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lguswl0126 posted Apr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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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말이지, 처음엔 말이야. 막 저항도 하고 울어도 보고 내가 참 불쌍하단 생각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물러지더라. 응, 밖에서 누가 누굴 때리고 누가 누구한테 소리지르고 울고 지랄을 하던 난 그냥 내 방 안에서 공부도 하고 문자도 하고 웃긴 동영상도 보고 그렇게 지내게 되더라. 그런데 잠은 못 잤어. 아빠가 칼 들고 진짜 누구 죽이려 들면 내가 빨리 나가서 바짓가랑이 붙들고 말려야 했거든.

집 안에 진동하는 술 냄새도, 멍 든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도, 다 익숙해졌어. 나는 그렇게 익숙하게 일어나서 밥 먹고 교복에 향수 뿌리고 그렇게 학교 다녔지. 네가 죽네 내가 죽네 그 놈을 죽이네 하면서 살림살이 망가지는 집만 나서면 난 그냥 평범한 여학생이야.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기도 했고, 쉬는시간에는 유치원생같이 슬리퍼 멀리 던지기 놀이도 하고, 집 오는 길에 떡볶이도 사 먹고. 하루 종일 뭐가 그리 웃긴지 어젯밤은 다 까먹어버리고 그렇게 웃다가 웃다가 아이스크림 막대 들고 현관문 앞에 섰지. 숨이 턱 막혀.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 나무향이 나는 아이스크림 막대를 쪽쪽 빨며 한참을 생각해. 진짜 나무로 만들어졌을까? 세상에 막대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나무 낭비가 너무 심하잖아. 한참을 그러다 도어락을 열고 꾹꾹 눌러. 그러다 마지막 번호에서 일부러 틀려. 그리고 또 누르고, 또 한 번 틀렸다가 다시 제대로 눌러. 그러면 문이 열린다?

그럼 또 들어가. 신발 벗고 들어가면, 달콤한 초콜릿 향이 나던 아이스크림도 여름이 오는 조금 텁텁한 공기도 바람에 휘날리던 내 친구 샴푸 냄새도 다 사라지고 막걸리하고 걸레 냄새만 남아. 아빠가 막걸리를 엎으면, 엄마가 젖은 걸레로 그걸 닦고. 보드카를 깨면, 엄마가 또 걸레로 그걸 닦거든. 들어가면 엄마는 엉망인 머리 추스르고 부엌으로 가서 된장찌개를 끓여. 트로트 노래가 거실을 쩡쩡 울리고, 나는 또 돌덩이 얹힌 가슴이 무거워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그 때 우렁찬 호통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저 바닥으로 떨어져. 너 나와봐! 난 아직도 고함이 무서워. 천둥소리가, 주먹이, 번개가 아직도 무서워.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 지 아직도 몰라. 그냥 때리니 맞고, 혼나니까 고개를 숙이긴 하는데 또 억울해서 고개 빳빳이 들고 댐비다 따귀 한 대 얻어맞지. 아빠한테 맞는 따귀는 그렇게 아프지 않아. 너무 세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발갛게 부풀어 오르지.

그런 날 밤이면 물 마시는 척 부엌에 가서 숟가락을 얼려 놨다가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한참 얼굴을 식혀.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연예인 기사 읽고, 친구들이랑 떠들기도 하고, 만화도 보다가…

그냥 그렇게 살다가 기숙사 고등학교 들어갔어. 공부하느라 바빠서 집에는 신경 쓸 여유도 없더라. 그러다 가끔 엄마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으면 가슴이 철렁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봐. 응, 엄마. 왜 전화했어? 그냥 보고 싶어서. 방해했니? 아니야. 12시까지는 다 야자 해. 그 때 넘으면 받을 수 있을 거야. 뭔 학생을 그렇게 혹사시키니, 집에 오는 날이 언제더라? 다음 주 일요일.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급식 나오는데 뭘 챙겨 먹어. 그냥… 매점 카드 돈 안 떨어졌지? 더 충전해야 돼? 아냐, 아직 남았어. 응. 알았다니까, 들어가. 으응.

 

기숙사에 들어가서부턴 집이 따뜻해졌다. 이 주에 한 번 가는 집은, 맛있고 조금 무리한 듯 보이는 식탁과 웃음소리와 TV, 그 간의 안부와 걱정을 담은 대화 소리만이 오가는 공간이었다. 3년 동안 내가 방문하는 그 일요일들은 평화의 날이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계약된 평화 협정이 지켜지는 날.

수능을 치르고, 대학교도 기숙사로 들어가고, 나는 누구보다 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공부를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과외 알바는 다른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고, 아주 가끔 장학금을 타고, 공부를 하고, 술을 마시고, 밤을 새고…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단란한 집.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취직과 동시에 고시원에 들어갔다. 모은 돈으로도 충분히 자취방을 구할 수 있긴 했지만 일이 너무 바빠 잠잘 공간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지 않은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엄마와 바람난 남자가 살해됐다. 엄마랑 아빠는 자살했다. 나는 영정사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담배를 물었다. 인생에서 처음 피워보는 담배였다. 뭣도 모르고 쭈욱 들이키는데 바로 숨이 턱 막혀 켁켁댄다. 눈물이 났다. 기침을 너무 세게 해서 눈물이 났다. 너무 독하고 매워서 눈물이 뚜욱 뚝 떨어졌다.

된장찌개, 걸레, 초록색 소주병, 갈색 소파, 된장찌개, 가지 반찬. 그 곳은 모순으로 가득찬 곳이었다. 아빠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리채를 붙잡다가도 매주 일요일마다 교복 블라우스를 다려줬다. 엄마는 유치원생 딸을 두고 놀아났으면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찌개를 끓였다. 증오와 사랑이 공존하던 그 곳. 지긋지긋하고, 또 너무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곳. 내 유년시절, 내 그을음, 내 그림자, 내 눈물, 내 사랑, 내 집. 10년이 흘러 찾은 그 곳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책상과 옷장과 침대가 그대로였다. 피아노 발표 액자 위에도 먼지 하나 없이, 옷장 안의 옷도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로, 침대 위의 인형도 그대로. 풀던 수학 노트, 좋아하던 책, 책가방, 그린 그림, 친구들한테 받은 편지들, 냉장고 안의 김치, 가스레인지 위의 미역국, 베란다에 말려 놓은 빨래들…

 

나는 그 공간을 팔았다. 유독 엄마가 아끼던 내 배냇저고리와 아빠가 아끼던 가죽장갑만 화장할 때 같이 태우고 다 팔아버렸다. 결혼사진도 같이 태울까 버릴까 고민하다 그냥 버렸다.

 

그리고 새 집을 샀다. 방이 두 개 딸린 18평의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