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먹어도 될까?

by 민트사탕맛과일 posted Feb 09,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가 널 먹어도 될까?

 

 

세상은 항상 돌고 돌아.

 

황량한 들판에서 풀이 태어나고

풀은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항상 돌고 돌아.

 

황량한 들판에서 풀이 태어나고

대지를 달리는 사슴은 풀을 먹고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사슴은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항상 돌고 돌아.

 

황량한 들판에서 풀이 태어나고

대지를 달리는 사슴은 풀을 먹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늑대는 사슴을 뜯고

이빨 빠진 늑대는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항상 돌고 돌아.

 

 저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송아지인 시절부터 다른 소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고 살았습니다.

 다른 소들은 농사나 잡일 등으로 인해 바깥으로 끌려가서 일을 해야 했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항상 우리 안에 갇혀 지냈지만, 크기도 넉넉하여 몸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 저를 관리했지만 그들은 매번 제게 맛있는 풀과 쇠죽을 가져왔고, 때로는 탐스러운 암소도 제 우리에 넣어줬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밥만 먹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은지 제 앞에서 웃었고, 우리를 청소하다가도 제 모습을 보면 빙긋 웃고선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줬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제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커다란 솥에서 갓 꺼낸 것을 제 여물통에 부어주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발효된 쇠죽입니다.

 이 따끈따끈한 국물에서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세요. 정말로 맑고 투명한 아름다운 육수이지 않나요어서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식사를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먹고 먹히는 관계입니다. 땅에선 풀이 자라고 사람들은 그것을 베서 저한테 먹이로 줍니다. 저는 그 풀을 먹고 똥을 싸는데 그 똥은 비료가 돼서 땅을 풍요롭게 하죠. 그리고 또 그 땅에서 풀이 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앞에 놓인 이 쇠죽에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너를 먹어도 될까?”

 쇠죽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허락 받은 것이겠죠. 저는 쇠죽에 코를 박고 그것을 우적우적 씹고 후루룩 마셨습니다.

그렇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몸에 기름기가 껴서 그런지 털에 윤기가 좌르륵 흘렀고 온 몸에 힘이 넘쳐 당장이라도 어여쁜 암소와 짝짓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주변에 오더니 제 등을 어루만져주면서 엉덩이를 툭툭 쳤습니다.

 마음이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암소에게 데려다 주고 싶은 것 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들썩이며 앞으로 발굽을 내딛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꽤나 멀리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예쁜 암소라면 길이 천리라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저 멀리 어느 집이 보였습니다. 농가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소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젊은 암소의 냄새도 늙은 농노의 냄새도, 그리고…………이것은 피 냄새?

 …………설마 지금 출산 중 인건가요? 저런, 저런 저 집도 많이 힘들겠네요. 소가 출산한 후 뒤엔 한 동안 일을 못 할 텐데, 지금 제가 한 마리의 암소를 임신시키면 두 마리가 일을 못하는 거잖아요.

 뭐 그건 제가 알 바 아니지만요.

 저는 그 집의 대문을 통과했습니다. 사람들은 문을 잠갔습니다. 아무래도 제 사생활을 위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암소는 어디 있는 거죠? 작은 우리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덩치 큰 남자가 커다란 망치를 들고 있었습니다. 저게 뭐죠? 저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거죠?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저는 저를 데려온 사람들을 흘겨봤습니다.

사람들은 제 몸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붙들었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제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건가요? 당신들의 소를 늘려주고 건강한 모습을 보이며 기쁨을 선사해줬잖아요.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

 덩치 큰 남자가 커다란 망치를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내가 널 먹어도 될까?”

 처음으로 사람의 말이 들려왔습니다. 처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그 말이 들려왔습니다.

 우린 말이 통하는 건가요? 그러면 부탁할게요. 제발 죽이지 말아주세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앞으론 놀고먹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할게요. 수많은 송아지 를 선물로 드릴게요. 아프겠지만 꼬리도 떼어 드릴게요. 원하신다면 제 뿔도 잘라 줄 수 있어요. 그러니 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제ㅂㅏㄹ…….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머릿속 혈류가 붕괴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 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황소는 죽었습니다.

 황소는 끝까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키운 이유는 질 좋은 소고기를 얻기 위해서란 것을.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중엔 자신의 똥뿐만 아니라 자신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황소는 끝까지 알지 못했습니다.

 백정은 죽은 황소를 해체했습니다.

 백정의 칼날 아래 가죽이 분리되고 내장, 고기, , 발굽 등 어느 것 하나 낭비 없이 발라졌습니다.

 질 높은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일등 상품이었습니다.

 백정은 푸줏간에서 수많은 귀빈들을 위한 그 고기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냥꾼이 푸줏간에서 그 소고기의 비계가 적은 붉은 살코기만을 사갔습니다.

 

 저는 작은 오두막에 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이 오두막의 주인인 덩치 큰 사냥꾼과 그가 기르는 사냥개와 불안한 동거를 하는 사이입니다.

 왜 불안한 동거냐고요? 그들은 저를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하기 때문입니다.

 왜 죽이지 못해 안달이냐고요? 제가 그들의 음식을 훔쳐 먹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저한테 뭐라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훔쳐 먹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요. 제가 사는 이집은 제가 사냥할 만한 것이 없는 정말로 허름한 오두막입니다가끔 찾아오는 작은 곤충을 먹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양이 차지 않는 정말이지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훔쳐 먹어야만 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어떻게 자기 것 남의 것 이렇게 나눌 수 있나요.

 세상은 돌고 도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오늘도 사냥꾼의 식품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며칠 전 사냥꾼이 먹음직스러운 붉은 쇠고기를 사오고는 그것을 소금과 향신료에 절여 바람에 꾸덕꾸덕하게 말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알싸한 향신료 냄새를 풍기고 붉은 속살 안에서 짭짜름하면서도 소고기 특유의 풍미를 자랑하는 맛있는 소고기 육포. 어서 먹고 싶었습니다.

 식품 창고에는 작은 구멍이 나있었습니다. 제 몸도 간신히 통과하는 작은 구멍입니다.

 그곳을 이용하여 저는 식품창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식품창고 안은 여전히 허름했습니다. 먼지와 오물로 쌓인 이곳에서 사냥꾼이 어떻게 식품을 보관하는지 정말이지 의문이었습니다. 다행히 식품 창고 구석에 놓인 선반에  육포가 무사히 보관되어있었습니다.

 육포는 작은 바구니에 담겨있었습니다. 양은 저와 사냥꾼이 나눠먹기에 충분해보였습니다.

 아참! 먹기 전 먼저 이 의식을 해야겠지요. 세상 모든 생명한테 해야만 하는 것. 그건 바로 부탁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먹고 사는 존재이죠. 소는 풀을 먹고, 소는 육포가 되고, 저는 육포를 먹고, 제 똥은 나중에 비료가 돼서 소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육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널 먹어도 될까?”

 육포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기습적으로 향긋한 냄새로 제 코를 찌를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허락받은 것이겠죠.

 저는 앞발로 육포를 길게 쭉 찢었습니다. 뾰족한 앞니로 그것을 갈아먹으니, ,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결국 사냥꾼과 나누어 먹겠다는 것도 잊은 채로 저는 육포를 다 먹고 말았습니다. 정말이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냥꾼! 제가 약속할게요. 제가 앞으로 수 없이 많은 똥을 싸서 이 땅에 소를 널리 번식시킬게요. 당신은 화살로 소를 잡도록 하세요.

 저는 식품창고의 작은 구멍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과도한 식사로 배가 너무 가득차서 그런지 제 몸이 그만 구멍에 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아, 이러면 배가 줄어들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구슬픈 제 울음소리가 오두막을 떠돌았습니다.

.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돌았습니다. 정말이지 맡고 싶지 않은 맹수의 냄새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불쾌한 울음소리. 쿵쾅거리는 발소리. 저기 저 멀리서 보이는 뾰족한 귀. 입 밖으로 넘실거리는 날카로운 이빨. 털 밖으로 튀어나온 근육들. 바로 사냥개였습니다.

 사냥개가 저를 보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제 냄새를 맡았고 이윽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마음속으로 무언가 울렸습니다.

내가 널 먹어도 될까?”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여태껏 몰랐던 사실이지만 우리는 말이 통하는 사이였던 것입니다.

 저는 사냥개한테 말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게요. 다른 쥐들한테도 말해 어떤 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게요. 제 자손에게 여기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영원히 각인 시켜 놓을게요그러니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사냥개의 얼굴이 저한테 천천히 접근했습니다.

 저는 개의 얼굴을 마주봤습니다. 그리고 모든 게 어두워졌습니다.


 제 주인은 저를 사냥개로 사용합니다. 제가 짐승의 냄새를 맡고 발견하며 추적하여 지치게 할 때 주인이 활로 쏴서 잡는 몰이사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인에게 제 능력을 빌려주고 주인은 제게 사냥감의 일부를 떼어주는 이렇게 돌고 도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항상 사냥을 나가기 전, 저를 굶겼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개는 굶주릴 때 야성이 살아나서 후각이 더욱 발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배가 고파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하늘에서 선물을 내려줬습니다.

 주인의 오두막에 주방과 식품창고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작은 쥐구멍이 있었습니다. 이 오두막에 사는 잽싼 시궁쥐가 애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게 웬일이죠? 매 번 잡으려 해도 너무도 잽싸 잡을 수 없던 시궁쥐가 거기 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시궁쥐 몸에선 평소 나던 더러운 시궁 창냄새가 아닌 향긋한 향신료 냄새가 났습니다. 정말로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저는 시궁쥐에게 다가가서 쥐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습니다. 이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식욕을 자극했습니다. 저는 송곳니를 드러낸 후 당장이라도 시궁쥐를 잡아먹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선 안됐습니다. 언제나 식사 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탁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주인이 제게 능력을 빌려 달라 부탁하여 제가 제 힘을 빌려주고 주인이 답례로 고기를 주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시궁쥐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먹어도 될까?”

 시궁쥐는 떨면서 찍찍거리는 울음소리만 내뱉었습니다.

 그것은 긍정이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저는 쥐에게 천천히 접근한 후 그 머리를 덥석 물었습니다.

 머리뼈에서 으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시궁쥐의 몸이 축 늘어졌습니다.

 저는 시궁쥐의 몸을 입으로 꽉 물고선 앞발로 식품창고의 벽을 밀쳤습니다. 시궁쥐의 시체가 낀 벽이 허물어지더니 시궁쥐가 빠져나왔습니다.

 저는 시궁쥐의 몸을 주방에 내려놓고는 그것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향긋한 냄새가 풍겨오는 쥐였습니다.

 저는 날카로운 이빨로 시궁쥐의 가죽을 찢고선 피를 마시며 살코기를 뜯어먹었습니다.

 이제껏 먹은 쥐고기와는 달리 마치 소고기 육포처럼 향긋하면서도 짭조름하고 달짝지근한 맛이었습니다.

 이윽고 주방에는 비릿한 핏자국만이 흥건하게 남았고 저는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핥았습니다,

!!!

 멀리서 주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혀를 내밀고는 쏜살같이 주인에게 달려갔습니다.

 

 오늘따라 제 사냥개는 기운이 넘쳤습니다.

 오늘 나갈 사냥을 위해 며칠 동안 굶겼는데 제 이름을 부르자 쏜살같이 달려오고는 제 얼굴을 핥았습니다.

 평소라면 악취가 날 침 냄새도 오늘은 왠지 향긋했습니다. 정말로 사냥을 나가기 최상의 컨디션인 듯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이죠? 처음에 사냥개가 사슴을 발견하여 살을 날리고 분명 엉덩이 부분을 맞춰서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 사냥개가 사슴을 놓치 고 말았습니다. 날도 어두워져 오늘은 사냥은 이만 마치고 노숙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슴을 절대 놓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도,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제가 사슴을 발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니 사슴뿐만 아니라 다른 짐승 하나 마주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저와 사냥개는 식량과 물이 다 떨어져 갔기에 이만 오두막으로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어서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맛있는 육포로 배를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필이면 산길을 잃었습니다. 너무도 깊이 들어왔기에 원래 알던 곳도 알아볼 수 없는 첩첩산중이었습니다.

 저와 사냥개는 그 뒤로도 며칠 간 산을 헤맸습니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나무뿌리를 캐고 밤이슬을 핥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부족이었습니다. 토끼 한 마리라도  나오면 좋을려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몇 주가 더 흘렀습니다.

 온 몸에 기름기가 빠진 뼈 가죽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제 사냥개를 바라봤습니다. 그 녀석도 저처럼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정말이지 꼴불견이었습니다. 사냥꾼과 사냥개가 산에서 조난당해 죽는다는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제 사냥개를 바라봤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 중 하나가 죽어 하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는 또 다시 한 번 제 사냥개를 바라봤습니다. 갑자 기 그 녀석이 맛있는 고기처럼 보였습니다.

 만약 제가 죽으면 이 녀석은 저를 먹고 살아남을까요?

 그러겠죠. 이 세상은 돌고 돕니다. 누군가를 먹어 이 삶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가 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친구였던 사냥개의 놈을 쓸어주었습니다. 윤기가 나던 은백색 털이 딱딱하게 굳었고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사냥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널 먹어도 될까?”

 사냥개는 물기 젖은 눈으로 저를 바라봤고 축축한 코로 제 뺨을 비비적거렸으며 차가운 혓바닥으로 제 목을 핥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눈을 질끈 감고 허리에 차고 다니던 날카로운 비수로 사냥개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적어도 고통 없이 가라는 제 나름의 배려였습니다.

 그 후 이제껏 제가 발라왔던 다른 사냥감처럼 저는 사냥개의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뺏으며 피를 마시고 날고기를 뜯었습니다.

 친구의 피를 마신 후 저는 기운을 차렸고 무사히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려와도 저한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식품창고 안에 있던 육포도 사냥개도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현재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유일하게 남은 제 활과 화살을 집어 들고 입대하였습니다.

 

 전투에서 제 활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화살이 한 발 한 발이 날아갈 때마다 적군 한 명 한 명이 죽었습니다.

 부디 죽어달라고 부탁해도 대답을 들을 틈 업는 짧은 순간의 나날이었습니다.

 적군 한 명이 쌀이 되었고 한 명이 고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적한테서 목숨을 빼앗고, 나라는 적을 죽인 대가로 저한테 쌀과 고기를 줬고, 적은 시체가 되어 썩어 이 땅을 풍 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겠죠.

 그러던 어느 날 전투에서 패하여 저희 군은 괴멸 당했습니다. 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채로 도주하였습니다.

 저는 며칠 간 굶주리며 도망쳤습니다. 과거 제 사냥개와 조난을 당했던 그 순간과 비슷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습니다.

 그렇게 도망치는데 민가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은 적지이기에 저 곳은 적 나라의 농부들이 사는 마을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마을 민가에 몰래 들어가서 식량을 훔치고 물을 마셨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말린 감자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식량에 정신이 팔려서 일까요?

 저는 뒤통수에 몽둥이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네다섯 명 쯤 되는 장정이 몽둥이와 낫, 갈퀴 등 조잡한 무기를 들고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잡하더라도 무기는 무기였습니다. 저는 한 명이고 그들은 여럿. 싸우면 죽음뿐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그들한테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장정들은 저를 적군의 군영에 데려갔습니다. 장정들은 적군을 붙잡은 것으로 돈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노예가 돼서 적군을 위해 일하는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 제 몸값을 내서 저를 풀어주는 걸까요?

 답은 둘 다 틀렸습니다. 이 군영의 지휘관이 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보고선 몸을 부들부들 떨고선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휘관은 철커덩 거리는 갑옷소리를 내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곧 허리에서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설마 아니겠죠? 귀중한 포로잖아요. 그러니까 설마, 죽이진 않겠죠?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내가 널 죽여도 될까?”

 그것은 지휘관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색이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요? 죽여도 되냐고? 아뇨. 아뇨.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저는 비굴하게 머리를 흙바닥에 비비며 지휘관에게 간청했습니다. 원한다면 발가락이라도 핥아줄 수 있었습니다.

차가운 칼날이 목에 닿았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하라는 대로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지휘관은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돌고 돌아. 너도 나도 남을 죽여 먹고 살지. 내일은 내가 너를 죽일까? 아니면 너가 나를 죽일까?”

 알아들을 수 없지만 섬뜩한 두려움을 주는 노래였습니다.

 적어도 지휘관이 지금 저를 죽이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온 몸을 이용해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마치 삶을 갈구하는 애벌레처럼 그 자리에서 꿈틀거리며 빌었습니다.

추한 행동 하지마라. 너는 그저 이제껏 네가 죽인 놈처럼 죽는 것 뿐이야.”

 지휘관의 칼날이 위로 올라갔습니다.

………, 그런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차가운 금속이 목뼈와 신경을 끊는 격통이 몰려왔고 저는 어둠 속에 잠겼습니다.

 

 오늘도 한 명의 영혼이 염라대왕님의 손아래 환생했습니다.

 정말로 많은 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끌고 그들을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인도한 혼 만해도, 황소, 시궁쥐, 사냥개, 사냥꾼, 농부, 병사, 장군 등 정말로 많은 생명이 오고 갔습니다.

 염라대왕님은 저승사자가 된 이들은 이승에서 매우 큰 죄를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승에서 사자로 일을 하며 죄를 갚고, 적당한 때가 되면 자신이 이승으로 돌려보낸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제 환생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오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슴이 풀을 뜯어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늑대가 그런 사슴을 뜯어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며 민간인과 군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남을 먹어치웠습니다. 자신의 돈, 자신의 음식, 자신의 가족, 자신의 친구 그러한 것을 위해 남을 먹어치웠습니다. 마치 그것이 세상에 법칙인 것처럼 당연히 여기며 당당하게 남을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마저 남에게 잡아먹히고 이곳 저승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죽은 이가 죽기 직전 그 근처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들의 모든 말로를 지켜보는 것도 저승사자의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기 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뭔가 특별한 존재라도 된다 생각하는지 결코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 공포에 떨며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죽기 직전 침착했던 사람도 태연했던 사람도 막상 저승에 오면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이 배신당했다며 울부짖고 화를 냈습니다.

 때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침착한 재판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물벼룩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요.

 그것을 보며 저는 절대 환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돌고 도는 모든 것을 끊고 차라리 평생 여기서 썩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장수의 혼을 데려온 날 염라대왕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저승사자○○○. 그대는 평소 저승과 이승의 평화를 위해 언제나 충성과 봉사의 자세로 사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초를 기점으로 모든 업무를 마쳤기에 그대의 죄를 사하고 이승으로 환생시키도록 하겠다.

 동료 저승사자들이 제게 박수를 쳐줬습니다.

 저는 쭈뼛쭈뼛 거리며 염라대왕님께 말했습니다.

 그냥 이대로 저승사자가 되면 안 되냐고 말이죠.

 염라대왕님은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저는 수많은 망자의 죽음과 그들의 환생을 보았기에 다시 태어나는 것 보다 이곳에서 평생 썩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이승과 저승의 엄격한 법칙이다. 네가 원하든 원치 않던 너는 이승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 말하며 염라대왕님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제 머리를 덮고 눌렀습니다.

 제가 서있던 부분이 마치 늪처럼 변하더니 제 발이 바닥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제 동료 저승사자들이 제 환생을 축하하며 계속해서 박수를 쳐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환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환생의 늪에서 발버둥 치며 살려 달라 외치고 동료 저승사자들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하지만 동료 저승사자들은 웃으면서 제 손뼉을 마주 칠뿐 아무도 제 손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제 몸이 점점 깊숙이 가라앉았습니다.

 허리, 가슴, 그리고 얼굴마저 바닥에 가라앉았고 진흙 갯벌 같이 축축하면서도 따뜻한 감촉이 온 몸에 달라붙었습니다.

 모든 게 녹아내렸습니다. 이 몸의 겉을 덮고 있던 살결부터 그 안을 단단히 보호해주던 뼈 하나하나가 녹아내렸습니다. 망자가 된 이후 움직인 적 없는 장기가 꿈틀거리며 분해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기억 하나하나가 안개처럼 흐릿해져갔습니다.

 아, 아 결국 다시 이승으로 환생하는 거군요. 제길,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반드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천수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는 과거를 잊었습니다. 그의 고통을, 기쁨을 잊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뒤에 버려두고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저승사자도 뭐도 아닙니다. 이제 그는 이름 없는 그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없어지고 재구성되는 그 과정 속에서 하얀 빛이 보이더니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적셨습니다.

 그는 눈을 떴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음메하는 미약한 울음소리가 울렸습니다.

이번 놈은 꽤 큼직한데?”

, 좋은 소야.”

 농부들은 출산된 송아지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송아지는 이 후 커다란 황소가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