, 공항에는 선생님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묵묵히 영호를 데리고 어디론가 운전해가시는 선생님과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영호는 이내 산 속의 한 기도원에 도착했다.

 

이제 준비하고 나오시면 됩니다. 저 여기 앞에 주차장입니다.”

 

전화로 누군가를 부르신 선생님께서는 다시 운전대를 잡은 채로 아무 말이 없으셨다. 잠시 후, 기도원에서 아버지가 큰 가방 하나를 메고 나오셨다.

 

뒷자석에 올라타신 아버지께서는 조용히 말씀을 시작하셨다.

 

영호야, 아버지가 미안했다.”

 

“…”

 

목이 다 쉰 목소리로, 아버지는 조용히 소중한 아들에게 자신이 빚어낸 잘못을 사과하셨다.

 

지금부터 아버지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이제 송은선 그 여자는 너희 엄마가 아니다. 그 여자가 너희에게 못할 짓을 그간 해왔다는 건 아버지도 다 알고 있었어. 그 동안은 아빠가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어. 미안하다. 그런데 여기 고마우신 너희 선생님이, 아버지랑 너희를 많이 도와주셨어. 아버지도 이제 따로 직장을 다시 구했고, 너희 새엄마는 이제 너희에게 했던 짓들을 다시 그대로 돌려받을거야.”

 

내용인 즉슨, 우리가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 아버지는 새어머니 알지 못하게 직장을 구해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계셨고, 법조계에 계신 선생님의 지인분이 사건의 내막을 아시고 고소를 도와주셨다는 것 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영호가 춘추복을 입고 다닐 때부터 이미 영호가 처한 상황이 심히 좋지 않음을 아시고 영호의 모습과 상태를 수집하여 기록하셨고, 아버지도 역시 언젠가부터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그 끔찍한 모습과 처참한 소리를 녹화해 두셨다는 것이었다.

 

영호의 집 현관 옆에는 ‘CCTV 설치 안내라고 쓰여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아버지께서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녹화는 증거물로 채택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어느 샌가 붙여놓으신 것이었다. 모두들 있는지 없는지 조차 관심이 없었던 그 스티커는 이미 정의가 실현되고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었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질질 끌어서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해. 끝내려고 해도 돈이라는게 발목을 잡아서, 그 여자가 없으면 당장 내일 너희 라면이라도 사 줄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영호야. 아버지가 많이 미안해

 

그렇게 말하시고는 아버지는 결코 자식들에겐 보이지 않으셨던 눈물을 조용히 흘리셨다.

 

부자간의 아픈 상처를 나누면서, 선생님과 아버지, 영호는 광주 도심의 어느 호텔앞에 내렸다. 아버지는 동생들이 돌아오기 전에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바쁘게 움직어야 한다면서, 필요한 짐은 모두 가져왔으니 며칠간 여기서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1심은 이미 진행되었으나 검사가 형이 가볍다고 판단하여 항소를 요청했고, 항소심이 곧 열릴 예정이라고 말씀하셨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오늘 열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내용이었다. 37, 광주 지방 법원 204. 오후 2 30분까지.

 

영원히 타오를 것 만 같던 지옥의 불길이, 차츰차츰 희망의 불씨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3 7, 점심을 든든히 먹은 영호는 선생님과 함께 법원을 향해 출발했다. 서둘러 마음을 가다듬고 법정에 입장하자 재판부가 입장하며 형식적인 절차를 거친 후 재판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2018 3 7, 광주 고등법원 제 1 형사부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사건번호 2018동노0218 피고인 송 은선의 아동 폭행 및 상해 사건에 대한 공판을 시작합니다.

 

재판장이 고요한 정적을 깨며 심판을 시작한다. 피고인 송은선의 인정신문이 끝나자, 검사가 당당하게 일어나 공소장을 낭독한다.

 

 피고인 송은선은 피해 아동 정영호, 정자호, 정민희의 계모로써 금년 5월 부 정찬혁과의 재혼 이후 지속적으로 피해 아동에게 부모로써의 훈육 이상의 과도한 폭행을 가해왔습니다. 피고인은 부 정찬혁과의 관계를 지속해오다 재혼하였으나, 정찬혁의 자녀들에게 앙심을 품어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폭행하고, 부모로써의 교육이라고 변호할 수 없는 극악한 수준의 학대를 지속하였습니다. 이에 아동복지법 제 3 7, 5 2호에 의거하여 아동에 대한 폭행치상으로 기소하는 바 입니다.

 

검사가 큰 소리로 낭독하는 공소장이 재판장에 크게 울려퍼진다.

 

피고인은 공소장을 공판 이전에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재판장이 공소 내용을 확인하고, 변호사가 일어나 변호를 시작한다.

 

피고인의 행동은 그저 부모로써의 훈육의 방법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피고의 행동을 폭행이라 칭하는 것은 피고와 아동들이 모자 모녀의 관계를 맺게 된 시점부터 부당하며, 피고의 체벌은 사회 정서 및 관습 상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교육의 형태로써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아동의 보호자로써 아동의 행동을 교정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는 점을 참작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할 소리 못할 소리 가려서 해라 정신나간 새끼아!!”

 

변호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신다. 이내 청원경찰에 의해 제지되지만 아버지는 격양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시며 계속 분을 삭이셨다.

 

검사 측에서 아버지가 모아두신 증거물과 녹취록을 증거로써 제출하고, 증인 신문이 시작된다. 새어머니는 신문을 받았지만 굳게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검사는 다시 영호를 불러 신문을 시작한다

 

선서, 본인은 양심에 따라 성실히 증언하고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인은 피고인과 어떠한 관계입니까?”

 

저희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재혼하셔서 제가 아들입니다.”

 

피고인과 함께 생활하였습니까?”

 

엄마는 제가 학교에서 오기 조금 전에 미리 퇴근하셔서 집에 있으셨습니다.”

 

피고인과의 생활은 어떠하였습니까?”

 

실수를 하면 몽둥이를 가져오라고 하셨고, 때리면서 저와 동생들을 욕했습니다.”

 

어떤 욕을 했는지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개돼지만도 못한놈들, 새끼들 같은 말을 자주 했습니다.”

 

주로 어떤 때에 때리면서 그렇게 욕설을 했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아침을 늦게 먹을때나, 밤에 늦게 잠을 잘 때나,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을때나…..”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방 청소를 시켜서 청소를 했는데, 먼지가 아직 남아있다면서 때렸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서 얼굴에 던지고, 물건들을 던져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넌 이래도 싸라고 하면서 계속 때리면서…”

 

가장 아픈 기억을 지워내기 위해, 가장 아픈 기억을 말하는 영호는 결국 증언을 끝마치지 못하고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영호가 들어가자 검사는 끊임없이 증인을 신청했다. 학교의 보건 선생님, 상담 선생님, 의사, 학교 경비원을 비롯해 다양한 증인들이 출석해서 영호와 동생들의 모습과 처지를 증언했다. 개중에는 영호와 같이 감정이 복받쳐 자기 일인 양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변호사의 차례가 되었다, 변호사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증인 신문을 요청했다.

 

증인은 피고인과 재혼한 부부 관계이자, 정 영호, 정 자호, 정 민희의 아버지가 맞습니까?”

 

, 맞습니다.”

 

증인은 아동의 행동에 대한 교육은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까?”

 

“…동의합니다.”

 

증인은 아동의 보호자로써, 아동의 양육에 관한 부분에 책임이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까?”

 

하지만 저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동의합니까?”

 

변호사가 듣기 싫다는 듯 아버지의 말을 자르며 몰아붙였다.

 

“.., 동의합니다.”

 

증인은 피고인이 아동에게 하는 행하는 행동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습니까?”

 

어느 순간부터 의심했고, 이내 확신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를 인지한 증인이 취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은 아동들의 보호자로써 피고인의 행동을 적절한 교육 방식이라고 인정한게 아닙니까?”

 

아버지의 동공이 분명하게 흔들렸다. 자신의 자식들이 처한 상황을 자신이 방치했다고 말하는 변호사의 날카로운 질문에, 몸이 감정을 짓누르지 못하고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아버지가 흐느끼면서 말문을 여셨다.

 

저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됐습니다….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들을, 딸을 먹이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후회하고, 잘못을 빌며 기도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던 전부였습니다.”

 

아버지가 울먹거리면서 분명하게, 한 글자 한 글자에 마음을 담하서 말씀하셨다. 영호는 차오르는 눈물을 막아보려 억지로 애썼지만, 결국 보석 같은 눈물이 흐르며 감정을 쏟아내었다.

 

아버지는 소중한 아들을 촉촉한 눈으로 돌아보시고는, 몸을 곧게 펴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재판장님, 저는 못된 아버지입니다. 저는 우리 소중한 아이들이 말 못할 상처를 입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서있는 이 못난 아버지는, 자식들의 아픔을 감싸주지 못하고, 현실이 어쩔 수 없다 포기하면서 부모로써의 의무를 저버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비록 배운 것이 없고, 이제는 가진 것도 없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단 한 순간도, 제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옳다,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로써, 제 아이들을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진심을 담은 외침이, 모두의 앞에서 마음을 담은 그 선포가 울려퍼지며 심금을 울려냈다. 방청석은 불쌍하다 동정하며 꺼이꺼이 우는 사람들, 아버지의 소중한 증언에 흐느끼는 사람들으로 이미 눈물바다가 되었다. 재판정에 서있는 사람들도 얼굴이 불거지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간 엄숙했던 분위기가 언제였다는 듯이 뜨거운 흐느낌으로 바뀌어가면서, 재판이 끝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부터 피고인 송은선에 대한 최종진술 및 구형을 시작하겠습니다.”

 

본 사건은 피고인의 개인적인 정신적 미성숙함, 보호자로써의 부적격함에 의해 선의의 아동을 피해자로 만든 사건이며, 보호자가 갖는 자녀의 훈육의 권리를 심각하게 남용한 사건입니다. 사회의 관습 상 보호자가 피보호인에 대해 체벌을 행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어느정도 허용되는 사항이나, 피고인의 행동이 명확한 기준을 갖고 이뤄진 행동이 아니라는 점, 체벌을 통한 행동의 변화가 아닌 피해자에 대한 모욕을 목적으로 행한 범죄라는 것이 명확하다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본인이 경제권을 갖고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부당한 행위를 공권력에 신고하는 것을 직접, 간접적으로 봉쇄하고자 시도했다는 점, 피고인이 이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보아 본 범행은 피고인이 자신의 위치와 가정의 상황을 이용해 발생한, 극악 무도한 범죄임이 분명합니다. 미성년자인 피해 아동들을 폭행 및 모욕한 행위가 심각하고, 피고인의 죄질이 심히 좋지 아니하므로 후의 이러한 사건의 발생을 예방하고, 또다른 피해자를 낳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중하고 정의로운 처벌을 요구합니다.”

 

새어머니는 검사의 마지막 진술이 펼쳐지는 동안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으며, 마치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이 몸부림쳤다.

 

본 검사는 피고인을 아동 복지법 제 3 7, 5 2항에 의거, 아동학대범죄에 관한 처벌의 특례법 2 4항 나목의 상습범으로 6년의 유기 징역을 선고해 주실 것을 요구하는 바 입니다.”

 

양측의 최후 진술과 최종 변론을 모두 들은 재판장이 재판의 끝을 알렸고, 영호는 마치 몸의 모든 수분을 다 쏟아내는 것 처럼 눈물을 흘린 후, 한결 밝아진 모습으로 일어났다. 영호와 아버지가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 새겨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마음이 담긴 눈물자국은 분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였다.

 

일주일 후, 마침내 선고일이 다가왔다.

판결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영호는 왜인지 모를 기대를 품고 눈을 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가슴 속에 깊이 박힌 증오와 원망의 뿌리가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마지막 한 치 남은 그 속을 좀먹는 뿌리를 불사르기 위해, 깨끗하디 짝이 없는 방에 숨어있는 창틀의 먼지조차 닦아내기 위해, 영호는 재판정으로 나섰다.

 

모두가 꿈을 꾸는 듯한 법정의 고요 속에, 끝없는 감정의 메아리가 영호의 가슴을 짓누른다. 영원히 아물지 못할 상처에 휩쓸려 떠밀려진 절벽 끝자락에서, 분노를 정의로 포장하고, 복수를 의로운 일이라 스스로에게 수천 번 외쳤던 그 결실이 이제 맺어진다.

 

지금부터 2018 3 14, 광주 고등법원 1 형사부, 사건번호 2018동노0218, 피고인 송은선의 아동 학대 사건의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장이 당기는 심판의 방아쇠가 총성을 울린다. 영호는 기대와 걱정이 한 데 어우러진, 말로 표현하지 못할 표정을 하고 그저 귀를 기울인다.

 

“…피고인의 죄질이 심히 악하고, 피해 아동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지하여, 이를 학대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점, 본인의 범행의 극악무도함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중단치 아니한 점, 피해 아동에게 입힌 정신적 상해를 부정하고 범행에 대해 일말의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점을 보아 피고 송은선에게 3년의 유기 징역을 선고한다.”

 

보이지 않는 총알이 공간을 가른다. ‘엄마에게 범죄자의 칭호가 붙는 그 순간, 가슴 속 미어짐이 영호의 눈가를 따듯하게 적신다.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나아가는 것을 가슴 깊숙이 또렷이 느끼며 감격의 눈물을 훔치는 지금 이 기분을, 표현만 할 수 있다면 끊임없이 알리고 싶은 그 감정을 스스로의 가슴에 깊이 새긴다.

 

 

 

엄마 없는 자식이 된 이후, 영호는 아버지의 성은과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서의 최선을 다했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학에 진학했고,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하며, 대기업에 스카우트 된 이후 성공가도를 이어가셨다. 동생 자호는 미국의 수준높은 대학에 유학을 떠났고, 막내 민희 역시 스스로의 꿈을 찾아 예체능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강태, kt08124@gmail.com, 029145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