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인생의 장날

by 마노 posted Feb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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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장날



 중학교 3학년, 늦은 겨울밤. 필독 독서랍시고 한밤중에 이청춘이 쓴 ‘일생 갚아야 하는 빚’이란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갔던 것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나는 유독 꿈이 많은 소년이었다. 축구선수, 플루티스트, 건축가 등등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늘 갈팡질팡, 학교에서 쓴 장래희망란에 쓴 꿈도 매번 달랐다. ‘일생 갚아야 하는 빚’이란 책은 이런 나에게 확고한 무언가를 건네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대충 마음씨 곱고 따듯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담아둔 수필이었다. 평소에 책이란 것을 읽어본 적 없었던 나였지만 의외로 글이 깔끔하게 잘 읽혔고 자꾸만 내용 속으로 빠져들다가 책을 다 읽고 나니 뭔가 묘함을 느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 책이 내 마음을 슬쩍 건드렸는지, 좋아하는 여학생을 본 듯이 가슴이 쿵쾅쿵쾅 가만히 있을 줄을 몰라했다. 그래서인지는 잘 몰라도 신호등 등불이 따스해 보였고 건너편 포차집도 정답게 느껴졌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마저도 포근해 보였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기필코 한겨울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이런 따스함을 주는 소설가가 되어 보겠다고. 
 
                                                                          * * *

 늦은 3월, 벚꽃이 피기에는 아직 이른 서늘한 날씨. 하지만 초봄치고는 꽤나 포근했다.
 지난 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뿜어냈나 보다. 오늘이 바로 그동안의 열정과 노력에 대해 보답을 받는 인생의 장날이었을 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3학년, 내가 소설가를 꿈꾼 지 어느덧 4년째. 고작 열여덟, 얼마 안 되는 삶이긴 했지만, 나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꿈이다. 그 꿈이 어느새 손을 뻗으면 다을 듯이 다가왔다. 

 “대상, 나와주세요!”
 나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서 우리 학교 강당의 단상보다 조금 더 작은 단상으로 향했다.

 그다지 유명하고 이름있는 소설 공모전은 아니었고 그저 소설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었지만 솔직히 대상을 탈 줄은 몰랐다. 그저 참석해 달라는 전화만 받았을 뿐인데 대상일 줄이야.

 교실 4개 정도 붙여놓은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수상식을 치렀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받는 내 생에 처음으로 받는 상임과 동시에 2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탔기에 나름의 자부심이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나는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부러움과 동경의 시선들이 대다수였지만 나름의 질투를 담은 시선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질투를 담은 시선에 으쓱해지는 마음이 들었고, 보란 듯이 어깨를 펴고 나가 수상을 했다.
 주최자와 정중한 악수를 나누고 두고두고 아쉬워할 수상소감을 마친 후 저 뒤편에 자리 잡으신 부모님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부모님도 가볍게 웃으시며 내게 손을 흔들어 주시는 모습을 보고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자리로 향했다.

 나도 오늘이 내 인생의 장날인 줄 알았다.


                                                                     * * *


 소설은 작가와 독자의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한다. 마치 라디오처럼 말이다. 작가는 늘 재미있는 이야기의 집합체인 소설을 통해 자신의 삶, 교훈, 재미를 독자들에게 전해 주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과연 내게 독자가 생길까? 볼품없는 내 글을 읽어 줄 사람이 생길까? 내 글도 이청춘 작가처럼 마음을 건들 수 있을까?

 나이가 50이 되도록, 60이 되도록……, 어쩌면 죽을 때 까지 그러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평생을 부모님의 그늘 밑에서 살고 평생을 스스로 살아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나이가 몇이 되든 간에 평생에 단 한 번 이라도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소통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야! 너 대상 탄 거 축하해주려고 산 떡볶이인데 네가 안 먹으면 어떡해.”
 “아, 미안. 잠깐 딴 생각 좀 했어.”
 나는 서둘러 포크를 들었다. 

 이 친구 녀석이 내가 소설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떡볶이집으로 불러 점심을 샀다. 매운 음식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저 공짜라는 이야기에 하나하나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너은 안머거?”
 입속에 떡볶이를 채 삼키기도 전에 말했다.
 “나는 그저께 연습 너무 많이 해서 입술이 다 헐었어. 맵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엄청나게 아프더라고.”
 친구의 자그마한 입술을 자세히 보니 입술에 초록빛과 푸른빛이 함께 돌았고, 여기저기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입술이 헐었다고 해서 살짝 구멍이 뚫린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입술 자체가 파랗게 헐어있었다. 게다가 다크서클은 마스카라 번지듯 내려와 있었고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딱 봐도 친구가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입속에 있는 떡볶이를 마저 삼키고 말했다.
 “으이구, 연습 좀 적당히 하지 그랬어. 아, 잠만. 너 어제 유럽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엄청 빨리 돌아왔네.”
 그러자 친구는 머쩍은 듯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뭐, 오늘 새벽에 들어왔지.”
 “헤, 그럼 비행기에서라도 자두지 그랬어. 얼굴에 피곤하다고 대자로 써있네.”
 “만화에 정신이 팔려서 자는 걸 깜박했지 뭐야. 체한다. 물, 물”
 친구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황당해서 사레에 들렸다. 친구는 그런 나에게 물을 따라줬다. 

  이 친구는 국내에서 플루티스트 유망주로 음악계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중1 때 플룻을 시작해 3개월 만에 모차르트, 슈베르트부터 베토벤 곡까지 평정했고 어제는 쇼팽 콩쿠르에서 직접 초대가 와서 쇼팽 콩쿠르에 참가했었다. 
 녀석은 이상적인 엄친딸이었다. 얼굴도 예뻐 공부도 잘해 거기에다가 세계가 주목하는 음악 천재다. 
 물론, 평소에는 집구석에 박혀 만화만 읽는 만화광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한때 플루티스트를 꿈꾸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녀석의 연주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였을까. 1학년 후배들 입학식 한답시고 초등학교 오케스트라가 강당 단상에서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친구가 독주파트에서 한 마리의 꾀꼬리처럼 플룻을 멋있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었다. 그래서 나도 저렇게 멋있는 연주를 해보자 결심해 플루티스트가 되자고 결심했건만…….

 ‘이 녀석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재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신을 불공평한가 보다. 나도 음악 좋아하는데……, 잘할 자신 있는데……. 어쩌면 나는 내 신세를 한탄하기 위해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친구가 손을 깍지끼며 진지한듯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나 만화가 해볼까?” 
 나는 ‘만화만 읽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하는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아직 고등학생 밖에 안됐고 진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잖아? 무엇보다 난 만화를 좋아하는걸.”
 “그럼, 플룻은 싫어하고?”
 “엄청 싫어하거나 그런건 아닌데…, 만화가가 되고 싶어도 주위 눈치가 너무 보여서 플룻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럴지도.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보일만 했겠지. 부모님, 선생님을 넘어 전 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자랐으니. 
 요컨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하다니. 그러면 정말 슬플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말이야…….

 “넌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잖아. 그렇다는 건 네가 그 분야로 진출해야만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곤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난 재능 따윈 필요 없어. 난 만화가가 되고 싶은걸.”
 흠, 다른 사람들이 들었더라면 서러워할 말이네. 필요 없다면 나라도 주지.
 
 “만화가가 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해?”
 “하다 보면 될 거 같은데? 안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친구는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더니 서스럼 없이 말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녀석이 환상적인 시나리오와 멋진 콘티를 짜게 될 수 있게 된다 쳐도….
 “너 그림 못 그리잖아?”
 분명 중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균…, 아니, 평균 이하였던 나보다도 못 그렸다. 나 참 자화상을 그리랬더니 동그라미에 점 세 개 찍어놓는 건 뭐람. 머핀에 건포도 박아 넣은 것도 아니고.

 “으음, 아직 모르잖아? 혹시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을지.”
 “음악천재에 그림 천재라니, 퍽이나!”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하여튼 이 녀석은 너무 꽃길만 걸어왔다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머핀에 건포도 세 개 박아놓은 듯한 자화상을 그렸던 그에게서는 발전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만화가라니. 너보다 대단한 사람들도 많을뿐더러 경쟁률이 장난이 아닐 거라고.
 아아 그래, 차라리 초현실주의 화가를 해라. 그런 편이 더욱 잘될 확률이 높아 보이니까.

 “너무해….”
 “난 현실을 얘기했을 뿐이야. 그리고 너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을 거라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만화가가 되지 못 할거란 말이야?”
 “어, 그래. 재미있고 멋있는 만화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왜 굳이 네 걸 보겠냐.”

 “그럼, 너는?”
 
 나? 그래도 내가 글을 못 쓰는 편은 아니니까 먹고 살 수는 있지 않을까. 오늘 공모전에서 상도 받았고 말이야…. 그래도 나보다 잘 쓰는 사람들은 많겠지. 재미있는 소설은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내걸 보려나. 
 점점 내가 친구에게 말해준 가설의 표본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던 친구는 히죽히죽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먹을 만큼 먹었고 배도 다 찼잖아? 더 먹으면 내 지갑에 남는 게 없을 거야.”
 친구가 내게 짓궂은 윙크를 보내며 말했다.
 “어…, 그래.”

 가게에서 나오니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햇살은 강했고 하늘은 가을 하늘 마냥 푸르렀다. 대상도 타고 저녁도 공짜로 얻어먹고. 오늘이 바로 내 인생의 장날이어야 하는데, 내 마음은 왠지 답답했다.

                                                                    * * *

 나는 집에 도착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후, 떡볶이 때문에 따로 노는 혀와 입술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음 한 움큼 컵에 담고 부엌을 뒤적거려 먹을거리를 찾은 후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대회는 어떻게 됐으려나?”
 내가 알아보았던 다른 공모전들의 결과를 알아보려고 검색을 시작했다. 
 다른 공모전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어마무시한 상금들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어마무시한 사람들이 저 대회에 나가겠지.

 그런데 역시나 유명하고 이름있는 대회였는지 수상작들을 찬찬히 읽어보니 전혀 내 또래 친구들이 쓴 글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는 바로 출판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작품으로 느껴졌다. 내가 만약 저 대회에 나갔더라면 틀림없이 밑바닥 깔아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다른 화려한 작품들을 보며 나는 넋을 놓고 있었다. 내가 몇 살쯤 되고 얼마나 경험을 쌓아야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계산해 보기도 했고, 재미있는 소설을 찾으러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
 다른 공모전을 살펴보려고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으로 나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천재 플루티스트 허무하게 무너지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의 제목이었다. 

 “무슨 소리야.”
 난 친구를 욕하는 영문모를 기사제목을 벙찐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곤 나는 조심히 링크를 클릭해 뉴스 기사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내가 생각했던 그런 기사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던 대한민국 플루티스트가 이틀 전 쇼팽콩쿠르에 초대되어 공연을 펼쳤었다. 역시나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훌륭한 연주를 …… (중략) …… 하지만 새꿈을 찾아나선다며……
<플룻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였다.>

 “뭐……, 뭐야 이게.”
 한참 기사를 읽고 넋을 놓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만화가가 될 생각이었어?’
 순간 사고가 정지하듯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는 천천히 마우스 드래그를 내리며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았다. 
 댓글까지 읽어보니 조금 초조해졌다.
친구를 응원하는 댓글도 있긴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좋지 않은 댓글들도 가득했다.
 

 “아가야, 엄마 아빠랑 얘기 좀 할까?”
 그대 부모님이 내 방에 들어오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라는 말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부모님을 따라 부엌 식탁에 앉았다. 


 “오늘 시상식 하는 거 감명 깊게 봤단다. 설마, 숨겨진 천재인 거 아니야?”
 부모님은 한참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손발만 꼼지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부모님은 진지하신 표정과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진로는 생각해 봤니?”
 “네?”
 나는 순간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이가 열여덟이고 내일모레면 대학가야 하는데 진로는 정해야 하지 않겠니?” 
 나는 조금 당황해했다.
 “소설가가 되기로 했잖아요.”
 “회계사는 어때? 넌 문과랑 이과 기질을 둘 다 갖추고 있으니 회계사가 어울릴 것 같은데?”
 “소설가가 되겠…”
 “소설가는 크게 성공하지 않으면 힘든 직업이야.”
 부모님이 나를 다그치며 말씀하셨다. 

 “엄마 친구들 중에 작가 되겠다는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힘든 걸 못 견디고 지금은 대부분 회사생활을 하고 있어. 몇 명은 결혼해서 주부 일 하고 있고.”

 그럴지도. 나는 생각했다.
 나도 작가란 꿈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었다. 친구의 부모님, 부모님의 친구, 인터넷상에서 알게된 사람 등등. 모두 나처럼 부푼 꿈과 희망을 품고 목표로 뛰어들었지만 모두 그만두고 말았다. 
 “다들 낮에는 열심히 알바하고 저녁에는 열심히 글 쓰고 생활비를 축내며 노력해봐도 이길 수 없었대. 다른 재능있는 사람들을. 너도 그럴 바엔 처음부터 안전한 직업을 갖는 게 나아. 나중에 괜한 고생하지 말고.”

 그들의 앞에는 재능이라는 큰 벽이 있었고, 정말로 작가가 되려면 그 벽을 허물어야 한다.
 나는 생각 중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부모님 말씀대로 음악가, 운동선수, 작가 등등, 예체능 분야의 직업은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울 터였다. 그런데 나처럼 특별한 재능 없는 사람이 그 분야로 진출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두려웠다. 점점 주변 사람들의 과정과 결과에 내가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뭐야, 내가 아까 친구한테 해준 말이랑 똑같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 쓰는 건 취미로 해도 되잖아. 아니, 취미가 아니더라도 부업 정도로 괜찮지 않을까?”
 “저는 안일한 마음으로 소설 쓰기는 싫어요!”
 나는 단칼에 대답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세게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리곤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이불 속에 묻었다. 방 밖, 거실에는 적막함이 나돌 뿐이었다.
 ‘그래, 난 항상 그랬지.’
 플루티스트를 포기했을 때도, 축구선수를 포기했을 때도, 건축가를 포기했을 때도 실패가 무서워서 포기했었지. 어쩌면 부모님 말씀대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그래도, 혹시 모르지. 이번엔 내가 그 벽을 허물지도.’



 난 항상 이런 복잡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들을 느낄 때는 잠을 잤다. 잠을 자면 더 냉정해지고 차분해지는 느낌이랄까. 
 난 얼굴을 묻었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려고 하는데 휴대폰에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친구에게서 온 문자였다. 문자를 읽기 시작하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문자를 다 읽고 나니 목이 메이고 이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서둘러 자려고 했지만, 역시나 자지지 않았다.



「못하면 흥미가 생기지 않으니까 잘하는 것엔 흥미가 생길 거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걸 해. 재능이 없으면 흥미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만화가를 꿈꾸는 친구가-」


 나는 수년 동안 수없이 많은 꿈을 꿔왔지만 한 번도 실현시킨적은 없었다. 장날은 여러 번 열렸지만 한 번도 물건을 사 본 적은 없다.
 늘 이맘때면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내 인생은 재조정 됬다. 그리곤 난 늘 ‘난 달리기가 느리니까, 나보다 음악 잘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항상 실패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자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지금도 딱 그런 상황일 거다. 정말 세상이 말하는 대로 인생은 소심하게 굴기에는 너무 짧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도 이런 계절이 오겠지. 잘 이겨냈으면.





 이름: 이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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