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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G posted Jul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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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손목부터 팔목까지, 길게 그어진 붉은 줄을 보다 소녀는 시선을 돌렸다. 한 손에 들려있는 투박한 문구용 칼의 무게가 한없이 낯설었다. 책상 위에는 펴놓은 문제집, 빛을 내는 노트북, 심이 부러진 연필 한 자루가 있었다. 요즈음엔 연필보다 샤프를 많이 쓰지만 소녀는 줄곧 연필을 고집했다. 친구들이 연필 언제까지 쓸래, 하고 물으면 이 세상에서 연필이 사라질 때까지, 하고 장난스레 대답하던 소녀였다.
 소녀는 그런 아이였다. 언제나 실없는 소리를 하고, 밝고, 장난스러운. 친절하고 또 붙임성도 좋아 아무한테나 잘 다가가고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는. 소녀는 그런 아이였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만, 어떤 사람과도 같이 어울리지 않는. 언제부터 소녀가 이렇게 거리를 두며 지내게 되었는지 그 자신도 몰랐다. 그저 지내다보니 그렇게 되었더라, 같은 말밖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녀는 생각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저가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답답함을, 감히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을. 저가 샤프를 쓰지 않는 진짜 이유를. 아무도 몰랐고 알아서도 안 되는 이유였다. 누구든지 불쾌하게 생각할 이야기였다. 샤프 끝으로 제 팔뚝을 찌르고, 급기야 빨갛게 부어 우둘투둘하게 올라오는 게 보기 싫어서 샤프를 멀리 하게 됐다는, 그런 이야기를 누가 듣고 웃어 넘길 것인가. 대신 이젠 연필 깎는 칼로 변했고, 샤프보다 위험했지만 결코 위험하게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는 소녀의 변명은 아무에게도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발간 줄을 무감정하게 눈으로 훑던 소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걷었던 후드집업의 소매를 내렸다. 본디 추위를 잘 타 에어컨 바람을 막으려는 용도였으나 이러한 일을 가릴 때 퍽 유용했다. 그래도 피는 안 났으니 다행인가. 혹시라도 누가 본다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소녀는 털어냈다. 시험이 코앞인데 볼 사람이 있긴. 다들 자기 공부 하느라 바쁠텐데. 소녀는 다시 연필을 들었다. 사각사각하는, 칼이 나뭇결을 밀어내는 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아. 소녀는 소리없이 입술을 오므렸다. 이제 막 빠끔 모습을 드러낸 연필심이 그대로 부러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번으로 벌써 세번째다. 진정하자, 다시 깎으면 돼.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애써 올라오려는 감정을 눌러 삼키고는 다시 칼을 들었다. 문득 이걸로 목을 그어버리고 싶어졌다.
 소녀는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공부하거나,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지금 그런 짓을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성 싶었다. 아냐, 소녀는 생각을 고쳤다. 아무리 그래도 목은 너무 눈에 띄잖아. 집에 가서 둘러댈 변명거리도 없고. 결국 소녀는 내렸던 소매를 다시 걷어올렸다.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이 선명했다. 소녀는 다시 한 번 그 자리에다 칼을 가져가 한 번에 그어내렸다. 이정도로 피가 나오진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점차 옅어져가던 빨간줄이 다시 한 번 선명해졌다. 태연하게 소매를 내린 소녀는 칼과 심이 부러진 연필을 필통에 집어넣었다. 서너자루는 넣어다니기 때문에 굳이 부러진 연필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칼을 꺼내든 건, 소녀는 애써 생각에 제동을 걸었다. 시험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저가 정말로 이런 짓을 할 정도로 힘든지 아닌지, 저는 과연 이런 짓을 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괴감에 허덕였고 무엇이든 하고 있으면 금방 관두고 싶어졌다. 소녀는 이런 제 증상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우울. 그러나 그조차도 때때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것이었다.
 자기는 과연 우울한 것이 맞는가. 소녀의 환경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고,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었다. 부모의 이혼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지만 그것은 오래 전부터 내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은 소녀에게 공부에 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고, 실상 그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학원도 다니지 않는데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원만했으며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고, 오히려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고 말하는 편이 옳았다. 그 누구도 그런 소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소녀가 공부를 놓아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소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습이란 자습은 죄다 신청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가는 성실한 학생. 소녀는 자신의 이미지가 그러함을 알았고 어느 정도는 그들의 착각이라는 것도 알았다. 자습을 있는대로 신청한 것은 그러지 않으면 저가 공부를 하는 ‘척’도 하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빠지지 않은 건 단순히, 빠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은 하고 있다, 고, 소녀는 생각했다.
 어느 날, 오전 시간 내도록 잠들었다가 점심시간 중간에 깨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전 날 특별히 늦게 잔 것도, 악몽을 꾼 것도, 피곤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눈을 감았다 뜬 것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감았다는 의식조차 없었는데, 서너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날 소녀는 치밀어오르는 짜증과 자괴를 참지 못 하고 필통을 뒤적여 칼을 꺼냈다.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소녀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팔에 빨간 줄이 새겨진 날, 소녀는 남몰래 울었다. 소리 죽인 울음이었고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그 뒤로 소녀를 줄곧 괴롭힌 것은 ‘과연 내가 이럴 자격이 있는가’ 였다. 내가 나 자신을 상처입힐만큼 열심히 하는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인가? 아니면 우울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 그 무엇도 소녀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소녀가 생각하기에, 스스로는 전혀 그럴 자격이 없었다. 자기는 자신을 상처입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선 안 되었다. 누구든지 좋으니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싶다가도 저가 누군가의 구원을 바랄만한 인간인가를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긋고 긋고 그어서, 결국엔 새빨개진 팔뚝을 보고 있노라면 넌 이럴 자격도 없잖아, 하는 비난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일상의 순간순간에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난 정말로 스스로를 상처 입힐 만큼 우울한 게 맞을까 하고 자문하게 됐고, 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부정이었다. 때때로 목을 조르고 싶어지다가도 어떤 때는 허벅지를 찌르고 싶었고, 때때로 지독히도 울고 싶어지다가도 어떤 때는 마음껏 화를 내고 싶었다. 소녀의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했고 그런 변화를 알아차린 건 아무도 없었다.
 소녀는 저의 모든 감정에 대해 과연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낄만한 사람인가를 고민했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많잖아. 나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도 있어. 실제로 소녀는 자기보다 더욱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욱 열심히 하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달리며, 그러고서도 자신의 아픔을 돌보지 않는 사람을 알았다. 모두의 삶이 자기와 똑같음을 알았다. 이 정도는 누구나 겪고 있는 것이라며, 이 정도는 누구나 안고 있는 것이라며 자신을 달랬다. 그들보다 더 열심히, 아니, 그들만큼도 안 하는 넌 그러한 감정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자신을 비난했다.
 식사를 할 자격조차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소녀는 굶는 날이 많아졌다. 아니, 실상은 굶지 않았다. 학교의 식사 시간엔 잠을 자고, 집에 돌아오면 끊임없이 뭔가를 먹고, 먹으면서도 과연 이렇게 먹을 자격이 있냐는 질문을 하고, 따라오는 대답은 당연하게도, 질리게도, 부정형이었다. 몇 번인가 먹을 걸 토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급하게 음식물을 삼키고 나서, 바로 화장실로 뛰어들어갔지만 헛구역질만 몇 번 나올 뿐 음식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한 결과에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그래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익숙한 체념이 따라 붙었고 소녀는 다시 칼을 들었다.
 자괴가 들어 칼을 꺼냈고 칼을 꺼내 자괴가 들었다. 지독한 모순이었다. 영영 이 고리가 깨질 일은 없을 것이다, 소녀는 막연하게 그리 생각했다. 소녀가 생각하는 자신은 스스로 이 행위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만할 수도 없는 아이였다. 소녀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독한 자괴에 시달리면서도 반복되는 모순을 끊어낼 생각을 못 하는, 하지 않는, 하고 싶지 않아 하는, 현실에 안주하고야마는 안일한 사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기어코 우울의 구실을 찾내버리고야 마는 사람. 소녀는 저가 영원히 변할 리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실, 소녀에게 기댈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소녀는 그 또래에 비해 상담에 관련된 이들을 많이 아는 편이었고, 그 중 몇몇과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소녀의 고민을 그들에게 털어놓을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도 분명 한 사람이고 힘들고, 우울하고, 슬플 때가 있을 터인데 거기에 자신의 힘듦을 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뚜렷한 원인이 있는 것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지도 않은데 그들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건 그들을 기만하는 짓이고 저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을 우롱하는 행위다, 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자기에게 상처를 낼 자격조차 없으니 그들에게 제 우울을 털어놓을 자격은 더더욱 없다. 모두가 이런 우울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자기도 이런 우울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힘들다고 무작정 주저앉아 버리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거기에 도달했을 때 소녀는 잠깐 숨을 멈췄다.
 굳이 뭔가 되어야 해? 한순간의 반항이라 불러도 좋을 법한 질문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에 따라 속에서 질문이 우수수 쏟아졌다. 나 하나쯤이야 아무것도 안 되도 어차피 세상은 잘만 돌아갈텐데.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데, 굳이 ‘나’까지 주인공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오래전부터 가져온 의문이었고 몇 년 간 묻어둔 채 꺼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소녀는 조연이고 싶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제 인생에서조차 조연이 되고 싶었다. ‘평범함’ 이라고 칭해지는 걸 걸치고, ‘일반적’ 이라고 불리는 노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고. 그러다 보면 조연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한 조연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주연’이 되지는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저가 그런 ‘조연’이 되고 싶어하면 할수록, 주변은 더 ‘주연’을 목표로 하라고 다그쳤다. 부추겼다. 모두가 주연인 게 세상이라고, ‘나’의 인생은 ‘나’가 주연이라고, 그러니 이왕이면 세상의 주인공이 되라고. 소녀는 저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아니, 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차라리 도태되는 게 낫다고 소녀는 진심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가 살아있어도 되는 걸까, 소녀는 매일 그런 의문에 시달렸다. 자기자신에게 상처를 낼 자격조차 없는 인간, 경쟁할 바에야 차라리 도태되고 싶어하는 인간, 모두가 주연을 원할 때 홀로 조연을 원하는 인간, 아무에게도 그 무엇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 그런 인간은 살아있어봤자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민폐일 뿐이다. 그리고 소녀가 생각하는 자신은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서 소녀는 매일매일 죽는 상상을 했다. 난간에서 뛰어내리고 끈으로 목을 조르고 약을 왕창 털어넣고 이로 혀를 깨물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 앞에 뛰어들고 누군가가 저를 죽이는, 죽여주는 상상을 했다. 그런 상상에서는 적어도 자격을 논할 필요는 없었다. 생각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한. 그리고 소녀는 저가 실행에 옮기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 이유를 대라면 천 가지도 더 댈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슬퍼해서, 생명은 소중하니까 따위의 상투적인 말부터 제 개인적인 속내까지. 그러나 그 모든 이유는 변명이었다.
 그것의 기저에 깔려있는 건 두려움이었다. 매일 죽고 싶다 생각하면서 매일 살고 있는 건 그 때문이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에 소녀는 공감할 수 없었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면 자신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소녀를 생에 매어놓는 건 삶에의 열망이 아니라 죽음의 두려움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장난삼아 가볍게 던지는, 죽고 싶다 라던가 죽어 따위의 말을 듣고 있으면 속에서 울컥 반박이 올라왔다. 죽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하는, 저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를 그 아이들을 향해 다그치는 말들이었다. 그것을 애써 웃음으로 삼키고 저도 장난으로 대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 정말로 가끔 때때로 소녀에게 힘들다고 고백해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반에서 소녀의 위치는 그것이었다. 입이 무겁고, 상냥하고, 고민을 들어도 비웃지 않고, 같이 고민하고 공감하는 사람. 위로를 해주는 사람. 모두와 친하게 지내지만 같이 다니는 무리는 없는, 그런 환경이 소녀를 상담자의 위치에 앉혔고 소녀는 거기서 내려올 엄두를 못 냈다. 소녀는 아이들의 고민을 들었고 위로했다. 괜찮아, 다 잘 될거야, 그런 생각 하지 마, 내가 곁에 있어 따위의 말을 내뱉으면서. 그런 말을 하면서도 우습게도 모순적인 기분에 휩싸였다.
 당장 나부터가 죽고 싶어하는데. 당장 나부터가 괜찮지 않은데. 다 잘 될 거라는 말 따위는 믿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데. 그러나 그런 아이들 대부분은 그런 말을 들으면 고맙다며 웃었다.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도 아이들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말했다. 고마워, 도움이 됐어. 네 덕분이야. 그런 말을 들으면 소녀는 아냐, 도움이 됐다니 기뻐, 같은 말들로 응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소녀는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제 덕분이라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과연 자기 덕분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녀가 상담자가 된 것은 소녀 자신이어서가 아니라, 소녀의 위치 때문이었다. 소녀의 학교에는 소녀와 비슷한 아이들이 몇 명 있었고 그 아이들 중 한 명이라면 누구든 상관 없었을 것이다. 소녀가 아니어도, 결국 소녀의 자리는 누군가가 대신할 것이었다.
 이 모든 게 소녀만의 추측이라 해도 아무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애초 소녀가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도 없었다. 소녀는 아무도 제 고민을 모르도록 행동했다. 그 누구에게도 제 속내를 알려주지 않았고 그 자신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습게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모순적인 기분에 휩싸여서. 소녀는 때때로 숨이 막혔다. 끝없이 계속되는 모순에, 우울에, 자기 불신에. 결국엔 원점이었다.
 돌고 돌아 시작점으로 와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는가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결국엔 도망치고 있을 뿐이잖아, 그런데 뭐가 힘들다는 건데. 왜 우울하단 거야. 그래서 소녀는 이 모든 생각을 그만뒀다. 깊이 파고들어가면 힘든 건 자신이었고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마주하는 것도 자신이었으며 거기에 허덕이게 되는 것도 자신이었다.
 결국 모든 건 제 잘못이었다. 우울한 생각을 한 제 잘못, 힘들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어코 구실을 찾아내고야 마는 제 잘못, 그 구실을 붙잡고 계속 되새기는 제 잘못, 힘듦을 털어놓는 아이들에게 고작 말 몇 마디밖에 못 하는, 그러한 제 잘못.
 소녀가 이런 생각을 전환하려는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었다. 제 우울은 모두가 겪고 있는 것이니 그것을 극복한 사람도 당연히 존재할 터였고 요즘은 그들이 쓴 책이며 글들이 인기를 얻는 추세였다. 소녀는 그러한 것들을 찾았다. 제 우울울 형상화한 듯한 소설과 에세이를 읽었고 심리학 책을 찾았고 위로하는 가사의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건 효과를 보지 못 했다.
 그러한 것들을 접한 다른 사람들의 ‘괜찮아졌다.’, ‘위로가 되었다.’ 따위의 감상을 보고 듣고, 그런 사람들을 따라 몇 번인가는 괜찮아졌다고,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한 글을 쓰는 건 쉬웠다. 소녀는 자신의 원래 감정을 숨기고 거짓으로 포장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그런 글들을 쓰고 있노라면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때 뿐, 결국엔 원점이었다.
 소녀는 점점 자신에게 무언가 기대를 걸고 결국에는 실망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지겨웠고 반복하고 싶지 않아졌다. 결국 소녀는 자신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었고 실망이 없으니 남는 건 체념 뿐이었다. 소녀는 어떤 결과든 내가 그렇지 뭐, 하며 받아들였고 혹 그것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실패하면 결국 또 자신에게 실망할 것임을 알았고 그게 두려웠다.
 소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체념은 할지언정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자기한테 퍼붓는 비난을 멈추고 싶었다.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은 알았다. 소녀가 해야할 건 체념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괜찮아질거라는 위로였고 조금만 더 해 보자는 격려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그 모든 것들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어렵고, 실패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결과를 두려워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저가 어쩔 수 없는 겁쟁이란 것도 알았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갈 위인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체념은 쉬운 것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해오던 것이었고 실패할 일이 없는 행동이었다.
 소녀에게 있어 도전은 두려운 것이 되어갔고 변화는 피하고 싶은 것으로 변했다. 힘들다면 도망쳐도 괜찮아, 잠깐 쉬어가도 돼, 하는 말들을 도피처로 삼았다. 처음엔 그게 맞는 말 같았다. 그래, 나는 괜찮아, 마냥 달릴 수만 없잖아, 하며 억지로 자괴를 밀어냈다.
 그러나 그런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도피처로 삼았던 말들은 도피처가 되어주지 못 했다. 오히려 이젠 달려야 한다고 재촉하는 듯 했다. 네가 힘든 일이 뭐가 있어서 도망을 쳐. 잠깐이라기엔 기간이 너무 길지 않아? 소녀는 이 모든 것이 저의 착각임을 알았다.
 자신이 도피처로 삼았던 것들은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애초 그걸 알았기에 도피처로 삼은 것이었다. 그런데 한순간이나마 도피를 도와주던 모든 것들이 소녀를 비난했다. 아니, 사실은 소녀가 소녀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정도 됐으면 충분하지 않냐고, 이미 다른 이들은 한참 앞서 있다고, 그들을 따라 잡아야 한다고 다그쳤다. 뛰는 게 힘들면 걷기라도 하라고.
 소녀는 속에서 올라오는 무수한 반박을 억눌렀다. 반박해봐야 결국엔 비난으로 돌아올 것임을, 소녀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무리 힘들어도 쉬지 않는데, 포기하지 않는데, 도피하지도 않고, 꿋꿋이 달려가고 있는데. 그런데 난, 언제까지고 도망치기만 하고. 무엇이든 되고 싶지 않지만 살아있는 이상 무엇이든 되어야 했다. 하다못해 집 밖에는 전혀 나가지 않고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부류라도 되어야 했다. 하지만 소녀는 저가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억지로라도 밖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야 그나마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아무도 제게 미련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혹은 혼자 있다가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소녀는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갈 이유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오히려 소녀가 죽음을 원한다는 사실의 반증이었다.
 그러한 이유마저 만들지 않고 살아간다면 소녀는 저가 쉽게 자신을 놓아버릴 것을 알았다. 이미 반쯤은 놓고 있으니 나머지를 놓기란 쉬운 일이었다. 설령 그것이 소녀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소녀는 무엇이든 쉽게 놓을 수 있었다. 자신을 버티게 하는 이유조차도, 하루 아침에 쓸모없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행동했다. 소녀는 그 어떤 것도 미련없이 끊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과 원활하게 살아가면서 깊은 관계를 맺지 않게끔 거리를 뒀다.
 그렇게 하기란 쉬웠다. 기억도 나지 않을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으니 지금은 숨쉬듯 자연스럽게 나왔다. 몇몇과 깊게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를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건 실패로 돌아갔고 소녀는 깊은 관계를 맺으려는 행동을 멈췄다. 그렇게 소녀는 모두와 유리됐다. 소녀를 유리시킨 건 다름아닌 소녀 자신이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원만한데다 원치는 않았지만 상담자의 역할까지 떠앉게 된 소녀는, 그 이상 파고들 생각이 없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살 수 있는 동안에는 이렇게 살고 싶었다.
 소녀는 매우 현실적인 아이였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소녀가 생각하는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소녀의 고민은 누구나 하는, 매우 평범한 것이었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으며, 성적도 그럭저럭 나오는, 어디에나 있는 학생이었다. 그 속은 곪아가고 있다는 걸 아무도 알아채지 못 했다. 심지어 소녀 자신조차도 제 속내를 덮기에 급급했다.
 저를 다그치는 말에 대한 반박을 누르고, 제 감정을 숨기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뒀다. 어렴풋이나마 제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긴 했으나 오히려 네가 그럴 일이 뭐가 있냐고 꾸짖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왜 그러냐면서. 열심히 하지도 않고,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왜 힘들다고, 우울하다고, 울고 싶다고 그러는지. 소녀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면, 받아들이게 된다면 정말로 자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사실 소녀에게 죽음이 꺼려지는 이유는 두려움말고도 더 있었다. 저가 죽는다면 벌어질 모든 상황이 두려웠다. 장례식장에서 우는 동생들, 침울한 표정의 아이들, 그리고, 그리고 필연적으로 만나 싸우게 될 부모. 소녀는 그들이 지긋지긋했고 제 죽음으로 인해 싸울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때때로 그들이 건네는, 더 잘 돌봐주지 못 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남처럼 살고 싶었다. 반 아이들처럼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단절한 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럴 수 없는 관계였다. 소녀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쭉 함꼐였던 이들이었고 그들은 소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소녀는, 자신이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유년 시절부터 드리워진 그것은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언제까지고 소녀의 행동을 구속할 터였다. 그것이 지긋지긋했다. 소녀는 제 인생과 그들의 인생을 분리하고 싶었다. 그들과 자신의 인생을 더 이상 엮고 싶지 않았다. 물론 소녀는 이러한 생각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부모도 없고, 그들은 자신이 첫 아이였으니 실수도 실패도 많았을 것이다. 그 고생을 해가면서도 저를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마땅히 감사할 일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을 놓지 않더라도, 자신은 그들을 놓고 싶었다. 이런 자식이라 미안해요, 하고 소녀는 매일 속으로 중얼거렸다. 실은, 가족이 아니어도 소녀가 놓고 싶은 건 많았다. 소녀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놓고 싶었고 자신과 관련되었던 것도 지우고 싶었다. 소녀는 매일 그런 충동에 휩쓸렸다. 모든 걸 놓아버린 채 자기조차도 포기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단 걸 알았지만 그래도 소녀는 그런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때마다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뭘 다 놓고 싶어하느냐는 비난이 소녀를 찔렀다. 소녀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 쓰고 있는 영어단어조차 하는 ‘척’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저 숨만 쉬고, 살아있기에 살아갈 뿐인 나날이었고 소녀는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갔다. 몇 번째일지 모를 반복이었다. 소녀가 스스로에게 내리꽂는 비난의 기저는 그것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자괴감. 그렇다고 뭘 시작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는다는 게 소녀를 더욱 괴롭게 했다. 소녀라고 그것이 달가울 리 없었다.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면, 아니, 적어도 ‘반드시 실패한다.’ 라는 명제에 관한 불확실성만 있어도 소녀는 무언갈 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이다.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저가 실패할 것이라 단정지었다. 이제까지 실패를 거듭해왔는데, 이번에 한다고 성공하진 않을 것이었다. 애초에 저에게 ‘성공’이라 부를만한 일이 존재했는가.
 소녀의 생은 늘 실패였고 자기에 대한 실망이었으며 그에 따른 자괴였다. 소녀는 거기서 실패와 실망의 과정을 버렸고 대신 체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조금은 편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손목을 긋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녀는 편해졌다.
 그것은 소녀에게 있어 일종의 ‘벌’이었다. 자기가 자기한테 내리는. 아무도 소녀의 속내를 알지 못 했고 아무도 소녀에게 달리라 하지 않았고 아무도 소녀에게 노력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소녀가, 우울과 자괴와 짜증에 빠져 사는 소녀가 누군가한테 화풀이를 하거나 대신 벌을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소녀는 자기가 심판관이 되었다. 죄인이 자신이었으니 딱히 죄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소녀는 매일 밤 자기를 사형에 처하는 상상을 하며 잠들었고 칼로 손목을 긋고 손으로 목을 졸랐다. 밥을 먹지 않는 것도 일종의 벌이었다, 소녀에게는. 그러고서도 충분하지 않다 여겼다. 소녀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는 ‘벌’이 아니었다. ‘벌’이라 부르는 것조차 부끄러운 행위였다.
 애초에 소녀에게 자신을 심판할 권리가 있던가. 끊임없이 우울한 것인지, 자기가 자기를 해할 자격이 있는지, 그저 엄살은 아닌지 매 순간 매 시간마다 고민하는 소녀였다. 실패가 두렵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소녀였다. 차라리 도태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소녀였다. 모두가 주연이 되려고 할 때 혼자 조연이 되고 싶어하는 소녀였다. 이렇게 한심하고 무작정 도피하기만 하는 사람이, 누군가한테 벌을 내릴 권리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이라 할지라도.
  소녀는 가끔, 아니 종종 자신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 힘으로 죽을 순 없고 살아가는 것도 자신이 없으니, 그리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조차 힘겨우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먼지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싶다고. 소녀는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지워지길 바랐다. 어느 날 일어나니,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따위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갈 바랐다. 그러나 소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그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터였다.
 소녀는 후드집업의 소매를 살짝 걷어 손목 시계를 바라보았다. 검정색의 초침이 째깍이며 한없이 돌아갔다. 9시 정각.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기까지 30분 남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소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자거나, 벌써부터 문제집이며 필통 따위를 가방에 넣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부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디선가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떠느냐! 바깥에서 감독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뚝 멎었다. 소녀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안 그래도 거슬리던 차였다. 거슬렸다고 해서, 저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늘 이런 식이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더라도, 소녀는 그것을 해결하려 나서지 않았다. 누군가 해결해주거나, 그도 아니면 참고 넘어갔다. 저 하나만 참으면 될 일이었다. 굳이 나서서, 아이들의 반감을 살 필요는 없었다. 반감을 사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제 편의를 위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모두가 즐기는데, 혹은 모두가 참고 있는데 저가 나서면 분위기만 망칠 뿐이다. 게다가 소녀에겐, 그것조차도 일종의 ‘도전‘ 이었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실상 소녀에게 ‘도전’의 의미를 갖지 않는 건 드물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조차 소녀에겐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야 찾아오는 것은, 오늘 하루도 살아냈다는 안도가 아니라 내일도 살아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소녀는 삶이 두려웠고 끝없이 이어지는 하루가 무서웠다. 달라질 게 없는,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소녀에겐 매일매일 버텨야, 혹은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곧 끝나 버릴테고, 그러면 소녀는 내일도 견뎌야 할 것이었다. 소녀가 완전히 자신을 놓기 전까지는 계속될 일이었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소녀는 흘러가듯 생각을 이어갔다. 더 이상은 버티는 것도, 견디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게 자신이 없었다. 삶을 살아낼 수도 죽을 수도 견딜 수도 없었다. 그저 ‘기능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하지만 그런다고 소녀가 당장 어찌할 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엔 이런 식으로나마 삶을 이어가야 할 것이었다. 하루하루 죽을 것 같은 불안 속에서도 시간은 가고, 그 시간들이 모여 일주일, 한 달, 그리고 년 단위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소녀는, 저가 과연 올해의 끝을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저가 먼저 자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소녀는 참았던 숨을 터트리듯 내쉬면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중얼거렸다.
 일단은 내일부터 견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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