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by 깡통 posted Feb 03,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악몽

 

 

 

 

 

 

 

 

 

 

 

 

 

 

 

 

 

 

 

 

-1

 

"우리 예쁜 꼬마아가씨 어디로 숨으셨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숨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있는 힘껏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다. 추운 날씨에 꽁꽁 얼었던 발이 아려오고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 창백해져가고 있다. 호흡이 점점 흐려진다. 헝크러진 머리 사이로 내 시선은 바깥으로 향하였다. 숨어있는 장롱 근처에 그 아저씨가 다가와있었다.

 

이제 끝났구나. 바로 앞의 상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열때마다 웃음소리를 흘린다.

 

"여기 있나? 아니면 여기있으려나?"

 

 소름이 끼쳐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숨 쉬는 것 조차 버거워졌다. 아저씨가 장롱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저씨의 큰 손이 문 손잡이를 감쌌다. 장롱 틈 사이로 아저씨의 술냄새가 진동하였다. 그 순간에 머리 속이 뒤엉키고 많은 기억들이 필름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창백해져 핏줄이 희미하게 비춰지는 볼 위로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떨리는 눈꺼풀을 감아보였다.

 

어서 깨어나야 한다.

 

 

 

다신 잠들고 싶지 않게한 꿈.

 

 

 

 

 

 

 

 

 

 

 

 

 

 

 

 

 

 

 

 

-2

 

 나의 기억 속에 아빠의 모습은 없지만 짧게나마 나와 똑닮은 모습의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은 생생히 남아있다. 기억들을 차근차근 짚어보면 우리 집은 그리 형편이 좋지 않았다. 어린 딸을 키우기 위해서 엄마는 작은 포장마차에서 일하셨고,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방과후엔 내내 그 옆에 앉아 엄마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포장마차에 검은 양복을 입은 무리들이 때거지로 몰려와 가게를 헤집어놓았고, 힘겹게 번 돈들을 몽땅 가져가 정상적인 가게 운영이 힘들어졌다. 급기야 이걸로는 부족했는지 엄마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간적도 있었다. 그 무리들이 찾아와 한바탕 난동을 부린 날이면 항상 엄마는 나를 부등켜앉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내가 숨이 막힌다며 징징대도 그런 나를 더욱 세게 끌어당겨 흐느껴울었다. 이유를 알지못한채 나도 엄마를 따라 엉엉 울었다.

 

하루는 엄마가 포장마차를 일찍 정리하고는 나의 손을 붙잡으며 말하였다.

 

"유린아, 엄마랑 오랫동안 여행 갔다올거야. 엄마랑 같이. 알았지?"

 

 나는 여행이라는 말에 들떠서 때가 타 회색빛을 띄는 곰인형을 한 손에 붙들고 다른 한 손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졸졸 따라갔다. 엄마는 여행 시간에 늦었는지 질질 끌려가고 있는 나는 쳐다도 보지않고 점점 더 걸음을 빨리했다. 엄마의 손끝을 겨우 붙들며 따라갔고 한 고속버스에 탔다. 엄마는 나를 좌석 안쪽에 태우더니 이제 그만 자라며 한참을 토닥여주었다. 시간이 흐르자 나는 곰인형을 품에 안고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제발 우리 딸만은... 돈은 최대한 더 마련해볼께요. 약속대로 해주신다면서요. 제발 부탁드려요." 엄마의 전화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엄마..... 화났어?"

 

 엄마는 나의 작은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눈가가 붉은채로 전화 속 누군게에게 계속해서 사정했다. 나는 화난 것 같은 엄마가 무서워서 다시 눈을 꼭 감고 자는척을 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전화를 끊고 나의 손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거친 엄마의 손이 나의 손을 스칠 때 곰인형을 쥐고 있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엄마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한참동안 나의 손을 어루만지다 작게 속삭이듯

 

"엄마가 미안해.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다음엔 더 잘해주고 예뻐해주는 좋은 엄마 만나야돼. 다음번엔 꼭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야해.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갑자기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워진 나는 억지로 감고있던 두 눈을 뜨고 엄마 품에 쏙 안겼다.

 

"아니야, 난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 사랑하지? 내가 제일 예쁘지?"

 

엄마는 나의 이런 어리광에도 끊임없이 미안하단 말만 반복하며 내 등을 토닥이고 또 토닥였다.

 

 

 

 

 

 

 

 

 

 

 

 

 

 

 

 

 

 

 

 

-3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그마한 손에 꼭 붙들고 있던 곰인형과 함께 잠에서 깼다. 어제 밤새 엄마 품에서 울어선지 눈이 퉁퉁 부어 바깥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 순간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들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심장이 쿡쿡 거리면서 튀어나올듯 뛰어대기 시작했고, 내 두눈은 엄마만을 찾아해맸다. 곰인형을 질질 끌며 방 안 이곳 저곳 돌아다녀보다 불빛이 들어오던 문 손잡이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그 순간 문이 활짝 열렸다. 갑작스러운 환한 불빛에 눈을 찡그리며

 

"엄마?"

 

 애타게 찾던 엄마일거라는 생각에 문 쪽으로 순식간에 달려가 안겼다. 하지만 낯선 손길에 이내 나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쿵소리를 내며 내던져진 나는 당황한 마음에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엄마? 엄마 아니야? 왜그래. 유린이한테 화났어?"

 

 그 때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보여지기 시작했고, 간절히 원하던 엄마가 아닌 처음보는 얼굴의 한 여자가 나를 찡그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향해 옷뭉텅이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시끄러워! 조용히 하고 옷이나 빨리 갈아입고 나와!"

 

 여자의 큰 목소리에 놀라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엄마는 어디있는지 계속해서 되물었지만 여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엄마는 널 버렸어. 이곳에선 내가 너의 엄마야.”

 그러고는 문을 세게 닫으며 나가버렸다. 아니야. 엄마가 날 버렸을리 없어. 엄마는 날 지켜줄거라 그랬어. 곧 오실거야. 머릿속에 되새겼다. 그리고 주섬주섬 여자가 던져놓고 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곰인형을 챙긴 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서늘한 복도를 맨발로 걸어갔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사람들을 찾던 중 희미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끝쪽에 문이 열려있는 방에서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씩 방에 다가가며 귀를 기울였다.

 

"오늘 새로들어온 여자애 오늘부터 같이 지낸다던데."

 

"정말? 너 본적 있어?"

 

"아니. 근데 되게 어리데. 언니가 새벽에 오는거 봤다던데?"

 

"어쩌냐. 딱해라.."

 

 나는 방앞에 서서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감추고 조용히 들어섰다. 방 안에는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언니들이 잔뜩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 겁에 질려 고개를 푹 숙인채 그자리에 굳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 다리에 따뜻해지면서 옷끝자락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언니들은 날 발견하고는 키득키득 웃으며

 

"어머, 쟤 겁먹었나봐. 오줌 싼다 야. 아무나 어떻게 좀 해봐."

 

"어떡해."

 

", 냄새!"

 

 그 때 큰 키의 한 언니가 일어서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언니는 내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리고갔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언니는 내 옷을 벗겨 빨아주었고, 따뜻한 물을 받아 씻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는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한 채 언니를 힐끗 바라보며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저는 한유린이라고 해요."

 

언니는 방긋 웃어보이며

 

"나는 이하연. 여기 언니들이 장난끼가 많아서 적응하기 힘들어도 잘 챙겨줄거야. 겁먹지 않아도 돼. 궁금한거 있으면 언니한테 물어보고. , 그리고 말 놓아도 돼."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언니를 보고 엄마의 모습이 겹쳐보여 눈물이 맺혔다.

 

"언니 나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

 

언니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더니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유린아, 언니도 언니네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 그런데 지금은 안돼. 유린이가 언니 손 잡고 몇 밤 자고나면 유린이 찾으러 엄마가 오실거야. 그러니까 이걸로 다시 갈아입고 나와."

 

나는 언니가 건넨 옷을 받아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4

 

 화장실 한 구석에 쭈그려앉아 아직도 쿵쾅되며 쉼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조금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와 가장 구석에 자리잡았다. 구석에 앉아있는 나를 본 하얀 언니가 내옆에 와 앉았다. 나는 언니를 바라보며 살짝 웃어보였다. 언니도 나를 향해 웃어보이며 떨리고 있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방 안에 처음 보았던 무서운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의 등장에 모든 언니들이 대화를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나도 언니들을 따라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조금씩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 때 여자가 나의 이름을 크게 부르더니 나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된 순간 여자가 다시 입을 땠다.

 

"이미 다 들었겠지만 이 아이 이름은 한유린.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됬다. 처음이라 낯설테니 잘 챙겨주고. 자 이제 다들 일할 준비해."

 

"! 엄마"

 

 언니들은 이 여자를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입모양으로 따라하는 흉내만 냈다. 여자는 내 등을 떠밀며 너도 준비해 라고 속삭였다. 이곳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채 바쁘게 준비하는 언니들 틈에 껴 졸졸 따라다녔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언니들을 열심히 쫒아다니다 하연언니를 발견하고 얼른 다가갔다. 언니는 조그맣고 마른 아주 작은 체구의 한 언니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언니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연언니와 함께 있던 언니가

 

"하연아, 너 뒤에 유린이...."

 

"! 유린아 언니가 뭐 도와줄까?"

 

 하연 언니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물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무엇을 해야하는지 물었지만 언니는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언니의 대답을 한참 기다렸지만 같이 있던 언니조차 나의 시선을 피하기만 하고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 때 같이있던 언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린아, 언니는 현지라고 해. 반가워."

 

기다리던 대답이 아니라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언니의 인사에 웃어보였다.

 

"일단 먼저 준비하는 것부터 같이 하자. 언니들 잘 따라와."

 

"..."

 

 어떤 일을 하는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자 문득 불안한 감정이 들면서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언니들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준비가 어느정도 끝나갈 때쯤 이곳에서의 엄마라는 사람이 다시 찾아왔다. 그 여자를 보자 모든 언니들은 하던 일을 마치고 여자 앞에 모두 한줄로 모였다. 나는 맨 뒤에 슬쩍 서서 언니들의 눈치를 살폈다.

 

"자 예쁜이들! 모두 준비는 끝났겠지?"

 

여자의 질문에 두 우렁찬 대답으로 외쳤다.

 

"!"

 

"출발하자.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줄을 맞춰 다들 한걸음씩 앞으로 향해갔다. 열심히 따라가며 아까 내가 지나왔던 차가운 바닥의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다시 살폈다. 발이 시려웠지만 혹시나 줄을 놓칠까 빠른 걸음으로 쫒았다. 하얀 문앞에 언니들이 모두 멈춰섰다.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 자리에 모두 들어가 준비하고 있어. 손님들은 20분 후부터 입장하신다. 그리고 책상위에 있는 약 하나씩 꼭 먹어야 해. 다 너희들을 위한거니까."

 

 드디어 하얀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줄 맨 앞부터 들어서기 시작했다. 맨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온 나는 순간 얼어붙어 가만히 서있었다. 안은 양끝에 긴 복도가 자리잡아 있었고, 복도에는 여러개의 문들이 쭉 늘어져있었다. 언니들은 약을 하나씩 챙겨 복도의 문들로 다들 들어갔다. 나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들어온 문 구석에 서서 숨죽이고 있었다.

그 때 내 어깨를 강하게 누르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옆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 여자 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순간 내 등 뒤의 문을 열고 도망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손을 문 손잡이 쪽을 향하게 하였다. 여자의 눈이 나의 손을 주시하고 있다.

 

어쩌지? 도망치고 싶어. 살려주세요.’

 

"이름이 유린이였나? 넌 이리 와. 그리고 혹시 도망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게 좋을거야. 여긴 들어오는 문은 있지만, 나가는 문은 없거든."

 

 여자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웃었다. 그리고 문은 잠겼다. 이젠 도망칠 방법조차 사라졌다. 무서웠다. 여기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왜 우릴 가둬놓는 건지. 왜 우린 나갈 수 없는건지... 묻고 싶었지만 방금 본 여자의 끔찍했던 미소가 떠올라 그만 두었다. 여자가 나에게 손짓하며 양끝의 복도 한가운데 있는 탁자에 앉았다. 나는 탁자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넌 저 방에서 일하기엔 아직 어려. 대신 여기서 손님들에게 이거 하나씩 나눠드리면 돼. 웃으면서 예쁘게. 손님에게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야 해. 대답해!"

 

목이 잠겨 간신히 새어나오는 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대답했다.

 

 여자가 나에게 통에 가득 담긴 정체모를 물건들을 보여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여자는 날 탁자에 앉혔고 난 방 하나하나 시선을 보내며 하연언니가 있는 방을 찾아보았지만, 창문하나 없이 꽉 막힌 채 굳게 닫혀있는 문에선 언니를 찾을 수 없었다. 통에 담겨있는 물건을 하나 꺼내보았다. 이게 뭘까? 왜 이걸 손님들에게 나눠주라는 거지? 한참 물건을 바라보면서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 때 여자가 우릴 불렀다.

 

"예쁜이들! 손님들 입장하실 시간이다."

 

 여자가 복도 가장 끝으로 향하더니 벽 틈새쪽을 밀었다. 밀린 작은 구멍에 카드 인식기 있었고, 여자는 자신의 손목을 가져다 댔다. 문이 열린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보게된 내 눈앞에는 어느새 여러명의 남자손님들이 한명씩 한명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이건 악몽이다. 이젠 깨어나야할 시간이 다 되었다. 제발.

 

 덜덜 떨며 두눈을 꼭 감고 귀를 막았다. 내 얼굴을 덮어버릴 만한 큰 손등이 내 볼을 스쳐지나가기 전까진 그나마 날 겨우 진정시켜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느껴진 낯설고 섬뜩한 손길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뒤로 피해버렸다.

 

"조끄만한게 튕기기는. 예쁘장하게 생겼네. 조금만 더 크면 아저씨랑 재밌게 놀자?"

 

담배냄새를 심하게 풍기며 서있는 아저씨였다.

 

아저씨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아저씨랑 재밌게 놀자... 아저씨랑.... 놀자...놀자..........'

 

제발 그만....

 

 여자가 나의 귀에 대고 소리치며 욕을 퍼붙기 시작하자 정신이 가까스로 돌아와 기다리고있는 아저씨의 손에게 물건을 내밀어주었다. 여자가 날 한참 노려보더니 다음 손님에게 가식적인 웃음을 짓고는 팔짱을 끼며 방을 안내했다.

 

 

 

 

 

언제쯤 깨어날 수 있는걸까?

 

 

 

 

 

 

 

 

 

 

 

 

 

 

 

 

 

 

 

 

-5

 

 이곳에서 지내온지 6.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도 어느새 평범한 삶을 보내는 아이라면 중학교에 가야할 나이가 되었다. 언니들과도 많이 친해져 이젠 농담도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로 발전했다. 하연 언니와 가장 친하다는 건 여전하지만.

 

그리고 이곳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

 

몰랐어야할 많은 것들을 눈치채버렸다.

 

 그리고 난 이 혐오스러운 공간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갔다. 하연언니가 커가는 나의 손을 붙잡고 해준 진심어린 조언들과 언니들의 따뜻한 포옹과 응원들을 통해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배웠다. 버티고 살아남아서 꼭 바깥세상으로 나가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불러야만 했다. 손님들에게 날 제공해야했다. 자존심을 버렸다. 아직까진 난 방에서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할 날도 얼마 남지않았다.

밤마다 빈다. 제발 하루라도 미뤄달라고. 복도 끝쪽에서 3번째 자리. 그 방은 비워져있다. 곧 내 일터가 될 자리이다. 그 방이 일주일이라도 아니 하루만이라도 더 비워져있게 해달라고.

 

엄마가 매일 나에게 찾아와 묻는다. 내가 일할 날만 기다리는 듯.

 

"유린아. 혹시나 시작하면 엄마에게 가장 먼저 말해야해. 예쁜이의 시작은 엄마가 알아야하니깐. 숨겨도 소용없다는 건 알지?"

 

"네 엄마."

 

 복도 한가운데 탁자에 앉아 손님들을 마주하는 일도 어느새 적응이 되었다. 아직도 손님들의 장난과 손짓들은 피하고 싶지만 엄마의 눈에 벗어나지 않고,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싫은 티를 애써 숨겼다. 밤새 일을 마치고 엄마는 뒷정리를 끝낸 우리를 한줄로 세워놓는다. 일종의 검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엄마는 우리의 옷을 벗긴다. 그리고 우릴 마치 장식품처럼 검사해나간다. 첫 검사날 그 수치심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였고, 지금도 검사 시간 엄마의 눈빛을 보면 두려웠다. 내 차례이다.

 

"우리 예쁜이는 키가 조금 작아 .더 더 아름다워져야 해. 그래야 손님들이 널 마음에 들어 할거야."

 

 검사가 끝나고 언니들과 함께 잘 준비를 했다. 하연 언니와 함께 씻은 후 바닥에 깔린 이불을 덮고 누웠다.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와 누워있으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이제 나에게도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 내 마지막 모든 것까지 빼앗아갈 엄마는 날 가꾸고 전시한다. 두려웠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불안했다. 이곳에서 지내기 시작한 후로는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매일 밤 꿈 속엔 예전 엄마와 지금의 엄마가 찾아와 날 예쁘게 꾸민 뒤 내 온몸에 쇠사슬을 묶어 조종했다. 피가 흘러내릴 때까지.

 

 

 

 

 

 

 

 

 

 

 

 

 

 

 

 

 

 

 

 

-6

 

 오늘도 이 꿈이다. 식은땀이 흘러 이불 끝자락이 축축했고, 눈가가 뜨거웠다. 머리가 어지러워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다.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평상시와는 다른 기분.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궜다.

 

 

 

 

 

 

 

역시나.

 

 

 

 

 

 

 

 

 한참을 멍한 상태로 주저앉아있었다. 꿈 속에서 흐르던 피의 의미가 이거였다니. 일단 숨겨야 한다. 엄마에게 들켜선 안된다. 내 스스로를 지켜낼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머릿속이 새하얀 상태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세면대 위에 면도칼이 보였다. 짧은 한 순간 어느새 그것은 내 손에 쥐어져있었고, 내 허벅지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쓰라렸다. 거울 속 나를 보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핏방울과 섞여 꽃처럼 번져나간다.

 

 

엄마가 죽도록 바라던 아름다움이 이건가요?

 

 마음을 진정시키고 뒷정리를 끝낸 뒤 화장실에서 나왔다. 평상시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해야한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하연언니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 사이로 다시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해 옷에 스며들어있었다. 난 언니에게 신호를 보냈고,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날 화장실로 끌고갔다.

 

"유린아, 언니가 도와줄께. 그러니깐 걱정하지말고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고 옷 갈아입자. 침착하게 행동해야 최대한 시간을 벌 수 있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흔들리지 마. 알았어?"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겨우 참았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언니가 날 꼭 안아주었다. 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안고있었다. 오늘 하루동안에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처해나갔다. 아직까진 내 꽉 막힌 암흑의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러길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여긴 어디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홀로 서있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의 서늘한 공기에 겁이 났다. 엄마를 찾아야한다. 나에게 행복하게 살라며 안아주던 엄마.

 

멀리 불빛이 보인다. 얼마나 뛰기 시작했을까? 불빛과 아주 가까워졌다.

 

엄마....

 

엄마다. 날 봐주세요. 엄마... 나 유린이야...

 

제발 날 좀 구해줘...

 

엄마가 천천히 날 향해 뒤를 돌아봤고 난 엄마에게 더 가까이 달려갔다. 엄마의 품에 안겼다. 따뜻했고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쳐갔다.

 

잠시만 이러고 있어주세요.

 

보고싶었어요.”

 

 엄마의 향기가 흐릿해져간다. 눈을 떠보니 내 품 속에는 엄마가 아닌 곰인형만 남아있었다. 많이 들어본듯한 목소리가 날 애타게 부른다. 누굴까? 누가 날 찾는걸까.. 어두웠던 배경이 환하게 바뀌었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세웠더니 하연언니가 날 깨우고 있었다.

 

"유린아, 왜 이렇게 땀을 흘려. 괜찮아?"

 

"언니였구나. 난 괜찮아. 그냥 꿈이 조금.."

 

 밤마다 내 과거의 기억들로 만들어낸 비극적인 이야기들은 꿈 속에 다녀간다. 날 끝까지 사랑해주지 못한 배신자. 평생 증오해도 모자랄 그 배신자가 날 자꾸만 울린다.

 

 

악몽이였다.

 

 

 

 

 

 

 

 

 

 

 

 

 

 

 

 

 

 

 

 

-7

 

 오늘도 일을 마치고 검사가 시작되었다. 엄마가 내 옷을 벗기는 것이 더 걱정되는 날이였다. 하연 언니가 나에게 긴장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왔지만 그래도 두려웠다. 이젠 더이상 숨기는 것도 한계다. 한 줄로 서있는 언니들를 지나 엄마가 내 바로 근처까지 다가왔다. 허벅지에 깊게 새겨진 상처를 가렸다. 눈을 꼭 감고 기도했다.

 

'제발 무사히 넘어가게 해주세요.'

 

엄마가 내 앞에 서있다. 내 다리의 상처를 발견하고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을 더럽히는 저 흉함은 뭐지? 예쁜아?"

 

 엄마의 눈을 애써 피하며 잠결에 목욕을 하다 면도칼을 떨어뜨리다 벌어진 사고라고 둘러댔다. 엄마는 날 노려보며 다신 그런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며 화를 냈다. 이걸로 내 검사는 끝났고 무사히 지나갔다. 하지만 하늘은 내 편이 아니였다. 난 도대체 누굴 믿고 의지해야하는거지?

 

"이게 무슨 냄새야? 어머! 피야 피!"

 

"? 징그러. 누구야!"

 

 언니들은 바닥에 흘러내린 피를 보며 난리를 쳤다. 그리고 많은 언니들의 눈은 핏자국을 타고 시작점을 따라갔다. 나였다. 내 다 사이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멈춰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엄마의 눈에도 보여지고 말았다. 이젠 끝이다. 마지막 남아있던 희망마저 사라져버렸다.

 

엄마는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얼굴을 쓰다듬고는 기뻐하며 말했다.

 

"드디어 진정한 아름다움이 시작된거야. 이제부턴 더 많은 손님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어! 얼마나 기쁜 일이니, 안그래 예쁜이들? 얼른 축하의 박수를 보내줘야지!"

 

언니들은 나를 차마 바라보지 못한채 억지로 박수를 쳤다. 하연 언니는 고개를 떨구고 떨고 있는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나에게 보였던 웃음 중 가장 밝았다.

 

왜 기뻐하는거죠?

 

 

 아름다움은 이런게 아니예요. 엄만 지금 아름답지 않아요. 당신은 그저 잔인하고 불쌍한 한 여자일 뿐이죠. 난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예요. 난 당신 손님들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려고 태어난게 아니예요.

 

 

왜 당신은 그걸 모를까요.

 

 

 내 방문이 열렸다. 엄마는 나의 입에 강제로 약을 쑤셔넣고 삼키게 했다. 방 안에 갇혔다. 작은 숨구멍 하나뿐인 어두운 방에는 오늘 방문할 손님들의 각종 정보가 적힌 리스트가 놓여져있었다. 무서웠다. 손님들이 날 얼마나 힘들게 할지 알기에 더욱 무섭고 두려웠다. 이제 곧 나의 지옥같은 첫 일이 시작된다. 언니들의 조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밤, 언니들이 한명씩 날 안아주었고, 내 손을 잡으며 해준 말들이 있다.

 

"미칠 것 같이 아파도, 죽고싶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버텨. 너가 떠나버린다고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아. 무조건 버텨내야해."

 

"언니는 내 눈앞에 있는 손님을 죽여버리겠단 생각을 수도 없이해. 그래도 손님을 다치게 해선 안돼."

 

"이겨낼 수 있다. 한유린! 힘든일 있음 이 언니한테 말하고!"

 

모두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언니들 말 꼭 지킬께.

 

 

 손님들은 처음 경험해보는 나의 고통스런 표정을 즐겼다. 날 더 더 아프게하며 만족했다. 갈기갈기 찢겨지는 고통에 눈의 초점은 풀어진 채 엄마의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이성을 잃었다.

 

"살려주세요.. 그만 제발 그만....."

 

끝났다.

 

 방 안에 더이상 들어올 손님은 없었다. 도저히 혼자 힘으론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아 그자리에 쓰러져 한참을 누워있었다. 여자로서의 모든 것을 잃었다. 억울했고 그 어떤 순간보다도 부끄러웠다. 내 모든 자존심이 무너져내려 미친듯이 억울했다. 억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숨죽인채 흐느껴울고있는데 엄마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갑자기 날 억지로 끌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첫날엔 항상 내가 직접 씻겨준단다, 예쁜이.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는 살아갈 가치가 없어. 엄마 말 명심해. 아름답지 않으면 만족스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더 괴로울거야. 사랑받는 기쁨을 누려."

 

 엄마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이곳에 온 이후에 마음속으로 수백번이고 물었다.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 엄마를 이리도 비참하게 만들었군요. 사랑은 억지로 만들어낸다고 맺어지지 않아요. 사랑은 서로의 믿음이 만났을 때, 그 순간에 꽃을 피우죠. 사랑은 이렇게 하는거에요. 엄마.

 

 

 

 

 

 

 

 

 

 

 

 

 

 

 

 

 

 

 

 

-8

 

'하늘이 날 완전히 외면하진 않나봐요. 실낱같은 희망이 언젠간 온다고 간절히 빌었는데. 제 기도가 이제야 닿았네요.'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정도 지나던 어느날, 낯이 익은 손님이 나의 방에 찾아왔다. 어리던 나의 기억 속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였다. 손님은 날 보더니 놀랐다. 당황한 채 기억 속을 헤집어 내 눈앞의 얼굴을 떠올렸다.

포장마차.

 나의 엄마가 일하던 포장마차에 자주 오던 단골손님이였다. 올 때마다 나에게 외국과자를 선물해주던 아저씨였다. 엄마와도 아주 친해 우리 두 모녀에게 아빠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그런 아저씨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유린아, 아저씨 기억하니?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예쁘게 잘 자랐구나. 이런 곳에서 힘들게 지내게 해서 미안하다. 아저씨가 계속 너가 있는 곳을 알아봤는데도 찾는게 쉽지 않아서... 이제야 널 찾았구나. 정말 미안하다."

 

난 아저씨를 믿어도 되는걸까?’

사람을 믿는게 두려워진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준 사람. 처음이였다. 흔들렸고 아저씨의 손을 당장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아니야. 한유린. 일단 궁금한 것들을 해결하고 나서. 이성을 잃어선 안돼.'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매일을 증오해오던 한사람. 그 사람이 날 버린 이유를 알아야겠다.

 

"아저씨, 엄마가 날 버렸어요. 그래서 아저씨에게 쉽게 마음을 열 수가 없어요."

 

"유린아, 엄마는 널 보육원에 맡겼어. 그런데 보육원에서 어린 여자 아이들을 여러 기관에 팔아넘긴거야. 그래서 너가 이곳으로 오게된거고. 엄만 너가 보육원에서 사고로 죽은 줄 알고있었어. 결국..."

 

아저씨가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래서 엄마는 지금 어디있는데요? 아저씨! 말 좀 해봐요!"

 

"자살했어... 미안하다."

 

쉽게 포기해버릴거면 그렇게 끝내버릴 삶이 였으면 왜 날 사랑해줬어.

 

 아저씨가 날 껴안으며 한참을 미안하다며 사죄했고 난 아저씨의 진심어린 손길을 붙잡았다. 아저씨는 오늘은 이만 헤어져야 한다며 다음에 왔을 때 나갈 방법을 찾자고 했다. 고마웠다. 오랜 시간동안 날 잊지않고 찾아줘서.

 

 오늘 하루의 마무리는 아저씨와의 만남으로 조금이나마 따뜻했다. 자기 전 하연언니에게도 아저씨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언니는 잘됬다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이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생길 것이다. 평범한 중학생으로 살아보는 내 소원을 이룰 기회가 생겼다.

 

 

 

 

 엄마가 내 눈 앞에서 쓰러졌다. 엄마의 피가 내 발목까지 차오르더니 점점 더 흘러나와 턱 밑까지 그리고 어느새 난 완전히 잠겼다. 아무리 헤엄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아저씨가 나를 꺼내려하지만 난 이내 엄마의 유혹에 이끌려 빨려들어간다.

 

하나

 

 

 

이제 시작이야. 아직 괴로워하긴 일러.

 

 

 

 

 

 

 

 

 

 

 

 

 

 

 

 

 

 

 

 

-9

 

 아저씨는 나를 보러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찾아와 주었다. 좁은 방에서 힘겨워하던 나의 유일한 구원자. 아저씨는 날 딸처럼 잘 챙겨주었다. 올 때마다 간식거리와 조그만 선물들을 주며 나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나도 차차 마음을 열어갔다. 엄마가 왜 아저씨를 믿고 의지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찾아와주는 아저씨에게 나도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다. 나도 아저씨에게 소중한 한 사람이 되길 바랬다. 밤마다 아저씨에게 드릴 편지를 썼다. 이곳에선 무언가를 사거나 만들 환경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선물이라곤 종이 한장 뿐이였지만, 아저씨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정말 고마워하며 날 안아주었다.

 

 행복했다.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힘을 내고 버텼다. 이제 곧 아저씨와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겠지. 오랜시간 보지 못하던 따가운 햇빛과 높은 건물들과 북적이는 사람들.... 나아가고 싶다. 아저씨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여러 꿈들과 욕심이 생긴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가끔 깜짝 놀란다.

 

 

 

'나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갈 이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였구나.'

 

 

 

 오늘도 아저씨가 찾아왔다. 아저씨는 나와 한참 이야기하다 피곤한지 방 안에 누웠다. 나는 아저씨가 이 곳에 너무 오래 머무는 거 아닌가 걱정스런 마음에 물었다.

 

"아저씨, 이렇게 오래 있어도 되는거예요? 엄마가 눈치채면 어쩌죠?"

 

"걱정마. 아저씨가 오늘은 조금 오래있겠다고 말해놨으니깐. 걱정말고 조금 쉬고 있어. 많이 힘들텐데."

 

 나는 아저씨의 대답에 안심하고 잠시 쉬기로 했다. 아저씨가 가져다 준 음식들을 먹었더니 졸음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몸이 따뜻해지면서 스르륵 눈이 감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귓가에 아저씨의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넘어왔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데리고 갈테니깐. 지 엄마 닮아서 예쁘장하니. 단순해서 적당히 꼬시니깐 넘어오더라고. 멍청한 계집애들. 지 엄마를 우리가 죽인 걸 알면 난리나겠지. 뭐 그래봤자지만. 음식에 약 타놔서 지금 자빠져 잔다. 사진이라도 찍어 보내줄까? 쓸만 해. "

 

'누굴 말하는거지?'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만 아니길 빌었다. 애써 아니라고 변명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애초에 나같이 쓸모없는 애한테 희망이 있을리가. 이젠 정말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아저씨의 웃음소리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멍청하게 진심으로 날 도와줄 사람이라 생각했다. 날 딸처럼 생각해서 예뻐해주는 건줄 알았다. 모두 나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무심한 하늘아. 그냥 데려가. 더이상 못하겠어.'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한다. 자연스럽게 이 방에서 빠져나가야한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다. 난 천천히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마치 방금 깨어난것처럼. 아저씨는 일어난 날 보더니 잘 잤냐며 웃어 보였다. 저 웃음조차 모두 가짜였다니. 세상은 정말 잔인하다. 모든것을 적으로 만드는 잔인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아저씨의 눈을 보니 그냥 모른 척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심하게 보이겠지만 어차피 여기서 지내나 아저씨를 따라가나 죽을 만큼 괴로운 건 똑같은데 뭐.

 

아저씨는 불안해하는 날 유심히 살폈다. 혹시나 전화를 들었다는 사실을 눈치챈걸까? 아저씨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눈을 돌렸다.

 

"땀이 왜 이렇게 많이 났어. 꿈을 꿨니?"

 

"그냥 좀.. 악몽을 꿨더니. 피곤했는지 조금 힘드네요.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는게 어떨까요?"

 

아저씨는 알았다며 내일 또 오겠다고 했다.

 

'아니요, 아저씨. 다신 제 눈 앞에 나타나지 말아주세요. 멍청한 전 아저씨의 가식적인 연기에 자꾸만 흔들리고 있거든요.'

 

 

 

 

 아저씨가 날 쫒아온다. 절대 잡히면 안돼. 더 빨리 달려, !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저씨가 움직이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날 보며 웃는다. 걱정하지말라며.

 

꼭 꼭 숨어 유린아. 아저씨가 찾아서 예뻐해줄께. 아저씨 믿지?

 

아저씨랑 같이 가자.

 

일단 아저씨에게 잡히지 않으려 눈 앞에 보이는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예쁜 꼬마아가씨 어디로 숨으셨나? "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숨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있는 힘껏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다. 추운 날씨에 꽁꽁 얼었던 발이 아려오고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 창백해져가고 있다. 호흡이 점점 흐려진다. 헝크러진 머리 사이로 내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였다. 숨어있는 장롱 근처에 그 아저씨가 다가와있었다.

 

이제 끝났구나. 바로 앞의 상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열때마다 웃음소리를 흘린다.

 

"여기 있나? 아니면 여기있으려나?"

 

 소름이 끼쳐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숨 쉬는 것 조차 버거워졌다. 아저씨가 장롱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저씨의 큰 손이 문 손잡이를 감쌌다. 난 문을 본 채로 아저씨를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 나 아저씨 따라갈께요. 그러니깐 문 열지 마세요."

 

 주머니에 손님들이 버리고 갔던 라이터가 있었다. 손에 라이터를 꼭 쥐고 숨을 한 번 천천히 내쉬었다. 라이터의 불이 켜지고 장롱에 불을 붙였다. 날 기다리던 아저씨가 장롱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꺼보려 애를 쓰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엄마, 우리 곧 만날 수 있겠다. 이젠 다 용서할께. 다시는 나 버리지 마. 사랑해.'

 

 

 

 이대로 정말 엄마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불이 내뿜는 연기에 숨이 막혀오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거의 눈이 감겨질 쯤 공기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었다는 신호이다.

 

 

 

 

 

 

 

꿈에서 깨어날 시간.

 

 

 

 

 

 

 

 

 

 

 

 

 

 

 

 

 

 

 

 

-10

 

이젠 뭘 해야하는거지? 더이상 억지로 버티고 싶지 않았다.

 

'살려고 발버둥칠 힘을 잃었어요. 엄마'

 

 하연 언니에게 아저씨의 거짓말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어디서 부터 설명해야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결국 언니가 아저씨와는 어떠냐고 묻자 잘 지낸다며 기쁘다고 말했다. 언니는 내가 조만간 아저씨와 이곳에서 나갈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자며 펑펑 울었다.

 

"유린아, 언니 잊으면 안돼. 나가면 씩씩하게 잘 지내고."

 

"고마워, 언니... 울지마.."

 

 언니가 울자 나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언니랑 한 약속 못지킬 것 같아. 미안해. 다음 생엔 우리 행복하게 만나자. 이런 곳에서 힘들어하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같이 쇼핑 하고, 수다도 떨고. 그렇게 평범한 여학생들처럼 놀자. 언니 고마웠어.

 

 이젠 지쳐서 다시 잠에 들고 싶었다. 충분히 쉬지 못하였다. 이대로는 아저씨의 얼굴을 다시 보며 모르는 척 웃을 자신이 없었다.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 요즘 잠을 잘 못잤더니 피곤해서 그런데 수면제 좀 주실 수 있어요?"

 

"우리 예쁜이가 어쩐지 피부가 거칠어보이더라. 알았으니 일 끝나고 줄께. 그리고 요즘 널 계속 찾아오는 손님있지? 그 손님한테 잘해드려. 단골손님은 아름다움의 필수 요소지. 알겠지, 예쁜이?"

 

 아저씨가 찾아왔다. 오늘도 간식들도 챙겨다 주었지만 속이 안좋다며 먹지 않았다. 아저씨는 조만간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어떤 준비를 말하는걸까?

 날 팔아넘길 계획을 세우며 즐거워할 아저씨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왜 나한테 이렇게 다정한걸까? 눈빛하나 변하지 않고 연기하는 아저씨가 자꾸만 진심이라고 믿고싶었다. 지금 당장이라고 따라 나서고 싶었다. 사랑 받지 못한 아픔이 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고 싶다. 상대가 진심이 아닐지라도 날 기억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저씨라 믿었다. 내 모든걸 내줄 만큼 사랑했다. 난 결국 누구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없는걸까? 왜 난 행복해선 안되는 걸까? 이제 다 끝났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날 이용하기 위한 가식적인 친절이였겠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나에게 살아간다는 행복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줘서.'

 

일을 마치고 엄마에게 수면제를 받았다.

 

"자기 전에 한알씩 먹으렴. 손님들은 너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사랑해주지 않아. 손님들은 냉정하고 차갑거든. 엄마는 모든 손님들에게 사랑 받고 있어. 그러니 행복해보이잖아?“

 

거짓말.’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엄마가 준 수면제 통을 베개 밑에 넣어둔 뒤 하연 언니 옆에 누웠다. 이곳에 처음올 때 가져왔던 곰인형과 함께. 언니는 일이 힘들었는지 금세 잠들었고, 다른 언니들도 한명 두명 잠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언니들이 다들 자는지 확인한 뒤 하연언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컵에 물을 가득 따랐다. 베개 밑에 있던 수면제를 꺼냈다. 다섯 알씩 계속 삼켰다. 통이 비어가고 머리는 어지러워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통에 있는 약이 다 떨어졌다.

 

 헛구역질이 나 모두 토해낼 것만 같았지만 비틀거리며 내 잠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몸이 붕뜬 듯한 기분에 웃음이 났다. 얼마만에 웃어보는건진 모르겠지만 편안해진 마음에 졸음이 쏟아졌다. 옆에서 곤히 잠든 하연언니를 다시 한번 보았다.

 

끝까지 날 속이던 아저씨, 사랑을 갈구하는 엄마, 나와 함께지내던 많은 언니들, 그리고 날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진짜 엄마.

 

 

 

 오늘도 꿈을 꾸겠지. 마지막 꿈은 악몽이 아닌 행복한 꿈이길 기도하며. 영원히 깨지않을 꿈속에 빠져든다. 곰인형을 품에 껴안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모두들 안녕.'

 


Articles

8 9 10 11 12 13 14 15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