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랑데부(rendez-vous)

by 남뱀 posted Feb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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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데부(rendez-vous)


가깝고 당연한 문제다. 멀고 난해한 문제다.
짙고 깊은 문제다.  희미하고 얕은 문제다.

특이점이 있었던것은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내에서 앞뒤로 싸우고
어느순간부터 이성vs이성 구도의 싸움이 생겨났다? 분명 공론화되고 많은사람에게 알려졌지만
깊이 들어가고싶지 않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냥 그런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류의 공격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잠깐의 재미를 위해
소위 '어그로'를 끌기위해,팔로우를 위해, 좋아요를 위해 쓰는사람도 적지않을 것 이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의 좋아요를 위해 쓰여진 그 글들이 누군가에겐 총알처럼 박혀 큰 흔들림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과거를 회상시키고 한번의 차별도 겪지않은 사람은 없기에 그것이 부풀려지고 의심하게되고 믿게된다고 생각한다.
100중 5만 맞아도 맞는말처럼 보이고 그5를 쓴사람이 언젠가 100짜리 거짓을 들고와도 모두 믿어버린다.
누구라도 '아 나도 저런일 겪은적 있는데..!' 공감하고 거기에 그치지않고 더욱 나아가버린다.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이 누군지 자신이 밝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누구라도 될수 있다.

*

아침의 기분나쁜 찬바람이 내얼굴과 내가 입은 딱붙는 철지난 청바지위로 지나간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찬바람이라는데 여기 기온이 시베리아보다 춥단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하지만 그런 기분 나쁜, 알지못할 바람보다 아침부터 내 기분을 더 나쁘게 하는건 바로
저 다양하고도 똑같은, 더러운 '남자' 들의 시선이다.
내가다니는 대학은 지하철을 타고 30분거리로 집에서 통학을 하고있지만 더러운 시선들을 느낄때마다
30분거리임에도 더 대학에 가까운곳에 자취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다.

지금 나를 지나치는 저남자는 어울리지도 않는 검정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떨구며 추운척 내 다리를 스켄한다.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도데체 이해할수가 없다.
내 뒤의 아저씨는 아까부터 쫒아오는것 같더니
계단에선 대놓고 휴대폰으로 용무를보는척 내 엉덩이쪽을 지켜보며 올라갔다.
아침부터 시끄러워지기 싫어서 참았지만 내일부턴 다를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아까까지의 기분 나쁜 일들을 곱씹으니 어느새 대학 정문에 다다랐다.
정문을 지나 퀴퀴한 홀아비 냄새나는 학과건물로 들어가 월요일 첫교시가 있는 307-3실,
그중에서 가장 뒤쪽자리 두개가 한번에 빈자리를 찾아 앉고 한쪽 빈자리에 가방과 웃옷을 벗어 둔다.
그리고 나에게 누군가 인사를하면

'응 안녕'
평소같았으면 이렇게 인사라도 해줬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
내가 평소와 다르게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은듯 내 앞자리에 앉았다.

나는 어제까지,지금까지 이 학교에서 유일한 여자였다.

교수가 들어오고 나는 앞자리에있는 투블럭컷에 덩치가 커다란 녀석 뒤에 살며시 숨어
휴대폰을 켜고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에 들어간다.

*


내가 지금보다도 어릴적 나는 로봇이 나오는 여러 만화를 보고 로봇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내가 생각한 로봇은 확실하고 의지 할 수 있으며 무었보다 멋졌다.
또래 여자아이들은 모두 순정만화를 보고 연예와 사랑 대한 꿈을 가졌다면
나는 로봇과 기계에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실을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가 정말 기억에 남는데
'나는 로봇이 될꺼야' 나 '로봇이랑 결혼하고싶다'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듣고있으면 분명 아이를 보는
보통 부모의 시선에선 귀엽고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의 철없는 나에게도 어머니는 그때의 내가 알수있을 정도로 내가 로봇에대해 말할때
'못마땅해 하셨어.' 무었때문이었는지는 지금에 오기까지는 알수없었다.

어머니의 남편은 나에게 관심도 없었던것 같다. '아니 관심도 없었지'
물론 이제는 내가 관심도 없기도 하고 상관없는 일이지만 가끔 과거를 생각하면 나는좀 말괄량이었지만
그사람과는 기분나쁜 기억뿐인것 같다.

그 사람은 말하자면 내 친아버지다.
그 사람은 내가 그사람을 필요로 할때 절때 내곁에 있지 않았고
내편이 필요할때 항상 적의 편이었다.말도 안돼는 이유로 나에게 가하는 체벌도 상당한 수위로 행해졌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런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후로는 한집에살면서도  거의 말도한번 섞지않게되었고
중요한건 그 사람은 그이후로도 나에게 단한번의 사과도 하지않았다.
더이상은 생각하고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역경과 고난 때문이었을까 나는 여고를 가서도 모두들 생물이나 화학을 배울때
홀로 물리를 배워가며 로봇에대한 꿈을 놓지않았고.
더욱 노력해 나름 지방 명문대의 기계과에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 한학기동안 나는 내가 유일한여자라는 점에 놀라고,
정확히 말하면 유일한여자는 아니고 원래 3명이지만 분반이 세반으로 나뉘어 각 여자가 한명씩 떨어져 버렸다.
학과가 내가 생각하던 기계와 다르단건 알았지만 그 이상의 괴리감을 느꼈다.
괴리감도 적응해가며 나름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가며 남자들과도 친해졌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중 지금의 나를 깨워준것이 이 사이트다.
이 사이트를 최근에 와서 알게된것은 아니다. 한 2년 전 부터 '그 사이트'에대해 수근수근거리는 소리를 벽너머에서 들어서
대강은 무슨 논란이 있고 어떤 사이트인줄은 알고 있었다. 중 고등 학교를 모두 집앞에있는 여중 여고를 다닌 나로서는
당시 그들이 했던 말들을 이해할수 없었기에 접근하지 않고있었지만 남자가 주를 이루는 이 학교를 다니면서
그 사이트에대한 관심이 생겼고 하루 이틀 들어가다보니 내가 겪고있는 일이 겪었던일들이 아닌척 하면서 나를 죄여오고 있었다.
첫 하루이틀에는 글에서나온 일과 비슷한 일이있어도 개의치 않았지만 글을보면 볼수록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글속 이야기와 현실이 겹쳐져 갔다.
처음 한학기가지난 후 방학때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정말 도움되는 방학이었다.
요즘은 반의 남자애들과 거의 떨어진 상태다. 조금의 불편함은 있지만 차라리 이게 편하고 안심된다
다른 분반에 있는 여자 동기 2명과도 더 가까워지기도 했고 왠만한 일은 남자랑 같이하는것보다 편하다.
그렇게 그들을 신경쓰지 않기로하고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던게 겨우 3개월전 이야기지만
지금의 내가 휴대폰이나 보며 공부하지않게 된것은 내가 좀 더 자랐기 때문일것이다.
 

*


나는 2학기의 중간고사 이후 부터 공부를 포기하게되었다. 아니 공부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성공하는것' 또는 '공부를 통해 꿈을 이루는 것' 이 무리라고 생각하게됬다.
그 계기는 남자 때문이다.
방학때 그 사이트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여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들 밑에서 일하게 되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일명 '유리천장' 때문에 인종,성별 등에 차별안하는척 하지만
승진 기회등에 남자가 무조건적으로 여자보다 기회가 많다고한다.
그 내용을 처음 안것은 아니었고 내 전공은 내 꿈은 승진같은게 아니었기 때문에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위인이나 큰 대회의 수상 이력또한 남성이 여성보다 상당히 더 많다는것이다.
?? 왜인지 나에게 하는말같았다. '왜 인지 씨발,씨발,씨발 왜 갑자기..'
나는 욕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목적은 하나였다. 굉장한 로봇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놓고 내 공로를 인정받고 노벨상도 타보는것.
하지만 내가 아무리노력해도 아무도 내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나보다 허접한걸 내놓은 남자들이 공로를 가져간다.
'찬사가 그들에게 만 쏟아진다.'
눈을감고 생각했다. 무대위의 남자들 열렬한 세계인의 박수 ,공연이끝나고 엔딩크레딧처럼 그저 지나가는 이름들
그중에있는 내 이름, 누군가는 말한다 무대위만큼이나 무대뒤의 사람들도 큰 공로가 있고 그 박수는 그 공연과 관련된
모두의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무대위에 서고싶다.무대위에서 최고라는 말을 듣고싶다. 발판으로 만족할 수 없다,
성별때문에 무대에 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이 싫다.'싫었다'   희박하다. 희박하다. 없지는 않다.

눈을 떳다. 눈을뜨고 내 앞에있는것을 바라봤다. 내가있는곳은 무대뒤도 무대위도 아니다.
아직은 어디에도 서있지않기에 무대위에 설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흔들릴 뻔한 키를 다시잡고 당장앞에있는 것 이세상에서 절때 내편이 되어줄수있는 것을 만들면 되는것이다.
그리고 중간고사 시간표를 되새겼다. '되새겼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준비한 중간고사였다. '내가 적은것에는 오답은 없다', 적어도 그렇게 말할수 있을정도로
하지만 결과는 중간을 간신히 넘긴 정도 였다.
'왜'  '어떻게'  '어째서'  '아..아 아 이게 왜'나는 그들앞에서는 눈물도 보이기싫었기에
그들이 활개치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찔끔 나려는걸 꾹 눌러참고
그 사람이 있는 거실을 지나 내 침대에 누워 펑펑 울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왜인지, 논리적으로 접근하려고 나오는 눈물도 막아새우며 생각에 전념했다.
뇌리에 스치는 이유와 결과 과거에본것들,버스에서 본것들, 그 사이트에서 본 글, '공부를 적당히만 했을때의 1학기 성적과의 차이가 거의없다..'
'3명의 여학생들의 등수가 재법 비슷하다' , '주관식의 문제가 많았다' 교수가 임의로 점수를 낸다.... '교수가 남자다'
남자..남자다 모두 교수진모두 남자다 적어도 1학년과정에있는 몇몇을제외한 교수들은 모두 남자다.
다른곳으로 도망칠수 없다.
나는 그 순간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되고 새로운 목적을 찾아다니지만 언제나 남자들에 가로막혀있었다.
그들은 모른다. 자기들이 처음부터 얼마나 많은것을 가지고 태어나는지 모른다.

지금에 오기 까지 ,확신이 들때까지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조금더 깊게 봤다, 교수와 상담도 했다. 그들의 답지가 더 자기가볼때 맞는 답이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는 분명한 차별이라고 생각했고 그 차별에 대항하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어머니의 남편한테 맞으면서 자랐다.나는 불행한시기에 불행한 성별로 태어나
좋지않은 환경에서 꿋꿋이 커왔다. 이런 지금까지 버텨준 나에게 고마웠고 이제 이런 불공평한 학교도 끝이다.

11월 29일 11시 29분 나는 일부러 큰소리를 내기위해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반의 남자들과 남자교수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됬다. 지금이다.
나는 짐을싸고 밖으로 향했다.남자들의 수근거리는소리 바람소리 새들이 우는소리 햇볓까지
내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내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

11월30일 10시5분
꿈을꿨다. 꿈의 내용은 기억날 법하다가 사라진다.
평소같지않게 눈을뜬하루 나에게 조급함을 없앤대신에 투쟁심을 받아냈고 그까짓 꿈은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고 소리첬다. meeeeeeeeeeeee toooooo!!
1층이라 밖에서 어디론가 가고있는 몇몇이 이쪽을 봤지만 상관없다 나는 당당히 말할테다
내일이 오늘보다 편해지길 원한다고 나도 겪었다고 나도 아프다고, 부당한이유로 겪은 일들을 잊지 않을것이라고.
그러기위해 싸우기위해 양손에 잡은것들을 놓았다. 양손에 무기를 잡기위해 샌드위치를 노벨상을 버렸다.
마지막 아쉬움으로 집을 둘러봤다. 아무도없다 어머니는 어딜 가셨는지 보이지않고 어머니의 남편은? 모른다 상관없다.
그건 그렇고 시대가 변하면서 의식이 높아졌고 무기는 인터넷속에 또 마음속에 너무많이도 담겨있었다.
중범죄율도 높고 수능성적의 평균은 낮은데 급여의 비율이나 높은직위의 비율 수상의 비율은 훨씬 높다
이것이 무었인가 ,이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말할수 있는가 왜 우리는 범죄도 저지르지 않으면서 좋은성적을 내도
그들의 아래에 있는가 치가떨린다. 무기를 찾으면 찾을수록 과거로 가면 갈수록 우리의 고통은 길고 깊게 파고들어왔었다.
나는 무기를 찾고 찾고 찾아 가방을 가득 채울만큼 채우고 더채워서 세상으로 나갔다.


12월 1일 19시 23분
고속버스를타고 직행으로 서울로향해 곧바로 시위가있는 여대 정문으로 향했다.
대단하다 서울은 작은 여성인권 시위라고했지만 대학교 축제처럼 많은인원이 밀집되어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보던 사람들 찾았다 그들을 실제로 보는것은 처음이지만 동질감이 가득했다.
어디선가 올라온 눈물이 날 울렸다. 모두들 나에게 공감해줬다! 처음느끼는 감정들이 새롭게 차올랐다. 그리고 모두를 울렸다.
내가 찾아온 자료들을 모두와 공유하며 어떻게 상황을 바꿔갈지 토론하는 동안은 모두가 집중해줬다.
누가 알아주려나 누가 들어주려나 생각할 필요도없이 하나의 목표를 보고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


12월 1일
아프게 떨어지는 빗소리가들리는 부성아파트, 어둠이깔린 111동 106호 문앞에 형광등하나가 반짝이고
누구라도 금방 비를 맞은지 알수있게 잔뜩 젖어있는 축 처진 숏컷에
진하게 했던 화장이 빗속에 떨어져 나간 번져버린 한여성이 가만히 고뇌에 찬 표정으로 서있다.
하아아아...
12월에내린 눈보다도 차가운비는 그녀의 몸을 아프게 하기 충분했지만 그녀의 고민은 그 아픔보다도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나보다.
이내 결심을 한듯한 여자는 추위때문인지 손을 파르르떨며 106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한번의 울림이후 빗소리만 크게 들려오고 이마를 가리고 있던 앞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양손으로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아내고 입술을 꾹 하고 깨물고는 뒤로돌아서 계단으로 향한다.

 "예림아..!"

계단을 얼마 오르지 않았을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함께 106호에서 한 노인이 나왔다.
노인은 원래는 흰색이었을 나시에 파란색과흰색줄무늬가있는 트렁크팬티를 입고 그위에 가운을 걸쳤지만 급히 나왔는지 단정하지 못한차림이다.
예림이라고 불린 여성은 올라가던길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이고 그대로 가만히 있다.
빗소리가 더욱 울렸다. 노인은 아무말 없이 문을 열어둔채 집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않아 비에젖은 여자도 따라들어갔다.
노인은 이제 맞을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샤워실 앞에있던 여자에게 익숙하다는듯 옷들을 가져다 주었다.
여자는 남들이 길게 씻는다는 시간보다도 더욱길게 씻었다.
여자가 씻는동안 노인은 꽤 오랬동안 쓰지않은 구급상자를 찾고있었고. 노인은 여자가 옷을 입고 나오자 안도의한숨을 쉬었다.
노인의 눈에는 할 이야기가 많아보였지만 수건으로 툭툭 머리를 말리던 여자는 이내 안쪽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았다.
방으로 들어간 여자는 창문을 지긋이 처다봤다. 깜깜한 새벽의 어둠에 밖은 보이지않고 보이는것은 반사된 방 내부의 모습뿐이었다.
방 내부에는 컴퓨터와 책상을 제외하면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가 놓여있던 책상에는 크게 파인 부분도있었고 간신히 책상의 모습만 유지하고 있었다.
컴퓨터는 마우스와 키보드만 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자는 바로 옆에 침대를 두고 이부자리도 없는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듯 누웠지만 몇시간째 뒤척이고만 있다.
2시간쯤 지났을까 여자는 거실에서 새어들어오는 빛 때문인지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노인이 길고 흰색이었을 양말을 신고있었다.

"나때문에 깼니? 미안하다. 아무일 아니니 들어가서 더 자렴"

노인은 그리 말하고서 작업복을 챙겨입었다.
베이지색 작업복에는 노란 이름표에 '김정수' 라고 적혀있었고 빨아도 지워지지않아 갈색 무늬같은 기름때가 많이 남아있었다.
여자는 아무런 대꾸없이 부엌으로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담지도 않고 벌컥벌컥 마시고는 방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예림아, ...."
여자는 발길을 멈췄지만 대답하지는 않는다.

"예림아 너무 오랬만에 봐서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무슨 말 부터 해야할지 잘 모르겠구나."
여전히 여자는 대꾸가없지만 노인은 말을 이어나간다.

"아니, 사실 그전부터 였구나 네가 이집에 있었지만 그때도 아빠는 아무말도 못해줬어.."
노인은 말끝이 흐려지고 억양이 흔들리지만 올곧게 말을 계속했다.

"혹시 네가9살때 기억나니? 네가 문구점에서 뭔갈 훔치다 걸렸다고 전화가 왔었어
그때 네가 훔치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아빠는 마음속으로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무조건 너에게 사과하게했었어
과묵하다는 핑계를대고 언제나 재대로 상대해 주지 못했어
그 뿐만 아니라 네 엄마에 대한 일도.."
말이 끊어졌다. 서서 이야기를 듣던 여자는 중간부터 천장만 바라보고있다.
헛기침을 몇번하던 노인은 다시 말을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아빠는..아빠도 너무 힘들었단다. 네엄마가 그렇게되고 아빠도..버팀목이 필요했단다
일을 하면서 감정을 죽이면서 사는게 너무 힘든 와중에 너마저 그렇게 떠나고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래서 그
"아! 아빠를 싫어하는건 괜찮다. 하지만 모두를 싫어하지는 말아다오"

"그때는 너무 기뻤지만 그래도 또.."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너를찾기를 포기하고 죽지못해 살고 살아있어서 살고 그리고 또 어느순간 보니..."
말못하는 노인의 횡설수설한 이야기는 몇십분간 이어졌다.
횡설수설하고 앞뒤안맞고 노력하는 그 이야기속에서 무대 밖의 사람들을 봤다.
그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그저 오른손과 왼손이었다.


*


12월 1일
눈을 떠보니 침대위였다.
거실에나가 누군가가 차려놓은 밥상이 있었고 차갑게 식어있었지만 제법 온기있었다.
휴대폰을 확인해봤더니 이미 12시를 넘긴 시간이었고 나에게는 다시 방황의 시기가 온것이었다.
나는 모임에서 버림받았다. 나의 목표는 그들과 다르다고했다.
나는 이미 늙다리가 되어버렸고 양손에 쥐었던 무기들은 내손에 핏자국만 남기고 사라지고
내가 무기를 쥐기위해 잠시 놓아둔것은 이미 다른사람들이 채어갔다.
이 야박한 세상속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혐오할 대상이 그대로인데 나는 왜 무기를 놓았을까
아니다.아니 뭔가 이상하다.
나는 오늘 새벽에 무슨일을 겪은거지?
나는..

손등위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손등을타고 눈물이 흘러 손가락을 지나 숟가락을지나 따듯한 밥에 흘러들어갔다.
나는 오늘 웃었다.
그사람 앞에서 웃었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벽이었으면 처음부터 쌓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은곳에 쓰였을까
겨우 이런일에 사라질것을 내 유일한 가족을 혐오하며 살았을까
나는 얼마안가 작업복을 받을거다 그 작업복 이름표엔 '김예림'이라고 적혀있을것이며 나는 그 작업복을 잘 쓸수있을것같다.


*



으으아의아이의에으이아아?

왜 왜? 도데체 왜 나한테 왜
숨이가쁘다 곧장 죽을것같이 가슴이 뛴다
이제야 이제야 여기까지 왔는데
찢어?아? 아 웨 아 컥 흑
눈에서 뭔가 흐르고있나? 신경? 아?
아빠 잘못했어 이제..  제발


*


아빠가 죽었다.고한다
살해당했다고 한다.
계획적인 살인이었다고한다.

여자 두명에서 벌인 일이었다고한다.

몇일전 나는 그사이트에 들어갔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사이트에 들어가 진심어린 글을 남겼다.
나는 아버지랑 다시 잘 되었다고
무의미하고 무차별적인 혐오는 더이상 하지말자고
그들이 쫒아왔다. 쫒아온다. 오른손이 쫒아온다.

나는 경찰의 보호를 받고있다.
그들은 너무나 많다.
무섭다. 내곁에있던게 내가 돌아서니 남이아닌 적이되었다.
이제 다 그만하고싶다.


*


2월 15일 6시32분


그때도 이 시간대쯤 이었을 것이다
그때 오르려던 것을 이제 오를 뿐이다.
옥상에 올라갔더니 너무 춥다.
더 올라가기저에 잠시동안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도 해가 뜨지않아 어둡고 지친 나 뿐이다.

어떤 소설에 나오는 아저씨처럼 겨드랑이가 가렵지도 않다. 춥다.
하늘은 구름이라도 꼈는지 별도하나없다 그 구름마저도 보이지않는다.
그저 눕고싶어져서 누웠다가 거실에서 나온 빛에 일어난다.

앞을봤다 앞에는 희미하게 빛이 일어났다.
눈치채지못하게 조금씩 어둠이 걷히고 맨 먼저 회색빛 구름이보였다.
하늘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눈앞에 아빠가 보였다.그 옆에 엄마가 보였다.

아빠의 오른손을 엄마의 왼손이 잡고있었다.

빛은 내가 들어올때 열어놓은 입구를타고 내려가 아파트 전체에 퍼졌다.
하지만
나는 용서할 자신이없다. 또 새로시작할 용기도 없다. 어쩌면 지금나는 그저 죽음이 더 두려운지도 모른다
아빠도 분명 이렇게 기다렸을 것이다.
우리는 그 밀회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우연이아닌 약속처럼
그러면 나도 이렇게 기다리면 이 곳에 아무도 없는것같지만
약속처럼 다시 만날것이다.

나는 옥상입구를타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양손을 마주잡을 수 있었다.



이름 김남식

010-2487-0438

sx787s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