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차 창작콘테스트 - 누구입니까

by 김day posted Aug 09,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누구입니까

 

Written by day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곤 저의 키보다 길게 뻗어있는 나무들뿐입니다. 여기 이 숲에는 제대로 나있는 길조차 없습니다. 그저 곧게 뻗어있고, 끝이 굽은 나무들이 제각각의 형태로 서있을 뿐입니다. 저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그저 바라봅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봅니다. 왜인지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시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저는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저버리지 못합니다.

이곳에는 어디쯤 왔는지 표시할만한 물건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황량해 보이는 나무밖에 없습니다. 저는 풍경을 보고 있던 시선을 거둬 제 발을 봅니다. 검은 구두가 발에 신겨져 있습니다. 저는 왜 검은 구두를 신고 있습니까. 저는 시선을 점점 위로 올립니다. 검은 정장이 몸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저는 왜 검은 정장을 입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이름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아니, 애초에 저를 보고 뭐라 부른 적이 있었습니까?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건 제가 왜 이곳에 있냐는 것입니다.

 

저는 왜 여기에 있습니까.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람이 나뭇잎 속을 헤집으며 생명인 척 소리를 냅니다. 그러면 저는 무심코 뒤를 돌아봅니다. 이곳은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라는 걸 알면서도,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뒤를 돌아봅니다. 왜인지 누군가가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바람이 또 생명인 척 소리를 내면, 어김없이 뒤를 돌아볼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기에 저는 걷기로 합니다. 여기에 멍하니 서있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걸으면 무언가가 달라집니까? 사실 잘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걷기로 합니다. 왜인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 세기도 귀찮아 질만큼 꽤 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의미 없이 걸어가는 발을 멈춥니다. 조금만 쉬었다 가기로 합니다. 어차피 시간도 많이 남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도 저는 또 다시 뒤를 돌아봅니다. 걸어왔는데도 아까와 똑같은 풍경만이 보일뿐입니다. 알면서도 저는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끝이 곧게 뻗은 나무와 굽은 나무들이 제 뒤에 줄지어 서있습니다. 분명 걸어왔는데도 땅에 남은 발자국이 없습니다. 저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이상해보입니다.

 

이곳은 과연 현실입니까.

저는 기억을 차근차근 되짚어봅니다. 되짚다 보면 언젠간 제가 여기로 온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여기로 오기 전까지 제가 마지막으로 봤던 최후의 기억은 과연 무엇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아직 살아있으므로 최후의 기억이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순간 살아있다는 말에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느껴지는 이질감을 애써 무시하고 최후가 아닌 최초의 기억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로 합니다. 제가 보고,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입니까.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한 꼬마가 산소 호흡기로 일분, 한 시간, 하루를 버티는 그 장면이 제 최초의 기억입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선비가 피를 토하고 주저앉는 여인 앞에서 울고 있는 기장면억이 제 최초의 기억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갑옷을 입은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칼부림을 치는 장면이 제 최초의 기억입니까? 아니면 언어가 없어 서로 웅얼대며 울었던 사람들의 장면이 제 최초의 기억입니까? 아닙니다. 알몸으로 다니다가 죄를 알게 되어 나뭇잎으로 옷을 입었던,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 형 가인이 동생을 시기했던 장면. 그 장면이 제 최초의 기억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억을 조금 더듬어 보기로 합니다.

 

가인은 아담과 하와의 맏아들로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이자, 살인자입니다. 농부였던 그는 양치기 아벨과 함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신은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고, 동생 아벨의 제물만을 받았습니다. 그것에 화가 난 가인은 들에서 아벨을 죽이게 되고, 인류 최초의 살인이자 피가 땅에 뿌려지게 됩니다. 그 순간이 저의 첫 기억이니, 아마도 저는 그때 태어났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더 전에 태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 전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전부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뿐입니다. 저는 언제 태어났습니까. 아니, 애초에 저는 태어난 것입니까.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라는 여성과 남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저도 부모님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제 기억 속에 부모님은 없습니다. 그 말은 저는 혼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태어났다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누구입니까.

 

생각을 할수록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 속에서 과연 제가 왜 여기로 왔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까. 바람이 다시 한 번 불어옵니다. 나뭇잎 한 잎 한 잎을 휘감은 바람이 생명인 척 소리를 냅니다. 그러면 저는 속는 척 뒤를 돌아봅니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속는 뒤에 묻어있는 간절함이 아무런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집니다. 저는 다시 생각에 빠지기로 합니다.

 

언어가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를 기억합니까? 사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단위의 시간을 거쳐 왔기에 이미 기억 속에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한 번 차근차근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그러면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아담을 이어 가인과 아벨 또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꽤 가까운 시간에 살던 누군가는 아담이 사용했던 언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직접 한 말을 들은 건지, 아니면 그저 책으로 본 건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사람한테서 나온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말하지 않고 생각만 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말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나의 언어는 연속적인 변신은 통해 다른 언어로 옮겨간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같은 의미의 어떠한 것이 시대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변했다는 것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한 단어에 의미는 같지만 다른 형태의 말이 많다는 것입니까? 사과라는 물질을 보고 영어로 말한 것과 프랑스어로 말한 것 그리고 한국어로 말한 것.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표현이 된다는 말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사물을 보고 이름을 지었고, 곧 그것이 언어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수 억 광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면서 들었던 것입니다.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언어가 아닌 언어의 형태가 없던 때의 사람들을 생각하기로 합니다. 언어의 형태가 없던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지금과 똑같이 옷을 입었고, 음식을 먹었고, 서로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과 딱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저는 어디에나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저의 삶은 다르기에,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는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 바로 뒤편에 제가 있었기에, 저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사실입니까? 이 말에 과연 사실이 있습니까?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존재합니까?

 

존재가 무엇이다라고 정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히 저는 존재합니다. 사람들의 삶과 많이 달랐고, 심지어 그들의 삶 바로 뒤편이 저였지만 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더구나 제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던 때도 있었습니다.

제 존재에 대한 느낌이 강하게 든 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집단이 되어가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커다란 집단이 되어갈수록 저는 제 존재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같았습니다. ‘살아있다는 말에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저는 그때 분명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사실 그때가 언제였는지, 수억 광년의 이상을 보내왔던 저로서는 말하기 힘듭니다. 그저 그때의 장면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고철덩어리들을 몸에 묶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몸에 매달고, 서로 뒤엉켜 또 다른 고철을 맞댔습니다. 그들의 언어로 그것이 칼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한 번 칼을 맞대기 시작하면 그것은 짧게는 일주일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땅위에는 누구의 피인지도 모를 것들이 뿌려져 있었습니다. 제 주인을 잃은 몸 조각조각들이 땅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제 존재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눈알이 뽑혀있고, 또 어떤 이는 귀가 잘려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얼굴 자체가 알아보기 힘들만큼 훼손되어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예 몸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저 고기 덩어리로 보이는 것도 많았습니다. 칼은 고철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고철도 고철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 왜, 제 존재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느낌은 수십 세기를 지나서도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졌습니다. 수많은 것들이 제게로 몰려온다는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건 싫지 않았기에 후에 잠잠해진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몸에 둘렀던 고철을 벗고서 비단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적 떼기를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적 떼기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언어의 형태가 생겼는지, 언어를 표면에 나타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언어의 형태는 대체로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사람들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형태가 생기는 기점으로 저 또한 그 전에 들었던 느낌과 달리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언어를 표현할 수 있게 되자, 말의 힘이 강해진 것 같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제게도 사람들에게 있는 감정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어느 한옥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상투를 튼 다 큰 남자가 울고 있었습니다. 남자 앞에는 백발의 여자가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누워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뺨에 갖다 대며 울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때 남자가 내뱉었던 말을 기억합니다. 이제는 형태가 있어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말을 기억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라는 언어 속에 담겨있는 남자의 슬픔이 제게도 느껴졌습니다. 검은색 정장 사이로 감춰져있는 제 가슴이 그것을 처음 느끼자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토할 것 같았습니다. 처음 접해보는 느낌이라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이제 이러한 것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신기했습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에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든 적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젊은 여자가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앞에 누워있는 남자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습니다. 그리고 흐느꼈습니다. 남자는 손을 들어 여자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손을 내렸습니다. 여자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거세져갔습니다. 저는 그때 내뱉은 여자의 단어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라는 단어에 담겨있던 여자의 애절함이 제게도 느껴졌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싫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저는 누구입니까.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제가 있어야만 했던 곳이 맞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거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마치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죄를 압니까? 모릅니다. 제가 왜 배우지도 않은 죄를 알고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위에 있는 한옥들과 달리 엄청 크고 넓은, 궁전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황금색 용이 그려져 있는 붉은 비단 옷을 입은 남자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낮에는 그 붉은 비단 옷을 입다가, 남들이 없는 밤에는 그저 평범한 비단 옷을 입고 갓을 쓴 채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 또한 그를 쫓아 나갔습니다. 제가 언제부터 그를 쫓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남자는 어느 초가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초가집 안에는 남자가 사는 곳에 있는 물건들과 비교되게, 낡은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남자는 초가집 안으로 들어가서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누군가를 불렀습니다.

 

연아, 내가 왔도다.”

 

그 말에 어느 방에서 한 여자가 나왔습니다. 여자는 수수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를 바라봤습니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바라보다가 다가가 여자를 안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봅니다. 이렇게 다정하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저는 왜 여기에 있습니까?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잘못 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제 의지대로 행동한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은 저는 항상 타의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그냥 눈을 감았다 뜨면 상황이 바뀌어 있고, 시간이 흘러있습니다. 더구나 제가 항상 봐왔던 건 안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보기가 꺼려질 만큼 징그러운 모습이거나, 속이 울렁거릴 만큼 서럽게 우는 모습뿐이었습니다. 모두 다 안 좋은 상황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척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잘못 온 것 같은,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계속해서 듭니다. 그러나 저는 떠날 수 없습니다. 두 남녀가 서로를 안으며 웃고 있는 장면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왜 떠날 수 없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떠날 수 없는 게 아니라, 떠나고 싶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건, 죄를 짓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게 된 건,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저는 며칠째 남자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여자의 초가집으로 가는 남자의 발걸음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넓은 보폭과 여유가 없는 숨소리. 저는 남자가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의 초가집에 다다랐을 때, 평소와 다른 남자의 행동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여자는 주저앉아있었습니다. 땅에 피를 토하고, 그것도 모자라 흩뿌리며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남자는 한눈에 봐도 떨리는 두 손으로 여자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안았습니다. 여자는 피를 흘린 땅 위로 눈물을 포갰습니다. 저는 그제야 제가 알맞게 있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러한 저는 대체 누구입니까.

 

기억을 꽤나 많이 떠오른 것 같은데 아직도 제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장 가까운 시간에 있었던 기억을 생각합니다. 새하얀 건물. 건물 맨 위에 달아놓은 초록색 십자가. 그 건물 안에 있는 한 호실. 유독 간호사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던 곳. 중환자실에 홀로 남아 산소 호흡기로 일분, 한 시간, 하루를 버티고 있는 꼬마아이. 그리고 꼬마아이 옆에 있던 한 할아버지가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가까운 시간에 있었던 기억입니다.

꼬마아이는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피를 같이 토해냈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할아버지는 아이의 피를 닦아주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병실 구석에 서서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언제부터 그 구석에 있었는지 잘 모릅니다. 아마 할아버지도 모르고, 아이도 모를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껏 제게 말을 걸지 않았던 사람들과 달리, 저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는 꼬마가 평소와 달리 무사히 잠들던 밤,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아주 잘 아네.”

 

할아버지의 말은 제게 있어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저도 저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저를 알 수 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저를 잘 압니까. 그는 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의 삶 뒤편에 사는 저를 어째서 그는 볼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제 이름을 압니까?

 

허허, 자신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인가. 하긴 모를 수밖에 없겠구먼. 사람들은 당신을…….”

 

그의 마지막 말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제 기억은 거기서 끊겼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억지로 기억을 찢어놓은 것 마냥, 어색하게 기억이 끊겨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릅니다. 눈을 떠보니 이곳에 있었고, 눈을 떠보니 이곳이 보였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그러나 역시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떠올렸던 기억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떠올랐다는 것은 아마도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거나, 아니면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얘기이니까요.

 

제가 누군지 당신은 압니까.

 

아벨을 시기한 가인. 인류 최초의 살인. 저는 그것과 관련 있습니까? 잘 모르겠지만, 왜인지 관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수백 수천 명의 갑옷을 입은 시체들은 저와 관련 있습니까? 왜인지 모르지만 그것도 관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주름진 얼굴은 저와 관련 있습니까? 아니면 바닥에 힘없이 떨어진 남자의 손은 저와 관련 있습니까? 피를 토하던 여인은? 호흡기로 생을 잇고 있던 꼬마는? 모두 저와 관련 있습니까?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불어와 저를 휘감습니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 말은 살아있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왜 살아있는 것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속이 울렁거립니다. 살아있다 라는 말은 꼭 느끼한 버터 같습니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버터를 먹을 때마다 사람들이 말하던 느끼하다는 말과 그들의 표정을 보고 지금 제 표정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저는 살아있다는 말에 거부감이 듭니다. 저는 왜 거부감이 듭니까?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하려했던 말은 무엇입니까? 저는 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아닙니다. 사실은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호흡기를 단 꼬마가 삶과 죽음을 왔다 갔다 할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여인이 피를 토했을 때, 남자의 손이 바닥으로 떨구어졌을 때, 그리고 백발의 여자가 주름진 웃음을 지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사실은 수많은 시체들을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사실 제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정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가 저를 보고 부르는 것이 이름이 된다면, 제게도 이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이제 제가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할아버지의 말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사실 거짓이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척을 하고 싶었습니다. 서로 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본 이상, 그들의 끝이 어떻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죽는 순간순간을 보는 것은 절망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미 가인이 아벨을 시기한 그때부터 태어났고, 제가 태어난 이상 사람들은 모두 언젠간 죽음을 맞이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사람들이 죽는 그 순간을 보기 힘들어서, 할아버지가 저를 가두는 것에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따라 어느 산속에 들어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를 출입구가 없는 산속에 넣어 놓았습니다. 산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산속에 들어오기 전부터, 저는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꼬마가 죽길 바라지 않는 할아버지의 마음처럼, 저도 누군가가 죽지 않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가 여기에 있으면, 이제 밖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무도 죽지 않게 되는 겁니까? 나쁘지 않은 상황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사실 잘 모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불어와 생명인 척 소리를 내도 저는 이제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돌아봐야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람은 붑니다. 마치 제가 뒤를 돌아보길 원하는 거 같습니다. 또 다시 바람이 불고, 저는 이제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제 제가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Who's 김day

?

성명 : 김승윤

이메일 : kim990727@naver.com

연락처 : 010 7537 1866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