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모던보이의 마지막

by 엑스타 posted Jan 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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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넌 차분하고 계획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했겠지. 넌 바래지도록 오래된 노트를 꺼내 내가 준 만연필로 최소한의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 그것도 네가 무슨 일을 실행하고자 했던 그 전날 밤에 말이다.

 

-오전 9시 너는 도로변 경성 양장점에서 중절모와 몸에 딱 달라붙는 신사점장을 사 입고 가게를 나온다.

 

-오전 10시 너는 황금빛 태엽 시계를 주머니에 넣은 채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소년 배달부를 맞이한다. 넌 배달부가 전해주는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늦은 시간을 꼬투리 잡아 그를 타박한다. 배달부는 짜증나는 티를 내면서도, 네가 떠나갈 때는 높이 팔을 흔들어 반가웠다는 표시를 잊지 않는다. 너는 그 모습을 보며 넉살좋게 미소 짖는다.

 

-오전 11시 너는 카페르네오에서 나를 만난다. 내가 요즘 어떻게 사냐고 묻자, 너는 당연한 듯이 즐기며 산다고 말한다. 그때 나의 감정은 불안함과 함께 측은함이 더해졌다. 너는 나를 향해 쓸데없는 눈빛은 거두라고 말한다. 내가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넌 그것마저 타박한다. 그리고는 부탁한다. “먼 훗날의 제 몫은 남겨두세요.”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게를 나와 한참동안 걸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시끌벅적한 거리의 소음. 경성은 쓸데없이 뭐가 많으면서도 막상 필요한 건 없는 도시었다. 그래서인지 난 언제나 이 경성의 거리가 두려웠다. 그리고 소음 속에 가려진 침묵 또한 두려웠다.

 

다음 날 긴급전보가 경성 하늘위에 휘날렸다. 종이 값 아까운 줄 모르고, 전보를 하늘로 뿌려대는 남자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전보니?”

종로 경찰서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데요.”

소년은 한마디만 남기고 저 멀리 멀어져 갔다. 난 말없이 그 소년이 던지고 간 종이하나를 주워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리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조선인 김xx, 끈질긴 추격 끝에 결국 자살]

 

-END-

 

죽음을 앞둔 그들을 보며 나의 심정은 위태했다.

무서웠고, 흔들렸다. 하지만 그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양복과 같은 단정한 차림새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춤을 추고, 남은 생을 즐겼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 친구들은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완벽한 모던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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