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조용한 다리

by 문학초보 posted Feb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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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하승이가 죽은 줄만 알았어요.

우리는 높은 다리 위에 있었습니다.

규웅이가 다리의 난간 밖 틈에 간신히 서있었어요.

규웅이의 가느다란 두 팔은 난간에 간신히 걸쳐 있었고요.

팔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지 못하면 모를 정도로 미세하게요.

만약 바람이라도 쌔게 불면 떨어져버릴 것 같았어요.

저는 규웅이가 난간 안으로 들어오길 간절히 바랬어요.

만약 떨어진다면 크게 다칠 수 있을 정도로 높았거든요.

그런데 박하승 그 망할 놈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야 빨리 뛰어내려 겁쟁이야.

넌 남자도 아니다.

이것도 못 뛰어 내리냐?-

 시간이 흘러갈수록 규웅이 머리는 땀으로 젖어갔어요.

바람도 불지 않아서 땀에 젖은 머리가 이마에 덕지덕지 붙었는데 난간을 잡으랴 머리한번 넘기지 못했어요.

저는 규웅이를 구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 하승이가 너무 무서워서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어요.

  하승이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을 하곤 했고, 나쁜 짓을 할 때면 나쁜 아이가 아니고 나쁜 어른같이 보였어요.

그런 점이 어린 나에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누군가가 지나가길, 그래서 규웅이를 구해주길 바랬어요.

그러나 단 한사람도 지나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크고 넓은 다리였는데도 말이에요.

-만약 규웅이가 떨어지면 뼈가 부러지거나 피가 나겠지 구급차를 불러야 될 걸? - 이렇게 중얼거려봤지만 하승이는 관심도 없어 보였어요.

결국 아주 작게 그만해라고 말했어요.

그만해라고 말하자마자 다리아래를 바라보던 규웅이가 몸을 돌려 하승이를 바라보려고 했어요.

그런데요....

그 순간에 하승이가 규웅이의 등을 강하게 밀쳤어요.

결국 규웅이는 다리 아래로 떨어졌어요.

끔찍한 광경이었어요.

아등바등 거리며 떨어지는 규웅이며, 더 끔찍했던 것은 하승이의 태도였어요.

떨어지는 규웅이를 아무렇지 않게 마치 책이나 그림을 보듯이 바라보는 거예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에요.

  규웅이는 다리에서 떨어진 것 때문에 시내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요.

그때 아버지 차를 타고 하승이와 병문안을 갔었어요.

저는 차안에서 정말 잊지 못할 하승이의 표정을 또 봤어요.

아버지는 운전을 하셨고 저랑 하승이는 뒷 자석에 앉아있었어요.

하승이는 우리 아버지가 어색했는지 줄곧 창밖만 바라보더라고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창밖을 보는 것이 아니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더라고요.

하승이는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내가 보는지 몰랐었나 봐요.

거울을 보며 혼자 표정연습을 하는 배우처럼 여러 가지 표정을 짓더라고요.

찡그린 표정, 화난 표정, 소리 없이 웃는 표정들이요.

표정연습을 하는 배우 같았다고 했잖아요.

정말이에요.

찡그릴 때 생기는 미간의 주름이며, 화났을 때 떨리는 입술이며 가장 사이코 같은 표정은 웃는 표정이었어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어떻게 했냐면 이렇게

(주인공은 하승이의 표정을 짓고자 얼굴을 움직였다.)

  그날 규웅이를 만날 수 없었어요.

규웅이가 우리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데요.

저는 규웅이를 이해해요.

그런데 규웅이 어머니는 아직도 모를 거예요.

규웅이가 어떤 이유 때문에 우리를 안 만나고 싶어 했는지요.

하승이가 규웅이를 밀친걸 아무도 모르거든요.

 

 

(짧은 침묵)

  규웅이가 떨어진 다리는 2차선치고는 넓고 긴 다리였어요.

그런데 다리 위를 지나다니는 차는 거의 없었어요.

왜냐면 작은 시골마을에 올 사람은 별로 없거든요.

어른들이 시내를 나가고 돌아올 때나 다리가 제 일을 했어요.

 다리는 원래의 용도와 다르게 우리 놀이터에 가까웠지요.

여름이면 시원한 다리 밑에서 놀았고요.

다리 가장자리에는 아래로 내려갈 수 있게 경사진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되어있었는데 겨울에 눈이 쌓이면 그곳에서 눈썰매를 만들어 타곤 했어요.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그 다리만이 아스팔트로 덮여 있었어요.

그래서 다리위에서 자주 자전거를 자주 탔었어요.

  다리가 있기 전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데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말해줬었는데요.

정말 아름다운 징검다리였다고 해요.

사진작가들이 와서 사진을 찍어가기도 하고 외지 사람들이 많이 놀러 올 정도로요.

 징검다리 주변으로는 모래사장이 쭉 펼쳐있었데요.

그 모래사장에서 마을축제도 하고 전이랑 음료수 같은 걸 외지사람들한테 팔면서 돈을 벌었다고 했어요.

또 긴 송곳으로 모래사장을 찌르고 다니다보면 쇠꼬챙이에 자라가 꿰어 나왔데요.

그렇게 잡은 자라도 팔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다리가 생기면서 징검다리가 없어지고 콘크리트 구조물이 물이 흐르는 일부를 막아서 모래사장이 없어졌고 결국 돈을 벌려면 시내로 나가야만 했데요.

정작 마을사람들이 시내를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쓸모없는 다리인데 많은 것이 사라졌어요.

 하승이이 이야기를 계속 할게요.

하승이는 두려운 존재에요.

그 놈만 생각하면 그놈 옆에서 나쁜 짓을 말리지 못한 죄책감이 들고요.

아까 말했듯이 그놈이 지었던 표정들이 생각날 때면 등골이 오싹해져요.

 다들 어렸을 때 추억을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나 살았던 지역을 어른이 되고나서 찾아가기도 하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하승이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가지도 못했어요.

왠지 하승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인사를 할 것 같거든요.

마을로 갈려면 규웅이가 떨어졌던 다리를 건너야하는데 왠지 다리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다리를 지날 때 갑자기 튀어 나올 것만 같아요.

 

(짧은 침묵)

  민정이 누나는 우리보다 한 살 많은 누나였어요.

처음 민정이 누나를 만났을 때 큰 도시에서 왔다면서 자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그리고 정말 예쁘게 생겼었어요.

아마도 하승이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한번은 민정이 누나와 하승이와 다른 친구들끼리 다리 밑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놀았던 적이 있어요.

우리는 어른들에게 각자 친구 집에서 놀고 온다고 거짓말을 치고 모였던 거예요.

그렇게 거짓말을 치고 모일 때면 다리아래가 가장 숨기 좋았었어요.

하여튼 우리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쭉 둘러않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어댔었어요.

  저는 이상하게 모닥불을 보면 술에 취한 것처럼 정신이 혼란스러워져요.

그런데 그런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아서 즐기는 편이에요.

그때도 그랬어요.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하승이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치는 거예요.

-나는 불이 무섭지 않다! 나는 날파리처럼 불로 뛰어 든다!-

정말 지금생각해도 미친놈이 아닌가 싶어요.

어린애가 할 말은 아닌데요.

 더 심한 말을 하더라고요.

나뭇가지로 주먹 크기에 숯을 하나 꺼내더니 민정이 누나한테 대뜸 맨손으로 만지라고 말하는 거예요.

민정이 누나는 마치 다리 위에서 고민하던 규웅이처럼 느껴졌어요.

시끄럽게 웃어대던 친구들은 갑자기 조용해졌고요.

하승이의 얼굴은 무서운 어른처럼 보였어요.

모닥불에서 나온 붉은 빛이 하승이 얼굴에 반사되어서 더 무섭게 보였어요.

누나가 숯을 잡지 않으려고 하니깐 하승이가 누나의 티셔츠를 숯이 있는 쪽으로 잡아 당겼어요.

티셔츠가 늘어나면서 누나의 쇠골하고 가슴이 보였어요.

그런데 누나의 속살에 상처들이 많이 있었어요.

저는 그 상처가 하승이가 만든 것이라고 직감했었어요.

그 순간 엄청난 고민이 생겼어요.

저는 머릿속으로 하승이를 때려눕히는 상상을 했어요.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려고 했어요.

  하승이가 머뭇거리던 누나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속삭였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누나가 맨손으로 숯을 잡으려고 하는 거예요.

-야 잡지 말고 입으로 물어!-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생각했던 데로 당장 녀석을 때려 눕일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누군가 뒤에서 제 머리를 강하게 때렸거든요.

누가 때렸는지 모르겠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누워있었어요.

그 뒤로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어요.

 

(긴 침묵)

  제 이야기를 계속 들어줘서 고마워요.

요즘은 이런 꿈을 꿔요.

다리 위에 하승이가 서있고요.

규웅이가 신나게 하승이 주위를 뛰어 다니다가 갑자기 토끼처럼 다리 아래로 폴짝 뛰어내려요.

또 이런 꿈도 꿔요.

제가 다리 밑으로 콘크리트 구조물을 밟고 내려가요.

다리 밑은 조용하고 어둡게 느껴져요.

그런데 갑자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민정이 누나가 나타나요.

너무 아름다운모습이에요.

피부에서 땅에 떨어지지 않은 햇살구처럼 밝은 빛이나요.

그때랑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민정이 누나가 어디선가 송곳을 꺼내더니 자신의 몸을 찔러요.

이 끔직한 순간에 잠에서 깨어나요.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정신이 온전치 않은가 봐요.

곧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요?

사실 너무 오래 살았어요.

정말 늙어버렸어요....

누나도 늙었겠죠?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미 죽어버려서 그 아름다웠던 모습이 썩은 시체가 되었을 수도 있겠어요.

....

죽기 전에 이 병을 치료하고 싶어요.

이 망할 정신병을요....

도와주세요.

내 죄를, 내가 가진 이 병을 없애주세요....

 

 

  박하승은 사형대에 섰다.

그는 최근에 두 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다.

사형집행자가 당신의 죄는 무엇이냐? 라고 묻는 말에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을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꾀나 흥미로워서 그가 말을 완전히 멈출 때가지 사형이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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