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는 시간

by 레비 posted Mar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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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이 지는 시간


 

  노을, 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뜨거운 환타를 들이키는 것만 같다. 끓는점을 훨씬 넘겨 더운 김이 나는 환타를 마시는 것처럼 내 목구멍은 자주 따끔거린다. 그곳에서 일할 때마다 늘 목구멍이 아렸다는 너처럼, 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아프다.


*


 갓 지은 너의 묘는 어수선하다. 장지에 붉은 흙을 덮는 인부들 옆에서 나는 천천히 묘지를 둘러본다. 묘 터를 따라 낮은 묘목과 오동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 흙을 덜 덮은 네 무덤 옆엔 덜 익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오동나무가 우뚝 서 있다. 너보다 몇 곱절은 큰 그 나무를 나는 멀거니 바라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산들산들 흔들리는 나뭇잎 틈으로 저녁놀이 새어든다. 

 -다섯 자 반만 해도 남겠네요.

 장의사는 오동나무로 짠 관에 염을 마친 너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가장 작은 치수의 관도 반 뼘이나 남아돌 정도로 너의 몸은 작았다. 장례비를 치루며 나는 비좁은 관에 누워 있는 너를 생경하게 바라보았다. 골수검사를 할 때마다 날선 비명을 지르던 네가 오동나무 관에 잠자듯 누워 있었다. 독한 항생제 때문에 다 빠져버린 네 민머리를 보며 나는 관 뚜껑을 천천히 덮었다. 수의 밖으로 드러난 너의 팔엔 보랏빛 멍이 울긋불긋했다.  

 잡풀 한 포기 돋지 않은 붉은 무덤은 황량한 모래 둔덕 같기도, 야윈 네 젖가슴 같기도 하다. 다섯 자짜리 비좁은 관에 가만히 누워 있을 너를 떠올리며 나는 거푸 마른세수를 한다. 행정 소송을 준비하고, 장례를 치르느라 다듬지 못한 턱수염이 그세 빳빳하게 자라 있다. 

 -아빠는 수염 기르면 산적처럼 보여……

 병상에 누워 힘없이 속삭이던 너의 모습이 언뜻 스쳐지나간다. 네 머리카락이 잔뜩 엉켜 있는 개수대에서 수염을 깎을 때마다 너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아빠는 수염 기르면 산적처럼 보여. 등 뒤에서 너의 가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나는 고개를 돌린다. 

 -아이고, 아이고.

 옆 무덤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장사를 치르고 있다. 상주가 곡을 할 때마다 허연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은 눈물을 훔치고, 상주를 따라 목 놓아 곡을 한다. 

 -아이고, 아이고. 

 서글픈 곡소리가 몸 구석구석을 멍들이며 시큰시큰 부딪혀오는 것 같다. 조문객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옆 무덤에 비해 곡을 해줄 조문객 하나 없는 네 무덤은 휑뎅그렁하다. 회사의 압박 때문에 네 동료들은 아무도 발인에 참석하지 못했다. 상복처럼 허연 방진복을 입고 반도체를 조립할 네 동료들을 떠올리며 나는 연신 마른세수를 한다.   

 -장사 지내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께 오늘이 길일인가 보구만. 

 인부는 삽자루를 바로 잡으며 말한다. 벌건 잇몸을 드러내며 인부들은 활짝 웃는다. 그들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네 무덤에 뚝뚝 떨어진다. 땀은 눈물처럼 줄줄 흐르고, 네 작은 몸은 작은 흙무덤 아래 파묻혀 있다.  

 -아이고, 아이고. 

 물기 없이 서글픈 곡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글거리는 태양을 쏘아본다. 때 이른 잠자리 떼가 저녁 하늘 아래서 천천히 날고 있다. 

 

 간호사가 척추에 굵은 바늘을 꽂아 넣을 때마다 너는 표본 상자에 박제된 잠자리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곤 했다. 잠자리 표본에 핀을 고정시키는 것처럼 간호사들은 너의 손과 발을 부여잡고, 주삿바늘을 푹푹 쑤셔 넣었다. 바늘이 척추 안을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너는 몸서리쳤다.

 -아빠, 아파. 

  골수검사를 할 때마다 너는 몸을 뒤틀며 몇 번씩 비명을 토했다. ‘아빠’와 ‘아파’ 사이를 오가는 네 새된 비명이 들릴 때마다 나는 병실 한 귀퉁이에서 몸을 바짝 웅크렸다. 포식자로부터 위협을 느낄 때마다 몸을 마는 공벌레처럼 바짝. 세상의 모든 소리를 온몸으로 밀어낼 것처럼 바짝 웅크렸다. 

 두 번째 재발이었다. 골수 이식 후에도 네 몸은 계속해서 백혈구를 만들어냈다. 스무 살의 너만큼이나 성숙되지 않은 백혈구들은 온몸을 누비며 너를 조금씩 시들게 했다. 재발이 된 후로 네 몸 이곳저곳엔 더 짙은 멍이 들었고, 눈 밑엔 시커먼 그늘이 지곤 했다. 줄기부터 시드는 꽃처럼 서서히 말라가는 너를 보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해가 저무는 시간, 환자복 아래로 드러난 너의 복사뼈엔 언제나 붉은 노을이 고여 있었다. 고된 골수검사가 끝나면 너는 병상에 모로 누워 저녁 하늘을 멀거니 바라보곤 했다. 

 -아빠, 나 환타가 먹고 싶어……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언지 조심스럽게 묻는 내게 너는 그렇게 대답했다.  

 -방진복 입고 공장 일 하다보면 맨날 목이 꺼끌꺼끌하고, 숨이 막혔거든…… 일 끝나고 환타 한 캔씩 뽑아 마셔야 그게 나아졌어.

 환타를 쏟아놓은 것처럼 저녁 하늘은 주홍빛으로 천천히 물들었다. 너의 병상에 붙은 금식 푯말을 보며 나는 네 어깨를 어루만졌다. 탱크로리를 운전하는 내 몸에서 나는 기름내에도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네 위장은 망가져 있었다. 음식을 삼키는 족족 오렌지색 위액을 뱉어내는 위장 때문에 네 어깨는 뼈가 짚일 정도로 앙상했다. 

 일몰을 보다말고 너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몸을 말았다.  

 -그때 입사하지 말고, 졸업여행이나 갈걸……

 이불 속에서 너는 웅얼거리며 말했다. 정동진 모래사장 한가운데서 노을을 등지고 찍은 친구들의 사진을 너는 날마다 들여다보았다. 네 친구들이 정동진으로 졸업여행을 떠나던 날에도 너는 반도체 웨이퍼를 세정액에 담그고 있었다. 네가 울음을 참을 때마다 새하얀 이불이 들썩 흔들렸다. 하늘이 환타색 이불을 걷고, 어둠을 덮을 때까지 너는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네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삼킬때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르르. 병실 밖에서 네 또래 간호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물녘의 태양은 고여 있던 울음마저 마르게 할 정도로 뜨겁다. 인부들을 보내고 나는 무덤가를 천천히 거닌다. 벌초를 말끔히 한 다른 풀 무덤들에 비해 네 무덤은 초라해 보인다. 붉은 흙으로 봉분한 네 무덤 옆에 나는 털썩 주저앉는다. 구두며 양복바지에 흙탕물이 튄 자국이 얼룩덜룩하다. 응달에 지은 네 묘 자리는 축축하고 서늘하다. 응달진 네 무덤 위로 잠자리 몇 마리가 맴을 돈다. 태양 볕에 홧홧 달아오른 것처럼 몸통이 붉은 그것들은 하늘로 부유하다 일제히 무덤에 내려앉는다. 고요히 맴을 도는 잠자리들을 보다 나는 옆 무덤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이고, 아이고. 

 해가 서서히 지고 있는데도 옆 무덤에서 장사를 치르는 이들은 곡을 멈출 줄 모른다. 아이고, 아이고.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울음소리가 온몸에 질척하게 들러붙는 것 같다. 곡소리를 들으며 나는 온몸을 벅벅 긁는다. 얼굴과 팔 다리, 양복 주머니 깊숙이까지 손을 넣어 긁으며 울음소리를 떨쳐 내려 안간힘을 쓴다. 위암으로 네 엄마가 죽은 뒤 두 번째 치르는 장례식이었다. 네 엄마처럼 음식을 넘길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너를 보며 나는 차마 울 수 없었다. 내가 숨죽여 울 때마다 조용히 내 어깨를 쓰다듬던 너 때문에. 네 엄마처럼 아무 말 없이 어깨만 쓰다듬던 너 때문에 나는 입술을 깨물며 온몸을 벅벅 긁었다. 울음을 삼키며 몸을 긁어댈 때마다 데인 것처럼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아버님이 올해 여든 여덟이셨지? 

 -예, 형님. 그래도 큰 병치레 없이 돌아가신 걸 보면 호상은 호상이에요. 

 큰 소리로 곡을 하는 상주를 멀찌감치 에서 바라보며 옆 무덤 여자들은 저들끼리 속닥거린다. 호상은 호상이에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검은 상복을 입은 그들을 보며 나는 네 무덤에 앉은 잠자리를 낚아챈다. 몸통을 뒤틀며 울부짖는 잠자리를 손 안에 꽉 쥔다. 아귀에 힘을 줄 때마다 잠자리는 날개를 버르적거린다. 그것이 몸통을 뒤틀 때마다 육각형의 홍채가 헝클어진 퍼즐조각처럼 뒤엉킨다. 잠자리의 붉은 홍채는 온몸을 뒤틀며 항암치료를 받던 너의 충혈된 눈과 닮아 있다.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자리의 날개를 똑똑 떼어낸다. 다 떨어진 날개를 파르르 떨며 그것은 무력하게 울부짖는다. 나는 몸통만 남은 잠자리를 내버리고, 손 안에 남은 두 짝의 날개를 바라본다. 

 -아파, 아파.

 어디선가 네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나는 다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산등성이 너머로 태양이 서서히 지고 있다.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며 나는 끝이 바스러진 잠자리 날개를 만지작거린다. 날개를 등에 붙이고, 울음소리가 지상에 닿지 않는 곳까지 날아가고 싶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붉은 네 무덤 위로 날개 없는 잠자리 떼가 날고 있다. 

 

 지방 신문사에서 기자가 찾아왔던 날, 너는 아끼는 티셔츠를 꺼내 입으며 오랜만에 멋을 부렸다. 입사 기념으로 내가 사준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은 너는 왠지 더 파리해보였다. 원색의 옷은 병든 너를 더 병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환자복까지 갈아입으며 멋을 낸 네 기대와는 달리 신문사에서 찾아온 기자는 젊은 여자였다.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멋스럽게 양장을 차려입은 여기자를 보며 너는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그녀가 인사를 하려 몸을 굽힐 때마다 포르말린 냄새로 가득한 병실에 짙은 향수 냄새가 퍼졌다. 

 -노을 씨 맞죠? 반가워요.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죠? 

 매점에서 사온 과일바구니를 건네며 여기자는 네게 악수를 청했다. 복숭아 색 매니큐어를 칠한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가 일하던 회사의 압력 때문에 언론사들은 병든 너를 모른 척 하곤 했다. 수없이 취재 요청 문을 보내고, 산재를 불인정 받은 너의 소식을 전해도 언론사들은 모르쇠 했다. 간신히 취재 요청을 수락한 곳은 지방에 있는 신문사 하나뿐이었다.        

 -노을 씨, 몸은 언제부터 아팠던 거예요?

 여기자의 질문에 너는 메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몸이 이상해진 건…… 한 달 전 그쯤부터였는데…… 몸에 멍이 자주 들었구요…… 그리고 먹으면 토했어요. 자주 피로했고, 어지러웠고……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내내 너는 밭은기침을 토했다. 기침 때문에 네 말이 끊길 때마다 병실 구석에서 잔잔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친구가 병원에 가보자고해서 병원에 갔는데…… 피가 이상하다고 큰 병원에 가보래요. 그래서 큰 병원에 갔는데 백혈병 판정 받고…… 그때 엄청 울었고…… 죽는 줄 알았어요…… 제가. 

 네 말끝이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목덜미에 벌건 피가 비칠 때까지 벅벅…… 꾸역꾸역 울음을 삼키는 너를 보며 벅벅……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그래요…… 

 앙상한 어깨를 파르르 떨며 너는 잠시 울었다. 잔잔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네 울음 사이사이 들려왔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괜찮나요?

 여기자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손톱을 노트북 모니터에 톡톡 튕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리 깐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다. 

 -삼 라인에 숙영언니라고 저랑 같이 일하던 언니가 있었어요…… 근데 저 병 걸리고, 그 언니가 몇 달 뒤에 애기를 낳았거든요…… 애기 낳고 언니가 바로 백혈병 걸리더니 한 달 두 달 치료하다가 바로 죽었어요……

 말을 마친 뒤 너는 한참 숨이 넘어갈듯 기침을 뱉었다. 여기자는 표정을 구기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네게서 지독한 악취라도 나는 듯 그녀는 코를 싸쥐었다. 병실 안엔 그녀의 텁텁한 향수냄새만 진하게 풍길 뿐이었다.          

 너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여기자는 병실 구석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버님, 죄송한데 노을 씨 기사 못 낼 수도 있다는 거 미리 말씀드리려고요. 

 사포처럼 빳빳하게 굳어진 얼굴로 나는 그녀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노을 씨가 일하던 회사가 워낙 큰 기업이잖아요.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노력은 해보겠지만 큰 기대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죄송합니다.  

 여기자는 목례를 하고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빠져나간 후에도 콧속을 저릿하게 만드는 향수 냄새는 오래간 병실에 떠돌았다.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네게 설핏 웃어 보이며 나는 그녀가 들고 온 바구니 속 과일을 냉장고에 하나씩 넣었다. 냉장고 벽면엔 네가 일하던 회사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잘 익은 포도, 사과, 키위를 넣을 때에도 냉장고는 잔잔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돌아갔다. 과일 바구니를 냉장고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고 나는 냉장고 벽면에 붙은 로고를 손톱 끝으로 박박 긁어냈다. 은박으로 된 로고가 벗겨질 때까지 박박…… 손톱 끝에 피가 맺힐 때까지 박박……      

 -아빠……  

 정신을 차려보니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은 네가 나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달달 떨리는 네 입술을 바라보며 나는 냉장고 코드를 힘껏 잡아당겼다. 잔잔잔, 돌아가던 냉장고가 순식간에 가동을 멈췄다. 입을 닫은 사람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냉장고를 나는 맹렬하게 쏘아보았다. 과실이 시큼한 악취를 풍기며 물큰하게 썩어갈 때까지 나는 코드를 꽂지 않았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햇볕 때문에 왼뺨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태양이 일자로 누워버릴 때까지 나는 네 무덤에 가만히 앉아 있다. 어느새 곡소리는 그치고, 조문객들은 상주를 따라 하나 둘 무덤가를 떠난다. 울음소리가 스러진 무덤가는 서서히 고적해진다. 떠나는 조문객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바스락거리는 잠자리 날개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는다. 물건을 자주 잊어버리는 나 때문에 네가 양복 안쪽에 덧대어준 주머니는 그새 실밥이 풀어져 너덜너덜하다. 혹 밑이 터졌을까 싶어 양복 깊숙이 손을 넣자 꾸깃꾸깃한 봉투의 질감이 느껴진다. 개인적인 일을 회사 탓으로 돌리시면 됩니까? 네 장례식에 왔던 회사 차장의 의뭉스런 목소리가 자꾸만 귓전을 맴돈다. 물끄러미 봉투를 만지작거리다 돌연 차가워지는 뺨 때문에 고개를 든다. 공기가 차다. 푸르뎅뎅한 어둠이 오렌지색 기포를 뿜어내는 태양을 천천히 삼키고 있다.   

 

 지방의 작은 병원에 마련된 네 빈소에는 조문객이 많지 않았다. 분향소에 국화를 헌화하며 나는 네 영정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치수가 조금 큰 교복을 입은 사진 속 너는 조금 뾰로통해 있었다. 상고에 갓 입학했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영정으로 쓸 사진을 구하기 위해 네 방을 다 뒤졌는데도 최근 사진이라곤 그것뿐이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입사하는 바람에 졸업사진조차 찍지 못한 너였다. 

 휑한 빈소에 앉아 나는 핸드폰으로 찍은 네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모두 아팠을 때 찍은 사진들뿐이었다. 군산에서 시흥까지 탱크로리를 몰며 새벽일을 하는 나 때문에 너는 제대로 된 가족여행 한 번 해보지 못했다. 남들은 다 찍는다는 가족사진조차 우린 찍어본 적이 없었다. 너를 찍은 사진들을 넘겨보다 돌연 숨을 죽였다. 며칠 전 찍은 네 사진에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진 속 너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눈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눈부신 노을이 열어놓은 차창 틈으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노을아, 우리 여행 갈까?

 병이 악화되어 운신조차 어려워진 너를 씻기며 나는 슬몃 물었다. 주치의는 더 이상 수술은 어렵겠다며 내게 퇴원을 권했다. 두 번의 재발 때문에 네 몸은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마른 뼈 위로 거죽이 겉도는 너의 알몸을 비누로 살살 문지르며 나는 네 대답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여행은…… 갑자기 왜……

 한참 뜸을 들이다 너는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아빠랑 같이 여행 가본 적이 없잖아. 아빠가 우리 딸이랑 여행 가려고 친구한테 차도 빌렸어. 정동진 가보고 싶다고 했지? 가서 일출도 보고, 바다도 보고, 우리 딸 좋아하는 조개도 실컷 먹고 오자. 알았지? 

 부러 밝게 꾸민 목소리로 나는 네게 말했다. 좁은 대야 안에서 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미지근하게 식은 물을 뿌릴 때마다 너는 어깨를 들먹이며 달달 떨었다.       

 네 사진을 멍청히 들여다보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바람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검은 양복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장신의 남자가 내 뒤에 서 있었다. 나보다 한 뼘은 큰 남자에게 나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를 향해 목례를 하는 남자의 양복 앞깃에는 네가 다니던 회사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여긴 무슨 일로……

 -회사 직원이 상을 당했는데 상사로써 찾아오는 게 당연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빈소를 슬쩍 곁눈질했다.  

 -사람이 별로 없네요? 

 분향소에 놓인 네 영정을 바라보며 남자는 미간을 좁혔다.

 -부조금도 많이 안 들어왔을 텐데 병원비에, 장례비에 괜찮으세요?   

 남자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은테 안경을 쓴 남자는 강퍅해보였다. 대답대신 나는 손에 들린 핸드폰 버튼을 꾹꾹 눌렀다. 전원 버튼을 누를 때마다 네 사진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노을아, 웃어봐.

 내 말에 너는 억지로 조금 웃었다. 핼쑥해진 네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기 전에 나는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시시때때로 토기를 느끼는 너 때문에 나는 갓길에 자주 차를 댔다. 친구에게 빌린 택시에서는 기름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차창에 머리를 대고 누운 채 너는 토기를 겨우 눌러 삼켰다. 해가 저물 무렵에야 우리는 겨우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우리는 삼십 분 남짓 달렸다. 창밖에서 비릿한 바다 냄새가 스멀스멀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노을아, 바다 보이니?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너를 힐끔거리며 나는 차를 몰았다. 바다의 수면 위로 주황빛 노을이 얼룩처럼 고여 있었다. 택시가 고속도로를 끼고 달릴 때마다 바다 냄새가 짙어졌다. 모래사장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지는 포말을, 하얗게 반짝이는 은결을, 수평선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는 태양을 어서 빨리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페달을 힘껏 밟으며 가속을 냈다. 차창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저녁놀 때문에 눈이 시렸다. 눈을 찌푸리며 나는 연신 가속페달을 밟았다. 네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바다를 향해 달렸다. 한낮동안 뜨겁게 달궈진 태양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제 말 듣고 계십니까?

 핸드폰만 멀거니 들여다보는 나에게 남자는 물었다.  

 -아버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공장은 특수 배기 시스템으로 시설을 관리합니다. 먼지도 없고, 악취도 없습니다. 직원들도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구요. 그런 곳에서 백혈병이라니 말도 안 되지요.   

 남자는 뒷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봉투 앞면엔 너의 이름이 가지런하게 적혀 있었다. 그 단정한 글씨가 기괴할 정도로 끔찍스러워 나는 체머리를 흔들었다.

 -이건 저희 회사의 작은 성의표십니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아무 말도 않는 내게 봉투를 쥐어주며 남자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아버님, 개인적인 일을 회사 탓으로 돌리시면 됩니까? 너무 상심하지마시고, 이건 잘 받아뒀다가 요긴하게 쓰십시오. 그리고……

 남자는 넥타이를 고쳐 맨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소를 빠져나가기 전 남자는 덧붙여 말했다. 네 죽음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산재 처리는 하지마세요. 아시죠?  

 

 노을이 사위고, 주변이 캄캄해질 때까지 나는 저녁 하늘을 바라본다. 오동나무 위에서 멧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꾸꾹…… 꾹꾹. 치미는 울음을 눌러 삼키는 것처럼 꾹꾹. 목을 부풀려 구슬프게 울어대는 멧비둘기 소리를 들으며 나는 너의 이름을 곱씹어본다. 

 노을, 뜨거운 환타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처럼 목구멍이 아려온다. 삭혀지지 않은 울음이 목구멍을 다 녹일 때까지 나는 꾸역꾸역 울음을 참아낸다. 꾸꾹…… 꾹꾹.

 노을, 어디선가 너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본다. 푸른 어둠은 실핏줄처럼 서서히 하늘에 스며든다. 꾸꾹…… 꾹꾹. 커다란 울음 속에 둘러싸인 것처럼 온몸이 저릿저릿 아파온다. 무덤가는 어둑시근하고, 밤빛이 오동나무 가지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 보랏빛 멍이 든 네 몸처럼 울긋불긋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바짝 몸을 웅크린다. 세상의 모든 울음소리를 온몸으로 밀어낼 것처럼 바짝. 

 이제 해가 지는 시간이다. 

    





  이언/ rjawjdclak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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