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어떤 말로든 나를 불러준다면

by VOBO posted Apr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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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든 나를 불러준다면


 때로 어떤 이의 죽음은 누군가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그것을 느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서 마주친 계기라니.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그 위에 볼을 얹었다. 기울어진 시선에 곰팡이가 슬은 누리끼리한 벽지가 보인다. 한동안 곰팡이를 쳐다보다 눈꺼풀을 닫았다. 곰팡이가 사라졌다.

 작년 12월의 겨울, 그러니까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예순을 조금 넘긴 아버지는 30년을 운영하던 작은 책방을 정리했다. 2년 전 상행결장에서 발견된 암 때문에 수술을 받아 예전보다 체력이 약해져 있기도 했고, 치매 걸린 엄마를 돌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치매는 반년 전에 갑작스레 찾아왔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아버지는 책방에서 엄마를 돌보기를 원했지만, 손님 없이 파리만 꼬인다 하더라도 치매 걸린 노인을 곁에 두고 책방을 운영하는 건 무리였다. 나는 엄마를 요양병원에 보내자고 했다. 딸로서는 못 할 짓이지만, 아버지의 제안보다 훨씬 실용적인 방법이었다. 아버지도 책방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병원이 안전하고 편하리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노인병원에 들어간 뒤부터 아버지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책방 문을 일찍 닫았다. 그러나 그 이틀과 책방을 하지 않는 주말로는 둘의 사랑이 너무나 애틋했는지 아버지는 결국 책방 운영을 그만두기로 했다. 빨간 노끈으로 열 권씩 묶인 책을 트럭에 실었다. 얇은 천 따위의 막 하나 없이 그대로 노출된 손이 꼭 잘 익은 딸기 같았다. 이미 꽁꽁 언 입으로 입김을 불었다. 입김마저 차서 손가락만 더 아릴 뿐이었다. 입김을 불던 입에서 미세한 불평이 터졌다. 아버지가 마지막 묶음을 트럭에 싣는 걸 확인하고 서둘러 조수석에 앉았다. 텅 비어버린 책방을 둘러본 아버지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 키를 왼쪽으로 두어 번 돌리자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며 시동이 걸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서 오늘 날씨를 알렸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해…….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손에 분홍색 장갑이 껴있었다. 손등에 큰 방울이 달린 장갑이다. 그마저도 오른쪽 장갑에는 방울이 없었다.

 책을 실은 트럭은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세솔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렇게 큰 도서관은 아니지만, 웬만한 책은 다 있는지 학생들이 서점보다 더 많이 찾는다.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자 미리 나와 있던 여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세솔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올해로 내가 서른네 살이니, 십칠 년 동안 도서관에서 일한 셈이다. 책만 쳐다보고 정리하는 게 즐거울까. 그 당시 나는 바코드를 찍는 그녀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아버지는 재빨리 오른쪽 장갑을 벗어 왼손에 들고 혼자 불쑥 내민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시선이 아버지의 왼손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책은 어디에다 둘 것인지 묻자 그녀가 아버지를 바라봤다. 이내 넉살 좋게 웃으며 트럭에 쌓여 있던 책 두 묶음을 가져가더니 우리를 안내했다. 그 뒤를 아버지가, 그 뒤를 내가 따랐다. 앞장서서 가는 그녀의 손에 들린 책 두 묶음이 꽤 무거워 보였다. 나는 양손으로 받쳐 한 묶음만 들었다. 그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입구 정면에서 바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돌면 샛길처럼 되어 있는 좁은 통로가 나온다. 우리는 개미처럼 줄지어 걸었다. 잠시 조용하던 공간이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크게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선두로 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말하는 그녀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그녀의 말이 뚝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녀의 목소리를 제외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간혹 아버지의 ‘예, 그럼요’하는 대답이 들렸다. 나는 그저 손가락 끝이 저릿하고 어깨가 뻐근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책을 다 나르고 나서 그녀가 차 한 잔을 권유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 위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차를 마시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이 일을 마치면 회사에 가야 했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정중히 거절했다.

 “아내가 기다려서요. 다음에 한 잔 주세요.”

 가보겠다고 인사하고 도서관을 나서는 아버지를 그녀가 가로막았다. 아버지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그녀는 흰 봉투 들이밀었다. “조금 넣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아버지는 손사래까지 치며 거절했다. 그녀는 오른쪽 눈썹을 위로 찡긋 올리더니 대답 없이 봉투를 반으로 접었다. 예의상 한 번 더 건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나처럼 사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그녀가 바지 주머니에 넣기 전에 봉투를 낚아챘다. 이번에는 그녀의 양쪽 눈썹이 닿을 정도로 미간이 좁혀졌다.

 “책이 좋은 곳에 쓰여서 좋네요. 감사히 잘 받을게요.”

 최대한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첫 문장은 가벼웠고, 두 번째 문장은 왜인지 힘을 담아 얘기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차에 타자마자 봉투부터 열어 액수를 확인했다. 엄지에 침을 묻혀 한 장씩 넘기며 일, 이, 삼 하고 숫자를 중얼댔다. 숫자에 리듬감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지폐가 엄지에 닿았다. 만 원짜리로 총 열다섯 장이 들어있었다. 십이면 십이고, 이십이면 이십이지 십오만 원은 뭐람. 속으로 구시렁대며 돈을 가로로 세워 허벅지에 탁탁 쳐 정리했다. 인사를 마친 아버지가 차에 올라탔다. 정리한 돈을 봉투에 넣어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십오만 원이네요. 아버지 쓰세요.”

 “나는 거절한 돈이니 은수 너 써라.”

 대답은 하지 않았다. 예의라는 명분으로 두 번 묻는 건 사치였으니까.


 책방을 닫은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아버지는 집이 아닌 수술실에 있었다. 2년 전 수술하고 완치된 줄 알았던 대장암이 재발한 것이다. 아버지를 병원에 옮긴 건 나였다. 평소보다 일이 일찍 끝나 두부를 사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오랜만에 가벼웠다. 된장찌개를 끓일 생각을 하며 집에 들어왔는데 티브이가 아직도 켜져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신발을 대충 벗어놓고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집이 평소보다 조용했다. 바닥에 동화책 몇 권과 손수건이 규칙 없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격이다. 하루에 한 번 집을 쓸고 닦았고, 설거지하고 나선 행주로 개수대에 남은 물기를 닦았다. 청소기 소리를 무서워하는 엄마 덕에 빗자루를 쓰게 됐지만,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바닥에 놓인 손수건이 눈에 가득 찼다. 이상함을 느꼈다. 외투와 가방을 두부와 함께 식탁 위에 올려두고 소파 맞은편에 있는 안방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캄캄했다. 벽을 더듬거려 불을 켰다. 달칵. 형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바닥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했다. 엄마는 아버지 옆에 있었다. 딸랑이를 꼭 쥔 손으로 무릎을 가슴께로 끌어안아 얼굴을 박은 채, 자고 있었다.

 엄마를 탓할 여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고, 나와 엄마가 동행했다.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10분도 채우지 않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이라고 쓰인 유리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버지가 누워있는 침대의 종착지를 몰랐다. 간호사가 나에게 수술 동의서를 내밀었다. 동의서를 받는 순간 까막눈이 된 것 같았다. 글씨가 춤을 추고 있었다.

 “대장암 재발이요? 살 수 있는 거죠? 그렇죠? 수술하면, 그러면…….”

 “따님, 조금만 진정하시고요. 수술 들어가려면 동의서에 서명해주셔야 해요.”

 간호사의 다독임과 재촉으로 나는 겨우 볼펜을 손에 쥐었다. 서명란에 적힌 이름 석 자에 떨림이 고스란히 묻었다. 내가 이름의 마지막 획을 긋자마자 간호사는 동의서를 들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잔인하게도 곧바로 수술 중에 불이 들어왔다. 손톱을 물어뜯었다. 짧은 손톱이 잘근잘근 씹혔다.

 아버지는 그해 여름,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를 통해 대장암이 재발했고, 재발하면서 암이 간까지 전이되었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셨다. 내가 검진 결과를 물었을 때, 아버지는 당만 조심하면 된다고 말했었다. 다 알면서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가 걱정할까 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걱정은 내 몫이었다. 친절한 아버지는 내가 할 걱정까지 모두 본인이 삼켰다. 들은 바로는 병원 측에서 입원을 권유했지만, 아버지가 거절했다고 한다. 엄마가 치매를 앓고 난 뒤부터 아버지는 남에게 거절을 표하는 일이 잦았다. 이유는 전부 엄마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엄마가 우선이었다.

 수술중에 불이 들어온 지 세 시간이 지났다. 저번에도 수술하는데 네 시간 정도 걸렸으니 더 기다릴 수 있었지만, 걱정이 태산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술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수술비에 대한 걱정이 추가됐다. 오로지 수술 성공 여부만 걱정하기엔 밖은 너무 어둡고 추웠다. 엄마는 내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자꾸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잘못하면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세 시간 내내 서 있다가 이제야 의자에 앉았다. 엄마의 얼굴을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의자에 일자로 누운 엄마는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 갔다. 만약 엄마가 정신이 멀쩡했다면, 아버지는 지금 이 상황을 겪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엄마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처음 수술받았던 날 했던 말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남을 싫어할 여유가 생긴다면 나를 평생 미워하고 살아라.”

 나는 아버지를 미워할 여유가 없었다.


 수술은 결국 끝나지 않았다. 걱정했던 것처럼 수술 중에 쇼크가 왔고,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수술 이후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갔다. 장례식에 찾아왔던 조문객들은 조의를 표하며 위로의 말을 덧붙였다. 그들의 시선은 엄마에게 향했다. 그들의 시선에서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이내 그 시선은 우르르 나에게 향했다. 나는 눈빛에서 동정을 읽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모든 이들의 눈빛이 다 똑같았다. 나를 동정할 거면 다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와서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측은하게 바라보는 모습에서 수술비를 걱정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나를 동정하는 저들이나,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수술비를 걱정하는 나나 다를 게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기를 붙잡고 빈속을 게웠다. 위액이 입가에 묻었다. 눈물이 정신력을 비집고 흘러내렸다. 누르던 울음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너무 오래 누르고 있던 탓인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변기 물을 내렸다. 물이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울음소리가 먹혔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렇게 끝났다.

 장례를 치룬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날, 남자친구인 민우에게 문자가 왔다. ‘괜찮을 때 연락해.’ 은수는 민우의 문자를 보고 쌓여있는 부재중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죽은 뒤로 장례를 치른다는 문자를 보낸 이후로 휴대전화를 보지 않았다. 문자를 하나씩 읽었다. ‘전화 왜 꺼둔 거야?’, ‘내가 뭐 잘못했어?’, ‘아버님 돌아가신 거 왜 얘기 안 했어.’, ‘출장 때문에 장례식 못 가서 미안해.’ 반 정도 읽다가 그만뒀다. 엄마가 밥 달라며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두부가 놓여있었다. 며칠 동안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아 두부에서 쉰내가 났다. 전기밥솥에 들어있던 콩밥에서도 쉰내가 났다. 두부와 콩밥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찬장을 뒤적거리다 즉석밥을 찾았다. 전자레인지에 대충 돌리고 냉장고에서 있는 반찬들을 꺼냈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밥을 기다렸다. 엄마는 즉석밥을 식탁 위에 놓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질이 서툴렀다. 물을 한 컵 따라 엄마의 맞은편에 앉았다.

 “석호는 어딨어?”

 순간적으로 정신이 깨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입에서 아버지 이름이 나왔다. 나는 “누구?”하고 되물었다.

 “석호. 김. 석. 호.”

 엄마는 아버지의 이름을 또박또박 얘기했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숟가락에 밥을 한가득 담았다. 장조림을 집어 밥 위에 올렸다. 엄마는 곧잘 받아먹었다. 나도 숟가락을 들었다. 반찬 없이 밥만 입에 욱여넣었다. 목이 막혔다. 차라리 이대로 목이 막힌다면 지금보다 낫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는 딸랑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손잡이를 꽉 쥐고 흔드는 게 두 살배기 어린이 같았다. 딸랑이는 원래 내가 어렸을 때 갖고 놀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버리지 않고 잘 챙겨둔 덕에 따로 장난감을 살 필요는 없었다. 입까지 벌리고 놀던 엄마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 손수건을 찾아 침을 닦았다. 어디선가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 휴대전화에서 울린 벨 소리였다. 발신자에 회사 상사의 이름이 떴다. 한참을 통화하다가 ‘예, 그럼요’라고 대답하며 보이지도 않는 상사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장례식도 끝났으니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전화였다. 소파에 기대 눈을 감았다. 당장 내일부터 일을 나가면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누군가를 돌보게 된 게 처음이라, 대책이 없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 있을 모든 일이 파도처럼 나를 덮친 것 같았다.

 결국, 엄마의 치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와 같은 선택을 했다. 나는 직장인이었고, 엄마를 집에 혼자 두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아침에 회사에 가기 전, 어제 전화가 왔던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사는 전화하는 내내 탐탁지 않은 목소리였다. 요양병원에 들러야 해서 반차를 쓰겠다는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 것 같았다. 찜찜하게 허락을 받아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빠지면 곤란해’라고 말하는 상사의 말이 귓가에 윙윙댔다.

 엄마는 보름도 되지 않아 다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입원 절차는 복잡하지 않았다. 기록이 있어서 저번보다 빨리 입원 절차가 진행됐다. 엄마를 보고 ‘순정 씨 오랜만이네?’하는 간호사의 말투가 친절했다. 밝은 목소리로 ‘오랜만’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며 반가워하는 게 모순적이었다.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엄마는 6인실인 306호를 배정받았다. 침대에 앉아 딸랑이를 흔드는 엄마의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였다. 회사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와 병실을 나왔다. 문에 나 있는 작은 유리창으로 엄마를 눈에 담았다. 속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 꽉 깨물었다. 어금니 쪽부터 고통이 느껴졌다. 울컥한 감정이 조금씩 내려갔다.

 회사에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탔다. 출근 시간대가 아니라서 빈자리가 많았다. 버스 안을 빙 둘러보다 일인 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의 사람들은 다들 바쁜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두 정거장을 지나쳤다.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눈이 버스 창문에 붙었다. 금세 녹아 없어진다. 눈이 창문에 붙었다. 녹아서 물이 된다. 눈이 녹는 과정을 몇 번이나 살펴봤을까, 익숙한 곳이 보였다. 원래 아버지의 책방이 있던 곳이었다. ‘순정 책방’이라는 간판은 벌써 다른 가게 간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나둘 떨어지던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도로가 온통 하얗게 덮일 것이다. 깨끗하고, 깨끗하고, 차갑게.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벌써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 아버지의 죽음에 묶여있기엔 맡은 일이 너무 거대했다. 일이 바빠서 몸이 쉴 틈이 없었다. 머리도 쉴 새 없이 굴렸다. 아버지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엄마를 보러 병원에 들렀다. 그중에 한 번은 민우가 함께였다. 민우는 엄마를 친엄마처럼 대했다. 낯도 심하게 가리면서 엄마에게 한없이 다정했다. 하지만 다정함이 무색하게도 엄마는 매번 민우를 잊었다. 나한테도 새로 온 간호사 언니냐고 물어봤던 게 떠올랐다. 굳이 간호사가 아니라 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쯤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고 보니 민우랑 만나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째 되는 해였다. 민우는 지금 일하는 회사에 다니기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만났다. 우연히 영업부와 재무부가 회식 자리에서 만났고, 우리는 서로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주량이 약한 편이었는데, 상사가 주는 술을 거부할 수 없어 다 받아 마시다 만취 상태가 되었다. 그런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 게 민우였다. 같은 부서도 아닌데 챙겨준 게 고마웠다. 다음 날 회사에서 성의 표시로 커피를 건넸는데, 그 뒤부터 민우는 커피를 사서 영업부를 찾았다. 정확히는 영업부에 속한 나를 찾았다.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나 연인 사이가 되었다. 벌써 4년 전의 일이었다. 삼십 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면서 민우는 모든 것을 함께 겪었다. 갑작스러운 퇴사와 아버지의 암, 엄마의 치매. 민우는 시답잖은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민우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한번은 민우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결혼 얘기를 하며 민우는 자식 얘기까지 늘어놓았다. 결혼도 걱정이 많은데, 점점 범주가 커졌다. 입을 다물었다. 한 명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며 활짝 웃으며 말하는 민우의 얘기를 듣기만 했을 뿐 반응은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가정을 꾸리고 지금 지닌 것 이상으로 더 많은 수식어가 붙는 게 싫었다. 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은수야. 어머님 데리고 밖에 나가서 저녁 먹고 들어올까?”

 “그래. 내가 말씀드리고 올 테니까 엄마 외투 좀 입혀줘.”

 병실을 나와 안내대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오랜만이라며 인사했던 간호사를 만났다.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여전히 친절했다. 전보다 투정부리는 횟수가 적어졌다며 밥도 잘 먹고 대소변도 잘 가린다고 신이 난 것처럼 줄줄 읊어댔다. 적당히 호응했다. 간호사는 할 말이 다 끝났는지 필요한 건 없느냐고 물었고, 그제야 나는 외출 허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간호사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안내대로 뛰어갔다. 달리기하듯 열심히 뛴 건 아니었지만, 속도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사회생활 잘하겠네. 속으로 생각하며 안내대에서 종알대는 간호사를 바라봤다. 안내대까지 거리가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돌아온 간호사의 앞머리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외출 허가 승인이 떨어졌다.

 엄마는 민우의 팔에 팔짱을 낀 채 걸었다. 엄마는 오늘의 민우를 기억한다. 그렇지만 가끔 ‘석호야’라며 아버지 이름으로 민우를 부르기도 한다. 민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은, 정말 능청스레 ‘응, 여보’ 하며 답하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병원 근처에 있는 백반집이었다. 원래 엄마가 좋아하는 대구탕을 먹으려 했는데 엄마가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미역국과 고등어구이가 나오는 백반을 세 개 주문하려는데 엄마의 입이 비쭉 튀어나와 있었다.

 “엄마. 뭐 더 시켜줄까?”

 “……미역국. 내일도 먹고 싶어.”

 생각보다 간단한 요구였다.

 “포장 가능한가요?”

 “네. 포장해드릴까요?”

 “고등어구이 백반 하나 포장해주세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민우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에 끼려 했지만, 상사에게 전화가 오는 바람에 끼지 못했다. 민우에게 눈짓하고 식당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내일 있을 영업부 회의 발표 자료를 잊지 말고 챙겨오란 전화였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상사는 ‘내일도 반차 쓸 건 아니지?’하고 비꼬았다. 옹졸하기 짝이 없다. “아닙니다.” 나름대로 강한 어투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생각보다 더 몰상식한 상사다. 월급이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1.5배는 높았음에도 입사한 걸 후회하게 만들었다. 헛기침을 두 번 정도 해 목을 가다듬었다. 목소리에 묻은 화를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옷깃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가 끝나고 포장된 백반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있는 빵집에서 간호사들에게 줄 빵을 몇 개 골랐다. 병원에 도착해 포장해 온 백반을 냉장고에 넣었다.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병실을 나오며 안내대에 있는 간호사에게 빵을 건넸다. 포장해 온 백반을 냉장고에 넣어뒀다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다. 엄마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동안 민우는 줄곧 엄마 얘기만 했다. 민우는 항상 병원에 온 날에는 엄마랑 나눈 대화를 설명해줬다. 그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엄마와 34년을 살면서 한 번도 묻지도 듣지도 않았던 얘기들이 많았다. 내가 엄마의 인생 절반을 함께 보내면서도 하지 못한 대화를 이제 고작 3년 본 민우가 대신해줬다. 고맙다고 닳도록 말해도 모자랄 사람이었다.

 “민우야.”

 “응?”

 “결혼하면, 우리 애는 낳지 말자.”

 말을 내뱉은 순간 집에 도착했다. 민우의 대답은 듣지 못했다. 이기적인 발언인 걸 알고 있다. 민우에게 받을 대로 다 받아놓고 정작 나는 주는 게 없었다. 사람 마음이란 건 참 간사했다. 누구는 타인의 간절함을 가지고 놀고, 누구는 타인의 감정을 가지고 논다. 따지고 보면 나도 민우의 진심을 가지고 노는 거나 다름없었다. 잊고 있던 지난날의 내가 떠올랐다. 수술비를 걱정하던 나. 그때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이번에는 속을 게워내진 않았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도 없이 벌컥벌컥 마셨다. 물을 마시고 있는데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휴대전화에서 짧은 알람이 울렸다. 민우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렇게 하자. 잘 자.’

 민우는 나를 만난 뒤부터 거절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새벽 동안 눈이 왔는지 길거리에 녹다 만 눈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서 이미 회색으로 변해 구정물을 만든 눈이 가득했다. 질퍽거리는 눈을 피해 아직 발이 닿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코로 발밑에 있는 눈을 콕콕 찍었다. 신코가 닿은 부분이 옴폭해졌다. 회사에 도착했지만 들어가기 싫었다. 오늘 회의에서 잘 보여야 승진할 기회가 생긴다.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에 다른 곳도 신코로 찍었다. 내가 서 있는 주변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다. 신발 밑창으로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쓸었다. 구멍이 메꿔졌다.

 회의는 깔끔하게 끝났다. 실수한 것도 없었다. 좋은 성과를 기대해볼 만했다. 회의실에서 영업부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휴대전화 전원을 켰다. 항상 큰일을 마치면 민우에게 문자를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상단 바에 문자 알림이 두 개 떠 있었다. 두 통 모두 민우에게서 온 문자였다. 밑에 있는 알림을 눌러 메시지를 확인했다. ‘회의 끝나는 대로 연락해.’ 그다음에 온 메시지를 눌렀다.

 ‘어머님이 사라지셨대.’

 문자를 보자마자 발걸음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뛰었다. 뒤에 오던 상사가 내 이름을 부르며 어디 가는 거냐고 소리쳤다.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6층에서 멈춰있었다. 한 층만 더 내려오면 탈 수 있는데 오류라도 걸린 것처럼 시간이 걸렸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타자마자 일 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계속 눌러댔다. 문이 닫히면서 보인 것이 상사 얼굴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회사를 뛰쳐나와 택시를 잡으며 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짧게 울리고 곧바로 민우가 전화를 받았다. 민우는 이미 엄마를 찾고 있는지 호흡에 공기가 많았다. 민우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막혀 목소리가 안 나왔다. 팔이 빠질 것처럼 손을 흔드니 택시가 잡혔다. 목적지로 집 주소를 댔는데 민우가 집에 가봤는데 안 계시다며 다른 곳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목적지를 말해야 하는데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어떡하지. 어쩌면 좋지. 엄마는 어디 있는 거지.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미소, 미소 요양병원으로 가주세요.”

 민우가 자신도 요양병원으로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거기 말고는 엄마가 있을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가 사라졌다. 요양병원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 엄마는 어디에 있는 거지. 눈물이 자꾸 나서 목이 막혔다. 제대로 내뱉지도 못하고 끅끅거리는 울음 때문에 숨이 막혔다.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침착해야 한다고 정신을 붙잡았지만, 병원복 하나 입고 밖을 돌아다닐 엄마가 떠올라서 이성을 놓쳤다. 내가 갈 목적지는 요양병원뿐이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엄마는 요양병원을 나와 밖을 돌아다니고 있을 터였다. 기사님께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만 원을 한 장 꺼내 기사님께 드리고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에서 내린 뒤에 무작정 걸었다. 요양병원에서 나온 거니까 멀리 가진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서 요양병원으로 가는 버스는 마을버스 한 대뿐이었다. 버스 노선대로 뛰었다. 찬바람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흐르는 눈물이 얼굴에 말라붙는 것 같았다. 뛰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간신히 붙잡은 정신 사이로 아버지가 떠올랐다. 여유가 없어서 미워하지도 못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휴대전화에서 전화음이 울렸다. 혹시 엄마를 찾았다는 전화일까 봐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휴대전화에서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는 내 이름을 말하며 본인이 맞냐고 물었다. 맞다고 대답하자 여자는 할머니가 어쩌고 하며 얘기를 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을 대비해 엄마 목에 걸어준 목걸이를 보고 전화를 건 것 같았다. 나는 다 듣지도 않고 주소부터 물었다. 여자가 주소를 읊었다. 너무나 익숙한 주소였다. 예전 아버지의 책방이 있던, 그곳이었다.

오랜만에 오는 곳이었다.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김석호. 엄마는 다른 건 다 잊어도 아버지 이름은 잊지 않았는데. 책방이 있던 곳엔 작은 골동품 가게가 들어섰다. 문을 여니 문에 달린 종이 맑은소리를 냈다. 소리를 듣고 나온 여자가 나를 쳐다보며 혹시 전화 받으신 분이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밖이 춥길래 데리고 들어왔거든요.”

 그 잠시의 시간이 억겁 같았다. 여자가 엄마를 데려왔다. 엄마를 보자 겨우 그쳤던 눈물이 왈칵 터졌다. 어제 봤던 엄마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오는 길에 넘어진 것인지 병원복이 구정물로 더러워져 있었다. 내가 우는 걸 본 엄마가 울지 말라며 나를 다독였다.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면서 나를 달래주고 있었다. 몇 번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진정이 되고 있었다. 먼저 엄마의 상태를 살폈다. 옷이 더러워진 것 말고 크게 드러나는 외상은 없었다. 괜찮은 거냐고 물으니 엄마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석호가 없어. 석호 생일 축하해줘야 하는데.”

 “엄마…….”

 “내가 석호 주려고 미역국도 가져왔어.”

 엄마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쇼핑백을 들고 왔다. 쇼핑백 안에는 어제 백반집에서 샀던 미역국이 들어있었다. 오늘이 아버지의 생일인 걸 잊고 있었다. 나도 잊고 있던 아버지의 생일을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책방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잊지 않았다. 나도 잊은 아버지를, 엄마를 찾으며 돌아다니다 떠오른 아버지를, 엄마는 그리워했던 걸까. 쇼핑백을 들고 멀뚱히 서 있는 엄마를 품에 안았다. 엄마를 안고 있으니 따뜻함에 몸이 녹아내렸다. 엄마를 안은 채 아이처럼 울었다. 엄마, 엄마. 하고 애처롭게 부르면서.

 “은수야.”

 깜짝 놀라 안고 있던 손을 풀고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가 치매에 걸린 이후로 처음 듣는 내 이름이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언젠가 한 번쯤은 불러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현실을 부정한다는데, 사실인가 보다. 앞에 있는 사람이 엄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의 손이 내 머리카락에 닿았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그 손길이 너무 따스해서 나는 앞에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 고순정이라는 걸 믿을 수 있다.

 “내 딸…….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 아니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응? 엄마가 왜 미안해…….”

 “나중에, 아니면 지금이라도. 네가 여유가 생겼다면.”

 “…….”

 “네 아빠 말고 엄마를 평생 미워하고 살아.”

 엄마가 운다. 몰래 숨어 우는 건 봤어도 내 앞에서 운 적은 없었다. 그랬던 엄마가 내 앞에서 운다. 치매에 걸린 이후로 처음 정신이 돌아왔다. 원래 치매 걸린 사람은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데, 엄마도 그 경계에 놓인 것 같았다. 언제 치매 걸린 엄마로 돌아갈지 모른다. 아직 엄마한테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우느라 말이 안 나왔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엄마를 세게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했던 말을 엄마도 똑같이 했다.

 “여유가 있어도 두 분 미워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세게 안아서 숨이 막히도록, 세게.


 그날 엄마는 엄마를 평생 미워하라는 말만 남긴 채 십 분도 되지 않아 다시 치매 환자 고순정으로 돌아왔다. 내가 이기적이었던 것처럼 엄마도 이기적이었나 보다. 엄마는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갔고, 딸랑이를 흔들며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헤벌쭉 웃으며 딸랑이를 갖고 노는 엄마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엄마의 입가에 침이 흘렀다. 옷 소매를 끌어 손가락으로 잡고 침을 닦았다. 요즘 들어 자꾸 침을 흘리시네. 옆에 있던 민우가 “닦아주면 되는걸”하며 웃었다. 민우는 엄마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골동품점으로 헐레벌떡 찾아왔다. 오자마자 엄마의 상태를 살핀 민우가 나를 바라봤다. 괜찮아. 내가 소리 없이 말했다. 민우는 나 대신 주인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남의 가게에서 우스운 꼴을 보였음에도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말했다. 어쨌든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엄마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의 표시로 사례금을 드렸는데 몇 번이고 거절하셨다. 나는 꾸역꾸역 봉투를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난처하다는 얼굴로 봉투를 받았다. 민우가 내게 변했다고 말했다. 내가 변했나?

 “민우야.”

 “응.”

 “우리 결혼 언제 할까.”

 민우의 얼굴이 빨개졌다. 꼭 딸기 같았다. 이제 보니 민우는 부끄러움을 심하게 탔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 들어 민우의 새로운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신 걸 잘 먹거나 매운 걸 잘 먹는 척하는 사소한 것들. 여유가 생기니 마음의 폭이 넓어졌다. 생각보다 여유를 가진 느낌이 좋아서 다니던 회사는 그만두었다. 사직서를 내면서 ‘너는 상도덕도 없는 파렴치한이야!’하고 소리 지르지 못한 건 조금 후회스럽다. 민우도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워했다. 생활비나 병원비는 모아둔 돈과 보험금이 있어 당분간은 꽤 넉넉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일도 관둔 김에 엄마도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아직 내가 많이 부족했다. 요양병원에서 일주일 정도 요령을 배우고 데려올 생각이었다. 어쩌면 친절한 말투를 가진 간호사가 잘 알려줘서 더 일찍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계획들은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딱 하나의 계획을 제외하고. 그 계획은 민우와 함께 진행해야 했다.

 “가을에? 너무 이른가?”

 “아니. 우리 가을에 결혼하자. 아기는 몇 명 낳는 게 좋을까?”

 민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 대답에 적잖이 놀란 듯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질문이긴 하다. 두려움이 줄었다. 직장인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졌으니 그 자리를 엄마라는 말이 대체해도 될 것 같았다. 그 이름 하나쯤은 각인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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