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그리고 도시

by 필라델피아쿠엔틴 posted Jun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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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그리고 도시 


[밤은 사라진다. 빛은 드리울 뿐이다. 낮뿐인 도시를 이룬다.]

 

나는 2년 전 낮뿐인 도시시민권을 취득하여 이민을 왔다. 여느 때처럼 오늘 아침도 눈이 부시고, 새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전자석과 코일이 내는 멧새 소리, 7시 정각을 알리는 알람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게 예정대로 흘러간다. 새소리를 들으며 잘 구워진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문다. 와작-

 

드론이 배달한 오늘의 드레스가 도착했다. 울과 실크를 반 씩 섞은 진청색 계열 정장이다. 서비스를 신청할 때 든 생각이지만 어떤 사람이 날 위해 매일 정장을 고를까. 코디네이터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면서 옷을 고르고 있을까? 그런 자질구레한 생각을 할 때, 드론에 달린 카메라가 오늘의 드레스를 입은 나를 카메라로 찍고 있다. 저 맨들맨들한 렌즈 아래 내 모습이 담긴다. 영상은 바로 코디네이터에게 배달될 것이다. 그 혹은 그녀는 영상을 보고 내일의 드레스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이 그 또는 그녀의 일과일 것이다. 어쩌면 코디네이터가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코디네이터를 위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로 가는 통근버스를 타려면 지금 집을 나서야 한다. 출입문을 열자, 더 강렬한 도시의 빛 덕분에 눈이 다시 부셨다. 바닥과 고층 빌딩 시멘트벽 움직이는 모든 공간 위로 얇게 썬 베이컨 같은 조명이 반짝이고 있다. 도시로 온지 2년이 지났지만 적응되지 않는다. 베이컨 조명이 달린 통근버스는 나를 태우고 공장으로 향했다. 창밖에 비친 낮뿐인 도시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 나같이 다른 도시에서 이민을 와 정착한 사람들은 0세대로 불린다. 0세대는 어둠을 경험해본 이민자 그룹이다. 50년 전 도시와 함께 태어나 입주한 세대는 1세대라 불리고, 1세대의 자손들은 2세대. 2세대의 자손들은 3세대로 불린다. 1세대와 2세대 사이, 2세대와 3세대 사이에 태어난 즉, 중간 세대는 0.5를 더하여 1.5세대와 2.5세대로 불린다. 세대 간 보이지 않은 차별은 언제나 존재했다. 특히 어둠을 경험한 0세대에 대한 차별은 일상이었다. 그들에게 0세대는 미지의 수이자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잠시 버스에서 눈을 붙였다. 눈을 감아도 스며든 빛 때문에 완전히 쉴 수 없다. 내가 자리에서 뒤척이자, 노트북을 만지던 케이가 내 눈꺼풀 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래도 여전히 눈동자 안은 잠들기엔 밝았다. 어쩌면 전혀 어두워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케이는 조용히 내게 물었다.

 

어때, 도시 밖에 있던 어둠과 비슷해?”

 

케이는 어둠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2세대이다. 나는 그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었다.

 

전혀.”

 

케이는 나의 짧고 단호한 대답에 크게 실망한 듯 했다. 케이는 다시 조용히 속삭였다.

 

나 요즘 불순한 모임에 참석하고 있어.”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케이는 재밌는 듯 킥킥거렸다. 케이가 참석하는 모임은 글자 그 자체로 불순한 모임이었다. 뉴스에도 자주 이름을 보였던 모임이다.

 

불순한 모임, 역시 케이다워. 그런데 말이야, 그 불순한 행동이 대체 뭐야? 뉴스에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잖아. 그저 불순한 모임 회원들이 도시에 반하는 이러저러한 불순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 말하고...”

 

케이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커진 동공으로 내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는 듯 했다. 2세대인 케이 입장에선 불순한 행동이 상당한 중범죄에 해당되므로 나는 케이 행동이 이해됐다. 케이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케이가 입을 때는 순간, 통근 버스의 천장이 열리며 벽면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버스 사면이 열리자, 케이는 속삭였다.

 

“29일 낮 00시에 경관들 눈 피해서 성산으로 혼자 오도록 해.”

 

29일이면 앞으로 4일 뒤다. ‘낮뿐인 도시에서 사용하는 LMT 표준시인 낮 00시는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으로 새벽 2시쯤이었다. 케이는 그 말만 한 채, 재빨리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날부터 29일이 되기까지 케이 뒤를 몰래 따라다녔다. 불순한 모임에 참석은 분명한 범죄행위이다. 만약 내가 케이와 함께 범죄 조직에 가담한 것을 경관이 알기라도 한다면 회사는 물론 이 도시 자체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케이가 나를 절벽 아래로 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또한 절벽 너머 감춘 불순한 행동들을 알기 위해 낭떠러지를 향해 걷고 있다. 그간 케이와 지내면서 그의 사고방식에 물들고 있었다. 케이는 위험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케이는 나의 의심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겁 많고 소심한 성격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애정이 묻어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끝까지 의심했고, 당일 29일까지 성산으로 갈 것인지 정하지 못했다. 케이는 29일 당일까지 조용히 공장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통근 버스에 앉아서 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케이의 집 안은 여전히 빛났다. 그는 빛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곳엔 그림자가 없었다. 버스는 그의 집을 떠나 얼마 안가 타란 사거리에 멈췄다. 5분 거리에 내가 사는 복층 주택이 있었다. 버스 단말기에 사원증을 찍으며 버스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버스기사는 나와 같은 0세대였다.

 

기사님은 주말인데 고향 한번 안내려가세요?”

 

버스기사는 내가 재밌는 농담이라도 한 듯이 과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 참 웃긴 말이네, 푸하하하.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남아 있어야 고향이지. 땅만 덩그러니 있으면 고향인가.”

 

나는 멋쩍게 미소를 띠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시겠네요. 저는 0세대라시길래...”

 

기사는 일부러 큰 소리로 웃으며 손 인사를 했다. 인사하는 버스기사의 눈이 붉어졌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는 땅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0세대가 겪는 설움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서로 간에 알았다. 0세대 간 가슴속의 그 무언가 덕분에 나는 고향으로 떠났다고 증언해줄 알리바이를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장벽을 넘는 519번 버스를 타고 고향땅으로 떠난 사람이 된 것이다. 케이와 약속한 시간까진 아직 넉넉했다. 고향땅은 지금 쯤 어두컴컴해졌을 것이다. 고향의 밤은 시민들의 밤이기도 했지만 범죄자들의 것이기도 했다. 경찰이 보지 못하는 구석엔 쓰레기가 쌓이고 자질구레한 범죄자들이 모였다. 간혹 운이 나쁘다면 그곳을 점거한 불량배에게 끌려가 현금을 빼앗기고 뺨을 맞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공권력의 무능력함을 저주하고 그곳을 지옥이라 불렀다. 지금 살고 있는 낮뿐인 도시엔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소녀도, 각만 잡은 채 서있는 무능력한 경관도 없다. 시민들은 일을 하고 경관은 도시를 지킨다. 깨끗한 개울물이 흘렀던 자리처럼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적당한 수준의 행복과 기준에 만족하며 살아갔다. 발걸음은 주어진 일을 수행하기 위해 빠르고 가벼웠으며 표정에 단호함이 묻어나 귀족 같은 분위기도 풍겼다. 0세대 입장에서는 빛의 도시에 태어나 자란 1세대를 우러러 보기에 그들은 충분히 기품이 넘쳤다. 그들은 0세대를 받아주고 일자리를 제공해주었다.

 

나는 낮뿐인 도시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일종의 신앙심 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가 나의 도시에 대한 완벽한 신앙심을 부수지 않을 까 걱정됐다. 걱정 때문에 눈부신 도시가 부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나는 시외로 나가는 버스표를 끊고 단말기에 시민권번호를 입력했다. 이로써 나는 이제 도시를 떠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떠난 사람이 되었다. 케이가 불순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경찰은 나를 그와 친한 동료라는 이유로 연행하거나 쇠창살 아래서 조사할 수 없다.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나는 버스 안에서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쓴 뒤 정류장을 빠져나왔다. 시계는 벌써 낮2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된 00시까지 성산에 어림잡아 알맞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성산으로 향했다. 잠을 못잔 탓인지 도시의 빛에 눈이 더욱 부셨다. 출신이 0세대인 나도 때로 어둠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0세대 중에는 이민 온 뒤 얼마 못가 어둠이 그리워서 도시를 떠난 세대도 있다. 도시사람들은 그들을 뒤쳐진 세대라고 불렀다. 물론 나는 그들을 뒤쳐진 세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범죄자라 부른다. 그들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땅 어둠에 물들어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정의는 정확할 때 더 큰 함의를 갖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약속된 00시를 10분쯤 지나서 겨우 성산에 도착했다. 시골 출신인 나는 발걸음도 낮뿐인 도시사람들보다 느렸다. 미련하고 느린 발동작. 느린 발동작을 조종하는 게으른 나의 뇌도 문제다. 그곳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촌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약속 시간에 늦어 어쩔 수 없이 성산 뒤편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사이로 대화소리와 바닥을 끄는 쇳덩이 소리가 들렸다. 대나무를 헤쳐 소리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벌써 20분 지났어. 케이, 그 녀석은 잊어버리고 빨리 시작하자.”

 

케이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꼭 그 그룹의 리더인 것처럼 말했다.

 

“3분만 더 기다려보자. 분명 다 왔을 거야. 0세대가 한명이라도 더 있어야 우리 계획에 명분이 확실해질 수 있어.”

 

나는 대나무 사이로 얼굴을 숨긴 채 모임의 수를 세어 보았다.

 

하나, , , ... 서른 둘... 서른 여섯

 

그들 소매엔 시민권과 함께 세대표시가 적혀있었다. 대부분은 내가 알지 못하는 2세대가 주를 이뤘고 드물게 2.5세대 1세대도 섞여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기 전 불순한 모임이 가진 정보와 불순한 의도를 파악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새벽에 그들을 보러온 이유다. 나는 케이를 도와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단순하게 호기심뿐이었다.

 

알았어. 그 녀석은 안 올 건가보네. 워낙 겁이 많아서 그런 걸 거야.”

 

케이는 실망한 듯 힘없이 무리에게 중얼거렸다. 나는 케이가 나를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내가 처음 공장에 왔을 때부터 편견 없이 대해 준 유일한 2세대였다.

 

그럼 먼저 중심 시가지부터 공격한다. 지금쯤 먼저 간 선발팀이 계획대로 경관들을 가뒀을 거야.”

 

케이는 내게 선발그룹에 대해 일러주지 않았다. 케이가 이미 경관들을 납치했다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번 불순한 행동은 큰 계획인 것 같다. 그들은 여섯 명씩 나누어 작은 버스에 탔다. 나는 그들이 떠나고 남겨진 버스 한 대를 타고 케이가 탄 버스를 쫓았다.

 

케이의 버스는 제한 속도를 가볍게 넘기고 도심을 질주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속버스를 본 시민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케이가 도시에 끔찍한 일을 벌이는 것이 분명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케이의 행동을 말리지 못한 내게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그가 경관들과 시민들을 헤치는 것은 오직 나만이 막을 수 있다. 버스들은 사냥개처럼 큰 소리로 짖으며 도시를 부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낮의 사령탑이 있는 곳에 버스는 멈췄다. 버스는 담배 피는 것 마냥 바퀴에서 연기가 솟았다. 케이는 양손에 아이머리만한 쇠망치를 들고 상기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양 팔에 곤두 선 핏줄들이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케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혁명가의 얼굴처럼 일부는 맹수 같은 야성이 다른 면은 서러운 표정의 불상 같이 엄숙했다. 케이는 고개를 들고 도시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들은 지금부터 도시의 진실을 마주봐야 합니다.”

 

케이가 쇠망치를 들자, 도시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움츠렸다.

 

우리가 숨긴 어두운 진실을 말입니다. 언제까지 괴롭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하실 것입니까?”

 

케이의 쇠망치가 낮의 사령탑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밝은 도시 때문에 희생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빛을 파괴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도시의 시작일 것입니다!”

 

케이가 쇠망치를 사령탑으로 내리꽂았다. 쇳덩이가 사령탑의 유리면을 가르며 파열음을 냈다. 불순한 모임 일행이 케이를 기점으로 조명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조명을 보호하던 강화유리는 쇠망치질에 속수무책이었다. 먼지구름이 바람을 타고 일어나 도시가 뿌옇게 변했다. 도시의 탄생 이래 처음으로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유리 파편은 불순한 회원들의 살갗을 긁으며 튕겨나갔다. 연쇄적으로 도심 곳곳에서 파열음들이 들렸다. 케이 일행 말고도 더 많은 불순한 회원들이 일을 벌이는 것 같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고향 마을을 파괴하는 시민이라니. 나름 교양인이라 자부하던 케이가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인 줄 몰랐었다. 나는 케이와 불쌍한 불순한 모임회원들을 실컷 비웃었다. 그들은 거짓을 파괴한다더니 정작 자신들이 케이의 위선과 거짓에 선동되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 도시 조명의 모든 파괴행위는 단지 비틀어진 2세대 케이의 그릇된 욕망에서 생겨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보지 못했던 어둠을 보기 원했다. 눈꺼풀을 손바닥으로 가려봐도 이 도시에서 어둠은 볼 수 없다. 그것이 케이에게 불편한 진실이다. 그가 알아야 할 진실이다. 그는 신화 속 유니콘을 쫒는 망상가에 불가했다. 이 도시엔 그림자도 없고, 암흑도 없다. 발주부터 오직 빛만 존재하기로 계획된 도시다. 역시, 불순한 망치질은 얼마못가 멈췄다. 하나 둘 회원들은 쇠망치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공허한 침묵이 먼지에 날려 그들 주위를 감쌌다. 사령탑의 조명들은 모조리 깨져있었다. 시가지 바닥과 빌딩 벽에 깔린 조명들도 깨졌다. 시각은 새벽4시를 가리키고 조명은 모두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빛은 살아있었다. 조명은 설계자들이 꾸민 장식품에 불과했다. 빛을 내는 건 조명이 아니라 도시이자 공간이다. 도시는 말 그대로 낮뿐인 도시인 것이다. 케이는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진실을 맞본 충격이 꽤나 클 것이다. 불쌍한 2세대의 민낯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그의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그의 파괴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쓰러진 케이와 불순한 모임 회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반딧불이가 꼬랑지 불 끄고 날면 짝짓기에 실패하는 법이야... 멍청한 개똥벌레들 같으니.”

 

케이의 혁명이 있고 난 뒤 일주일이 지난 날, 나는 러그너 맥주를 들고 부르거를 뜯으며 소파에 기대 티비를 보고 있었다. 뉴스가 시작되고 짧게 케이와 회원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사진 아래에는 테러리스트라고 적혀있었다. 아나운서는 시민의 비명과 쇠망치 소리가 정신없이 들리는 제보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나운서가 흘리는 눈물을 보며 어느새 누구보다도 케이를 혐오하고 있었다.

 

역시 케이다워. 멍청한 케이 같으니.”

 

잠시 뒤, 낮뿐인 도시의 시장이 케이가 부순 사령탑위에 서서 장황한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배웠습니다. 나의 도시엔 어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검은 까마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빛비둘기만이 도시의 하늘 위로 날고 있습니다. 선의를 품은 나의 숭고한 시민 여러분. 당신은 빛을 따를 것입니까. 어둠을 따를 것입니까? 선택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의 시민 여러분이 시장과 함께 빛의 추종자, 선의의 노동자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커져가는 도시를 위해 일하십시오. 밝은 전구를 위해 땀 흘리십시오. 여러분의 노동은 영원한 빛의 사령탑 아래 기록 될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실히 일하십시오. 빛의 도시는 언제나 여러분에게 수십 배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땀 흘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시장을 보자 생각이 들었다.

 

개똥벌레 위로 새로운 똥 덩어리가 자리 잡았군.’

 

나는 저 뻔뻔한 얼굴을 한 시장에게 화가 치밀었다. 티비를 부수고 싶었다. 티비 몸체는 여전히 환한 빛을 뿜고 있었다. 케이가 잡힌 뒤로 빛에 의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간헐적인 불면증도 앓고 있다. 스트레스가 화산처럼 혈관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케이 생각을 하면 머리통이 지끈거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케이와 불순한 모임 회원들. 빛없는 조명들과 낮뿐인 도시’. 새벽 일찍 통근 버스를 모는, 갑자기 죽어도 아무도 모를 버스 기사. 도시를 점령한 걸어 다니는 개똥벌레들.....

 

그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로 가자. 오늘만 지하계단으로 내려가자.’

 

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고, 티비를 옆으로 밀고 바닥에 깔린 덮개를 들어올렸다. 덮개 아래에 감춰진 나무문 손잡이가 보였다. 손잡이를 들어 올리자 녹슨 못에 헐겁게 지탱하던 문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나는 문을 열고 아래로 한발 한발 내려갔다. 내 몸뚱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형체가 사라져갔다. - - 철제 손잡이에 구두 부딪히는 소리만 울렸다. 지하갱도에 마지막으로 내려간 것은 정확히 한 달 전이었다. 도시 사람들에게 들키면 영원히 추방되므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케이는 이 도시의 2세대, 나는 0세대. 당연히 차이와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낮뿐인 도시처럼 이 사실은 당연하다. 그는 말 그대로 지상에 사는 사람이고 1세대부모의 돈과 땅으로 부를 쉽게 물려받는 세대다. 반면에 0세대인 내가 먹고 사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이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과 사의 문제이다. 공장에서 버는 푼돈으론 제대로 사는 것조차 어렵다. 감옥에 있는 케이도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날 안아줄 것이다. 내가 그의 가장 베스트 프렌드였으니까.

 

내가 낮뿐인 도시의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란 물질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블랙 이코노미. 나 같은 0세대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언더그라운드다. ‘낮뿐인 도시정부는 시민들이 을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부는 검은 것을 진정으로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은 배설물과 같은 것이어서 0세대 사람들에게 시민권과 돈을 주고 처리하게 한다. 나도 그들이 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십 미터 쯤 내려가자 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 지하 깊은 곳에 담가두어도 멈추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제자리에서 출렁거린다. ‘밤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빛에 피곤할 때면 지하갱도에 내려와 잠시 눈을 붙인다. 깨어나면 옷을 벗고 위로 풍덩 빠져 눕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숨 쉬는 소리만 나도록 고요하게 말이다. 오늘도 은 파도처럼 철제 수조관 위로 넘실거린다. 이렇게 고요한 속에선 이따금씩 희미한 생명체들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인다. 나는 다시 밤들사이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케이가 꿈속에서 희미한 생명체처럼 튀어 나온다.

 

 

 이름: 이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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