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차 창착 콘테스트 소설 공모 - 내딸의 마직막 소원

by 슬아 posted Jan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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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딸의 마지막 소원


1.

어둠이 내린 저녁 진섭은 오랜 고등학교친구 수철을 만나기 위해 홍대골목에 들어서 파란지붕을 한 목조로 지어진 작은 선술집에 들어갔다. 선술집은 빨간 조명들과 네모 모양의 조각 천 커튼들이 걸려있고, 작은 직사각형의 메뉴판들이 진섭을 먼저 반기고 있었다.

저쪽 끝 테이블에서 수철은 손을 흔들며 가게에 멍한 모습을 하고 있는 진섭에게 이야기를 했다. “어이, 어서 와서 앉지 않고 뭐하나 자네? 하하하수철의 목소리가 컸는지 진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섭은 아직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수철을 쳐다보며 말했다.

, 오랜만이군. 자네이야기를 하며 수철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케와 사시미와 간장으로 달짝지근하게 양념을 한 꼬치구이가 나왔다. 수철은 진섭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네 그래도 생각했던 것 보다 얼굴이 좋아서 다행이군. 그 일로 자네 얼굴이 상하진 않았을까 걱정했거든.”

내가 표정이 안 좋을 게 뭐가 있나? 나는 괜찮네.” 하며 괜찮은 듯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진섭의 표정은 조금은 씁쓸함이 묻어났다.

아이고, 자네 괜찮을 일은 괜찮다 하게, 얼마나 보고 싶은가.... 아라 말이네....”

아라 라는 이름이 나오자 진섭은 잠시 멈칫 했지만,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진짜 괜찮네, 괜찮아야 하네, 나는 우리 아라랑 약속했네.” 하고 이야기를 했다.

, 어려운 사람, 괜찮아야 한다는 뜻은 뭔가?, 또 뭘 아라랑 약속을 했는가?”

.... 우리 아라가 그랬거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달라고, 슬퍼하지 말아 달라고,

마지막 부탁이라고....”

하며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진섭이었다.

 2.

아라는 진섭의 하나 밖의 없는 딸이자 진섭의 처 지영이 죽으면서까지 지켜낸 딸이었다.

지영이 사고가 난 것은 지영이 아라를 뱃속에 품은 지 364일이 되된 시점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진섭은 이상하리만큼 일이 잘 풀리는 하루였다. 성사되기 어려웠던 계약도 잘 되어 기분이 좋았다.

진섭은 퇴근시간이 다되어 지영이 있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여보세요?” 하며 밝은 지영의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 들려왔다.

, 아라랑 잘 지내고 있었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사갈게...”

, 정말 사다 줄 수 있어요? ”

그럼, 하하하

오늘 일이 잘 되었나 봐요? 당신 기분 좋은 목소리 들으니 더 좋네요,

, 나 사과 먹고 싶어요. 사과 부탁해도 되요?”

그럼, 사과 사갈게 예쁜 걸로..”

, 조심해서 와요.”

진섭은 퇴근 길에 집 근처 가게로 향했다.

진섭이 사과를 사고 가게에서 나올 때 하루 종일 맑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곧 후드득 후드득 비가 제법 왔다.

진섭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진섭은 할 수 없이 가게 귀퉁이에 있는 공중전화로 가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얼마 안가서 지영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진섭씨, 비가 많이 와요..? 어디예요? 왜 이제야 전화 했어요...” 하며 많은 말을 쉬지않고

이야기를 했다.

나 괜찮아, 가게야 사과사고 나서 나오니 비가와서 그치고 간다고 전화하려고, 금방갈게 걱정하지 말고 있어. 이말 하려고 전화했지..”

아니 예요, 거기 있어요, 내가 우산 가지고 갈게요. 기다려요..(뚜뚜뚜)”

아니야 지...... 아이쿠 .. 어쩔 수 없군 그냥 뛰어가야 겠군.. ” 공중전화에서는 뚜뚜뚜 .... 하는 소리만 계속 맴돌 뿐이었다.

진섭은 만삭으로 우산을 들고 급하게 자신에게 올 지영이 걱정되어 빗속을 뛰기 시작했다.

진섭이 한참을 뛰어가고 있을 때 진섭의 건너편 건널목에서 손을 흔드는 지영의 모습이 보였다.

진섭과 지영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섭씨 거기 있어요. 내가 갈게요.” 지영의 밝은 목소리에 진섭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신호가 바뀌고 지영은 기다리고 있는 진섭을 향해 앞만 보며 웃고 있었고, 그런 지영은 미소를 지으며 조금씩 걸어가고 있던 진섭에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며 지영의 이름만 불렀고, 주변에서는 끼이익---- 하는 소리만 날뿐이 었다.

지영이 건널목에 쓰러져있었다. 위험한 순간에도 자신의 뱃속에 있는 생명을 지키려는 듯 배를 보호하며 머리를 크게 다친 모습을 보였다.

지영.. . .. 지영아 눈 좀 떠봐 응 흐흐윽.. ”

진섭의 울먹임에 잠시 눈을 뜬 지영이 잠시 눈을 뜨는 모습을 보였다.

............. 우리... 아라.. 지켜..줘야 해....” 지영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며

지영은 영원한 영면에 들었다.

진섭은 지영이 위험한 순간에서 지켜낸 작은 생명, 아라를 자신의 여동생에게 맡기고 아라를 부족함 없이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밤낮없이 일을 했다. 자신을 돌 볼 틈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 아라는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둔 숙녀로 자라 있었다. 아라는 지영을 많이 닮아 있었다.

진섭이 퇴근해서 오면 아라가 지영과 똑같은 미소로 진섭을 반겼다.

아빠 오늘도 늦었네.. 내가 학교 졸업하면 빨리 취직해서 아빠한테 효도 할게요.”

하며 진섭의 지친 팔을 잡아당기며 팔짱을 끼는 밝은 딸 아라였다.

진섭에게는 사랑스럽고 애교가 많은 딸이었다.

아라는 곧 졸업을 하였고, 직장인이 되었다. 진섭은 자신이 지고 있는 어깨의 무거운 짐을 덜어준 아라가 너무나 고마웠다.


 3.

그런 아라가 어느 날.. 저녁식사 때 진섭에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아빠....저기.. 나랑 여행다녀오는게 어때요.... 나 아빠랑 여행가고 싶은데...”

진섭은 갑작스런 아라의 이야기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자신의 딸이 사회생활을 하니 힘들어서 잠시 나약해졌다는 생각에 아라에게 힘들일 이 있어도 약해지면 안 된다. 그리 약해서 사회생활을 어찌하려고.. 열심히 버텨라. 잘 먹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날 이후 아라의 얼굴은 한 없이 야위고 몸에는 살이 빠져 조금 파리하게 보였다. 진섭은 그런 아라가 걱정이 되어 아라에게 물으면 아빠 나 살 빼고 있어서 그래요, 이제는 좀 먹으려고 하는데, 계속 안 먹었어서 지금은 그냥 안 먹고싶어. 아빠 혼자 저녁 먹게 해서 미안해요.”

하며 웃고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 날이 반복 되고 어느 날 진섭은 거래를 하는 병원에서 원무과장을 만나고 나오는 길이 었다. 그때, 진섭은 암센터로 들어가는 여성을 보게 되었고, 진섭은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그 여성은 아라 였던 것이다.

진섭의 발길이 저절로 아라를 따르고 있었다. 진섭은 아라를 따라가며 아닐거야.. 설마... ”

하며 아라가 들어간 진료실을 앞에 섰다.

진료실 안에서는 진섭이 설마, 아닐 거야? 우리 아라가....” 했던 이야기가 흘러 나왔고, 진섭은 놀라서 진료실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진섭이 정신을 차린 것은 진료실에서 들리던 아라의 힘없는 목소리 였다. “, 선생님.. 감사합니다...”

진섭은 아라가 나오기 전에 자신의 몸을 병원 복도의 화장실에 숨겼다.

진섭은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곤, 하늘에 있는 지영에게 물어보듯 이야기를 했다.

지영아... 나 어떻게 해야하지... 흐으윽 막막하다... 우리 아라 어쩌지... 불쌍해서 어쩌지 ..’

진섭은 생각을 정리한 듯 병원의 화장실을 나왔다. 진섭이 화장실을 나와서 향한 곳은

아라의 진료실이었다.

저 실례지만, 잠시, 선생님 시간이 되십니까? 제가 정 아라 보호자입니다.”

의사는 잠시 놀란 듯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도록 권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만 여쭙죠... 우리 아라 얼마 남았습니까? 선생님

진섭이 의사에게 물은 건 단 한 마디 였다. 짧지만, 가슴 아픈 한 마디

우리 아라 얼마 남았습니까? 선생님이였다.

 4.

진섭은 그길로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진섭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에서 짐을 싸서 나왔다.

짐을 싸서 나온 진섭에게 다가온 동료에게 진섭은 나는 이제 내 딸에게 가야하네.” 하는 말만을 남기고 진섭을 부르는 동료에게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진섭이 짐을 싸서 오자 아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섭은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며

그냥, 이제 쉬고 싶다. 아라야 우리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아니다, 아라야 여행가자, 다 그만두고!!” 말하곤 등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진섭과 아라가 여행을 떠나는 날 이었다.

아빠 우리 어디 가요? 아빠 우리 바다 보러가요..바다 가고 싶다.”

그래, 우리 아라가 가자는데, 바다라고 못가겠어, 가자

진섭의 차는 바닷가로 향하고 있었다. 진섭의 차가 바닷가에 도착하고

아라와 진섭은 바닷가에서 파도가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앉았다.

파도는 잠시 성이 났다가 다시 잠잠 해졌다가를 반복했다.

한참동안 정적을 깬 건 아라 였다.

아빠, 나 부탁이 있어요. 내 부탁 들러줄 수 있어요?”

무슨 부탁?” 진섭은 고개를 아라 쪽으로 돌려 아라를 바라봤다.

아라의 목소리는 밝은 목소리 였지만, 아라의 눈은 이슬로 반짝이고 있었다.

진섭은 이내 깨달았다. 딸아이가 모두 알고 있었다는 걸...

진섭은 미소를 지으며 그래 아라야 말해봐.. 아빠가 들어줄게.”

아빠..나는 아빠 딸 인게 너무나 좋아요, 그리고 항상 미안했어요, 아빠가 나 때문에 너무 고생했잖아요, 아빠, 만약에... 나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 내가 아빠 두고 혼자 여행을 가도 많이 보고파 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많이 웃으며 지내기로 약속해주세요.”

진섭은 아라의 이야기를 중간쯤 듣다 아라를 쳐다볼 수 없어 파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진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섭은 아라와 바닷가 여행이후 남은 아라의 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3개월 후 아라를 떠나보냈다.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살아갈 힘이 되었던 작은 천사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5.

진섭은 수철의 잔에 사케를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사케를 따르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야 하네... 많이 보고파 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많이 웃으며 지내야

우리 아라가 더 이상 안 아플 거야. 안 그런가, 자 우리 한잔 만 짠하고 마무리 하세.”

진섭과 수철은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그리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수철이 진섭과 인사를 나누고 한참을 뒤돌아 걷다가 진섭의 이름을 불렀다.

이보게 진섭,”

왜 그러는가 ?”

자네는 참 멋지네, 참 멋져.”

, 자네도 실없는 소리, 조심이 들어가시게나.”

진섭은 수철을 향해 다시 한 번 손을 흔들고는 집으로 향하며

조용히 읊조렸다.

지영아, 나 조금은 멋진 놈이지.. 아라야 아빠  조금은 멋진 아빠지, 멋진 남편, 멋진 아빠로 살고 있는지 지켜봐 줄거지? 사랑한다. 지영아, 사랑한다. 아라야

그렇게 길었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