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의 벌레먹은 사과

by 킹갓블래하자 posted Jan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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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김. 많이 긴가? 많이 긴듯) (욕 주의(삐 처리 했지만), 급전개 주의)





 “다녀올 게.”

 시큰둥한 목소리로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에에 잠깐만 잠깐만 규민아!”

 엄마가 급히 날 부르며 식탁 아래에서 다리를 빼곤 식탁의 사과 하나를 집어 내게 건넸다. 빛깔이 좋고 새빨간 사과였다. 두고두고 보관해서는 절대 안 먹는다고 신신당부를 하던 사과였다. 아무거나 집어서 뭔지 구분을 못하고 준 건가.

 “아침도 안 먹었잖아. 이거 먹으면서 가.”

 “........아침 방금 먹었잖아.”

 “잉? 아 뭔 소리야, 안 먹었잖아! 이게 어디서 엄마를 속이려구! 엄마가 치매라도 걸린 줄 알아?”

 난 그제서야 다시 떠올렸다. 아. 엄마 치매였지....... 김태원과의 일 때문에 요새 정신이 없어서 엄마에게 신경을 덜 썼다.

 “아무리 학교가 바빠도 아침은 먹어야지!”

 엄마는 내 손을 잡아당기고는 손바닥에 사과를 내리치듯 쥐어주었다. 충격으로 약지 손가락이 살짝 저려왔다.

 “자! 이제 가봐! 학교 잘 다녀오고!”

 엄마는 금세 화색이 되어서는 내 엉덩이를 팡팡 쳤다.

 ........

 난 엄마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다녀올 게.”

 난 도어락도 없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추운 공기가 몸을 순식간에 감쌌다. 그냥 숨을 내쉬기만 했는데도 코에서 김이 뿜어져 나왔다.

 “으으으!! 추워라!”

 엄마는 두 팔로 몸을 빠르게 쓰다듬었다.

 “추운데 들어가 있어.”

 “아녀, 괜찮아! 엄마 아직 팔팔하거든!”

 “헤헤. 알았어. 다녀올 게.”

  난 발걸음을 왼쪽 내리막길로 틀었다. 경사가 져 미끄러지지 않게 발목과 발에 힘을 주어 걷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찻길 조심하고! 선생님 말 잘 듣고! 이따 학교 끝나면 외식하러 가자!!”

 난 조용히 엄지를 쥐어 하늘로 들어올렸다. 이렇게 하면 엄마가 다행히 알아 듣는다.

 덜컥

 멀리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잠시 사과를 내려다보았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과의 꽁지에서 살짝 떨어진 부분에 흉하게 구멍이 뚫려있었다. 구멍 주변은 검은색으로 썩어있었다. 게다가 사과의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진동이 느껴졌다. 사과 속에서 수십 개의 다리를 꿈틀대며 기어다니는 벌레를 생각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진 않았다.

 .......이것도 치매의 증상 중 하나인가. 사과에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도 구분을 못 할 정도로 시력이 안 좋아지나?

 아........

 한숨이 절로 푹푹 나왔다. 이 사과를 어찌 하면 좋을 까 라는 같잖은 것 때문에 나오는 한숨이 아니었다.

 사과를 조용히 점퍼 왼쪽 주머니에 넣고 왼쪽 손도 사과와 같이 넣었다. 그리곤 다시 걸음했다.






















 “치매........요?”

 하늘이 무너진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치매라고? 우리 엄마가? 항상 건강하고 팔팔하셨던 우리 엄마가........?

 “공교롭게도........ 그렇습니다.”

 의사가 조용히 질문에 대답했다.

 치매라니.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지고 심장이 쿵쾅 거렸다. 치매라니. 엄마가....... 엄마가 치매라니. 수십, 수백,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엄마가 치매라고? 진짜? 설마. 난 어떻게 살지? 병원비는? 돈은? 학교생활은? 밥은? 살림은? 집은? 나 굶어 죽나? 엄마를 내가 보살펴야 하나?

 “정확히 말하면 치매는 아니고, 정신적 충격에 의한 정신질환입니다. 알츠하이머와 비슷하지만 알츠하이머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동일하게........ 치료법이 아직까진 없습니다. 보호자분이 도와주시면 기억을 잃어가는 걸 좀 늦출 수 있긴 합니다만.......”

 머리카락 속에 손을 집어넣고 책상에 팔꿈치를 대어 머리를 받쳤다. 온몸이 불안으로 인해 경련했다.

 “저 보호자 분, 좀 진정을.......”

 옆의 간호사가 다가왔다.

 “아뇨. 괜찮아요. 얘기해주세요.”



 아냐. 아냐 아냐아냐 아냐. 제발 더 얘기하지 마. 더 얘기하면 난 미쳐버릴 거야. 제발 말하지 마. 제발.



 “증상 또한 일반 알츠하이머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만 가끔씩 ‘그’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가끔 아주 공격적으로 변하죠. 현재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아주 빠릅니다. 아마 지능이 어린아이까지 떨어질 때까지 1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좋은 다행인 점이라면.......”

 난 순간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치료 가능 한 거야? 어떻게든 돌려놓을 수 있는 거야?

 “현재 보호자 분 가정이 기초수급자이시니, 건강보험공단에 등급신청을 하시면 100퍼센트 무료로 요양원에

 순간 살의와 분노, 혐오가 폭발하여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의사의 멱살을 쥐어 들어올렸다. 의사는 당황하여 멱살을 잡은 내 손목을 잡고 이리 저리 돌려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요양을 보내? 요양!?!? 요양!??!!! 하나 밖에 안 남은 가족을 요양을 보내라고?!!?!! 그게 지금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고!?!!! 뚫린 입으로 함부로 놀려!!?!?!!!!”

 “어머 손님!!! 그러시면 안 돼요!!”

 간호사가 내 팔을 잡으려고 다가왔다.

 난 간호사의 손이 내 팔에 닿자마자 세게 뿌리쳤다. 간호사는 내 힘에 못 이겨 뒤로 고꾸라져 벽에 뒤통수를 박았다.

 “이 개 호로(삐-)끼가!!”

 난 분노에 못 이겨 그만 의사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사고가 났었다. 3년 전에. 명절이었다. 우리 가족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같이 탄 차가, 신호위반한 버스에 세게 들이받았다. 한 시민이 119에 신고를 하여 다행히 온 가족 모두 병원에 실려갔다. 하지만 나와 엄마만 살아남았다. 같은 병실에 누워있을 때, 엄마는 매일 악몽에 시달려 잠꼬대를 했다. 꿈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찾는다던가....... 아빠의 이름을 부르며 허공에 손짓까지 하기도 했다.

 온 몸에 붕대와 바늘로 꼬맨 상처를 달고 장례식장으로 향하여 친가와 같이 장례식을 눈물로 적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친가 쪽이 우리에게 호통을 쳤다. 우리만 없었으면 자기 아들은 죽지도 않았을 거란다. 그렇게 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고, 자기네 족보를 더 길게 늘일 수 있었다면서. 그러면서 또 눈물을 짜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어찌 저런 계집을 만나서 떠나버리냐며. 난 분노로 온 몸이 부들부들거렸었다. 하지만....... 엄마는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안 그래도 자기는 엄마와 아빠를 잃어버리고 남편까지 잃어버렸는데 그걸 자기 탓이라고 문책하는 친가까지 있으니. 그날 밤, 엄마는 잠시 나를 불러 짧은 몇 마디를 했다.


 ‘차에 있을 때, 아빠랑,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피를 흘리고 계셨던 걸 봤어. 숨을 헐떡대며,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것이 마치....... 마치 생선 같았어. 그 모습을 보니....... 너무 허무하더라. 내가 살아온 게, 정말 보람차고 뿌듯한 줄만 알았는데, 죽음 앞에서는 그 보람차고 뿌듯한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으니까 말야. 엄마는....... 너에게 좋은 엄마였니?’


 난 끝내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나와 엄마는 기초수급자로 등급이 정해져 기초수급을 받기 시작했다. 엄마도 일자리를 하나 구해서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하셨고, 나는 쉬었던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고 방학이나 주말에는 알바를 하는 식으로 돈을 조금이라도 모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점점 돈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나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이 잘만 풀리는 줄 알았다.

엄마의 기억력이 이상하게 안 좋아졌다. 설거지를 했는데 또 설거지를 하려 한다거나, 점심을 먹었는데도 나중에 점심을 안 먹었는데 왜 이렇게 배가 부르지? 라는 말을 하거나. 그래서 병원을 가봤다. 건망증인가 하고서. 하지만........ 진단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치매에 걸렸단다. 정확히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생긴 정신병이라지만 치매와 뭐가 다른가. 난 단번에 그 사고로 인해 치매가 생겼다 단정을 지었다.

 죄책감과 슬픔에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제 막 50대 중반에 들어선 젊은 나이인데 치매라니. 그것도 정신적 충격에 의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전부 내 탓 같았다. 내가 엄마를 감싸주지 않아 이렇게 됐다고, 내가 없었으면 엄마는 저리 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내 숨통을 더더욱 조여왔다.

 난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어떻게 엄마에게 치매라는 사실을 말하나. 하지만 집에 와서, 엄마는 내게 물었다. 그냥 노화로 인한 기억력 저하인지.



 난 결국 말해버렸다. 도저히 거짓말이 입에서 튀어나오질 않았는데 어쩌란 말인가.



 엄마는 그 말을 듣곤 조용히 나를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날 토닥였다. 엄만 괜찮다고. 엄마는 우리 아들만 있으면 된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치매 걸리면 뭐 어떠냐고. 곁에만 있으면 돼지. 내 눈물이 흘러넘쳐 엄마의 어깨를 적셨다. 곁에 있어도 잊어버리면 아무 소용없는 건데 어떻게 괜찮다는 건가. 하지만 난 말하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울어서 꺽꺽대며 말하는 우스운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랄까.







 하지만 다음 날, 날이 밝았을 때, 엄마는 그새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어젯밤의 대화를. 정말 이제 나는, 내 마음은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상처받을 공간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냥....... 아팠다. 많이. 아주 많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눈물도 안 나오고 슬픈 표정도 지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어젯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엄마에게 그냥 웃어보였다. 속에서 나는 엄청난 슬픔에 목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질렀지만.














 게다가 난 친구도 없는 외톨이다. 비극적이게도.





















 “야.”

 한 여자의 목소리에 잠시 깊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왼쪽 위로 올려보았다. 유리아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엔 머리를 묶고 다니더니 오늘은 머리를 풀고 있다. 긴 머리가 미역처럼 축 쳐져 햇빛에 반사돼 빛을 발했다. 의외로 잘 어울렸다.

 이 애는 유리아다. 성이 유, 이름이 리아. 평범한 이름은 아니지. 꽤나 예쁘장하게 생겼다. 키는 175이고. 분하게도 나보다 5cm 크다. 얘도 친구가 없다. 자기 입으로는 말을 안 하는데, 난 안다. 쟤가 친구랑 같이 다니는 걸 한 번도 못 봤거든. 그래서 나한테 온다. 뭐 동족끼린 돕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봤자 말 하면 받아주기나 하는 정도다. 그래서 친구라고 반 애들한테 떠벌릴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난 그녀에게 속에 있는 걸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나도 그녀의 속마음을 들추려 하지 않는다. 그녀도 내 속마음을 아는지 들추려 하지 않는다. 동족끼린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넌 왜 애들이랑 같이 안 해?”

 그녀가 운동장에서 배구를 하는 반 애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안 들춘다 했지 불쏘시개로 안 쏘신다고는 안 했다.

 “알면서 뭘 묻냐.”

 “뭐 그렇지?”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이젠 유리아는 불편하진 않다. 좀 친하게 지내보려고 노력도 하는 중이다.

 “아, 맞다. 나 어젯밤 큡질 대박 났다?”

 큡질이라는 것은 큐브 질이라는 얘기다. 얘가 메이플스토리를 하는데, 그 얘기다. 메이플의 장비에는 잠재능력, 에디셔널 잠재능력이 있다. 그리고 잠재능력을 변경하거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큐브라는 아이템이 있다. 큐브의 종류는 ‘수상한 큐브’, ‘장인의 큐브’, ‘블랙 큐브’, ‘레드 큐브’ 등이 있다. 장인의 큐브와 블랙 큐브로 잠재능력을 재설정하면 등급이 올라갈 확률이 높다. 둘 중에 무슨 큐브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둘 중 하나는 잠재능력에 큐브를 사용하기 전 잠재능력과, 사용 후 잠재능력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능이 있는데, 잠재능력이 최고등급까지 올라가면 그 큐브를 사용하지 못한다. 운영팀이 정말 얍삽하다. 최고 등급에 사용할 수 있는 큐브는 레드 큐브와 블랙 큐브와 장인의 큐브 중 하나인데, 그 둘을 캐시 숍에서 판매한다. 웃기지 않은가. 참고로 블랙 큐브가 조금 더 싸다. 설명이 좀 길어질 테니까 잠시 끊고.

 얘가 어제 장인의 큐브와 블랙 큐브 둘 중 하나를 대량 구입하여 큐브 멸망전을 벌인다고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현질해서 산거냐고? 아니. 유저간의 거래를 통해 게임 화폐인 ‘메소’를 게임머니인 ‘메이플포인트’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걸로 큐브를 사는 거지.

 “엘라하는 큐브 10개만에 레전(레전드리) 가고, 남은 걸로 상의랑 하의 돌려봤는데 상의 레전 가고 하의 유니크 갔다. 크으.......”

 “.......그렇구나.”

 엘라하라는 것은 얘가 플레이하는 직업이 끼는 무기 이름이다. 직업 이름은 블래스터다. 종류는 그....... 뭐였지. 건틀렛 리볼버. 아아, 건틀렛 리볼버다. 무기 이름이 ‘아케인셰이드 엘라하’였나. 그런데 얘 컨트롤이 엄청 좋댄다. 블래스터가 컨트롤이 엄청 어렵다던데. 나도 메이플을 하긴 한다. 내 부 캐릭터는 히어로다. 주 캐릭터는....... 팔라딘. 전 직업 중 가장 쓸모가 없다는. 하지만 게임은 거의 만날 pc방에서 혼자 한다. 게다가 할 시간도 거의 없어서 1달에 한 번만 접속한다. 그래서 아이템 잠재능력이 전부 약한 사람들이 숨구멍을 뚫어놓기 위해 낀다는 에픽이다. 에디셔널 잠재능력도 없다.

 “이제 레큡(레드 큐브)도 사서 돌려야 하는데....... 보공공(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증가,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증가, 공격력 ??% 증가)이나 공공공(공격력 증가 ??%, 공격력 증가 ??%, 공격력 증가 ??%)이 나올까?”

 “공공공은 절대 안 나온다. 보공공도. 나와도 퍼뎀(퍼센트 데미지) 낮을 걸.”

 “피잇. 김빠지는 소리 하지 마.”

 그녀는 손으로 볼을 괴고는 입을 쭉 내밀었다. 으, 저런 것 좀 하지 말지. 귀여운 척 하는 거 보면 역겹다. 진짜.

 “근데 나 오늘은 찐따야.”

 .......놀랍군. 원래 찐따가 아니었나?

 “친구가 7명 정도 있었는데, 7명이 전부 무슨 일이 있어서 학교에 안 왔어.”

 거짓말 참 잘도 꾸며낸다. 아마 그녀도 내가 안다는 걸 알 것이다. 그러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그냥 툭 까놓고 말하면 될 텐데.

 “오늘은 나 진짜 심심해....... 오늘은 학원도 다 쉬어서 방과후엔 할 것도 없고.”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네 집에 놀러가도 되냐?”

 “응 안 돼.”

 “시무룩.”

 유리아는 이렇게 감정표현을 말로 말한다. 게임을 하도 많이 해서 대화방식도 게임처럼 변형된 건가. 진짜 그런 것 같다. 진짜로.

 툭

 발 끝에 배구공이 굴러오더니 닿았다.

 배구공을 잡아 두리번거렸다. 아마 공이 굴러왔으니 누가 찾는 사람이 있을 텐데.

 “어이!!”

 바로 앞에서 배구를 하던 남자애들 중 한 명이 손을 흔들어 날 불렀다. 쟤들인 모양이다.

 “패스!”

 난 공을 집은 채로 일어서서 그들에게 공이 가게끔 바닥에 공을 내리쳤다. 공은 몇 번 바닥에 튀기더니 그 남자애에게 안겼다. 남자애는 공을 가지고 다시 배구를 재개했다.













 점심시간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 입에 쑤셔 넣었다. 오늘은 밥이 질다. 영양사 아줌마는 대체 밥을 어떻게 만드는 건가. 밥이 맛있었던 적은 볶음밥이었거나 비빔밥이 나왔던 적 빼곤 없었다. 그냥 쌀밥만 먹으면 정말 못 먹어줄 정도로 맛이 형편없다. 게다가 볶음밥이나 비빔밥이어도 밥이 적당히 익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밥알에 엄청난 탄성이 생겨 입안을 돌아다니거나, 이게 밥인가 떡인가 혼동 되지 않은 때가 없다.

 “아이 씨(삐-), 오늘도 자리가 없네. 이제부터 좀 늦게 올까?”

 “지(삐-)말고 그냥 쳐 앉아. 자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잖아. 저기 있잖아.”

 “하 씨(삐-)....... 오늘 일진 ㅈ같네.”

 혹시나 해서 고개를 올렸다. 하지만 혹시나가 아니라 역시나였다. 김태원과 지다훈, 지다성, 지다만이다. 저 네 녀석, 일진새끼들이다. 그리고 나와 사이가 더럽게 안 좋다. 특히 김태원과. 한동안 김태원과 싸운 것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리고 왜 쟨 또 이제 밥 먹으러 내려와서 나랑 만나고 지(삐-)인가. 좀 늦게 오면 되는데. 급식실에서 맞닥뜨리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서 지가 나한테 왜 이 시간에 오냐고, 나보고 늦게 내려오란다. 어이가 없다. 지가 늦게 내려오던가. 그래서 자존심 때문이라도 꼭 급식실에 빨리 간다.

 네 명이 내 앞에 식판을 들고 나와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 위해 가장 바깥쪽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다행히 오늘은 다른 애들 못 앉는다고 안으로 들어가서 앉으라는 선생님이 안 오신 모양이다.

 “야.”

 김태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고 그를 쳐다보았다. 뭔데. 왜 부르고 지(삐-)이야.

 “뭐.”

 “눈 깔아.”

 “뭐?”

 “눈 깔으라고.”

 “뭔 개소리야.”

 “눈 깔으라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뭐하자는 거야, 이 새끼는. 갑자기 불러서는 눈을 깔라니.

 “야.”

 “뭐.” “지금 너 이거 시비터는 거야 뭐야?”

 “눈 깔으라고.”

 “........”

 아무래도 역병에 걸려서 뇌의 주름이 쫙 펴진 모양이다. ‘눈 깔아’ 라는 말 밖에 안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지(삐-)이 원래 지(삐-)맞은 건 알았는데 네 지(삐-)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지(삐-)보다 더 지(삐-)맞다....... 처량한 새끼.”

 조용히 젓가락으로 다시 밥을 집어먹었다. 병(삐-)새끼. 상대할 가치조차 안 된다.



































 방과후, 동네 놀이터

 후루루루룩

 라면 면발이 입으로 미끄러지듯 빨려들어갔다. 입안에 짬과 매콤함이 감돌았다. 주변의 추운 공기가 라면의 맛을 더하는 듯 했다. 놀이터에서 먹는 라면이 역시 꿀맛이다. 혼자라는 점이 매우 거슬리긴 하지만. 뭐 그래도 좋다. 난 혼자가 편하다. 찐따가 할 말은 아닌가?

 잠깐 컵라면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아....... 여유롭다. 어두워진 놀이터의 그네에 걸터앉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니.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난 진짜 여유로운 게 아니다. 난 항상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있다. 엄마에 대한, 미래에 대한. 가끔 너무 힘들 땐 정말로 요양원에 보낼까 생각해봤다. 같이 자살할까 라는 무서운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살은 무섭지 않다. .......아니. 무섭다. 영원히 잠든다는 것이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으면, 아픔도 느끼지 않지 않을까. 그러면....... 편하지 않을까. 행복과 기쁨을 포기하는 대신, 고통과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것 따라 좋지. 하지만 무섭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하지만

 .......하아........... 깊게 생각하기만 하면 어째 계속 무한 반복이 된다. 이렇게 안 하면 저렇게 되고, 저렇게 되는 건 싫고, 그런대도 이렇게 하는 건 그렇게 좋지도 않고. 미치겠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난 죽고 싶다. 하지만 죽는 게 무섭다.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용가리마냥 입에서 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도, 살아야지 뭐. 생명은 다 소중한 거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인간들도 꼭 무언가를 죽이던데.......

 그만하자.

 “이거 놔아!!”

 익숙한 목소리가 망상에서 날 꺼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웬 남자 세 명이 여자 한 명을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뭔가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 눈엔 여자가 남자들에게 끌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몰라 재빨리 라면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고 가까이에 있는 미끄럼틀로 달려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부드럽게 발을 디뎌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좀 놓으라고!!! 살려줘요!!!! 누가 좀음으읍으음므음음!!!"

 목소리가 



 유리아........?



 목소리가 어째 익숙하다 했더니....... 유리아다. 납치라도 당한 건가? 그런데 왜 놀이터로 데려오는 거야.......

 "뭐야.......?”

 나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작게 중얼거렸다.

 “제발 좀 누가읍음음으음읍!!!”

 .......뭐야. 심각한 것 같은데. 누군가 여자의 입을 손으로 막은 모양이다. 설마....... 설마 강간?

 “음으읍으음으브으읍!!!”

 타악

 타악 소리가 나자 미끄럼틀에 진동이 울리고 유리아의 막힌 비명소리가 작아졌다. 아무래도 여자를 놀이터 건물 안으로 가둔 모양이다. 놀이터는 기둥으로 받쳐져있는데, 그 기둥에 판을 대어 못을 박아 그 안에 공간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간단하게 만들어놓은 문까지 달려있다. 그리고 어른 8명이 고개를 숙이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넉넉하다.

 만약 정말 강간 현장이라면....... 지금 막아야 한다. 게다가 여러 명이 한 명을 강간하다니. 빨리 가서 막아야 한다.

 주저없이 그네에서 벌떡 일어나 미끄럼틀을 끼고 돌아 발소리를 최대한 줄여 그 문에 귀를 닿을락 말락 하게 갖다 대었다. 그 남자애들의 목소리와 그 유리아의 발음이 뭉개진 비명이 들렸다.

 “하아....... 얘 맞지?”

 “그래. 유리아. 얘가 제일 몸이 좋은 년이야.”

 “몇 컵이라고 했지? e?”

 “D컵보다 조금 작대.”

 “우올~”

 “빨리 범하고 가자.”

 미친 새끼들. 진짜 강간하려는 거다. 그런데 이 목소리들....... 익숙하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그냥 어렴풋이 들은 목소리이다.

 “근데 진짜 아무도 없는 거 맞지?”

 “어. 여기 개 촌 동네야. 여기 오는 동안 한 명도 못 봤잖아.”

 “그야 우리가 골목길만 다녀서 그렇지. 혹시 모르니까 한 명 망보고 있어. 누가 있으면 똑똑 두드려.”

 “그런데 누가 가.”

 “가위! 바위! 보!”

 “하 씨(삐-).”

 “빨리 꺼지세여.”

 “응~”

 온다.

 오른쪽 주먹을 문 쪽을 겨냥하여 대기시켰다.

 끼익

 문이 열리며 처음 보는 남자애의 면상이 드러났다. 키는 나보다 조금 커보였다. 사다리꼴 모양 안경알이 달린 검은색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고, 검은색에 결이 좋아 보이는 머리칼은 버섯처럼 붕 떠있었다.

 대기해놓았던 오른쪽 주먹을 그의 입에 날렸다.

 퍼억

 손가락과 혀가 손에 닿는 촉감이 느껴졌다. 곧이어 아래쪽과 위쪽의 앞니가 부러지는 느낌이 났다. 피가 흘러나와 그의 침과 같이 내 주먹을 적셨다.

 부러진 이빨 사이에 낀 주먹을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힘차게 내렸다. 신원은 바닥에 등을 세게 부딪혀 한 번 통 튕기더니 다시 떨어져 누운 채로 신음했다. 대가리를 땅에 박았으니 엄청 아플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래서 자기 몸을 더듬을 힘도 없겠지.

 “뭐야 씨(삐-)!”

 당황한 다른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번쩍 들어 눈을 빠르게 굴렸다. 여자애는 구석에 팔다리가 수건으로 묶여 주저앉아있었다. 방금 욕을 뱉은 남자애는 나와 멀지 않은 곳에 멀뚱멀뚱 서있었고, 다른 놈은 여자애가 있는 구석 반대편에 기대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주먹을 빼냄과 동시에 왼발을 앞으로 디디며 추진력을 싫어 오른발을 그의 배에 푹 찍었다. 명치에 맞지 않았다. 명치에서 조금 아래로 떨어진 곳에 맞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입을 떡 벌리며 뒤로 나가떨어져 벽에 등을 박았다. 쿵 소리와 함께 공간에 진동이 울렸다.

 “어어어.......! 으어! 아아!”

 구석에 기대고 있던 남자애는 기겁한 표정으로 비명을 계속 질러댔다. 비명을 한 번씩 지를 때마다 점점 소리가 커지고 기괴해지며, 표정은 더더욱 찌그러져들어갔다.

 “아악!!! 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앍아아!!!!! 아!!!!!!!!!! 아!!!!!!!!!!!!!!!!!!!!!!!!!! 하아아아으아으아우우애아!!!!!!!!!!!!!!! 끄아아아아아!!!!!!!!!!!!!!!!!!!!!!!!!!!!!!!!!!!!!!!!!!!!!! 끼에에

 퍼억

 귀가 따가움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그의 주둥이에 꽂아 비틀어 단단히 고정하고 왼쪽 아래 방향으로 주먹을 세게 휘어재꼈다. 손가락으로 이빨이 부러지는 것과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왼쪽으로 몸이 강하게 기울더니 바닥에 통 튕기고는 고통에 신음하며 자기 입 주면에 손을 가져다대어 가렸다. 눈물이 눈매에 맺혀 관자놀이 쪽으로 흘러내리더니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숨이 조금 가빠졌다. 한동안 운동을 쉬었더니........ 체력이 약해진 건가. 미치겠군.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은 또 없고.

 아주 작은, 가쁜 숨소리가 귀에 들어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리아였다.

유리아는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그렁거리며 숨을 가쁘게 쉬었다.

그녀는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이것 좀 풀어봐........!”



















 팔을 뒤로 묶어서 쥐가 나서 아파서 그랬단다. 난 또 그 뭐냐....... 좀 위험한 생각이지만 생리통이라도 온 줄 알았다. 진짜로.

 “나........ 무서웠어.”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조용히 말했다. 하긴 무서울 만 하지. 남자애 3명에게 강간당할 뻔 했는데.

 “고마워, 구해줘서. 나중에 은혜는 꼭 갚을게.”

 헛웃음이 나왔다. 은혜를 갚지 말고 돈을 갚아라, 돈을. 너 저번에 삼각김밥 먹는다고 1000원 빌려갔잖아.

 “은혜 갚는 거 필요 없고, 돈이나 갚으세요, 돈을.”

 유리아는 히힛 하며 작은 웃음을 내뱉었다.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건가. 진심인데. 저 새끼 천원 안 갚은지 석달이 넘어간다. 대체 언제 갚으려고 저러는지.

 “그런데 걔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일진 새끼들이랑 친해.”

 아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왜 그 목소리가 익숙했는지도. 저번에 김태원과 정말 크게 한 판 벌였을 때 ‘관중석’에서 단체로 손을 맞잡고 ‘후뤠이!! 후뤠이!! 킴!태!원! 호라이!! 호라이!! 큄퉤one!!’을 외치는 놈들이었다. 진짜 발음이 딱 저거였다. 게다가 ‘ㄹ’발음을 엄청 굴려댔다. 후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뤠이 이런 식으로.

 “네가 그 새끼들 조져놓은 거 걔들 귀에 들어가면 너 ㅈ 되는 거야, 진짜로.”

 “ㅈ 빼곤 다 돼봤는데. 까짓거 ㅈ이라는 거 한 번 돼보지 뭐.”

 반 장난 식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난 정말 좆 빼고 안 되어본 것이 없다. ........아닌가. ㅈ 돼본 적이 있는 건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난 더 이상 무서운 것이 없다, 이 말이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대체 뭐가 더 무섭겠는가.

 “........뭔 소리야.”

 그녀가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들어갔는데....... 그걸 확 깨버리네.

 “야.”

 “어?”

 “너 눈치 없어서 찐따지.”

 “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내가 대체 뭐가 무섭겠냐고.”

 “죽는 것도 안 무서워?”

 “그것도 당연히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죽는 거야 당연히 무섭지, 이 인간아. 그걸 지금 딱 꺼내는 건 좀 매너가 아니지.

 “푸흡”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쿡쿡 웃어댔다.

 슬슬 약이 올랐다. 적당히 좀 하지.

 “돌대가리 새끼. 너 너무 -부아아아아아앙-”

 트럭 한 대가 골목 옆을 지나가며 소음을 한 바탕 벌려놓곤 내려갔다.

 “트럭 때문에 못 들었어. 뭐라고

 고개를 돌리자 유리아의 왼쪽 뺨에 빨간 손자국이 찍혀있었다. 게다가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뭐야.

 “앗 따거........!!!”

 그녀는 이내 자기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건드려댔다. 대체 얼마나 세게 때린 거면 자국이 저렇게 선명하게 남은 거지.

 “어....... 너 뭐 한 거야.”

 내 질문에 그녀는 당황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커져 갑자기 튀어나올 기세였다.

 “어? 어?? 뭐, 뭐가!?”

 어색하다. 동작 하나하나가, 말투라, 이상하다. 왜 저리 불안해 하는 거지.

 “왜 네가 네 뺨을 때렸냐고.”

 “안 때렸는데!?”

 “짝 소리 존(삐-) 찰지게 났다.

 “진짜?”

 “너 뭔 말 하다가 트럭에 묻혀서 못 들었는데 네가 그 말 하고 바로 네 뺨 때린 것 같거든?”

 난 먼 거리에서 그녀를 향해 고개를 쭉 뺐다. 닿지도 않았지만. 유리아는 먼 거리에서 고개를 뒤로 쭉 뺐다. 닿지도 않았지만.

 그녀를 향해 눈살을 찌뿌리고는 입을 열었다.

 “너 패드립 했지.”

 “어.”

 “부모님은 건드리지 말자.”

 “어.”

 난 벽에서 등을 떼고 똑바로 섰다.

 “나 이제 집에 간다.”

 “나도 이제 가야겠어.”

 유리아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더니 곧장 골목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잘 가라~”

 그녀가 뒤에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

 조용히 대답하곤 그녀가 걸어간 곳 반대편으로 골목에서 빠져 큰 길고 나왔다. 경차 한 대가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실은 뭐라 했는지 들었다.














“돌대가리 새(삐-). 너 너무 귀여운 거 아냐?”





이거였다.













 다음날

 학교 아침시간

 난 헤드셋을 귀에 덮고 음악을 틀었다. 요염한 색소폰의 소리가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위해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듯 간주를 펼쳤고, 곧이어 피아노와 기타, 하프 등의 소리가 아름답게 뒤엉켜 귓속으로 들어왔다.

 아침시간에는 핸드폰이 허용된다. 그래봤자 10분정도 밖에 안 돼지만.

 난 재즈를 좋아한다. 마음이 편해지고, 듣기도 좋다. 또, 그냥 취향이 그렇다.

 헤드셋은....... 작년 여름방학 때 알바를 뛰어서 샀다. 시급이 10000원이었던가. 생활비 보태는 데에 남은 돈을 떼어 산 헤드셋이다. 헤드셋 중에서도 제일 싼 걸 샀다. 그리고 여태까지 잘 쓰고 있다. 망가진 적도 한 번도 없고.

 “야 이민규!!!!”

 헤드셋을 관통하고 들린 고함에 깜짝 놀라 헤드셋 한 쪽을 들어 귀를 열고 고개를 돌렸다.

 누군지 보기도 전에 그가 내 멱살을 주어 뜯듯 잡았다. 반사적으로 두 손으로 그의 팔을 양손으로 쥐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통나무 같았다.

 그는 내 멱살을 쥔 채로 나를 들어올려 벽에 쾅 박았다. 뒤통수와 등 전체에 충격이 와 엄청나게 욱신거렸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가 돌아왔다. 사진 한 장이 지나가듯 내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김태원이었다. 분노로 찌그러진 얼굴로 내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은 주먹이 되어 나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타악

 겨우 왼손을 빠르게 얼굴 앞으로 가져와 주먹을 막았다. 파동이 물결쳐 전신에 전해졌다. 힘이 엄청났다. 추진력과 더불어 압력이 작용해 파워가 엄청났다.

 “끄읍.......!”

 멱살을 움켜잡았던 손이 올라와 목젖을 압박했다. 기도가 단번에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신음이 입술 사이에서 삐져나왔다.

 “너지.”

 분노가 느껴지는 김태원의 목소리였다.

 “그 세 명 조져놓은 거, 너지.”

 난 남은 힘과 에너지를 전부 다리에 싣고 그의 턱에 발차기를 정통으로 날렸다. 그는 발차기의 충격으로 몸과 머리가 뒤로 고꾸라지며 손아귀의 힘이 잠시동안 풀렸다.

 김태원의 팔을 잡고있던 손으로 그의 팔을 오른쪽으로 치우자 바닥으로 착지했다.

 지금이다.

 재빨리 가드를 올리고 왼 발로 스텝을 내딛으며 그의 광대뼈에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제대로 들어갔다. 엄지손가락의 굽은 마디 부분의 끝과 손가락 마디에 그의 광대뼈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김태원은 펀치의 충격에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곧이어 정신이 돌아왔는지 중심을 잡고 나를 향해 눈을 맞췄다. 눈이 이번에 유난히 사나웠다. 눈동자의 가운데, 정 가운데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후....... 아무래도 그 세 명이 유리아를 강간하려 했던 놈들이었던 모양이다. 설마 고자질이라도 하겠어? 걔들도 그렇게 찌질하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 새끼들은 인간말종들이 분명하다.

 “너 오늘 무덤 들어갈 줄 알아.”

 그가 손가락 마디를 뚜둑 꺾으며 말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무덤은 지(삐-). 가오도 적당히 잡아야 봐줄 만 한 법이다.

 “어이구, 무셔워라. 지(삐-)도 적당히 해야 받아주지, 아가야.”

 “죽기 싫어서 아가리 터는 꼴 한 번 봐라.”

 난 검지와 중지, 약지를 접고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펴서, 엄지는 턱 쪽을 향해 내리게 하고, 새끼손가락을 하늘을 향하게 하여 얼굴에 가져다대고 혀를 살짝 내렸다.







 해석하자면 애미 창년이라는 뜻이다. 좀 심한 뜻이지.






 “뭘 멀뚱멀뚱 서있어? 덤벼 10새(삐-)야.”

 “자 종 쳤다~ 다들 자리에 앉고-    뭐야 너희들 싸우냐?”

 담임선생님의 목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이 문에서 막 들어와서는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 미치겠군. 결판을 내려고 했었는데 방해꾼이 왔다. 늘 이런 식이란 말이지.

 “빨리 대답해. 싸우는 거야, 뭐야.”

 나와 그는 머뭇거렸다.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딱 봐도 싸우는 건데.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선생님이 믿을 리도 없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학업에, 쟤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의 주의를 끄는 것이.

 “아무것도 아녜요.”

 그가 입을 열었다. 그도 자기한테 문제가 될 것을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주의를 한 번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난 생활기록부에 적히는 것이 문제다.

 “그래? 아니지? 난 너희들 믿는다?”

 이건 모르는 척 하는 거다. 그는 분명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분명. 책상 몇 개는 대열에서 흐트러져있고 내 교복의 넥타이는 살짝 풀려있고 김태원은 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이게 싸우는 게 아니면 뭔가.

 “자, 다들 자리에 앉고, 종례하자.”

 선생님은 교탁에 출석부를 내려놓았다. 반 애들은 자기 자리로 달려가 빠르게 의자를 꺼내고 앉았다.

 “출석 먼저 부른다.”












 “배........가? 겨우 배 아프다고 학교를 안 와?”

 ‘어........ 그게, 좀 다른....... 배 거든.’

 이제 이해가 됐다. 좀....... 다른 배구나.

 ‘뭔 소린지 알겠지.’

 “어.”

 ‘좀 심해. 이따 저녁에 병원 가보려고.’

 “아.......”

 ‘암튼, 아 맞다! 너 김태원이랑 안 싸웠냐?’

 어찌 그걸 기억해냈군.

 “싸울 뻔 했어. 도중에 쌤 난입해서 끊겼어.”

 ‘아....... 그래도 방학 할 때까진 좀 얌전히 있어. 걔 성질 더러운 거 너도 알잖아.’

 “난 더 더러워.”

 그녀는 피식 웃음을 한 번 터트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너 더럽다, 더러운 새끼야. 아 맞다, 너 그, 폰 안 냈지.’

 설마 자기도 안 내는데 그걸 걸고 넘어가진 않겠지 하고 있었는데. 역시 유리아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좀 져버려라, 이 새끼야.

 “너나 평소에 내고 그런 소리를 하세요, 이 인간아.”

 ‘응~ 선생님한테 내일 이름 수고~’

 “야으야

 띠로리로링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을 보았다. 전화가 끊어져있었다.

 말을 얼버무리는 사이에 유리아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이건 뭐....... 지 마음대로네.

 일러버린다는 거, 거짓말이다. 거짓말보단 농담에 가까우려나. 그냥 하는 말이다. 얜 나 놀리는 재미로 산다. 놀릴 친구가 나 하나밖에 없으니.

 그런데........

 어떻게 할까. 귀엽다고 한 걸 들었다고 할까, 말까. 그냥 반 장난 식으로 뱉은 말이라고 하기엔 거슬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난이었으면 그냥 가만히 있었을 텐데, 굳이 자기 뺨을 짝 소리가 나도록 찰지게 때릴 것 까진 없었지 않았을까.

그건 그렇고 소리가 진짜 찰졌다. 진짜 ‘짜악’ 하고 나는 소리였다.

 왜 그걸 숨기려고 했을까. 그냥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뭔가 걸린다. 느낌이 그렇다.





 날 좋아하는 걸 수도.





 난 머리를 사악 위로 쓸어 올렸다. 다시 머리카락이 내려와 눈을 살짝 찔렀다. 하아....... 미치겠다.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야, 이규민!”

 처음 들어보는 남자애의 목소리에 몸을 약간 비틀고 목을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웬 남자애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한 명은 머리를 길고 지져분하게 길러 더벅머리를 하고 있었고, 마이 대신 파란색 페딩을 입고 있었다. 페딩이 엄청 안 어울렸다. 다른 한 명은 투블럭으로 자른 지 얼마 안 돼서 머리 모양이 이상했고, 마이를 입어 교복 풀 세트를 입고 있었다.

 뭔 볼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난 왜 달려있는지 모를 벽의 손잡이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자.”

 투블럭이 내게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대충 연습장 한 장을 찢어 세로로 얇게 접고 엮어서 딱지모양처럼 만든 것이었다.

 “뭔데 이게.”

 “그냥 쳐 받아서 쳐 읽어, 시(삐-).”

 말 하는 꼴을 보니 김태원 따까리이거나 선배 새끼들 옆에서 빌빌거리는 놈들인 모양이다.

 “말 참 예쁘게 한다. 아주 좋아, 매우 칭찬해.”

 편지를 그의 손에서 낚아챌 활짝 폈다.

 익숙한 글씨체였다. 김태원이 쓴 게 분명하다. 의외로, 그의 글씨체는 곧고 똑바르다. ‘지’와 ‘거’를 헷갈리게 쓰지도 않는다. 띄어쓰기 조차도 틀리지 않는다. 일진 짓꺼리 하면서 국어실력은 어찌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태원이가 너한테 보낸 거다. 넌 이제 ㅈ뗐어.”

 “너 새끼 아가리에서 나오는 말이 나한텐 ‘이쒸, 넌 우리 아빠 오면 뒤져쎠’ 이러는 것 같다.”

 “뭐 이 새끼야?”

 반응을 하는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격렬하게 꿈틀하는 줄은 몰랐다.

 잠시 편지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올렸다. 놀라서 주먹이 먼저 그의 얼굴에 날아갔다. 정확히 입에 적중했다.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투블럭은 자기 입을 손으로 감싸고는 휘청거리며 뒤로 자꾸만 걸어갔다. 뒤에 있던 파란 페딩이 투블럭을 뒤에서 받아주자 그제서야 뒷걸음질을 멈추었다.

 “아........ 앟앟앟앟앟앟.......!”

 “깜짝아이씨. 왜 면상을 들이밀고 지(삐-)이야. 시(삐-).”

 투블럭은 잠시 동안 신음을 뽑아내고는 눈만 나를 향해 부릅떴다. 눈에서 분노와 억울함이 느껴졌다. 분노는 이해하겠는데 억울함은 뭐지.

 “야, 너 씨(삐-), 내가 너 언젠가는 조져버릴 거야.”

 .......도주각이라도 잡고 있었던 건가.

 “잘 새겨들어라. 내 이름 성대성이다. 성대성!! 꼭 기억해라!! 언젠가 너 찾아서 죽여버릴 테니까!!!”

 성.......대성. 거꾸로 읽어도 성대성이네. 어째 갓 오브 하이스쿨에서 비슷한 애가 있었던 것 같던데. 그....... 에잇.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웹툰 안 본지가 오래 돼서.

 “.......”

 “하!! 쫄았냐? 쫄았지!! 병(삐-)!! 이거 보니까 개 쫄보 새끼네!!! 하하하

 빠악

 파란 페딩이 투블럭의 뒷통수를 찰지게 후려갈겼다. 투블럭은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뒷통수를 짚은 채로 신음을 길게 뽑아냈다.

 “내가 다 쪽팔리니까 그만 좀 해라, 이 친구새끼야.”

 파란 페딩은 조용히 투블럭의 교복 뒷덜미를 잡고 문을 열고 다시 건물 안으로 끌고 갔다. 투블럭은 괴상한 포즈로 휘청거리며 건물로 끌려들어갔다. 그러면서 신음은 끊이지 않았다.

 다시 편지로 눈을 내렸다. 아까 잠깐 눈을 두긴 했지만 읽진 않았다. 투블럭의 반응이 금방 올 줄 알아서 잠깐 읽는 척만 한 거였다.





오늘 8시에 네가 애들 조졌던 데에서 보자. 이빨 몇 개 나갈 준비 하고 있어라.





 피식 웃었다. 진짜 피 터지게 싸울 작정인 모양이다.

 그런 거라면 난 언제든 대 환영이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에 들어가 ‘사장님’이라는 전화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전화 벨이 한두 번이 울리더 니 이내 전화를 받았다.

 ‘어어, 규민아.’

 “사장님. 저 오늘 알바 6시부터 10시까지죠.”

 ‘.......또 빠지게?’

 너무 많이 빠졌나. 이젠 다 아는 모양이다.

 “........”

 ‘하아....... 오늘은 뭔데.’

 “그게 좀.......”

 ‘그 김태원이라는 새끼랑 또 맞장 까냐?’

 순간 뜨끔했다. 어디에서 들은 모양이다. 대체 어디서 들은 거지.

 “어떻게 아셨어요?”

 ‘야 나도 귀는 있어, 인마! 너 저번에 김태원이랑 아예 판을 깔아놓고 싸웠다면서? 딸이 나한테 얘기해줬다!’

 “에.......”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하핫, 참나. 야 내가 편의점 하나 하면서 깡패새끼랑 반반한 새끼를 알바로 두네? 진짜 이거 웃기네.’

 “........”

 ‘알았어. 차피 너 내가 안 된다고 해도 탈주할 거였잖아.’

 사장의 농담에 작게 웃었다. 사장이 사람들 웃게 만드는 건 되게 잘한다.

 ‘잘 싸워라잉. 그리고 꼭 이겨라!’

 부하직원이 싸운다는데 잘 싸우라고 응원하는 인간은 또 처음 보는군....... 그래도 의욕도 생기고 좋지 뭐.

 “네.”

 띠로리로링

 내가 대답하자마자 전화가 뚝 끊어져버렸다.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서 봤다. 역시 끊어져있었다.

 뒤로 가기 버튼을 연타해서 기본 화면으로 돌아왔다.

 핸드폰을 끄고 페딩 주머니에 넣었다.

 “.......”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구름이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것이 색이 하늘색 도화지에 솜사탕을 붙인 것처럼 보였다.








 ........엄마.


 왜 엄마가 떠오르는 걸까. 갑자기.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무작정 엄마가 떠오른다.





























































 “왔냐.”

 저 멀리에서부터 작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서 놀이터에 도착한 김태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김태원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서 빼내곤 고개를 숙여 밑으로 연기를 쫘악 뽑아냈다. 연기가 길게 이어져 바닥에 거의 닿는 위치에서 위로 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옷은 회색 후드집업에, 학교 체육복 바지였다. 바지도 회색이여서 회색 맞춤이었다. 엄청나게 혐오스러울 정도로 징그럽게 촌스러웠다.

 .......뭐야. 담배 끊은 거 아니었나. 저번에 사회선생님한테 걸리고 ㅈ 빠지게 혼나서 강제로 끊은 줄 알았는데. .......하긴 쟤 ㅈ부심이면 가능한 일이다. 담배에 마약성분도 있다 한 것 같던데.

 “옷 참 잘 입는다.”

 김태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뭔데 지(삐-)이야.”

 “맞장 까는데 교복 입고 오는 새끼는 네가 처음이다. 개 븅(삐-)새끼.”

 “맞장 까는데 교복 입고 오는 새끼가 왜 븅(삐-)인데.”

 “한심한 새끼. 그걸 모르니까 네가 찐따지.”

 “회색 후드집업에 회색 체육복 입는 새끼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 수긍이 간다.”

 김태원은 한 번 웃고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입에서 빼고는 손가락으로 담뱃대를 툭툭 쳐 재를 떨구곤 꽁초를 만들어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신발로 짓이겼다.

 “콜록”

 담배냄새가 지독해서 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흡연자 새끼들 너무 싫다. 연기 냄새가 저리 지독한데 대체 왜 담배를 쪽쪽 빨아대는지.

 “됐다.”

 김태원은 대충 자세를 잡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덤벼 씨(삐-).”

 후.......

 가드를 올리고 몸을 낮췄다.

 난 오른발로 몸을 밀어 앞으로 빠르게 돌진했다.

 김태원은 뒤로 빠져 오른발을 뒤로 하더니 앞으로 후리듯 발차기를 날렸다. 세다.

 퍼억

 그냥 맞았다. 타격이 몸의 왼쪽에서 시작되더니 전신으로 짜릿함이 퍼져나갔다.

 발차기를 날려서 가드가 뻥 뚫렸다. 두 손은 지금 멀리 가있다.

 지금이다.......!

 한 발을 더 내딛어 더 파고들어, 추진력을 얻기 위해 오른팔의 날개뼈로 팔을 뒤로 가져온 다음 왼손으로 그의 얼굴을 조준하고, 오른팔로 주먹을 내질렀다. 내 주먹은 정확히 그의 입술을 향하고 있었다.

 빠악

 거센 타격음과 함께 왼쪽 어깨뼈에 순간 감각이 없어지더니, 다시 돌아와서는 엄청난 고통을 선사해주었다. 욱신거리는 느낌이 폭탄처럼 터져 전신에 전해졌다. 어깨를 맞았을 뿐인데도 온몸이 욱신거리고 아팠다.

 “까앆”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으나 고통에 의해 입이 딱 다물어졌다.

뒤늦게 내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자각하고 앞으로 발을 세게 구르며 내딛었다. 그리고 재빨리 내딘 발에 힘을 실어 뒤로 빠졌다.

 왼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아득히 무언가가 왼쪽에서부터 포물선을 그리며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너무 빨랐다.

온 힘을 다해 허리를 뒤로 숙였

 국

 ‘국’ 하는 소리와 함께 광대뼈에 엄청난 타격과 고통이 물밀듯 밀려왔다. 정신이 아득해져 몸의 중심을 잃고 뒤로 휘청거렸다.

 이 고통과 피격 시 난 느낌....... 절대 주먹이 아니다. 단단한 무언가다. 비겁한 새끼. 무기를 들고 왔다. 대체 어디에 숨긴 거지.......

 “이 ㅈ만한 새끼가 씨(삐-)”

 김태원의 욕짓꺼리와 함께 혼란스러웠던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김태원이 보였다. 나를 조롱하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나를 죽이려드는 표정을 한 채로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는 짧은 각목이 들려있었다.

 각목......! 저 개 미친 개 또라이새끼......!

 김태원은 다시 각목을 치켜올리고는 나에게 후려쳤다. 정확히 내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끄윽- 끄윽-”

 작은 소리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아팠다. 온몸이 쿡쿡 쑤시고, 욱신거리고. 죽을 만큼 아팠다.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

 각목으로........ 한 30분은 얻어맞은 것 같다. 김태원 저 비겁한 새끼....... 무기를 가져오다니. 저 개 쓰레기만도 못한 비겁쟁이 새끼.......

 “야.”

 김태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눈만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얼굴을 보자 열불이 나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쳐부숴버리고 싶다. 날 비웃는 저 개같은 면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몸이 고통에게 썩어 도저히 움직이질 않았다. 지금 당장도 몸이 가루로 흩날려버릴 것만 같다.

 “눈 깔아.”

 순간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뻔했다. 뭐야? 눈을 깔아? 눈을 깔라고? 저 개같은 자식....... 이런 상황에도 서열은 꼭 챙기겠다는 건가. 저 야비한 쓰레기보다도 못한 새끼. 쳐 죽여버릴 것이다.

 “어쭈? 눈 안 까냐?”

 나도 모르게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김태원은 허리를 펴 ‘하’ 하고 웃음을 한 번 탁 뱉고는 다시 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어이구, 이를 뿌득뿌득 가시네? 그래서 뭐 어쩌게? 나 쳐 죽이게?”

 가슴에 불이 활활 타오르던 것이 갑자기 커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온갖 욕이 속에서 쏟아져나왔다.

 “개 지(삐-)하고 앉아있네, 개 찐따새끼가. 얌마, 내가 너, 괜히 싸워주고 져 준줄 알아? 네가 애미 치매 새끼라서 내가 봐준거다, 이 (삐-)새끼야!! 주제파악 좀 해라!!! 내가 일부러 판 까지 벌려줘서 초대했는데, 네가 (삐-)나게 약해 빠져가지고 일부러 봐줘서 져준거다, 씨(삐-)!!!”







 네가 애미 치매 새끼라서












 그 다음의 김태원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네가 애미 치매 새끼라서’

 이 문장이었다.

 이 문장이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번 반복되고 엮이고 뒤틀려서 끝나지 않을 기세로 내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부턴가 들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것은 처음엔 흐릿하더니, 점점 발음이 또렷해지고 소리가 커졌다.








 “죽여.”

 그리고 그 말은 기세등등하게 소리를 키워나가며 김태원의 말을 덮어나갔다.

 “죽여.”

 ‘죽여’ 라는 단어가 수천, 수백, 수억 번까지 반복되어 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내 목소리였다.

















 “.......죽이지 뭐:)”








 “주머니에 있던 사과.”








 “그러니까 그만 좀 설쳐대라, 씨(삐-)! 나도 너 같은 ㅈ밥 상대해주는 게 얼마나 피곤하고 귀찮은 지 알아!?”

 난 조용히 일어났다. 평소처럼, 바닥에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것처럼 평범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김태원과 눈을 마주했다.

 김태원은 재미있다는 듯 다시 한 번 웃음을 탁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기운이 남아있냐? 왜, 내가 한 말 때문에 부들부들했어? 한심한 새

 “개소리 잘 들었다, 씨(삐-).”












































 와사삭

 사과가 이빨에 부딪혀 으스러지는 상큼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과 안 버리길 잘 했군.

 난 그의 사과를 놓고 다시 주먹을 가져왔다. 그리고 정확히 사과가 쳐박힌 그의 입을 조준했다.



 퍼억

 정확히 입에 명중했다. 잇몸에서 이빨이 흔들렸다.



 퍼억

 다시 한 번 입에 명중했다. 위쪽 앞니 두 개는 완전히 부러지고 아래쪽 앞니는 하나는 부러지고 하나는 빠졌다.



 퍼억

 입이 아닌 볼 쪽을 명중시켰다. 물론 빗나간 거였지만, 어금니 쪽에 명중했다. 어금니가 잇몸의 피부를 달고 찢겨나갔다.



 퍼억

 다시 입에 명중했다. 손가락 피부가 부러진 앞니의 남은 부분에 긁혀 까져버렸다.



 퍼억

 온 힘을 다해 내지른 펀치였다.

 김태원은 입에 사과와 부러진 이빨, 조각난 이빨조각이 가득한 채로 고꾸라져 캑캑댔다. 이따금 으스러진 사과 덩어리가 입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가관이군. 방금 전의 기세당당한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웃음이 한 번 절로 튀어나왔다.

 난 몸을 낮춰 김태원과 눈을 맞추었다. 공포에 질려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여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눈이었다.

 “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귀 먹은 거 아니지.”

 김태원은 한 번 거친 숨을 내쉬었다. 썩은 사과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코를 고통스럽게 하였다.

 “잘 들어라. 난 네가 일진이여서 싫은 게 아냐. 날 개 븅(삐-)으로 소문낸 것 때문도 아냐. 네가 내 뒷담 까서 싫은 것도 아니고. 난 그냥, 네가 서열 정리한답시고 애들 괴롭히는 게 싫어서 그런 거야. 나 괴롭히고 단체로 다구리 까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후배랑 동갑 건드리는 건 내가 못 참는다. 왜냐고? 난 개 찐따새끼거든. 그래서 불의를 보면 못 참아. 누가 잘못되면 꼭 고쳐줘야 되고,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구해줘야 되고. 누가 싸우고 있으면 꼭 끼어들어야 하거든. 내가 찐따라, 네가 그딴 짓 하고 생 지(삐-)하는 걸 못 보는 거야. 이거 고소해도 네가 흉기 들고 있었으니까 정당방위로 너 얻는 거 아무 것도 없어. 게다가 유리아 강간하려 한 새끼들, 걔들은 처벌 받을 거고, 덤으로 걔들이랑 친한 너희들도 조사하겠지? 그럼 너희들이 그 지(삐-)하면서 돌아다녔던 거 다 나오는 거야. 어차피 너희들은 끝이야, 이제.”

 김태원의 눈이 다시 한 번 분노와 억울함으로 화륵 타올랐다. 숨도 더욱 거칠어졌다. 하지만 힘이 다 빠지고 고통이 몸을 휘감는 모양이다.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냥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만 했다.

 “나 간다. 아디육스.”

 난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했다.

 이제....... 집으로 간다.






































 “재판 잘 끝나서 다행이다, 아들.”

 엄마가 입을 열었다. 엄마의 입에서 김이 앞으로 뿜어져나와 흩어졌다.

 “어. 걔들도 처벌 받을 거야, 이제.”

 “우리 아들 대단하네.”

 엄마의 말에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웃음을 지으며 나와 눈을 맞추었다.

 “죽어라 알바 뛰고, 기초수급비로 엄마 먹여 살리고, 그리고 그걸 혼자 버티고.......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해.”

 엄마는 내 엉덩이를 팡 쳤다. 나도 엄마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그 깡패새끼들 다 감방에 처박히고, 그게 다 우리 아들 덕분이니까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아지겠네?”

 “헤헷”

 뭐 그건 사실일 수도. 입원해있는 동안 애들이 치킨까지 들고 와줬는데. 뭐 친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엄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판기간 동안에는 기억력이 예전처럼 좋았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지도 않았고, 요리도 예전처럼 곧잘 하고, 사소한 것도 잘 안 까먹고. 난 그 이유가 궁금하여 병원에 잠깐 들러 의사와 얘기를 나누었다. 의사가 말하길, '정신장애인 만큼, 본인이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웬만해선 이렇게 기억력이 좋아지진 않는데, 이 경우는 정말 특이하군요. 잘만 하면, 그리고 운이 좋으면, 병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사랑이란 것은 정말 특이하다. 불치병도 막 낫게 하고,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난 의사의 말을 듣곤 처음으로 희망을 보았다. 엄마가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정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더욱 신경쓰기로 했다.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않은가. 안 그래도 입원해있는 동안 방학도 했겠다, 엄마한테 남는 돈으로 뭐라도 사서 드려야겠다.

 “야 이규민!”

 뒤에서 유리아의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유리아가 뒤에 서있었다.

 “웬 일이냐, 따라오고.”

 “친구니?”

 엄마가 물었다.

 “어 뭐....... 친구라고 해야겠지.”

 “어?? 뭐야뭐야뭐야뭐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순간 얼굴이 화악 달아올라 엄마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엄마는 얼굴이 화색이 되어 나를 쳐다보았다.

 “아냐!!!”

 “아녜요!!!”

 유리아도 덩달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둘이 얼굴도 같이 빨개져서는!!! 둘이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엄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어깨를 쿡쿡 찔렀다. 얼굴이 더욱 달아올랐다.

 “아니 진짜 아니래두!!”

 “아이구이그!!”

 엄마는 내 엉덩이를 온 힘을 다해 팡 쳤다. 너무 아파서 비명이 짧게 튀어나왔다.

 “엄마 먼저 들어간다!!”

 엄마는 종종걸음으로 오르막길을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엄마 안 돼!! 엄마 다리도 안 좋잖아!!”

 “둘이 좋은 시간 보내라!!”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엄마는 빠른 속도로 평소엔 부축 없인 힘들어하던 경사진 오르막길을 올라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방향이 집이기도 하고 집 가는 길 정도는 까먹지 않기도 하니까 괜찮긴 한데....... 왜 쓸데없이 연인도 아닌 애 둘을 이어주고 난리인가.

 “아이씨.......”

 난 유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 엄마 평소에 안 저러시는데.”

 “괜찮아.”

 “근데 왜 따라왔어.”

 “자.”

 그녀는 내게 손에 들린 무언가를 내밀었다. 뭔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봤더니, 캔 사이다였다. 내가 탄산음료 싫어하는 걸 어떻게 딱 알고 이런 걸 준비하다니, 황송하기 짝이 없군.

 “마시라고. 싸움에, 재판에, 피곤했을 거 아냐.”

 “나 탄산 싫어하는데.”

 “아.......!”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썩어들어갔다. ‘극혐’이라고 얼굴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야, 친구가 챙겨주는 건데 겁나 매몰차게 ‘나 탄산 실어해’ 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게다가 겁나 궁서체로!”

 “.......”

 “걍 마시라면 마셔, 인마. 서운하게 시리.”

 그녀는 내 손을 가져오고는 내 손에 사이다를 쥐어주었다.

 “자, 마셔.”

 “뭐...... 지금?”

 “지금 안 마시면 네가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어떻게 알아? 지금 안 마시면 나 네가 마셨다고 말해도 안 믿을 거야.”

 “그러든가.”

 “아니 진짜~”

 .......어쩌라는 거지.

 그냥 마시지 뭐. 솔직히 말하면 탄산을 싫어하는 이유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뭔가 느낌이 좀 그렇다.

 “알았어, 알았다고. 마시면 될 거 아냐.”

 난 손가락으로 캔을 땄다.

 취익- 까앜

 캔을 까자 탄산이 연기처럼 입구에서 일렁이다 흩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상하게 이런 연기같은 걸 보면 뭔가 불안해진다.

 캔에 입술을 살짝 대고 캔을 기울여 사이다를 입으로 흘려보냈다. 입안에 엄청나게 작은 수천개의 폭탄이 입안과 입술에서 터져 입안과 입술을 녹여내리는 느낌이었다. 으웩, 이건 탄산이 왜 이렇게 센 거야.

 조금 후루릅 하기만 하고 입구에서 입을 떼었다. 으, 탄산이 너무 세다. 조금씩 조금씩 먹어야겠다.

 “먹은 거 맞지?”

 유리아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까보다 더.

 “그래.”

 “진짜지?”

 “그래 진짜.”

 “안 먹은 것 같은데?”

 아오, 진짜. 사람 화나가 하는 데 재주 있다니까.

 “그래 먹었다고, 씨(삐-)!!”

 “진짜지? 안 먹었음 너 뒤진다. 가만 있어봐.”

 유리아는 갑자기 내게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 손에서 사이다를 낚아챘다.

 사이다 입구를 들여다보는 줄 알았더니 사이다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갑자기 내 얼굴에 그녀의 얼굴을 들이댔다.














 그녀는 그녀의 입술과 내 입술을 맞추고는 그 안에 혀를 집어넣어 한 번 입안을 휘젓고는 침을 조금 빼앗아갔다.

 “마셨네! 단 맛 나는 거 보니까!”

 난 너무 당황해서 기침이 나왔다. 사레가 들린 모양이다.

 “콜록콜록콜록콜록! 콜록콜록콜록콜록!!”

 “야 그렇게 기침 좀 하지 마!!!”

 유리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난 기침이 멈출 때까지 미친듯이 기침을 내뱉고는 그녀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는 얼굴과 귀가 불구덩이에 달군 쇠붙이 마냥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나도 할 때 민망해 죽겠는데 네가 기침하니까 더 민망하다고!!”

 “시(삐-), 갑자기 입에다 혀를 집어넣고 안 당황하는 사람 있으면 데려와 봐, 씨(삐-)!”

 “........”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순식간에 차가웠던 공기가 날이 서며 날카로워졌고, 더욱 무거워졌다.







 “그래 나 너 좋아한다!!”

 유리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너무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씨(삐-)....... 아 민망해 아 민망해 아 민망해 아.......!!!!!”

 유리아는 잠바의 모자를 덮어쓰고는 앞으로 잡아당겨 푹 숙인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작게 뭐라고 욕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진......짜?”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런 기습고백이 어디 있나. 게다가 고백방법이 돌발키스라니. 그것도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밀어서 침을 뺏어먹는 거라니........

 “그래 진짜.......”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그래서 고백 받아줄 거야, 말거야!”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야, 아무리 그래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지!”

 “그래! 1주일 준다! 1주일 내에 대답 안하면 넌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마셔!!”

 “흥이다!!”

 “나도 흥이다!!”



















































 “좋아한다.”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인 거다!”

 “그래, 1일.”

 “내일 놀이공원 갈래!?”

 “그래.”






















































 엄마, 고마워. 그 벌레 먹은 사과를 나한테 줘서. 그 사과, 벌레먹은 거 아니었으면 나 그거 그냥 먹어서 아마 못 이겼을 거야.





 고마워.


























 에........ 그냥 쓰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단편이라고 하기엔 좀 길기도 하고........ 전개도 급전개에.... 그래도 이게 다 경험이겠죠!??!?!(아님 말구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