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김장

by 오용택 posted Feb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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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그 해 겨울, 외할머니 댁에는 본래 엄마와 함께 찾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눈길에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꼼짝도 못하게 되자, 나는 그저 엄마가 다 나아야지만 외할머니를 한 번 찾아뵙게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뜻밖에도 날더러 혼자서 외할머니 댁에 가라고 말했다. 나는 혼자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 둘러댔다.

  "그 먼 데를 뭐하러 두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해요. 조만간에 엄마 나으면 같이 한 번 가는 게 낫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외할머니와 단 둘이 그 집에서 12일을 보낸다는 게 영 어색한 탓에 가기가 꺼려졌을 뿐이었다. 외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건 약 5년 전, 입대하기 직전이었는데 그래도 군대 가기 전에 한 번은 뵈어야 하지 않겠냐고 엄마가 끌고 간 날이었다. 그 때도 그렇고 아예 어렸을 때도 그렇고, 아무튼 간에 엄마를 대동하고서야 외할머니를 만났지 단 둘이 있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이를 먹고 그런 이유로 가기 싫다고 솔직히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 맘 때쯤 간다고 두 달 전부터 얘기했다. 너라도 안 가면 섭섭해 하셔."

  엄마는 TV에서 방영되는 연속극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이불을 목까지 덮은 채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 데야 더 이상 안 간다고 버팅길 구실이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뭐 좀 어색하다는 게 죽을 일도 아니고, 그냥 불편하게 한 잠 자고 오면 그만일 뿐이었다. 나는 다음 날 혼자서 가겠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그래. 저녁 먹어야지."

  엄마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누워 계세요."

  "네가 어디 뭐가 있는지 아니?"

  나는 엄마를 다시금 만류해서 기어코 그냥 누워있게끔 했지만 생각해보니 엄마의 말을 반박할 수는 없었다. 우리 집에 먹을 게 뭐가 있고 그게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아빠도 당연히 모르겠지. 아빠보단 차라리 내가 더 잘 알게 틀림없었다.

  나는 냉장고에 보이는 대로 대충 반찬을 꺼내서 차려놓고 엄마에게 저녁을 먹으러 나오라고 했다. 엄마는 낑낑거리며 부엌으로 나와서 상을 보더니 말했다.

  "국이라도 끓여먹지. 아니면 햄이라도 굽던가. 찬 반찬만 내놓고 밥이 넘어가니."

  "대충 먹으면 되지 뭘 국까지 끓여먹어요."

  나는 밥을 푸기 위해 밥통을 열었다. 밥통은 텅 비어있었다. 밥한다는 걸 깜빡 잊어버린 것이었다.

  ", 밥을 안했네. 바보 아냐?"

  "어쩐지 빨리도 차렸다 했다. 내가 어째 밥 짓는 소리가 안 들린다 했는데 진짜로 안했어."

  "밥이야 금방 하죠. 들어가 계세요."

  "내가 할게."

  엄마는 말릴 새도 없이 어느 새 이미 밥통에 쌀을 담아 싱크대로 가져가는 중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 대신 안방으로 들어가 TV 연속극을 보았다. 5분을 봤지만 전 화의 내용을 모두 짐작할 수 있었다. 원 참, 이렇게 뻔한 건 뭐가 재밌다고 맨날 보는지. 그렇게 생각하며 몰입하고 있을 때쯤, 그 화가 끝나버렸다. 은근히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다음 화를 보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했다. 하지만 엄마의 그 일주일은 또 다른 연속극들로 채워져 있었다. 말하자면, 매일 엄마가 챙겨보는 연속극은 한 편 이상이 방영되었고 그렇게 매일매일 다른 걸 보다보면 다시 일주일이 돌아 다음 화를 또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불러서 다시 부엌으로 나와 보니 상 위에는 내가 꺼낸 반찬에다가 감자국에 스팸 구이까지 있었다. 물론 밥도 있었다. 나는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열한 시 쯤,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가 퇴근한 아빠를 위해 저녁을 차려주는 모양이었다. 아까 먹다 남은 감자국이 상 위에 올라오겠군……. 나는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이번에는 설거지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는 그 날 하도 잠을 많이 자서 안 졸린 모양이었다.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외할머니에게 전달할 반찬 따위를 챙기고 있었다. 그걸 들고 김제까지 갈 생각을 하니 역시 어제 거짓말을 지어내서라도 안 간다고 할 걸 그랬나 후회스러웠다. 엄마는 음식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하며 나보고 외할머니한테 그 말들을 전하라고 했지만 나는 애초에 전할 마음이 없었기에 건성으로 들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실까. 아마 외할머니 댁을 떠나올 때는 거꾸로 외할머니가 이것저것을 나에게 쥐어주며 무슨 음식을 어떻게 보관하라느니 하는 말을 하시겠지. 도무지 우리 엄마고, 엄마의 엄마고 간에, 엄마들이란 대충 먹고 사는 법이란 게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터미널에서 김제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입대 할 때보다 더 전에 외할머니를 뵌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보았다. 아마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때였던 것 같았다. 그 때 외할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약간 기분이 이상해졌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라는 건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외할머니에게도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던 걸까. 그건 너무 감상적인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랑보다는, 정이라는 말을 쓰는 게 더 알맞겠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외할머니는 약 7년째 혼자 사시는 중이었다. 외할머니 댁은 미닫이문에 대청마루, 마당과 대문이 있는 옛날 집이었지만 방이 서너 개 있는 탓에 혼자서 사시기에는 조금 커보였다. 나는 외할머니가 남은 방들을 어떤 용도로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김제 터미널에 내려 화동마을까지 또 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갔다. 김제 시골의 풍경은 언제나 낯설었다. 끝없이 펼쳐진 논밭에 건물이라고는 빌라 정도 크기가 될 만한 것도 하나 없이 하나 같이 다 낮은 집들 뿐이었고, 어딘지 모를 저 먼 논밭의 끝 지점에는 산의 윤곽 같은 것이 희미하지만 거대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팔방이 다 뚫려있다는 느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저 멀리 떠나가는 사람을 점이 될 때까지 지켜보는 일도 가능했다. 그런 마을 한 구석에, 외할머니의 집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대문도 잠궈 놓지 않고 계셨다. 하긴 그런 마을에서는 숨을 곳이 없어 도둑질도 못할 것 같았다. 철제 대문이 끼이익 하고 천천히 열리는 소리에 방에 있던 외할머니가 앉은 채로 미닫이문을 열었다.

  "영석이 왔냐?"

  "안녕하세요."

  "아유, 그건 다 뭐야?"

  외할머니는 내 양손에 들린 짐을 보시고는 앉은 채로 몸을 밀어 대청마루까지 나온 뒤, 마루 밑에 있는 고무신을 찾아 신고 마당으로 걸어 나오셨다. 그 폼이 한눈에 봐도 어딘가 불편해보였다.

  "반찬들인데요. 엄마가 할머니 갖다드리라고."

  "이런 걸 왜 보내냐."

  외할머니가 내 짐을 받아들려고 하시는 탓에 나는 얼른 짐들을 마루 위에 올려놓았다. 외할머니는 보따리를 끌러서 락앤락 통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이게 뭐야?"

  외할머니는 뭔가 빨간 음식을 눈앞에 가까이 가져다댔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게 뭔지 보고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홍어를 무쳤구나."

  외할머니는 그런 식으로 반찬을 하나하나 다 열어보았다. 나는 그 옆에서 외할머니가 열어본 반찬통을 다시 닫는 일을 했다. 외할머니는 마지막 콩자반까지 그렇게 다 확인하시고 난 뒤 다시 보따리를 묶었다. 그리고 그걸 들려고 하시다가 힘에 부치는지 이내 포기하셨다. 나는 얼른 대신 짐을 들었다.

  "아이고, 네가 좀 들어라."

  외할머니는 애초에 본인이 드실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외할머니를 따라 제일 왼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만이 유일하게 이 집에서 미닫이문이자 철제문으로 되어있는 방이었고, 걸쇠로 잠기는 식이었다. 그 안은 벽지나 장판도 제대로 깔려있지 않은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건 마늘뿐이었다. 또한 바닥에 쌓인 포대들도 그 내용물이 뭔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공간 한 켠에 냉장고가 있었다. 가스레인지도 있는 걸로 봐서 아마 부엌도 겸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가 보낸 음식들을 냉장고에 하나하나 넣었다. 외할머니는 내 옆에 서서 뭐를 어디에다가 넣으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어딜 말씀하시는 건지 못 알아들어서 아무 데나 넣더라도 별 말은 안하셨다.

  "엄마는 어떻게 넘어져가지고 허리가 그렇게 됐어."

  "눈길에서 넘어지셔가지고요. 쉬면 나을 거에요."

  나는 정리를 마친 뒤 외할머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나다를까 TV에서는 연속극이 방영되고 있었다.

  "옷 여기다 벗어놓고, 여기 앉아라. 이쪽이 따뜻해."

  외할머니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나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셨다.

  "머리는 왜 그렇게 산발을 했어."

  나는 괜시리 내 머리를 만져보았다. 사실 전혀 긴 머리도 아니었고 오히려 짧은 편이었는데 내가 깔끔하게 관리를 안 한 탓에 삐죽빼죽 거려 외할머니 눈에는 산발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가면 이 참에 머리나 좀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용사가 머리를 어떻게 잘라주느냐고 물을 때면 항상 뭐라 대답할 말이 없기도 했다.

  정작 내가 방바닥에 앉자 외할머니는 다시 방을 나가버리셨다. 나는 어딜 가시는 건지 몰라 그냥 우두커니 앉아서 TV나 보았다. 엄마가 보던 것과는 다른 연속극이었다. 정확하게는 다른 배우들이 나오고 방영 시간도 달랐기 때문에 그렇게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지, 내용상으로는 같은 연속극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일 게 없었다.

어딘가에서 물소리와 외할머니의 걸음 소리, 그리고 대야 같은 게 어디 부딪히는 소리 따위가 분주히 들려왔다. 점심을 준비하시는 모양이었다. 나는 뭘 좀 도와드려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알지를 못해서 애매하게 앉아있었는데, 잠시 후 방문이 다시 열리더니 외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김치가 없다. 올해는 여기저기가 하도 아파가지고 김장을 할 생각도 못했다. 작년에는 혼자서 백 포기를 해가지고 애들 집에 다 주고 했는데."

  외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떠나셨다. 그렇구나. 김치가 없구나. 아무래도 상관은 없는 얘기였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외할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영석아, 이리 와봐라."

  "."

  나는 크게 대답하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집 옆쪽에 있는 수돗가였다. 대야에는 애호박을 비롯한 몇 가지 야채가 씻긴 채로 담겨있었다. 외할머니가 싱크대 대신 사용하시는 공간인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대뜸 삽 하나를 내미셨다.

  "저기 포대 덮인 데 밑에가 김장독 묻어둔 데야. 거기 파가지고 김치 한 두어 포기만 꺼내 와라. 2년 전에 한 거라 아주 묵은지가 다 됐겠다."

  뜻하지 않게 삽질을 하게 된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 보다 2년 전에 김장을 해서 땅에 묻어두셨으면 작년에는 왜 김장을 하신 걸까. 나는 삽질까지 해가며 김치를 먹을 바에야 안 먹는 게 나았지만 이 참에 할머니한테 김치를 꺼내 드리는 셈치고 군말 없이 땅을 파기로 했다. 할머니 본인이 땅을 파서 김치를 꺼낼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할머니가 가리킨 곳으로 갔다. 텃밭 같은 걸로 쓰이던 곳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아무 것도 키우지 않고 그저 빈 포대 하나만 덩그러니 덮여져 있었다. 나는 포대를 걷어내고 흙을 파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흙이 얼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도 눈이 안 온 게 다행이지. 생고생을 하며 흙을 파내다 보니, 삽 끝이 무언가 딱딱한 것에 닿았다. 장독 뚜껑이었다. 나는 흙을 마저 걷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김치가 보이질 않았다.

  대신 장독 안으로 통하는 사다리가 보였다.

  "이거……"

  나는 너무도 당황스러워서 외할머니를 보았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이미 부엌 겸 창고로 들어가셨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장독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김치 대신 사다리가 밑으로 뻗어있었다. 그리고 도대체 얼마나 깊이까지 내려가 있는 것인지 그 끝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서부터 의문을 가져야 할까. 첫째, 왜 장독 안으로 들어가는 사다리가 있는걸까. 둘째, 그 사다리가 끝이 안 보일정도로 깊이 뻗어있다면 지금 땅속에 묻혀있는 이 장독은 도대체 얼마나 길단 말인가. 결론은 하나 뿐이었다. 장독 뚜껑으로 입구를 막아놓은 지하실이겠지. 하지만 외할머니 댁에 왜 그런 공간이 있는 걸까. 그리고 왜 그런 곳에 김치를 넣어두셨으며, 애초에 그럼 왜 지하실이 아니라 김장독이라고 말씀하신 걸까.

  나는 생각을 그만두고 일단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나무나 밧줄로 된 사다리였으면 삭아서 끊어질까 엄두도 못냈겠지만 다행히 사다리는 쇠로 만들어져있었다. 몇 걸음 조심스럽게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안이 컴컴한 탓에 실제보다 훨씬 깊어보였을 뿐이었다. 주변은 도통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어디선가 김치 냄새가 나기는 했다.

  그 순간, 탁 하고 불이 켜졌다. 천장에 매달린 전구 불이 켜진 것이었다. 내가 도달한 곳은 앞쪽으로도 더 공간이 뚫려있는 토굴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토굴 끄트머리에서, 웬 할머니가 고무 대야 앞에 쭈그려 앉아 김장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김치 가지러 왔냐?"

  그 할머니는 큰 소리로 물으며 파워풀하게 배추 사이에 속을 넣고 있었다. 양손에 낀 고무장갑은 양념으로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김장을 했는지 코 밑에까지 양념이 튀었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양념이 아니라 점이었다.

  "썩을 년이 2년 동안 들여다보지도 않네."

  아니, 그럼 할머니는 거기서 2년 동안 김장을 하시는 중이세요? 나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 외할머니가 사람을 납치해서 김장 노예로 부려먹기라도 하는 걸까. 난 대체 무슨 질문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김장을 하던 할머니는 이미 작업을 끝낸 김치가 담겨져 있는 대야 쪽으로 가더니, 거기서 몇 포기를 큰 그릇에 담아 나에게 내밀었다.

  "가져가."

  이건 겉절이잖아.

  "저기…… 묵은지는요?"

  "이 놈의 새끼가 어디서 가려 가리기를. 우물가에서 숭늉 찾냐? 김장을 하면 곧장 묵은지가 돼?"

  "근데 2년 전에 묻어두신 김치가 있다고……"

  "잔말 말고 가져가! 묵은지고 나발이고 먹고 싶으면 지가 직접 오라 그래."

  할머니는 나에게 그릇을 들려주고 다시 김장에 집중했다. 나는 그 괴팍한 할머니에게 무슨 말을 묻느니 우리 외할머니와 얘기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한 손에 겉절이가 담긴 그릇을 들고, 한 손으로 사다리를 잡고 낑낑거리며 다시 올라왔다.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다시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뚜껑을 닫고 흙을 덮어야하나. 저 안에 김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겠지만, 사람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흙을 덮어…… 나는 일단 김치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외할머니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셨다.

  "저기, 할머니"

  "김치 가져왔어?"

  외할머니는 내가 가져온 김치를 보시더니 금세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손으로 김치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이게 완전 겉절이네?"

  "저 밑에 계신 분 누구에요?"

  "내 아주 그냥……"

  외할머니는 갑자기 성을 내며 부엌을 나가셨다. 나는 황급히 외할머니를 따라 나갔다. 외할머니는 내가 파놓은 구덩이 쪽으로 가더니 장독대 안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깜짝 놀라 달려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외할머니가 힘겹게 사다리를 내려가고 계셨다.

  "할머니, 조심하세요!"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외할머니를 따라 같이 내려갔다.

  안에서는 여전히 김장이 한창이었다. 외할머니는 김장을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노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내가 2년 전에 그 생고생을 하면서 혼자 김치를 해놨는데, 이제 와서 겉절이를 줘?"

  그러자 그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며 대꾸했다.

  "2년 동안 본 척도 안하더니 찾아와서 하는 소리가 김치 타령이야? 겉절이래도 주면은 고마운 줄을 알아야지."

  "김장은 내가 했지 엄마가 했소?"

  엄마? 증조할머니? 난 살아 계신 줄도 모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코 밑의 점을 제외하고는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왜 이런 땅 속에서 김장을 하고 계신 걸까.

  "너 말 잘했다. 김장은 다 누구한테 배웠는데? 그리고 내가 평생을 너한테 해먹인 김치가 얼만데? 세상에 내가 저한테 해준 거는 새까맣게 잊고서."

  "해준 게 있어야 잊기를 잊지. 두 말 말고 내 집에서 나가요, !"

  "싫다, 이 년아. 내가 어디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나 봐라."

  좀 움직이시면 안돼요? 애초에 왜 이런 데서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아이고, 인생은 아주 썩어빠진, ? 구렁텅이 중에서도 그런 구렁텅이로 내몰고서는 인제는 갈 때도 곱게 가지를 못해."

  외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다시 사다리를 오르려 하셨다. 하지만 큰 소리를 너무 많이 내 기가 풀리는지 이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할머니!"

  나는 외할머니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얼른 사다리를 잡고 올라갔다. 할머니까지 업고서 오르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간신히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할머니를 자리에 눕혀 드렸다.

  "아이고. 정도 없지. 정도 없어. 어떻게 이 지경까지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외할머니는 앓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내게 말했다.

  "영석아. 된장찌개 불 꺼라."

  나는 얼른 부엌으로 갔다. 찌개가 끓어 넘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방으로 돌아와보니 외할머니는 여전히 누워서 앓는 소리를 하고 계셨다. 나는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지만 지금은 외할머니가 대답을 할 상태가 아닌 듯 했다. 그렇다고 딱히 보살펴 드린답시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 같아 그냥 곁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잠시 후, 외할머니는 깊은 생각에 빠지신 건지 잠이 드신 건지 숨소리만을 남기고 조용해 지셨다. 나는 아무래도 주무시는 것 같아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외증조 할머니에 대해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TV를 끄고 방 불도 끈 뒤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여는데 갑자기 외할머니가 물으셨다.

  "영석아, 밥 먹어야지."

  나는 다급히 문을 도로 닫고 외할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주무세요. 밥은 나중에 먹으면 되죠."

  외할머니는 뭐라고 웅얼웅얼 하시더니 다시 잠이 드셨다. 나는 다시 그 곁에 앉아있었다. 외할머니를 깨우고 싶지 않아 완전히 잠드시면 그 때 마당으로 나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버스도 탔고 방금 겪은 일도 워낙에 혼란스럽고 해서 갑자기 피로감을 느꼈다. 그래서 외할머니 옆 맨바닥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어나보니 내 몸에는 외할머니가 덮고 계시던 이불이 덮여져 있었다. 외할머니는 자리에 없었다. 바깥은 내가 잠들기 전보다 훨씬 어두웠다. 나는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5시 반이었다. 나는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와 보았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졌고 더군다나 불빛이 적은 화동마을인지라 한밤중이라 보아도 이상할 건 없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는 외할머니가 안 계셨다. 수돗가로도 가보았지만 역시 안 계셨다. 화장실에 가셨나?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집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여태 모르고 있었다. 수돗가 쪽으로 좀 더 가보니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 문은 열려있었는데, 변기가 푸세식 이거나 아니면 최소 화변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양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화장실까지 간 김에 소변을 보았다. 세면대는 따로 없었고 쭈그려 앉아야 하는 위치에 수도꼭지 하나가 달려있을 뿐이었다. 찬 물과 뜨거운 물의 밸브를 따로따로 조절해 온도를 맞추는 옛날식 수도꼭지였다. 나는 손을 씻고 걸려있던 수건에 물기를 닦은 뒤 화장실을 나왔다.

  부엌도 아니고 화장실도 아니면, 어디 가신 걸까. 이 시간에 혼자 밖에 나가셨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역시, 거기로 내려가신 건가.

  나는 장독대, 아니 김칫독, 지하실,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쪽으로 가보았다. 뚜껑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안에서부터 무슨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고개만 밑으로 슬쩍 넣어보았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맞고 사는 걸 알았소?"

  외할머니의 목소리였다.

  "그게 그렇게 큰일이고 대수야? 나는 안 맞고 살았는 줄 아니?"

  증조할머니가 대꾸했다.

  "아버지는 이따금씩 술이나 자시면 엄마한테 손찌검 했지. 우리 영감은 술 취하고 맨 정신이고 할 거 없이 그저 제 맘에 안 들면 나를 그렇게 때렸소. 쌀 떨어지면 쌀 떨어졌다고 맞고, 그릇이 더러우면 그것도 그것대로 맞고."

  "쌀 떨어진 건 그래 맞을 일이지 어디 잘 한 일이야?"

  "돈이 없는 걸 내가 어째? 쌀 한 되 살 돈이 없어서 쩔쩔매다가, 그것도 들키면 내가 살림 허투루 한 거라고 욕먹고 맞을까 겁이 나가지고는, 사흘을 나 안 먹어가면서 그거 다 영감 밥 해줬소. 그래도 인제 다 떨어졌는데 그제서는 내가 뭘 어떻게 해? 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올 수가 있나 뭘 할 수가 있어."

  외할머니는 거기까지 얘기하고는 성을 내며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셨다. 나는 재빨리 달아나서 마당을 가로질러 돌아가 대청마루에 걸터앉았다.

  잠시 후, 외할머니가 장독 밖으로 힘겹게 나오셨다. 나는 그제야 외할머니를 발견한 척 얼른 다가가 도와드리려고 했지만 외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만류하셨다. 그리고 옆으로 치워 두었던 장독 뚜껑을 다시 닫았다. 외할머니는 부엌 쪽으로 향하며 말씀하셨다.

  "밥 먹어야지.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도록 영석이 밥을 못 해줬구나."

  나는 외할머니를 따라가면서 말했다.

  "제가 할게요.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네가 어디 뭐가 있는 줄을 아니."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나는 부엌에 가서 외할머니를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체 방에 들어가 있지도 못하고 추위에 떨며 마루에 계속 앉아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바로 그 마루에서 내가 외할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 때 맞이했던 어느 여름 방학 중 며칠은 이 집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때 외할아버지는 마루에 장기판을 벌여놓고 내게 장기 두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친절하고 인내심이 있었다. 나한테 장기를 가르쳐 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외할아버지를 썩 좋아했고, 그래서 돌아가셨을 때도 엄마나 외할머니만큼은 아니었지만 눈물을 흘렸었다.

  "영석아, 이것 좀 들여가라."

  외할머니가 부르시는 소리에 부엌으로 가보니 밥과 찌개, 각종 찬들이 가득 올려진 밥상이 있었다.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보내준 음식들도 상당수 있었다. 나는 밥상을 방까지 들고 갔다. 그런데 그 큰 상을 든채로 수평을 유지하며 마루로 올라선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낑낑거리자 외할머니가 옆에서 말씀하셨다.

  "상을 먼저 마루에 올리고, 그 다음에 네가 올라가야지."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외할머니 말씀대로 했다.

  나와 외할머니는 한 동안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나는 밥을 먹으며 슬쩍슬쩍 외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아이들이 몇 년 주기로 보면 볼 때마다 볼라보게 성장해 있는 것처럼, 노인도 일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가 이렇게까지 늙었었나. 나는 마침내 증조할머니 얘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외증조 할머니가 아직 계신 줄 모르고 있었어요."

  "어딜? 이 할미도 오늘 내일 하는데 너희 증조할머니가 살아 있겠니?"

  "? 근데 저 밑에 계신 분…… 할머니께서 엄마라고……"

  "증조 할미가 맞긴 맞는데, 살아있는 게 아니야. 저거 다 망령이라고."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영석아. 너 지금부터 하는 얘기 잘 들어라. 이 얘기를 어디 가서 하지도 못해. 다들 늙은 할머니 노망났다고 생각을 하지 이 얘기를 누가 믿겠니? 근데 이러나저러나 너는 내 손주니까 내가 숨기는 거 없이 다 얘기를 해주겠다는 말이야. 너 저기 부엌 가서 냉장고 열어보면 쇠주가 반병 남은 게 있거든."

  "."

  "그것 좀 컵이랑 해서 가져와라."

  "……."

  나는 혼자 부엌으로 가는 동안 어쩐지 으스스했다. 그럼 저 땅 속에 있는 존재가 증조 할머니의 귀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는 얼른 소주를 꺼내고 찬장에서 컵 하나를 꺼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외할머니가 그 소주를 장독대 근처에 뿌려 무슨 제사라도 지내시려나 했는데, 컵에 따르더니 본인이 들이키셨다.

  "……"

  난 순간 말려야 하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딱히 말릴 근거도 없었다. 술을 드신 외할머니는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하셨다.

  "내가 2년 전에 김장을 해가지고 저 자리에다가 묻어놨어.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서 꺼내 먹으려고 장독을 여니까, 너도 봤겠지만은 김치는 어디 가고 저렇게 사다리가 내려가 있단 말이야. 나는 처음에 내가 미쳤는가보다, 드디어 노망이 들었나보다 싶어서 마냥 얼척 없이 있다가는, 그래도 한 번 내려가 보기는 해야지 싶어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지. 그런데 할미가 어디 생전 사다리를 타봤겠니? 가뜩이나 늙어 힘도 없는데 겁까지 나니까 팔다리가 이래 떨리지.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간신히 다 내려왔는데, 이제는 사방 깜깜해서 보이는 게 없단 말이야. 근데 그 순간 턱 하고서 어디 전굿불 켜지는 소리가 나더라고. 순간에 그냥 닭살이 여기저기 할 거 없이 돋으면서 대체 누가 있나 봤단 말야. 거기에 서있던 게 너희 외증조 할머니야. 우리 엄마."

  외할머니는 거기까지 얘기하시고 술을 한 번 더 드셨다.

  "보는 순간에 꼼짝없이 이거는 귀신이다 싶어서 겁도 나고 또 한편에는 엄마니까 반갑기도 하지. 그래서 물어봤어. '엄마 여기를 어떻게 오셨소?' 하고 물으니까 대뜸 '네가 부르기에 왔지 죽은 사람이 괜시리 오니?'하고 쏘아 붙이질 않겠냐?"

  외할머니는 증조할머니의 말을 옮기는 대목에서 최대한 앙칼진 말투를 흉내냈다. 하지만 듣기에 별로 비슷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언제 이 사람을 불렀나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짚이는 데가 있어. 너도 알겠지만은 너희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제사를 한 번 제대로 못 지냈다. 내가 니들을 탓하자고 이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라, 다들 바빠 가지고 그런가 보다 해서 나는 생전 거기에 섭섭한 것도 없었어. 산 사람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어디 죽은 사람 제사 지내는 게 그리 중요하겠니. 그런데 그 맘 때쯤에 그 양반 기일이 되어서 내가 스스로 좀 미안해져가지고 니들한테는 얘기 안하고 그냥 할미 혼자 소반이라도 차려가지고 시늉은 해야겠다 싶더라고. 근데 제사라는 게 아무리 허투루 지내도 지방은 써 붙여야지 않겠니. 생각을 해보니까 한국말도 못 읽는 할미가 무슨 재주로 한문 지방을 쓰냐는 말이야. 그래서 동네 나이든 양반한테 부탁을 해서 이러저러하니까 지방을 한 장 써달라 부탁을 했지. 그 양반이 붓을 들고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몇 자 적는데, 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기는 했어. 내가 알기에는 그 양반도 그렇게 배운 양반은 아니야. 아무튼 보기에는 그럴싸하니까 갖다 붙이고 밥이랑 물이랑, 술 올리고 찬 몇 가지 해가지고 대충 제사를 지냈지. 근데 암만 생각해도 그 때 그 지방이 뭐가 틀린 게 있어서 엉뚱하게 너희 증조할머니가 저기에 와버린 것 같아."

  외할머니는 또 술을 드셨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죽은 사람 얼굴을 보기는 했는데, 반가운 거는 처음만 그렇고 가만 있자니 영 부아가 치민단 말이야. 사실 내가 너희 증조할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속으로 미워했었다. 젊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억지로 시집 보내놓고 어떻게 사는지 생전 들여다보질 않으니까. 나도 시집가고 나서는 도통 찾아가지를 못했고. 살림만 할래도 야, 해가 하루에 두 번씩 떴다 져도 시간이 모자를 마당에 무슨 집에를 가니? 어쩌다 명절이나 되면 한 번씩 왔다갔다하고 그마저도 못갈 때가 많았지. 명절이면 할 일이 곱절이 되는데 어떻게 엄마 본다고 거기서 틈을 내 빠져나온다고. 그냥 우리 본가에는 또 거기 며느리들이 있으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만 하고 마는 수밖에 없었어. 아무튼 그렇게 한이 쌓인 사람이다 보니까 금세 보기가 싫어지더라고. 그래서 그 길로 그냥 나와서 다시 장독을 묻어두고 여태 안 들여다본 거다. 내가 헛것을 봤건 귀신을 봤건 간에 설마 여지까지 거기에 버티고 있겠나 싶어 아까 너한테 김치 좀 꺼내오라고 한 건데, 독한 사람 같으니라고. 어떻게 여태 안 떠나고 거기에 있어?"

  외할머니의 얘기는 거기에서 끝이 났고 그 후로는 말없이 술만 드셨다. 나는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도저히 믿을 수는 없는 얘기였지만, 그 얘기를 믿지 않는다면 내가 본 광경을 설명할 길도 없었다. 나는 체할 것 같은 기분으로 꾸역꾸역 식사를 했고 외할머니는 그 옆에서 대여섯 모금에 나물 한 점 정도로 적은 안주를 드시며 계속 술을 마셨다.

  외할머니는 빠르게 취했다. 취기가 오르자 외할머니는 갑자기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 따라 나도 흐른다아아-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이건 무슨, 군가 아닌가. 왜 외할머니는 난데 없이 군가를 부르시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외할머니가 먼저 나에게 물으셨다.

  "너 이 노래가 뭔지 아냐."

  "아뇨."

  "빨간 마후라라고, 옛날에 영화에서 나온 노래다."

  "……."

  "신영균이, 최무룡이, 최은희, 그리고 저 누구야, , 이대협이. 아무튼 그 때는 그 사람들 나오는 영화라면 그저 최고였지. 지금은 그 양반들 다 돌아가셨을 거야."

  외할머니는 그렇게 말하시고 또 한 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아이고, 늙어서 술을 마시니까 못 앉아있겠다."

  외할머니는 그 자리에 이불을 덮고 누우셨다. 그리고 누운 채로 또 노래를 한 곡 하셨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러면서 외할머니는 서서히 잠이 드셨다. 나는 슬쩍 일어나 문을 열고 상을 들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부엌으로 상을 가져가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넣어 놓고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것들은 일단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그리고 설거지 거리들은 수돗가로 가져가 대야에 넣고 물을 채워놓았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선은 나도 모르게 자꾸 증조할머니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나는 오늘 귀신을 보았다. 새삼 그렇게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외할머니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다시 나왔다. 그리고 옆에 있는 빈 방으로 건너가려는데, 마당에 있는 다른 장독대들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 그냥 나와 있는 걸로 봐서는 장이 들어있는 독들이 아닌가 싶었다. 설마 저 다른 독안에도 뭐가 있는 걸까.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럴 리는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더 기울긴 했지만, 내가 내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해야 그나마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하룻밤만 잘 집이긴 해도, 귀신이 있는 장독은 하나로 족하다.

  나는 몇 개의 장독들 중 하나에 다가가 뚜껑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고추장이 들어있었다. 나는 내심 안도하며 옆에 있는 독도 열어보았다. 처음엔 빈 독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간장이 들어있었다. 캄캄해서 잘 안보였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옆에 있는 독을 열었는데, 그 독은 진짜로 비어있었다.

  대신 사다리 하나가 안으로 내려져 있었다.

  하나님, 제발.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는 당장에 뚜껑을 닫고 싶었지만 차라리 안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돌아오는 게 더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 있는 게 기껏해야 김장하는 증조할머니 정도라면, 그 정도는 괜찮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사다리를 잡고 안쪽으로 내려갔다.

  그 안의 광경은 증조할머니가 있던 김장독과는 또 달랐다. 그곳은 토굴이 아니라 터널에 가까웠다. 차가 지나다니는 터널이 그렇듯이, 양쪽으로 희미한 불빛들이 쭉 뻗어있었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한참 멀리까지 이어졌다. 나는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볼까 아니면 돌아서 나갈까 고민했다. 어쩌면 그냥 나가버리는 게 더 나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증조할머니가 2년 동안 자신을 찾지 않은 데에 분노한 것처럼, 거기에 있을 누군지 모를 존재 역시 내가 그냥 가버리면 오히려 원한을 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터널 안 쪽으로 용기를 내서 걸어 들어갔다. 내 발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터널의 불빛은 약 30m 앞까지만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 안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를 위하여 흘린 눈물인가- 누구를 위하여 맺은 사랑인가- 가시덤불 엉크러진 언덕길에- 한 떨기 외로운 찔레꽃만 피었네-"

  외할머니가 부르던 것과 비슷한 풍의 노래였지만 목소리는 훨씬 젊었다. 잠시 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린 소녀였다.

  나는 겁에 질려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건, 확실히 다르다. 김장하는 증조할머니랑 누구인지 모를 어린 소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나는 진작에 돌아가지 않은 걸 후회했다.

  "아저씨 누구세요?"

  하지만 겁에 질려 보이기는 나만큼이나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태도가 공포 영화 등에서 예의 귀신들이 보여주던 것들과는 사뭇 다르기에 그나마 안도를 하며 애써 태연한 체 되물었다.

  ", 너는 여기서 뭐, 뭐하니?"

  "집에 가요. 늦어가지고 엄마한테 혼나겠네."

  "너희 집이 어딘데?"

  소녀는 말이 없었다.

  어쨌거나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간에 있는 말도 안 되는 존재라면 산 사람은 아닐테고, 외할머니가 붙인 지방이 불러온 또 다른 존재일 게 틀림없었다. 아마도 외할머니의 옛날 가족 중 한 명이겠지. 나는 돌아가서 외할머니에게 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녀의 이름을 알아내기로 했다.

  "너 이름이 뭐니?"

  "장순심이요."

  장씨라면 엄마의 성과 같다. 역시 외가 쪽 누군가일 거라고 생각했다.

  "너 혹시 장선희라고 아니?"

  나는 엄마의 이름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아뇨. 그게 누군데요?"

  ".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순심이는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순심이는 그녀가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 사라졌다. 나는 도저히 그녀를 쫓아가 볼 용기까지는 안 나서 다시 되돌아 나오기로 했다.

  장독 밖으로 기어 나오면서, 이 광경을 누가 본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독에서 기어 나오는 남자라니. 나는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자리에 눕자는 생각으로 장독 뚜껑을 다시 닫으려 했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외할머니가 나오셨다.

  "상을 네가 치웠어?"

  "." 

  외할머니는 비틀거리며 마당으로 나오셨다.

  "그냥 두지 뭘 치웠어?"

  외할머니는 취한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부엌을 향해 가셨다. 그런데, 가다말고 장독 뚜껑을 들고 있는 나를 보더니 물으셨다.

  "거기서 뭐해?"

  "……"

  나는 외할머니에게 내가 만난 소녀에 대한 얘기를 해주기로 했다.

  "여기도 누가 있어요."

  "?"

  "어린 여자애인데요. 이름이 순심이래요. 장순심. 혹시 누군지 아세요?"

  내 말을 들은 외할머니는 사색이 되더니 재빨리 장독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대뜸 안으로 들어가려 하셨다.

  "어어, 할머니. 잠깐만요."

  나는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 외할머니가 취하기까지 한 상태로 사다리를 내려가다가는 분명히 다치실 거라 생각했다. 나는 장독 앞에 쭈그려 앉았다.

  "저한테 업히세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외할머니는 사양할 여유도 없는지 급하게 나한테 업히셨다. 외할머니를 업은 상태로는, 사다리를 내려가는 것보다 장독을 넘어 들어가는 게 더 큰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사다리에 발을 딛는데 성공했다. 그나마 외할머니가 앙상하니 가벼우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바닥에 도달하자, 외할머니는 황급히 내 등에서 내리더니 터널 안쪽을 향해 빠르게 걸으셨다. 나는 외할머니가 그렇게 빨리 걸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할머니, 같이 가요."

  우리는 바쁜 걸음으로 순심이를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저편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잡았다.

  순심이를 발견하자 외할머니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사람처럼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얘야."

  순심이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본 외할머니는, 곧장 울음을 터뜨렸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숨도 못 쉬고 우셨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당황하기는 순심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순심이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할머니 왜 울어요?"

  순심이는 그렇게 묻고는 나를 보았다. 나도 대답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순심이를 꼭 안아주었다. 순심이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잘 지내니?"

  외할머니의 물음에 순심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너 어디 가는 거야. 여기서 뭘 해?"

  그러자 난데없이 순심이도 울음을 터뜨렸다.

  "영화 구경 다녀오는 길이에요.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그래, 말 안 해. 말 안한다."

  둘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외할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순심이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영화 구경 자주 다니지?"

  순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나오는 여자 배우들처럼 되고 싶어서, 그치? 최은희처럼 되고 싶어서 말야."

  "아니에요."

  "아니긴 왜 아니야. 내가 다 아는데."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머니랑 아버지가 아시면 혼날 거에요."

  "왜 혼이 나? 배우가 어디 나빠?"

  "그런 걸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래요. 저는 못생겨서 안 돼요."

  "누가 그런 말을 해? 네가 얼마나 예뻤는데……"

  외할머니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순심이를 안았다.

  "네가 얼마나 예뻤는데……"

  그러나 순심이는 문득 겁이 났는지 외할머니를 뿌리치고는 다시 저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얘야!" 

  외할머니는 소리를 치며 순심이를 쫓아갔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걸음으로 어린 소녀의 달음질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영석아. 저 애 좀 다시 불러다 다오. 꼭 다시 불러다 줘."

  나는 영문은 몰랐지만 외할머니가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데에야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순심이를 쫓아 터널을 달리기 시작했다.

  터널에 울려 퍼지는 내 발소리, 그리고 거친 숨소리,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앞 어딘가에서 달아나고 있는 순심이의 달음질 소리. 그 모든 소리를 비집고 어디에선가 노랫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노래가 도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터널에 벽에 빔 프로젝트처럼 영상들이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그 사진이 프레임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탓에 내가 달리면서 벽을 보면 마치 움직이는 영상처럼 보였다. 그건 모두 한국 고전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어디에선가 노랫소리와 함께 영화의 대사들도 들려왔다.

  "이제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나는 차라리 죽어버리겠어요."

  "당신을 향한 사무치는 마음이 죄가 될 줄은 몰랐소."

  촌스러운 대사들이 서로의 오디오를 씹고 맞물리며 정신없이 양쪽 귀에 들어왔다. 나는 마치 가장 혼란스러운 꿈의 한복판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순심이는 보이지도 않았고 그녀가 달아나는 소리조차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벽에 흘러가는 영상 속 배우들은 계속 바뀌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옛날 배우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말씀 마세요!"

  그 와중에 한 젊은 여배우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벽에 떠오른 그 얼굴은 다름 아닌 순심이였다. 나는 벽을 보고 멈춰섰다.

  ", 순심아!"

  나는 마치 영상 속에 있는 그녀가 대답이라도 해줄 것처럼 벽을 보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연기를 계속 이어나갈 뿐이었다.

  "제가 그걸 무슨 수로 하겠어요?"

  "순심아!"

  그 때, 뒤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떼지어 달려왔다. 성별과 나이는 제각각이었는데 모두 오래된 카메라 따위를 들고 있었다. 플래쉬가 연달아 터졌다. 나는 그들이 내 쪽으로 달려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나를 왜 찍어요?"

  그들이 멈추지 않을 기세로 계속 달려오는 바람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로부터 달아나기 시작했다. 내 뒤쪽에서 계속 오래된 카메라의 플래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 순심이가 등장하는 영화는 우리를 따라오며 끊임없이 상영되고 있었다.

  계속 달아나다 보니 저 앞에 누군가가 같은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장순심이다!"

  "저기 장순심이다!"

  나는 그제서야 그들이 내가 아니라 순심이를 찾아 달려가던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앞에서 뛰어가는 순심이를 보니 조금 전에 봤을 때와는 뭔가 달랐다. 사실, 뒤를 따르던 무리가 웅성거리지 않았더라면 순심이라는 것도 못 알아차렸을 정도로 훌쩍 자라있었다. 아까는 10대 소녀였다면 이번의 뒷모습은 언뜻 보기에도 스물은 넘어보였다.

  "장순심씨,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최구형 씨와의 이혼설이 사실인가요?"

  내 뒤를 따르던 무리가 앞서가는 순심이를 향해 큰 소리로 질문을 퍼부었다. 그들은 순심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순심이는 대답은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냥 뛰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순심이를 데려오라고 했으니 무작정 쫓았고, 기자들은 나보다 뒤에서 순심이를 취재하기 위해 우르르 쫓아왔다.

벽에 떠오르는 영상 속 순심이의 모습도 조금 전보다 나이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서 순심이를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그 때, 저 앞에서 길을 막듯이 지키고 서있는 한 여자가 나타났다.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난 처음에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더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그녀의 코 밑에 난 점 덕분에 알 수 있었다. 그건 젊은 증조할머니였다.

  "너는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들어와?"

  증조할머니가 순심이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순심이는 멈출 생각을 않고 증조할머니를 향해 계속 뛰었다.

  "너 내 말 안들리니?"

  "아아아아!"

  순심이는 빽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벽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풀쩍 뛰어 벽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 순간, 벽 속의 영상은 앞을 향해 냅다 뛰어가는 순심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니, 저 년이!"

  나는 증조할머니를 밀쳐내고 영상 속 순심이를 계속 쫓아갔다.

  "순심아, 잠깐만 기다려봐!"

  "넌 또 누구야?"

  그리고 내 뒤로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증조할머니는 그 인파 속에 섞여 들어가고 말았다.

  "아이구, 이건 또 뭐야!"

  나는 계속해서 벽을 바라보며 뛰었다. 잠시 후, 영상 속 순심이가 다시 방향을 바꿔 화면 쪽으로 뛰어 다가오는가 싶더니, 다시 벽에서 쑥 나와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터널을 달렸다.

  "배우 최무룡씨와 염문설이 있는데, 어떤 입장이십니까?"

  "이번 작품의 출연료로 얼마를 받으셨습니까?"

  "너 이러다가 시집은 언제 가려고 그래?"

  기자들의 질문 속에서 뭔가 이상한 물음 하나가 섞여 나왔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어느 새 증조할머니가 기자들 속에 섞여 카메라를 들고 뒤쫓아 오고 있었다. 하지만 순심이는 여전히 대꾸 없이 앞만 보고 뛰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갔다.

  잠시 후, 또 한 사람이 길을 막으며 등장했다. 외할아버지였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는 훨씬 젊었지만, 얼굴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넌 도대체 집안에서 뭘 하는 년이야? 쌀이 떨어지도록 뒤주를 채워 놓을 생각을 안 해?"

  순심이는 멈추지 않고 외할아버지를 향해 달렸다.

  "저녁 시간이 다 됐는데 집에 먹을 거라곤 씨가 말랐고, 그래 이제 뭘 먹고 살라는 말이냐?"

  순심이는 달려가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대답 안 해?"

  그리고 그녀가 꺼낸 것은, 제사 지낼 때 쓰는 지방이었다. 지방 끄트머리에는 밥풀 하나가 붙어있었다. 벽에 붙이기 위해 쓰는 용도였다. 순심이는 외할아버지에게 달려가, 밥풀을 아예 지방 채로 외할아버지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러자 지방에 적힌 한문들이 큰 글씨로 떠오르며 마치 외할아버지의 영혼이 날아가듯이 어딘가로 한 글자씩 쓸려 사라졌다.

  顯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그를 해치운 순심이는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나는 쓰러진 외할아버지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그에게 달려가 몸을 흔들었다.

  "할아버지!"

  내 뒤를 따르던 기자들이 나와 외할아버지를 거의 짓밟다시피 하며 우르르 지나갔다. 나는 몸을 웅크려 외할아버지를 껴안고 보호했다. 기자들이 지나간 후,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외할아버지를 살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어느 새 대여섯 살 꼬맹이가 되어 내 품에 안겨있었다.

  "으아앙. 으아앙."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할아버지……."

  "우리 엄마 어딨어요. 우리 엄마, 으아앙."

  ", 그래. 엄마 저깄어요. 엄마 저깄다."

  나는 일단 급한 대로 외할아버지를 등에 업은 뒤 계속해서 가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순심이와 기자들은 이미 멀리도 갔는지 통 보이질 않았다.

  "아저씨, 배고파요."

  등에 업힌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조금만 참아요."

  열심히 뛰어가니 저 앞에 기자 무리들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더 이상 그들은 달리지 않고 멈춰서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보았다.

  "잠시만요,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외할아버지가 등 뒤에서 내 말을 따라했다.

  기자들을 헤치고 나가보니 순심이도 등을 보인 채 가만히 서있었다. 거기는 터널의 끝이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순심이는 몸을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느 새 나이든 노인이 되어있었다. 그 모습은 지금의 외할머니였다. 나는 한참 동안 외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외할머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외할머니에게 차마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기자들의 시선은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무리 속에는 여전히 증조할머니도 있었다.

  "배고파."

  외할아버지가 정적을 깨고 한 마디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반응하지는 않았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기자 한 명이 내게 물었다.

  "뭐야, 질문 있어서 거기 나가 있는 거 아니야? 당신 어디 기자요?"

  ", 아뇨. 저는……"

  "질문 없으면 이리 들어와.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는 외할머니를 보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질문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생각나는 대로 아무 질문이나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이기도 했다.

  "누구세요?"

  안 그래도 썰렁한 분위기가 더욱 썰렁해졌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대답하셨다.

  "난 장순심이야."

  그 순간, 기자들의 카메라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일제히 플래쉬를 터뜨렸다. 하얀 빛이 터널을 뒤덮었다. 나는 섬광탄을 맞은 것처럼 앞이 보이질 않고 귀도 먹먹해졌다. 어디선가 찢어지는 이명 같은 게 들려와서 나는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막은 손마저 뚫으며 여러 가지 소리들이 귀에 들어왔다.

  "으아아아앙."

  외할아버지가 우는 소리였다.

  "순심아!"

  증조할머니의 외침 소리도 들렸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이 노래는 왜 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 비로소 주변이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두 귀를 막은 손부터 천천히 뗐다. 그러자 어디선가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독 뚜껑을 여는 소리였다. 눈을 떠보니 아침 햇살이 장독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빈 장독 안에 구겨지듯 넣어져 있었다. 장독 뚜껑을 열어준 건 외할머니였다.

  "술은 할미가 먹었는데 왜 네가 엉뚱한 데서 자고 있어?"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장독 밖으로 나왔다.

  "언제 나오셨어요?"

  "나오기는 아까 나왔지. 아침 차리려고."

  "장독대에서요?"

  "내가 독 안에는 왜 들어가? 노망이 나질 않고서."

  "여기 안 들어오셨어요?"

  ", 글쎄 거길 왜 들어가냬두."

  나는 다시 한 번 독 안을 살펴보았다. 사다리도 없고, 아무 내용물도 없는 그냥 빈 장독이었다.

  "근데, 여기서 순심이가……"

  "이 놈의 새끼가 어디서 할머니 이름을 막 불러?"

  나는 얼른 증조할머니가 있던 김칫독을 향해 달려갔다. 흙은 안 덮여있고 뚜껑만 닫혀있었다. 나는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잘 익은 묵은지가 가득 있었다. 나는 큰 혼란에 빠졌다. 내가 꿈이라도 꾼 건가. 외할머니는 부엌으로 향하며 말씀하셨다.

  "그건 이제 냅둬. 애초에 올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제야 갔지. 너 어디 가서 네가 본 거 함부로 떠들고 다니면 못쓴다."

  다행히 모든 게 없었던 일은 아닌 듯 했다.

  "그러면 저 장독은……"

  "저기는 들어가질 않았다니까. 하도 해괴한 일을 보니까 네가 꿈이라도 꿨나보다. 굿이라도 한 번 해야지, ."

  나와 외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아침을 먹었다. 마지막 밥풀 하나를 해치울 때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식사 후에 외할머니는 예상대로 집에 가져가라며 음식을 이것저것 싸주셨다.

  "먹을 게 없어 너희 줄 것도 몇 가지 없다."

  하지만 딱 봐도 대여섯 가지는 되어보였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그랬듯이 반찬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엄마에게 그대로 전하기 위해 열심히 들었지만, 몇 가지 말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처음 올 때만큼이나 많은 짐을 그대로 가지고 서울에 돌아가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떠나기 직전, 급히 방에 들어가시더니 만원 짜리 몇 장을 챙겨 나와 내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올라갈 때 차비해라."

  "안 주셔도 돼요."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양손에 가득 들린 짐 탓에 제대로 만류할 수가 없었다. 지폐는 주머니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애매하게 걸쳐졌다. 그대로는 걸어가다 떨어질 것 같아 잠시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고 지폐를 주머니에 제대로 넣었다. 나는 그 행위가 적극적으로 돈을 받는 모양새인 것만 같아서 내심 민망했다.

  나는 다시 짐을 들고 우물쭈물 거리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해서 올라가라."

  내가 인사를 마치고 대문을 나서려 할 때, 외할머니가 다시 말씀하셨다.

  "이번에 할미가 몸이 성찮아서 김장 못했다고 엄마한테 그래라. 내년 겨울에는 좀 해가지고 너희도 주고 니네 삼촌이랑 고모네도 주고 해야지."

  나는 그냥 ''라고 하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괜히 한 마디를 더 하고 싶었다.

  "그냥 두세요. 먹고 싶으면 알아서 해 먹겠죠."

  "김장이 보통 일이야? 니네 엄마만 해도, 허리란 게 한 번 다치면 평생을 조심해야 하는거다."

  나는 '그럼 제가 하죠,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고 대문을 나섰다.

  그 해 겨울의 이상한 일은 두고두고 생각났지만 외할머니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외할머니 댁에 다시 갈 일이 있을까 내심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럴 일은 없었다. 외할머니가 김치를 꼭 해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다음 해 겨울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후로 매년 우리 집에서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제사를 같이 지냈다. 아버지가 지방을 제대로 쓸 줄 아셨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분을 영정사진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뵙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 용택

ladypane@naver.com

010 3339 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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