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그렇게 그 나의 밤은 끝이 나질 않았다

by Raid posted Feb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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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날의 밤은 끝이 나질 않았다
 
 
모든 것이 화사한 공간. 그 공간에 조금한 오두막이 있었다. 시냇물이 흐르고 작은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예쁜 공간. 내리쬐는 햇빛조차 숨쉬기 힘든 화사함을 보이는 곳. 그 곳에 한 할머니가 서있었다. 할머니는 온화한 주름이 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과 안식을 가지게 했다. 할머니는 오두막에서 나와 문 옆 작은 정원에 몸을 멈추고는 저 멀리 보이는 설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인기척을 느낀 할머니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연한 노란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목소리를 냈다. 연기는 흔들리며 구체 상태를 유지하려는 듯 보였다.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설산에서 노란색 연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네가 틀린 것 같은데?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려 하지 마...”


할머니는 조금씩 사라져 가는 노란 연기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연기가 사라지자 정원의 꽃이 하나 피어났다. 할머니는 다시 설산으로 눈길을 돌렸다. 설산에는 눈폭풍이 몰아치는지 먹구름과 번개가 내리쳤다.


이번에는 누가 찾아오나 어디 볼까?”


할머니가 홓홓 하며 웃으시며 정원 조금 위에 조금한 먹구름을 만들어 물을 주었다. 설산의 거대한 먹구름에서 조금한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으로 희미했던 연기가 엄청난 에너지와 살기를 뿜으며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구름에 구멍이 생기자 엄청난 힘을 내뿜던 연기는 급격이 쪼그라들며 크기를 줄였고 구멍 난 먹구름에 문을 닫듯이 옆에 있던 먹구름을 밀어 구멍을 매웠다.


할머니는 다시 오두막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녀는 다시 홓홓 웃으며 세차게 몰아치는 설산을 바라보았고, 뒤짐을 쥐고 있던 손을 풀어 이리 오너라하는 듯 산 쪽으로 검지를 까딱 하자 먹구름 안에 있던 연기가 툭 나오더니 엄청난 속도로 그녀에게 빨려 들어왔다. 연기가 그녀 근처로 다가오자 그녀는 퉁겼던 손가락의 손을 천천히 돌려 손바닥을 보였고 날아오던 연기는 그녀의 몇 미터 앞에서 급정지를 했다.


그만하면 됐어. 연기 너도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잖아, 시련은 충분히 겪었다고 본다.”


할머니는 급 냉소한 어조로 연기를 밀어붙였다. 그러자 연기는 쭈글하며 유리구슬 만하게 쪼그라들었고 뿃 하는 소리를 내며 소멸했다. 연기가 사라지자 할머니는 다시 홓홓 하며 웃으셨다. 오두막의 문을 열고 다시 한 번 설산을 바라보았다.


힘들께야... 그래도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서 오는 거겠지? 소년이여...”


할머니는 오두막에 들어갔다. 그녀가 오두막의 문을 닫고 불을 끄자 멀리서부터 밝음이 끌려오더니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밝음이 들어가 버리자 자신의 밝음을 뽐내던 다른 것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곧 하늘을 채울 만큼 엄청난 숫자가 되었다.



 별이었다.


이곳의 밤은 매우 기니까, 조금은 쉬는 게 좋을 거야. 이제 더욱 힘들 수 도 있으니까.”


할머니는 탁자 위에 놓인 램프에 불을 붙이며 자리에 앉았다. 반대편 자리에 연기가 소년의 모습으로 바뀌며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는 안경을 올리는 시늉으로 없던 안경을 만들고는 고개를 멀리 빼 손에 들린 작은 책을 보았다.


걱정일랑 말아라, 이곳까지 올 사람이면 포기는 안할 테니까 말이야.”

별로 걱정...”

이번 주에만 2만명 가까이 죽었어. 가지가지 하는구나. 별로 걱정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과학의 발전이니 머니 하면서 수명은 늘어나는데 돼지는 숫자는 줄어들질 않어, 이게 먼 개똥같은 소리냐? 에구구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책을 양손으로 소리 나게 덮어 소멸시켜 버리고는 안경을 벗어 접으며 연기를 바라보았다.


뭐가 걱정이냐. 여긴 천국이잖아. 이곳에 오는 게 쉽다면 그게 천국이겠니?”


할머니는 다시 홓홓 웃어 보였다. 가만히 있던 연기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14년 만이다.”

?”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연기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네가 여기 온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고. 그것도 처음으로.. 친구라도 왔니? 미소가 사라지질 않네...”


연기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할머니는 지랄하네.’ 하는 말을 중얼 거렸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창문으로 걸어가 설산을 바라보았다. 큰 보름달을 배경으로 하는 설산은 장관을 이루었다. 고요하고 차분한 밤이었다.


조금은 쉬어라. 잠은 안자도 쉬기는 해야지.”


할머니는 조용히 앉아 있는 연기에게 말을 걸었다. 연기는 끄덕이며 연기로 변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가 창문에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톡톡 소리와 함께 창문 뒤로 보이는 설산이 조금 흔들렸다. 정원 앞에 켜져 있는 작은 가로등 아래로 연기가 획 지나갔다. 할머니는 다시 홓홓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는 다시 자리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뜨개질을 소환했다. 뜨개질의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옆에 뭉쳐있는 목도리의 크기와 길이는 어마어마했다. 한참은 뜨개질을 하던 할머니는 탁자 한편으로 잘 정리 된 찻잔중 제일 큰 것을 빼서는 램프 옆에 있던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마셨다. 뜨개질과 차 마시기를 반복하던 할머니는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나 뜨개질을 들고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흔들의자는 삐걱 삐걱 소리는 내며 앞뒤로 흔들렸고 그 박자에 맞춰 할머니는 다시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흥겹진 않았지만 차분한 소리였고 한편으로는 슬픈, 한편으로는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노래를 다 부르자 할머니는 뜨개질을 없애고는 자세를 잡고 흔들의자에서 잠을 청했다.


할머니.. 저기 할머니!”


밖은 아직 어두웠다.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연기가 돌아온 느낌도 없었다. 할머니는 고요한 집 안을 살펴보았다. 꺼진 램프, 그 옆에 주전자, 흔들리는 흔들의자, 작은 정원을 비추는 작은 가로등, 그 옆에 서있는 소년. 모든 것은 평소와 같...


...? 어떻게...”

저기 할머니 너무 추워서 그런데 따뜻한 입을 옷이나 목도리 같은 것들 있나요?”


할머니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작은 창문을 톡톡 손가락으로 치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 하며 오두막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소년은 두 손은 비비며 할머니에게 다시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설마 저 설산은 넘어왔다는 거 아니지?”

맞는데요, 눈떠보니까 이상한 초원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누워있었고, 모두들 각자 만날 사람이 있었는지 각자 모두 갈 길을 가더라구요.”

너는?”

저는 머 아는 사람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으니 천천히 초원 구경도 하고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다니다가 오두막이라는 푯말을 보고 무작정 길을 따라서 걷었어요.”

?”

굳이 이유가 있나요?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죠. 그렇게 오다보니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고 설산으로 통하더라구요. ‘이란 것이 원래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아무리 비바람이 불어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에요. 우리는 인간이니까. 근데 그 길은 너무 깨끗했어요. 눈으로 말이죠. 그래서 그냥 걸어와 봤죠.”


소년은 다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탁자 의자에 앉았다. 할머니는 주전자를 들고 잘 정리된 잔들 중 가장 큰 잔들 들고는 가득 따라주고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소년이 받은 잔에서는 뜨거운 차가 담겼는지 모락모락 연기와 향긋한 향도 올라왔다. 소년은 홀짝 내용물을 마시며 몸을 녹였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하던 일이 하던 일이라 원만한 정도의 추위에는 추위도 안타는데 이번에는 춥더라구요. 어휴.”

당연히 이번에는 춥겠지. 반팔 반바지인데 전에는 정확한 복장을 입었으니 안 추웠고.”


소년은 코를 조금 들이마시더니 자신의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원래 전부 입고 있었거든요? 긴팔에 긴 바지, 따뜻한 잠바까지. 근데 오다가 들린 동굴에서 곰은 만났는데 어미 곰은 거의 쓰러져가고 새끼들은 배가 고픈지 낑낑 하더라구요. 그래서 잠바하고 가방으로 새끼들 들어갈 따뜻한 공간 만들고 곰들 먹을 먹이 주니까 머. 그냥 그렇게 하고 나어요. 근처에 불빛도 보였고 깜박 깜박 하는 것도 보여서 무작정 왔죠.”


할머니는 창문으로 설산을 바라보았다. 설산은 죽은 듯 고요했다. 커다랬던 달이 설산과 멀어져 갔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램프의 뚜껑을 닫고 오두막의 불을 켰다. 할머니가 불을 켜자 주변으로 순식간에 밝음이 펴져나갔다. 정원에 꽃들은 순식간에 활짝 폈고 어두웠던 하늘은 밝아지면서 반짝이던 모든 별들을 내몰았다. 멀어졌던 달은 순식간에 불타오르며 태양이 되었다.


아침이네요. 보통 지금은 자고 있는데.. 눈뜨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네요.”

지금은 졸리지 않고?”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년은 차를 다 마셨는지 스스로 주전자에서 차를 따랐다.


살면서 한 번도 편히 잠을 잤었던 경험이 없던 것 같은데, 항상 일 때문에 대기 상태였으니 한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전신에 옷을 미리 입은 채로 잠을 청했으니까요.”


소년은 곰곰이 생각해보듯 기억을 짚으며 설명했다.


그럼 지금 하고 싶은 것은 편하게 잠자고 싶은 건가?”


할머니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면 잠을 자는 것보다 평생 못해본 여가생활을 해보고 싶네요. 돈 돈 돈 돈 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든요.”


소년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설산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여기는 사고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 그리고 무전기도요.”


할머니가 옆에 놓인 잔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잔을 집더니 주전자로 차를 따라 마셨다. 할머니는 한번 차의 맛을 음미하고는 다시 소년에게 물었다.


왜 무전기는?”

무전기가 없으니 응급 상황 보고가 안 들어오니까요. 편히 쉬는 거죠. 근데 지금 정신은 편한데 몸이 자꾸 움찔 거려요. 평소에 하던 일을 몸은 기억하고 있는 거겠죠?”


소년의 눈은 아득한 기억으로 떨어진 듯 초점이 흐려졌다. 할머니는 설산을 보며 차를 마셨다.


그래도 여기는 편하지?”

“...”


할머니의 물음에 소년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아직도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소년은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 식은 차를 들이켰다.


할머니는 정원에 나가있었고 꽃들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설산에 눈 폭풍이 불었다. 지독한 눈 폭풍이었다. 소년은 하품을 하며 자세를 편하게 고쳤다. 할머니가 오두막 문으로 빼꼼히 머리를 들이밀고는 손가락을 까딱 까딱 하며 소년을 불렀다.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오두막을 나섰다.


소년이 오두막을 나서자 옆에 잘 가꾸어진 정원이 보였다. 정원 앞에는 작은 의자가 두 개 있었는데 소년은 그곳에 앉았다. 할머니는 소년이 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는 오두막의 불을 껐다. 설산 넘어서 보였던 밝은 풍경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불타오르던 태양은 식어 추한 겉모습만 보이게 되었다. 설산을 넘어서 밝음이 오두막으로 끌려 왔다.


이건?!”

어때? 볼만하지? 내가 이래서 죽지 못한다니까.”


할머니는 홓홓 웃으며 밝음이 끌려오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쁘네요. 그럼 이제 하늘에 별을 뿌리시나요?”


소년이 물었다. 할머니는 다시 홓홓 웃으시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세상에는 각자의 밝음이 존재하고 서로 비추며 살아간다. 내가 보여주던 거대한 밝음이 사라지면 서로의 밝음을 뽐내려해. 다른 신들이 각자의 힘을 자랑하는 거지. 나는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러면 서로 경쟁을 하지.”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씩 나타나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다시 기억속에 잠긴 듯 한참을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요.”

뭐가 말이냐?”


한참을 가만히 있던 소년이 할머니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할머니는 반짝이는 밝은 것들 중 가장 나약한 것을 머리카락 뽑듯 공중에서 뽑아내자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사람이요. 생각을 하잖아요. 동물들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인간들의 생각은요 거의 비슷하거든요. 누구나 무의식 적으로 자신의 편안과 안식이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무리 아닌 척 하고 살아도 말이죠.”


소년은 할머니가 했던 것처럼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뽑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하늘은 잠잠했다.


저는 그래서 남들이 항상 무서웠어요. 위험에 처한 상황에 여러 명이 있다면 서로 구해달라고 아우성이니까요. 물론 가끔 아무 미련 없이 깔끔하게 남에게 도움을 먼저 주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사람은... 아시죠?”


할머니는 조용히 소년이 뽑으려던 별을 한손으로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너는 많은 사람들을 구했잖아.”

그리고 놓친 사람도 많죠.”


할머니는 소년의 말을 듣고 홓홓 웃으셨다. 그러더니 별을 움켜쥔 손을 펴 소년에게 내밀었다.


그것보다 구한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말했잖아. 나름의 밝기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너의 빛은 충분히 밝았어. 밝으니 사람들이 너의 보호를 받으려 하는 것이고.”


소년은 두 손을 할머니 손 아래로 모았다. 할머니는 모았던 모래를 뿌리듯 천천히 소년의 손위로 반짝이는 별 가루를 뿌려주었다. 소년의 손에 떨어진 별 가루는 섬광을 내뿜다가 서서히 식었다. 몇 분이 지나자 불빛을 천천히 사그라지고 약간의 온기만이 느껴졌다. 하지만 소년은 손을 털어버리기는커녕 다시 주먹을 꽉 쥐며 별 가루를 뭉치려 했다.


이거 힘드네요. 죽으면 안되는데...”


소년은 별을 뭉치고는 할머니에게 건네었다. 할머니는 건네받은 별을 뒤 정원에 살포시 찔러 넣었다. 소년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왜?”


할머니는 소년을 보며 물었다. 소년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전에 못 구한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이런 아름다운 밤 이었거든요. 평생 잊지 못한 단 한사람이요... 갑자기 생각나서요,”

언제?”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소년은 그제야 눈물을 조금 쓱 닦고는 할머니를 따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아직 이 일을 하지 않을 때였어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 마음을 먹었죠. ‘죽자라고.”


소년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협곡에 갔어요. 낮에는 가이드나 경비원들이 서 있어 안전한데 밤이 되면 기온도 그렇고 위험한 곤충, 동물들이 많아서 접근이 제한되었죠. 왠일인지 그날은 아무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죽었어?”

그렇게 바로 죽나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협곡에 딱 들어갔죠. 평생을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저로써는 그날 본 밤하늘은 정말... ... 머랄까... 신기했어요. 처음 올려다봤거든요. 하늘이란걸.”


할머니는 큰 컵에 차를 따르고는 소년에게 건네었다.


들어가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제일 높은 돌산 꼭대기에 앉아 하늘만 보고 있을 정도였어요. 왜 들어왔는지도 까먹고 그냥 반짝이는 하늘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죠.”


소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늘은 검고 넓은데, 그 검은 도화지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그리고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큰 달까지. 앞 시야로는 저~~ 끝에 보이는 지평선이 전부고, 세차게 몰아치는 칼 같은 바람.”


안 죽었구만.”


할머니는 잔에 다시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못 죽겠더라구요. 죽음이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그때 더욱 살아가면 뭔가 기쁜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 .. 그런 거 있잖아요..”

몰라 나는 단순히 늙어 빠진 할망구라구.”


소년은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기쁜 일 있잖아요. 그때 전에는 그냥 돈 몇 푼 더 받는 것이 행복이었는데, 물론 그때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요. 그 아찔한 풍경을 보고 서서히 일어나서 비틀 비틀 내려가는데 협곡 아래서 떨어지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더라구요.”


할머니는 움찔하며 소년을 올려다 바라보다가 멀리 설산을 바라본다.


한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화를 내며 떨어진 아이를 보더라구요. 제가 부모에게 버림받을 때 저랬나 싶고, 아이가 불쌍해서 후다닥 내려갔죠. 두 어른들은 온데간데없고 밑에 아이만 낭떠러지 틈으로 난 나뭇가지를 잡고 버티고 있고 온몸에 맞은 흔적 때문에 전부 멍 자국. 아이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여자 아이인걸 몰랐어요.”


소년은 자세를 편하게 바꾸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두막 창문 밖으로 눈 폭풍이 몰아치는 설산이 보였다.


아이를 끌어 올리니 꽤 부유한 집안 자식 같은데, 하튼 펑펑 울더라구요. 처음에는 둘다 조용히 별을 봤어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러다가 그 얘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말하더라구요. 저도 그때 조금 슬펐어요. 저는 부모가 없는 게 당연했고 얼굴도 모르니까. 근데 저랑은 다르게 쓸모없어 버린 그런 느낌이잖아요?”

이름이 뭔데?”


할머니는 설산에서 눈길을 돌려 반으로 갈라져 있는 달을 바라보았다.


비밀이에요. 어디 가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이름이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소년은 조금 피식 웃었다.


제가 살아오면서 뭐 그렇게 오래 산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이 말하는 말 중 거짓과 진실인 것들이 구분이 되더라구요. 거짓으로 한말과 진심으로 한 말은 큰 차이가 있어요. 선의의 거짓말은 빼구요. 그건 구분이 안가더라구요.”


하여튼 그 얘는 진심이었어요. 그렇게 그 얘는 펑펑 울고 저는 그 옆에서 열심히 얘를 달랬죠. 토닥토닥이 짱이죠. 달래는 건. 그렇게 긴긴 울음이 그치고 추웠는지 슬펐는지 서로 훌쩍거리며 안고 토닥토닥 하는데 조금 이상했어요. 제가 마자시를 배울 때 남자 여자를 따로 배우거든요? 체형이 달라서 근육 골격이 전부 달라거 따로 배우는데 그 골격은 여자 골격이였어요. 그때 알았죠. 여잔거...”


소년의 귀가 빨개졌다. 할머니는 연기를 떠올리며 지랄들 하네라며 중얼거렸다. 소년을 듣지 못했는지 말을 이어갔다.


저보다 1살 높더라구요. 처음으로 제가 거짓말 했었죠. 제가 1살 많다구... 히힛. 머 그 후로 쭉 같이 살았어요. 가끔씩 돌산에 올라가 별자리를 외우기도 하고 했던 것들을 말하기도 했죠. 2,3 년쯤 이렇게 지내다가 운명인지 뭔지의 장난으로 큰 사고가 났어요. 여기가 천국이면 유명할 수도 있는데요. 병원에서 불이나 40명 가까이 죽은 그 사고요.”


할머니는 다시 움찔 하며 찻잔에 비춘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때 둘은 병원 근처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또 돈은 기가 막히게 잘 벌어오거든요. 히힛. 이것저것 사면서 쇼핑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가는 거에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 불구경이잖아요. 일단 저희도 갔죠. 사람들 틈에 휩쓸려 간 거지만.”


소년은 차를 전부 마시고는 주전자에서 차를 따랐다.


4층 정도의 건물이 전부 불에 타는데 소방대원들은 장비도 없이 쩔쩔매고 중간 중간마다 생존자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는데 아수라장 그 자체였죠. 결국 둘은 이번 생 여기서 죽자 라며 자치소방서로 가서 장비 챙기고 뜯어 말리는데 그냥 건물로 뛰어 들어갔어요. 뒤에서 소방대원들도 들어오고요. 4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건물로 투입 된 거죠.”

아 말 안했는데 둘이 웬만한 위험한 일은 다 해봐서 동네에서도 유명했어요. 자치경찰, 자치 소방 뭐 등등 봉사활동은 거의 다 나가고요.”

“1층에서 122층에서 53층에서 24층에서 8명 혼자 구한 숫자에요. 이걸로 쓸데없는 훈장까지 받았어요. 쓸데없는... 그때 내려진 명령은 단 한 가지였어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만 구출할 것. 최우선은 자신의 목숨이다. 도움을 청한 사람만 구해라 너의 양 어깨에 살아있는 사람을 끼고 오란 말이다! 가자!’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랬어요.”


소년은 한숨을 쉬며 숨을 골랐다. 할머니는 한참 가만히 잔을 내려 보다가 다시 설산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2층에 남아있는 마지막 사람을 들쳐 메고 나가는데 무전기로 ‘473- 473 도움 바란다.’ 하면서 무전이 왔어요. 저는 마지막 사람을 밖으로 끌고나오고 마지막 지시를 받았죠. ‘가서 동료를 구하라!’ 구요. 엘리트 대원 7명이 장비 둘러메고 4층으로 올라가 수색을 펼쳤어요. 어린이 환자실에 있더라구요. 모든 장비를 꼬마 아이에게 건네주고 온몸으로 화염과 싸우는....”


소년이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억 속에 빠졌다. 하지만 금세 입을 열었다.


상황은 보니까 전혀 좋지 않았어요. 산소 농도는 최저로 떨어져 산소마스크 없이 숨도 못 쉬는 상황에서 민소매하나 걸치고는 화염을 버티고 있었죠. 다가가보니 둘 다 화상은 기본이고 아이는 이미 눈에 초점도 흐릿하고 숨도 재대로 못 쉬더라구요.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조차 숨쉬기가 힘든데 안 쓰면... 그렇게 제가 마스크를 벗어주고 아이를 엎고 갈 준비를 했어요.”

민소매인데 불길을 뚫고 지나가려면. 불가능 이죠. 웃옷은 제가 벗어서 주고 아이는 그대로 꽁꽁 싸매서 불길로 들어갔어요. 4층이라 불길은 없어도 연기가 엄청났죠. 뜨거운 검은 연기... 서로 2초간 마스크를 돌려쓰며 지시대로 이동을 했죠. 그나마 작업이 되어있던 장소들로 빠져나가는데 아이는 완전히 기절해서 그나마 옹알거렸던 살려주세요.’ 도 못 하더라구요.”


소년은 설산을 바라보았다.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이에게만 온 신경이 쏠려있는데 뒤에서 쓰러지는 소리가 났어요. 산소도 없는 곳에서 연기를 2분동안 마셨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보니 허벅지에는 피가 흐르다가 말라서 빡빡하게 굳어있고 왼쪽 팔에는 화상이 심해서 옷도 못 입고 있었어요. 무전기는 먹통이지, 건물은 무너질라하지, 아이는 정신을 잃었지 정말 미쳐버리겠더라구요.”

그때 처음 들었어요. ‘아이를 먼저 케어하고, 그다음 나를 구하러 달려와 알겠지? 꼭 구하러 와야 해!’ 타인을 위한 희생 저는 그게 거짓말인걸 알았어요. 말했잖아요. 거짓과 진실을 알 수 있다고 그때의 말은 거짓말 이었어요. 울고 있었거든요. 처음 만난 그때처럼.”


소년이 조금 훌쩍 거렸다. 그러면서 크음 하면서 목소리도 가다듬었다.


그때처럼 울고 있었지만 미소를 띠고 말했어요. 대략 3분쯤 남아 있었죠. 산소나 건물의 시간이. 밖으로 나오자 아이와 저에게 엄청난 손들이 다가왔어요. 기절한 아이를 안고 급하게 구급차로 들어가는 119대원들, 나의 상태를 보기위해 다가오는 팀원들 그렇게 모든 손을 뿌리치고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엄청 말리더라구요.”


소년은 흐르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찍어냈다.


처음 이었어요. 신에게 기도 했던 게. 살려달라고. 내가 아닌 타인을 살려다라고. 건물이 제가 팀원들에게 잡히고 몇 초 뒤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더라구요. 그때는 정말 시간이 천천히 흘렀던 것 같아요. 모든 건물 잔해들이 떨어지는데, 떨어지는 모든 것들의 크기 모양 심지에 개수까지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그 사이로 보였어요. 방긋 웃고 있는 모습 재가 건넸던 산소마스크를 쓰고 눈물을 흘리고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구하지 못한...”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눈을 꼭 감았다. 눈물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또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죠. 나에게서 모든 것들을 뺏어가는구나. 그런 운명이구나. 외톨이일 운명이구나. 그런 인생이구나.”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혼자인 집안, 혼자인 식탁, 혼자인 쇼핑, 혼자인 산책, 혼자인...”


소년은 말을 잊지 못했다. 소년은 할머니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탁자 아래로 만큼 처박고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멈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럼, 내가 무엇을 해줄까? 여긴 천국이고, 나는 일단 신이니까.”


소년은 머리를 처박은 체 나지막이 웅얼거렸다.


그녀를... 보고 싶어요... 정말로...”

이름을 알아야 불러줄 수 있어. 이름을 말해줄 수 있니?”


소년은 미친 듯이 울었다.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단지 그냥 눈물이 나왔다. 그냥...


그냥 보고 싶으니까.. 이제는 얼굴도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까...”

"이름을 말해...!"



소년은 귀를 의심하며 쳐박았던 머리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낯익은 음색 목소리 억양 어투, 그리고 낯익은 침묵. 시간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소년의 심작박동소리와 계속해서 메아리치는 낯익은 목소리만이 작은 오두막 안에 가득했다.  할머니는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소년이 바라던 그녀만을 빼고.


소년은 꿈을 꾸듯 힘겹게 팔을 올려 눈물로 가려진 소녀의 모습을 잡으려 했다. 소녀는 그런 소년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고는 딱 한번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소녀의 입가를 가로지르고는 무릎으로 똑 떨어졌다.  소녀의 눈물이 떨어지자 오로라가 퍼져나갔다. 오로라는 소년의 팔을 감싸듯이 돌다가 창문으로 나갔다. 소녀는 입가의 눈물을 손등으로 찍어 없애며 소년의 손을 잡았다.



"나두.. 보고싶었어.. 정말루.."



멀리 퍼져나가던 오로라는 하늘로 올라가 아름다운 춤을 추었다. 각자의 밝음으로 빛나는 별들도, 차갑게 식어있던 달도 모두 아름다운 오로라의 모습에 빠져 한참을 머물렀다.



그렇게 그 날의 밤은 끝이 나질 않았다.










이름 : 현명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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