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회 공모 - 악몽

by Anne posted Apr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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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행 복 했 었 다. 한때는…… 

 



  

 ***


 “엄마! 노래 불러주세요……” 

 

 윤호가 졸음 섞인 목소리로 선미를 부르자 낮잠 잘 시간임을 깨달은 선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가간다.


욜랑욜랑 바람이 찾아와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누나가 쳐내는 학교 풍금 소리에  

스르르 낮잠이 듭니다…… 

 


 노래가 끝나갈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윤호는 곤히 잠들어 있다. 윤호가 태어나기 전부터 들려주었던 노래라 그런지 이 노래만 부르면 잠잠해지는 아이였다.  

 

 “얘, 어멈아! 윤호가 잠들었으니 하는 말인데, 빚쟁이들이 또 연락을 해대는구나. 그동안 좀 모아둔 적금으로 갚는게 어떻겠냐?” 


 윤호의 할머니이자 선미의 시어머니인 옥희가 급히 들어오더니 또 빚이야기를 해댄다. 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누르며 선미는 생각에 잠긴다. 잠시 후, 가방을 들고 일어선 선미는 병실을 나서며 말다. 


 “어머니, 저 잠시 다녀올 테니 윤호 좀 봐 주세요.” 

 

 옥희가 대답할 틈 조차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빠져나가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자 끊어버리고, 이를 두 번 더 반복한다. 또 다시 전화를 걸자 바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드디어 결정을 했나.” 


 “……네. 연락 기다릴 게요.” 


 짧은 통화가 끝나고 선미의 긴 한숨이 들려온다. 어두운 밤, 한강 앞에 서서 물 속 깊은 곳을 바라보던 선미는 목에 걸려있던 진주가 박힌 목걸이를 잡아 뜯어 멀리 던져버린다. 

 

 ‘누구로부터 시작된 악몽일까…… 하, 이젠 그게 누구든 상관없어. 이미 시작된 악몽이라면……’ 


 

***

 

 “야, 임자은! 너 그렇게 해라, 응?” 


 “내가 뭐! 언니면 다야?” 


 “이게 진짜!” 


 사은이 손을 들어 자은을 치려는 순간, 안방 문이 열리며 두 자매의 엄마인 소희가 나온다. 


 “사은아! 지금 뭐하는 거니? 언니가 되가지고는……  동생 데리고 교회 다녀오렴. 너희들 오늘 찬송 연습하는 날이잖아. 간식도 준비하셨대.” 


 “네? 지금 임자은이랑 가라구요?” 


 “그럼 네 동생이 자은이 말고 누가 있니?” 


 “네에……” 


 사은과 자은은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다 동시에 나가버린다. 그런 자매의 모습을 보며 소희는 한숨을 내쉰다.  

오늘 하루 온종일 퉁명스러웠던 자은, 아마 친구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듯 싶다. 그런 자은을 못마땅해 하던 사은이었는데, 결국 청소를 하다 일이 나 버렸다. 자은의 구역에 사은의 물건이 있었는지 가지고 나와서는 사은의 앞에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아니, 왜 개인의 문제로 온 가족의 기분을 망치는 거야?’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언니라고 참견은 또 뭐야?’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교회에 다다랐을즈음, 사은이 앞서서 조용하기만 한 교회 건물에 들어갔다. 자은은 아직 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어둡고 조용한 복도를 걷고 있으니 절로 느껴지는 으스스한 기분에 고개를 저으며 가던 사은은 저 멀리 희미한 실루엣을 발견다. 


 ‘응?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 것 같은데……’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실루엣을 보니 검은 후드 티에 짙은 청바지를 입은 사람이었다. 모자까지 뒤집어 써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기분 나쁜 긴장감을 애써 무시하고 연습실에 들어간 사은이었다. 연습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있어야 할 악보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철컥’하는 소리에 놀라 급히 달려가 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이…이게 뭐야?!’ 


 본능이라고 생각되는 힘이 필사적으로 뒷문으로 달려가게 만들었고, 아직 열려 있는 문으로 급히 나와보니 바로 근처에 검은 후드의 사람이 서 있었다. 


 “허.. 헉!” 


 ‘오금이 저린다.’라는 말을 느끼며 사은은 급히 계단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이미 한 쪽 팔이 사내에게 붙잡혀 있었다. 재미로 다닌 종합격투기가 인생에, 그것도 매우 중요한 순간에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뒤.. 에서 누군가에게 잡혔을 때……’ 


 머리는 몰라도 몸은 기억하는 호신술로 사내에게서 빠져나온 사은은 초인적인 빠르기로 계단을 내려갔다. 순간,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헉헉.. 습, 헉헉……” 


 폐가 터질만큼 달려 나온 사은의 앞에 퉁명스러운 자은의 얼굴이 보였다. 


 “허억헉…야.. 올라오지 마. 헉헉.. 빨리 집에 가. 헉헉……”  


 거친 숨을 내모는 사은을 이상하게 바라보다 자은은 인상을 찌푸리고 휙 돌아가버린다. 자은이 돌아가자 안심한 사은은 잠시 숨을 고르는데, 그 앞으로 누군가 다가온다. 긴장한 사은이 고개를 들자 뜻밖의 얼굴이 서 있었다. 


 “어,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뵈어요.” 


 “그래, 사은아~ 오랜만이네. 그런데 혹시 너 이 교회 다니니?” 


 순간, 사은은 왠지 모를 섬찟함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 그런데 어쩐 일 이세요?” 


 “아, 선생님 아는 분이 이 교회 다니셔서… 이번에 교회 옮기려던 참이었거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던 사은은 선생님 옆의 한 아이가 희미하게 보임을 느다. 


 ‘어… 저 애가 누구지? 누구였더라……’ 


 그때 누군가 스쳐 지나감을 느낀 사은은 뒤를 돌아보고, 경악을 금치 못다. 


 “서…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검은 후드를 입은 사람이 아까…” 


 사은이 미처 말을 다 끝내지 못 했을 때, 갑자기 사내가 접이식 칼을 꺼내더니 자은에게 달려갔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사은은 미친듯이 뛰어가며 자은에게 소리쳤다. 


 “자은아!!! 임자은!! 빨리 도망쳐! 임자은!!!!!” 


 멀리서 들려오는 사은의 목소리에 자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태연히 걸어갔다. 


 ‘창피하게 거리에서 뭐하는 거야? 골목이라 사람은 없겠지만…… 흥, 그런다고 내가 뒤돌아 볼 줄 알고?’ 


 그런 자은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뛰어가던 사은은 사내에게 배웠던 기술을 어렵사리 기억해 내  초크를 걸었고, 다시 소리쳤다. 


 “야, 임자은! 도망치라고 이 바보야!! 임자은!!!” 


 힘겹게 사내를 붙잡고 있던 사은의 뒤에 서 있던 선생님이 갑자기 사내의 것과 같은 칼을 들고 자은에게 달려갔다.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사은은 아까 희미하게 보였던 아이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박윤호!!!" 


 "!!!" 


 선미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 동안 자은은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갔고, 사은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아들이었죠? 윤호... 아까부터 계속 아른거렸는데. 엄마한테 들었어요. 윤호가 아버지 유전때문에 간암에 걸렸다고요...... 선생님이 저희에게 이러실 분이 아닌데..." 


 "......" 


 사은이 선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선미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며 뒷걸음질 쳤다.  


 '내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한거지? 아, 이렇게 이기적이고 한심한 사람이 되버리다니...... 어쩌면 내가 더 끔찍한 악몽을 자초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선생님..." 


 "......미안하다, 사은아... 윤호를 예뻐해주던 널.. 내가..." 


 고개를 들어 사은을 보던 선미는 사은의 뒤에서 칼을 들고 다가오는 사내를 발견하고 급히 사은을 안아 막는다. 푹, 소리와 함께 사은의 비명이 울린다. 걸어오던 한 남자가 그 상황을 목격하고 전화를 걸며 다가온다. 


 "아, 거기 경찰서죠? 왠 남자가 한 여학생과 여자를 공격하고 있어요! 여자 분은 칼에 찔리셨구요!" 


 "선생님!! 아, 어떡해... 선생님!!! 정신 차리셔야 돼요! 이렇게 쓰러지시면 안돼요....... 선생님!!!!" 


 쓰러진 선미와 사은을 번갈아보던 사내는 그 남자가 소리치며 달려오자 뒤쪽으로 도망친다. 사은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를 쓰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세상이 뿌옇게만 보인다. 정신을 잃으려던 그 찰나에 경찰차의 소리가 들려온다. 함께 온 구급차에서 급히 사람들이 달려오며 소리를 외치지만, 사은은 이미 선생님 옆에 쓰러져 있다. 

 


*** 

 

 "엄마... 저는 행복해요. 너무 애쓰지 마세요. 사랑해요......" 


 새파란 하늘아래 새하얀 옷을 입은 윤호가 나에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랑한다고... 엄마도 사랑해, 우리 윤호...... 

 


 남편은 대학교 때 처음 만난 사람이었고, 사랑했다. 행복했다. 윤호를 낳고,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다. 사랑했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가면서 가족의 틀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윤호는 3살때부터 할머니의 손아래에서 자라게 되었고, 남편은 집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었다. 일이 많아진 걸로만 알고있었다. 바보같이... 윤호가 다섯살이 되던 해에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나중엔 끔찍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남편은 나를 떠났고, 몰랐지만 여자에게 속아 빚만 산더미처럼 지고 2년 후 간암으로 죽었다. 문제는... 그 끔찍한 유전자를 윤호에게 물려주었다는 것. 윤호는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였고, 간 이식을 할 만큼의 경제력이 없었을 뿐더러 맞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모든것이 문제였다. 윤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이미 죽은 것일까? 그래서 윤호를 만난 것일까? 아니지, 우리 윤호는 살아야한다...... 


 "..서...님...... 선...생님...... 선생님!" 


 '으...음?' 


 "눈 뜨셨어요! 의사선생님, 선생님이 눈 뜨셨어요!!" 


 ...사은이다. 난 살아있구나.........  우리 윤호한테 너무 못난 엄마인 것 같다, 나는...... 



***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현재 수능을 앞두고 있다. 선생님은 다 나으셨고, 윤호는 자은이 아닌, 어렵게 찾은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받았다. 물론 앞으로 갚아나가야 할 빚이 산더미이지만, 선생님은 전보다 훨씬 밝아지셨다. 행복해 보이신다. 자은이는 그 사건이후로 딱히 변한 건 없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다. 그 검은후드는 결국 잡혔다. 우리를 발견하고 신고해주신 분이 끝까지 따라가 주신 덕분이었다. 알고보니 신고해주신 분은 선생님의 옛 친구분이셨다.  왠지 조만간 또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다. 나는 그 이후로 체육관을 열심히 다녔다. 고삼인 지금은 아니지만... 윤호는 내년에 학교에 들어간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겠지만...... 앞으로 그 아이에게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랄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하나의 악몽이었던 것 처럼 느껴진다. 악몽... 


 "사은아!" 


 "...어! 서율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수업들으러 가야지." 


 "그냥.. 어떤 악몽이 생각나서. 얼른 가자!!"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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