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공모

by 날으는트롤 posted Feb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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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과 패배

성은은 어느 평범한 날과 다름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햇빛은 봄이라는 걸 증명하듯 옷깃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정말 평범한 어느 봄날이었다. 광화문 거리도 한결같이 사람들로 붐볐다. 조금 달랐던 점은 이순신 장군 동상이 햇빛을 받아 평소보다 더 따뜻한 색이었다고나 해야 할까. 지금은 점심시간. 끼니를 때우러 나온 종로의 직장인들 속에 그녀도 위화감 하나 없이 포함되어 있었다.


“점심은 뭘 먹지..” 4년 동안의 자취로 혼잣말이 부쩍 늘은 그녀는 고민을 하다가 회사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얼른 먹고 가서 마저 일을 해야 한다. 점심시간이라도 쪼깨서 일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포마드 머리의 직장 상사가 성은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 뻔했다.
‘딸랑’
그녀는 출입문 종소리와 함께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때였다. “아!” 그녀는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던 아이와 부딪혔다. 한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앞에 좀 보고 다녀. 그렇게 두리번거리면서 다니다가 다른 사람이랑 부딪히겠다는 생각은 안 드니?”
성은은 신경질적으로 아이에게 쏘아댔다. 그녀의 가방에 아이의 아이스크림이 묻었기 때문이다. 
성은의 가방을 본 아이는 놀라며 말했다.
“어! 어떡하지. 죄송해요..”
아이에게 세탁비를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됐어, 내가 닦을 테니까 그냥 가봐.”
성은은 아이를 보내고 편의점 안 테이블에 앉아 가방을 닦았다. 3년 전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산 소중한 가방이었다. 비싸진 않지만 그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가방이다.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닦은 뒤, 그녀는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 샀다. 
다시 테이블에 앉아 도시락을 먹던 성은은 그녀의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렇게 대충 닦아도 되나? 
얼룩지진 않을까? 그러다 그녀의 시선은 편의점 밖을 향했다. 출입문 밖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보던 그녀는 3년 전 자신이 떠올랐다. 처음 출근하며 그녀는 다짐했다.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다른 누군가들처럼 초심을 잃지 않겠노라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보며 살아가겠노라고. 그랬던 그녀였다. 
성은은 먹던 도시락을 내려놓고 계산대로 향했다.
“여기 소프트콘 아이스크림 어디 있죠?”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편의점 밖을 나섰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니 오른쪽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보낸 지 5분 정도 되었으니 뛰어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이가 향했던 방향으로 계속해서 뛰었다. 
10분 정도 뛰었을까,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난 건 사거리였다. 그녀의 이성이 돌아왔다. 아이를 찾는 건 애초에 무리였던 것이다. 편의점으로 되돌아가는 성은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녀는 그녀의 가방만 중요했지, 아이의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신경 쓸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3년 전의 그 다짐은 이미 스스로 부셔버린 것이다. 편의점에 도착한 그녀는 출입문 앞, 다 녹아 물이 된 아이스크림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세상에 패배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