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차 창작 콘테스트 - 소설 부문 공모/어느 사형수의 무대

by 루하 posted Aug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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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의 무대


01

 

하아꿀꺽.”

초로의 노인은 매우 경직된 모습으로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이마 주변으로 땀이 조금씩 흐르고 그의 표정이 극도로 긴장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던 중년의 남성은 그런 노인을 토닥이며 말했다.

꼭 멋진 무대를 보여주세요! 어쩌면 압니까? 이게 당신 인생의 전화점이 될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선글라스를 쓰고 정장차림의 남성은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등을 살짝 밀며 조금 더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 이제 준비 됐으면 이제 시작할까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경직된 상태로 있던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윽고 체념한 표정으로 무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밖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한손에는 든 뭔가가 적혀진 종이를 읽어 내렸다. 그리고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있는 중년 남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부탁이 있소. 마지막으로 딸의 모습을 볼 수 있겠소?”

중년 남성은 잠시 노인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년 남성의 전화기에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중년 남성은 자연스레 전화기를 영상 통화로 받으며 노인에게 건넸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또 다른 남성의 목소리였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시간은 1분 정도 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도 정해진 방송 시간이 있으니까 말이죠.”

이윽고 영상 통화로 비춰진 모습은 호흡기를 차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의식이 아예 없어 보이는 여성은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였다. 노인은 눈가에 눈물을 훔치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멈췄다. 어차피 말을 하려고 해도 자신의 딸은 들을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뒤에 있던 중년 남성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 됐소. 갑시다.”

노인과 중년 남성은 무대를 향해 걸었다. 노인의 눈빛에는 앞으로는 다신 딸을 보지 못하게 될 슬픔으로 가득했고 또한 생의 마지막이 될 무대였기에 모든 걸 체념하는 표정이었다. 뒤에서 걷던 중년의 남성은 그런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리라~.”

조금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노인의 노래가 끝났다. 무대 위에는 ON AIR라고 적힌 붉은 형광판이 있었고 이는 노인의 표정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무거운 침묵 속에서 종종 들려오는 야유 소리에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서있을 뿐이다. 심사위원으로 보이는 세 명의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자신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자리에 앉은 단발머리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강형태씨! 노래 잘 들었습니다. 특별히 이곡을 선정하신 이유는 뭡니까?”

노인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렸다. 노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평소 가장 좋아하던 노래입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자 여성 심사위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조금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노인을 향해 말했다.

성의가 전혀 없군요.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텐데 말이죠. 좋습니다. 이외에도 준비한 건 또 없습니까?”

노인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의 눈빛에는 체념만이 존재했고 이미 모든 것을 각오했기에 더 이상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

-우우우-

관중석에서는 야유 소리만이 들려왔다. 여성 심사위원은 고개를 돌리며 양측에 있는 다른 심사위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오른쪽에 있던 심사위원은 무대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자 선글라스를 낀 중년의 남성이 마이크를 잡고 관중석을 향해 말했다.

! 강형태씨의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이제 세 분의 심사위원분들과 평가단 여러분이 진짜 기다리시던 <진실의 눈>!!!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관중석에 위치한 평가단에서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는지 커다란 환호성이 들려왔다. 노인의 표정은 더욱 침울해졌고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평가단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3D 안경이 지급 되셨을 겁니다. 그걸 착용해주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중년 남성은 마이크를 들고서 말했다. 그리고 스크린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스크린이 완전히 내려오자 빨간 글씨로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미리 녹음된 음성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영상은 다소 잔인할 수도 있습니다. 어지럽거나 메스꺼울 때엔 시청을 중단할 것을 권장합니다. 이점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02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이었다. 방 안에는 전신 거울이 있었고 나는 전화기 불빛으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리고 잠시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 으윽.”

여성은 팔과 다리는 밧줄로 묶여 있었고 테이프로 입을 열 수 없는 상태였다. 팔과 다리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깼나? 하아

나는 왼손에 든 칼에 묻은 피를 수건으로 닦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여자를 향해 전화기 불빛을 비추면서 조용히 응시했다. 아무런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얼굴에 걸맞게 매우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인서라고 했나? 주민등록증을 보니 올해 23살이더군. 우리 손녀딸과 같은 나이란 말이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나는 칼을 수건으로 닦은 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여자를 향해 고개를 휙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돈을 잘 쓰마! 네년 덕분에 돈은 쉽게 인출할 수 있었지! 그런데 챙겨온다는 걸 깜빡한 게 있단다. 그게 무엇인 줄 아니?”

여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괴성을 지를 뿐이었다. 나는 그런 여자의 모습에 더욱 쾌감이 느껴졌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전화기 불빛으로 고통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을 비추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손가락은 오는 길에 쓰레기봉투에 버렸어. 물론 휴지로 돌돌 말아서 쓰레기봉투 깊숙한 곳에 넣어서 말아야. 그리고 오는 길에 버렸단다. 이런 건 철저히 해야 하는 거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나는 칼을 든 손으로 여자의 얼굴에 들이밀면서 웃었다. 그리고 신발장에 있던 공구함을 꺼내고 그 안에 든 망치를 가져왔다. 돈은 이미 챙길 만큼 챙겼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쾌락을 즐기는 것뿐이었다. 테이프를 더 가져와서 여자의 입을 더욱 확실하게 막았다. 소리가 바깥으로 흘러나가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칼을 바닥에 버리고 망치를 들었다.

어차피 살아도 사람은 불행할 테니까. 죽는 게 낫겠지? 그런데 난 널 한방에 보내줄 생각은 없어. 나도 즐길 건 즐겨야 하잖아? 내 마음 이해하지?”

. 우읍!”

여자는 온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팔과 다리는 이미 밧줄로 포박이 되어 있었기에 움직임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리고 망치를 있는 힘껏 그녀의 어깨를 향해 휘둘렀다.

! ! ! !

들여오는 둔탁한 소리. 그것이 나를 소름 돋을 만큼 흥분 시켰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망치를 휘두르고 보니 어느새 여자가 지르는 고통에 몸 부리 치는 것이 멈추었고 여자는 거의 죽어가는 것처럼 숨이 옅어져 있었다.

이젠 진짜 마지막이다. 즐거움을 충분히 느꼈으니 이것으로 됐어. 잘 가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힘껏 그녀의 머리를 향해 망치로 내려쳤다. 매우 둔탁한 소리가 수차례 들려왔다. 이윽고 여자는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며 결국 숨을 거두었다.

크하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극도의 쾌감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쾌감을 즐기는 모습은 그 누가 보더라도 섬뜩할 것이다.

관중석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그러나 고요함은 잠시뿐이었고 엄청난 야유와 욕설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묵묵히 무대에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관중석을 향했다.

! 여기까지가 강형태씨의 기억 영상이었습니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매우 담담했다. 마치 지극히 평범한 대화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그리고 그는 야유로 가득한 군중을 잠시 둘러보며 말을 멈췄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엄청난 야유와 욕설. 그리고 곳곳에서 던져지는 음료수 따위의 쓰레기들뿐이었다. 그는 이윽고 마이크를 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가 뉴스를 통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강형태씨는 살인죄로 교도소에서 수감 중입니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논란이 있었던 사건이었죠. 요즘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할 때 지문 인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강형태씨는 젊은 여성을 납치해서 강제로 감금하고 손가락을 잘라 ATM에서 돈을 인출했습니다. 또한 망치로 그녀를 사정 없이 구타해서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보신 영상은 강형태씨의 기억 영상입니다.”

계속 해서 들려오는 건 관중의 야유 소리뿐이었다. 사회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심사위원석을 향했다. 그리고 사회자는 심사위원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심사위원의 세 분과 평가단 여러분의 판단이 기다려집니다. 본 영상을 통해 지금보다 감형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지금보다 더 큰 벌을 받을 수도 있겠죠. 물론 전자의 경우는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만! 아무튼 심사위원님들은 위 영상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좌측에 앉은 하얀 옷을 입은 남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불쾌감으로 가득했고 차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약간의 시간의 흐른 후 그는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군요. 아니, 돈을 전부 주겠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겁니까? 납치를 하고 감금을 한 상태에서 손가락을 잘라 지문 인식으로 돈을 인출하고 그렇게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다니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중간 좌석에 앉은 여성 심사위원 역시 경멸과 혐오가 담긴 눈빛으로 강형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 해보시죠.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신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 안 들킨 것뿐이지저는 이 사건 이외에도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여성의 우측에 앉은 남성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경찰의 제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엄격하고 근엄한 모습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증오심이 서려 있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강형태씨의 손에 죽은 젊은 여성분처럼 기억 영상을 통해 다른 사건이 더 있는지 더 엄격하고 철저하게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피해자의 사체가 심각할 정도로 훼손 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영상자료를 자세히 분석해보면전형적인 사이코패스에 아크로토모필리아로 보여 집니다.”

강형태라는 이름의 노인은 그저 침묵만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체념하는 표정으로 약간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야유와 심사위원 세 명의 말에도 그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로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선글라스의 중년 남성은 또 다시 마이크를 든 채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리고 관중을 향해 말했다.

!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강형태씨에 대한 우리 모두의 판단은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요?”

그리고 그는 관중석 맨 뒤쪽에 위치한 카메라맨과 담당 프로듀서를 향해 손짓을 했다. 기억 영상이 나오던 화면에는 붉은 글씨의 ON AIR가 꺼지고 푸른 글씨로 바뀌어 있었다. 무대의 오른 쪽 뒤에 위치한 한손에는 천칭과 다른 한손에 들려있는 검이 인상적인 정의의 여신 석상은 눈에 안대로 감겨져 있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회자는 무대 바로 앞에 있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광고 이후 바로 시작됩니다! 채널 고정해주세요!”

03

 

치직- 치직-

잠시 후 텔레비전에서 광고가 흘러 나왔다. 분홍색 배경에 사람의 형체로 된 캐릭터가 나왔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조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늘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억 영상 기계의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광고에 나온 캐릭터는 기계를 작동 시키면서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눈으로 봐온 것들을 기록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것을 영상화 시킬 수 있다면요? 수많은 고민과 거듭된 연구의 결과 우리는 마침내 뇌의 기억을 영상화 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광고는 계속 되었다. 각종 첨단 기기의 모습이 나오고 이는 과학 기술의 진화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광고 속 캐릭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뇌 기억 영상 복원 기술은 우리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치매나 기억 상실증 등 수많은 질병을 완화하거나 완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기술로 인해서 수많은 범죄자들을 검거하거나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최근 10년간의 과학 기술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인류에 도움이 되는 기술입니다.”

그것으로 짧은 광고가 끝이 났다. 그리고 이윽고 프로그램 2부의 진행을 알리는 멘트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나왔다.

본 프로그램은 범죄율 0%를 목표로 하는 안전하고 행복한 국가 건설 프로젝트 중 하나로 경찰과 법무부의 협조 속에서 신중하게 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기억 복원 기술을 통하여 시청자가 사건 당일의 피해자가 되어 그때의 공포를 함께 느끼고 함께 분노하며 피의자를 직접 심판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이윽고 정의의 여신 동상이 나왔다. 왼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었고 오른손의 검은 유난히도 날카로워 보였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은 엄숙한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글라스의 남성 사회자는 마이크를 조금은 높게 잡은 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 여러분. 기대하시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제 결과를 보여주세요!”

촤르르르-

붉은 글씨로 ON AIR라고 적혀 있던 부분은 룰렛이 돌아가는 빠르게 다른 글자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관중석에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곳곳에서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여왔다. 사회자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더욱 목소리를 높혔다.

과연! 심판의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빠르게 돌아가던 글자의 룰렛은 서서히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룰렛은 완전히 멈추었고 붉은 글씨로 커다란 단 두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사 형]

사회자는 이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밝은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 사형입니다!!!”

관중석에서는 커다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이 순간에 적힌 글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함성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이는 강형태의 표정을 더욱 어둡고 쓸쓸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힘없이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사회자는 이런 강형태의 모습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관중석을 향해 계속 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99점이 나왔습니다!!! 사형 기준 점수인 80점을 훌쩍 넘어 만점에 가까운 점수입니다. 이로 인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강형태씨의 사형 선고를 확정 짓게 되었습니다!!!”

관중석에서는 마치 슈퍼스타의 공연을 본 것처럼 압도적인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슈퍼스타의 공연에서나 볼 법한 이 정도의 관중들의 흥분한 함성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와아아- 와아아-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뜨거운 반응에 사회자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두 명의 경호원이 나와 강형태의 양손을 붙잡고 무대 뒤로 향해 끌고 갔다. 이 모습을 본 사회자는 관중석을 향해 자신의 말을 계속 해서 이어나갔다.

곧바로 이번 범죄로 인해 희생당한 피해자의 유가족과 연결하여 사형 방식을 추첨하도록 하겠습니다! ! 전화 연결 되었습니까?”

 

관중석의 맨 뒤쪽에서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방에서 촬영용 카메라가 계속 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장년의 남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프로개름을 총괄하는 프로듀서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국장님. 별 탈 없이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오르고 너무나도 뜨거운 반응입니다. 이 정도면 매우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국장님이라고 불린 장년은 남성은 무표정 했던 표정에서 비릿한 미소가 흘러 나왔다.

저것 봐! 우리 프로그램 시즌1 막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게 반대가 심하더니지금의 모습을 보라고! 다들 열광하고 즐기잖아! 피해자 대신 복수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우리 프로그램이 괜히 시청률 1위가 아니야.”

그리고 국장은 방안을 돌아다니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말했다.

자네가 기억 영상 복원 기술로 국민재판 쇼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처음 제안 했을 때 내가 엄청나게 반대했던 것을 기억 하나? 나는 이게 인권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반대했던 걸세! 지금 와서 보니 그 기술로 범인 잡는 쇼가 한창 유행했을 때 자네는 그보다 더 앞을 내다 본거지.”

총괄 프로듀서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국장 역시 그런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피의자 벌주는 쇼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열광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나. 이 프로그램은 온전히 자네 덕분에 탄생한 거야. 이 프로그램이 기획될 때만 해도 인권 문제니 뭐니 해서 온갖 시위가 벌어졌지만 지금의 이 뜨거운 반응을 봐! 지금은 시위는커녕 우리 프로그램이 압도적인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어. 내가 은퇴하면 자네가 국장 자리를 맡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구만.”

별 말씀을요. 이게 다 국장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덕분이죠.”

이번 강형태씨 건은 정말 고생 많았네.”

국장은 총괄 프로듀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총괄 프로듀서 역시 계속해서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를 했다.

 

04

 

이번 회는 기술의 도움이 전혀 없이 만든 자네와 나의 첫 작품이로군. 이런 시도도 괜찮다고 생각하네.”

국장은 총괄 프로듀서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총괄 프로듀서의 눈빛에는 욕망이 서려 있었다.

그렇죠. 우리가 가짜 영상을 만든다고 해도 지금의 기술을 불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 그런 거야. 어차피 사람들 눈에는 그냥 재밌고 통쾌하면 그만인 거야. 자네는 마지막까지 강형태가 변심하지 않도록 잘 지켜보게!”

총괄 프로듀서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허공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이라고는 전혀 섞여 있지 않았고 담담할 뿐이었다.

변심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동안 쌓여 있던 빚을 청산해주고 딸의 평생 병원비를 약속했으니까요. 아마 아버지로서 변심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겁니다. 강형태에게는 충분히 목숨과 바꿀만한 거래였습니다.

그래그렇겠지. 자네 덕분에 한시름 놓게 됐어. 하마터면 부동의 시청률 1위의 프로그램이 무대에 올릴 배우를 못 구해서 결방될 뻔했으니 말이야.”

국장은 방 안을 잠시 돌아보면서 총괄 프로듀서를 향해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말했다.

그나저나 범죄율이 대폭 감소해서 죄수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걱정이로구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때 가서는 제 2의 강형태가 나타나줄 겁니다! 그리고 없으면만들면 되지요!”

총괄 프로듀서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국장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부동의 시청률 1위의 프로그램. 죄수들을 관중들이 직접 처벌하는 프로그램에는 이렇듯 어두운 이면이 숨겨져 있었다.

 

강형태는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착용한 채로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자신의 딸을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강형태의 눈가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프로그램 사회를 맡은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성이 서있었다. 그는 강형태에게 다가가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강형태씨.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 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딸 얼굴을 보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구려. 고맙소.”

강형태의 얼굴에는 슬픔으로 가득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회를 맡은 남성의 표정에도 씁쓸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잠깐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의 무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무거웠다. 그리고 침묵을 깬 건 강형태의 목소리였다.

말했다시피 딸아이의 병원비로 지금까지 많은 빚을 졌소. 정말로 이 빚을 완전히 탕감해주는 것이오?”

약속은 반드시 지켜집니다. 그건 결코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강형태는 자신의 자식들을 생각했다. 이젠 모두 인연이 끊겼지만 죽음을 앞둔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건 자식들뿐이었다. 아들은 사업 실패 후로 이제 막 취직을 해서 힘겹게 살고 있었고 작은 딸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식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과 돈을 거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강형태는 아내와 큰 딸이 단 둘이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쉽게 허락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난 그날 밤 음주 운전자가 아내의 차와 크게 교통사고가 났다.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딸아이는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술을 미친 듯이 마시며 찌들어 살았고 아내의 장례식 비용과 딸아이의 병원비로 인해 수많은 빚을 졌고 앞으로도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해야 했다. 이미 살고 있던 집도 처분했기에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강형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뒤에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이제 됐소. 갑시다.”

강형태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그의 옆에서 함께 걷는 남자의 얼굴도 굳어 있었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강형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무표정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모든 건 끝났고 강형태는 이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뉴스 속보입니다. 요즘 화제의 인기 프로그램이죠? ……에서의 주인공인 강형태씨의 사형이 어제 집행됐습니다. 강형태씨는 ……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리고 뉴스를 바라보고 있는 부부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진짜 문제다. 문제야. 저런 인간쓰레기를 봤나.”

그러게요. 여보. 어제 사형이 집행이 됐다니 참 다행이네요.”

부부는 강형태의 사형 집행 뉴스를 보면서 한참 동안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의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뉴스에서 나온 강형태 사건에 대해 말이 나왔다.

인서야. 밤에는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요즘도 그런 놈들이 종종 있으니까. 밤에 어디 갈 일 있으면 혼자 다니지 말고 친구들이랑 꼭 같이 다니고.”

, 아빠도 참. 그 프로그램 이후로 요즘은 범죄율 자체가 아예 떨어졌잖아요. 대한민국이 예전보다 훨씬 더 치안이 좋아지고 안전하다니까요.”

그래도 조심해야지. 골목길 같은 데 혼자 다니지 말고

 

강형태의 살인 사건은 어느덧 잊혀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범죄율이 급속도로 떨어졌고 여전히 대중에 의한 범죄 처벌 프로그램인 [진실의 눈]은 여전히 부동의 1위의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진실의 여신 동상은 여전히 한손에 천칭을 들고 있었고 한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안대로 눈을 가린 눈은 대한민국 범죄율 감소의 어두운 이면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이 보는 진실이라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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