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고양이를 좋아하나요?>- 김유헌

by 라기 posted Feb 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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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때문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모든 게 다 고양이 덕이었다.

 

***

 

   뭐였더라. 아무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후쿠오카행 비행기는 승객 대부분이 잠들어있다. 나는 이 적막한 기내에서 좌석에 앉아 떠오르지 않는 단어를 찾아 기억을 뒤져내고 있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엔 글자의 형상이 흐릿하게 스치지만, 끝내 발음해내려 해도 혀가 움직일 줄을 모른다. 사실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은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으니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저 캐릭터. 옆자리에 잠든 진희가 쥐고 있는 핸드폰 케이스에 그려진, 저 고양이의 이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답답하다. 생각나면 정말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나는 저 고양이와 관련된 지식과 단상을 천천히 더듬어 보기로 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명한 고양이 캐릭터. ‘스누피에 대적하기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했지 아마. 내가 전에 저 고양이를 만난 기억은, 엄마가 우리를 불러 이 여행을 제안했던 날. 그래, 그 때도 진희였다.

 

   하얀 얼굴의 고양이-

   그날 진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악질을 해댔다. 엄마나 내가 설득해 볼 여지도 없이 완강히 여행을 반대했다. 단지 경쟁 캐릭터가 개였기 때문에 고양이로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일러스트레이터처럼, 진희의 이유도 단순했다.

   “싫어! 엄마랑 가는 거면 모르겠는데, 왜 얘랑 둘이 다녀와야 하냐고.”

   “그러지 말고 한번만 다녀오면 안 되겠니? 이모가 모처럼 초대 해주신 건데.”

   나를 라는 말로 가리키고 있는 진희는, 사실 내 여동생이다. 진희는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일본 이모네에 혼자 가봤자 입이 안 그려진 고양이처럼 침묵하고 있을 게 뻔했다. 엄마가 같이 가면 좋겠지만 한시도 가게를 비울 수 없는 처지였다. 결국 진희와 동행해줄 사람은 일본어를 하는 나밖에 없었다. 늘 미움의 대상인 오빠와의 동행이, 진희는 견딜 수 없이 싫었던 것이다. 반면에 나는 이모네에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나있었다. 통역과 안내 역할이라도 좋았다. 최근 TV로 그 근처에 멋진 장소가 있다는 걸 안 참이었으니까. 하지만 진희가 이렇게나 반대하니, 여행은 무산될 위기였다.

   “싫다니까. 난 얘랑 정말 말로 섞기 싫다고!”

   진희는 급기야 테이블을 쾅 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서 뒤도 안 보고 현관 쪽으로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는 엄마 눈치를 살폈다. 이제 이모한테 뭐라고 말을 전해야 하나,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 난처해진 것 같아 민망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혼잣말을 뱉었다. 아쉽다. 간만에 해외여행 가보나 했는데

   “진짜 가고 싶었는데. 고양이 섬.”

   엄마의 근심어린 표정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해서 던져 본 혼잣말이었건만, 엄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내 방백은 의도치 않게 큰 역할을 했다. 나와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아 걸음을 옮기던 진희의 귀에 내 혼잣말이 닿은 순간, 빨간 리본처럼 하얀 고양이의 귀를 엮어 매듭을 지었던 것이다.

발걸음 소리가 갑자기 다시 돌아왔다.

   “. 방금 뭐라고 했어.”

   진희가 갑자기 묻자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 나한테 하는 소리야?”

   “너 말고 누가 있는데. 뭐라고 했어 방금? 고양이 섬? 전에 TV 나왔던 거기? 그게 거기 있어?”

   “. 이모네가 후쿠오카래. 바로 근처지.”

   “가면, 거기 갈 거야?”

   “?”

   “일본 가면, 거기 갈 거냐고.”

   “, 그냥 이모한테 부탁해보려고 했지.”

   지난번에 엄마와 함께 이모네에 갔을 때, 이모는 나에게 가보고 싶은 데가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고는 어색하게 웃어보이고 말았다. 그때 낯선 나라를 관광시켜주고 싶은 이모의 배려에 부응하지 못했던 기억은 내게 미안함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나는 이번에는 이모에게 부탁해서 아이노시마에 다녀 올 계획을 세웠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고양이 섬으로 소개되어 화제가 된 곳이었다. 섬마을 지천에서 귀여운 고양이들이 뒹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본 이후로 나는 버킷리스트에 아이노시마 여행을 추가했다. 나처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노시마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근데 넌 같이 안 가도 되는데.”

   …어차피 진희는 나랑 같이 다니길 싫어할 테니까.

   “같이 가.”

   “?”

   갑작스러운 상황 반전에 아직 어리둥절해 있는 엄마에게 진희는 구체적인 날짜를 묻기 시작했다. 스케줄을 메모하려 꺼내든 스마트폰의 케이스에는 귀여운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를 어지간히 좋아하나 보구나. 진희도 나처럼 방송을 보고 언젠가는 아이노시마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일본에 갈 수 있었다. 오빠를 그렇게 미워하던 스무 살 소녀의 가족사. 소녀가 그걸 극복하고 오빠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만든 힘은 엄마에 대한 동정도 오빠의 설득도 아니었다. 그저 소녀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진짜 뭐더라. 저 고양이의 이름. ‘발음으로 시작되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한참 머리를 굴리던 그때, 좌석벨트 착용 표시등에 불이 들어왔다. 곧이어 비행기가 머지않아 착륙할 것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기내의 적막했던 분위기가 서서히 활기를 띄었다. 진희도 슬며시 수면안대를 벗었다.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는 진희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았다.

   “좌석벨트 맸니?”

   “.”

   진희는 여전히 내 말을 무시했다. 물론 결국 좌석벨트를 챙겨 매기는 했다. 하지만 진희의 그 행동에는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하는 거지, 결코 네가 알려줘서 하는 건 아니야라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진희는 인천공항에서부터 줄곧 나를 미워하는 기색을 전혀 감추질 않는다. 일단은 내 옆자리에 앉아있긴 하지만, 단지 고양이천국에 가겠다는 목적이 맞아서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것일 뿐이었다. 나는 이 일방적인 미움에 이미 익숙했기에 딱히 진희를 혼내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애초에 유쾌한 분위기로 함께 여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했고, 우리는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자마자 나는 엄마한테 전달받은 주소를 확인했다. 스마트폰 지도로 이모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았다. 어디보자. 일단은 공항철도 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두리번대며 걸었다. 진희는 공항의 인파속에서도 내 뒤를 놓치지 않고 묵묵히 따라오긴 했지만, 남들 눈에 일행으로 보이기엔 애매할 정도의 거리를 계속 유지했다.

   정류장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진희도 어쩔 수 없이 내 뒤에 붙어 서야 했다. 하지만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첫 해외여행의 설렘에 젖어 정류장 안내판이나 공항 구조물 등 별 것도 아닌 사진을 신나게 찍어대느라, 오빠를 미워하는 티를 내는 것도 잠시 잊은 듯 했다. 사실 나도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만히 줄을 서 있자니 그제서야 외국에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나던 참이었다. 여행지의 설렘은 오감을 예민하게 만든다. 일본어 안내방송의 목소리나 표지판의 히라가나 등별게 다 신기하고 새로웠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온 길의 반대로 가는 인파속에서 한국말로 전화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포착되었다. 나는 외국에서 우리말을 들으니 왠지 반가워서 괜히 그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어제 오호리공원에 갔는데, 야 말도 마. 거기 쪽빠리 새끼들이 혐한 연설을 하더라니까? 조센징, 조센징 하고 악을 쓰면서 말이야. 내가 거길 지나면서 한국인인 티라도 냈으면 당장에 돌이라도 맞아 죽을 판이었어. 하여튼 개같은 쪽빠리들 정말. , 나 일본 이제 다시는 안 오려고. 테레비에선 막 연예인들 여행하는 거 보여주면서 일본이 관광 천국이라고 그러지?”

   나는 한쪽 귀를 세게 당겨지는 듯 했다. 별 생각 없이 엿들은 그 대화에서 빨간 리본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는 내내 떠오르지 않던 단어가 갑자기 뇌리에 박혔다. 아무리 애써도 생각이 나지 않던 단어. 우연히 그 단어와 비슷한 발음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 키티.

   “, 지옥이야 완전. 헬이라고 헬.”

   …키티. 맞아, 그 고양이 이름은 헬로키티였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걸 얻었는데, 기대처럼 속 시원하지는 않았다.

 

***

 

   진희가 택시를 타자고 했다. 우리는 공항전철에서 내려 가고시마 본선으로 갈아타러 가고 있는 중이었다. 방금 전까지 다른 승객들 사이에 끼어 꼼짝도 못한 채로 서 있었으니, 이제 전철을 타고 30분을 더 가야한다는 내 말을 듣고 질색할 만도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일본 택시요금이 얼마나 비싼지에 대해 조금의 과장을 섞어서 설명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진희는 역시나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에이씨, 그래도 콩나물시루 되면 안 탈거야. 그렇게 알아.”

   진희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가고시마 본선 승강장까지 묵묵히 따라왔다. 다행히 전철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역 두 개를 지날 때쯤에는 운 좋게 자리가 비기도 했다. 우리는 캐리어를 무릎 앞에 세워놓고 나란히 앉았다. 진희는 편히 이동할 수 있게 되니 기분이 나아진 듯 했다. 다시 관광객의 눈으로 돌아와 차창 밖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야 숨을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승객들의 모습을 눈에 들어왔다. 예쁜 교복을 입은 학생은 스마트폰에 빠져있고, 그 옆의 아저씨는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맨 끝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은 남자는 헤어스타일이 독특해 보여서 신기했다. 나는 맞은편 승객의 모습을 관광객의 눈으로 관찰했다. 그 옆자리에서 책을 읽는 남자의 티셔츠에는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저건, 고양이인가? ? 아니, 저건 강아지인가? 아 그래. 저건 개구나.

   그 순간

   “하여튼 개같은 쪽바리들

   공항에서 엿들었던 통화의 내용이 왜 뜬금없이 떠올랐는지. 인간의 상기능력이란 때로는 엉뚱하기도 하구나. 순간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때, 개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지옥이야 완전.”

 

   그 순간 나는 큰 잘못을 들키기라도 한 듯이 급히 눈을 피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심박이 빨라지고 숨이 조금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였다. 여고생도 아저씨도, 맞은편에 앉은 일본인이 모두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나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혹시라도 천적의 동체시력에 감지될 까봐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한국인 티가 나는 걸까? 그때였다,

   “, 우리 얼마나 더 가야돼?”

   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진희가 눈치 없이 물었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살며시 맞은편의 기색을 살피고 싶었지만,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질끈 감은 눈꺼풀 너머에서 동공으로 뿜어내는 날카로운 광선이 느껴지는 듯 했다. 나는 진희에게 앞으로 30이라는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숙인 채 급히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는 것으로 한국말을 뱉는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떨고 있었다. 돌이라도 맞아 죽을 판이었어금방이라도 사냥감을 덮치는 섬뜩한 울음소리가 돌처럼 날아와 고막을 찢을 것 같았다.

 

   “, 개새끼야!”

 

   차내에 울린 건 고양이가 아닌 진희의 목소리였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큰 고함소리였다. 나는 잠이 덜 깬 사람처럼 얼떨떨한 채로 주위를 살폈다. 맞은 편 승객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진희는 격분하며 말을 쏟아냈다.

   “너도 이제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야?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나는 서둘러 사태 파악을 했다. 진희는 내 제스처를 오해해서 화를 낸 것이었다. 내 성의 없는 대답을 나도 이제 너한테 이렇게 싫증내는 태도로 대응하겠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나보다. 차내의 모든 시선이 거센 억양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외국인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나는 사방의 승객들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대신 사과를 하는 시늉을 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미안, 오해야. 진정 좀 해 봐.”

   진희는 그제서야 주위를 의식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이미 단단히 화가 난 듯 했다. 나는 오해를 풀기위해 방금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내 스스로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정에 지쳐 졸다가 잠깐 꿈이라도 꾼 건가. 나는 해명을 포기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진희는 아직 남은 울분을 혼잣말처럼 더 쏟아냈다.

   “시발, 지가 그래도 되는 인간이긴 하냐고.”

   …그래도 되는 인간이라니. 그 말을 들은 순간에는 과연 억울함이 치미는 듯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 알았어, 미안하고,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정말로 진희는 그래도 되는 인간이고 나는 안 되는 인간이기라도 한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희가 말한 권리에 대해, 나는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었다. 그저 우리 엄마의 전 남편, 그러니까, 내 친아버지에게 십자가를 물려받았을 뿐이었다.

 

   진희가 나를 증오하기 시작한 건 12년 전, 진희가 우리 집을 나가던 날의 전날 밤이었다. 엄마와 새 아빠가 별거를 시작하면서 진희는 새 아빠와 함께 살게 된 것이었다. 엄마와 나는 진희와 마지막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평소 술을 입에도 못 대던 엄마가 과음을 하셨다. 엄마는 식탁에 엎드려 주정을 쏟아냈었다. 진희는 엄마를 안쓰럽게 생각했다. 술에 취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기로 했다. 나도 엄마의 등 뒤에 서서 그런 모녀를 지켜보았다. 우리는 그날 그렇게, 엄마에게 새겨진 무거운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내 팔자가이 애미 없이 자란 튀기 년 팔자가 너무 처량하단 말이야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들은 바가 있었다. 외할머니는 일본사람이었는데, 엄마를 낳자마자 일본으로 돌아가 버려 소식이 끊겼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어렵게 홀로 키우시다가 내가 기억도 못하는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다. 엄마는 자신의 태생을 콤플렉스로 안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더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연락이 다시 닿기 시작했었다. 엄마가 언젠가 함께 외갓집에 가자고 내게 말할 땐, 돌아갈 곳을 찾은 사람처럼 편안해 보이기도 했었다. 엄마의 씻을 수 없는 상처는 따로 있었다.

   “엄마는니 오빠 친아빠를 만나서 팔자를 망쳤어

   엄마가 극복하지 못하는 인생의 오점은 엄마의 전 남편, 그러니까 내 친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날 쯤부터 외도가 잦았다고 한다. 그러다 내가 세 살 때, 아버지는 우리 가정을 버리고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지금의 새아버지를 만나 진희를 낳은 건 그 이듬해의 일이었나 보다. 우리는 엄마가 첫 결혼이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내 친아빠가 지금의 새 아빠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게다가 엄마에게 큰 상처를 준 인물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진희는 취하신 엄마를 꼭 안아드렸다. 취한 듯이 함께 흐느끼며 엄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한 여자의 기구한 인생에 대한 연민, 그동안 알아주지 못했던 미안함. 그 모든 감정을 대표한 건 내 아빠에 대한 증오였다. 진희는 엄마의 인생사의 악역인, 오빠의 아빠에게 욕을 퍼부어드렸다. “엄마, 다 잊어. 그런 개새끼는. 진짜 쓰레기 같은 새끼.”하지만 증오의 대상은 이곳을 떠난 지 오래였다. 듣는 이 없는 욕설이 그저 허공에 맴돌았다. 그러던 중 진희의 눈은 엄마의 등 뒤에 그저 멍하니 서있던, 그 쓰레기새끼의 아들과 마주쳤다.

   “개 같은 새끼.”

   그 순간 진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욕설은 내 정확히 심장을 관통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표적을 잃고 방황하던 원망의 주인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진희는 그날부터 나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진희는 그 이후로 항상 나를 미움으로 대했다. 하지만 진희는 오빠가 자신을 똑같이 모질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그러면 안 되는 인간이라면, 그게 정해진 건 언제였을까.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였나? 아니면 아빠가 우리를 떠났을 때부터? 그건 아마도, 진희가 내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전의 우리는 사이가 좋았다. 같은 어머니,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같은 핏줄을 타고난 남매라고 믿어왔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갑자기 내 몸에만 내 아빠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날 진희의 서슬 퍼런 욕설이 내 심장을 관통한 순간부터, 증오를 받아 마땅한 인간의 혈청이 매번의 박동마다 온몸에 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등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진희의 눈치를 살피면서 걸었다. 전철에서 내리고도 10분정도를 더 걷다 보니, 마침내 이모네 집을 찾았다. 나는 명패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서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잠시 주춤했다. 전철에서 소동을 일으킨 이후로 진희의 심기가 많이 불편해보였다. 이 상태로 이모 앞에서 말다툼을 하는 추한 꼴을 보여드릴까 봐 걱정이었다. 나는 슬며시 진희를 돌아보았다.

   “뭘 봐. 여기 아니야? 안 누르고 뭐해?.”

   뭐라고 말하면 진희가 오해를 풀어줄까. 순간 나름대로 엄선한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 같다는 결론이 스쳤다. 나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희 몰래 한숨을 푹 쉬고, 초인종을 눌렀다.

   “하이, 도치라사마데스카?”

   인터폰을 받아 든 목소리가 일본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모. 저희 왔어요.”

   내가 대답하자, 철컥, 인터폰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안쪽에서부터 만들어진 발소리가 현관으로 점점 가까워지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어서와. 오랜만이구나! , 네가 진희구나.”

 

***

 

   우리는 이모를 따라 거실로 들어섰다. 이모는 우리를 테이블에 앉게 하고 잠시 주방에 들어가더니 쟁반 위에 찻주전자와 찻잔들을 올려 들고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우리에게 녹차를 따라주며 친절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지? 엄마는 많이 바쁜가 봐? 너네 외할머니 100일제 때도 못 왔었지??”

   “. 가게를 비우기가 어렵다 보니.”

   나는 가볍게 목인사를 하며 함께 찻잔을 받아들었다.

   엄마가 외할머니의 연락을 처음 받은 건 내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외할머니는 당신의 딸을 한국에 두고 떠나신 것에 대한 죄책감에 엄마의 행방을 찾아왔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결국 엄마를 찾아 편지를 보냈다고 들었다. 편지에는 미안한과 그리움을 담은 문장이 조금 서툰 한글로 번역되어 담겨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서로의 행방은 물론 주소까지 알게 된 모녀는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일본 외갓집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엄마의 별거 후 외갓집을 처음 방문했을 땐 내가 서툴게나마 통역을 해드릴 수도 있었다.

   “애완동물 키우시나?”

   우리가 주고받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어색하게 앉아있던 진희가 혼잣말처럼 말문을 열었다. 진희의 눈은 거실 한쪽 구석에 놓인 애완동물의 밥그릇을 향하고 있었다. 이모는 진희의 시선만으로 혼잣말의 의도를 알아챈 듯 했다.

   “작년에 분양받았는데, 이름은 타마라고 해. 얼마나 귀여운 지.”

   나는 이모의 말을 곧바로 진희에게 전해 주었다.

   “고양이 키우시나 봐. 이름은 타마래.”

   “고양이? 개가 아니고?”

   “타마는 일본에서 가장 전형적인 고양이 이름이야. 한국으로 치면 나비같은 거지

   다행히 여기서 진희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고양이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빛나보였다.

   “지금은 어디 있대?”

   “지금은 어디 있어요?”

   이모는 내가 진희의 말을 바로 통역해서 말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지금은 동물병원에 있어. 소파 구석에서 자는 걸 켄타가 미처 못 봐서, 타마 다리를 깔고 앉아버렸지 뭐야. 다행이 많이 다치진 않아서 금방 낫는다는 것 같긴 해. 내일 퇴원하기로 해서 데리러 가야 할 거야.”

   “저런.”

   나는 이모의 말을 바로 진희에게 통역을 해 주었다. 진희는 고양이가 지금은 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듣더니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시 이모와의 대화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켄타는요?”

   “아르바이트 하러 나갔어. 이제 올 때가 되었는데.”

   철컥, 복도 너머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왔나 보구나.”

   켄타가 현관 복도로 난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왔다.

   “왔구나, . 오랜만이네.”

   “정말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여기는 내 동생이야.”

   나는 외사촌 켄타와 인사를 나누고 진희를 소개했다. 켄타는 진희에게 인사를 하며 이모 옆자리에 와 앉았다.

   “아 참. 너희한테 보여줄 게 있었지. 그걸 어디다 두었더라.”

   이모는 무엇인가 가져올 것이 갑자기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에 달린 방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이모가 자리를 비운 동안 나와 켄타는 간단한 근황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은 여기보다 덜 덥지?”

   “. 여긴 엄청 덥네. 바다랑 가까워서 습한 것 같기도 하고.”

   “하하. 규슈 날씨가 그렇지 뭐. 형 여동생은 나랑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켄타와 나의 시선이 진희에게로 향하자, 진희는 자신에게 발언권이 넘어왔다고 느꼈나 보다. 당황한 듯 허공에 손을 저었다.

   “, 니혼고 데키마센.”

   “, 일본어를 못하는 구나. 하긴. 이모를 위해 혼자 일본어를 배운 형이 대단한 거지.”

   나는 멋쩍어서 괜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켄타가 말을 이었다.

   “사실, 엄마가 형이나 형 여동생이나 우리한테 안 좋은 감정 가지고 있을 까 봐 많이 걱정하셔. 이모는 외할머니한테 버림받으신 기억이 있는 거잖아. 형들 가족은 그 상처를 물려받은 거고. 외할머니가 생전에 이모를 찾긴 했지만, 형들은 어떻게 느낄지 몰라서. , 형 동생은 이번에 처음 보는 거니까. 나도 우리를 싫어하면 어쩌나 좀 걱정했어.”

   “아니야.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정말 그랬다. 진희의 미움은 내가 독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옆에서는 켄타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진희의 눈빛이 느껴졌다. 나에게 통역해달라는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진희의 눈빛을 애써 못 본 척 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 화제를 돌렸다.

   “얘가 너는 싫어할 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엄청 좋아하거든.”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그게 왜?”

   “네가 타마 다리 부러뜨렸다면서? 이모한테 다 들었다.”

   내 말을 들은 켄타는 웃음을 터트렸다.

   “, 그 얘기였어? ,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타마는

   “찾았다! 여기 있었네.”

   그때, 이모가 큰 소리를 내며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모의 손에는 편지봉투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오래되어 보이는, 누렇게 빛바랜 편지봉투였다.

   “이걸 너희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한국에 가져가도 좋아. 한글로 쓰여 있어서 우리는 못 읽거든.”

   “이게 뭐에요?”

   “너희 외할아버지가 쓰신 편지야. 천천히 읽어봐.”

   이모에게 받아 든 낡은 편지봉투에는,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외할머니의 이름이 한글로 적혀있었다.

 

***

 

   이모는 저녁상을 치운 뒤, 우리를 빈 방에 안내해서 짐을 풀게 했다. 외할머니가 생전에 쓰시던 방이라고 했다. 창밖은 슬슬 어두웠다. 켄타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이모는 거실에 남아 드라마를 봤다. 우리는 방 한 구석에 캐리어를 눕혀놓고 미리 이불을 폈다. 진희는 다시 이모네 가족과 분리되자마자, 나에게 참았던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

   “, 너만 얘기하지 말고 나한테도 통역 좀 해라! 엄마랑 올 때도 이랬냐?”

   나는 진희의 말에 별 대꾸도 없이 이불 정리를 했다. 엄마랑 올 땐 이러지 않았다. 그땐 엄마와 이모의 대화를 쉴 새 없이 통역하느라 오히려 내가 대화에 끼지 못하곤 했다. 나는 이번에도 진희와 이모 사이에서 통역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이번에 이모가 우리를 부른 건 진희를 보기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저녁 식탁에서 오갔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내 입으로 진희에게 들려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이모한테 받은 편지를 진희에게 건넸다.

   “너도 읽어봐.”

   진희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외할아버지의 편지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낯선 이에게 생선을 받아 문 고양이처럼, 나를 경계하듯 방 구석자리로 이동했다. 이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편지를 열어보았다. 진희는 어떤 기분으로 저 편지를 읽을까. 왠지 내가 쓴 편지를 엿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진희의 맞은편 구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편지를 읽는 진희의 표정을 읽었다. 진희의 시선은 외할아버지의 육필을 천천히 훑어 내려갔다. 그 눈동자는 우리에게 소중하게 다가올 필름 한 편을 영사기처럼 비추고 있었다.

 

   건강한가요. 나에요. 참 갑작스럽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놀라셨을 테지요. 당신이 처음 내게 다가왔던 그날처럼요. 기억하나요? 1940년의 여름날이었죠. 당신은 군산의 작은 해변에서 고양이와 함께 놀던 나에게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난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일전에 군산에 다녀왔어요. 그 해변의 모습을 한 번 더 눈에 담고 싶어서였죠. 그곳에서 우연한 계기로 50년 전 군산항에서 일하시던 분의 손자를 만났습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옛날 기록을 확인해줄 수 있냐고 그 친구에게 물어봤지요. 당시 군산항을 드나들던 당신 아버지의 연락처를 추적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워낙 오래된 기록이라 큰 기대는 걸지 않았어요. 그러나 내 사정을 들은 직원들이 고맙게도 힘을 들여 수소문을 해 준 덕분에, 지금 당신의 주소를 알 수 있었죠. 주소지가 적힌 쪽지를 쥔 채 고민도 많이 했어요. 당신께 연락을 해도 괜찮을지요. 그러나 끝내 무거운 펜을 들었습니다.

   우리 딸은 잘 있습니다. 우리 딸은, 그러니까 당신이 낳은 아이는, 이제 나이가 서른이 되었지요. 시집도 갔어요. 최근에는 축하할 일이 있었습니다. 뱃속에 아이가 들어섰어요. 나와 당신의 외손자가 생긴 거죠. 어찌나 감격스러운지요. 당신이 나의 인생에 남기고 떠난 흔적은 이리도 건강하게 커가는 중입니다.

   당신이 떠났을 때, 처음엔 쉽지 않았죠. 애미 없이 딸자식을 키운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아이를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홀아비가 되어서 돈을 벌어 아이를 먹인다는 게 힘이 좀 들었지만, 딸을 위해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순간은 따로 있었죠. 딸아이가 초등학교 때였어요. 또래아이들에게 자신의 핏줄에 대한 험한 소리를 듣고 왔더군요. 아이들이야 뭐 못된 말이 못된 줄 모르고 툭툭 던집니다. 문제는 선생이나 어른들조차 딸아이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당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 떠나야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으니까요.

   딸에게 그 기억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서 저지른 폭력을 잊지 못합니다. 잊어서는 안 되죠. 나같은 사람들이야 어린 나이에 많은 참상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만, 직접 경험이 없는 젊은 사람들도 민족감정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고, 아직 바로잡지 못한 과거가 숙제처럼 쌓여있어요. 우리가 당신의 피를 미워해야 할 책임을 유산처럼 잇고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유산은, 어떤 역사 안에 잉태될 지 선택도 없이 태어난 개인에게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더군요. 당신도 결국 그 폭력에 못 이겨 떠났다는 걸 잘 압니다. 내 아버지도 당신의 피에게 진한 미움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나는 여태 굳이 당신을 찾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딸마저 그 피해자가 되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가끔은 바보처럼 당신을 원망하기도 했답니다.

   당신이 내게 처음으로 물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때 나는 어부들이 버리고 간 잡어들을 주워서 해변의 고양이들을 먹이며 놀던 열 살짜리 소년이었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던 내지인 소녀가 돌연히 내게 다가왔어요. 그리고는 아무런 미움도 물들지 않은 목소리로 순진하게 물었죠. 너도 고양이를 좋아하니?라고요. 글쎄, 나는 뭐라고 대답했던가요. 딱히 고양이라서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했었나요? 아무튼 당신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환하게 웃어보였습니다. 눈웃음에서부터 시작한 그 미소가 당신의 입가로 퍼지던 그 순간은, 내 생에서 만난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조선인 소년과 내지인 소녀는 순수하고 애틋한 마음을 오래도 키워갔습니다. 서로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걸 확인한 것뿐이었는데 말이죠. 생각해 보니 우리의 사랑은 모든 게 고양이 덕분이었다고, 내 품에 안긴 당신이 그렇게 속삭이곤 했죠.

   위에 적었듯 나는 여태 당신을 찾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당신 생각이 나서 군산을 찾은 건, 사실 요즘 부쩍 마지막 순간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고된 인생이었어요. 몸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게 되더군요. 죽음을 앞두고 나니, 후회할 일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어떻게든 당신을 찾고 싶었어요. 말을 전해주고 싶었거든요. 이제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고요. 나는 지금도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딸아이도 그래요. 고양이는 물론, 개나 비둘기 따위의 모든 짐승을 귀여워할 줄 아는 따듯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딸아이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보고 싶어 할 겁니다. 편지를 받으신다면 부디 답장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를 떠난 것을 죄스러워 할 것 없이, 딸아이 앞에 엄마로서,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 앞에 외할머니로서 나타나 주세요. 비록 서로를 미워하는 피를 잇고 있는 우리지만, 고양이를 예뻐하는 마음처럼 미움보다 더 당연한 본성으로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오래 묵혀두었던 소망을 담아 다소 두서없는 글을 적었습니다. 부디 이 편지가 당신께 무사히 닿길 바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991년 어느 여름밤

 

   상영이 끝난 영화관을 뜨지 못하는 사람처럼, 진희는 편지를 다 읽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굳어있었다. 나는 왠지 모를 머쓱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을 마시러 간다는 핑계로 방을 나가 부엌을 향했다. 거실에서는 이모가 아직도 TV를 보고 있었다. 이모는 주방으로 향하는 내게 곁눈질로 보며 물었다.

   “진희한테 보여줬니?”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춰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모는 조용히 미소를 짓더니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몸을 돌렸다. 싱크대 앞으로 가서 아무 컵이나 집어 물을 따라 마셨다. 그때 주방 찬장에는 내 시선을 사로잡는 물건이 있었다. 나는 컵을 헹궈서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고 주방을 나오며 이모에게 물었다.

   “찬장에 개껌이 있네요. 개도 키우세요?”

   이모는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오해했나 보구나. 타마는 고양이가 아니라 개야. 하긴, 보통 개한테 타마라는 이름은 안 붙이지?

 

***

 

   이모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신구항(新宮-). 그곳에서 우리는 아이노시마로 들어가는 여객선을 탔다.

   “여긴 고양이 말고도 볼거리가 꽤 많은걸.”

   이모가 선내에 비치되어 있던 팸플릿을 열어보며 말했다.

   “선착장에서 좀 떨어진 해변에는 오래된 돌무덤같은 것도 있대. 그쪽으로도 한번 가 볼까.”

   “. 같이 한번 둘러 봐요. 데려다 주셔서 고마워요 이모.”

   감사인사를 전하자 이모는 너그럽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판에 나가 서 있는 진희를 돌아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네 동생 좀 봐라. 쟤는 어지간히 고양이가 좋은가 봐. 표정 좀 봐.”

   이모의 말에 나도 진희의 모습을 살폈다. 펜스에 몸을 기대며 먼 바다를 응시하는 진희의 목에는 카메라가 걸려있었다.

   “귀여워라. 고양이 사진을 잔뜩 찍겠다는 결심에 찬 걸까?”

   이모의 말처럼 진희는 정말로 뭔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게 정말 고양이 사진을 찍겠다는 귀여운 결심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나는 이모의 장단에 맞춰 웃으면서 진희를 바라보았다. 그때 진희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당황해서 소심하게 웃음의 의도를 오해하지 말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러나 다행히 진희가 불쾌한 기색을 표하지는 않았다. 진희는 물결을 보며 결심에 찼던 평온한 눈빛을 그대로 옮겨와 내 시선에 맞추고 있었다. 이모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와 진희가 기대했던 대로 섬에는 길고양이가 많았다. 부둣가 마을의 곳곳에는 내가 TV로 봤던 풍경들이 숨어있었다. 나와 진희는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섬 주변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니 마을에서 멀어지면서 점점 고양이의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후쿠오카 섬 바닷가의 풍경도 제법 볼 만한 것이었다.

   섬 한 바퀴를 도는 관광코스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보니 인적이 드문 자갈 해변을 만났다. 이모가 팸플릿에서 본 돌무덤이 있는 해변이었다. 물결이 자갈 사이를 구르는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모와 함께 해변에 세워진 돌무덤들을 구경했다. 그중에는 작은 안내판이 세워져있는 무덤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뜻밖에 친숙한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어디보자. ‘조선통신사 관련 묘지’?”

   이모는 안내판을 조용히 읽어내려갔다.

   “쿠로다가문서에 따르면 1719724일에 제9차 조선통신사가 내일하던 차에 해난사고를 당해 6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흐음. 사신들의 시신을 이곳 주민들이 수습한 거구나.”

   이모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네요.”

   나는 돌무덤을 관찰하는 이모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언젠가 맞아본 적 있는 듯한 바람이었다. 나는 잠시 묘한 감상에 잠겼다. 여태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될 때, 나는 혈관에 흐르는 피의 성분이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때,

   찰칵.

   나는 카메라 셔터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진희였다. 돌무덤 앞에 선 나와 이모의 뒷모습을 찍고 있었다. 이모는 진희를 보며 마냥 귀엽다는 듯 웃었다.

   “여긴 진희한테는 조금 지루하겠구나. 고양이 사진 찍으러 돌아가겠니?”

   이모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진희 눈치가 보였다. 나는 이모의 말을 통역하듯 진희에게 말했다.

   “, 미안. 너무 시간 끌었나? 마을 쪽으로 돌아갈래? 너 좋아하는 고양이나 보러.”

   “아니야.”

   진희는 의외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빠도

   그리고는 조금 어색한 듯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오빠도 고양이 좋아하잖아.”

   진희는 정말 오랜만에 내게 웃어보였다. 그 미소에서 뿜어져나온 마치 60년 된 필름처럼 애틋한 향기가 은은한 바닷바람을 타고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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