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향기,

by 안유진 posted Apr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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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의 향기,


 한산한 카페 내부, 공기 중엔 커피 원두 향이 진동한다. 하얀 찻잔이 검은 물을 끌어안고 공중으로 허연 김을 뿜어냈다. 너울거리는 김이 A와 내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자리 잡은 동시에 검은 잔향을 남기고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나는 어색하게 뭉쳐 있는 분위기가 뜨거운 커피로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기다렸다. 곧이어 조그만 딸기가 콕콕 박혀 있는 조각 케이크가 등장했다. 검은 물과 대조 될 만큼 하얀 생크림이 가득한 케이크였다. 나는 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달콤한 냄새에 거부감이 드니까. 심지어 입 안에서 몽실몽실 뭉그러지는 크림의 질감이 인위적인 맛을 부추기는 느낌이다. A가 작은 포크를 들고 케이크의 한 귀퉁이를 살포시 짓눌렀다. 약간의 생크림과 스펀지 같은 빵이 A의 입술에 흔적을 남기며 들어갔다. A가 입 꼬리를 늘리며 방싯, 웃었다.

 “여긴 크림이 정말 달아.”

생크림 케이크는 뭉친 분위기가 아닌 A의 안면 근육을 풀었다. 찻잔이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작은 습기를 머금었다. 허연 김이 아직도 검은 물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대체 언제쯤 입을 대게 해주겠니. 숨 막히는 분위기를 감싸 안듯, 두 손으로 잔을 감쌌다. 열기가 온기가 되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커피가 어느 정도 식었을 땐 A의 케이크도 잔해들을 남기며 거의 사라지고 없을 때였다. 그만큼 우리의 분위기도 뜨거운 김에 녹아 풀어져 있었다. 마침내 찻잔을 들어 올렸다. A는 휴지를 접어 입 주위를 정갈하게 훔쳤다. A의 입에 묻었던 생크림의 잔해가 사라지고 내 입 안에는 깨끗한 커피 향이 이빨을 타고 들어왔다. 찻잔을 내려놓자, 갈색의 둥근 원형 탁자가 덜그럭 거렸다. 탁자 기둥의 나사가 덜 조여진 듯 했다. 나는 하체가 부실한 그것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몸을 움츠리며 조심히 꼬고 있던 왼쪽 다리를 풀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지 위에 걸쳤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를 이어나가려는 소심한 몸동작이었다. 그리고 몸에서 힘을 빼기 직전 내 스니커즈 앞코가 A의 종아리를 툭, 쳤다. 분위기와 함께 침묵이 깨졌다.

미안.”

 “괜찮아.”

A는 엷은 베이지 계열의 바지와 면으로 된 카키색 폴라를 입고 낮은 굽의 단화를 신고 있었다. 나는 A의 바지 위로 내 스니커즈의 흔적이 묻었을까 슬쩍 훑었다. 다행히 별다른 자국은 남지 않았다. 탁자의 무늬를 따라 그리던 A의 손가락이 멈추고 조심스레 깍지를 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A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았다. 숨을 들이켰다.

 “어떻게든.”

A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살짝 웃었다. 그러나 눈은, 웃지 않았다.

 

 A와는 아주 가끔씩 만나는 사이다. 중학교 동창으로 1학년 때 딱 한 번 같은 반을 한 이후로는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녀는 나에게 종종 전화를 걸었다. A는 가끔 얼굴 보고 차 마시는 딱 그 정도의 친구다. 나는 전화번호와 화장품 회사에 다닌다는 것 말고는 그녀에 대해 모른다. 그러나 우린 10년이 넘도록 이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A는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였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늘 뒷자리를 고수했다. 그녀는 맨 뒷자리에 앉아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항상 정면을 응시했다. 입을 여는 일도 별로 없었다. A는 눈에 띄지 않는 그저 그런 애들 중 하나였다. 나는 그런 A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항상 의외의 순간,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을까. A는 오래전부터 날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애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피하지 않았다. 한참을 지그시 보다가 스윽,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런 A가 부담스러웠다. 그 기묘하게 슬퍼 보이는 얼굴과 그 속에 크고 거먼 눈동자에 내 속내를 다 들키는 기분이었다. 내 수치스러운 모습까지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냄새에 민감했다. 후각이 발달한 것은 아니다. 그저 별 것 아닌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이다. 일상적인 냄새가 나에겐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이곳저곳 냄새 맡는 것을 좋아했다. 향기가 아니어도 좋았다. 비 오는 날의 도로 냄새, 구석진 골목길에 희미하게 배어 있는 옅은 담배 냄새 등등. 내가 바라는 건 그냥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냄새였다.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그것을 드러낸 적 없었다. 딱 한 번, A에게 들킨 것 말고는. 아무도 내 은밀한 비밀을 몰랐다. 나는 그 이후로 A에게 그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A 또한 나에게 묻지 않았다. A에게 들킨 것은 도서관에서였다. 나는 도서부였다. 딱히 책을 읽고 싶어서 든 동아리는 아니었다. 생활기록부에 적을 한 줄과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있을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A는 나와 같은 도서부였다. 우리는 CA시간만 되면 나란히 도서관으로 갔지만 일절 대화는 하지 않았다. 단순히 어색함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앤 말 걸기 어려운 면모가 있었다. 나는 도서관만 가면 오래된 서적들을 뒤적거렸다. 두껍고 책장 깊숙이 박혀 있는 그런 읽기도 어려운 책들 말이다. 관심이 있어서 뒤적거린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래된 책 장 사이에서 풍기는 일명 책 냄새와 먼지가 뒤섞인 그런 냄새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부러 책장들 사이에서 숨어 있었다. 내가 책 사이에 코 박고 있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음이라.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김없이 두꺼운 영문으로 되어 있는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혹 남들이 보더라도 그저 열심히 책을 읽는 것처럼 보일만한 자세를 취하고 말이다. 사전처럼 얇은 종이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사부작사부작 거리며 구김살이 갔다. 페이지를 팔랑거릴 때마다 묘한 잉크 냄새가 책 표지의 가죽 냄새와 섞여 코를 간질거렸다. 어쩌면 코가 간질거린 이유는 먼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지만 약간 어지러운 잉크 냄새에 반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제쳐버렸다. 나는 책에 코를 박고 비슷한 냄새나 이런 냄새와 걸 맞는 상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문득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아무런 프로 없이 광고만 하는 TV를 보고 있는 어린 내가 보였다. 뜨뜻미지근하게 가라앉은 먼지들이 등 주위로 나풀거렸다. 짙은 남색의 공기가 잔뜩 무거운 냄새를 뿜었다. 코가 텁텁하고 가려워지는 기분. 혀끝에선 찝찔한 눈물 맛이 났고, 고약한 나프탈렌 냄새가 내 주위에서 천천히, 천천히 방 전체로 퍼져 나갔다. 기분 나쁜 상상은 아니다. 그러나 묘하게 어딘가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냄새만 맡았을 땐 기분 좋았는데, 상상과 결합하니 마음 한 구석이 저렸다. 결국 페이지를 두 세장씩 넘겨 후다닥 책을 덮어버렸다. 이럴 바엔 차라리 소설책을 읽는 게 낫겠어. 나는 바닥에 오래 앉아있어 저릿저릿한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리고 반대편 책장에서 책을 고르던 A와 눈이 마주쳤다. 어쩌면 A는 책을 고르고 있던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애의 코와 입이 가려져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A는 오랫동안 보고 있었다는 듯이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내게 고정시켰다. 순간 심장이 쿵쿵 뛰어댔다. 혼자 있던 집 안에서 누군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묘한 치부를 들킨 듯해 눈에 보이는 자리에 아무데나 서적을 꽂아 넣고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긴 후에도 A의 시선이 내 뒤통수에 끈끈하게 따라오는 기분이었다. 심장의 방망이질은 멈추지 않았다. 움찔거리며 이따금씩 A의 시선을 살폈으나 그 애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A는 이미 책 한권을 골라잡고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결국 나는 동아리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도서관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항상 A의 시선을 살폈다.

 

 A는 마주잡은 깍지를 풀고 찻잔을 들어올렸다. 탁자가 한 번 더 덜그럭, 거렸다. 어제 오후,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A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A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듣다가 딱 한 마디만 했다.

 “만나야겠구나.”

A는 내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조향-또는 그와 비슷한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거절했다. 딱히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냄새를 모두가 더듬게 하고 싶었을 뿐, 좋은 향을 만드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모두가 한 번쯤 맡아본, 익숙하고 기분 좋은 향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찻잔을 손에 그러쥐고 탁자를 눌렀다.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던 탓이었다. 내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졌다.

 “무향이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A와 마주 앉았을 때부터 속에서 맴돌던 말이었다. 말할까 말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A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익숙한 냄새들 있잖아, 생활 속에서 그냥 무심코 지나치면서 맡게 되는 익숙하고 좋은 냄새들. 사실 공기 중에 다 묻어나는 것 같아. 그게 자꾸 끌리더라. 그래서 그걸 만들어 보고 싶더라. 인위적인 향기 말고 진짜 냄새.”

A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애초에 향기와 냄새를 구분 짓지 말아야지, 너의 말대로라면. 어차피 향기와 냄새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지 않겠어?”

A는 내게 대답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물음을 찍었다. 어쩌면 A는 내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몰라.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일상적인 냄새에 끌리게 돼있어. 묘한 그리움을 담고 있으니까. 어쩌면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생각보다 끌리고 싶어 하지 않아. 그런 건 악취라고 생각하거든, 악취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아무도 그런 냄새에 향기라는 단어를 부여하지 않는 거야. 그런 것들이 너에게 향기로 느껴진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어. 결국 개인의 차이지.”

A가 갖고 있는 생각은 나와 상당히 비슷하다. 이해와 존중의 상하 관계. A는 날 잘 안다.

 “먼지 냄새나 오래된 책 냄새 같은 거구나.”

나는 피식 웃으며 미지근하게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쩌면, 일상적인 냄새들 속 일부니까. 그리고 나도 가끔은 좋아하는 냄새인 걸.”

A가 손으로 머리를 넘겼다. 가슴께까지 오는 머리가 찰랑 거리며 장미 향기를 뿜어냈다. A에게선 늘 물에 젖은 나무의 진한 잔향이 난다. 장미와 나무의 잔향이 뒤섞여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A는 새벽의 축축한 흙과 같은 분위기를 닮았다.

 15,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우리 집이 죽도록 싫었다. 늘 비난부터 하는 엄마와 일거일수투족을 감시하려 드는 아빠까지, 녹슨 쇠에 묶여 사는 듯 했다. 좋은 대학, 밝은 미래. 그들이 말하던 사회적으로 훌륭한 인간은 족쇄였다. 피비린내 나는 족쇄 말이다. 매일같이 하루를 감시했고 10분이라도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어야 했다. 주변 친구들까지 차단시키며 그렇게 내게 훌륭한 인간을 강요했다. 그 당시 마리오네트 인형과 다를 바 없던 나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 입으로 숨을 들이켰다. 코로 숨을 쉬면 내 안으로 익숙하지 않은 물비린내가 들어오는 것 같아서, 차마 숨 쉬는 게 어려웠다.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내가 내 주체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엄마아빠의 끊이지 않는 압박은 그만큼 내게 버겁게 느껴졌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달고 물속을 뛰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이 제일 불편한 장소가 돼버렸다. 몇몇 친구들은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를 피했다. 학교에서는 절대 집에서 있었던 일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지내고 있던 무렵, A가 다가왔다. A는 나와 다른 반이었다. 심지어 내가 동아리를 그만두는 바람에 만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서로 아는 둥 마는 둥 지내던 차에 A가 말을 걸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던 나를 거울을 통해 계속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A가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빨리 벗어나기 위해 휴지로 얼굴을 대충 닦았다. 휴지에선 인쇄용지 같이 공장 냄새가 났다. 무심코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리는 둘 다 서로 피하지 않았다. 직접 마주보지 않아서 그럴까. A가 마냥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A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기묘하게 슬픈 얼굴로.

 “잘 지내니?”

평소였다면 응, 하고 지나갔을 텐데. 그때의 나로서는 대답하기 굉장히 힘들었다.

 “그냥. 잘 지내.”

 “그렇구나.”

그게 끝이었다. 나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휴지로 누르고 재빨리 뒤돌아 나왔다. A가 뒤돌아 나가던 내 모습을 보고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그 후로 며칠 뒤,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그날은 더더욱 집에 가기 싫었다. 내가 집에 도착하면 벌어질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더불어 또다시 입안이 바짝 마르고 혀끝으로 흙먼지가 느껴졌다. 코는 이미 제 할 일을 잊어버렸다. 결국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집에 가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까지 난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전화는 미리 꺼두었다. 엄마의 날 선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보슬보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남색의 검푸른 하늘과 약간의 구름, 그리고 적당히 내리는 비까지 저녁하늘에서 새벽의 향기가 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이자 울적한 냄새. 나는 농구 코트 한 가운데에 물웅덩이가 생기는 것을 보고 그곳에 쭈그려 앉아 웅덩이 위로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문득 A의 얼굴이 보였다. 그 기묘하게 슬픈 얼굴. 그게 내 얼굴이었다. 눈이 거멓게 일렁거렸다.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 코가 후끈하게 달아오르고 곧이어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결국 초록색의 농구 코트 위에 대자로 누웠다. 옷이 젖어 들어갔지만 상관없었다. 얇은 옷 밑으로 차가운 농구코트가 등을 파고들었다. 내 입에서 빠져 나온 구름이 하늘에 대고 말을 걸었다. 기분이 어때? 결국 이게 너야. 얼굴을 찌그러트리며 웃었다. 감정의 변화가 생길까, 아니면 오감이 저릴까 해서 안면근육이 팽팽하게 당기도록 활짝 웃어도 보았다. 눈에서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흘렀다. 아니, 뜨거운 걸 보니 눈물이었나 보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적시고 흘러내려 시리게 느껴질 때까지, 빗물이 이목구비를 전부 적시고 코와 입으로 끝도 없이 들어갈 때까지 계속 울며 웃었다. 눈에 담았던 온갖 비린내 나는 광경들을 헹궈내듯, 오래 오래 울었다. 마침내 참고 참았던 설움이 시원한 물에 씻겨 내려갔다. 차갑고 어두운 초록색 농구코트의 외로운 냄새와 뜨뜻미지근한 공기를 한없이 가라앉히는 흙비 냄새가 한데 뒤섞여 나를 무겁게 더듬었다. 그렇게 오묘한 공기에 감싸여 한참을 울었을까. 회색 구름이 보라색 우산에 가려졌다. A가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을 내밀었다. 얇고 단단한 손. 처음 잡는 A의 손이었다.

 “집에 데려다줄게.”

A는 보라색 우산을 씌워주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눈에 세상을 담지 않았다. 코로 느낀 세상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가슴이 꽉 차서 토할 듯이 답답해지면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내쉬었다. 입안이 꺼끌꺼끌하고 혀가 마를 때까지. 어쩌면 나한텐 그게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회사에선 별 일 없었던 거지?”

A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곁눈질을 했다. 저 거멓고 공허한 눈. A는 소의 눈을 닮았다. 온갖 풍경을 눈에 담고 있는 소의 눈이 내 시선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칭칭 옭아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는 A의 눈에 담긴 것은 무엇인가. 아직까지도 비린내를 품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내 모습은 솔직해 보일까. 결국 그 어떤 풀이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렀다. 난 여전히 누군가의 동공에 비친 내 모습을 쫒으며 살고 있구나. 마침내 A의 눈에서 무언가 타는 냄새가 자글자글하게 났다.

 “별일은 무슨, 그냥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사실 좀 지쳤거든.”

여전히 거짓말로써 나를 보호한다. 아니, 보호한단 명목으로 나를 옭아맨다. 마네킹 판넬에 몸을 우겨넣듯, 그렇게 맞춰간다. 썩은 물에 몸을 담가 버렸다.

 “그래?”

A는 여전히 거먼 눈에 날 담고 있었다. 또다시 어린 시절 그 때처럼 치부를 들킨 듯, 불쾌하고 민망해졌다. 가끔은 A의 저런 눈이 정말 싫다. 누군가를 곤욕스러울 만큼 꿰뚫어 보고, 모두가 묵인하는 상처를 들쳐 내 굳이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저 눈을, 저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미치도록 경멸한다. A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팔짱을 끼고 날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한동안 내 모습을 자신의 눈동자에 가만가만 담았다. 초반의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결국 불편한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하기로 했다. 시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니 그 곳엔 대학생으로 보이는 조그만 여직원이 손을 바삐 움직이며 카운터 이곳저곳을 행주로 샅샅이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조그마한 먼지 한 톨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곧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 사람은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저렇게 열심히 닦았을까.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다시 한 번 탁자가 덜그럭 거렸다. A가 찻잔을 내려놓고 여전히 날 응시하고 있었다.

 아. 난 결국,

 “어쩌면, 이건 재미없잖아.”

정말 단지 그것 뿐 이다.

 

 회사는 나에게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광고 회사였지만, 적어도 수입이 끊기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직원 수도 많지 않아서 사내 따돌림 같은 것도 없었다. 나는 4년 전부터 그 회사에 다녔다. 대학 동아리 선배의 추천으로 비교적 쉽게 들어간 회사라 나올 때 미련이 없었나. 그냥 그저 다 헐어가는 칫솔을 바꾼 기분이었다. 사직서를 제출할 때 티끌만한 아쉬움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돈 말고,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복잡했지만 회전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까지 담담하게 굴었다. 그리고 A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아침나절부터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의 공기가 좋았다.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그리고 구석구석마다 펄럭거리는 종잇장 넘어가는 소리와 쉼 없이 돌아가는 프린터 소리까지, 내가 원하는 일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공기 사이에 떠다니는 엷은 인스턴트 커피 향들, 무언가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냄새였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만일 냄새가 눈에 보이는 물질이었다면, 회사는 아마 여러 색깔이 조각조각 퍼져 있는 레고처럼 생겼을 거라고. 어쩌면 상상 가능한 그런 냄새들이 나를 더 일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아마 그런 냄새들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별 거 아닌 공간에 별 거 없는 냄새였다. 내가 생각하는 규칙적인 냄새도 아니었고 그건 그저 내 생각 속의 바라던 냄새였을 뿐이었다.

 “이것 좀 오늘 저녁까지 되나? 부탁 좀 할게요. 내가 오늘 일이 많아서.”

새카맣고 허리까지 굽이치는 머리카락을 가진 와인색 손톱의 화려한 B. 늘 제비꽃 향이 진하게 나는 향수를 뿌리고 오는 듯 했다. 그녀에게선 머리 아플 정도로 인위적인 향이 났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그녀는 입사 동기였지만 도저히 정이 안가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업무를 내게 자주 떠넘겨서는 아니었다. 말할 때마다 거짓말하듯 오므려 지는 입술이 보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분홍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향수를 꺼내 칙칙 뿌리고 베이지 색 구두를 또각 거리며 사무실을 가로 질러 걸어 다닐 때는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다. 심지어는 긴 손톱으로 키보드를 두드릴 때조차 듣기 싫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입사 초반부터 꺼려했고 그녀는 그런 내게 다가오려는 노력을 하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다. 그리고 그 뒤로 가끔씩 내게 본인의 업무를 떠넘겼다. 내 코를 사정없이 찌르던 꽃향기가 사라지자 나는 차라리 업무를 떠넘기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보다. 그녀는 별로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때문에 딱히 사내 왕따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겉도는 사람이 되었다. 들리는 소문으로 그녀는 어떤 유부남과 내연 관계라고 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한 편으로 동정심을 가졌지만 곧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다 같이 모여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던 날이었다. 초록색 부직포가 깔린 채 아크릴 유리가 덮여 있는 휴게실 테이블은 각종 양념과 소스가 묻은 티슈들로 이미 지저분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지저분한 테이블 주위로 나를 포함한 7명가량이 둥글게 모여 앉아 수다를 떨며 끊임없이 먹었다. 물론 그 곳엔 새초롬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 음식에 손도 안대고 앉아 있는 B양도 있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새침한 표정으로 대화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도 그런 B양에게 말을 걸지 않자 내가 결국 음식을 권했다.

 “저기, 왜 안 드세요?”

그녀가 날 흘끔 쳐다보았다.

 “, 난 내일 내시경이 있어서. 많이 먹어요.”

왠지 그냥 기분이 나빠지는 어투였다. 괜히 먹는 사람이 잘못 된 기분. 그녀 앞에서 무언가를 더 먹기가 꺼려졌다.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음식에 손 하나 대지 않고 의자에 앉아 우리 대화를 듣기만 했다. 나 또한 그런 그녀가 신경 쓰여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피자와 치킨이 동나자, 가장 열심히 먹던 신입 여자사원 두 명이 파우치와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부리나케 사라졌다. B양 역시도 파우치를 들고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남아서 여럿 널브러져 있는 피자 박스 등을 치우고 테이블에 묻은 양념 소스들을 휴지로 문질러 닦았다. 그렇게 뒷정리의 잔해들을 들고 휴게실이 아닌 위에 층에 있는 화장실로 내려가니 어느 칸에선가 토악질 소리가 들렸다. 먹은 걸 토해내는 소리가 아닌 빈 속을 게워내는 소리였다. 마침내 구역질 소리가 멈추고 손등으로 입을 훔치며 나온 사람은 B양이었다. B양은 나를 보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아무렇지 않게 입을 헹구고 립스틱을 발랐다. 그리고는 다시 향수를 칙칙, 목 주변에 뿌렸다.

 “괜찮아요?”

그녀는 짐짓 가벼운 표정을 지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 나쁘진 않아요.”

 “건강에 문제 있는 건 아니죠?”

어렵사리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녀는 피식, 입에서 바람이 빠져 나가듯 웃었다. 늘 오므려져있던 입술이 보기 좋게 이완되었다.

 “나 거식증이에요. 그냥, 그 자리에 끼고 싶어서 있던 건데 음식 냄새가 좀 역하더라.”

향수 냄새가 더 역할 텐데, 내가 벙 쪄 있자 그녀는 슬쩍 나를 비켜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날 잘 모르더라구요. 물론 내가 말 안 하는 것도 있지만.”

그녀가 파우치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 말이었다. 그녀가 담배를 피울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꽃과 담배가 어우러져 기묘하고 슬픈 냄새를 만들었다.

 “알게 모르게 당신들이 내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대충 보여요. 물론 그게 내 모습의 다가 아닌데.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죠. 예를 들면 유부남과 내연의 관계라는 것 말이에요.”

이 말을 하는 B양이 참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짙은 냄새를 풍기며 흩어지는 연기가 그녀의 가슴 깊숙이 썩고 썩은 한숨 같았다. 이제 보니 그녀는 말라비틀어진 꽃에 둘러싸인 채 울고 있었나 보다. 연기가 흩어지자 그녀가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굳이 해명할 생각은 없어요. 어차피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만 봐요. 본인들이 정한 틀에 굳이 끼워 맞추는 거죠. 그게 뒤틀리든 말든. 몸부림치든 말든.”

그녀가 담배를 비벼 끌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내 입술이 보기 싫게 오므려질 것 같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그냥 그녀에 대해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사내 사람들조차 그랬겠지. 나를 포함한 모두는 선인장 그 자체였다. 향기롭지 않은, 심지어 꽃이 자라기도 어려운 그런.

 “나 어차피 곧 그만둬요. 그니까 오늘 한 얘기 신경 쓰지 말아요. , 아까 왜 안 먹냐고 물어봐 준 거 고마웠어요.”

그리고 B양은 옅은 꽃향기를 남긴 채 2주 후 퇴사했다.

 

 나는 어쩌면 고민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결국엔 B양과 내가 다를 바 없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향기로운 조화였던 B양과 달리 난 향기 나지 않는 생화였다. 그러다 문득 어떤 에세이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내 삶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말. 그땐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해서 깊게 짚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 의해 꺾이고 베어지는 삶이 내가 주체 일 수 있을까. 이미 나 자신보다 타인을 앞세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삶을 이끌어가는 이는 누구인가. 눈을 가리고 코로 세상을 받아들인 나머지 무뎌져 버린 건 아닐까.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침없이 타인에게 끌려 다니는 삶. 나는 내가 회사에서 만드는 광고들만큼이나 거짓되었다. 부풀려지고 가려지고, 나는 그런 광고들과 다르지 않다. 진짜 내 인생이라면 그래선 안 되었다. 누군가의 눈에 비친 이미지를 내게 들이밀며 강요하고 있었다. 정말 나는, 거울에 비친 상만큼 거짓된 존재이지 않을 수 없다. B양은 적어도 나보단 더 솔직한 삶을 살고 있었다. 최소한 그녀는 자신의 본모습이라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길 실패한 것 뿐. 어쩌면 그녀도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가장 의미 있는 건, 세상을 다시 새로운 후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몰라.

 회사는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안정적인 월급만을 위해 들어간 직장이었다. 먼저 쫓겨나기 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고 딱 발붙이고 있을 거라고 다짐했던 직장은 그렇게 한 순간에 사라졌다. 더 이상 회사는 여러 색깔로 퍼진 레고 조각이 아니었다. 그저 딱딱하게 굳어버린 회반죽 덩어리일 뿐. 결국 회사는 몽실몽실 인위적인 크림 덩어리였다. 결국 기계의 차디찬 금속 냄새가 날 뒤덮기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냥, 내가 코에 좀 민감하잖아. 그래서 조향 같은 거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커피향이 누그러졌다. 끊임없이 퍼지는 고소한 씁쓸한 내에 내가 민감해 진걸까. A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너가 만들고 싶은 향은 어떤 건데?”

오늘의 만남에서 내가 A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질문이다. 목구멍 뒤로 침이 넘어갔다. 마침내 단내가 난다.

 “스쳐가는 것.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자연적이면서 인공적인 향.”

 “예를 들면?”

 “예를 들자면, 야심한 밤의 도시 향기 같은 거겠지. 그날 하루가 얼마나 고되게 돌아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체취와 다양한 냄새를 품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그날그날의 향처럼 말이야. 사람도 다 그런 거잖아.”

A는 물었다. 사람?

 “누구나 제마다 다른 길을 걸어. 그렇게 걸어오면서 다들 자신만의 경험과 생각을 갖게 되지. 그리고 그런 과정들 사이에서 유일한 나만의 것, 그런 향기가 생성되는 거야. 어떤 인위적인 향도 섞이지 않은, 포장이 벗겨지고 마침내 드러낸 나 자신. 내가 만든 향기는 그런 것들이었으면 좋겠어. 가장 자연적이고 독보적이면서 나다운 거.”

A10년 전에 비 내리는 농구 코트에서 마주쳤던 표정을 짓고 있다. 기묘하게 슬픈 얼굴이자 내 얼굴. 그 위로 B양의 허심탄회한 웃음이 겹쳐 왔다. 마음을 짓누르던 5킬로그램짜리 추가 중력을 거스른다. 시간이 꽤 흘러 카페 내부로 투명한 창을 통해 지기 시작하는 노을빛이 살며시 들어왔다. 카운터에서 풍겨오는 가벼운 라떼 향기와 함께 가을의 향기가 스며들었다. 따뜻하다.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날씨였건만, 온기가 느껴졌다.

A는 내게 묻는다. 넌 어때?

 

 나는, 그러니까 나에게는 어렴풋한 정전기 냄새가 난다. 약간의 탄내를 품은. 작은 사각형의 텔레비전에서 나는 묘하게 코가 시원한 정전기 냄새. 어쩌면 그래, 지금 나에게서 나는 냄새가 포장되지 않은 가장 솔직한 내 향기일 수 있겠다. A에게 늘 축축한 흙과 젖은 나무 향기가 나는 것처럼, 내 향기도 누군가에게 뚜렷한 이미지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A의 접시 위에 살짝 남아 있는 허연 크림 흔적들이 점차 말라가고 있다. 나름의 딸기 크림 향기를 끌어안고 죽어가듯이 천천히, 천천히 말라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가지고 무슨 향기를 만들었을까. 지금까지 포장되었던 냄새들을 생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포장을 벗겨 낸 것만으로도 그동안 가려졌던 짙은 향기들이 마음껏 퍼질 지도 모르지.

 

 

 A는 어느 새 감색 자켓을 집어 들고 있었다. 카운터의 어린 여대생, 그녀의 눈웃음은 우리가 나갈 때까지 꽂혀 있었다. 어찌나 시원하게 웃던지 박하 향이 날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일까. 카페에서 몰고 나온 달고 고소한 내가 카운터의 박하 냄새와 엉켜 아직까지도 나와 A의 주변 공기를 끈끈하게 묶었다.

 “연락할게.”

 “‘그래.”

우리는 또다시 모르는 사람처럼 얼굴을 하고선 서로를 등지고 걸어갔다.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한 장, 한 장 바닥을 디뎠다. 포장도로 위에 얹혀 진 채로, 그렇게 밟혀 연한 갈색을 띄었다. 아직까진 건재한 나무 그늘 아래 멈춰 서서 코를 열었다. 세상이 수많은 냄새를 품고 내게 직진했다.

Who's 안유진

?

정월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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