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대신 써드립니다

by 이선재 posted Feb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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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써드립니다



죽음을 앞두고 가장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어려서부터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어쩌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작용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결국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평범한 글은 아니라는 것을 감히 이야기한다. 조금 특별한, 소설이나 에세이 따위의 글과는 다른 유의 것이다. 내 작업은 은밀하게 진행된다. 내 작업물은 청탁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나는 그를 만나 찬찬히 이야기를 듣는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완성하고 나면 의뢰인에게 전달하고,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일을 하면 굉장히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암 투병으로 고생하다가 끝내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버린 한 노인. 보증을 잘못 선 탓에 산더미 같은 빚을 지고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한 중년 남성. 심지어는 왕따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한 어린 소녀도 있었다.

나는 의뢰가 들어오면 특별한 심사나 절차 없이 대부분을 승낙한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삶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많은 이들을 만나는 만큼 내게 각인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여간해서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회상할 수 있다면 특별한 사건이 있었거나,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었거나―하지만 이것은 극히 드물다―하는 나름의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의뢰인이 나를 스쳐갔지만 역시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K라는 여자다. 그녀를 의뢰인으로 만나게 된 건 오 년쯤 전의 일이다. 그녀는 여태껏 만나 온 그 누구보다도 특별했다.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인터넷을 뒤적이던 한밤중이었다. 새로운 인터넷 메일이 한 통 와있었다. 상대편이 보내기 버튼을 누른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은 메일이었다.

‘4월 17일 오후 3시, 기다릴게요.’

보낸 이는 K라는 사람이었다. 파란 글씨로 써져있는 문구 위로 커서를 갖다 대고 가볍게 검지로 마우스를 눌렀다. 새로운 창으로 전환되며 내게 보인 것은 달랑 연락처와 일정, 그리고 오는 길이 안내되어 있는 지도가 담긴 첨부파일뿐이었다. 이미 그 전에도 다수의 메일을 보아온 나지만, 약속을 정한 뒤 내게 메일을 보내온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 특별한 만남이 될 것만 같았다.

그녀를 만나러 들어간 카페는 한적했고 장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힙합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별하고 나니 모든 게 다 그저 그렇다는 내용의 가사였다. 이인조 그룹의 노래였다. 사실 삶이란 모두 거기서 거긴데 말이야. 언제부터 그곳에 앉아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K는 이미 라테를 한 잔 시켜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K에요.” 그녀는 어깨선에 살짝 걸치는 단발머리였다. 하얀색의 반팔 상의와 연청색의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옅은 화장이 수수하게 얼굴을 덮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가명을 쓸 수도 있지만 이름을 생각해내는 일은 내게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명을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편하신 대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정말 아무렇게나 불러도 돼요?” K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네.”

“뭐라 불러야 하지.”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그보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글쎄요. 그럴 리가요.”

“가격은 얼마 정도?”

“의뢰인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보통은 몇 만 원 선에서 정해집니다.”

“계좌 이체는 안 되겠죠?”

“현금으로만 받습니다.”

“좋아요. 완성되면 그때 드릴게요.”

머그컵을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조금 이상했다. 자해의 흔적임이 역력했다. 한두 번 봐 온 상처가 아니었다.

“아, 이거요? 자해한 거예요. 칼로 슥, 슥.” 상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나를 의식한 듯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마치 무언가를 쥐고 있는 양 왼쪽 손목 위에서 두어 번을 휘저었다. 아마 그날의 칼날이 지금 다시 한 번 그녀의 살갗을 갈랐겠다. 실같이 가는 상처 위로 피가 송골송골 맺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했다. 마치 거미줄에 빨간 이슬이 맺혀있는 모양 같았다고 덧붙였다.

“어디선가 봤던 내용인데, 루비는 빨간색에 의해 평가된대요. 그 빨강 중 가장 아름다운 색이 비둘기 피의 색이라던데. 피죤 블러드. 비둘기 피를 실제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피도 나쁘지 않을 걸요. 휴먼 블러드. 괜찮지 않아요? 아름답잖아요. 강렬한 빨강.”

그렇군요, 하고 무심히 답하고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입에 넣었다. 씁쓸한 풍미가 입안 가득히 퍼져갔다.

“술 좋아해요? 술 마시러 안 갈래요?”

“그러죠.”


K가 나를 데려간 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거실과 방 한 칸밖에 없는 조그만 집이었다. 집 안은 꽤나 깨끗했다. 마치 처음부터 나를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이었던 것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언젠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편하게 얘기하고 싶어서요, 괜찮죠?”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고 나는 그곳으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회색의 소파는 세 명 정도는 넉넉히 앉을 수 있을 크기였다. 그 앞에는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원목 무늬가 인상적인 나무 테이블이었다.

“술은 어떤 걸로?”

“뭐가 있죠?”

“소주랑 맥주 밖에 없어요.” 그녀가 웃었다. 이어 유리병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소주와 맥주를 꺼내왔다.

“소맥 먹어요?”

“주면 다 먹습니다.”

그녀는 유리잔에 일정 비율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따랐다. 그리고 짠, 하고 내게 건넨 잔과 그녀의 잔을 부딪쳤다. 맑은 울림이 들려왔다. 그녀는 크게 두어 모금 입에 물어 삼키고는 잔을 소파 앞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리고는 무릎을 품으로 끌어당겨 쭈그리고 앉았다.

“아주 캄캄한 밤에 걸어봤어요? 달빛도, 가로등 불빛도, 심지어 별빛도 없는 그런 밤이요.” 그녀는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게 물었다.

“아니요.”

“그런 어둠을 걸을 때, 가장 무서운 게 뭔 줄 알아요?”

“글쎄…….”

“빛이에요. 잘 이해가 안 가죠? 그런데 말이에요. 정말 아무것도, 나 자신도 안 보일만큼 짙은 암흑에 길들여진 사람은 오히려 빛이 무서운 거예요. 너무 눈부시고……. 무엇보다, 나를 봐야하니까.”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밑이 촉촉이 젖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검지로 눈가를 훑었다.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중학교 때, 성폭행을 당했어요. 제 남자친구한테요.”

나는 말을 않고 잠잠히 있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였죠. 그때는.”


K의 중학교 삼 학년 여름방학. 그것은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그녀가 어둠을 걷기 시작한 때. 그녀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친구가 있었다. J였다.

“8월 5일에 우리 집 올래? 그날 집 비거든.”

둘이 만난 지 일 년 되는 날이었다. 그가 무언가 준비했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기대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다. 일말의 의구심도 없었다. 둘은 매우 행복하게 잘 지내왔으니까.


제가 미친년이었죠.


당일이 되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탁자 위에 놓인 초록색 병에 담긴 술이었다. 어디서 구해왔나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술을 권했다.

“한 잔만 마시자.”

“싫어…….”

“딱 한 잔만.”

K는 마지못해 J의 말을 들었고, 그 한 잔은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었다. 꽤나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을 즈음, 그가 그녀에게 다가와 입을 맞췄다. 역한 술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술기운에선지 분위기가 금방 고조됐다. 그녀의 입으로 그의 혀가 미끄러지듯 들어오고 그녀는 생의 첫 키스를 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 쪽을 향했다. 그녀는 거기까지는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J의 손은 K의 허리춤으로 파고 들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를 반사적으로 밀쳐냈다.


살결을 따라 물 흐르듯 매끄러운 움직임이었죠. 아직도 생각할 때마다 토할 것 같네.


K가 바라보던 세상이 점점 일그러지고 이곳저곳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취기가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 그녀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런 그녀에 비해 J는 너무 멀쩡했다. 그는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붙잡았다. 그녀의 기억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 살을 에는 듯한 고통. 그것들만이 그녀의 기억에 또렷이 자리했다. 그녀가 눈을 뜨자 머리가 깨어질 것처럼 아파왔다. J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바지는 허벅지까지 내려와 있었고, 윗옷은 그녀의 젖가슴이 보일 듯 말 듯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다.


차라리 꿈이길 바랐어요. 당연히 아니었고……. 그런데 그 새끼 하는 말은 가관이었죠.


“일어났어? 얼마 안 먹었는데, 술이 약하네. 앞으로는 술 조금만 먹어야겠다.” K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녀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눈물은 쉴 새를 모르고 뚝뚝 땅으로 떨어졌고, 그녀의 어깨는 심하게 들썩였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K는 아무 사고를, 심지어 옷매를 단장해야겠단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덮친 비극 앞에 무력하게 쓰러져있었다. K가 계속 숨이 넘어갈 듯 울부짖자 J가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참…….”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번에는 그녀를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K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과 콧물로 가볍게 바른 비비크림이 뭉개져있었다.

“괜찮아? 많이 아팠어?”

그녀는 말이 없었다.

“K야. 사랑하면 다 하는 거야 그건. 사랑하잖아 우리는.”

K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윗옷이 그녀의 배위로 펼쳐져 떨어짐과 동시에 바지는 무릎 부근까지 내려갔다. 그녀의 하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떨리는 손을 가져다 바지를 간신히 추켰다. 단추를 잠갔지만 지퍼를 올릴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여전히 끅끅거리며 그녀는 말했다. 누군가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무거운 발을 끌다시피 움직여 그의 집에서 빠져나왔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조차 모르고 K는 어느새 그녀의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린 채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날 밤, K의 이마는 열이 펄펄 끓었다. 방문이 열리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과 함께 그녀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K야.”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는 침대에 다가가 걸터앉았다. 끙끙거리는 K를 본 아버지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녀의 몸을 덮고 있는 이불 위로 손을 살포시 얹었다. 그 감촉은 불과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났던 끔찍한 비극을 상기시키며 그녀의 비명을 이끌어내고야 말았다.

“저리 가!”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얼핏 보기에도 그녀는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때 당시에는 아빠가 괴물처럼 보였죠. 고열에 환각을 본 거죠. 꼭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임신……. 테스트기…….”

K는 다음 날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 어줍은 자세로 약사에게 속삭였다. 아주 작은 소리여서 약사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듯 “네?”하고 물었다.

“임신 테스트기요.”

그녀는 얼굴이 괜히 화끈거렸다. 약국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를 향해 수군거리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약사의 눈빛도 괜히, 네가 왜 이런 걸 구매하니, 하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K는 꼬깃꼬깃하게 접힌 돈을 건네고 임신 테스트기 두 상자를 구매했다. 어린 나이의 K에게는 적잖은 돈이 들었다. 그녀는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와 두 개를 모두 시험해보았으나 모두 한 줄만 또렷이 나타날 뿐이었다. 그녀는 검은 봉투에 사용한 키트와 상자들을 넣어 집밖으로 나가 쓰레기 더미에 던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배를 한참동안 주먹으로 내리쳤다.


무서웠거든요. 결과가 모두 잘못 나온 것 같았어요. 웃기죠? 아니라는데, 자꾸 나만 맞다고 하는 거예요. 내 뱃속에 무언가가 자라고 있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때리고, 또 때렸어요. 그러면 없어질 것 같아서.


“그렇게 제 인생은 다 망가져버렸죠. 학교를 관두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K가 내게 말했다.

“힘들었겠네요.”

“이래저래 병원 가서 우울증 약도 먹고, 수면제 받아서 잠도 자보고.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고 용케 여기까지 왔네요.”

K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그녀의 눈두덩이 조금 붉었다. 그리고 잔을 마저 비웠다. 우리는 계속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사소한 물음과 답변도 있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거 아녜요.”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다 죽었나요?”

“그럼요.”

“대단하네.” 그녀는 또 피식 웃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도 그녀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민감하게 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다고 할까.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진짜 내일 당장이라도 죽게 될 사람과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낼 사람. 주위를 살펴보라. 과연 당신은 구별할 수 있을까?

“근데 왜 안 말려요? 죽는 거 말이에요.”

“말려주길 바라요?”

“아뇨. 말려도 다를 건 없을 거예요.”

“죽음은 개인의 권리니까요. 제가 침해할 수 없죠.”

어쩌면 사람들은 나를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사람의 죽음을 방관하고, 그것도 모자라 유서를 대필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꼭 살아야 하는 것인지. 생명이 왜 존엄하다는 걸까.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다면 내게 메일을 보내주길 바란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행복하지 않다면 살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이 삶보다 행복하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맞는 걸까. 그 누구도 우리에게 삶을 강요한 적 없다. 단지 우리의 착각일 뿐. 착각 속에 무의미하게 연명하는 것이다. 창조는 신의 권한이지만 파괴는 우리의 권리다.

“그 얘기 들었어요?” 그녀가 물었다.

“어떤 얘기요?”

“마포대교 난간에 뭘 설치한대요. 글귀가 적혀있다나 뭐라나.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서래요.”

“들어본 것 같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래도 자살률이 줄지 않으면 그땐 어떡할 것 같아요?

“글쎄요.”

“이건 제 생각인데 아마 난간을 높이려 들 걸요. 죽기 힘들게 만들려고 난리더라고요. 아니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라도 해주든가. 두고 보세요. 제 말대로 될 거에요.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니까요!”

그녀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이내 웃음보가 터졌다. 그녀는 살짝 취기가 올라보였다. 볼이 발그레 물들었다. 나도 그런 모습의 그녀를 따라 웃었다. 그러네요, 라고 말하며.

“시간이…….”

나는 손목에 둘러져있던 시계를 바라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늦은 시간이었다.

“가야 해요?” 그녀가 물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것 같아서요.”

“그럼 잠시만.”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 대략 일 분쯤 지나 손에 하얀 봉투를 들고 나와서는 쥐고 있던 것을 내게 건넸다. 봉투를 건네받은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돈이에요. 적지는 않게 넣어뒀어요.”

“왜 지금 주는 거죠?”

“잘 써달라는 뇌물? 뭐, 그런 거죠. 얘기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알겠어요.”

나는 현관으로 다가가 신발을 신었다. 그때 등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안 건네주셔도 괜찮다고요. 유서 말이에요.”

“그럼 돈을 받을 수 없어요.”

“아뇨. 돈은 받으세요. 글도 써주시고요. 다만 건네주지 마세요.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얘기할 수 있어서 됐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앞으로도 글 잘 쓰시고!” 그녀는 나를 내쫓듯이 밖으로 밀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 안에서 미처 정리할 수 없었던, 그녀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감정들이 나와 함께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의뢰인인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홀가분해 보였다. 어쩌면 내가 그 짐을 떠안게 되어 버린 것일지도. 눈앞에서 철제의 현관문이 굳게 닫혔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안에서 열리지 않을 테지.

건물 밖으로 나오니 밖은 어두웠다. 사월의 날은 그리 춥지 않았다. 길거리는 황량했다. 이따금 차도로 차량 한두 대만 지나다닐 뿐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습기를 머금은 밤공기만이 거리를 그득히 메웠다. 공기 중의 물 분자가 몸에 닿는 것 같았다. 길을 걸어가며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아주 캄캄한 밤에 걸어봤어요? 달빛도, 가로등 불빛도, 심지어 별빛도 없는 그런 밤. 그런 어둠을 걸을 때, 가장 무서운 게 뭔 줄 알아요? 빛이에요. 잘 이해가 안 가죠? 그런데 말이에요. 정말 아무것도, 나 자신도 안 보일만큼 짙은 암흑에 길들여진 사람은 오히려 빛이 무서운 거예요. 너무 눈부시고……. 무엇보다, 나를 봐야하니까.’

빛이 무서울 정도로 암흑에 길들여진 기분.

나는 그녀가 느꼈다는 그 기분을 이해하려 애써보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왜인지 알 듯하면서도 평생토록 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일 것 같았다. 밤의 따뜻한 봄기운이 볼에 스쳤다. 그 누구도 닦아주지 못했을, 수없이 홀로 닦아냈을 그녀의 눈물을 생각했다. 나는 손으로 두 볼을 훑었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럴 법 했다. 내가 K를 처음 만난 건 의뢰인으로서가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삼 학년,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J는 나의 친구였다. 우리는 사춘기를 한창 지나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리고 그녀는―그녀뿐 아니라 다른 여학생들도―몰랐겠지만 승하를 비롯한 남자아이들은 이따금씩 음란한 이야기들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그들의 여자 친구이거나,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다른 여학생들이었다.

“했냐?”

“뭔 개소리야. 뭘 해.”

“섹스.”

“미친 새끼. 우리는 플라토닉 러브야.”

“지랄하네. 지나가던 개새끼도 안 믿겠다. 네가 무슨.”

우리는 이런 얘기들을 대수롭지 않게 키득거리며 나눴었다. 그곳엔 나도 있었고, J도 있었다. 그리고 웬만한 남자 아이들은 모두 있었다. 오히려 대화에 끼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되곤 했다. 그때 그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문화 중 하나였던 셈이다.

“야, 너는 솔직히 했지?”

“아니. 우리는 뽀뽀밖에 안 했어.”

“지랄하지 말고. 진짜로?”

“응. K가 좀 철벽이잖아.”

“하긴. 그래도 할 건 다 할 거잖아, 그치? K랑은 해야지. 이쁘고, 몸매도 괜찮고.”

“그치. 안 그래도 팔월에 우리 집 빈다.”

“이야!”

아이들은 요란을 떨었다. 박수도 쳐댔다. 그 당시 썩 내키지는 않은 대화였지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여자를 좋아한다니. 비난 받을 일이었다. 그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됐다. 나는 K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런 새끼와 사귀는 걸까. 그리고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끔찍한 대화에 끼어 웃고 있는 걸까.

팔월이 지나고 다시 대화는 이어졌다. 주제는 J와 K의 섹스 여부였다. 그것은 엄연한 강간이었으나, 그때의 나를 비롯한 우리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승하가 진위를 엄폐하고 내용을 다르게 전한 까닭이었다.

“만났냐?”

“했지.”

“와. 어떻게 했냐. 대단하네.”

“술 조금 먹고. 분위기 타서 키스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어떻게 잘 했어.”

나는 그 대화의 장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K도 결국 J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그에게 몸을 내어줄 수 있었을 만큼. 내가 낄 자리는 없어보였다.

방학이 끝나고 K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상하게 여겼지만 J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우리의 의문을 해결해준 것은 담임교사였다. K가 한동안 아팠고, 집에 일이 생겨 갑작스레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K는 실제로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반 여자 아이들은 아쉬워했고, 남자 아이들도 왜인지 모르게 아쉬워했다. 승하는 특별한―조금의 양심이라도 있었다면 보였을만한, 아니 보였어야 할―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K라는 아이는 잊혀져갔다. J는 다른 여자를 새롭게 사귀었고, 그에 따라 대화 주제로 거론되는 여자도 계속 바뀌어갔다.

그리고 의뢰인과 피의뢰인의 관계로 K와 나는 다시 만났다. 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집에 돌아온 나는 컴퓨터를 켜고 그녀의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평소 해오던 방식 그대로였다. 내가 그녀에 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모두 제외하고 철저히 그녀의 시선, 그녀의 이야기만을 담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K가 되어 남자 아이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손목 위로 칼을 그었으며,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글을 완성한 후에는 따로 인쇄하지 않고 파일을 하드디스크 가장 깊숙한 곳에 저장만 해두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 파일을 열지 않았다. 열고 싶지 않았다.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 벽장 속의 낡은 책처럼. 먼지가 그 위로 소복하게 쌓여있을 것이다. 세월이라는 먼지가.

K는 결국 그녀의 의지에 따라 죽음을 선택했다. 우리가 함께 대화를 나눴던 소파에 누운 채로 죽었다. 그녀의 왼팔에는 예닐곱 개의 빨간 실낱같은 가로줄과 깊고 긴 세로줄 하나가 그녀의 지난 아픔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어져있었다. 그 세로줄에서 흐른 피는 검붉게 그녀의 팔과 바닥을 적신 채 굳었다. 소파는 빨간 피를 머금어 검은 빛이었다. 다량의 항우울제와 수면제도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있었다. 그녀의 눈썹이 살짝 젖어있었다.

“아이고, 어쩌다가 저리 됐을까.”

“정말 싹싹하고 사람 좋아보였는데. 에이, 쯧쯧.”

“자살? 어휴. 요 며칠 새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K가 살던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한 줄 씩 논평했다. 그것은 저마다의 모양새를 띨 뿐 내용은 대부분, 그녀가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라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었다. 죽을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주변에 있을 리가 있겠느냐고. 그러나 죽음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다.

그녀는 그렇게 죽어 버렸다.




어제 중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J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나가기로 했고, 그곳에서 만난 그는 생각보다 너무 잘 살고 있었다. 오백 쯤 되는 돈을 매달 꼬박꼬박 벌어오는 능력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아 결혼했다. 그녀는 J보다 네 살 연상이었다. 둘 사이에는 세 살 터울의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딸이 있었다. 얼핏 들리는 이야기로 추측컨대 가끔 J는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도 섹스를 즐기는 것 같았다.

동창들은 K에 대한 소식은 못 들은 것 같았다.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힌 건 아닐까 생각되었지만 애써 그들의 과거를 더듬어보게 하지는 않았다. 관심이 없는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다들 각자의 모습으로 잘 살고 있는 듯했다. 그곳에서는 내 의뢰인으로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행복해보였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어쩌면 잊기를 간절히 원했었던 파일을 다시 열어보았다. 이전에 썼던 그 글이 그대로 화면을 채웠다. 밤이 늦도록 찬찬히 다시 읽었다. 고요한 정적 그 너머에서 그리운 K의 목소리가 내게 들려왔다.



아빠.

사랑하는 우리 아빠. 막상 누군가에게 글을 남기려니 아빠 밖에 떠오르지 않네.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서인가 봐. 엄마는 날 낳고는 얼마 되지 않아 돌연 저세상으로 떠나버렸고, 아빠한테 남은 건 나 하나뿐이었잖아. 아빠가 그랬듯 나에게도 그랬어.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있어 전부였어.

그런데 있잖아. 이제 아빠가 그렇게 사랑하고 아껴주던 하나 뿐인 딸은 더 이상 없어.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없었는지도 몰라. 사랑스러운 딸이 갑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 속에 숨어버린 열여섯 살의 어느 날부터 말이야. 그날부터 아빠의 세상도, 나의 세상도 무너졌었어. 난 이미 그날 죽었던 걸지도 몰라. 사람이 꼭 심장이 멎고 호흡이 끊겨야만 죽는 건 아닌가 봐.

아빠한테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이 있어. 이제야 솔직하게 털어놓는 나를 용서해줘. 사실 아빠 몰래 남자 친구를 사귀었었어. 중학교 삼 학년 때야. 중학교 이 학년 즈음 내가 친구랑 놀러간다고 하는 때가 부쩍 많아지자 아빠는, 혹시 아빠 말고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하고 장난삼아 말했었잖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 밖에 없지, 하고 대답했었고. 미안해 아빠. 그때 그 말은 거짓말이었어. 그 아이를 정말로 좋아했었어. 내게 아빠가 아닌 다른 세상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잠깐 동안 느꼈어.

그 아이는 나한테 되게 잘해줬어. 날 사랑한다고 말했어. 왠지 모르게 아빠가 생각나더라. 내가 그 아이의 전부가 되고, 그 아이가 나의 전부가 되었다고 생각했어. 아빠랑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어.

팔월의 어느 날, 그 아이는 내게 자기 집이 빈다고 놀러오라고 말했어. 그래서 찾아간 나는 걔네 집에서 술을 처음 먹게 됐고, 처음으로 키스라는 걸 했어. 영화에서나 보던, 차마 부끄러워 빤히 보지 못했던 어른들의 문화. 그걸 내가 했던 거야. 그리고 그날, 나는 당해서는 안 될 일을 당해버렸어.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아는 게 없었어. 갈기갈기 찢겨 내팽개쳐졌어.

이후로 내 모든 것이 변해버렸어. 나는 더 이상 아빠를 사랑할 수 없었어. 심지어 아빠를 증오하기까지 했어. 단지 아빠가 그 아이처럼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빠는 갑자기 달라져버린 나의 태도에 적응하지 못했어. 아빠도 내게 뭔 일이 일어난 건지 어느 정도 짐작했을 거라 믿어. 하지만 아빠는 그걸 부정했지.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이, 하나 밖에 없는 아빠의 전부인 딸이 차마 그런 일을 당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거야. 신문에서나 볼 법한, 하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당해오고 있었던 그 일이 딸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싫었겠지.

아빠는 현실과 그 부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나를 의도치 않게 방치해버렸고 나는 그런대로 아빠를 무시했어. 나는 열아홉 무렵 혼자 떠났고 연락도 끊어버렸잖아. 아빠는 아빠의 세상에서 버림받았던 거야.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아빠한테는 정말로 나밖에 없었는데.

결국 얼마 안 가 연락이 아예 두절됐고 아빠마저 날 포기해버렸구나 싶었어. 그렇게 그냥 살았어.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아빠 소식을 듣게 됐는데, 집에서 목을 매고 죽었대. 그런데 아무도 몰랐고. 아빠가 한동안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던 경비 아저씨가 집에 찾아가서야 아빠가 발견됐다고 하더라. 이 소식을 전하면서 경찰이 내게 물었어. 따님 맞아요? 라고.

그 후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내가 뭘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아니, 할 수도 없어. 캄캄한 암흑이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좋았어. 발가벗은 채 피 흘리는 나조차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빛을 피해 다녔어. 너무 무서웠어.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보일까 봐. 나의 실루엣만을 보고 사랑한다며 다가온 그들이 피투성이인 나를 보고 혐오에 가득 찬 표정을 짓는 게 보일까 봐.

어디로 가는 지도, 어디에 있는 지도 알 수 없어서 너무 힘들다. 이제 그만 걷고 싶어. 이제껏 걸어오긴 한 걸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가도 가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아. 열여섯 살의 그날, 그리고 아빠가 죽은 그날에 난 계속 서있나 봐.

아빠. 어느 날부터 닫아버린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그 말, 끝까지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사랑했어.


새 화면을 띄우고 백지에 글을 써가기 시작했다. 내용은 두루뭉술하다. 자세히 모르니까. 처음으로 의뢰받지 않은 사람의 글을 작성했다. 이제 이 일도 그만두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그만두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는 그 혼자만 있었다. 밧줄로 목을 조르고 천장에 매달았다. 유서를 옆에 두었다. 교수絞首와 유서. 그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심지어는 두 딸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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