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차 단편소설 창작 콘테스트 공모전- 구산

by 냠냠챱챱 posted Apr 0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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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

 

 

바람에 힘없이 날아갈듯 아기주먹만한 새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공중에 흩어진다.

세월의 기억들을 아리는 울창하고 거대한 나무들이 성벽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촘촘히 얽힌나뭇잎이 뜨거운 태양빛으로부터 반응하며 성내고 있다.

구산이라 불리는 산 아래로 30가구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 이른 아침부터 웅성인다.

워매 왔능가?~.”

시골을 상징하는 언어이자, 따뜻했던 기억속의 온기였다.

으째 이런 촌구석에 왔디야.” “안녕하세요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당산나무를 연상케하는 고목나무가 마을 한가운데에 버젓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주위로 영순댁 식구가 왔다며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라제, 그라제, 잘 지냈지 호호호, 워메? 이건 누구코여?.”

누가봐도 외지인 인듯한 깔끔한 차림의 남자뒤로 양갈래의 여자아이가 쑥스러운듯 남자 뒤로 숨는다. “선주야 안녕하세요 해야지?.”

청아하고 많은 음색의 여인이 아이에게 말했다. 새하얗고 등허리에 닿을 듯 긴머리가 주민들 사이에서 이질적이게도 눈에 띄였다. 곱디고운 여인의 품새에 모든이들이 떨어지는 놀을 바라보듯 했다. “안녕하세요...” 라고 볼만 잔뜩 붉힌 아이가 대답했다.

오구오구 우리 강아지 할미 처음 보제잉?” 아직은 낯선 주민이지만 정겨운 모습에 아이는 배시시 웃음을 보였다.

어디서 왔능가 얼굴이 희에야.”

아이의 또래처럼 보이는 남자아이가 불쑥 튀어 나온다. 시골 아이들 하면 떠오르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새까맣게 탄 피부와 부스스한 머리, 시냇물 처럼 맑은 순수함을 가진......

호호호 우리 강아지들 서로 자알 지내야 한다잉.” 남자아이가 쭈뼛쭈뼜 어색한 걸음으로 다가와 선주에게 한손을 내민다. “난 민수 9살이야.”

워메~ 귀여운것들 봐야 호호호” “선주야 안녕하세요 오빠~ 해야지?”

선주는 다시금 남자뒤로 숨는다.

이쪽은 각시인가 보네~” “안녕하세요 어머님” “곱구만 고와핏줄이 선명히 보일듯 희고 작은 손을 연신 쓰다듬으며 흰머리의 할머니가 방긋 웃었다. 그리곤 한탄이 섞인 어투로 중얼 거리듯 내뱉는다.

니 에비가 니 각시보고 눈감는게 소원이랬는디 쯧쯧...”

분위기가 어두워지려 하자 누군가 똘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언니야 우리 같이 놀자!” 역시 검은 피부, 바가지를 뒤집어 씌운듯 단발의 아이다. 손엔 누런 수건이 들려 있었다.

선주야 갔다와 엄마랑 저기 빨간지붕 할머니집에 있을게

쑥스러운듯 애꿎은 신발 끝만 땅에 비비적대는 선주였다.

으쨔? 쑥스러운가? 빨리가자 언니 더워 죽겄어.” “쑥아!!! 조심히 놀아라잉 속 쎅이면 밖에서 구신이랑 재워 블랑께!!!.”

숙이의 엄마인듯 주민들 사이로 거센 음성이 비상한다.

아따 알았응께 말도마소잉!.”

뻥튀기 폭팔음 소리에 견주어도 지지않을 성량이었다. 곧이어 숙이라는 아이는 선주의 손을 강제로 잡고 마을밖으로 뛰었다. “나도 데꼬 가야!.” 뒤따라 다급히 남자아이가 따라 나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숙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민수오빠는 오지말어 공주들끼리 놀랑께!.” “아따 왜 그러냐 나도 갈꺼여!.” “형아!!!나도 데꼬가아아아!” 코를 잔뜩 흘리던 민수동생 민식이도 따라나섰다.

시간의 상처가 뭍은 장승 한쌍을 지나자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볼마냥 오돌토돌 모진 길이 보였다. “언니는 어데서 왔는디 아픈것마냥 얼굴이 허옇데?.” “내는 저 위에서 왔다.” “하하하 어디 사투린디 그리 요사스럽디야.” 숙이가 웃기다는 듯 발을 구르며 털털하게 웃었다. 흡사 긴칼을 쥔 망나니의 웃음소리 같았다.

순탄치 않은 생활에 이리저리 이사를 다닌덕에 사투리들이 올망졸망하게 얽힌 선주의 말투, 아이들에겐 그저 신기하게만 보이는 듯 했다.

후 덥다야 더워 쑥아 이 길이 맞냐?” “사내자식이 뭐가 힘들다고 자꾸 물어봐쌋냐!”

민수와 민식이는 혀를 내밀고 지친 강아지처럼 헥헥 거린다.

30분을 걸었을까 낮은 무성한 풀들사이로 좁은 길이 보였다.

언니 이제 다왔어 저기 냇물이 얼마나 시원한디 뱜이..”

숙이 뒤로 선주와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겨어!!!” 숙이의 목소리가 멀리 울려 퍼진다.

여기야! 여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주가 있었다.

아마도 길가에 쌓인 작은 돌탑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민수가 목소리를 내리 깔으며 말했다. “그거 건들면 안된다고 햇시야.”

민식이도 자신있게 소리쳤다. “맞아맞아!! 구신이 으앙 한다 햇시야.”

! “얌마 헝아가 누나항테는 뭐뭐 했습니다 하라 했냐 안했냐?”

꿀밤을 맞은 민식이는 민수를 째려 보기 시작했다.

으휴 구신이 어딧냐 구신이 나는 하나도 안무서워 사내들이 뭐가 무섭다고 쯧쯧.”

숙이가 턱을 치켜올리며 말을 이어간다. “어르신들이 그랬는디, 저런 돌탑에는 동티귀라는게 사는데 돌을 쌓고 소원을 빌면 들어주고 돌탑을 무너트리면 벌을 준다고 하더만.”

아니야아!! 구신은 있어 구신! 막 우리 엉아 고무신 막막 가져가고 그랬다니께!”

! “아따 글면 못가져가게 해야지 뭐다냐아!”

나이거 해보고싶어선주의 말에 모두가 정적을 유지했다.

선주야 진짜 할라고야?” “” “헝아 나 무서워민식이가 민수에게 바짝 붙었다.

코 묻어야!!이씨!” 민수는 윗옷 밑자락으로 민식이의 코를 닦아준다.

주먹만한 돌맹이를 들고 돌탑에 다가가는 선주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은근히 덜덜 떨던 손이 돌탑 머리에 다가가 멈췄다.

조심해라잉. 실수하더라도 걱정말혀 내가 있응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잔뜩 겁먹은 표정의 민수다.

염병 혀싼다.” 숙이가 찡그린 얼굴로 혀를 찬다.

엣취!” “코 또나왔다 드러워서 못살것다야.

정신사나운 상황에 선주는 다시금 집중을 하고 뿌리기시 돌을 올려놓았다.

돌탑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진 돌맹이가 자리를 잡았다.

됬다 됬어 얼른 소원빌어 언니

선주가 깊은 숨을 내쉬며 양손을 모아 쥐었다.

헝아!!!!”

돌맹이가 자리를 잡았다 싶었지만 돌맹이가 미끄러 떨어진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가 귓등을 스쳐지나간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아이들은 살며시 눈을 떴다

하하 잡았네

초록색 반팔티를 입은 젊어보이는 남자가 아슬한 자세로 돌맹이를 잡고 있었다.

사색이였던 선주의 얼굴에 웃음 꽃이 핀다.

조심했어야지 내가 도와줄게남자는 자세를 바로잡고 돌탑꼭대기에 돌을 놓았다.

오빠야 조심혀요~” 처음듣는 여리한 숙이의 목소리. 이번엔 민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에이취!!!” 역시나 민식이의 재채기 소리다.

.와르르 놀란 남자의 손에 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당황해 어쩔줄 몰라하는 남자 사이로 숙이가 선주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괜찮여 언니 구신은 없당께 그냥 구신이야기여 이야기

말이 없던 선주의 눈에 작은 구슬이 맺혔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민식이는 자기머리에 꿀밤을 쥐어 박는다.

하하하... 애들아 이탑 다시 쌓으면 되지 않을까?, 소원도 같이 빌고 말이야.”

..그래 선주야 같이 해보자민수가 탑으로 다가가 남자와 돌을 하나씩 쌓기 시작했다.

오빤 얼굴도 잘생깄는디 머리도 좋네잉~, 언니야도 이오빠 말 믿고 해보자.”

남자는 길을 잃고 헤메다 아이들을 발견하고 길을 물어보려 접근중 선주의 모습에 도와주려고 했다고 했다. 남자의 눈은 아이들 못지 않게 맑고 순수해 보였다. 그덕에 아이들도 거리낌없이 친근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하나씩 더해진 돌들, 예전의 돌탑보다 크기가 커진듯했다. 민식이의 채재기덕에 시간이 좀더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됐~ 이젠 괜찮지?” 남자는 선주에게 환한미소를 보인다. “!”

얼른 소원빌고 멱감으로 가자, 오빠야도 같이 갈거지요?”

하하...난 이제 집으로 가야지

아이들은 기도가 끝나자 마자 빠른 걸음으로 숙이가 말한 계곡으로 뛰어갔다.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은 아이들이였다.

풍덩~ 아이들은 조금씩 어둑해지는 하늘을 뒤로 신나게 물장구를 쳐댔다.

민수가 코를 막고 앞구르기를 하며 물속에 처박힌다.

잠시후 민수가 입고 있던 트렁크 팬티가 물위로 떠올랐다

꺄하하하하하하!” 숙이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아 쑥아 웃지만 말고 좀 빤쓰좀 잡아야!”
팬티가 숙이의 옆을 지나간다.

드러워서 못잡것다야 하하하하하하

히히힣히웃으면서 지켜보던 민식이는 꿀밤 생각에 눈치를 본다.

볕에 하루종일 있던 선주의 몸도 아이들처럼 검었다.

어두워진 하늘과 아이들은 같이 검고 반짝이며 어울렸다.

둥그런 달이 웃어보일때쯤 아이들은 집으로 향했다.

 

고목나무 아래로 넓은 평상이 있었다.

선주와 숙이 민수는 나란히 누워 별을 헤아렸다.

언니야 아까 그오빠 참말로 잘생겼제?”

숙이는 신나게 남자의 외모를 칭찬하며 히죽 웃음을 보인다.

오늘 재밌게 놀았냐?” 이부자리를 들고오던 숙이 엄마였다.

쑥이엄마 오늘 쑥이가 어땠는지.읍읍..”

숙이의 앙칼진 손이 민수의 입을 막아챘다.

민수와 숙이가 아웅다웅 다툼하는 도중 숙이엄마가 말했다.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자야지?”

잠이 안와요.”

얼른 코자야지 낼또 놀지?”

투박한 숙이 엄마 손이 따뜻하게 선주 에 닿았다.

포근함에 눈이 감기는 듯했다.

잠시후 청아하고 구슬픈 목소리가 고목나무아래로 춤을 췄다.

 

구산 달빛 머무는날 산들 도깨비 노래 하고

절벽 각시 시를 읊고 고목나무 춤을추네

구산마을 슬프게도 아름답구나.

구산마을 슬프게도 조용하구나.

그곳에서도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천사들의 발끝처럼 사뿐히 사뿐히 잠이 들었다.

 

시골에서의 시간의 빠르게 지나갔다.

지날수록 익어가는 홍시처럼 선주의 볼도 발갛거나 검어졌다.

끝 여름인 찐한 더운 날씨 마을이 새벽부터 분주하다.

마을 사람들의 말로는 13년마다 한번인 신들의 날 구산제가 오늘이라고 했다.

민수네는 돼지를잡고 숙이네는 전을 준비했다,

마을 사람들은 제사 음식을 만들어 고목나무 평상에 놓아두었다.

몰래 훔쳐먹다 걸린 민식이는 꿀밤을 벌써 10대는 맞은거 같다.

어른들만 바쁜건 아니였다. 아이들도 새벽5시에 일어나 마을 입구에서 고목나무까지 막대에 리본을 묶어 꽂아놓고 마을을 청소하고 집집마다 문앞에 소금을 뿌려 두었다.

커다란 고목나무를 짚으로 칭칭 감기도 했다.

고목나무는 당산나무 그자체가 되었다.

색다른 경험에 마냥 신나기만한 아이들이였다. 뭐 시도때도 없이 다투는 숙이와 민식이만 빼고 말이다.

근댜 구신이 집에 들어오면 어떻한다냐?”

긍께 소금을 뿌리는거아녀

그라믄 울집에 소금 좀만 더 뿌리면 안되긋냐? 무서워서 잠을 못잘거 같은디
고추때브러야! 사내가 뭐가 무섭다고 우리 오빠야 같았음....”

말을 말자 말을 말어 니처럼 숯댕이처럼 검은 얘를 누가 좋아하긋냐

뭐라 했냐 글다 다친다잉
가시내가 오빠한테 말하는거 봐야!”
으헝 헝아 헝아 나 응가마려워어

어휴...”

애꿎은 선주만 눈치를 살핀다.

오늘은 시간이 무척 빨리 가는듯했다.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곧 시작하는 축제에 아이들은 들떠서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숙이 엄마가 말했다.

야들아 이제 자야제 축제는 낼 아침에 시작이여.“

? 그라믄 왜 그렇게 일찍 깨워서 준비한거여!!!”

가시나가 자라면 자!!! 민수도 언능 동생 데리고 집가고

선주는 숙이랑 자고 갈거제?”

아침 일찍 일어난 나머지 아이들은 징징거리다 금새 잠이들었다.

선주는 마을의 고요함이 어색해 잠을 설친다.

고목나무 평상에 놓인 수많은 음식들도 유혹을 하는듯했고

저걸 누가 먹길래 저리도 많이 뒀을까하는 의구심도 피어올랐다.

진짜 귀신이 먹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1020분 뒤척이다 깊은 잠에 들었다.

꿈을 꾸었다. 집에서 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 하던 선주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애써 감추려 웃음을 섞인 목소리로 아프지 않은척 한다.

만우절도 아닌데 거짓말을 한다. 선주도 모른척 뒤돌며 거짓말을한다.

퇴근한 아빠가 지저분해진 작업복을 입고 웃음을 보이며 엄마에게 뽀뽀를하며 포옹한다.

엄마에게 무슨일 없었냐며 물었다. 엄마는 두 번째 거짓말을 한다.

선주를 끌어 안고 볼뽀뽀를 해댄다. 선주가 웃으며 아빠 다친덴 없어요? 라고 묻는다.

역시나 거짓말을 한다. 걸음걸이가 이상한걸 아는데 말이다.

왜 우리 아가는 울상이지?” 선주도 두 번째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남발하는 가족들을 보니 선주는 맘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아픔과 함께 눈을 떳다. 지독한 꿈도 아픔과 함께 녹아버렸다.

 

숙이야 자?” 원인 모를 두려움에 숙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창밖에서 방울소리가 커튼사이로 스멀스멀 기어왔다.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방문을 열고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자신을 빼고 축제를 즐기는게 아닌가 혹은 마을사람들이 자주하던 화투를 하고 있나

섭섭한 마음이 선주 마음을 쿡쿡 쑤셔댔다.

살며시 현관문을 열었다. 문옆에 선주가 쭈구려 앉아있었다.

뭔가 이질감에 선주는 조용히 숙이를 불렀다.

숙아 뭐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선주도 숙이 옆에 앉았다. 숙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언니 무서워...”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이 두려움이 되어 선주의 집어 삼킨다.

?” 선주는 주위를 둘러본다.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집 마당을 나와 가까이에 있는 고목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리에 힘이 풀린체 주저앉았다.

나무 주위로 동화책에서 보던것과 비슷한 도깨비와 처녀귀신, 떠다니는 불, 작은 도깨비들이 모여 있었다.

 더욱 눈에 들어오는건 전에 봤던 젊은 남자였다.

고목나무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나무만 바라보고 있다.

남자 뒤로 도깨비들이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돌같은 물체를 던졌다.

깔깔깔깔도깨비들이 신나게 웃어댔다.

그러더니 더욱더 큰돌을 주워 남자에게 던졌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나무만을 바라본다. 맑기만 하던 눈동자에 슬픔이 서려있었다.

선주는 그저 눈물만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헤헤 여깃네?”

갑자기 나타난 시꺼먼 얼굴의 도깨비가 선주 눈앞에 나타났다.

몹쓸 인간아 우리들의 축제를 또 방해 하려는 참인가?”

선주는 힘없이 보따리끌 듯 질질끌려 고목나무 앞으로 끌려갔다.

깔깔깔 웃던 귀신들은 웃음을 멈추고 도깨비들은 성을 내기 시작한다.

이번엔 안돼 이번엔 안돼!” 귀신들의 흐느낌이 소름끼치게도 차갑게 느껴진다.

남자는 도깨비들의 행동에 선주에게 눈을 돌렸다.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하태귀들아 너희들을 위해 제물을 들고 왔으니 마음껏 즐겨라.”

선주를 끌고온 도깨비가 고목나무 위를 바라보고 소리쳤다.

나무위에서 배가 찢어져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여자귀신들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잔인한 울림들이 마을에 스며든다.

퍼퍽 퍽 퍽 시뻘건 피들이 달빛에 흔들리며 색을 입힌다.

남자는 묵묵히 선주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흐으윽..흑 오빠.” 숨도 제데로 쉬지 못하는 선주다.

너같은 동티귀 따위가 우리와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야

라는 말을 내뱉은 도깨비는 남자를 미친 듯이 때리고 밟기 시작했다.

힘이 빠진 남자를 끌고 고목나무 와 떨어진 곳으로 끌고간다.

흑흑 내아가 내아가 이리온껌처럭 바닥에 눌려있던 하태귀들이 일어난다.

커다래진 배를 잡아 찢어 공간을 벌리며 선주에게 다가간다.

들어오렴 아가야 보고싶었어 흑흑조금씩 조금씩 선주에게 가까워져 간다.

한발한발 축축한 발자국 소리가 제야의 종소리처럼 커다랗게 울린다.

들어오라니까!!!” 하태귀들이 서로 서로 부딪히며 선주에게 달려들었다.

화르륵 소리와 함께 고목나무에 불이 붙었다.

이런 고얀놈!!!!!” 도깨비가 울부짖었다.

숙이였다, 손에들린 양초로 고목나무에 감긴 짚에 불을 붙인거 같았다.

부들부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양손으로 초를 들고 있었다.

염병할것들아 우리 언니랑 오빠 손끝이라도 대지들 말어 불 질러 블라니까

울음이 금방이라도 터질거 같다. 버티다못해 쓰러진 향초처럼 쓰러진다.

불은 점점 고목나무를 에워쌌다.

불길은 이상하게도 점점 거세지며 불이 붙은 거대한 가지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날뛰던 도깨비와 귀신들은 불길에 괴로워했고 그곳을 나무주위를 떠나가지 못했다. 괴로워하던 도깨비 몇몇은 그 자리에 타 숯만을 남긴체 사라졌다.

 

나무 아래에 있던 선주위로 불타던 재앙은 떨어졌다.

세상을 태워버릴 뜨거운 태양처럼

헤헤 이번엔 실수 안해

남자는 선주를 보호하듯 안고 있었다.

 

선주는 꿈을 꿨다.

동티귀라고 불리던 남자는 선주를 안고 불타는 고목나무 밖으로 나왔다.

숙이는 다행이 아무곳도 다친곳이 없었다.

안심한 듯 끝내 울음을 터트린 남자는 선주와 숙이에게 말했다.

아니 무언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했다.

옛날 옛날에 동티귀라는 귀신이 살았어요. 그는 사람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은 귀신이였어요. 어느날 귀신들의 축제에 사람이 나타나 축제를 망쳤죠. 그 남자는 나쁜사람이 아니였어요. 단지 종종 사람들을 위협하는 귀신들이 무서울 뿐이였어요. 집엔 소중한 아내가 있었기에 지키고 싶었나봐요. 도깨비들과 귀신들은 화가나서 남자를 죽이려고 했어요.

남자가 고목나무에 불을 질렀거든요. 동티귀는 남자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무서웠어요. 힘도 없고 그저 돌탑을 맴도는 평범한 귀신일 뿐이니까요. 잠시후 남자의 아내가 나타나 이 장면을 보게되죠. 아내는 남자를 구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결국 고목나무에 깔려 하늘나라에 갔어요...“

 

누군가의 부름에 선주는 눈을 떴다.

마을사람들이였다. 날도 어느새 하얗게 밝았고 숙이는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슨일이 일어 난거냐며 난리가 아니였다.

고목나무는 불타버리고 작은 기둥만 유지하고 있었다. 며칠 후 숙이에게 물어봤지만 별다른 기억을 못하는거 같았다.

 선주는 마을사람에게 세 번째 거짓말을 했다.

양초를 가지고 놀다가 불이 붙었다고 둘러대는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혀진다.

이도 그렇다.

13년이 지났다 동티귀가 정말 있던 걸까 선주엄마의 폐병은 호전이 되었다.

선주와 놀던 아이들은 전부 타지로 나가 간간히 연락만 주고 받고 있다.

방학을 맞아 시골 내려온 선주는 다시 기억속의 고목나무와 마주친다.

아주 커다랗고 아름다운 꽃들을 만들어 뽐내고 있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한적해진 마을 구산의 정적이 어색했다. 숙이 엄마를 만났다. 손엔 커다란 과일바구니가 들려있다.

숙이 아빠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한번도 뵌적도 없고 숙이 아빠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기에 인사차 따라갔다.

도착을 하니 묘가 있었다. 선주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항상 꿋꿋하고 강해보이던 숙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울었다.

거친손 과 팔뚝의 화상자국이... 눈물과 함께 흐릿하게 흐릿하게......

 

며칠을 시골에 지내고 선주는 짐을 챙겨 나왔다.

사춘기 소녀의 볼처럼 오돌토돌하던 길은 여전히 천진난만했다.

아이들의 속삭임과 같은 바람이 코를 간지럽힌다.

작은 돌탑이 보였다.

무심히 돌을 주워들고 돌탑위에 올려놓았다.

?”

돌이 떨어진다.

헤헤 오랜만이네?”

남자였다.

변함없이 순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