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논리적이지도, 순차적이지도 않다. 완전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건 단지 토막토막들일 뿐. 재구성에 재구성을 거듭해야 그나마 앞뒤가 이어진다. 그렇다 해도, 아무리 퍼즐맞춤에 능해도 한계는 있다. 최대한 내 논리력을 쥐어짜내어 앞뒤를 짜 맞춰본다. 내가 꾼 섬뜩한 개꿈인 즉 다음과 같다. 스토리가 엉망진창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꾼 꿈 그대로이니깐….
1. 시작은 이러하다. 나는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가족 모두 새로 생긴 상가 건물을 구경하러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채로운 레크리에이션과 유익한 활동거리를 제공해준다는 일종의 학생 수련원 같은 시설이 있어 둘러보았다. 미라클수련원…. 느낌이 너무 오묘했다. 추억이 스민 거리,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추억속의 음식들, 추억속의 인물, 김광석…. 대학시절 친구, 노을빛 옛 거리의 정겨움과 야릇함이 얼마간 이어지더니 서서히 비춰지던 형상이 일그러지며 왠지 모를 싸늘함과 소름이 모두를 엄습하였다. 이내 아니다 싶어 가족 모두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으나…, 거리는 온통 꽁꽁 얼어버린 한겨울 스산한 도심 밤거리로 변해있었고 몇 안되는 바깥의 행인들은 긴 코트를 입은채 그자리에 멈춰있으며 얼굴에는 팩처럼 청테이프를 발라 누군지 알 수 없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오싹한 이 광경이 그 순간 크게 놀랍지 않은 이유는, 미라클 수련원을 나오려는 그 때 이미 저주스런 뭔가에 갖혀져버렸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련원에서 함께나온 몇 몇 우리 옆 가족들은 무작정 도망가려 길을 건너려 했으나 달려오는 차에 치어 죽게 되었고, 떨어지는 간판과 난간 화분 등에 의해 머리를 치어 죽게 되었다. 회피할 수 없다. 가장으로서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하며, 빠져나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길 건너편 건물 1층 강당으로 교관들이 일괄 인솔하였다. 우리 어른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단지 먼발치에서 1열로 서서 무언가 지도를 받고 있는 강당 안의 아이들을 길 건너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뭔가 퀴즈를 내는 듯 했다. 틀리면 다시 맨 뒷줄로 가되 얼굴, 팔, 몸 등에 하나씩 흉터가 생기는 것 같다. 불에 달군 무언가로 상처를 내는 것 같다. 중학생도 있고, 초등학생도 있고. 우리 아이는 5살 유치원생이다. 600여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1열로 서서 교관의 퀴즈에 답을 못하고 1번 틀릴때마다 고통스런 흉터를 몸에 안고 맨 뒷줄로 가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이미 수십번, 수백번 돌고 돌아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것 같다. 우리 아기는 잠시후 질문을 받게 된다. 집사람은 길건너 먼발치에서 이 장면을 보며 통곡하고 있다. 길건너로 뛰어들어가고 싶지만 엄두도 못내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 더더욱 고통스럽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딸은 그저 중간즈음 줄에 서서 천진한 얼굴로 기웃거리고 있다. 교관의 질문은 단지 이 한마디, "퀴즈의 정답은?" … 그 어떤 설명도 힌트도 없다. 밑도 끝도 없는 뜬금없을 이 질문에 그 어떤 아이도 입을 뗄 수 없다. 단지 끝도 없을 터널 같은 저주에 자포자기할 뿐, 모두들의 영혼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 흐느적 무의미한 걸음만을 옮길 뿐이다. 그렇지만 모든 희망을 떨쳐버릴 순 없다. 그 퀴즈의 정답이 이 저주를 풀 열쇠이므로.
2. 갑자기 밖의 다른 인물들이 보인다. 저주에 걸린 아이의 부모이다. 몸과 마음 모두 미라클 수련원에 갇힌줄 알았더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한 강금은 아닌것 같다. 버젓이 이들은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갖혀버렸는데도…. 이유는 이러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몸이 아닌 일종의 영혼만 그 거리, 그 건물, 그 강당, 미라클 수련원에 억류되어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도 그대로 다니고 있는 것이다. 혼이 빠져버린채. 부모들은 낮에는 일을 한다. 온전한 정신으로. 그러나 퇴근과 함께 길건너 오싹한 그 거리에 서게 된다. 멈춰있는 청테이프 얼굴의 행인, 꽁꽁 언 그 거리, 길 건너 창이 넓어 속이 보이는 아이들이 줄을 서서 퀴즈를 풀고 있는 대 강당.
규칙이 있다. 부모들은 일을 하되 핸드폰은 압수다. 그 어떤 티도 내어선 안 된다. 지금 저주에 걸려있다는 것을 직장 동료중 누구도 눈치를 챈다면 아이는 사라진다. 아이들은 하루에 딱 한번 20초 부모의 핸드폰에 메세지를 남길 수 있다. 아이들과 우리가 연결되는 유일한 기회다. 집사람과 나는 일을 마치고 함께 가까운 공중전화로 바삐 달려갔다. 그리고 메세지를 확인한다. 부재중 통화가 왜 이리 많은지…. 30통의 부재중 통화, 직장동료, 장인어른, 누나, 친구 … 다음, 다음 … 우리애 메세지는 언제 나오나…. 아! 혜인이다. 혜인이 메세지가 그 다음이다. 잘 들어봐. 스피커로 전환해줘!
"아빠…, 히히히…, 심심해요… 히…(툭…)"
아내는 또다시 오열을 터트린다. 나도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너무 괴롭다. 철없는 딸래미가 눈앞에 아른거려 견딜수가 없다.
3. 다시 영통 인근 모학교의 한 학급. 중학교의 보통의 반인듯 싶다. 이 학급 40명의 절반 정도가 저주에 걸렸다. 나는 저주에 걸린 한 아이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혼이 빠진채 옆에 앉아있어도, 같이 수업을 듣고 있어도 눈치챈 아이들이 아무도 없다. 저주에 걸린 아이들은 점점 피폐해져 동공은 확장되고, 초점은 혼미하고, 얼굴은 창백하고, 여학생들은 머리를 감지 않아 만신창이가 된 채 쉬는 시간에 말도 없이 얼굴만 떨구고 있다. 그럼에도 철없고 무감각한 나머지 녀석들은 이러한 이상함을 알지도 못한…, 아니 관심도 없기에 자기들 수다만 한창이다. 이때 저 구석 어떤 아이가 하는 수다에 일순간 저주에 걸린 모든 아이들의 귀가 쫑긋한다. "너 들어봤어? 저기 영통 3거리에 새로생긴 상가. 푸드코트도 정말 죽여주고, PC방 시설도 쩐데. 미라클 뭔가라던데…" 모두들 그러면 안되지 하면서도 피폐해진 판단력 때문인지 떨리는 눈빛으로 곁눈질과 귀기울림으로 계속 그 두 아이들에게 몸이 쏠린다. 내 옆의 저주받은 한 아이는 안절부절 못한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의 괴물 같은 심성이 자기도 모르게 발현되어버릴 것 같다. 자신이 받고 있는 지금의 이 저주를 저 두 아이도 느끼게 하고싶은가보다. 저주에 걸린 모든 아이들이 그런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건 인간이 할 일이 아닌데…. 그런데도 어찌 할 수 없다. 오랬동안 저주에 시달려, 퀴즈와 학대에 영혼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판단력이 모두 사라져버렸나 보다. 그나마 남아있는 지푸라기같은 인간성이 사악한 이들의 욕구를 힘없이 잡아 끌고 있다. 끝끝내 내 옆의 한 아이가 떨구고 있던 고개를 힘겹게 돌리며, "얘들아, 오늘 거기에 같이, 안 가볼래…."
이 순간 나는 터져나오는 분노를 참을수가 없어 앞에 있던 노트를 감아말아쥐고 내 옆의 사악함에 무너져버린 그 녀석의 머리를 마구 마구 쳐댔다. "야 이 자식아 그러면 안돼! 그러면 정말 안되는거잖아. 거기에 가면 안되, 거기에 가면 안되, 거기에 가면 안된다고 말해야지!" 이 모든 상황이 저주다. 악몽이다. 괴롭고 죽을 것 같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빨리 퀴즈를 맞춰야 할텐데….
그 순간 퍽…!
내 눈이 떠지며 시야가 밝아졌다. 한 밤중이다. 그리고 우리집 내방 천장이 보인다. 내 옆에 놓인 핸드폰을 켜보니 새벽 2시 30분.
저주가 풀린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퀴즈의 정답은,
"거기에 가면 안되!"
내 옆에 새록새록 잠들어있는 혜인이를 한참동안 꼭 안고 있었다.
여기까지 소설이 아닌 내 경험담, 체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