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아 : 숲의 요정

by 스파클링 posted Dec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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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피아 : 숲의 요정







요정을 본 적이 있나요? 환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요정을 본 적이 있어요. 키가 방문 손잡이를 막 넘어섰을 무렵이었죠. 부모님을 따라 산에 올라갔다가 난생 처음 보는 신비한 광경에 넋을 잃은 저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었죠. 한참을 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에는 저밖에 없었어요.


 "엄마! 아빠! 어디 있어!"


무서워서 애타게 소리쳐도 제 목소리는 나무 사이만 빙빙 돌 뿐 부모님께 닿지 않았어요.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저는 완벽하게 산속에 고립이 되었었죠. 그러나 무서움도 잠시, 저는 금세 주변 환경에 매혹되어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어요. 어여쁜 나무들을 배경으로 작은 아가씨는 방방거리며 뛰고 또 뛰었어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천방지축 아가씨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푸른빛의 나무들. 고개를 치켜들면 커다란 나무에 달린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밝은 빛들. 빛에 닿아서 반짝거리는 이파리.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풀벌레와 산새들의 이야기소리, 자연이 들려주는 선율. 그토록 꿈꿔왔던 요정이 된 듯 한 기분이었죠. 신이 난 저는 그 자리에서 살랑살랑 춤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숲속에 작고 예쁜 도토리

풀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청아한 목소리가 숲에 잔잔하게 울릴 때 즈음, 메아리 같은 작은 울림이 저를 따라서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바람에 실려 오는 산새 노래에

멋진 참나무 되는 꿈을 꾼다네."


저는 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어요. 그 순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저 멀리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빛이 옅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바로 알아챘죠. 저것이 내가 상상만 해왔던 진짜 요정이라는 것을. 그 자태에 홀린 저는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었어요.


 "저기, 혹시 요정이에요?"

 "그럼."


풍기는 분위기만큼 따스한 목소리였죠. 그의 형상이 점점 짙어지고 저는 그 생김새를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묘려한 웃음을 띤 입가는 정말이지 아름다웠어요.


 "아가, 길을 잃었니?" 넋을 놓고 쳐다보던 제게 그 요정님이 말을 걸었어요.


그제야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기억해낸 저는 고개만 끄떡였죠. 그리고서는,


 "요정님, 우리 엄마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요?" 하고 대뜸 물어보았죠.


아, 아직도 생생해요. 그 물음에 당황하던 요정의 표정을. 뭐랄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는 느낌이었달까. 어린 저는 눈치 없이 눈만 반짝이며 요정의 답을 기다리고만 있었죠.


 "나는 그것까진 알 수 없어. 그나저나 넌 이곳에 어떻게 들어왔니? 내 숲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데."

 "으음……. 길을 잃었어요!"


요정은 저런 답을 바란 게 아니었을 텐데. 그냥 딱 어린아이 그 자체의 대답에 요정은 더 묻지 않고 제게 이곳 밖으로만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어서 보내달라며 재촉하자 포근한 빛이 온몸을 감쌌어요. 눈을 뜨자 요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앞에는 부모님이 계셨죠. 역시 환상이 맞았던 걸까요.


이제와서 다시 생각하려니 기억의 여기저기에 흙이 묻은 듯 옅은 그림자가 드리웠어요. 분명히 겪었던 일이 맞는데. 언젠가는 다시 한 번 그 산에 가보도록 할까요. 뭐, 딱히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걸 바라는 건 아녜요. 그냥, 그냥. 그 시절이 그리워서....... 아, 제 이야기는 이쯤 할까요. 더 하다가는 지난 세월에 미련이 생겨버릴 것 같네요.



아, 제가 여러분께 이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더 이상 어린이의 꿈과 동심을 간직할 수 없는 시기가 제게 찾아왔기 때문이에요. 여러분께 털어놓는 것을 끝으로 저는 어린 티를 벗어야 해요. 이 나이에 요정 이야기를 하면 정상적인 취급은 못 받거든요. 다시 요정을 본다면 좋겠는데.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볼 수 없겠죠. 요정은 다 커버린 어른에게는 찾아오지 않잖아요?



그럼 이제 진짜로 안녕 여러분.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