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함께한 남자

by 누가울새를죽였는가 posted Jan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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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함께한 남자#

 

 

 

"돌아가!!!!"

'

"돌아가라고..제발..!..제발.."

 

눈 내리는 차디찬 밤,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구급차의 사이렌소리.그리고 한 남자의 절규

추위를 견뎌내는 손과 귀는 이미 터질것처럼 새빨갛게 붉어졌지만,그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그에게는 더이상 아무런말도 들리지않았다.그가 지금 할수있는일은 다시,또 다시 거친숨을 내뱉으며 똑같은말을 반복하는일 뿐이였다.

제발 돌아가.차디찬 겨울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얼어붙었다.얼어붙은 추위는 그의 목소리까지 집어삼켰다.

남자는 자신의 무능함에 그저 눈물을 흘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일밖에는 할수있는것이 없었다.그저...

 

...

 

삐비빅- 삐비비빅-

 

- 6시정각을 알리는 빨간색의 작은 자명종,그리고 그 자명종소리를 끄는 크고 둔탁한 손.그의 아침은 늘 그렇듯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자는 잠이덜깬듯한 표정으로 비몽사몽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잠이많은 그였지만,이렇게 몽롱한상태로도 화장실에 갈수있을만큼 적응이 됬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는 화장실에 들어선후에도 도통 잠을 깰수없는것인지 한참을 거울 앞에서서 눈을 손으로 부비적거렸다.

그리고선 세면대의 물을 틀었지만 차가운 물이 영 내키지않는지 손끝에만 물을적셔 고양이세수를 하는것으로 아침세수를 끝냈다.

얼굴에 묻은 약간의 물기는 언제 세탁을 한건지조차 알수없는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더니,칫솔모가 거칠어져있는 파란색 칫솔에 치약을 짜고선 그대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화장실문턱과 바로 연결된 좁은 거실에서 창가를보며 그는 늘어지는 하품을 내뱉었다.물론 칫솔이 입안에 담겨져있는 상태로 말이다.

이른아침이였지만 따사로운 햇빛을 느끼며 그는 '나쁘지않은 아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집은 혼자살기에는 충분해보였지만,그렇다고 넓은집은 아니였다.욕조가없는 작은 화장실과,안방역할을 하는 거실.그게 그집의 전부였다.

거실에는 그 집에서 가장 값비싼 tv와 방금 그가 꾸물거리며 일어나 흐트러진 이부자리,그리고 약간의 옷이 들어간 장롱이 있었다.

tv앞에 놓인 작은 선반에는 집안의 분위기와 대조되는 흰색의 깔끔한 액자가 하나있었는데,그의 아버지 사진이 담긴 액자였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웃는얼굴이 담긴 액자에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잠은 편히 주무셨어요?.어제는 너무늦게 들어왔죠?프로젝트 준비하느라..야근했거든요.아버지.밥은 꼬박 드셔야해요.알았죠?"

 

양치질을 하느라 어물거리는 발음 이였지만 그의 마음만은 진짜였다.액자속의 아버지는 마치 정말 그 인사를 들은 것 처럼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있었다.

그는 만족한 듯이 액자를 보며 씨익 웃었다.그리고 양치질을 끝내기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아침인사는 그가 꼭 지키는 하루일과중 하나였다.

이른아침 이기에 아버지에게 안부전화를 대신해 액자에 인사를 하기시작한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꽤 익숙해진 그였다.

그가 어렸을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자신을 홀로 길러준 아버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였지만,자신의직장 때문에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살게되었기 때문이였다.

세면대안에 입안에 가득찬 거품을 뱉고 손으로 물을 받아 입안을 헹군뒤,그는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입가에 묻은 거품들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어제 야근을 끝마치고 집에오자마자 대충 벗어놓은 상태 그대로인 정장을 주섬주섬 주워입었다.아침과 비교하면 몰라볼정도 였다.

그 역시 그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넥타이와 옷 매무새를 점검하다 거울을 보며 미소지었다.그리고 그제서야 집에서 빠져나와 회사로 향했다.

 

....

 

95,사무실-

큰 회사는 아니였기에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 사무실에 들어가기전까지는 출근시간임에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3층에서 엘레베이터가 멈추고,2개의 사무실을 거쳐 3번째 사무실에 들어섰다.

이 층안에서는 가장 넓은 사무실이기도한 재민의 사무실에는 유일하게 탕비실이 마련되있었기에 인턴들이 가장많이 배정받는곳이였다.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면서 눈이마주치는 회사동료들에게는 가볍게 목례하는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선,자리에 앉았다.

 

책상위쪽에 붙여진 금색의 명찰에는 '주임 김재민'이라고 쓰여져있었다.재민은 익숙하게 자리에앉아 서류가방을 가방걸이에 걸었다.

그의 책상은 깨끗했다.파일별로 정리된 서류들은 책상한쪽에 가지런히 놓아져있었고,서랍 첫번째칸에는 여러 필기도구들과 포스트잇들이 깔끔히 정리되어있었다.

덕분에 회사동료들이 필기구가 없을때는 재민에게 빌려가는일이 대부분 이였지만,그는 별로 기분나빠하지않았다.그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회사동료들을 꽤 좋아하는편이기 떄문이였다.

물건을 몇번씩빌려가는 동료들은 커피를 사올때 재민의것도 챙겨주거나,하다못해 캔커피에 포스트잇까지 남겨주곤했다.그덕분에 재민의 책상에는 동료들이남긴 포스트잇들이 쌓인 작은 보드지가 붙어있을 정도였다.

 

"오늘도 일찍오셨네요.주임님-"

 

",.안녕하세요"

 

2개월째 인턴일을 맡아서하고있는 박인턴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책상위에 인스턴트커피를 올려놓았다.인스턴트 커피를 좋아하지않는 그였지만,며칠째 야근에 시달리다보니 그런 커피마저 감사히 느껴졌다.

그는 가볍게 목례를한후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그리고선 책상위에 빨간색 포스트잇으로 체크된 서류를 꺼냈다.

한장.한장을 세심하게 밑줄친 한자 까지도 꼼꼼히 살피던 그는 2번을 완벽히 살피고서야 서류를 덮었다.며칠동안의 야근이 보람차게 느껴질정도로 자신이 봐도 완벽할정도였다.

그는 서류를 대리에게 건네주기위하여 자리에서 벗어나 대리의 자리로 향했다.

이 프로젝트만 성공시킨다면,승진은 당연했고 그가 바라던 일까지 이룰수 있을터였다.이대리는 자신의 머리의 빈부분을 작은거울로 요리조리 비추며 바라보고있었다.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빈곳을 손으로 더듬기도하고 머리가 빠질새라 꾹꾹 두피마사지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대리가 행동을 멈추길 기다렸지만,도통 거울을 손에서 놓을생각을 안하자,재민이 큼- - 하고 헛기침을 두어번했다.

이대리는 깜짝놀란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이대리에게 서류를 보여주곤 싱긋 미소짓더니,그 서류를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이대리는 자신의 책상위에 올려진 서류를 보더니 자리로 돌아가라는듯이 손짓하고,손거울로 다시 자신의 머리를 보는것에 집중했다.

그는 서류를 건네주고서도 자신의 자리에 앉아 긴장된 표정으로 이대리를 바라보았다.이대리는 재민이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손거울을 책상위에 내려놓고선 재민의 프로젝트서류를 꺼내어 훑었다.

그리고나서 부장의 자리로 다가가 서류를 부장에게 건넸다.재민은 여전히 긴장된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부장은 서류를 받아들고 한장한장씩 조심스럽게 넘기더니 파일을 탁- 덮고선 호탕하게 웃었다.

 

"이대리!이게 얼마만의 성과야.그래 하면 되잖아 하면!이대리~ 아니,이제 이과장이라고 불러야하나?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게 분명해!그래!잘했다고 아주!모두들 노력한 이대리를위해 박수!"

 

"하하,과찬이십니다.부장님"

 

-짝짝- -.

 

사무실에 울리는 박수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진 재민이 이대리를 바라보자,이대리는 재민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선 쑥스러운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재민은 이제서야 떠올린것이였다.

이대리에게 건네준 프로젝트서류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않았다는것을 말이다.그는 당황스러움과 억울함이 밀려와 웃는얼굴의 이대리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대리가 그동안 가져간 자신의 아이디어들이 수도없이 많았다는걸 이제서야 기억해낸 자신이 미울뿐이였다.

하지만 그동안의 자료들은 모두 넘길 수 있는 정도였지만,이번 프로젝트는 자신이 몇주동안 정말 열심히 야근도 해가며 만들었던 것 이기에 쉽사리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서러움이 복받쳐올라 그 자리에서 눈물이 흘러나올것만 같았지만 주먹을 꽉 쥐는것으로 눈물을 참아내려 애썼다.

그리고 박수소리가 줄어들때쯤에 자리에서 박차고일어나 외쳤다.

 

"이대리님!!"

 

그러자 이대리와 회사동료들 그리고 부장까지 재민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막상 소리는 질러버렸지만,많은이들의 시선에 그는 주춤했다.이대리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약간 저었다.입을 닫으라는 신호였다.

말을 하고싶은데,저 프로젝트서류는 내것이라고 외치고싶은데,입은 생각과는 다르게 꾹 다물어져선 열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내가 말을 하지않자 회사동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시작했다.

'왜저래?' '무슨일인데?' '뭐야.뭔데?' 호기심 그리고 비아냥.그런 소리들이 귓가에 맺혔다.

결국 그는 아무말도 하지못한채 사무실에서 뛰쳐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하늘은 구름한점없이 새파랗다.아무고민도 없는것처럼 말이다.세상은 내마음대로 돌아가지않는다.특히 사회생활은 그렇다.

'싫어요' 대신 ''라고 해야하며,비겁한일을 당해도 웃으며 넘겨야한다.참지못하는사람이 지는거다.

이제 꽤 괜찮은사람이 되었다고 믿었는데,그건 내 착각이였나 보다.나는 여전히 나약하고 멍청하고 어리석었다.

세상어디에나 내게 맞지않는사람은 있다.그렇기에 더 노력하고 신경써왔는데,내 실수하나로 모든걸 망쳐버렸다.

나쁘지않은 하루가 아니라 최악의 하루였던 거였다.

 

"..다시 서류를 내기전으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

 

?

'뭐지.뭐지.뭐지?지금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옥상위에서 울고있었던 그가 갑자기 사무실안으로 들어와있었다.순간이동이라도 한것일까.라는 생각에 몸을 만지작거리고 사무실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입었던 정장도 그대로,사무실도 그대로였다.다만 그가 사무실을 뛰쳐나가기전의 평소와같은 분위기에 사무실이라는걸 빼고말이다.

 

"오늘도 일찍오셨네요.주임님-"

 

"?....고마워요"

 

박인턴이 책상위로 뜨거운 인스턴트커피를 내려놓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그는 그녀가 돌아간후에도 자신의 책상위에놓인 커피를 응시했다.

그녀가 커피를 책상위에 올려놓고간다는것은... 재민은 재빨리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향해 고개를 돌렸다.9..

 

"7..."

 

순간이동이 아니였다.그는 자신이 아침에 사무실에 왔던 그 시간대로 이동한 것이 였다.말도 안되는 상황에 당황하고 놀랐지만,그 보다는 자신이 저지른 상황이 무마되었다는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 컸다.

심장이 쿵쿵하고 빠르게 뛰었다.한번도 겪어보지못한,영화속에나 나올법한 일을 경험했다는것에 대한 경이로움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사실은 그 모든일이 자신의 상상이였고 지금이 현실이라면?고개를 갸웃거렸다.꿈과 가까운 현실이든,현실같았던 꿈이든 지금의 자신에겐 중요하지않았다.

그는 책상 한구석 놓아져있는 프로젝트 서류를 집어 펼쳤다.꿈 혹은 망상에 나왔던것처럼 프로젝트에 자신의 이름은 적혀져있지않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신경쓰지않으려 애썼다.그는 볼펜으로 서류의 첫번째 페이지.프로젝트 명 옆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김 재민'

 

곧이어 그는 자신의 서류를 빼앗아갔던 이대리쪽을 살피기 시작했다.이대리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조심스레 더듬으며 빈곳을 거울로 바라보며 얼굴을 찡그리고있었다.마치 꿈속에서 그랬던것처럼 말이다.

재민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과거로 돌아온것이 아닐까.라고 스쳐가듯 생각했다.물론 길게 생각하지는 않았다.야근때문에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못한 탓일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챙겨 부장의 책상 앞으로 향했다.

 

"이번 프로젝트 서류입니다,부장님"

 

재민은 자신이 속에 꼭 쥐고있던 서류를 부장에게 건넸다.부장은 그가 준 서류를 한장 한장 천천히 넘겨보더니,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부장의 입에서 나올말이 자신이 생각했던대로가 아니였으면 했다.차라리 서류에서 오타라도 찾아내 혼이라도 냈으면 좋겠다고 잠시동안 생각했다.

자신의 꿈처럼 모든일이 맞아떨어진다면,..그렇다면.... 잘 모르겠다.그런건 평생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일이였으니 말이다.

 

"뭐야,김주임!이런 능력이 있었어?그래 하면되잖아,하면!아니 이제부터는 김대리라고 불러야하나?

이 서류만 있으면 프로젝트성공은 물론 승진까지 일사천리라고!.모두 수고한 김주임에게 박수!"

 

- .짝짝- 사무실에 동료들의 박수소리가 퍼졌다.부장은 그의어깨를 두드리며 재민을 웃는얼굴로 바라봤다.

토씨하나 안틀리고 자신의 꿈처럼 일어나는 일들에 그는 가슴이 쿵쿵거려 심장소리가 바깥으로 빠져나올것만 같았지만,진정시키려 애썼다.

정말 그의 생각대로 풀려가는 상황들이 마치 꿈을 꾸는것만같았다.이대리는 재민을 잔뜩 구겨진표정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재민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는 생각했다.그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였다고 말이다.

 

...

 

회사 복도에 있는 자판기안쪽유리에는 항상 습기가 차올라 물방울이 맺혀있었다.그만큼 시원하다는거겠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생각을 하는것도 잠시 그는 자판기에 지폐를 넣으며 생각했다.방금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말이다.

처음에는 모두 꿈이였던것이 아닐까,그냥 나의 망상은 아니였을까 라고 생각했지만,결국 그렇다고 하기에는 모든게 너무 현실과 걸맞는다는걸 인정했다..

아침마다 커피를 나눠주는 박인턴과,괴팍한 이대리,자신의 프로젝트 서류내용과 그에 걸맞는 반응을보여준 부장까지 말이다.

재민은 오렌지주스를 눌렀다.곧이어 자판기는 덜컹- 소리를 내며 오렌지주스가 떨어졌고,그는 그걸 집어올려 뚜껑을 땄다.

 

"-"

 

뚜껑을 열다가 캔음료의 날카로운부분에 베여 그의 손가락에서 피가 베어나왔다.그는 피를 한번 닦아내고 입으로 손가락을 물어 지혈했다.

그리고선 피가 어느정도 멈추자 손이 또 베이지않도록 조심하며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왠지 끝없는 갈증이 그를 얽매이는듯한 기분이였다.

 

"신났네.김주임"

 

",이대리님 안녕하십니까"

 

어느새 나타난 이대리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그는 심란한 와중 나타난것이 하필 이대리인것도,과거에 자신의 서류를 빼앗아간 장본인이 나타나,

인사를 거는것도 모두 마음에 들지않았지만,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할 뿐이였다.

물론 좋지않은시선으로 상대를 보고있는건 이대리 또한 마찬가지였다.이대리는 잔뜩 심술궂은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프로젝트서류 말이야..담당자인 나에게 가져오는게 맞는거..아닌가? 하하.아니뭐 나를 못믿는건가 해서 말이야

우리 김주임이 그럴리 없지^^ 그렇지?"

 

",물론 이대리님을 믿지못하는건 아니지만,역시 부장님께 바로 서류를 올리는게 수고를 덜거같아서요."

 

"...그래 그렇지,근데 그런걸 언제부터 김주임이 결정했지?김주임은 참 눈치가없어~그러니 주임이라는 직책에서 더 못올라가는거아냐~"

 

"그런가요.."

 

"말대답하는것도 참- 우리때는 안그랬어.선임이 시키면 뭐든지 다 네하고 대답하고 뭐든지 했다구."

 

이대리는 그의 대답조차 마음에들지않는지 쯧쯧-거리며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말이야..내가 이런 얘기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

 

"자네 아버지말이야.. 불구라며?그럼 사지멀쩡한 김주임이라도 열심히 일 해야되지않겠어?"

 

재민은 자신이 들은말에 귀를 의심했다.혹시 저사람이 드디어 미친것인가 하는 생각까지할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끝나지않고 이어졌다.

 

"근데 불구니뭐니 장애인이니 이런소리하는것도 참웃겨.그냥 그렇게 태어났거나 그렇게됬으면 자기운명인거지

나라에서 복지금까지나온다며?회사에서도 주나?나도 이참에 다리하나 부러져야 되나몰라~누가알아 보너스라도 챙겨줄지"

 

-

재민은 두번이나 자신의 아버지를 모욕한 이대리에게 한치에 망설임도없이 캔안에 남은주스를 그에게 쏟아부었다.

이대리의 옷에서 오렌지주스가 뚝뚝 흘러내렸다.재민이 뻗은 손끝에는 오렌지주스를 얼굴에 맞은 이대리가 어안이 벙벙해진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저지른일에대해 자신도 놀랐지만,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건들이지말아야할것을 건든사람은 사람이아니다.그의 아버지는 항상 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몇달동안은 정신차리지못하셨다.하루종일 술을 마시며 어머니의 사진을 보는것.그게 하루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러던어느날 정신을차리고 일을 구하기시작했다.몇달동안 회사에 나오지못한터라 회사에서는 아버지를 다시 받아주지않았다.

아버지는 그래서 일용직노동자가 되었다.새벽4시에 일용직사무소에 가서 일을받아와 일을했다.

아르바이트 대타,건축 노가다,참치잡이,신문배달까지 못해본일이 없었다.하지만 그런일조차 받지못할때가있었는데,

그런날은 나에게 짜장면 한그릇을 사다주며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하셨다.내일은 꼭 일을 구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어느날 공사장에서 일을하다 다리를 다친뒤로는 더이상 사무실에서 일을 받지못하셨고,그동안 모은돈으로 택시를 장만해 택시기사를 하고 계셨다.

그는 그런 아버지가 일을 못하게되고,병원비를 빚지게 되자.더 높은 봉급을주는 먼 회사로 이직해야만했다.

 

"이게 미쳤..!"

 

누군가는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그가 지금 할수있는행동은 자신이 과거를 다시한번되돌린다.라는 도박의 선택지 밖에는 남지않았다.

 

"이대리를 만나기전으로 돌아가."

 

..

 

눈을 깜박거렸다.몇번을 반복해도 재민의 눈앞에는 이대리의 그림자조차 보이지않았다.재민은 또 다시 시간을 되돌린것이였다.이제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해도 좋았다.마치 신이 그에게 준 선물같았다.그 정도로 그가 한 행동은 현실감이 없었다.

 

그는 자판기앞에서 뜨거운커피와 오렌지주스 중에 무엇을 고를지 도무지 결정하지 못했다.

소심한복수와 뜨거운복수 사이에서 말이다.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오렌지주스를 골라 캔을 조심히 열었다.

 

"신났네,김주임"

 

"!"

 

재민은 이대리가 자신을 부르는소리에 깜짝놀라는척을하며 주스를 그에게 쏟아버렸다.아니 쏟아부었다.그의 얼굴부터 발끝까지 모두 적시게 말이다.

아까보다 훨씬 끈적할것이 틀림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대리님 아..주스가.."

 

"..,,!"

 

이대리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선 자신의 셔츠에 묻은 오렌지주스를 닦기위해 남자화장실로 달려가버렸다.

재민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었다.....자신의 서류를 부장에게 건냈을때와 다른 능력에 대한 확신.그것에 대한 떨림이였다.

그는 이미 자신의 인생을 몇번이나 뒤바꾸었다.자신이 미래를 바꿨다는 마음에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며 열기를 느꼈다.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감싸올라 그의 모든걸 뒤덮는듯한 느낌이였다.

 

그는 자신이 바꿀수있는 일들로 계획을 세웠다.당첨번호가 나오기전의 과거로돌아가 당첨번호대로 로또를사서 당첨금을 얻는다거나,

스무배는 우습게 벌수있는 스포츠토토의 결과를 미리본다거나,이대리에게 했던것처럼 자신을 괴롭게했던사람을 괴롭힌다거나 하는 그런 흔해빠진일들 말이다.

물론 이제 그는 그 흔해빠진 상상들을 현실로 바꿀수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말이다.그떄,그는 머리속에 한사람을 떠올렸다.

자신을 위해 모든걸 희생한,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삶의 이유인,아버지를 말이다.

이제 재민과 그의 아버지를 가로막는 벽을 부술수있었다...돈 망할 돈을 구할 방법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그는 다시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던 집으로 돌아갈수있었다.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간의 신호음끝에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버지,꼭 하고싶은말이 있어요.이제 우리 걱정안하고 살수있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말이야..회사는 어쩌고?회사에 있을시간 아니니?"

 

"그건 이제 걱정할것없어요.지금 어디계세요?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지금?이리로 온다고?"

 

".택시타고 갈게요.거기 그대로 계세요.어디에요?"

 

"..지금은 좀 곤란한데..꼭 오늘 해야하는말이니?"

 

회사 밖으로 나가려 빠른걸음으로 걷던재민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아버지에게 무슨일이라도 생긴것일까.

 

"그럼.... 한성아파트 정문으로 오거라,기다리마"

 

머뭇거리며 아무말도 못하던 아버지가 결국 입을 열자,재민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시작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지만,별로 신경쓰지않았다.그는 지금 기쁨으로 가득차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나고 그는 회사앞으로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한성아파트로 부탁드려요"

 

그리고선 생각에잠겼다.아버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할까.

복권이 당첨됬다고만 해야할까.아니면 능력에 대해 모두 이야기를 꺼내야할까?해외로 단둘이 여행을 떠나자고할까?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짓고 살까?

재민의 머리속은 난생처음해보는 행복한 고민들로 가득찼다.하지만 그 무엇보다 머리속에 아른거리는것은 그 모든것을 듣고난후 자신에게 미소지을 아버지의 표정이였다.

어릴적 집을 나간 어머니,하지만 아버지는 재민을 포기하지않았다.그동안 안해본일이 없었다.이대리가 다시한번 그를 나쁘게말한다면 한치의 망설임도없이 그에게 주먹을 날릴수있을정도로

아버지는 내게 소중했다.서툰솜씨로 내게 밥을 챙겨주면서도,정작 자신은 하루에 1끼로 버텼고.이른 새벽에일어나 일거리를 구하러 나가셨다.

막노동이든 배달이든 대리운전이든 다른사람들에게 모욕을듣고 무시를 받아도 언제나 고개숙이며 이를 악물고 버티셨다.

이제 그는 그것에대한 보답을 받을 차례였다.

 

"도착했습니다"

 

재민은 택시기사에게 만원짜리 지폐를 건네며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아버지가 이곳에있는것인지 알수가없었다.주변에서 택시차량을 찾으려 두리번거렸지만 택시는 커녕 값비싼 차들로만 가득한 아파트였다.

 

"재민아."

 

"....아버지"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에 뒤돌아선 그는 눈살을 찌푸릴수밖엔없었다.그동안 모은돈으로 택시를 장만해 택시기사일을 한다던 아버지는

허름한 짙은파랑색의 경비원복을 입고있었다.아버지가 쓴 캡모자에는 '한성아파트 경비원'이라고 적혀져있었다.

한손에는 쓰레기를 집기위한 녹슨 집게와 다른 한손에는 쓰레기로 가득찬 쓰레기 봉투가 쥐어져있었다.

그동안의 수모와 힘듬이 녹아내린듯한 얼굴로 애써 자신의 아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버지를,재민은 그저 꼭 껴안고서 아무말도 할수없었다.

 

"오랜만이다,재민아.그동안 잘지냈어"

 

"아버지..택시는 어쩌고 경비원일을 하고있는거에요"

 

아버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던 재민은 또한번 얼굴을 찌푸렸다.그냥 장갑도,하다못해 목장갑도아닌 구멍이 뚫린 고무장갑을 끼고있었기 떄문이였다.

재민은 아버지가 들고있던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빼앗고,구멍뚫린 낡은 고무장갑을 벗겨내어 그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굳은살로 덮여진 거친손이였지만,그의 온기로 데워내기위해 재민은 손을 한참이나 꼭 잡아내었다.

 

"그게 어떻게된거냐면.."

 

"변명할 생각하지마세요.그건 이제 상관없으니까...우리 이제 다시 같이 살아요.아버지"

 

"..춥다,들어가서 얘기하자 우리"

 

차가운 아들의 손을 만진 그는 아들이 감기라도 걸릴까봐 급히 경비실로 그의 아들을 이끌었다.

경비실로 향하는 아버지의 발걸음은 어딘가 불편해보였다.사고의 후유증 때문이였다.절뚝거리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보는 재민의 마음 또한 편치않았다.

한평남짓한 공간에 있는거라곤 작은 난방기구와 덮여진 선풍기,의자와 작은쇼파 그리고 쌓인 아파트주민들의 택배들 뿐이였다.

이야기가 통할수있도록 유리에 구멍이달린 창앞에는 재민과 그의 아버지의 어릴적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있었다.

아버지는 먼저 경비실로 들어가 아들이 혹시라도 추울까 급히 난방기구를 틀어 쇼파를 향해 돌려놓았다.

재민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다 쇼파에 앉아 아버지를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래서... 그건 무슨 얘기냐?같이 살자니.."

 

그는 잠시 말을 하기를 망설였다.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할까 아니면 말을 돌려야할까 하고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입을 열었다.

 

"시간을 돌릴수있게 됬어요"

 

"뭐라고?"

 

"시간을..내마음대로 뒤로 돌릴수있어요.이것만 있으면 복권당첨이고 뭐고 모든 다 할수있어요.

이제..이제 회사도 안가도되고 이제..정말로... 이런일도 안해도되요 아빠"

 

말을하다가 눈살까지 찡그려질만큼 마음이 복받쳐 올라왔다.더이상 이제 정말 고생은 끝이다.

얼마나 참으며 살아왔던가.따뜻하고 평범한 밥상한번 제대로 먹지못하고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우는것이 보통이였으며

방학이되면 급식마저 먹지못하고 라면으로 하루세끼를 떄우는게 보통이였다.형편때문에 학원에는 가지못해도 낮이고밤이고 공부공부공부에 매달려 번듯한 직장까지 가질수있었다.

그런 아들을 묵묵히 바라볼수밖에 없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일만을 하며 살아왔다.

 

"시간..."

 

재민은 고개숙인 아버지를 이해할수있었다.아들이 말도안되는 뜬금없는소리를 꺼낸다면 누구라도 저런반응일것이다.

그것도 나이도 먹을만큼먹은 다큰 아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하지만 뭔가 그런분위기와는 조금 달랐다.

당황스러움과는 다른...뭔가...진지하고 답답한 느낌이였다.그리고 마침내 고개숙인 아버지가 두 손을 모으며 입을열었다.

 

"그게...너한테도 생긴 모양이구나"

 

"?"

 

사실 어느정도 반응은 예상하고 있었다.정신병원에 가보자거나,놀라 입을 다물지못하거나,말이 안된다며 화를내는 그런 '보통'의 반응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입에서나온말은 전혀 예상하지못한 말이였다.덕분에 그가 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경비원모자를 벗으며 한숨을 깊이 내뱉었다.공기가 한순간에 무거워지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한번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공사장에서..다리 다쳤을때..그래서 니가 급히 병원으로 달려왔을때 기억나니?"

 

"기억나죠..어떻게 그걸 기억못할수가있어요"

 

재민은 그때의 기억을 다시금 되새기며 침을 삼켰다.그 당시에 그는 회사에서 서류를 인쇄하고 있었다.

멍하니 종이가 모두 인쇄되길 바라며 지켜보는중이였다.그때,여사원이 회사전화기를 들고 다급하게 내이름을 외쳤다.

나는 걱정과 긴장감으로 둘러쌓인채로 병원에 도착했다.아버지는 3층에서 떨어진사람을 구하려다가 다친것이라고했다.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해서 큰 후유증은 남지않았지만,떨어진사람은 식물인간이 되었다.나는 아버지를 붙잡고울었다.

그후로 쌓여가는 병원비때문에 나는 이직을 해야만했고,아버지는 항상 내게 미안해했다.그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나도 그 능력을..가지고있었다."

 

"...."

 

"그날..그날은 평소와 다를게없던 그런날이였어."

 

...

 

"김씨!" 그것이 그곳에서의 그의이름이였다.모두가 그를 그렇게불렀다.하루마다 사람이 바뀌기도하고,몇주째 안보이다가도 생계를위해 다시 이곳에 나오는사람도 있었다.

그를 부르는것이기도 하면서 모두를 그렇게 불렀다.햇빛이 앞을 가로막고,숨이 끝까지차오르기도하고,온몸이 지쳐도 그들은 움직여야만했다.누군가를위해.

김씨는 이곳에서 오래일한 배테랑중 하나였다.벌써 2년넘게 이일을 하고있었으니 말이다.같은곳에서 오래일해야만이 일자리를 얻기가쉬웠다.그래서 몸이 피곤한날에도 파스에 몸을 맡기고 다시 이곳에나와야만했다.

 

그날은 유난히도 더웠다.땡볕에서 벽돌을 수십개씩 옮기고 또 옮겼다.이런날에는 식사시간을 기다리며 행복한상상을하는게 최선이였다.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아들이라던지,시원한 냉면이라던지 말이다.그렇게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데

공사장에서 가장 친한 진씨가 내게 박카스를 건넸다.만지자마자 차가운느낌이 손에 전해져왔다.살것같다..라는 느낌이 전해오는 듯했다.

 

"웬거야?"

 

"대장이 주더라.난 이미먹었어.너먹어"

 

나는 그저 씨익웃고선 진씨를 바라봤다.저건 거짓말이다.까다로운 대장이 두개씩이나 시원한 박카스를 쥐어줄리없었다.

그렇지만 말없이 병따개를 열어 한번에 들이킬뿐이였다.꿀꺽-꿀꺽- 시원함이 목에 전해져 내려왔다.

진씨는 항상 내게 고마워했다.부모도 자식도 없는 그에게 남은거라곤 나밖엔 없었으니까.거절해봤자 마음아파하는건 그였기에 나는 더이상 거절할수가없었다.

 

"근데..오늘은 사람이 별로없네?"

 

"노가다가 그렇지뭐.사람이 있다가도 없고,없다가도 있고"

 

진씨와 김씨의 대화는 짧았다.항상 그렇게 짧은것만은 아니였지만,대부분 그랬다.무거운벽돌을 매고선 땡볕아래에 서서 길게 대화를 할수있는사람은 얼마없었으니말이다.

그리고선 뭐 계속 같은일을 반복했다.벽돌을 쌓고 매고 옮기고 내려놓고.얼마나 반복했을까.

 

"으아아아아악!!!!!!"

 

공사장끝 건물의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대장과 여러 노가다일꾼들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나도 마찬가지였다.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공사장에서 사고가 일어난적은 많지만,사람이 떨어지는것은 엄청 드문일이였다.3층에서 떨어진건.진씨였다.

 

사람들이 잔뜩 둘러쌓인곳에서 '진씨'는 얼굴을 땅바닥에 파묻고 피를 흘리고있었다.

3층에서 떨어져 흙바닥으로 뭉개져내려온 그를,그 누구도 제대로 볼수없었다.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구급차 사이렌소리가 귀를 울렸다.이렇게 사이렌소리를 가까운곳에서 들어본것은 처음이였다.나는 그자리에 주저앉아 움직일수없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구급대원들의 발소리 그리고 바닥을 적시는 대량의 피...나는 눈을감았다

 

"돌아가"

 

.

 

"깨어난후에 도저히 몸을 움직일수가없었어..숨이 탁 막혀왔지.세상이 빙빙도는것만 같았어..근데 그때 진씨가 내게 다가왔어.그리고 내게 말을했지.

 

몸상태가 많이 안좋나?자네가 요즘 무리하는것 같긴했어..쉬엄쉬엄하라구 김씨."

 

"....."

 

"아직도 아른거려.그때 진씨가 한말이.넌 만약 죽었던 나를 되살리기위해 과거를 되돌렸을때 저런말을 들으면 어떨거같으냐?

...난 그를 살리려했어...그런데!"

 

"살리지못했군요."

 

"그런셈이지...하지만 지금 내가하려는말은 그게아니다.

 

그 능력은 단 한번밖에 되돌리지못해.전보다 더 안좋은 결과가 나오던지 더 좋은 결과가 나오든지 상관없이말이야.

 

넌 니가 한행동이 무조건 성공하리란 확신을 가질수있냐 이말이다.그 능력은..축복이아니라.."

 

"재앙이다..이 말을 하려는거에요?"

 

"그래..."

 

김씨는 감싼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그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해져오는듯했다.

재민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수없었다.재앙이니 축복이니,그건 중요한게 아니였다.중요한건 그가 지금 그 능력을 쓸수있다는것.그것뿐이였다.

 

"아니,아니...!..애초에 그런 능력이 있단사실을 왜 숨기신거에요?

 

그능력만 있었다면..우리가 애초에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거아니에요!"

 

가난..이사.구멍난 고무장갑.다친 아버지.다리.능력.이대리.부장.프로젝트.되돌리다.음료수아버지의 친구.식물인간.공사장.막노동.어머니.회사.소음.분노.커피.인스턴트.알람시계.

 

모든것들이 그의 머리속을 떠다녔다.알람소리의 삐익소리마저 그의 머리를 울리게하는듯 했다.

모든 물음의 끝은 단 한가지였다. ? 대체 왜?

 

"말했잖아,그 능력은 재앙이라고!"

 

"그게 왜 재앙이라는건데요!!!아버지가 친구를 되살리지못해서??아버지 다리가 다쳐서 고작 이런 경비실에서 쳐박혀 살아야한다는거???"

 

"그 능력때문에!!!!!너네 엄마가!!!!민서가...."

 

김씨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두 사람의 말소리가 커지고 거칠어져 경비실을 뚫고나갔다.그리고 한순간에..조용해졌다.

싸늘한 바람소리만이 경비실에 들려왔다.재민이 꾹꾹 눌러담은 상처들이 빠져나왔다.아들은 아버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엄마가 뭐요?엄마가!!!!!!!"

 

"..재민아..."

 

"뭐냐고 묻고있잖아요내가!!!"

 

"그건 사고였어.재민아.."

 

"됐어요!!!"

 

"재민아..!!!"

 

재민은 경비실을 빠져나왔다.거칠게 당겨진 문고리 때문에 문은 커다란 굉음을 내며 닫혔다.문이 닫히기전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불렀지만,쫒아나오지는 않았다.아니 쫒아나오지못했다.

몇십년동안 숨겨오던 비밀을 알게된 아들을 미처 쫒아가지 못했다.어머니에 대해 물을때마다 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재민은 그런 아버지에게 도저히 더는 물을수가없었다.그래서 그는 어머니에대해 잊을수밖엔없었다.

 

"...."

 

펼쳐진 손을 쥐었다 펼치기를 반복했다.능력..능력..능력.우연히 생긴 능력이 사실은 아버지한테 있던 능력이였고,어머니는 이 능력 때문에 죽었다.이게..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야? 이게?씨발..."

 

재민의 입에서 짧은 욕이 새어나왔다.이 상황에서 할수있는일이라곤 그저 주저앉아서 욕짓거리나 내뱉는것말곤 없었다.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그는 하늘을 바라봤다.맑았던 아침과는 대조되는 흐릿한 날씨였다.

 

"더럽게 흐릿하네."

 

끼이이이이익--- 하늘을 바라보던 재민이 굉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를 향해 비틀거리는 차가 빠르게 접근했다.!!!!!!!!

차가 굉음같은 자동차 경적소리를 냈고,재민이 그곳으로 다가가려던 찰나에 작은몸이 커다란 차에 부딪혀 날아갔다.차를 운전하던남자가 다급히 차에서 빠져나와 그 여자아이를 향해 다가갔다.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여자가 소리를지르며 다가와 여자아이를 매만졌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한숨을 내뱉고선 중얼거렸다.

 

"에이 씨발진짜.돌아가!"

 

.

 

"우웁"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어지럽다였다.그리고 곧이어 처음 느껴보는듯한 두통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아픈건 머리 뿐만이 아니라 몸도 마찬가지였는지 입안에서도 쓰디쓴 액체를 내뱉었다.쏟아지는 두통에 어지러워 한걸음한걸음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이게 아버지가 말했던 재앙인건가.하고 잠시생각했지만,생각할시간조차 그에게는 사치였다.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저기..마트보이지?너희 어머니가 너찾고계셔.얼른가"

 

"엄마가..?근데 아저씨.어디아파요?"

 

"..지금 그럴때가..아니..아저씬 괜찮아.그러니까"

 

끼이이이익...

 

"제발.제발 가라고!!"

 

빼애애앵!!!!!!!!!!!!!!!!!!!!!!! 한순간에 벌어진일이였다.주춤주춤 뒤로 물러가는여자아이는 이내 자신의 어머니에게 뛰어갔다.제 몸을 가누지도못하는 재민은 그자리에 멈춰 여자아이가 뛰어가는 광경만을 흐릿해진 얼굴로 바라봐야했다.

 

"재앙맞네..재앙"

 

그리고 눈을감은 그를 누군가가 밀쳐냈다.새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이였다.그리고 차는 가차없이 그를 치었다.재민의 귓가에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그런데 하나도 하나도 아프지않았다.그는 조심스레 굳게 감은 두눈을 떴다.

차가운 두손에 뜨거운 무언가가 만져졌다.아무것도 보지못했고 아무것도 모르는상태인데도 눈에서 눈물이 맺혀 나왔다.

보지않아도 듣지않아도 그는 이미 알고있었다.자신을 구한 빨간 고무장갑을 낀 남자가 누군지 말이다.

 

"아버지..."

 

"..민아"

 

새빨간피가 바닥에 홍수라도 내린듯이 흠뻑 젖었다.그때,눈이 내렸다.새하얀눈은 빨간피를 하얗게 덮었다.재민은 쉴새없이 흐르는 피를 막으려 자신의 겉옷을 상처부위에 덮고,자신의 무릎에 아버지를 눕혔다.그럼에도 피는 멈출기세를 보이지않았다.

 

"미리 말하지못해..미안하다"

 

"아버지..말하지마세요..괜찮아요.살수있어.살수있을거야..아버지..돌아가!!!!돌아가라고..제발..!..제발.."

 

"한번은..되돌릴수있지만,두번은 되돌릴수없다고 했잖니..“

 

그의 아버지는 손으로 재민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방금전까지만해도 멀쩡했던 아버지의 차가운손을 느끼며 그는 그저 눈물을 흘렸다.

 

너도 들어야만한다 재민아..우리셋은 트럭을 타고 있었어.그런데 건너편에서 오던차랑 충돌했지.그래서 사고가..났어..모두가 피를 흘리고 쓰러졌고,구급차가 너를 늦게 발견한탓에 너는 눈을감은채 깨어나지못했어...과거를 되돌렸어..근데..그런데.."

 

"그만 말하라니까요..."

 

"너를 꼭..껴안고 쓰러졌지.근데...그런데 너를 살리도록 과거를 되돌린탓에 민서가..흉부에 ......."

 

"그만요...그만..아버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못했어...그래서 과거를 되돌렸어.모든걸잊고.니가 태어난날,우리가...행복...했던날들로

 

물론 계속 사고의 반복이였어.아무리 되돌리고 되돌려도 마지막은 사고였지.난 계속 봐야만했어 민서의 죽음을.그리고 다시 우리의 처음으로 되돌렸지

 

몸은..계속 나빠져만갔어.후유증이 생겼지..그때.그래도 난 되돌릴수밖엔없었어.충격을 잊기위해.그러던 어느날 민서가 말하더라."

"뭐라고..말했는데요..?"

 

"니가..어른이..된 모습이..보고싶다고..말했어.그건 처음듣는말이였지.계속된 반복에 오류일수도있고,단순히 내가 미쳐서 잘못들은걸수도있어.그런데

 

그걸듣는순간 나도 보고싶어진거야.민서와 나의 모든것이였던 너의 미래가.그래서..그래서 과거를 반복하는걸 관뒀지"

 

그때의 일을 말하는 아버지의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면서도 웃음을 지을수없는 그가 애써 울음을 참으며 그에게 미소지었다.

김씨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갔다.이제 정말 끝이 온것만같았다.김씨는 차갑게굳은 손끝으로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정말 잘 컸어..그런 일을 겪었다고는 상상도 가지않을만큼.....하아.

 

..그순간을 후회하지않아.재민아.니가 태어난것도,내가 되돌리던과거를 다시움직인순간도, .. 내 전부니까.사랑한다.재민아"

 

여자아이의 어머니는 다급히 구급차를 이곳으로 안내하며 아이의 두눈을 가렸다.

눈 내리는 차디찬 밤,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구급차의 사이렌소리.그리고 한 남자의 절규

 

추위를 감싸는 손과 귀는 이미 터질듯이 붉어졌지만,그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아버지를 향해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그에게는 더이상 아무런말도 들리지않았다.그가 지금 할수있는일은 다시,또 다시 거친숨을 내뱉으며 똑같은말을 반복하는일 뿐이였다.

 

제발 돌아가.차디찬 겨울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얼어붙었다.얼어붙은 추위는 그의 목소리까지 집어삼켰다.

남자는 자신의 무능함에 그저 눈물을 흘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일밖에는 할수있는것이 없었다.그저...자신의 아버지를 눈에담고 또 담는일을 할뿐이였다.

 

그리고 그는 눈을감았다.그의 아버지가 과거에 그랬던것처럼,세상을떠난 그(그녀)를 다시 보기위해

 

"기억을 모두잊고,오늘 아침으로...돌아가"

 

삐비빅- 삐비비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