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즈 소녀가 아니다 (제22차 창작콘테스트)

by Twoharu posted Apr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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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즈 소녀가 아니다







, 방금 탔으니까 금방 가. 어어, 이따 봐.”

버스의 미어터지는 통로에서, 굳이 팔을 움직여 전화 받으려면 신경질 나지 않는가. 이어폰 소리에 집중하던 중에 음의 진동이 갑작스레 휘어버리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다. 이를 바득바득 간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슴 속에 담뱃재가 연소하는 듯한 불쾌한 부글거림이 인다.

기타 가방을 메고 있는 내 앞의 여자애도 걸음걸이가 시원찮은 게 영 거슬린다. 그러게 왜 덩치에도 안 맞는 짐을 갖고 다녀서는. 올리브 열매 색의 건강한 흑발, 실제로 머릿결도 괜찮은 게 생머리가 썩 어울린다. 반반하게 생기긴 했네.

점점 채워지는 좌석들, 나는 아직 앉지 못 했다. 결국 좌석 5개가 연결 된 맨 뒷자리로 밀려났다. 기타 가방을 멘 여자는 내 옆에 앉게 되었고, 기타는 벽에 기대어 세웠다.

기타는 뭐 하러 챙겨온 걸까.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따로 물어볼 만한 것은 못 된다. 뭐 학원이라도 가는 것일 테지. 평소 버스 탈 때처럼, 뽑았던 이어폰을 다시 꺼내들어 귀에 꽂는다. 내 사운드 트랙을 훑어보다, 끌리는 곡에 손가락을 올린다.

저기요.”

난데없이 옆의 여자가 어깨를 톡톡 두들긴다. 이어폰 낀 지 10초도 안 됐는데 금세 빼자니 귀찮다.

노래 소리 새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어폰을 뽑아도 여전히 크게 들리는 노래 탓에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허둥대며 연신 핸드폰을 두들겨댔다. 곧 소리는 잠잠해졌지만, 노래 소리가 점령했던 버스 안 소리의 부재는 적잖은 것이었다. 내 음악 취향을 스스로 부끄러이 여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이 공간에 있는 모두에게 밝히게 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와 별개로 정숙해야 할 공공장소를 시끄럽게 만든 것도 민폐고.

“‘에이 시 디 시맞죠? 좋아해요?”

쌩뚱맞게도 그녀는 넉살좋게 아까 누음 된 노래를 화제로 내게 말을 건넸다. 잠시 내 폰에 표시 된 트랙을 쳐다보고는, 내게로 시선을 돌리면서. AC/DC, 맞췄다. 이름 좀 날렸던 밴드이긴 한데, 워낙 오래 된 밴드라 이젠 유명세가 많이 희석됐다. 중년 취향이라 할 수 있지. 게다가 애초에 한국에선 알 사람만 아는 밴드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입에서 정답이 나온 건 놀랄 만한 일이었다.

, 좋아하는 편이야. 그리고 나도 학생이니까 말 놔도 돼.”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로서는 기껏해야 나보다 한 살 높거나 낮거나 할 것이다. 나는 날이 날인지라 옷차림에 신경 좀 써서 사복을 입고 나왔으니, 징글징글한 고등학생 안면을 보면 성인으로 착각 할만도 하다.

사실 손꼽아 좋아하는 밴드라 할 만한 건 없다. 내 선곡 기준은 가수가 아니라 장르다. 우선 락 음악이라면 듣기도 전에 거르는 일은 없다. 그래도 AC/DC면 양질의 곡을 뽑아내는 밴드이니, ‘좋아하는 편이라고 해두자.

아 그렇구나. 에이 시 디시라. , 락을 좋아하는 거야?”

좋아하지.”

밖으로 티를 내고 다니는 건 아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락은 우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 여자에게 해줄 말은 아니다.

다시 음악을 듣기 위해 폰을 켜 트랙을 뒤져본다.

메탈리카네, 좋지.”

이번엔 아까처럼 음악을 듣고 아티스트를 맞춘 건 아니지만, 말투로 미루어보아 메탈리카도 알고 있던 밴드인 게 분명하다. 한 번 정도야 알고 있던 게 우연히 얻어 걸린 것일 수도 있다 쳐도, 과연 두 번이나 맞추니 이쪽 관해서 빠삭한 게 자명하다.

이런 거 어떻게 알았어?”

소비층이 협소한 락 장르 음악인데, 그 애호가끼리 버스에서 마주친 건 여간 인연이 아니지 싶었다. 얼굴 튼 지 3분도 안 된 사이지만, 보통 초면인 사람보단 가까이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 음악 하잖아.”

그녀는 자랑스레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세워둔 기타 가방을 가리켜보였다. 상쾌한 웃음이다, 원체 생긴 것도. 창문을 가리고 서있는 저 기타 가방을 잊은 건 아니었으나, 어째서인지 그녀가 음악에 몸을 담고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 했다.

음악을 해도 말이지, 기술적인 걸 공부하는 게 일반적이잖나. 그런 옛날 아티스트를 꿰고 있을 정도라면, 음악 전반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러는 너도 특이 취향이네. 너는 왜 락 들어?”

그녀는 재차 내 폰을 흘깃 바라보곤 나와 눈을 맞췄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는 표정을 걸고 있는 채로.

솔직히 저 말을 듣고 조금 열 받았다. 초면에 이다지도 꼬치꼬치 질문을 계속하는 것 역시 여간 뱃심으로 할 일은 아니지만, 그 정돈 상관없다. 내 트랙리스트를 특이취향이라고 표현한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냥 듣고 부를 때 제일 느낌이 괜찮으니까.”

일단 맞는 말을 해준 건 맞지만, 더 길게 말하진 않겠다. 만난 지 5분도 채 되지 않은 사람한테 이 이상 자세히 말해줄 이유는 없다. 거기다 조금 기분도 상했고. 그녀는 으흠, 그렇구나.”, 하며 받아넘겼다. 그녀는 대답이 성에 안 찼는지 입술을 씰룩거리면서.

나는 재즈 해. 기타랑 보컬.”

기타를 붙드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좁은 자리에서 몸을 흔들어대니 어깨와 허리가 쿡쿡 찔린다. 21세기 고등학생이 재즈라, 그쪽 역시 만만찮게 특이 취향이다.

자기는 아저씨 노래 부르면서, 잘도 남의 지취를 까내리시는구만...”

맞추고 있는 시선을 창가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누가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했는가. 복수라 할 만한 것은 못 된다만, 일말의 통쾌함에 젖을 수는 있다.

아저씨 노래라니 너무한걸.”

말은 저렇게 하지만서도 나처럼 평가에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닌 눈치다. 뭐가 그리 좋은지 저 솔직한 웃음은 요지부동이다.

난 재즈는 싫어서 말야.”

사실대로 소견을 밝혔다. 의외의 직구에 조금이나마 놀라긴 했는지 동공이 넓어진다. 물론 이깟 일로 죄책감 따위를 느끼는 건 아니었으나, 맑은 눈동자를 눈구멍 닿는 데만치 피어나게 만드니 비릿비릿한 감정이 올라오는 듯도 싶다.

?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라도 있는 거야?”

허나 그 당황한 표정은 이내 호기심 내지 탐구심이 차올라버려 흥미를 띈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토끼 털끝만큼이라도 감정이 진동해버렸던 것이 아까울 지경이다.

있지. 그런 단조로운 멜로디만 듣고 있자면 지겨워지지 않냐. 노래 들으면 가슴이 뛰거나 감동을 하거나 그런 게 있어야지.”

따분하기 그지없는 소리만 뿜어내는 갖가지 관악기들에, 신명나게 연주할 수 있는 기타나 드럼마저 어쿠스틱내지는 베이스란 수식어를 붙여 음색을 기어가게 만드는가 하면, 보컬 역시 가창력을 술과 바꿔먹었는지 취기 자욱한 느끼한 목소리만을 내보낸다. 내가 괜히 아저씨 노래라고 일갈한 것이 아니다.

... 좀 복고풍 무드이긴 해도 말이야, 재즈도 제대로 들어보면 어깨가 들썩여질 걸?”

너도 음악 좀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나도 진지하게 하거든. 재즈 안 들어보고 하는 말 아니니까 설득하려거든 헛수고란 거 알아둬.”

여과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는데도, 그녀에게서 불쾌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 아쉽네.” 하며 한탄 아닌 한탄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럼 반대로 말해서, 락은 시끄러운 게 좋은 거야?”

짧은 미묘한 침묵 후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발언엔 신경과 머리카락이 꿈틀, 했다. 그녀의 몰이해함과 더불어 그 몰이해한 틀을 나에게 씌우는 건 여간 메스꺼운 언행이 아니었다.

적어도 부르는 입장이라면 알지 않냐.”

그렇다고 듣기엔 안 좋은 음악이란 말은 아니다. 그냥 내겐 부를 때의 메리트가 더 크기 때문이다.

글쎄. 노래방 같은 데서야 불러봤는데 모르겠는걸.”

것 참 애석한 일이다.

근데 너도 노래하는 것처럼 말하네. 혹시 음악 해?”

시선 맞추려고 고개 움직이는 게 끈덕지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시야에 어스레하게나마 걸리고야 말기에, 결국 나도 고개를 돌려줬다.

. 우리 밴드 보컬.”

, 그럼 락 밴드야?”

당연하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밴드 애들 전부가 락을 고집하는 편이다. 연주는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노래하지 않더라도 매력을 끌 만한 것이 있는 모양이다.

이제 다음 정류소다. 처음 보는데다가 고작 짧게 말 몇 마디 나눴을 뿐이지만, 일어서기 전에 나 내린다.”고 간단히 인사해주기로 한다.

그래? 나도 여기서 내리는데.”

그녀도 기타 가방을 들쳐메고 나를 따라 버스 후문 앞으로 걸어 나왔다. 원래 여기서 내릴 거였으니 따라 나왔다고 하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연이 오묘하게 질기다. 장기적으로 보게 될 건 아니지만, 어쩌다 마주친 사람치고는 말이다.

그녀와 내가 내린 곳은 대학로 앞이다. 난 여기서 밴드 멤버들과 합류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 이제 갈라져야겠네.”

갈라진다고 표현할 것까지야.

그러게. 잘 가.”

적당하게 인사하고 돌아선다.

나 여기 길거리 공연 하러 왔거든. 시간 괜찮으면, 30분 정도 있다가 여기서 공연하니까 보러 와줘.”

그녀가 덤으로 붙이고 간 말은 내 고개를 다시 돌리게 할 정도로 선거운 것이었다. 나도 오늘 길거리 공연하러 온 건데, 도대체 저 여자와 나는 어디까지 일이 겹치게 되는 건가.

? , !”

따로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워낙 뜻밖의 말을 남기기에 반사적으로 불러 세우려 소리 질렀다. 허나 그녀는 이미 저만치 달려 나가 있었고, 내 외침은 대학로의 조밀한 인파에 가로막혀 그녀에게까진 닿지 못한 것 같다. , 제 할 말은 꼬치꼬치 캐묻더니만, 사라질 때도 제 맘 대로다.

왔네. 바로 시작할 거지?”

뒤쪽에서 어깨를 붙잡혔다. 하나, , ... 다 모였네.

바로 할 건가. 어째서인지 그녀가 내 노래를 들어줬으면 하는 기분이 드는 탓에 즉답 할 수가 없었다. 왜지, 끝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한 버스에서의 대화에 미련이라도 남아버린 걸까. 걔도 여기서 공연하고 간다는 것, 고작 그게 뭐라고 이다지도 마음에 파문이 일게 하는가.

...30분 있다가 시작한댔지. 스피커나 드럼처럼 무거운 거 갖다놓고 하려면 시작 시간보다 10분 정도는 일찍 오게 될 거다. 지금 바로 시작하면 그런대로 끝자락 노래는 들려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 바로 하자.”

원래는 목축이고 긴장도 풀 겸 해서 카페라도 갔다 올 생각이었는데, 그럴 시간은 없다. 더 지체되면 우리와 그녀의 공연이 겹쳐버리니까.

근데 어디서 할 거야? 짐 많아서 헤매고 다니기 싫은데.”

그녀가 여기 근처에서 할 거라고 말하고 갔으니,

여기서 하자. 여기가 사람도 많이 다니고 하니까.”

적당한 자리를 찾아 짐을 내린다. 드럼을 조립하거나 스피커에 선 연결하거나 하고 있으니, 주변에 사람들이 꽤 꼬이게 됐다. 짐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우리는 그냥 서있는 것만으로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세팅이 끝나고, 나는 마이크를 잡아들었다. 아직 시작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열 명 정도 내 바로 앞에 서있다. 별안간 음이 퍼져나가게 되면 저 길거리 사람들의 발걸음도 우리에게로 기울겠지. 그것은 희구해도 좋을 일이다. 인파 앞에 서서 노래할 땐 언제나 이러는데, 가슴에서부터 비집어져 입술까지 닿는 떨림은 긴장 때문일까 희열의 기대 때문일까.

내 잡념은 곧 일렉트릭 기타에서 굽이쳐 나오는 팽팽한 선율에 가려졌다. 호언과도 같은 강직한 소리를 듣게 된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금 우리에게 박혀온다. 기타 소리가 감사나워질 즈음, 드럼의 심벌 소리가 산발적으로 발산한다.

20초가 조금 넘도록 반주를 기다리고, 내가 뱉을 첫 소절의 순간이 임박한다.

“Live my life in the city~”

오아시스의 락 앤 롤 스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노래의 가사를 뱉으면, 성대에서 자랑스러움 같은 것이 함께 벅차오른다.

이 곡은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경쾌한 곡조를 가지고 있어서, 우릴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제법 된다. 저 너머에서 힐끗 쳐다보기만 하거나 하이라이트를 들어보지도 않고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공백을 메우고도 남을 인원들이 모여든다.

다들 영어로 된 가사를 알아듣기는 할는지. 유명한 곡이라 알 사람은 알고 있다고 쳐도 말이다. 누군가는 가사의 뜻을 모르면서도 발목과 어깨를 떨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가수의 목소리만으로 저 사람들을 흥도하게 만들었다면야.

“Tonight~ I’m a rock n roll star!”

원래 이만치 음을 끌어올리는 부분은 아니지만, 뭐 어때. 허식이나 기교 같은 걸 위한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이렇게 부르고 싶어졌을 뿐이다. 관객들에게도 잘 먹혀들었는지 완주도 전에 일부에선 박수소리가 날아 들어온다.

첫 구절 때의 긴장성 심장박동은 이제 와선 환열의 가슴떨림이 되어있었다. 반응이 시원찮았다면 그야 긴장할 만한 상황이었겠으나, 첫발이 잘 뽑혔으니 말이지.

자심해지는 무언가의 벅차오름 탓에 창법이 짐짓 평소와는 달라진다. 음역대에 아슬아슬하게 붙잡힐 정도로 높게 부른다거나, 가사의 발음을 늘린다거나. 안 좋게 말하자면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르는 거다. 뭐 말이 그런 거지 그걸 불량한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그런 감정을 주체해버린다면 내가 노래하는 의미가 없다.

네 번째 곡을 연주하고 있을 때, 마침내 그 재즈 소녀가 밴드원들을 대동한 채 나타났다. 공연 중인 우리를 발견하고는, 둘러싼 인파에 비집고 서 우릴 구경한다.

그녀가 이렇게 눈앞에 있으니 도저히 시선처리가 되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눈길이 수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명에게로 이끌려버리고야 만다. 잠시 후 날 알아보곤 그녀가 손을 흔들어준다. 내가 여기 있는 게 의외였는지 놀란 표정도 겸해서.

그녀가 내 노래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에 선명히도 기복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승부욕, 자부심, 우월감, 추릴 수 없는 감정의 실타래가 통째로 치고 들어온다. 아무튼 그 전보단 필사적으로 노래하게 됐다는 건 확실하다. 이 다음, 그녀가 노래하게 될 것 아닌가. 그걸 의식했으니까 멋대로 그런 감정이 끼얹어진 거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예상대로 그녀가 공연 막바지에야 와버린 탓에, 슬슬 마지막 곡도 다 끝나간다. 아쉽기야 해도 그런대로 들려줄 건 다 들려줬으니까 괜찮지 싶다.

수고했어.”

공연이 끝나고 악기들과 스피커를 정리한다. 끝나고선 박수도 꽤 받았고, 만족했다.

이제 다 집에 갈 거지?”

흩어져가는 사람들 중, 그 재즈 소녀만큼은 아직도 서서 날 기다리고 있다. 나머지 밴드원들은 저 너머에서 세팅 중이고. 그렇게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나 역시 그녀의 노래는 듣고 갈 생각이었다. 그녀도 굳이 내 걸 들어준 만큼 그게 예의이겠거니 싶은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순전히 그녀의 노래가 궁금하니까.

, 나는 볼 일이 있어서. 다들 먼저 가. 오늘 수고했다.”

아이들이 떠나가자, 저기 서 있던 그녀가 걸어왔다.

너도 여기서 공연하는 거였으면 말 좀 해주지. 조금밖에 못 봤네.”

아니, 말도 못 하게 네 말만 뱉고 바로 뛰어가더만.”

그 뛰어가던 등 뒤에 대고 소리까지 질렀건만. 그녀는 아아 그랬지.” 하며 능청맞은 웃음을 흘린다. 진작 알려줬어도 준비하고 와야 하니 바로는 보러오지 못 했을 것 아닌가. 결국 다시 대면했으니 상관없다.

너 상당하던데, 잘 들었어. 진지하게 하나보네.”

사실 이런 식의 칭찬은 곧잘 듣곤 한다. 자주 들어서 새로울 건 없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 좋은 건 사실이다.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한테 들은 거긴 해도, 그 사람들 역시 어느 노래가 좋고 싫은지 정도는 판단한다. 허나, 이번은 동업자에게 인정받은 것인 만큼 만족감의 정도가 다르다.

어쩌면 만족감이 아니라 안도감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노래 좀 하는 사람이다. 고작 재즈 보컬리스트 나부랭이에게 져선 안 될 일이고, 그럴 리도 없다. 그저 그걸 확인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안도감이 맞겠지.

진지하게 하는 건 맞지.”

속마음은 어찌됐건 재수 없게 대답하진 않는다.

특히 애드리브 넣는 게 백미였어. 안 이상하게 잘 하더라.”

내가 애드리브를 많이 집어넣는 편이긴 하다. 일부러 안 하면 부를 때 영 답답한 기운이 있어서.

고맙다. 나도 오늘 너네 공연 보려고. 기다릴 테니까 가서 세팅 거들어.”

기다릴 테니까.’라니, 말하고 나니 아차, 하게 된다. 혹여 1시간 정도 공연 시간 늘어진다면 싫증나서 끝까지 보는 건 무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 처음 본 사람의 노래를 1시간이나 듣고 서있을 만큼의 의리는 없다.

알겠어. 끝나고 봐!”

말이 성급한 게 버릇이라도 되는 건지, 그녀는 다시 한 마디 덧붙일 짬도 없이 달려가 버린다. 이번엔 따라가서 정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 저렇게 말해놓고선 생각해보니까 끝까지는 못 들을 수도 있겠다.”라며 말 바꾸기에도 좀 모양새가 그렇잖은가.

그들이 점해놓은 무대 쪽으로 걸어간다. 역시 악기들을 풀고 있으려니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몇분 후 준비가 다 됐는지, 보컬리스트인 그녀가 센터에 발을 딛는다. 기타의 스트랩을 목 뒤에 감아 어깨에 매달고, 스탠딩 마이크의 높이를 맞춘다. , , 하며 마이크 테스트를 하곤,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가사와 동시에 흘러나오는 낮은 밀도의 피아노 반주.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이다. 대강 그가 부른 노래의 황홀함이 날 죽일 정도라는 식의 비유다.

낭만적이면서도 과격한 곡명이, 내게는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관중들에게서 환호와 박수를 앗아가는 찬연한 목소리가, 내게는 그리도 잔악하게 울렸다.

귓바퀴를 미끄러지는 수더분한 선율이, 내게는 감동 대신 패배감을 일깨워줬다.

듣는 순간 심장과 뒷통수를 두들기고 가는 무언가의 물리력이 느껴지는 듯했다. 잘 부른다, 나 따위와는 감히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얕잡아보던 재즈 보컬이 저 정도로 부른다는 건 배신감마저 통감할 만한 것이었다.

가창력이 뛰어나다 할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가 그야말로 옥음이다. 음색이라 부르는 그것은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으니, 당연히도 주변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패배에 취해있으려니 어느덧 1절이 끝났다. 가사와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얼굴은 반듯하게 미소 짓고 있다. ‘his'’her‘로 바꾸고 해석을 조금 비튼다면, 차라리 내 처지에 어울린다.

후렴구에 들어서 그녀의 목소리에는 애틋함이 뒤섞여 흉골까지 감정을 끌어 오르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저항 없이 감정의 촉진을 수용할 테지만, 이미 나의 가슴은 농후한 패배감이 점령하고 있다. 아쉬운 일이다, 그녀의 노래를 즐길 수 없다는 건 손해라고 여겨 마땅한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했기에,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이 자리를 떠나지 못 하는 거겠지.

결국 당초 말했던 대로 끝까지 듣게 됐다. 억지로 버티고 서있던 건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내 심신은 피폐해진 것 같다.

진짜로 다 들어줬네.”

관객과 밴드 모두 해산하고서야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우리의 공연보다도 왕성한 반응이 터져나왔기에, 그 뒤의 공백은 꽤 한산한 분위기를 형성케 했다. 그 차이의 원인으로 제일 먼저 지목할 만한 것은, 단연 보컬의 역량이다.

어땠어? 괜찮았어?”

나올 수 있는 대답은 칭찬뿐이라는 걸 아는지, 눈은 청청하고 입술이 웃음 짓는다. 그런 야비한 웃음은 아니었으나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다. 속이 간질거려 차마 그대로 눈을 맞추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면 너 스스로도 난 노래 좀 하는구나 싶지 않아?”

인지부조화인지, 이런 비참한 상황에 난 헛웃음을 뱉고야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 건지, 스스로를 향한 조소인 건지.

정말? 연주하는 내내 표정 안 좋아보였는데. 지금도 그렇고.”

“...네 노래랑 나란히 세워놓으려니까 내가 못 하는 거 같아서 그렇다.”

에이 너무 비행기 태운다.”

진심으로 한 말이란 걸 모르는지, 그녀는 뭐라 위로해주는 대신에 마냥 웃어재낄 뿐이었다. 이 대목에서 어설프게 위로해줘봤자 약이 되진 못 할 테지만.

아니, 진짜야. 그거 들으니까 갑자기 자존심 확 상해버렸다고.”

난 기어이 속 좁은 소리를 입 밖에 꺼내버렸다. 그녀는 이렇게 말해주고 나서야 진의를 알아챘는지, 곧 웃음을 거뒀다. 그 얼굴에서 웃음을 뺏어가려니 비리치근한 미안함이 차오른다.

그렇다고 네가 숙연해할 필요는 없고. 내가 모자라서 그런 건데 뭘.”

뒤늦게 수습하려 해보지만 그녀의 조심스러워진 태도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너도 어느 정도 부르니까 그렇게 생각할 건 없는 거 같은데... 이거 좀 마시면서 얘기 좀 해볼래?.”

그녀가 기타 가방 앞주머니에서 음료수 두 캔을 꺼내들곤 하나는 내게 내밀었다. 마침 잘 됐다. 이대로 자괴감만 가지고 돌아가면 계속 노래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물론 얘기해본다고 해결 될 문제는 아닌 것 같지만, 여기서 싫다며 내뺄 것도 없다. 캔을 받아들고 그녀를 따라 벤치로 향한다.

일단 내가 너보다 잘 부른다고 쳐도 말야, 고작 그런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좌절할 건 없잖아?”

당연히 나보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이야 널리고 널렸다, 그런 부정함을 인정 못 할 만큼 현실감각 없는 사람인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나와 같은 지망생, 연습생, 아마추어가 아닌가. 같은 신분 사이에서 이 정도의 격차는 너무도 잔인한 것이다. 아마추어 중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찾았던 적이 없는 건 아니다만, 이 정도로 짙고 걸쭉한 열등감은 맛본 적이 없다. 다른 때는 이내 승부욕이 지펴져 상대를 쫓아가고야 말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경지에까지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업라이트 피아노가 그랜드 피아노를 모방할 수 없듯.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고 했던가. 애석하게도, 이건 그저 그런 허들이 아니다.

세상 너 같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의욕이 죽으니까 이러는 거야.”

? 나만큼 못 될 것 같아서?”

다른 사람, 그것도 본인 입으로 듣자하니 더 처참하다.

“...너는 노력한 거냐 아니면 타고 난 거냐? 아무래도 후자 같은데.”

그녀도 노력해서 저 수준에 다다른 것이라면 내게도 희망이 있겠지, 하는 안일한 위안을 얻어 보고자 하는 요량의 물음이었다.

내가 범재인지 천재인지는 별 상관없는 얘기잖아? 네 얘기 하는 중이니까.”

내게 나쁘게 말하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대답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내가 뚱하게 있으니 그녀가 풋, 하며 웃는다.

굳이 나나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라는 뜻이야.”

그렇게 얘기는 해주었으나, 거기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내 실력 뒤져지는 꼴을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어.”

뭐 어때, 노래 잘 부르게 되려고 노래하는 건 아닐 거 아냐?”

무언가를 잘 하게 되려고 무언가를 한다, 아주 맞는 말인 것도 아니지만 반만 틀렸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엔 그 무언가를 잘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히 따라붙게 마련이다.

제일 중요한 거, 넌 왜 노래해? 실력은 재주는 그 다음 문제야.”

꽤나 본질적인 것을 물어온다. 그렇기에, 그 답을 잠시 잊어버릴 때는 있었을지언정 여태껏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부르고 싶으니까.”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좀 덧붙이자면 그 생각을 표출하려고. 락 좋아하는 이유도 그거야. 감정 전달에 제일 잘 먹히는 장르가 락이거든. 애드리브도,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부르고 싶으니까 하는 거고.”

프로패셔널 하지 못 한 이유인 것 같긴 하지만, 이 지론에 결코 타협은 없다. 설령 나보다 나은 가수가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난 이단임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 괜찮은 동기인데.”

다행히도 그녀와 충돌하진 않게 됐다. 흐뭇히 웃음 짓는 걸 보니 위선은 아니리라.

그러면, 네 목적이랑 노래 실력은 그렇게 관계있는 건 아니잖아?”

미친놈처럼 혼자 감정 표출하고 있긴 싫거든. 듣는 사람이 있어야지. 다른 가수한테 뒤처지면 내 노래 듣는 사람은 없을 거 아냐.”

아까 너희 밴드가 공연할 땐 사람 좀 모였잖아.”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덤 해서 관객 수로도 그녀에게 밀렸다. 아까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라했으니 입에 내진 않겠다.

... 너희 처음 길거리 공연 했을 땐 몇 명이나 보러왔어?”

가만히 서서 봐주는 사람은 다섯 여섯 정도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아무리 못해도 그 다섯 배는 되는 거네?”

많이 불어나긴 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 정도 숫자로도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다. 관객을 늘렸다는 것 자체도 뿌듯하게 생각하고.

봐봐, 계속 노래하다보면 듣는 사람은 생겨나잖아.”

할수록 실력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진 않을 일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당연한...

넌 하고 싶은 노래하고, 노래 들어줄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다 좋잖아.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 없이.”

과연,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종합하면 결론은 그렇게 내려진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괜찮은 건가. 날 긍정해주는 말에조차 어떻게든 토를 달아보려고 생각을 해보지만, 딱히 받아칠 말이 없다.

? 웃었네. 아무래도 지금 처음 본 것 같은걸.”

웃어? 듣고 보니 입가의 볼 살이 당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왜지. 무엇이 날 웃게 한 거지.

이제 다시 노래할 수 있겠지? 락커한텐 약식이긴 해도, 내가 기타 쳐줄 테니까 여기서 다시 노래 해볼래?”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갑자기 일어나선 기타 가방을 풀기 시작했다. 그 얼굴엔 저버리지 못 할 기대서린 웃음이 걸려있었기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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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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