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최 창작콘테스트 소설부문 응모- 스승의 날

by 무위자연 posted Aug 06,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스승의 날

 


상근이는 성진에게 장난을 자주 걸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상근이가 뒤에서 볼펜으로 성진의 뒤통수를 쿡쿡 찌르며 키득거렸다. 가만히 수학의 정석을 들여다보던 성진도 결국 몸을 돌려 맞대응 했다. 볼펜 한 자루씩 들고 칼싸움 흉내를 내며 서로 장난스럽게 툭탁거렸다. 교실 뒷공간으로 나가 검객이 결투하는 시늉을 냈다. 갑자기 뒷문이 드르륵 열렸다.

담임이었다.

 

담임은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 얼굴에 주름이 많았다. 미간에 상흔처럼 일자로 새겨진 두 줄 주름이 선명해서 항상 뭔가 짜증을 내고 다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주변머리는 회색빛으로 희끗희끗했고 눈 밑에 부풀어 오른 두툼한 살에는 속된 욕망이 응고되어 있는 듯했다.

- 이노무 새끼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담임은 둘을 불러 세웠다. 둘은 담임 앞으로 뛰어가 열중쉬어 자세로 서서 고개를 숙였다. 1990년대의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에게 매를 맞는 게 일상이었다. 담임은 기습적으로 성진의 왼뺨을 후려쳤다. 혼신의 힘을 다한 풀스윙이었다. 정확이 열 번의 풀스윙이었다. 맞은 곳은 뺨이었지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담임의 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치욕과 수치스러움이 먼저였고, 후끈거리는 뺨과 머리의 고통은 잠시 뒤였다. 성진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뺨에 담임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혔으리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제 상근이 차례구나, 라는 생각이 뒤이어 떠올랐다. 이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성진이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이 새끼 얌전한 놈인 줄 알았더니 못 쓰겠네.

담임이 성진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고함치듯 말했다.

 

담임은 성진으로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말로 계속해서 모욕을 주었다. 그 모욕의 내용에는 성진의 부모도 잠시 등장했다. 왜 지금 자신의 부모가 이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인지, 성진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담임선생은 상근이를 힐끗 한번 쳐다보는 것이었다. 담임은 들어왔던 뒷문으로 휙 돌아서더니 그대로 교실을 나가버렸다. 더 이상의 풀스윙과 모욕적 언사는 없었다. 둘에 대한 담임의 처벌은 그렇게 끝났다.

처벌의 갑작스러운 종료보다, 담임이 상근은 때리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성진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담임이 그를 보는 눈빛이었다.

만약 서서히 파멸시키고 싶은 한 인간이 있다면 선생의 눈빛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앞으로 너는 더 나은 존재가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눈빛이었으며, 혹시 그런 존재가 되더라도 적어도 담임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는 눈빛이었다. 만약 이런 눈빛의 선생 밑에서 일생을 배워야 한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자신감이라는 감정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누군가를 암담한 미래로 몰아넣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담임이 시선을 돌려 교실 밖으로 나갈 때, 그의 걸음걸이에는 매우 하찮은 일을 처리한 후의 허탈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면서 매우 일상적이고 느긋한 걸음걸이였다. 담임이 복도를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성진은 거울 앞으로 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뺨에는 담임의 손바닥 모양이 여러 겹으로 겹쳐 찍혀있었다. 단풍잎이 여러 장 겹쳐져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낙인 같기도 했다. 아파서인지 억울해서인지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대한 황당함 때문인지 담임의 눈빛 때문이었는지 성진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상근은 어느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아 있었다. 시선은 책에 둔 채로 빙긋 웃고 있었다.

 

 


 

상근이와 성진은 아주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같은 시간에 근접한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갓 고등학생이 되어 자리배치를 받았을 때, 상근은 성진의 뒷자리였다.

상근이는 감정의 변화가 심한 편이었다. 어떤 날은 성진을 본체만체하다가도 어떤 날은 도원결의라도 맺은 사이처럼 반가워했다. 서로를 경계하며 머쓱하게 지내는 학기초를 몇 주 지난 어느 날이었다. 성진이 등교하여 자리에 앉자마자 상근은 웬일인지 큰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날의 상근은 도원결의였다. 상근은 성진에게 쏟아내려고 준비한 말이 많았는지 말의 시작이 다급했다.

- 어제 담임이 우리집에 왔었다.

- 담임이 너희 집에? 왜?

성진의 반문이 뜬금없이 들렸는지 상근이는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냐는 듯한 얼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밥 먹고 술 마시러 왔지 왜는 무슨 왜야? 와! 우리 담임 있잖아, 양주를 물마시듯 들이붓더라.

담임이 자신의 집으로 와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는 상근의 말은 성진에겐 참으로 이상하게 들렸다. 성진은 “전부터 담임과 너희 부모님과 아는 사이였냐” 물었지만 상근은 대답은 않은 채 참으로 눈치 없는 놈일세, 라는 표정과 시선으로 성진을 한참 쳐다보았다.

성진은 상근의 이야기가 이상했지만 그리 오래 생각하진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인 것도 같았다. 상근이의 집안은 경제 사정이 넉넉한 모양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도 않았는데도 등교하기 더욱 편하도록 상근을 위해 학교 근처에 전셋집을 따로 아버지가 얻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상근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상근이의 예의 그 자랑하는 말투를 힘겹게 견디면서 들은 이야기였다.

 

상근이가 담임의 방문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후 일주일쯤의 시간이 흘렀다. 성진은 평소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속이 너무 좋지 않고 심한 몸살 기운이 있던 날, 도저히 딱딱한 걸상에 앉아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자율학습을 계속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며칠 병원을 다니며 자율학습은 쉬고 싶었다. 성진은 교무실에 담임을 찾아갔다. 몸 상태를 설명하고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며칠간 조퇴를 허락해 달라고 허락을 구하였더니, 담임은 무심한 표정의 얼굴과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 부모님을 모셔오너라.

 

다음날 오후, 학교에 성진의 어머니가 왔다. 성진의 어머니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선생님 어디 계시는고? 입을 옷이 없어서 대충 입었는데 보기 괜찮냐? 설마 아프다는 애를 병원 못 가게 하시겠니? 같이 잘 말  

 씀드려보자.

질문인지 독백인지 모를 말들을 성진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쏟아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진은 얌전하고 조용한 편이어서 학교에서 특별한 말썽을 부린 일이 없었다. 학교 선생에게 불려 학교를 방문하는 것은 성진의 어머니에겐 굉장히 낯선 일이었다.

성진과 함께 교무실에 담임을 만난 성진의 어머니는 자리에 앉기 전에 무슨 큰 죄를 지은 듯한 얼굴 표정으로 몇 번을 허리를 크게 굽히며 담임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병원 치료를 위해 성진의 조퇴를 부탁했다. 담임은 성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 어머니! 내가 얘만 일찍 보내 주면 다른 애들이 내가 어머니한테 와이루 먹은 줄 알아요. 와이루!

- 아이고! 선생님 아무리 나이 어린 애들이라도 설마 아픈 애를 병원 보냈다고 그렇게 생각 할 리가 있겠습니까? 선생님 부탁 좀

  드립니다. 우리 애가 위장병 앓은 지가 오래 됐는데 지금 좀 심해진 것 같습니다. 제발 부탁 좀 드립니다.

 

계속해서 죄를 뉘우치듯 부탁하는 엄마의 비굴한 표정과 말들을 성진은 망연하게 쳐다보았다.

담임이 말한 ‘와이루’가 무엇인지 성진은 그때는 몰랐다. 알 수 없어서 담임이 어머니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날 성진이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건 담임이 성진의 조퇴를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진은 속이 쓰려 배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신트림이 올라왔다.

 

‘와이루’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집으로 돌아와서였다. 담임은 뇌물을 뜻하는 일본어 ‘와이로’를 ‘와이루’라고 발음했었던 것이다. 성진에게 그의 아버지가 말해주었다. 성진의 아버지는 그 ‘와이루’란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 너희 담임이 우리에게 봉투를 바라는구나.

아버지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진의 어머니는 그날 ‘와이루’를 외치던 선생 앞에서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거렸다. 그 반복되는 굴욕적인 동작에 아들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듯이.

성진의 어머니는 축 처진 어깨와 걸음걸이로 돌아갔다. 성진의 어머니에게 담임은 성진의 조퇴 가능 여부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았다.

-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어머니…… 선생은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대해야 돼요. 안 그러면 어린 학생들이 선생한테 존경심을

  가지겠습니까? 어머니.

 

성진의 어머니는 상근의 부모처럼 저녁 식사와 양주를 담임에게 제공하지 못했고, 담임이 외친 그 ‘와이루’도 준비하지 못했다. 성진의 어머니가 청렴하고 강직해서가 아니었다. 그럴만한 돈이 성진의 부모에게는 없었다.

 

 

 

 

지하의 룸으로 된 술집이었다. 담임은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탬버린을 치며 춤을 추었다. 상근의 아버지와 몇몇 남자 학부모가 같이 술에 취해 불콰한 얼굴로 그런 담임을 보며 크게 웃었다.

술기운이 어지간히 뻗친 담임은 탬버린을 내려두고 마이크를 찾으며 소리치듯 말했다.

- 제가 노래 한 곡 하겠습니다! 비 내리는 호남선이 몇 번이더라

- 선생님 제가 눌러 드리겠습니다.

상근의 아버지가 노래책을 재빠르게 뒤적거려 비 내리는 호남선을 찾아냈고 이내 기계에 번호를 입력했다.

1차에서 이미 만취한 담임의 양복바지에는 안주 국물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담임은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주물럭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골반 아래를 천천히 휘돌리는 담임의 몸동작이 이어졌다.

룸의 문이 열리더니 술시중을 드는 여성들이 다소곳이 들어와서 옆에 일렬로 섰다. 짙은 향수 냄새가 룸 안에서 진동했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짧은 치마의 여성들을 담임과 상근의 아버지 일행은 잠시 일별했다.

담임은 먼저 결심한 듯 여성 한 명을 골라 손짓으로 옆으로 불렀다. 다가온 여성의 허리를 와락 당겨 껴안고 쓰던 악을 계속 쓰며 노래를 계속 불러댔다. 여성은 약간 찡그렸지만 이내 웃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를 쳤다.

 

노래를 마친 담임은 테이블로 돌아와 옆에 앉힌 여성의 몸을 주무르며 상근 아버지에게 술을 권했다. 둘은 술을 마시고 뭔가를 떠들어댔다. 대화는 노래 소리에 묻혀 있었지만 둘은 다 알아듣는 듯했다. 둘은 크게 웃었다.

 

 

 

 

성진은 병원에 가지 못했다. 담임은 조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약국에서 사온 위장약을 먹으며 성진은 쓰린 속을 달래며 신트림을 계속 했다.

며칠간 학교에서 돌아오면 성진은 멍하니 방에 누워만 있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은근한 불안감 같은 것이 성진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더욱 불안한 것은 그 불안의 근원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막연하게 빈둥거리다가, 성진은 형의 일기장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성진과 성진의 형은 한 방을 썼다. 함께 쓰던 책상 한 귀퉁이에 형의 일기장이 외로이 누워 있었다. 실은 그것이 일기장인 줄 성진은 몰랐다. 그냥 공책 한 권이 있었고 성진은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펼쳤다.

형의 반복되는 일상을 상투적 표현으로 기록한 페이지들을 무심히 넘기다가, 성진 가족이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의 일을 적어 놓은 부분에서 성진의 시선은 머물렀다.

방학을 맞아 시골에 내려가 며칠을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고 성진의 형은 썼다. 형은 밭에서 돌아오시는 할아버지에게 진지 드셨냐고 인사말을 건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말을 더듬을 것 같아, 말을 더듬을 것이 두려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그래서 너무 괴로웠다고 형은 일기장에 썼다.

인사 한마디 하지 않는 성진의 형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험험 헛기침하며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인상을 묘사한 부분에서 형의 글씨가 일그러져 있었다.

일기장에서 눈을 떼고 성진은 곰곰이 생각했다. 형이 이토록 말더듬이 심했나? 성진은 형이 조금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형이 과묵하다고만 생각했지 그렇게 심하게 말을 더듬고 있는 줄은, 말더듬으로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성진은 형의 말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성진 역시 가족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성격이었고, 특히 형과는 긴 대화를 거의 하지 않으며 지냈다. 사실 형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성진은 잘 인식하지 못했었다.

일기장 속에서 성진의 형은 말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화하며 살고 싶다고. 큰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 일기를 훔쳐보던 성진은 눈물을 조금 흘렸다. 성진은 일기장 속에서 형도 울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일기장 속의 형은 말을 더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멍하게 지나갔다. 일요일이었다. 시내 중심가의 극장 앞 큰 거리를 성진은 혼자 목적 없이 걷고 있었다. 극장 정문 앞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무언가 절규하듯 외치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주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고, 그들은 무언가를 외쳐대는 그에게 간간히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는 소리쳤다.

- 나는 할 수 있다! 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참으로 밑도끝도없는 외침이었다. 그를 에워싸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그의 외침 사이사이마다 메마른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 쳤다. 무언가에 쫓기듯 거리를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찰나적이고 멸시 섞인 시선을 그들은 잘도 견뎌내고 있었다.

성진은 무심히 지나치려 했다. 순간, 성진은 그쪽으로 빠르게 고개 돌려 다시 쳐다보았다. 무엇을 보았던 것인지 성진의 머릿속에서 섬광 같은 것이 번쩍였던 것이다. 성진은 그들의 무리 곁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라고 절규하고 있는 사람은 형이었다.

 

성진의 형은 말더듬 교정학원에 등록한 것이었다. 극장 앞에서의 그 처절한 절규는 그 학원에서 행하는 수업 프로그램이었고, 성진의 형을 에워싸고 응원하던 사람들도 그 학원의 수강생들이었다. 그날 성진의 형은 극장 직원들에게 심하게 욕을 먹으며 쫓겨났다. 쫓겨나는 형의 표정을 성진은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라 예감했다. 형의 표정은 전쟁을 수행하는 최전선 병사의 그것이었다.

 

 

    

 

 


결국 터질 일이 터지고 말았다. 상근이가 성진의 등을 볼펜으로 찌르며 계속 장난을 걸어왔다. 담임에게 뺨을 맞은 후, 성진은 상근의 장난질에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장난이 그치질 않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성진은 버럭 화를 냈다.

- 건드리지마 새꺄! 공부하는 거 안 보여?

좀처럼 화를 낸 적 없는 성진의 돌연한 반응에 상근은 좀 놀란 듯했다. 그냥 조금 놀라고 말았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상근은 성진의 뒤통수를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때리며 말했다.

- 놀래라, 새꺄!

성진은 폭발하고 말았다. 성진은 돌아서 상근의 멱살을 잡아 세웠다.

- 야이 개새꺄 따라나와!

- 뭐야? 이 새끼……

성진은 상근의 멱살을 잡아당겼지만 상근은 용을 쓰며 벌건 얼굴로 버텼다. 성진은 상근을 교실 뒷공간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끌고 나갔다.

- 야이 개새꺄 빨리 나와.

 

순간, 상근의 ‘쉭’ 하는 짧은 콧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성진은 숨이 컥 막히면서 몸이 옆으로 눕혀져 공중에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상근이 오른손으로 성진의 멱살 잡은 왼팔을 비틀며 빼고 왼손으론 성진의 명치를 내지르며 다리를 비 쓸듯 걷어 넘긴 것이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성진은 제법 긴 체공시간을 느꼈다. 체공시간 동안 성진은 상근이 언젠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강권으로 합기도 도장을 오랫동안 다녔다는,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던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역시 상근이의 예의 그 자랑하는 말투를 힘겹게 견디면서 들은 이야기였다.

바닥에 떨어질 때 바닥에 머리부터 쿵 떨어졌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어지러웠다. 상근이가 뭐라 쌍욕을 하며 성진의 배를 걷어찼다. 성진은 배를 두 팔로 감쌌다.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 웅크린 성진을 보며 상근이 뭔가 욕을 했는데 성진은 알아듣지 못했다. 성진은 속이 쓰렸고, 신트림이 올라왔다.

 

분노와 불안, 억울함, 창피함……, 그런 것들이 성진을 덮쳤다. 그때 성진은 자신이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부터 내려오는 막연하고 거대한 힘 같은 것을 어렴풋하게 느꼈다. 그 힘에 짓눌린 성진은 오랫동안 바닥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그때 단편 조각으로 된 기억들이 빠르게 편집되어 연결된 화면으로 빠르게 성진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자신의 뺨을 정확히 조준한 담임의 풀스윙, 영혼을 파괴하는 담임의 멸시 어린 시선, 상근의 장난질, 예의 그 자랑질, 형의 극장 앞에서의 절규, 어머니의 밑도끝도없는 담임 앞에서의 조아림, 그리고 와이루를 외치던 담임 얼굴의 기름진 얼굴……. 성진은 신트림을 계속 했다.

 

 

 

 

 


성진은 수영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와 협동해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데는 성진은 소질이 없었다.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을 성진은 좋아했다. 수영이 바로 그런 것 중의 하나였다.

성진은 수영복과 수모, 물안경 등속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성진은 지금 당장 수영을 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수영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수영장에서는 한 무리의 수강생들이 수영강사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한 몸짓으로 물속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강사가 “접영으로 두 바퀴!” 고함치듯 말하고 호각을 불었다. 강습생들은 그 신호를 왜 이제야 주느냐는 듯이 수면 위로 수박처럼 동동 띄우고 있던 머리통들을 물속으로 집어넣었고, 집단적으로 수면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물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돌고래를 닮은 그들의 몸짓은 역동적이었다. 물속에서 튀어나온 그들은 다시 물속을 파고들었고, 다시 튀어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 영법을 나비에 빗대어 접영(蝶泳)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성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돌고래의 몸짓이었다.

그들은 날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땅의 속박을 기어코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진 존재처럼 보였다. 땅에 두발을 붙이고 살아야하는 인간의 숙명을 거부하려는 집단적 몸부림이 물속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그들의 소망은 결국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그 숙명에 좌절하지 않았다. 다음번의 비상을 예비했으며, 기어코 실행했다. 이륙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할 때마다 그들은 또다시 물속을 파고들었고, 또 다른 이륙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비상하는 것의 불가능함을 개의치 않는 존재처럼 보였다. 불가능함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능을 향해 단호한 걸음을 성큼 내딛는 존재 같았다.

 

성진은 수영장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에 뜨려면 처음부터 굉장히 잘하려는 욕심과 물에 가라앉을 것 같다는 공포심을 버려야 한다. 사람은 몸속에 고무 튜브 역할을 하는 폐라는 기관이 있어서 사람은 물에 뜨게 되어 있다고, 성진은 ‘수영교본’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가라앉아 죽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성진에게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퍼뜩 성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과 물이 몸을 부드럽게 띄워주는 걸 성진이 느낀 건 거의 동시였다. 성진이 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물이 눈치 챘음이 틀림없었다. 그날 성진은 물과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성진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천천히 팔을 휘저었다. 물의 저항을 최소한으로 맞이할 수 있는 자세로 물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물이 매끄럽게 성진의 몸을 미끄러져 지나가는 느낌을 만끽했다. 물속에서 성진은 많은 생각들과 사람들이 떠올렸다. 상근이와 담임과 어머니, 형과 물속을 헤매는 자신…….

 

언제였던가, 성진은 하늘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새들을 멍하니 바라본 적이 있다. 그리고 땅을 딛고 서 있는 자신의 두 발을 내려다보자 뜬금없이 눈물이 났었다.

그날 성진은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세상은 없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고, 포유류인 고래가 땅을 버리고 바다로 간 까닭은 그들이 날고 싶어 했기 때문일 거라는 꿈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수영을 하며 성진은 상상했다. 자신은 지금 날고 있다고.

 

 

 

 


성진은 새벽 일찍 일어났다. 이불을 밀쳐내고 일어나 동쪽으로 난 작은 창문의 커튼을 젖혔다. 몸이 개운했고 아무런 이유 없이 성진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본 변기 옆의 휴지통엔 뒤를 처리한 휴지가 넘쳐나도록 가득 차 있었다. 성진에게 그것들마저 더 없이 풍요로워 보이였다. 성진을 굽어보며 걸려 있는 샤워기는 정겨웠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 아침의 충만함이 성진은 불길했으나. 이 불길함마저 성진을 설레게 했다. 안전해진 자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불길함이고 설레임일 것이라고 성진은 생각했다.

등교 준비를 하면서 성진은 달력을 봤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고등학생의 하루하루는 붕어빵과 같은 것이었다.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별다른 감흥은 일어날 리가 없었다. 아침에 느꼈던 급격한 감정변화를 추스르고 등짐 같은 가방을 둘러매고 학교로 향했다.

 

그날 첫 수업 시작 전에 운동장에서 스승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운동장에 전교학생들이 모였고 그 앞에 선생들이 일렬횡대로 뒷짐을 지며 서 있었다. 단상에 교장선생이 근엄한 걸음걸이로 올라오자 음악 선생의 손짓에 맞춰 우리는 ‘스승의 은혜’를 불렀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학생회장이 단상으로 올라가 교장선생에게 큼직한 꽃다발을 안겼다. 받은 꽃다발을 옆에 내려놓은 교장선생은 이내 훈시를 하기 시작했다. 훈시는 길었다. 봄날의 따가운 햇살에 우리의 살갗은 벌겋게 익어갔다.

교실로 돌아와 학급 조회가 이어졌다. 반장이 전체 반 학생들에게 각출한 돈으로 마련한 선물을 담임에게 안겼고, 담임 훈시가 또 이어졌다. 담임은 목청을 큼큼 다듬더니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 여러분들은 모두가 내 자식들입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죠? 자! 오늘도

우리 아들들 열심히 공부하세요.

 

스승의 날 행사를 마치고 하루치 수업을 마친 후, 청소당번이었던 성진은 남아서 교실 청소를 했다.

빗자루로 교실 구석구석 먼지를 한 곳으로 모아서 쓰레받기에 쓸어 담아 조심스레 쓰레기통으로 먼지를 쏟아 부었다. 막대걸레는 화장실 한쪽 구석 개수대에서 깨끗이 빨아 물기를 적당히 짜내어서 걸상 하나하나를 책상에서 빼내어가며 바닥 전부에 물자국이 생기도록 닦았다.

아침 조회 시간의 담임 훈시가 떠올랐다. 우리를 아들처럼 여긴다는 담임의 훈시는 진부했지만 훈훈했다. 창밖 허공의 갈피마다 노을이 붉게 스몄다.

스승의 날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