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이 순간.

by rainshin posted Apr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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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은 끼고 있는 헤드셋이 약간 불편하다 느끼며 소리를 좀 더 높였다. 5분 정도 그렇게 있으니 갑갑해 견딜 수가 없었다. 캐릭터가 죽자 시간이 좀 나서 헤드셋을 벗었다. 부활에는 5분 정도 걸린다. 컴퓨터 옆에 놓여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팀원이 뭘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 최상의 마이크로 전해져 가는 소리는 욕밖에 없다.

시발. 진짜 더럽게 못하네.”

최상은 죽고 나면 별 볼일 없는 인터넷 서핑을 이어서 한다. 기사 몇 개가 재밌는 것들이 올라왔다. 갤러리에 온통 도배된 제목은 광주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개중에 하나의 게시물을 클릭해 들어가 보았다.


 -오늘자 광주 살인사건.

여기 현재 접속자들 중에 광주 사는 애 있음? 지금 빨리 빠져나오셔야 할 듯. 게다가 동구사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남구, 서구, 북구, 광산구. 다 차례대고 밟고 가고 있음... 진짜 조심하셔야 됨. 일가족 몰살이라고 하니까 더 미친놈이 틀림없음. 진짜 미친 건 프로 파일러들도 고개 내저은 사이코패스라는 거임.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음. 저항의 흔적들이 하나도 남아있지가 않음. 그냥 바로 죽이는 거임. 보자마자. 암튼 나는 서울 살아서 다행. 개 쫄았던 건 애가 서울에서부터 처음 시작을 했었음. 그 다음 수원, 아산, 공주, 대전. 여기 다 밟고 이제 광주까지 간 거임. 이 새끼 안 잡히면 진짜 대한민국 팔도가 다 뒤집어 질 듯. 암튼 광주 사는 애들 죽지 마셈. 수고.

웃음이 나왔다.

진짜 어이가 없었다. 최상은 댓글에 욕을 한 바가지 써 놓고 다른 댓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더 웃긴 건 댓글들 대부분이 떨면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있었다.

-와 씨, 아 미친. 나 광주 동구 사는데 오늘 죽는 거 아님? ... 아직 못해본 거 많은데.

웃음이 터져 답변을 달았다.

-병신. 나도 광주 동구 사는데 시간 아까워서 너 잡으러 가겠음? 살인마도 가치가 있는 사람을 잡는 거임.

바로 답변이 달렸다. 할 짓 없는 새끼인가 보다.

-그런 거 가리지 않고 막 죽이고 다니니까 사이코라고 나온 거지;;

-개소리 좀 하지 마셈. 널 왜 잡음. 네가 돈이 있냐, 뭐가 있냐. 이 시간에 키보드 두들기면서 있는 거 보면 답 나옴.

막 재미가 붙으려 하는 참에 캐릭터가 부활했다.

다시 헤드셋을 끼려고 드는 순간이었다. 방문을 거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최상은 캐릭터가 부활했지만 뭐가 떨어지고 부딪치는 소리에 거슬려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들어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그리고 아이스크림.

문자를 보낸 즉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짜증나게. 이번엔 그냥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헤드셋을 끼니 어느 정도 소리가 차단되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게임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숨을 후 내쉬고 다시 게임에 빠져들 때였다.

. 또 벽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아무리 헤드셋을 꼈다고 해도 이 정도의 소리는 들린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그 두께보다 소리의 크기가 더 컸다. 최상은 단단히 화가 났다.

-입 좀 다물라니까. 아이스크림은 언제 줄 거야.

핸드폰을 다시 던져놓고 게임을 계속했다.

그걸 왜 들어 가냐? 진짜 뭐하는 새끼인지 궁금하네. , 머리에 뭐가 든 거야? 돌았냐?”

또 다시 입에서 튀어나오는 욕. 마이크 너머의 상대도지지 않는다.

네가 왜 안 따라오는데.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얌전히 따라오기나 하지.”

최상, 돌아버릴 지경이다.

, 시발. 네가 뭘 아는데. 너는 뭘 아냐고. , 병신아.”

, 시끄러.”

채팅창에 상대의 말이 올라온다.

-마이크 껐다.

-하는 말이 욕밖에 없네.

그러자 다른 팀원까지 합세해 최상을 욕한다.

-그러게요, 진짜 욕밖에 안함.

-말은 젤 많이 하면서 하는 거라곤 하나도 없음.

마이크도 다 껐다는 헤드셋을 끼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헤드셋을 벗고 숨을 헐떡였다. 혈압이 돌아 미쳐버릴 지경이다. 또 죽었다. 왜 이렇게 못하는 애들하고 만나는지, 못하면 말이나 들을 것이지, 아까부터 밖에서 쿵쿵대는 소리는 왜 들리는지, 욕은 나오는데 마이크에 대고 말할 상대는 없지, 캐릭터는 아까부터 죽어있기만 하지, 뭐 하나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 짜증만 났다. 왜 이렇게 아이스크림은 안 갖고 오는지 의문이었다.

-진짜 뭐해? 아이스크림 만들어? 빨리 갖고 오라고.

세 번째 문자를 보낸 뒤 5초쯤 지난 후였다. 방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문을 두 번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방문 앞에 놓여지는 달그락 소리. 달콤한 아이스크림 하나 퍼 먹으면 기분이 좀 풀리겠지.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뚜벅, 뚜벅, 뚜벅.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아빠겠구나 싶어서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뚜벅.

발이 문 앞에서 멈췄다.

똑똑. 소리는 없었다.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뭐하자는 거지.

헤드셋은 벗은 지 오래였다. 문을 두드리지 않는 아빠에 짜증이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참으로 멍청하다. 문 두드리는 것도 깜빡할 때가 많다. 그냥 음식을 두고 가 버릴 때가 있다. 다행히 밥이 다 식기 전에 엄마가 달려와 두드려 주지만.

끼익, 문이 열렸다.

?

지난 6개월 간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었다. 이 방문은 안에서만 열렸지 밖에서는 열리면 안 돼는 문이었다.

분노가 빠르게 몸을 잠식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화가 났다. 뭐 하는 거지? 사람이 너무 화가 나거나 어이가 없으면 아무 말도 안 나온다더니. 이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미쳤어?!”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진짜 미쳤어?”

의자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는 건 아빠가 아니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쓴 사내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최상은 이마에 너무나도 생생한 쇠의 촉감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었다.

. 총이었다.

최상의 몸을 잠식해 있던 감정이 빠르게 탈바꿈했다. 공포? 두려움? 자신감? 무엇을 내보여야 할지 오류투성이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새에 마스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원래 바로 가는데 하도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해서 한 번 보러 왔더니.”

마스크가 한숨을 쉬었다.

별 거 없네.”

살려준단 걸까, 아니.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니 죽인다는 뜻이겠지. 최상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제 죽는 건가.

마스크가 총을 거두고 바닥에 앉았다.

이름이 뭐야?”

........”

목소리를 왜 그렇게 떨고 그러냐?”

... 아아... , 그냥. 그러니까...”

총 들고 온 놈이 갑자기 찾아오면 당황스럽긴 하겠지. 그럴 거야.”

마스크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납득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총을 돌리면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밖으로 안 나간 지 꽤 된 거 같다?”

최상은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고 있었어?”

... 게임...”

, 그래. 계속해.”

최상은 몸을 돌려 게임을 계속했다. 키보드에 손을 올렸지만 도무지 신경은 그 쪽으로 쏠리질 않았다. 어떻게 집중한단 말인가. 뒤에서 총을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헤드셋을 뚫고 들려왔다. 그리 큰 소리도 아닐 텐데.

근데, 너 밖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도 모르냐?”

무슨 일? 조금 소란스럽긴 했지.

“...”

네 엄마 아빠랑 여동생까지 다 죽었는데. 내가 쏴서.”

“...”

무슨 말을 해야 되는 걸까. 분노해야 할까? 미친놈이라며 욕을 해야 되는 건가?

, 너네 어머니랑 아버지도 대단하긴 했는데. 네 동생은 진짜 대박이더라. 끝까지 오빠는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면서. 혹시 TV많이 봐?”

, 네에...”

그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거 보면 막 총 맞고 나면 헐떡이면서 마지막 유언 같은 거 하잖아. 다들 그러거든? 네 동생은 헐떡이면서까지 오빠, 오빠 이러면서 죽더라. 대박! 진짜 대박. 눈물겨웠다. 박수 칠 뻔 했다니까?”

마스크가 웃으면서 최상의 관자놀이에 다시 총을 겨눴다.

근데 너, 어떻게 하면 그렇게 여동생이 좋아하냐? 너희 둘 다 막, 혹시 그런 거야? 시스콘 같은?”

마스크가 크게 웃었다. 이건 어떻게 들어도 최상을 헐뜯고 무시하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최상은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분노? 수치심? 아니. 인간이 죽음 앞에서,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최상은 오히려 상대의 도발에 무너지고 목숨을 구걸했다. 웃고 있는 지금 구걸한다면 대화가 통할 거 같기도 했다.

살려주세요...”

최상은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총이 관자놀이에서 이마로 돌아갔다. 마스크가 낄낄대며 웃었다.

, . 이러면 안 돼지. 네 가족들이 너만 보면서 죽었는데. ? 그리고 내가 너 죽인대? 그냥 애기 좀 하자고 들어왔더니.”

여기서 괜히 까불었다간 바로 죽을 거다. 최상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등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몸의 모든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최상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아주 잠깐 마스크와 눈을 마주쳤다.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마스크는 매우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 살려줄게.”

마스크가 총을 거뒀다.

근데 너, 계속 이렇게 방 안에서 산거야? 밥은 너 부모가 넣어주고? 필요한 거 사다주고?”

...”

, 시발. 너 몇 살이냐?”

스물...”

나보다 어리네. 근데 이제 엄마랑 아빠 다 죽었잖아. 그럼 굶어죽겠는데? 그럴 바엔 내가 죽여줄게.”

,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 아니. 아니에요. 저 혼자서 살아갈 수 있어요. 밥 먹고, 돈 벌고,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열심히 살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래?”

마스크가 최상을 바라보았다. 최상도 느껴지는 시선에 마스크를 올려보았다. 싸늘한 눈매가 느껴졌다.

근데 왜 여태까지 안 그랬어?”

말문이 막혔다.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대답할 수가 없어?”

살려주세요. 제발...”

어이가 없단 말이야. 방구석에 쳐 박혀선 부모가 자신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파고드는 새끼들. 부모가 아파하는 점만 골라 찍어서 파고들지. 그렇게 약점들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함부로 할 수 없게 벽을 세워놓고 부모의 보호막 안에서 눌러 붙어있지. 그걸 또 부모들은 부모의 사랑이니 뭐니 하면서 자위를 해.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한다니까? 너는 어때? 이 한심한 새끼야.”

알지도 못하면서. 최상은 약간의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자식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나에 대해서.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름대로 남이 들으면 납득할 만한 슬픈 배경이 있단 말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나름대로 친구도 많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기쁜 졸업식을 맞았다. 고등학교 1학년. 반 뒤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애를 봤다. 가만히 살펴보니 중학교 시절 친구였다.

침묵했다.

?

최상은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에서 눈을 돌리고 고등학생이 돼서도 힘자랑하는 한심한 새끼들이라며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나중에 나한테 짜장면 배달이나 오라면서.

어느 날, 괴롭힘을 당하던 친구가 자살을 했다.

누구 잘못이지. 방관하는 놈이 더 나쁜 놈이라던데. 난 나쁜 놈인가? 나쁜 놈인 거 같았다. 그래서 최상은 장례식에 다녀온 뒤부터 다른 삶을 살기로 했다.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앞에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쓸데없는 정의감은 최상을 최하의 구렁텅이 속으로 끌어들였다.

매일매일 불려가서 얻어맞았으며 돈을 뜯기고 또 뜯겼다. 더 분노가 차오르고 슬펐던 것은 괴롭힘을 당하던 친구를 바라보던 자신의 눈. 그 눈들을 바라봐야 했다는 것이다. ‘친구사이로 정의했던 애들은 아무것도 아닌 애들이 돼버렸고, 최상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 점이 더 최상을 죽여 나갔다.

그런데 그걸로만 끝나면 모를까, 부모라는 인간들은 아들을 지지해주진 못할망정 귀를 막고 계속해서 다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하다못해 전학을 이야기 했을 땐 말도 안 되는 애기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욕이 나왔다. 첫 무단결석, 두 번째 무단결석, 몇 번의 결석이 있고 난 뒤 집에 틀어박히게 됐고, 사람이 싫어지니 방에 틀어박히게 됐다.

그래, 나는 그 정도의 슬픈 기억을 가진 사람이란 말이다. 갑자기 최상은 속이 울컥했다. 씩씩대는 분위기가 느껴졌는지 마스크가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기분 나빠?”

네가 뭘 아는데.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한심하다 마다야!”

닥쳐.”

이마가 아플 정도로 총구를 들이밀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행복한 놈 하나 없어. 누군 그 정도 일 안 생기는 줄 아냐? 극복하려고 노력은 해 봤고?”

네가... 네가 그 상황에 대해 뭘 아냐고!”

누구에게나 시련은 온다.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대처하는지. 너보다 더한 상황에서 너는 쳐다볼 수도 없는 위치에 올라선 사람들도 많아. 근데 너는? 발버둥은 쳐 봤어? 늪에서 빠져나려고. 똥물인지 하수도인지 재보기는 했냐고.”

그만해! 뭘 안다고 그러는데!! 대체 뭘 안다고!”

그래?”

마스크가 총에 장전을 당겼다.

그럼 죽어.”

마스크와 최상은 눈을 마주했다. 차마 그냥 노려보지는 못하고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겁이 났다. 살려줬으면 했다. 

...”

? 뭐라고?”

최상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왜 이러는 건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눈물이 툭, 바닥에 떨어졌다. 그게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았다.

그 자세부터, 너는 틀렸어.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중요한 거지.”

왜인지가 중요하지 않으면, 이 행동이... 어떻게...”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마치 나 쏘지 마, 개자식아. 라고 따지는 꼴 아닌가.

. 이유나 따져가며 주저앉아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는 모습. 역겨워.”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으음...”

마스크가 머리를 굴리며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럼 게임 하나 하자.”

뭐를...”

이 총에는 현재 남아있는 총알이 없어.”

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네가 이 총을 쥐어.”

마스크가 최상의 손에 총을 쥐어주었다.

, 이제 그걸로 네 머리를 겨눠.”

?”

.”

, 아니.”

? 총알이 없다니까?”

“....”

근데 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마스크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역겨웠다. 최상은 마스크를 겨누고 바로 쏴 버리고 싶었다. 근데 정말로 총알이 없다면? 마스크는 신체도 건장한 게 본래부터 싸움과는 인연이 없는 최상이 제압하긴 힘들 것 같았다. 총알이 없다면 제압당한 뒤 뭔가에 맞아 죽거나 찔려 죽거나 하겠지. 하지만 총알이 있다면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을 거야.

신이시여, 이 총에 총알이 들어있다면 그리고 제가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저 문을 열고 나가겠나이다.

최상은 속으로 빌었다.

.”

.

최상의 오른쪽 허벅지에 갑자기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것이 느껴졌고 뇌는 고통을 인지한 뒤 그 고통을 느끼게 하는 작업을 신속하고 아주 정교하게 진행했다. 혈액이 허벅지 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뭐해? 빨리 쏘라니까?”

최상은 숨을 헐떡거렸다.

그래, 내가 미쳤지.

최상은 정신을 차렸다.

상대는 프로다.

좀 전에 봤던 기사가 떠올랐다. 진짜구나. 진짜 이 자식이 서울에서부터 내려온 연쇄 살인마구나. 지독한 사이코라는.

허벅지 쪽이 욱신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당길게. 당길 테니까...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당신이... 서울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다는 그...”

, 맞아.”

최상은 마음을 먹으려고 숨을 가다듬을 때 마스크가 물었다.

아프지. 막 화끈거리고, 죽을 거 같고, 피가 막 역류하는 거 같고. 영화에서 칼 여러 방 맞고 계속 싸우는 거, 그거 다 개소리라니까. 아무리 영화라도 정도가 있지. , 그리고 총 한 방 맞으면 바로 죽어. 스치기만 해도 뒤질 거 같다? 그런데 무슨 10발을 쳐 맞고도 싸우는 애들이 있는지. 진짜 웃기지 않냐?”

마스크가 눈앞에서 웃었다. 짙은 눈웃음이 보이자 몸이 떨려 죽을 것 같았다. 이제야 실감이 됐다. 죽음. 나는 이 남자에게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몸이 흠뻑 젖은 지 오래였다. 무서웠다. 그 동시에, 살고 싶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안됐다.

오른쪽 허벅지에서 피가 왈칵 터져 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이 뜨거운 고통을 느끼기 싫었다.

저기요.”

목소리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

이마에 대고 총을 쏘면, 바로 죽나요?”

바로 죽던데.”

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짜 찌질한 인생이었다. 부모 탓, 친구 탓, 괴롭힌 놈들 탓, 사회 탓, 방관자들 탓, 세계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달라지지 않는 생각은 이 사회는 잘못됐고, 괴롭힘은 온전히 괴롭힌 놈들의 잘못이라는 것.

철컥.

방아쇠에 무거운 손가락이 걸렸다.

시간이 느리게 갔다. 초가 단위별로 쪼개진 것 같았다. 방아쇠에 걸려있는 손가락이 잘려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탄창 속에 무언가 걸려 나오지 않았으면, 간절히 빌었다. 방아쇠가 거의 다 당겨졌다.

안전장치가 걸려있었으면.

이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방아쇠는 전부 당겨지고 총알이 뇌 속을 회전하며 빙빙 돌다가 뒤통수를 뚫고 밖으로 나갈 것이다. 내 뇌수는 터져서 방바닥을 수놓겠지.

.

최상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여태껏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부모와의 대화를 단절했던 것도.

유일하게 항상 자신 편이었던 여동생을 밀쳐냈던 것도.

분명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단 한 명의 친구에게도 욕을 날렸던 것은.

그냥 방구석에 도망쳐 더 쉬운 관계를 맺고 싶었던 거다. 온라인상에서 만나, 얼굴 보지 않고 한 번 게임하고 말 사이. 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소속감을 가지고 싶었다. 외롭지 않고 싶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살아있고 싶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이딴 걸 깨닫다니.

그거에 대한 후회의 눈물일까. 깨달음에 대한 기쁨의 눈물일까.

.

눈물이 마저 떨어졌다.

딸칵.

방아쇠가 마저 당겨졌다.

.

눈물이 한 방울 더 떨어졌다.

?”

최상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

총이 손에서 떨어졌다.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여전히 오른쪽 허벅지에서의 출혈은 더 심하게 넘쳐흐르고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살아있다. 살아있다.

.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내가 왜, 살아있지?

마스크가 피식 웃으며 총을 주웠다.

거 봐, 새끼야.”

마스크의 눈웃음이 보였다.

총탄 없다니까. 더럽게 못 믿네.”

... ...”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최상은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부터 자신에 대한 역겨움이 느껴져 올라왔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엄마, 아빠, 동생까지 죽이고 내 동생과의 관계까지 우롱한 자식에게 감사? 머리가 어지러웠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일까. 아니, 이건 혐오감 때문이었다. 자신에 대한. 더 웃긴 건 그 전까지의 행동이었다. 살려달라며 눈물을 흘리고, 죄송하다면서 빌빌 기어대는 자신의 모습들.

최상은 그 모든 것들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토가 나왔다.

우어억!”

, 더럽게.”

콜록. 콜록.”

입에 더러운 느낌이 남았다. 식도에 걸려있던 것들이 개운해진 것 같은 느낌도 나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명치 쪽이 무거웠다. 속이 더럽게 느껴졌다.

죽여.”

최상이 말했다.

?”

너한테 목숨 구걸한 내가 너무 한심하다.”

푸하하.”

마스크가 웃었다.

, . 입으로는 그래도 몸은 솔직한 거 알지? 너 앉아 있는데 그렇게 떨고 있어. ~.”

맞는 말이었다. 솔직히, 엄청나게 무서웠다. 최상은 더 분한 기분이 들었다.

됐고, 내가 전에 서울에 있었을 때였거든. 세 번째 살인 때였어. 여전히 가슴이 두근두근했지. 취준생이었다? 근데 이 새끼 나이가 무려 서른다섯. 애한테 총을 겨누는데, . 미동도 없더라고. 이미 죽은 사람 같았어. 뒤진 생선들 눈깔 본 적 있어? 난 어렸을 때부터 생선만 보면 구역질이 나더라고. 뒤졌을 때나 살아있을 때나 똑같잖아. 어류들은 인생에 대한 열정이나 있을지 궁금했지. 이미 삶을 다들 포기하고 살아서 그런 거 아닐까. 암튼 그 새끼 눈깔이 그런 눈깔이었어. 총을 마주한 순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노트북을 켜고 이력서를 새로 작성 하더라고. 그러고선 문자를 확인했어. 중얼중얼. , 시발 또 떨어졌네. 나 돌아보더니 야, 나도 살인범이나 할까? 시발. 그거면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지 않냐? , 진짜. 그냥 보내주라. 이 행성에 더 있기도 힘들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나와서 더 보고 있기 힘들었지. 그래서 나왔어. 어휴, 내가 더 무섭더라. 근데 있잖아.”

마스크가 오른쪽 허벅지에 박힌 칼을 뽑았다.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넌 아직 그 눈깔이 아니야. 살고 싶잖아. 살고 싶으면 조용히 입 닥치고 있어.”

차마 최상은 마스크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마음속의 솔직한, 하지만 역겨움을 동반하고 있는 그 속삭임에 귀 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크가 짙게 웃었다. 최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거 봐, 살고 싶지?”

마스크는 일어나더니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 간다. 잘 살아.”

방문이 닫혔다. 방바닥은 피로 물들어있었다. 허벅지의 통증이 미뤄놓은 대출 이자마냥 마구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통이 실감되기 시작하자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없이 기뻤다. 최상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삶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방이었다. 이제야 여태껏 자신이 왜 그랬는지 깨달으며 최상은 얼굴을 붉혔다.

그 생각을 하니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여동생도. 아직 가족들을 볼 준비가 안 됐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게 느껴졌다. 언젠가 복수하리라고 굳게 마음먹고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불과 1시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최상이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최상은 어느새 문 앞에 서 있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와 아빠, 여동생이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피에 물들은 채로. 도망가고 싶었다. 더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도 현실이며 가족이 죽었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확실한 건 지금 이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는 거다.

최상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바로잡고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문이 돌아가는 소리가 이렇게 경쾌했던가. 문이 다 열렸다.

.

최상이 쓰러졌다.

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동화 속 엔딩을 기대했던 거야? 미안. 성장물은 취향이 아니라서.”

방 안 천장이 높았다. 방문은 살짝 당기니 쉽게 열렸다. 피는 짙었다. 삶이란 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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