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색

by sugyeong posted Jan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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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색 


  몸은 점점 말라가고 있다. 화장실을 가득 채운 열기는 창문 밖으로 빠져나가고, 욕조에 차있던 더운 물은 빠른 속도로 없어지고 있다. 환풍기에선 건조한 바람이 나왔다. 나는 손으로 거울에 낀 수증기를 닦아내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쌍꺼풀이 짙은 눈매에 각진 턱선, 어중간한 중단발에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코끝까지 내려온 앞머리. 어렸을 때와 거의 똑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솟아오른 가슴과 곧게 뻗은 다리는 누가 봐도 성인 여자의 몸으로 보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몸을 천천히 짚었다. 어떤 것은 아프기도, 또 어떤 것은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가 건드릴 때마다 내 몸은 하나씩 반응을 했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열기가 빠지고 욕조에 있던 물도 줄어들었다. 나는 욕조 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달아나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은 마개를 내치고 텅 빈 하수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나는 순간 소용돌이 사이로 손을 넣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 충동을 참지 못하고 손을 뻗으려는 찰나, 화장실 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진아 목욕하니? 엄마가 씻겨줄까?”


  엄마의 목소리는 상냥하지만 다급했다. 잠긴 문은 덜컹거리고, 갈라진 문 틈 사이로는 엄마의 눈이 보였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엄마의 말은 점점 더 거세지고 빨라졌다. 화장실에서 엄마의 목소리는 크게 울렸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웅크렸다. 초점이 흐려지고 왼쪽 다리가 저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위가 조용해지자 나는 잠갔던 고리를 풀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화장실 입구에서 엄마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알몸 상태인 채로 서서 엄마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옷은 계절에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주워 입었고, 긴 머리카락은 엉켜있었다제대로 씻지 않은 몸에서는 쉰내가 났다. 나는 서랍에서 담요 한 장을 꺼내 엄마에게 덮어주었다. 인기척에 잠을 깬 듯 엄마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하기도 전에 나의 맨몸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그렇게 다니다 또 다치면 어쩌려고. 빨리 옷 입어


  엄마는 내 몸을 큰 수건으로 감싸며 나에게 붕대와 반창고를 주었다. 가격표가 아직 붙어있는 걸 보니 엄마가 새로 산 것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거칠게 받아들고는 방으로 갔다. 서랍 속에는 뜯지 않은 붕대와 알약들이 가득했다. 나는 받은 붕대와 반창고를 그 속에 던져놓았다.

 

  1년 전 교통사고가 났을 때부터 엄마는 나를 과도할 정도로 보호했다. 사소한 상처에도 반창고를 붙이거나 병원에 갔고 밖은 위험하다며 나가지 못하게 했다. 사실 직접적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고에 휘말렸을 뿐이었다. 당시 고3이었던 나는 대학시험을 보기위해 버스에 탔었고, 신호를 어긴 버스는 다른 차와 부딪쳐 사고가 났다. 버스는 뒤집어졌고 경적이 울렸다. 버스 기사아저씨와 다른 차에 타고 있던 노부부는 사망했다. 버스에 탔던 사람들은 다행히 경상정도로 끝났다. 사고 크기에 비해서 사상자는 적은 편이었다. 나도 버스가 뒤집어질 때의 충격으로 두 다리가 부러진 것 이외에는 멀쩡했다. 실제로 사고가 났을 당시에 나는 사고가 났다는 것에 충격을 받기보단 대학 입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을 놓쳐버렸다는 것에 더 큰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사고에 나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사고 당시 엄마는 다리가 부러져 바닥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끌어안으며 오열을 했고, 다리가 거의 다 나았는데도 병원 입원 날짜를 늘리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때문에 대학시험은 보지도 못한 채 끝나버렸고, 나는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때 일에 대해 내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하면 엄마는 항상 시험보다 몸이 더 중요하다며 꾸짖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더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나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엄마의 과보호에 나는 조금씩 엄마를 피하기 시작했다.

 

  오늘 날짜에 X표를 하고 나니 벌써 5월이었다. 그와 동시에 생리가 시작되는 주였다. 나는 서랍에서 옷을 꺼내 주워 입고는 편의점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에 가는데도 엄마는 나에게 다리가 낫지 않았으니 꼭 붕대를 감고 목발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리에 붕대를 감고 목발을 겨드랑이에 꼈다. 아직 여름이 되지 않았는데도 한낮이라 그런지 밖은 습하고 더웠다. 나는 목발을 손으로 들고 걸어갔다. 붕대를 감은 왼쪽 다리에 땀이 찼다. 사고 후 두 다리는 완치에 가까운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뛰거나 오래 걷는 건 무리였다.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진열대로 갔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종류의 생리대가 정렬되어 있었다. 집에서 생리를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많은 양의 생리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대충 둘러본 뒤, 싼 가격의 생리대를 골라 계산대로 갔다. 2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계산을 하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가격을 말해주며 나에게 검은색 비닐봉지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 나름대로 배려해 준 거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냥 들고 가겠다고 말한 뒤 편의점을 나왔다.

 

 붕대를 풀자 뻣뻣했던 다리가 팽창하듯 부풀었다. 나는 입었던 옷을 다 벗어던지고 알몸인 상태로 매트리스에 누웠다. 방문 너머로는 TV소리와 함께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TV 사람들의 말과 엄마의 반응은 자주 어긋났는데, 아나운서가 심각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엄마는 웃고, 개그맨이 웃긴 얘기를 하면 엄마는 화를 냈다. 문틈 사이로 엄마를 보니 엄마는 전화기를 들고 거실을 맴돌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TV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부, 호강, 공무원, , 사랑. TV 사람들의 말에 조각난 엄마의 말이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내가 재수를 시작할 때부터 계속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내 말을 금세 잊어버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딸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며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귀에 귀마개를 끼우고는 책상에 올려둔 앨범을 꺼냈다. 어렸을 때 찍은 사진들이 연도 순서대로 정렬되어있었다. 나는 가장 첫 장에 있는 사진을 꺼냈다. 사진에는 곤돌라를 타고 있는 앳된 모습의 엄마와 입이 찢어질 듯이 웃고 있는 10살의 나, 그리고 두 팔로 엄마와 나를 끌어안으며 웃고 있는 아빠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그 당시 아빠는 해외출장이 많았다. 아빠는 우리나라의 유명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1년에 몇 번 정도는 반드시 해외로 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때문에 아빠는 방학만 되면 늘 바빴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일정이 항상 불만이었다. 나도 방학에는 가족 다 같이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빠는 그런 엄마와 나를 위해 해외여행을 제안했고, 우리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풍경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도시 전체에 바다냄새가 퍼졌고, 바닷물은 은은하게 출렁거렸다. 거리엔 낯선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널려있었고, 건물들은 바닷길을 따라 줄지어있었다. 그 모든 풍경이 나에겐 신기했다. 나는 그 도시에 완전히 빠졌고, 동시에 그런 곳들을 전전하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해외출장에서 기념품을 가져올 때면 상자에 소중히 보관했고 아빠가 돌아오면 아빠 옆에 붙어 해외출장 갔을 때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아빠는 내 귀에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며 자신은 언젠가 세계 곳곳을 돌며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아빠의 그 바람이 이뤄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2년 전 여름, 어느 때와 다름없이 해외출장을 간 아빠는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TV에선 비행기 사고로 승객 대부분이 사망했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아빠의 죽음은 실종이나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아빠의 실종에 가장 충격을 많이 받은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두 달 가까이 나를 붙잡으며 울었고 남편은 죽지 않았다며 아빠의 죽음을 부정했다. 하루는 항공사로 가 물건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행동 때문에 나는 아빠의 죽음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있어 아빠의 존재는 인생의 전부였다. 엄마는 20살이란 어린 나이에 아빠와 사귀다가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아빠는 엄마에게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했고 엄마는 아빠 말에 따라 아기를 낳고 일찍 결혼을 했다. 당시에 둘 다 직업도 없는 상태였는데도 엄마는 나름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말했다. 특히 엄마는 아빠가 일자리도 알아봐주고 공부도 가르쳐주는 등 도움을 많이 줬다고 했다. 평소에도 엄마는 아빠의 결정에 많이 따르는 편이었는데, 내 문제나 큰일은 전적으로 아빠에게 맡겼다. 그러다보니 나는 엄마보다 아빠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빠가 실종 된 뒤, 엄마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나에게 의지했다. 설상가상 그 해에 엄마는 자궁암이 걸려 더 이상 아기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의지를 넘어서 집착을 했고 그 뒤로 앨범엔 가족사진이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앨범을 덮고, 의자에 앉았다. 귀마개를 빼자 TV소리와 엄마의 목소리가 섞인 난잡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여행관련 책을 꺼내 읽었다. 영어로 된 음악을 들으며 낯선 나라의 풍경사진을 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은 나를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이끌어줬다. 나는 해석하기 어려운 영어 원서를 읽으며 빨리 외국어를 익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습해지는 날씨만큼이나 집안에는 엄마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가득했다. 엄마는 덥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다. 낮에 엄마는 집 아래에 있는 옷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밤이면 가게에서 팔다 남은 옷들을 모아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서 재수를 하기 때문에 많은 옷을 가질 필요도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는 나는 매번 나에게 옷을 건네는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때문에 거실 구석엔 내가 입지 않은 옷들이 쌓여있었다. 사고 이후 엄마는 내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며 한동안 일을 하지 않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누군가는 일을 해야만 했기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러 가게로 갔다. 나는 엄마가 벗어놓은 옷들을 주워 세탁기에 넣었다. 세탁기엔 몇 달째 돌리지 않은 옷들이 가득 차 있었다. 넣을 공간은 거의 없었지만, 나는 손으로 옷을 눌러 세탁기 안으로 옷을 밀어 넣었다. 그런 다음 나는 베란다에 있는 창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여전히 창문은 단단한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열 수 없었다. 나는 빛바랜 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더위에 풀과 나뭇잎은 늘어지고, 매미는 울 장소를 찾아 그늘진 벽으로 올라갔다. 벌써 완연한 여름이었다. 나는 방으로 가 선풍기를 틀고는 전날에 공부한 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 푼 영어 문제집을 책상 한 구석에 쌓여있는 문제집 위에 얹어놓았다. 71. 시험까지 앞으로 4달 정도 남은 시간, 나는 오늘 날짜에 X표를 하고는 서랍 위에 놓인 생리대를 봤다. 생리대는 그때 그대로 놓여있었다. 벌써 3달째 몸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대신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쓰렸다.


 화장실 욕조엔 오늘도 어김없이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아침마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는 그 속에 들어가곤 했다. 몸을 씻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불을 빠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그저 물속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몸이 퉁퉁 불 정도로 앉아있고 나면 엄마는 젖은 몸을 말리지도 않은 채 옷을 입었다. 때때로 엄마는 화장실에 들어간 나에게 몸을 씻겨주겠다고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에게 몸을 맡기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엄마의 손길이 조금 불쾌했다. 다리를 다쳤을 때 엄마가 몸을 씻겨준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과도할 정도로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또 몸에 조금이라도 긁힌 자국이라도 있으면 바로 연고를 발라주었다. 나는 나를 어린아이로 대하는 엄마가 불편했고 때문에 엄마와의 목욕도 피하게 되었다. 나는 욕조에 있는 마개를 빼 목욕물을 내렸다. 그 순간 울렁거림과 동시에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나는 참지 못하고 욕조에 무언가를 쏟아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거울을 봤다. 전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욕조를 붙잡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엄마는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나의 표정과 몸을 보고는 나를 바로 산부인과로 데려갔다. 병원엔 배가 불룩한 임산부가 돌아다녔고, 벽에는 아기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낯선 광경이었다. 나는 내가 왜 이 광경 속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엄마의 손에 끌려 산부인과로 온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고 나 역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내 손을 잡았다. 의사는 내 배를 몇 번 만지더니 나에게 임신 9주라고 말했다. 의사는 웃음도 무표정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봤다.

 

  아기가 생겼다는 말인가요?”


 나의 물음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 멍한 얼굴로 의사를 봤다. 아기라니. 내 몸에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게 어쩐지 믿기지 않았다. 의사는 나에게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에 내 머릿속에 떠다녔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했다.

 

 “원하던 원치 않던 한 생명을 품게 됐으니 앞으로 책임지고 행동해야 돼요


  의사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책임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나는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의사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때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엄마가 고개를 들고 의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우는 건 불가능한가요?”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병이나 범죄에 연관된 게 아닌 이상 낙태는 하는 건 불법이라고 말했다. 내가 임신했다는 걸 들었을 때 엄마는 분명 나보다도 더 충격 받은 것 같았는데, 어쩐지 의사의 그 말을 듣는 엄마는 무척이나 안심되어 보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나에게 아기 아빠에 대해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언성을 높이며 나를 추궁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엄마를 피해 방문을 잠그고 귀를 막았다. 귀마개로 귀를 막아도 엄마의 말은 들렸다. 나는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소음을 막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럴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거울엔 팔도 다리도 얼굴도 없고 오로지 불룩한 배만 있는 내가 보였다. 저 불룩한 것은 누굴까. 누군데 내 앞에 있는 걸까. 나는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날은 엄마가 옷가게 일을 다시 하기로 한 날이었다. 나를 과보호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엄마에게 절대로 밖에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믿고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갔고, 나는 그 틈을 타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맡는 바깥바람은 기분 좋았다. 나는 붕대도 목발도 없이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방향도 목적지도 없이 그렇게 몇 시간동안 미친 듯이 걷고 난 뒤에 도착 한 곳은 한 이름 모를 마을이었다. 밤이 되었고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없다는 걸 안 뒤의 엄마의 행동이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나는 무작정 아무 가게나 들어가 걱정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그곳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되어있는 네온사인이 특징인 술집이었고, 사람이 꽤 많았다.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해 평소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계속 마셨고 어떤 남자와 몇 시간동안 얘기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지만, 시답잖은 이야기였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 다음부터는 모르겠다. 그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그 다음날 아침엔 기분 좋은 꿈을 꾼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을 뿐이었다.


 엄마는 그날 나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지쳐 집 앞에 쓰러졌다. 그리고 정신이 든 후로 엄마는 내가 약속을 어겼다는 것에 화가 나, 아예 집에 있는 창문과 현관문을 잠가버렸다. 나는 그런 엄마의 행동에 경악하며 자물쇠를 부수려 했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울면서 이렇게 하는 건 너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말했다. 결국 그날 이후로 나는 집과 가까운 곳이 아니면 아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기억이 모호했다. 아기 아빠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봤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여러개 있었다. 이 중 누구일까. 번호만 보고는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나는 번호를 보며 전화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전화를 한다고 한들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당신의 아기를 가졌으니 책임져 주세요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하다못해 돈이라도 보태달라며 빌어야 할까. 아니 애초에 나라는 사람을 기억이나 할까.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나는 전화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 상황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냥 가만히 귀를 막으며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정하지 않은 채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예전에 없던 식욕이 생겼다. 나는 엄마가 냉장고 안에 넣어둔 통조림 과일과 냉동시킨 반찬들을 먹었다. 평소 잘 먹지 않던 음식들이었다. 그것들을 먹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냉장고문을 닫지도 않은 채 게걸스럽게 그것들을 입속에 쑤셔 넣었다. 아무리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았다. 마치 내 몸 안에 기생충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배부를 때까지 계속 음식을 먹었고 결국 방바닥에 먹은 것을 토하고 나서야 먹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미칠 듯한 식욕과 속 쓰림이 반복됐다. 나는 더 이상 공부에 집중할 수도 좋아하는 여행 잡지를 읽을 수도 없었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나에게 아기를 낳으라는 말도 지우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내가 토한 것을 치웠다. 엄마는 옷가게 일을 그만두었고 평소보다 나와 더 같이 있으면서 내 몸을 신경 썼다. 점점 내 몸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가는 것 같았다.


 오늘은 모빌이 달랑거렸다 내일은 방에 인형들이 놓여 있을 것이고, 모레는 바닥에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있을 것이다. 글피에는 여행 책 대신 육아 책이 쌓일 것이다. 내 것은 사라지고 방에는 점점 아기를 위한 물건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수진이란 이름마저 사라져 더는 내 이름이 불릴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 방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행 책들도, 전신 거울도, 천장에 붙은 세계지도도 있었다. 아직은 모든 게 다 그대로였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갔다. 엄마는 오늘도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들뜬 목소리로 전화 너머 사람에게 아기 옷은 어디가 좋냐고 물었다. 자세히 보니 엄마 옆엔 육아 책도 있었다. 나는 엄마의 핸드폰을 빼앗고는 엄마에게 뭐하는 거냐며 따졌다. 엄마는 태연한 얼굴로 이제 슬슬 아기를 위한 준비를 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말했다.

 

  “나보고 출처도 모르는 아기를 낳으라는 소리야?”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그러니 빨리 아기 아빠를 만나서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리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이 가족이라는 끈을 그렇게 쉽게 놓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기 아빠만 만나면 다 해결될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만나서 해결될 문제라면 나도 가능하면 남자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와 달리 나와 그는 서로 얼굴도 기억 못하는 관계였고 무엇보다 말한다한들 그 남자가 아빠처럼 갑작스레 얻은 아기를 책임져주겠다고 말할 지도 의문이었다. 나는 의사가 말한 책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아기를 짊어질 자신이 없었다. 나는 결국 엄마에게 아기 아빠를 만나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집을 나와 아기를 지우기로 결심했다.

 

 나는 대학 등록금을 위해 모아뒀던 돈을 모두 아기를 지우는 데 쓰기로 했다. 나는 친구의 소개로 간 인적이 드문 시골의 한 창고에서 수술을 했다. 창고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고 주위엔 녹이 슨 농기구들이 쌓여있었다. 수술대는 그 가운데 떡하니 놓여있었다. 무서웠고 지금이라도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의사는 겁먹은 나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금방 끝난다며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는 게 불쾌하고 무서웠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침대라 하기도 뭐한 딱딱한 나무 판에 누웠다. 마취가 시작되었다. 눈앞이 흐려지고 모든 감각이 무뎌졌다. 분명 내 몸인데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는 계속 나를 붙잡으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마취를 한 상태인데도 이상하게 아팠다. 나는 깨기 싫어 눈을 더 꽉 감았다. 몸이 찢기는 것 같았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아픔에 소리를 질렀다. 나를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기의 행동에 나는 어쩐지 엄마가 떠올랐고 눈물을 흘렸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바란 건 아니었다. 좋은 딸이고 싶었고 언젠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좋은 딸도 좋은 엄마도 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발버둥치는 아기의 손을 놓았다. 정신이 아득해졌고,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한 침묵이 찾아왔다.

 

  눈을 뜬 곳은 친구의 자취방 안이었다. 친구는 내가 며칠 간 정신을 잃었으며 몸이 망가져 몇 달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일어서서 내 몸을 봤다. 아기를 지우면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배는 푹 꺼져 있었고, 골반은 튀어나와 있었다. 아랫도리에서는 심한 통증과 함께 피가 흘러나왔다. 얼굴은 초췌해져 내 나이보다 적어도 5살은 많아 보였다. 친구는 나를 침대에 강제로 눕히며 몸이 나을 때까지는 여기서 지내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나고 몸이 좀 나아지자 나는 혼자 살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나왔고 하숙 알바를 시작했다. 나는 낙태를 했다는 것을 숨기고 고기 집에서 일을 했다. 몸이 다 낫지 않은 상태로 일을 하니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힘이 들고, 상처 또한 늘어갔다. 바쁜 일상 속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집에서 지낼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내 행동에 간섭하는 사람도 내 삶을 억압하는 존재도 없었다. 월급날이 되면 나는 번 돈으로 옷도 사고 여행책자도 사 얼마 안 되는 자유를 누렸다. 더 이상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확실히 하기 위해 매일 거울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고기 집에서 일하다 보니 몸에는 항상 고개 냄새가 뱄다. 나는 매일 씻어야만 했고 그때마다 나는 아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내 몸을 봐야했다. 샤워기를 틀면 매일 욕조에 앉아있던 엄마 생각도 났다. 잊으려고 해도 잘 잊혀 지지 않았다. 나는 샤워기를 거칠게 흔들며 몸을 씻었다. 내 땀과 고기냄새와 아기의 진물이 섞인 물은 하수구로 흘러갔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쩐지 눈물이 났다.


 알바를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됐을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흰 셔츠에 검정색 정장바지 누가 봐도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이는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음식을 주문을 받으러 온 나에게 다짜고짜 자기를 어디선가 보지 않았냐고 물었다. 저런 식으로 묻는 남자 손님의 대다수가 젊은 여자 알바생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그 남자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끈질기게 어디서 보지 않았냐고 묻자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다. 찢어진 눈매에 짙은 눈썹. 잘 생각은 안 나지만 확실히 낯익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디서 만난 건지 생각했다. 문득 떠오른 듯 남자는 나에게 술집이라고 말했고, 그제야 나는 엄마가 그토록 찾던 아기 아빠가 그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나에게 명함을 주며 할 말이 있으니 원하는 시간에 연락해 달라고 말했다. 그를 다시 만난다한들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여행상품개발자 대리 김민혁 명함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나는 그의 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했다. 나는 이름을 적는 칸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이름을 적었다.


 나는 그와 다음날 낮에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나는 고기냄새가 밴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나에게 그때 일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모호했지만 나는 평온하게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짜증이 나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는 술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그랬으며 죄책감에 다시 만나면 꼭 사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밥이라도 사주겠다며 선심 쓰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기를 가진 그날부터 나는 그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이기에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막막했고 주위의 시선도 두려워 결국 답을 찾진 못했다. 남자와 약속을 잡기 전날에도 분명 나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태연하게 앉아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화가 났고 그동안 겪었던 아픔이 떠올랐다. 나는 경직된 얼굴로 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기를 가진 일, 아기 때문에 엄마와 싸워 가출한 일, 아기를 지우고 친구 자취방에 살다가 나와 알바를 한 일 전부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예상치 못한 내 말에 놀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와서 책임지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미안하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


 그는 나에게 사과를 하며 자기가 지금 결혼을 약속한 상대가 있는데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 테니 제발 자기와의 관계는 비밀로 해달라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해도 남자의 말은 변명처럼 들렸다. 나는 그에게 아기를 지우기 위해 대학 등록금을 써버렸으니 그 비용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큰 금액에 그는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잠시 그는 고민하더니 그때 꿈이 여행가는 거라고 하지 않았냐며 이번에 회사에서 가는 여행에 나를 데려가주겠다고 말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안심하며 여행은 10월 초라고 말했다.

 

 여행은 40~50대를 대상으로 하는 유럽여행이었다. 가정살림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자는 게 여행의 취지였다. 남자로부터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엄마가 생각났다. 여행에 엄마를 데려가면 엄마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인간 이미진으로 설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달 간의 알바 생활을 정리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났다. 문을 열자 바닥엔 수건과 옷 더미로 어지럽혀 있었다. 집 안은 한동안 치우지 않은 듯 먼지가 쌓여있고 창문과 현관문에 있던 자물쇠는 사라져 있었다. 나는 열쇠를 가지고 내 방으로 갔다. 열쇠를 꺼낸 게 무색하게 문은 없어져 있었다. 나는 내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침대에만 누웠던 흔적이 있을 뿐 그 외에는 떠난 날과 똑같았다. 가족끼리 함께 찍은 사진도 제자리에 있었다. 엄마는 어디 간 걸까. 나는 집 안을 살펴보다 화장실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연기가 빠져나왔다. 엄마는 욕조에 물을 채워 넣은 채 웅크려 자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몸은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말랐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뒤 엄마를 깨웠다. 엄마는 두어 번 눈을 깜박거리더니 나를 보고는 가는 팔로 나를 안았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엄마는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나에게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배를 보며 아기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전부 설명했다.


  “엄마. 나는 다음 달에 이곳을 떠날 거야, 그리고 가능하면 엄마도 같이 갔으면 좋겠어서 이렇게 집에 왔어


 엄마는 욕조에서 나와 내 배를 사정없이 만지며 오열했다.


  “너도 네 아빠랑 똑같이 나를 버리고 떠나려고 하는 구나

 

 엄마는 내 손을 붙잡으며 아기를 지웠다고 탓하지도 않고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하지도 않을 테니 제발 떠나지만 말라고 애원했다. 나는 엄마에게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밖은 위험해.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여기서 너를 책임지며 잘 살겠다고 네 아빠하고 약속했어. 그러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엄마는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미련도 끝내 져버리지 못했다. 온수로 가득 고여 있는 욕조, 눈물에 얼룩진 엄마의 얼굴, 퉁퉁 분 엄마의 몸 사이사이 끼어있는 때. 그것들을 보며 나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내 팔을 그었다. 아픔과 동시에 내 피가 흘러 물에 번졌다. 엄마는 깜짝 놀라 내 팔을 부여잡았다. 나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는 말했다.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가 나를 책임질 필요도 보호해줄 필요도 없어.”

 

 화장실은 점점 내 피로 빨갛게 물들어갔다. 엄마는 치료할 약을 가져오겠다고 말하며 거실로 갔다. 나는 그 틈을 타 집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우산도 여행가방도 가족사진도 엄마도, 그 무엇도 가져오지 못했다. 나는 비를 맞으며 맨발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내 몸을 스쳐 지나가는 빗방울의 흔적이 어쩐지 기분 좋았다. 내 팔에 붙어있던 빗방울은 순식간에 빨간색으로 물들어 다른 빗물을 따라 어딘가로 흘러갔다. 빗물은 각자가 지나쳐 온 것들의 색에 물들어 한데 모여졌다. 나도 그 빗물을 따라 어딘가로 흘러가고 싶었다. 나는 나를 부르는 엄마의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어딘가를 향해 사정없이 흘러갔다.

    


이름 : 구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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