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차 창작 콘테스트 소설 부문 응모/찜질방 체류기

by 루하 posted Aug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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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 체류기


01

 

지독히도 무거운 침묵만이 존재할 뿐인 어스름한 새벽녘이었다. 평일 새벽의 찜질방은 언제나 그렇듯이 한가하고 조용하기에 남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조용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내 시선 또한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 동현이. 일어났냐?”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난 동현을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은서와 은채는 여전히 잠에 들어 있었기에 평소처럼 나지막이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 형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목이 잠긴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으며 남성 사우나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사우나를 향했다. 평일이다 보니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리에 예민한 사람도 있는 법이기에 동현과 나는 조용히 남성 사우나를 향했다. 이 시간의 사우나는 개미 한 마리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했고 있는 사람이고는 당연히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우리는 각자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가서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침묵은 깬 건 동현의 목소리였다.

. 오늘도 야간 근무겠죠?”

또 그 소리냐? 요즘은 손님이 많은 시기니까 어쩔 수 없지.”

전 차라리 지금처럼 손님이 많은 게 나아요. 왜냐면 적어도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때처럼 일용직 할 때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하긴. 그러긴 하지. 일용직은 잠깐 알바로 하는 거라면 몰라도 생계가 불안정 하니까.”

동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도 한숨을 내쉬며 온탕의 가득한 김 때문에 모든 게 흐릿하게 보이는 주위를 쳐다보았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이른 새벽에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사우나. 단 둘이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시간이자 남들보다 이른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하루를 걱정하는 대화로 시작한다.

그나저나 형은 언제 집에 들어갈 거예요?”

? 글쎄. 돌아갈 생각 없는데? 찜질방 생활 끝낸다고 해도 어디 고시원이나 원룸 같은 데 구해야겠지. 이젠 여기 생활에 익숙해졌기도 했고 당분간은 있을 거야.”

저는 찜질방 생활 하는 게 지긋지긋하네요. 은서랑 은채한테도 못할 짓인 거 같고. 사정이 이러니 어쩔 수가 없긴 한데 이 생활 오래 하고 싶진 않아요. 돈 모이는 데로 저도 원룸 같은 데라도 구해야죠.”

그래야겠지. 딸내미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이 생활 정산해야지. 사는 게 참 힘들기는 힘드네.”

나는 온탕의 뜨거운 김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동현이 부부와 처음 만난 그날의 기억을 떠올랐다.

 

02

 

겨울이 어느덧 끝자락에 가까워진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알바를 마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길이었고 얼어붙어 있던 땅 위로 쌓인 하얀 눈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바람은 싸늘했기에 어깨를 움츠리고 나는 핸드폰으로 여자 친구와 전화를 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지은아. 오늘은 컨디션 괜찮아? 어디 더 아픈 데는 없고?”

? . 대충은.”

대답이 뭐 그래. 진짜로 괜찮은 거 맞아?”

아니, 머리도 좀 아프고몸살 기운이 있어.”

아이구야. 그러니까 무리해서 산책하지 말라니까. 당분간 산책 자제하고 병실에서 있어. 날씨도 이렇게 추운데 계속 바깥에 있으니까 그렇지.”

답답해서 그래. 오빠는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 에취!”

거봐. 몸도 약한 애가 이런 날은 더 조심해야지. 이번 주말에 병원에 들릴 테니까 약 꼭 챙겨먹고. 병원비는 오늘 입금했으니까 컨디션 관리 잘해.”

오빠매번 미안해

우리 사이에 미안할 게 어디 있어?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빨리 건강해지기나 해. 오빠 지금 집에 들어가야 하니까 이따가 문자할 게.”

오빠 사랑해.”

나는 지은이와의 전화 통화를 끊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벌써 집을 나와 찜질방 생활을 한지도 언 3개월 차. 지은이에게는 집으로 간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집에서 나와 생활 하고 있다. 집안에서는 병약한 지은이와의 만남을 반대했고 나는 지은이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모든 걸 포기하더라도 나는 지은이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만큼 사랑하니까. 그래서 집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고 둘러대고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대학교와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전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곧장 출근해서 주방에서 늦은 밤까지 일을 했다. 기숙사는 신입생을 위주로 뽑는데다가 규정상 밤 10시까지 통금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퇴근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난 7년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고시원에서 주로 생활했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들어가고 싶지만 보증금과 월세가 만만치 않았기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라이프 찜질방]

내가 현재 먹고 사는 찜질방의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관리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신발장에 신발을 넣었다.

총각. 월권 일주일 남았어. 알고 있지?”

, . 알고 있어요.”

요즘 우리 찜질방에서 자네처럼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이 늘었어. 내 입장에서야 뭐 텅 빈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만큼 다들 사정이 어렵다는 거겠지. 총각도 벌써 3개월 가까이 됐지?”

. 그 정도 됐네요.”

나는 사물함에 가방을 넣고 사우나로 향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가 잠시 눈을 감으며 지친 몸을 달래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윽고 온탕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시 눈을 떴다. 한 눈에 봐도 앳된 얼굴의 젊은 남자였다. 이 시간에 온탕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자연스레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유난히도 지쳐 보이고 어색한 표정을 보니 찜질방 생활을 막 시작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 . 처음 뵙는 데 실례지만 혹시 여기서 숙식을 해결 하세요? 저는 3개월 정도 됐는데

초면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랬지만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고 물었다. 이곳 찜질방에서는 다양한 사정으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이제 20살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이게 내 착각일 수도 있고 괜한 오지랖일 수도 있는 거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들었기에 물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이제 2일째인데 사정상 그렇게 됐어요.”

그래요? 저도 일이 있어서 이렇게 됐네요.”

그와 자기소개와 대화를 잠시 나누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구석진 곳에 앉아 핸드폰을 충전 시키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금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03

 

새벽 4시가 좀 넘은 시간. 4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학교 수업도 들어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틈나는 대로 전단지나 신문 배달을 하는 나로서는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난다. 평일이기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고요함 속에서 나는 핸드폰을 보며 기상했다. 그리고 이윽고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렸다. 어제 잠깐 대화를 했던 동현이라는 남자였다. 그리고 옆에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와 5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있었다. 어제 분명히 20살이라고 했는데 여자와 어린 애랑 같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꼈지만 그런 걸 물어볼 수 없으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씻기 위해서 사우나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엄청 일찍 일어나셨네요?”

동현은 온통으로 들어오며 어제보다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했다.

, . 알바도 해야 하고 학교에 가려면 어쩔 수가 없어서요.”

저도 오늘부터 일을 나가야 하는 데 첫날이라 그런지 잠을 설쳤네요.”

무슨 일을 하시는 데요?”동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을 했다.

지금은 일정하게 일하는 곳은 없네요. 일용직이라도 하려고 일찍 일어났어요. 인터넷에 보니까 빨리 가야 일이 있다고 해서

그렇구나. 저는 새벽에 전단지를 붙이고 대학교에 갔다가 주방에서 일해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어제 밤에 봤던 여자와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동현을 향해 물었다.

제가 어제 잠잘 때 우연히 봤는데이런 질문하기 뭐하지만 어떤 여자분이랑 어린 아이랑 계시더라고요.”

동현은 쓸쓸한 미소를 짓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이프랑 애에요.”

나는 잠깐 당황하며 동현의 눈치를 살폈다.

. 일찍 결혼 하셨나 봐요. 근데 애는 대략 5~6살 정도로 보이던데

동현은 나의 말에 잠깐 멍한 시선으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힘겹게 내게 말을 했다.

 

! 오른쪽 볼이 얼얼하다. 어머니는 예상했던 대로 버럭 화를 내셨다. 화를 내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짜고짜 뺨을 때리실 줄을 몰랐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는 온갖 욕설을 하며 내게 발길질을 했다.

어린놈이 뭐가 어째!!! 아직 중학교 다니는 놈이 여자애를 임신 시켰다고!!!”

아버지. 죄송해요. 근데 어쩔 수 없잖아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빌고 또 빌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자 친구 은서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는 머리가 멍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는 은서도 임신한 줄을 몰랐다.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배가 불러왔고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와있었다. 어린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되었지만 낙태를 하거나 버릴 수는 없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반드시 잘 키우리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버지처럼 도망치는 건 죽는 것보다 싫었다. 그건 은서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 퍽퍽!

어머니는 나를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렸다. 은서는 내 옆에서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여간, 남자라는 놈들은 다 똑같아! 책임지지도 못할 행동을 왜 해! 썩 꺼져!”

나는 그렇게 은서와 함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야만 했다. 솔직히 말해서 어머니는 받아 주실 줄 알았다. 물론 화를 내는 건 당연했겠지만 이토록 차갑게 쫓겨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은서네 집에서도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온갖 욕설과 수모를 당하고 반강제적으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처음에는 친구 집을 전전했다. 가진 돈은 없었고 찜질방 같은 곳은 늦은 밤이 되면 청소년 입장 불가인 곳이 많아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에 청소년쉼터였다. 가출 청소년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에서 나와야 하는 청소년들이 들어갈 수 있는 데 그곳에 사정을 말하고 작년 말까지 4년간 살았었다. 그 사이에 은채도 태어났고 은서와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04

 

늦은 밤이 되었다. 나와 동현은 지친 걸음으로 찜질방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은서는?”

. 아까 쉬는 시간에 전화해서 먼저 찜질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어요. 돈은 폰뱅킹으로 이체 했으니까 우리 자리 있는 데 있을 거예요.”

그래? 우리도 빨리 들어가자.”

어느덧 나와 동현은 같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지도 3개월이 되었다. 동현에게는 원동기 면허가 있었기에 오전에는 주방 보조를 하고 오후에는 배달을 하는 형식이었고 나는 오전에는 대학교 수업을 들었기에 오후에 나와서 야간에 일을 끝나는 형식이었다. 최근에는 식당에 손님이 많아져서 동현이도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터라 나와 같이 퇴근을 하는 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근데 예전부터 진짜 궁금했던 건데요. 형은 왜 집에 안 들어가요? 멀쩡하게 대학 다니고 성실히 사는 데 굳이 찜질방 생활을 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 피식 웃으며 동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밤하늘의 달을 바로보고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나도 사정이란 게 있어. 인마.”

 

대학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이곳에서 나는 그저 모든 게 지루할 뿐이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거나 이곳저고 돌아다니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시간은 더럽게도 안 간다. 척추 측만증 수술을 받고 보조기를 착용한 상태라서 아직 걷는 게 불편했지만 그래도 병실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보다도 낫다는 판단에 돌아다녔다. 여름 방학이라 찾아오는 친구 녀석들도 없고 부모님은 타지에서 일을 하시니 하루 종일 혼자인 셈이라 너무나도 지루할 뿐이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나는 매점에 들러 과자 몇 개를 고르고 인사를 건넸다. 매점 아줌마는 항상 무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병원에 입원한지 벌써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는 분이다. 여하튼 나는 과자를 사고 매점 앞 그늘진 곳에 앉아 과자를 먹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저기괜찮으면 이 과자 나랑 바꿔 먹을래?”

멍 때리다가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창백한 인상의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그 여자 아이는 내가 들고 있던 과자를 가리키면서 왼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내밀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과자를 교환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데 몇 살이야?”

14. 너는?”

나는 13살인데 한 살 오빠네. 아무튼 반가워.”

창백한 인상과는 다르게 당돌해 보이는 여자 아이는 내 옆에 앉아 과지 봉투를 뜯으며 말했다.

허리 수술 했나보네? 오빠. 안 힘들어?”

. 힘들지

나는 당황에서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런 내가 웃긴 지 여자 아이는 잠시 웃더니 마른기침을 했다. 창백해 보이는 안색이 더욱 안 좋아보였다.

괜찮아?”

나는 이름도 모르는 여자 아이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미안한데 잠깐 어깨 좀 빌릴게.”

마른기침이 끝나고 내 어깨에 잠시 기댄 이 아이가 왠지 모르게 안쓰럽기도 했고 가까이서 보니 꽤나 귀여 보이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뭔가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아무튼 이날이 지은이와 나와의 첫 인연이었다. 이후로 병원 내에서 산책을 하거나 돌아다닐 때면 지은이와 마주치는 경우가 유난히도 많았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터라 병약했던 지은이는 어려서부터 백혈병으로 긴 투병 생활을 했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외로웠던 탓인지 나를 보면 몇 시간이고 놓아주지를 않고 수다를 떨었다. 나 역시도 심심했기에 그런 지은이가 싫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이후로도 인연이 계속 되었던 것이다.

05

 

, 그럼 그때부터 사귀신 거예요?”

아니. 본격적으로 사귄 건 19살 때부터였으니까 올해로 딱 8년 됐네.”

동현은 나를 바라보며 뭔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동현이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현은 뭔가 결심을 굳힌 듯 내가 질문을 했다.

이건 좀 난감한 질문이긴 한데형이 병원비를 전부 감당하는 이유가 뭐에요? 여자 친구 부모님도 계실 거 아니에요. 굳이 찜질방에서 생활하면서까지 형이 이렇게 고생하시는 게 저는 이해가 좀 안돼서요.”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가을의 붉은 단풍이 서서히 낙엽이 되어 떨어질 무렵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퇴원을 했고 한동안 집에서 쉬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지은이에게 병문안을 갔다. 척추 수술을 한 탓에 후유증이 있어서 걷는 게 좀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은이가 보고 싶었기에 운동도 할 겸 해서 매일 같이 병문안을 가서 하루를 함께 보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궁금해왔던 걸 지은이에게 물었다.

지은아. 이런 말 하기는 뭐한데너는 왜 부모님이 안와?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지은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지은이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을 닦으면서 말했다.

아빠는 지금 미국에서 있어. 엄마는 돌아가시고 없어. 내가 어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

나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은이는 잠시 후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지은이의 부모님은 결혼 후에 한동안 한국에서 살았지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미국으로 다시 가셔서 박사 학위 과정 중에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종종 이모들이 오긴 하지만 사실상 지은이는 혼자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안쓰러웠다. 이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은이 곁에 항상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한지도.

 

학교로 돌아간 이후로부터 나는 줄곧 혼자였다. 2학기가 한참이던 가을의 중반이 넘어서야 나는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게 좋았지만 그 기대와 두근거림은 첫날부터 비참하게 깨져버렸다.

? 재 전학 간 거 아니었나?”

. 그러게. 허리에 저건 뭐냐?”

나는 척추 측만증 수술 이후로 한동안 척추 보조기를 착용한 채로 생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학교에 간 첫날 아이들의 이상한 눈초리와 반응에 나는 한순간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아이들이 내게 왜 그동안 학교에 안 나왔냐고 물어오기도 했지만 그건 잠깐의 관심일 뿐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고 이후로 아웃사이더처럼 지냈다. 체육 시간에는 운동을 할 수 없으니 그늘진 곳에서 쉬고 보충수업을 받지 않으니 남들보다 2시간 일찍 하교하는 일상 속에서 반 아이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고 나는 자연스레 외톨이가 되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거는 이도 없었고 공부를 하자니 진도가 너무 뒤쳐져서 따라가기가 벅찼다. 그래서 공부에도 흥미를 잃은 나는 학교 도서관이나 인근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담임선생님께서도 묵인을 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등교를 하고 거의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하교 후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을 빌린 후 지은이의 병문안을 가는 게 내 일상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에서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학업 진도를 따라갈 수 없었고 학교생활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던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검정고시를 보기로 했다. 물론 엄마와의 다툼은 여러 번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검정고시를 준비를 하게 되었다.

오빠. 후회 안 해? 진심으로?”

. 어차피 적응도 잘 못했고 그냥 검정고시 보고 바로 수능 준비하려고.”

지은이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지은이와 함께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니 다투는 일도 늘었지만 우리는 그만큼 더욱 가까워졌고 우리는 결국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그해에 우리는 나란히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우리는 늘 붙어 다니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사랑을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시련은 다가오는 법이다.

너 아직도 지은인가 뭔가 하는 애 보러 하루 종일 병원에만 있니?”

그 무렵 즈음부터 나는 엄마와 다투는 일이 부쩍 늘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학교도 안가고 하루 종일 병원에서 지은이와 있으니 썩 보기 좋아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은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엄마는 내게 지은이와 헤어지고 대학 진학에 힘쓰라고 강요했지만 나는 결코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 지은이는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헤어진다는 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내겐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 엄마와 자주 다투고 눈치가 보여서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능 준비를 했다. 지은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작스러운 비보가 들려왔다. 지은이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잠시 퇴원을 하고 미국으로 출국한 지은이는 한동안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면서 너무나도 우울해 했다. 그리고 몸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어서 결국 쓰러져 다시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링거를 맞은 채 계속 우울해 하는 지은이 옆에서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지은이 곁에 평생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탈탈 털어서 작은 반지를 사서 고백했다.

오빠고마워.”

나는 지은이 곁을 결코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떠나기 싫었다. 그래서 지은이 곁에 계속 있기로 했다. 그해 나는 대학에 합격했고 집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다.

 

형도 참 대단하네요. 완전 순애보네.”

네가 더 대단하지. 어린 나이에 책임감 있게 부모 노릇하니까.”

그럼 그때 집에 나온 후로는 어디서 거주한 거예요?”

처음에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있었지. 근데 규정이란 게 있잖아. 정해진 시간까지 들어와야 하고 해서 고시원에 전전했지. 11시까지 들어와야 하는 데 나는 알바 끝나고 나면 자정이잖아. 거기에 새벽 4~5시에 기상해서 전단지나 신문 배달 알바도 병행 했었거든. 그래서 엄마한테는 기숙사에 들어간 걸로 말하고 이러고 있다.”

남자들끼리 뭔 대화가 그리 길어요?”

동현의 아내인 은서가 우리를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은채는 동현의 품에 달려가 안기고 어리광을 부렸다.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 뭐 좀 애기 하니 라고

 

06

 

. 축하해요. 드디어 대학 졸업이네요.”

동현은 빈 잔에 술을 따르면서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미소를 지었다. 8년간의 긴 대학을 드디어 마친 것이다.

지긋지긋한 대학 생활을 드디어 8년 만에 마치는구나. 은서랑 은채는?”

, 은서는 오늘 짐 정리 때문에 못 왔어요. 은채는 유치원에 갔고요.”

동현은 찜질방에서의 생활을 정산하고 엊그제 오피스텔 계약을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일하던 주방에서 정직원이 되어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얼마 전에 오피스텔을 얻었고 지은이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형도 이제 부주방장이 되셨잖아요. 거기에 형수님이랑 같이 살게 되셨고요. 여러 모로 좋으시겠어요.”

너나 나나 이제야 제대로 자리 잡은 거 같다. 힘겹게 찜질방에서 생활하다가 나름대로 이제야 생활이 안정되니 기분이 좋다.”

우리는 지난 몇 개월간 찜질방에서 같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늦은 시간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 이제야 동현이도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살게 되었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찜질방에서 이 녀석과 처음 만날 때와 많은 것이 좋은 쪽으로 달라졌고 특히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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