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한 태양이 아프리카의 대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목을 곧게 세우고, 엉덩이를 봉긋하게 올리고 황금빛 아침을 맞은 톰슨가젤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얕은 뿔을 보아하니 암컷이다. 암컷이 향하는 시선의 끝에는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새끼가 걸려있다. 다섯 달이 넘도록 심장 아래에 품어 온 반쪽이지만 홀로 일어서기 전까지 암컷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종이자락 같은 다리에 힘을 주고, 건조한 풀 위를 디딜 수 없다면 도태되는 방법뿐이다.
지프 창가에 달라붙어 와아, 와아 거리는 딸아이는 뒤통수마저 사랑스럽다. 사파리 투어를 결정한 순간부터 망원경을 사달라고 졸라 대더니 TV에서 보던 동물들의 실물과 마주하고 나니 망원경은 잊혀졌다. 아빠 휴대폰으로 시끄럽게 연사를 찍는 딸아이의 설렘에 얼굴이 까만 가이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귀 뒤에서 넘겨 볼에 붙인 마이크를 통해 ‘새끼 톰슨가젤이 홀로 일어서지 못하면 어미는 무리와 함께 떠난다.’며 타국의 언어로 설명했다.
“아빠! 아빠! 저기 저 은색 늑대! 아빠 닮았어!”
짧고 도톰한 손가락이 멀리서 톰슨가젤 무리를 훑어보고 있는 은색 늑대를 가리켰다. 늠름한 늑대의 뒤를 따르는 몇 마리 늑대들은 아마도 그의 가족이겠지. 기회를 노리는 것인지 은색 늑대는 먼발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톰슨가젤의 암컷은 연약한 새끼를 재촉하듯이 바라본다. 늑대를 발견한 톰슨가젤의 무리들이 슬슬 자리를 옮기려하지만 어미의 양수에 여전히 촉촉이 젖은 새끼는 움직일 기미가 없다. 정수리 냄새마저 고소한 내 새끼인데 홀로 강해지지 않으면 버림받는 사바나에서 황금빛 아침이 시작됐다.
* * * * * * *
결혼 이후로는 통 올 일이 없는 홍대입구였다. 주말이면 줄을 서서 올라가야 하는 9번 출구 근처의 어느 카페에서 희명이 기다리는 건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보낸 메시지가 휴대폰 화면 위에 잠깐 떴다가 사라졌다. 패턴을 누르고 노란 어플을 클릭하자 색종이로 배 접기를 배우는 딸의 영상이 플레이 된다. ‘아빠! 색종이는 너무 힘이 없어. 다른 종이 사러 가자. 이거 물에 가라앉으면 어떡해.’ 영상 밖으로 들리는 푸스스- 남편이 웃는 소리가 문구점에 가고 싶어 안달 난 여섯 살의 작전이 들켰음을 반증했다.
“이… 희명 씨?”
오늘 처음 만나는 낯선 중년 남자가 희명을 찾아왔다. 자칫하면 남극이나 북극보다 추울 법한 날씨라는데 낯선 남자는 오래돼 숨이 죽은 점퍼 차림이었다.
“네. 앉으세요.”
서로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인데 중년 남자는 마치 희명에게 죄를 지은 냥, 죄를 지을 것인 냥, 고개를 숙이고 두툼하고 거친 손을 꼼지락 거렸다. 차라리 번듯한 정장 차림이나 비싼 시계라도 차고 있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30년 가까이 연락도 없이 잘 살고 있는 꼴에 분개하며 모른 척이라도 했을 텐데 공사판을 전전한 듯 겨울바람이 잔뜩 할퀴고 간 손과 얼굴을 보자 두근대던 감정마저 사그라졌다. 싸울 의지가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 ‘버리고 갔으면 떵떵 거리고 잘 살아야지!’ 남편이 자주 보던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던 대사였다. 속 터지는 걸 왜 매일 보고 있냐고 툴툴거리면 ‘너는 감정이 메말랐다.’며 되레 역정을 내는 남편을 이해 못했었는데 이제야 쌀알만치 알게 됐다. 주인공들이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인생에 담긴 명언과 같다는 것을.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손바닥에서 땀이 나는지 연신 낡은 점퍼에 비비는 낯선 남자는 30년 전에 사라진 엄마의 남편이다.
유난히 딸 복이 많았던 친가였다. 고모만 해도 넷, 6 .25 때 돌아가신 큰 고모까지 손가락에 넣으면 주먹이 꽉 쥐어졌다. 큰아버지 댁은 사촌언니 넷을 낳고서야 귀한 아들 하나를 얻었다. 우리 집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큰집보다 둘이나 더 많은 딸을 낳았을 때가 희명이 세상의 빛을 맞았던 때다. 딸 복이 복주머니를 터뜨리기 직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없어 배고플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 아들 앵무새처럼 외워대는 할머니 때문에 ‘우리 집’에서 희명이 막내가 되는 일은 없었다.
딸을 줄줄이 낳느라 출산 전문가가 된 엄마는 기찻길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조그마한 마을에서 산파 노릇을 했다. 희명에게 접속된 최초의 기억은 빨간 다라이에 희명을 씻기던 엄마에게 울면서 찾아 온 동네 숙모였다. 물론, 진짜 숙모는 아니지만 그때는 동네에 사는 모든 아주머니들을 숙모라고 불렀으니까. 울면서 찾아 온 숙모에게 엄마가 남긴 충고는 무엇인지, 동그랗게 불어 오른 뱃속에서 잠들어 있는 존재가 그녀의 첫 아이인지 아닌지는 어렴풋하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이유 모를 진통이 무서워 엄마를 찾아왔었지. 그 정도로 엄마는 출산에 있어서 전문가였다.
남동생이 태어나자 집은 축제였다. 남동생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고추를 당당히 드러낸 동생을 양반 다리 위에 앉힌 아빠를 여섯 명의 딸이 둘러싸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사냥에 성공한 아프리카 부족들처럼 몸짓을 나빌레라 하던 희명은 사실, 남동생이 태어난 일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즐거운 건지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졌다. 갓 초등학생이 된 희명은 이번에도 이유를 몰랐다. 막내 언니와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목욕탕에서 만난 엄마의 모습이 희명이 가진 엄마에 대한 최후의 기억이었다. 이제 5학년이 되니까 브래지어를 사줘야겠다며 언니의 등을 밀어주던 엄마. 몇 달 동안 보지 못한 탓에 희명은 엄마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친구들은 엄마가 집 나간 아이라고 희명을 놀려댔다. 그게 왜 놀림을 받아야 할 일인지 이번에도 역시 이유를 몰랐다. 그 어리둥절함이 자꾸만 자라나서 원망이 되었다. 어떻게 생떼 같은 자신의 아이들을 두고 도망 갈 수 있단 말인가. 첫 생리의 기억은 어땠던가. 처음으로 생리대를 사기 위해서 수많은 용기와 한숨이 필요했다. 희명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기에 언니들도 어렸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몸의 변화였다. 생리대를 사는 일이 창피해 없는 용돈 쪼개어 생리대 하나와 과자 한 보따리를 샀던 그 날이 선명했다.
짧은 인생에 엄마가 있는 시간보다 없는 시간이 많아질 때쯤 그녀의 부재가 익숙해졌다. 집에서는 ‘엄마’라는 단어는 금기시 되었다. 사춘기에 들어선 희명은 이번에야 그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아빠 늦게 온대! 라면 주문 받습니다!”
홀로 칠남매를 키우는 아빠에게도 테크닉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근을 하게 되는 날이면 밥통 위에 돈을 두고 갔다. 가지가 많은 만큼 취향도 가지각색인 칠남매는 밥통 위 돈을 발견하면 각자가 먹고 싶은 라면을 사서 끓여 먹었다. 심부름은 언제나 막내 남동생 아니면 희명이었다. 사람은 일곱인데 가스 불은 두 개라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했지만 ‘포장마차’라는 담백한 라면을 즐겨먹던 희명에게는 밥통 위에 돈이 남겨진 날이 소풍 같았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언니들이 도움이 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겠지만 혼자서, 그것도 남자가, 일을 하면서 일곱을 키운다는 건 딸 하나 키워 본 희명이 존경을 내뿜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다. 명예퇴직을 한 뒤에도 일이 고된 공장을 전전하며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다. 프레스에 찍혀 반쪽이 된 아빠의 엄지손톱을 볼 때마다 희명은 눈물이 났다. 동시에 사라진 이유도 모르면서 결국에는 그 사람을 미워했다. 이유를 모르는 미움은 어느 새 무뎌지고 얼굴마저 점점 잊히게 만들었다.
황사로 가득 찬 한강이 마치 희명의 마음 같다. 바로 건너편의 건물도 보이지 않아 매일 타는 버스인데도 여기가 어디쯤인지 쉽게 알 수가 없다. 간 이식이 필요하단다.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딸을 데리고 친가에 갔다가 30년 째 바뀌지 않은 집 전화로 걸려온 한통의 연락에 사단이 벌어졌다. 아빠가 직접 받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뻔뻔한 행태가 괘씸했다. 무슨 낯짝으로 전 남편의 집으로 간을 떼 달라고 전화를 한단 말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도 죽음 앞에 서게 되면 마음이 약해지기도 한다던데 엄마도 똑같은 걸까. 스스로 버린 가족에게 SOS를 외칠 만큼 새로 꾸린 인생이 더없이 소중한 걸까.
‘제 간이라도 떼어 주려고 검사를 받았는데 튼튼하지가 않아서 기증자를 찾아야 한답디다. 얼굴 볼 낯도 없는 거 아는데 죽어가는 사람 두고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전화했어요.’
딸 복이 미어터지는 친가와는 달리 외가는 그렇지 않았다. 새 남편 말고는 친인척도 없어 사실상 기증자를 찾아야 하는데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간을 기증하는 사람의 수는 손에 꼽기 때문에 냉정하게 보면 기증자 자체가 없는 이식 수술이란다. 그래서 30년 만에 찾아와 간을 떼어 달란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엄마가 외동딸이었다는 거다. 외동이라 그런가, 공주 같이 곱게 자랐는데 좁아터진 집에서 똥오줌 못 가리는 일곱 난쟁이들을 키우는 걸 못 견딘 건가. 가족보다 내 행복이 우선이어서 우리를 버릴 수 있었던 건가. 희미해서 원래 가졌던 것인지도 몰랐던 감정이 미지근하게 살아났다. 조금만 더 열을 가하면 활화산처럼 끓어오르기라도 하려나.
‘평생 갚으면서 살겠습니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고개를 숙일 때마다 듬성한 머리에 자라난 흰 머리가 눈에 띄었다. 엄마의 새 남편은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게 최종 목적이기라도 한 듯 모든 외견이 남루했다. 덩달아 남루해진 희명의 속내음이 출근 시간 만원버스에 가득 찼다. 운 좋게 자리에 앉지 못했다면 남루해진 속내음을 숨기기 힘들었으리라. 손에 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하트가 여러 개 붙은 아빠에게 서 온 연락이다.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대다 들킨 것 마냥 눈이 동그래지고, 손에는 땀이 나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일일 행사처럼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하는 안부 전화를 받지 못했다.
퇴근을 하고서도 희명이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다. 대신 오늘 바빠서 내일 전화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유치원에서 뭘 얼마나 즐거운 활동을 했는지 저녁을 먹자마자 잠든 딸아이를 레이스 걸린 공주 침대에 눕혀두고 나왔다. 머리를 콕 콕 찔러오는 고요를 부서뜨리려 TV를 남편이 즐겨 보는 막장 드라마에 맞춰뒀다. 조도가 낮은 주황 조명만 의지한 채 식탁에 앉아 휴대폰을 들었다. 누를까 말까 고민에 뜸들이던 손가락이 움직였다. 초록색의 인터넷 화면에는 ‘간 이식’에 대한 정보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대부분이 낯선 남자가 귀띔해 준 정보긴 했지만 한 번도 나에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일이어서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생경해지는 이상 현상을 겪었다.
* * * * * * *
아프리카의 밤은 지프 가이드의 피부색보다 칠흑 같았다. 간판만 ‘호텔’이라고 걸려있지 모텔만도 못하게 허름한 숙소에서 희명네 세 식구는 킹사이즈 침대에 다리를 얽고 함께 누웠다. 머리맡에 있는 창을 바라보니 홍콩의 밤거리보다 화려한 하늘이 마주 보였다. 문명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은하수가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나, 어떤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데 카메라맨들이 몽골에서만 자주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을 담으려고 몇 날 며칠을 기다리는 내용이었거든?”
“응. 멋있었겠다. 근데?”
가만히 희명을 위로하듯 희명이 하는 말을 조곤조곤 잘 들어주는 남편이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남편과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희명이었기에 채널 싸움도 전쟁 같았지만 오늘의 남편은 달랐다. 가운데서 잠든 딸아이의 등을 리드미컬하게 토닥이며 꽤 오래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한참 기다리던 현상을 며칠 만에 겨우 카메라에 담고 사람들이 환희에 젖어 있었어. 그리고 누군가는 울었어. 왜 우냐고 물으니까 눈물 흘리던 사람이 얘기하더라고. ‘사람들은 자연의 앞에 섰을 때 각자 다른 메시지를 얻는다. 이것이 바로 대자연의 힘이다.’ 라고.”
“뭔가 모를 것 같으면서도 알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은하수 말이야. 당신은 어때?”
“우리 세 식구 나란히 누워서 보니까 행복해. 너무 아름답고. 왜, 당신은 달라?”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하기도 한데 슬프기도 해. 이 자리에서 이 장면을 볼 수 있는 건 지금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일 수도 있는 거잖아.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 그리고 이렇게 좋은 걸 우리 아빠는 못 봤네, 싶어서 죄책감도 느껴져.”
“지민 엄마가 아빠‘빠’인 거 누가 몰라. 다음에 더 좋은 데 모시고 가자. 그런데 아버님께는 얘기 안 드리려고?”
“응. 그냥 우리끼리만 알고 지나갔으면 좋겠어.”
바람 따라 흘러가는 은하수를 한참 따라 다녔다. 희명은 단 숨을 내쉬며 잠든 남편을 바라보다 창틈으로 내려앉을 법한 은하수 흐르는 하늘을 다시 바라봤다. 문득 오늘 낮에 만난 톰슨가젤의 어린 새끼가 떠올랐다. 그 아이는 스스로 대지를 밟고 일어나 어미의 선택을 받았을까. 아니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빈털터리가 되어 건조한 대지 한 복판에 버려졌을까. 톰슨가젤 무리의 한 마리라도 된 냥 딸아이가 펄쩍펄쩍 뛰는 동안에도 새끼는 다리에 힘을 주지 못했다. 어미는 애틋하면서도 차가운 눈으로 방관했다. 지프가 떠날 때까지 일어서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던 톰슨가젤의 가여운 새끼 한 마리. 자연이 부리는 일에는 사람이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꾸 가녀린 다리를 주물러주고 싶었다. 혹시나, 혹시나, 만의 하나라도 가여운 아이가 버려졌다면 어쩌지. 다른 무리에 섞여 살아가던 가여운 아이와 수년 후, 건조한 대지에 제 아이를 버리고 떠난 무정한 어미가 만난다면 그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알아본다면 서로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글바글 가족처럼 모여 흐르는 은하수들이 다정해 보인다.
* * * * * * *
인생에 찾아오는 선택이라는 것은 때와 시가 없다. 선택이라는 것은 불시에 찾아오면서도 조금의 연민도 없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잔인한 놈이 바로 선택이란 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버리게 되는 것에 자꾸만 미련을 둔다. 희명이라고 다를 바는 아니었다.
시장통만치 시끄러운 6인실 병실 앞에서 알로에 음료수 병이 10개 들어있는 박스를 든 희명이 10분 째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들어갈 용기가 없다면 안에서 나와 주길 바랐다. 그냥 돌아가려던 찰나에 저를 발견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노라고, 억지로 이끌려 왔노라고 핑계가 생기니까. 주머니에서 바스락 거리는 종이는 신문지의 귀퉁이를 찢은 것이었다. 어설프고 서툰 글씨로 병원의 이름과 호수가 적혀 있었다. 엄마의 남편이 역세권 카페에서 반 강제적으로 쥐어 준 엄마의 정보였다. 엄마는 왜 사라진 걸까. 왜 나는 엄마가 없는 걸까. 엄마가 우리를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붙잡히지 않는 이야기들에 헛손질 하며 애달플 때는 전혀 잡히지 않던 엄마였는데 대부분을 잊고 엄마가 된 지금에야 큼직한 어깨를 펴고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무서워졌다.
“아니, 오셨으면 전화를 하시지.”
복도 끝에서 엄마의 남편이 물통을 채워오다 희명을 발견했다. 자의로 들어가지 못하고 어물거리던 터라 이상하게 반가운 마음도 모순적으로 들었다. 어서 들어오시라며 허리를 꾸벅 꾸벅 숙이는데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좀 전에 진통제 맞고 잠들어가지고. 그런데 얕게 자주 자는 편이라 3~40분 있으면 일어날 겁니다.”
“아니에요. 그냥 한 번 들러본 거라.”
“오셨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시지.”
알로에 음료수를 건네니 엄마의 남편은 내가 사 온 알로에 음료수를 또 죄인인 냥 받아 들었다. 고요하게 엄마라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 파리하게 질려 잠이 든 저 사람이 과연 내 엄마가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쏟아진 구슬처럼 흐트러졌다. 둥근 구슬은 몸을 굴려 책상 아래로, 장롱 아래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사진 몇 장 속에서만 알았던,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을 엄마의 얼굴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과 비슷한 지 아닌 지도 알 수 없었다.
“두 분밖에 없으신가요?”
“아, 예에. 그렇지요, 뭐.”
오늘로 두 번째 얼굴을 마주한 덜 낯선 남자는 쑥스러운 듯 거친 손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결혼한 직후만 해도 희명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던지는 질문이었다. 아이는 언제 가질 계획이냐고. 당장 내일의 당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한참 뒤에 내 계획을 왜 당신에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지 희명은 매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 둘째는 계획 없느냐는 둥의 질문은 그 누구에게도 던지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지금만은 예외로 두고 싶다. 희명이 건넨 알로에 음료 중 한 병을 다시 건넨 덜 낯선 남자에게 왜 아이가 없냐고 물었다. 남자가 말했다. 아이를 일곱이나 낳았던 그녀는 더 이상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단다. 제 배를 빌어서 태어난 생명에게 상처 주게 될까 무서웠다고. 조금만 기다렸다가 깨거든 얼굴을 보고 가라는 말에도 희명은 고개를 젓고 돌아섰다. 뒤에서 머뭇대는 엄마의 남편은 ‘그래서 결정은 하셨나?’ 라는 지독한 물음을 겨우 삼키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더라도 희명이 대답해 줄 수 있는 문장은 없었다. 왜냐하면 희명은 아직 결정의 전 단계에서 침묵하고 있으니까. 제 배를 빌어서 태어난 생명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단다. 희명은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1층 버튼을 누르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무슨 사연이 있어 가족을 등졌을지 너무 어렸던 나는 모르지만 당신이 사라진 동안 우리는 이렇게나 상처 받았다고. 상처는 곪아서 부어올랐지만 누구도 그것을 터뜨릴 생각은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자라다 만 어른이 되어버렸다. 갖가지 고통이 들썩이는 병원을 조용히 지나쳐 희명은 햇빛 아래로 나섰다.
딸아이가 할아버지의 양반다리 위에서 종이배를 접는다. 할아버지는 마치 평생 종이배를 접어본 적 없는 것처럼 와아- 와아- 감탄을 내뱉었다. 신이 난 딸아이는 자꾸만 순서를 까먹는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와아- 와아-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빠, 아픈 데는 없어?”
“아픈 데가 어디 있어. 매년 건강검진도 받는데. 니들이나 건강하면 됐지. 젊었을 때 건강을 쌓아둬야 그 힘으로 나이 들어 사는 거야. 정 서방이랑 등산도 가고 해. 너는 너무 채소를 안 먹어서 운동이라도 해야 돼.”
서른 중반이 되어서도 여느 부모들이 모두 그렇듯 할아버지는 엄마를 아이 취급했다. 딸아이가 세살쯤 되던 해, 저의 할아버지가 엄마의 아빠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더랬다. ‘너한테도 아빠가 있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아빠가 있어.’뽀로로가 사실은 사람이었다는 폭탄 고백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딸아이의 옅은 눈썹이 팔자로 휘어졌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인데 할아버지가 왜 엄마의 아빠일까. 아직까지 복잡하게 얽힌 핏줄의 관계도를 이해하기엔 세상보다 눈높이가 낮았다. ‘그럼 엄마의 엄마는 어디 있어?’불현 듯 덮쳐 온 해일이었다. 희명은 구명조끼를 입지도 못하고 집채만 한 파도를 맨몸으로 맞았다. 뽀로로 동영상을 틀어주는 남편이 아니었다면 희명은 그대로 파도 아래로 삼켜졌을지도 몰랐다.
“아빠, 가족들 전부 휴대폰도 있는데 집 전화는 없애도 되지 않아? 괜히 기본료 내는 거 아깝잖아.”
“에이, 그래도 집에 전화는 한 대 있어야지. 무슨 일 있을 줄 알고. 기본료 얼마나 한다고.”
칠남매를 키우기 위해 수고를 멈추지 않은 아빠의 손은 거칠었다. 한국에서 내놓으라는 회사에 다녔지만 명예퇴직을 한 뒤로는 돈 벌 길이 순탄치 않아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 일하는 공장에도 갔었다. 그곳의 압축기기에 손가락을 다친 뒤부터 아빠의 엄지손톱은 반 토막이 됐다. 친가를 찾아갈 때면 오래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빠의 손톱을 쓰다듬었다. 오늘도 울퉁불퉁한 손톱을 쓰다듬으며 TV 옆에 놓인 유선 전화기를 쳐다봤다. 태어날 때부터 그대로였던 집 전화번호는 여전히 그대로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시절이 바빠 왕래가 뜸해진 사람들이 언제든 전화 걸어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언니, 언니! 미안한데 오늘 야근 좀 대신해줄 수 있어? 어린이 집 가서 애들 찾아야 하는데 야근이 갑자기 잡혀버렸네. 다음에 언니 야근 때 내가 할게.”
윤지는 7개월 동안의 육아 휴직 후 복직한 희명의 직장 동료이자 친한 동생이다. 맞벌이를 하는 덕에 결혼을 하고도 3년 동안 2세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윤지가 임신을 마음먹은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서른다섯이 넘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해서’라는 극히 생리적인 이유와 ‘서른여섯부터 비싸지는 진료비’라는 지극히 생계적인 이유였다. 20대에 결혼해 벌써 아이가 유치원생인 희명과는 달리 서른이 지나 결혼한 윤지는 서른넷에 아이를 낳고 서른다섯이 시작하자마자 복직했다. 심지어 한 번에 딸 하나, 아들 하나 쌍둥이여서 주위의 축복을 두 배로 받았다. 그래서인지 윤지가 복직하자 뭘 모르는 동료들이 좀 더 쉬면서 아기랑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걱정스러운 말을 건넸다. 좋게 얘기해 걱정이지 그저 참견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희명은 그저 잘 왔다는 환대를 해줄 뿐이었다.
“윤지야 미안. 나도 웬만하면 대신 해주고 싶은데 오늘 병원갈 일이 있어서 반차 내놨어.”
“아, 그래? 어머, 언니 어디 아파? 웬 병원이야?”
“내가 아픈 건 아니고……. 아는 사람이 아파서 가봐야 되거든. 그런데 너는 어떡하려고? 남편은 오늘 늦게 마친대?”
“남편 출장 가서 내일 오거든. 시어머니한테 부탁해야지, 뭐.”
“괜찮겠어? 또 회사 그만두라고 난리 치시는 거 아니야?”
“어쩌겠어. 한 귀로 듣고 흘려야지. 어떤 날은 자기 아들이 벌어오는 돈 집에서 편하게 받아먹고 사느냐고 잔소리하고, 어떤 날은 애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밖에 나가서 일은 왜 하냐고 뭐라 뭐라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추면서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놈의 회사는 왜 갑자기 야근을 시키는 거야, 정말.”
희명과 윤지는 비슷한 처지에 야근 품앗이를 하며 맞벌이 했다. 혹시나 두 사람 모두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희명의 남편이나 윤지의 남편이 서로의 아이를 찾아주기도 할 정도로 공감대가 많은 사이였다.
“언니… 나 일 그만 둘까? 사회생활 하고 싶다고 어린 애들 맡기고 나왔는데 내 꿈은 둘째 치고 애기들한테 못할 짓 하는 것 같고. 억지로 이 자리에 앉아서 다른 회사 사람들 피해주나 싶고. 그리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둘을 키우려니까 너무 힘들어. 사람 사는 게 아니야.”
“어렵게 복직했는데 그만두려고? 그러지 말고 남편이랑 좀 더 얘기해 봐. 남편은 안 도와줘?”
“도와주는 게 뭐야, 언니. 둘이 좋아서 둘이 같이 나은 건데 왜 남편은 도와줘야 해? 육아도 자기 일이잖아. 잠귀 어두운 게 무슨 무기라도 되는 듯이 애기들이 울고불고 해도 자기는 코 골기 바쁘지.”
직장인은 누구나 가슴에 사표 하나쯤은 품고 산다지만 아기가 사랑스러운 만큼 내 인생도 중요하다고 늘 외치던 윤지는 예외였다. 1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오며 직급도 하나 달고 있는 희명과 윤지인데 그런 윤지의 입에서 사직 이야기가 나오는 건 처음이다. 희명은 윤지대신 야근을 해주지 못했지만 윤지대신 더욱 억울했다.
내 배로 낳은 내 아이가 예쁘지 않을 리는 없다. 하지만 30년 넘게 오롯이 안아온 내 인생이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와 함께 원 플러스 원이 되는 것일까. 최윤지, 이희명으로 살아 온 삶이 ‘누구 엄마’라는 삶으로 변해버려야 하나. 누군가가 말했다. ‘누구 엄마’라는 삶 또한 이희명의 삶 아니겠냐고. 부정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아이를 낳기 전까지 영위해왔던 희명의 삶을 부정하는 끔찍한 말이었다. ‘누구 엄마’로 받아들이고 살다가 아이들이 성장해 품을 벗어나고 나면 거기에 또 내 삶은 어디에 있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어쩌면 엄마도 그랬을까. 양팔에 가득 안아도 팔이 모자라 전부 안아줄 수 없는 아이들이 순진했던 저의 인생을 덮어버렸을 때 이것에 내 인생인지, 아닌지 당황하고 혼란스러웠을까. 엄마로서의 삶보다 내 자신으로서의 삶이 애틋해져서, 포기할 수 없어서 그것을 찾아 떠나간 걸지도 모른다.
희명은 한숨을 쉬며 시어머니에게 전화하는 윤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날카로운 성조는 밖으로 새어나왔다. 아마도 윤지가 미리 직감하고 있던 그런 얘기들이겠지. 얼마 전부터 둘째, 둘째 은근히 노래하며 옆구리를 찌르는 남편의 얼굴이 밉살맞게 떠올랐다.
생과 사의 경계가 뚜렷하기도 하고, 불분명하기도 한 곳에 희명이 또 다시 찾아왔다. 초조해 보이는 얼굴을 한 채 손바닥을 비비고 있던 엄마의 남편이 희명을 발견하자 명절에 온 손자를 보는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뛰어왔다. 이식을 하겠다는 희명의 전화를 받은 남자는 아마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고 있을 터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엄마의 남편은 한참을 같은 말만 되뇄다. 간이 굳어가고 있는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간이식이라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명확했지만 혹시나 약을 먹고 치료를 잘 하다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최후의 최후까지 기다렸다. 30년이 넘게 바뀌지 않은 아내의 옛 집의 전화번호를 누르며 느꼈던 절망은 아무도 모를 감정일 것이다.
“힘 빼세요.”
바늘 사이로 피가 빠져 나간다.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 소변 검사. 무슨 검사를 했는지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의 검사를 한 뒤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서류심사까지 받아야 한단다. 국가 기관에서 장기 이식에 대한 순수성을 인정해줘야만 이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 엄마한테 내가 간을 떼어 주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따질 수가 없었다. 희명과 엄마는 이미 아주 예전에 주민등록등본에서도 헤어짐을 맞았다. 아내가 집을 나가고도 한참을 미뤄왔던 일을 가족들 모르게 아빠가 해버렸기 때문이다. 엄마의 이름은 우리 가족의 등본에서 사라졌다. 그렇기에 희명과 엄마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건 ‘피’뿐이다.
“검사 결과가 잘 안 나오면 승인을 받는 동안 몸 관리를 하셔야 해요. 간수치가 높다거나 지방간 소견이 나오면 약을 먹으면서 관리를 한 뒤에 다시 한 번 검사를 받고 이식을 하셔야 합니다. 담배, 술은 피해주시고요.”
의사가 ‘너의 간을 소중히 하라.’는 충고를 내뱉는 동안 엄마의 새 남편은 희명의 친아빠라도 되는 냥 곁을 지켰다.
“이식 후에는 배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큰 흉터가 생겨요. 물론 이후에 성형으로 지울 수는 있습니다.”
딸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기에 희명의 배는 여전히 깨끗했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비키니를 입을 계획은 없지만 아마 흉터를 볼 때마다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떠오를 것이다. 다음 생일 선물로 남편에게 흉터 잘 없애는 성형외과에 데려다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희명이 몸을 일으켰다. 로비를 걸어 나가는 내내 엄마의 남편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누가 보면 21세기에 내시라도 키우는 왕비인 줄 알겠다.
“검사 결과 나오면 다시 연락주세요.”
“예. 조심해서 들어가시고요.”
어깨의 백을 고쳐 매며 병원을 나섰다. 황송한 표정으로 희명이 남겨놓은 온기를 지키며 남자가 오래토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병원을 나온 희명은 오랜 시간 동안 길을 걸었다. 천천히 바람을 쐬던 속도와는 달리 어둠이 짙어지자 종종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집 안은 이미 어두웠다. 까치발을 들어 손에 든 붕어빵 검은 봉지를 식탁 위에 내리고 또 까치발을 들어 안방 문을 열었다. 킹사이즈 침대 위에 남편과 딸아이가 잠들어있다. 손을 씻는 것도 잊은 채 아이의 머리와 남편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었다.
“잘 다녀왔어?”
“응. 늦어서 미안해. 피곤했겠다. 저녁은 뭐 먹었어?”
“그냥 집에 있는 거 먹었지.”
붕어빵을 식탁에 놓을 때 구석에 숨어 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피자박스를 목격했지만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다.
“지민 엄마는? 챙겨 먹었어?”
“…… 아니야.”
“어?”
남편의 뜨끈하게 열 오른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오랜만에 젊음의 거리를 홀로 걸었다. 흥에 취해 맥주라도 몇 잔 마시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처지가 조금 분했다. 더 뜨끈한 남편의 손이 희명의 뒷머리를 만져준다.
“지민 엄마 말고 내 이름 듣고 싶어.”
“…… 수고했어, 희명아.”
희명은 남편이 불러주는 이름을 들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착하다. 잘 했다. 좋은 엄마다. 자장가 같은 위로를 해 준다.
“태현 씨. 어떡해. 나 이제 비키니 못 입는대.”
남편의 웃음소리에 잠들었던 딸아이가 눈을 떴다. 퍽이나 다정한 아빠와 엄마의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딸아이는 안전한 둥지를 찾은 어린 새처럼 몸을 말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부부끼리 여행 좀 다녀오겠다며 딸아이는 시댁에 맡겼다. 애교 많은 지민이를 보며 입이 찢어지는 시부모님이었지만 무슨 여행을 열흘이나 다녀 오냐며 서운한 티를 내셨다. 나이 든 분들이라고 여행이 싫을 리는 없으니까.
검사를 하고 한 달이 더 지나서야 수술이 진행됐다. 딸아이를 낳을 때말고는 환자복을 입어본 일이 없었는데 어색한 기분이다. 희명이 엄마에게 간을 주는 것은 그녀를 결코 용서해서가 아니다. 그저 알량한 양심,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만약 희명이 거절한 이후 엄마가 덜컥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중에 제 딸아이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뿐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희명의 손등 위에 나무 껍데기 같은 손이 내려앉았다. 예쁘게 잘 컸다고, 이런 일로 만나게 돼서 미안하다고, 남편이 듬직하다고. 마주잡지 않는 희명의 손등을 문지르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남편 입에서 여러 가지 말이 쏟아졌다. 벙어리처럼 구는 희명은 사실 속으로 ‘왜.’를 되새김질했다. 하지만 그 간 엄마를 원망하는 반동으로 지극하게 사랑해 온 아빠의 존재 때문에 묻지 않기로 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면, 몰라도 잘 살아왔다면 모르는 대로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수술 침대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천정에 펀치로 뻥뻥 뚫은 듯 일정하게 새겨진 동그란 무늬가 재빨리 지나간다. 딸아이를 낳을 때는 세상이 새파래져 병원의 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는데 희한한 경험이다.
“희명아, 나 바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잘하고 와.”
남편의 환송을 받으며 은색 기기들이 가득한 수술실로 두 개의 침대가 진입했다. 파리한 안색의 엄마가 이쪽을 계속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마취하겠습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정의 작은 구멍들이 일렁일렁 거렸다. 착하다, 착하다……. 깊은 잠으로 빠지려는 희명에게 간호사의 목소리인지, 엄마의 목소리인지 모를 말이 들려왔다. 눈을 뜨면 세계는 달라져 있을까.
* * * * * * *
호텔보다 모텔이라는 간판이 어울리는 낡은 곳이었지만 야외에 있는 수영장만은 훌륭했다. 저녁에 시내 관광을 하러 나가기 전까지는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번개에 콩 볶아먹는 것보다 더 빠르게 수영복을 갈아입은 남편과 딸아이의 웃음소리가 창 안으로 파고들었다. ‘선크림 바르고 들어가라니까!’ 희명이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잔소리를 질렀다. 듣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 들리지 않는 건지 부녀의 웃음소리가 계속 됐다. 아마 듣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거겠지. 방을 나가기 전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았다. 괜스레 긴장이 된다.
“오올~~~~~~~ 이희명 씨. 예쁜데? 지민아, 엄마 봐봐! 짱이지! 아빠가 생일 선물 해줘서 저렇게 예쁜 거야.”
“아빠가 엄마 수영복 사줬어?”
“흐흐흐. 그런 게 있어.”
서른 중반의 입에서 나올만한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짱이라는감탄을 내뱉으며 엄지를 척 들었다. 딸아이는 물안경을 벗어 던지고 아빠를 따라 엄지를 들었다. 물 아래로 가라앉으려는 물안경을 남편이 허겁지겁 들어올렸다.
어미의 양수가 채 마르기도 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빈털터리가 되어 황금빛 대지의 한 복판에 남겨졌다. 나침반도, 따스한 목도리도 없었다. 북쪽임을 알려주는 별조차도 아이의 시야에서 달아나 버렸다. 정처 없이 걷고 있을 때 모피 코트를 입은 비둘기가 건방지게 날아와 낡아빠진 종이를 던져주고 갔다. 알아보기 힘든 희미한 글자들이 배꼽을 잡고 히죽대며 춤을 췄다.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혼자서도 살아내라는 숙제였다. 비쩍 마른 알몸으로 시리고 건조한 목축지를 걷고 있던 아이에게 여섯 마리의 까만 늑대를 거느린 은빛 늑대가 나타났다. 킁킁 경계심을 내뿜으며 아이의 냄새를 맡는 까만 늑대들을 무르고 은빛 늑대는 아이의 양수를 조심스럽게 핥았다. 당신은 나에게 있어 은빛 털을 가진 저 늑대와도 같았다. 가장 앞 열에 서서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해 머뭇거리지 않고 이끌어 주는 단단하고도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최고의 지도자 같았다. 그제야 나는 꽉 막혔던 울음을 터뜨리며 은빛 털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오랫동안 잠든 뒤 다시 눈을 뜨면 세계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곳이 강한 자만 살아남는 사바나라 하더라도 이제는 두려울 것이 없다. 그보다 더한 곳이라 해도 뇌성과도 같은 비명을 지를 테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구름이 동쪽으로 걸어 나가고 서쪽으로부터 밝은 별무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