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by 스노우 posted Jan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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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어머 내 정신 좀 봐 여보 일어나 늦었어!”

부스스한 머리를 추스를 새도 없이 말숙은 황급히 남편 중태를 깨웠다. 그는 다급히 자신을 깨우는 아내의 손길을 끌어안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1분만 더 자자

말숙은 한숨을 한번 쉰 다음 남편을 발로 차 침대에서 떨어트리고는 말했다.

“1분 같은 소리하네. 이 양반아 지금 늦었어! 빨리 일어나서 씻어! 지민이 학교 데려다 줘야지!”

지민이라는 말에 중태는 눈을 비비며 피곤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고 말숙은 서둘러 지민의 방으로 향해 지민을 흔들어 깨웠다.

지민아 학교 가야지 일어나

우음 5분만 더 자고

말숙은 지민의 엉덩이를 퍽 소리나게 때리며 외쳤다.

넌 고등학생이나 되었으면 스스로 일어날 줄 알아야지 아직도 엄마가 깨워줘야겠니? 하여간 누가 딸 아니랄까봐 지 아버지 닮은 것 봐. 왜 엄마의 성실한건 안 닮은거야?”

지민은 하품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참 아침부터 자화자찬 할거야? 밥이나 줘

밥만 푸면 되.”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장실에서 중태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고 말숙은 지민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밥 차릴 테니까 얼른 씻고 나와

말숙은 지민의 방에서 나와 식사를 준비했고 중태는 금방 옷을 다 갈아입고는 어느새 식탁에 앉아있었다. 말숙은 중태의 자리에 밥을 올리며 말했다.

참 당신은 밥 먹을 때만 빨라

당신도 택배기사 해봐 밥에 환장 안하나

말숙은 남편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으휴 잘났수

자신을 아이처럼 대하는 말숙의 태도에 중태는 버럭 신경질을 냈다.

아이! 밥 먹는데

왜 다정해 보이고 좋구만

언제 나왔는지 말끔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지민이 웃으며 말했다.

밥 차렸으니까 얼른 먹어라 네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해놨어

지민은 말숙의 배를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역시 엄마야!”

이년아 내 배 만지지 말고 밥이나 먹어

이 말을 끝으로 각자 밥을 먹는데 집중을 했고 세 식구 모두가 밥그릇을 비우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민은 이를 닦고는 먼저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아빠 엘리베이터 잡아 놓을게 빨리 나와

중태는 조금 전 급하게 나오느라 짝짝이로 신은 양말을 갈아 신으며 대답했다.

당신 오늘 지민이 생일인거 알지?”

말숙이 설거지를 하며 물어왔고 중태는 양말을 다 신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물론 알지 그런데 왜 미역국을 안한거야?”

지민이 미역국 싫어하잖아 당신 진짜 오늘 지민이 생일인거 알지?”

말숙이 다시 한번 물어오자 중태는 신경질을 내며 말 했다.

거참 안다니까 이 사람아 그래서 오늘 지민이 생일 선물 사려고 그동안 숨겨둔 비상금까지 쓰려고 하잖아

뭐 비상금?”

아이고 엘리베이터가 도착 했겠네

중태는 다급히 밖으로 나갔고 말숙은 중태를 쫓아가려다 착용하고 있는 고무장갑에 묻어있는 세제가 떨어져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까봐 관두었다.

현관문 밖으로 나오자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 딸이 보였고 엘리베이터는 중태에게 빨리 타라는 듯 삐삐 경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탄 중태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지민에게 말했다.

지민아 휴대폰 좀 그만 만져

, 알았어.”

대답을 했지만 여전히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지민의 모습에 약이 올랐는지 중태는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 뭐야!”

이 녀석아 아빠랑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허구한 날 휴대폰만 만지고 있어?”

지민은 입맛을 다시며 휴대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알았어, 근데 아빠 오늘 내 생일인거 알아?”

그럼 알고 있지. 그런데 넌 멋없게 생일이라고 말해주면 어떡하니?”

지민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아빠가 내 생일을 기억한 적이 있어야지

때마침 1층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자 중태는 헛기침을 하며 문 밖으로 나섰다.

에헴 아빠는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항상 일이 바빠서

됐어, 이번엔 꼭 챙겨줘.”

그래 알았다. 이번에는 꼭 챙겨줄게!”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새벽의 찬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시원한 공기에 중태는 잠시 눈을 감고 음미를 했지만 지민은 추운지 덜덜 떨며 중태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빠 나 추운데 빨리 차에 들어가자

상쾌하지 않아?”

지민은 중태의 주머니에 있는 차키를 빼내며 말했다.

상쾌는 무슨, 새벽 공기가 제일 더럽거든요?”

그래? 어째서?”

흠흠 새벽에는 미세 먼지나 매연 등이 바닥으로 가라앉아서 안좋아요~ 오히려 저녁 공기가 더 좋지요

그래 잘났다 학교나 가자 늦겠다.”

중태는 지민에게서 차키를 받아 자신의 낡은 트럭의 문을 열었다.

어휴, 아빠 세차 좀 해야겠다. 차가 이리 더러워서 되겠어?”

부르릉~ 시동을 걸며 중태는 말했다.

허허허 자고로 차는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외양이 뭐가 중요해

... 아빠는 멋진 자동차나 그런 거 가지고 싶지 않아? 남자들은 멋진 차 같은 거 가지고 싶어 한다던데

중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글세.. 지민이 너랑 네 엄마 말숙이만 있으면 아빤 됐다

지민은 토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우엑~ 그런 느끼한 말을 어떻게 맨 정신에 하시지?”

중태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보다 학교생활은 잘 하고 있어?”

뭐 잘하지

중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친구들은? 요즘 왕따가 유행한다던데 뭐 그런 거 당하는 거 아니지? 혹시 왕따 당하면 아빠한테 말...”

지민은 중태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왕따는 무슨 내 성격에 왕따 당하는 거 봤어? 그리고 우리 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다슬 초등학교, 다슬 중학교, 다슬 고등학교 까지 같이 올라 와서 친구들이 아빠 핸드폰 번호도 알걸?” “허허 역시 우리 지민이 친구들이랑 잘 지내서 다행이다

에휴... 친구들은 좋은데 학교가 싫어.. 맨날 야자에... 공부에 공부~ 게다가 방학 때도 학교에 나오라잖아

다들 그런 과정을 겪잖아.. 학창 시절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지민은 순간 미안한 표정이 되었지만 중태는 피식 웃으며 지민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이는 것으로 답했다. 어느새 학교 정문에 도착했고 지민은 차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아빠 이따 데리러 올 거야?”

.. 글쎄 오늘 일찍 끝나면 데리러 올게

알았어, 연락해!”

그래 학교 조심히 갔다 와

지민이 교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중태는 차의 시계를 한번 힐끔 보고는 페달을 세게 밟았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 택배 회사에 도착한 중태는 허겁지겁 사무실로 이동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깐깐하기로 소문난 새로 들어온 정재호 팀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재호 팀장은 중태가 문을 열고 들어옴과 동시에 그를 무섭게 한번 쏘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박중태 씨는 회사 생활이 장난인가 봅니다?”

죄송합니다.”

중태 그가 매일 같이 늦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지각을 안하는 것도 아니었다. 딸 지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회사에 출발할 때면 수많은 회사원들의 차들로 인해 길이 막히는 건 빈번히 있어온 일이지만 팀장은 항상 그보다 늦었기에 중태 그가 아무리 늦어도 팀장보다는 회사에 일찍 도착했다. 물론 지금의 깐깐하고 젊은 피를 가진 정재호 팀장이 아닌 그보다 열세살 많은 나이에 눈이 침침하다며 늘 돋보기안경을 끼고 다니던 한정호 팀장이 자리 할 때의 이야기이다. 싸늘한 사무실의 공기가 중태 그가 오기 전부터 이미 팀원들이 새 팀장에게 혼이 났다는걸 알려주었고 회사에 10년을 가까이 근무한 중태는 이럴 때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저 죄송하다 고개를 조아리는 것, 비록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주부 습진으로 고생하나 병원비가 아깝다며 병원에 가지 않는 아내와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지민이를 위해서도 그의 자존심은 접어두어야 했다.

죄송합니다.”

정재호 팀장은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고치며 말했다.

죄송하다구요? 박중태씨 회사에 근무한지 얼마나 되셨죠?”

올해로 십년 되었습니다.”

정재호 팀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그만 둘 때 되었잖아요? 그만둘 생각 없습니까? 늙어서 모두에게 짐만 되는 거 같은데 말이죠.”

“.....”

왜요 기분 나쁩니까?”

중태는 욕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간신히 참아내었다. 팀장은 그런 중태를 보며 피식 웃고는 말했다.

오늘은 현장근무나 하세요. 어디 예전만큼 일을 잘 하나 보죠.”

팀장은 찬바람을 휘날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중태의 절친 준식이 씩씩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제기랄 새로 온 팀장 녀석 지가 아무리 팀장이여도 그렇지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아주 막말을 하는구만, 너 괜찮아?”

중태도 준식을 따라 팀장 욕을 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 괜찮아

그보다 오랜만에 현장 일인데 잘 할 수 있겠어?”

준식이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자 중태는 걱정 말라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마라 여기 생활 십년인데 배달 일을 잊어먹겠냐

... 하긴 넌 일 잘하기로 으뜸이었으니까 파이팅해라. 오늘만 힘들면 내일은 다시 사무직 할 거 같으니까 짜증나도 참고!”

짜식 네 밥그릇 걱정이나 해라 보아하니 새 팀장 깐깐해서 너 평소 하던 대로 대충 결제 받으려 하면 바로 불호령일거다.”

준식은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주는 중태가 고마운지 장난스럽게 그의 어깨를 치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상하차를 하는 일은 중태의 생각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나이가 먹어서인지 예전보다 물건이 배나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젊은 친구들이 무거운 물건은 그를 대신해 들어주어서 중태는 비교적 쉽게 택배 차에 물건들을 실을 수 있었다.

여기 배달리스트입니다

갈색머리의 건장한 청년이 리스트를 건내주었다. 지민의 또래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가난한 집안 때문에 돈을 벌기위해 택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중태는 배달리스트를 받고 청년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차에 타 출발했다.

처음 배달은 불안했다. 한동안 배달 없이 사무직을 하다 보니 그간 배달하던 길이 헷갈린 것이다. 다행히 급속도로 발달한 현대문명의 산물 네비게이션이 그가 배달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다음 배달할 집의 리스트를 보자 중태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버렸다. 배달을 하며 흥얼거리던 콧노래는 코 속으로 다시 들어갔고 라디오의 산만한 전파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움직였다. 산만한 주택가, 꼬불꼬불 놓아져있는 길과 낡은 벽들 그리고 경사진 언덕을 열심히 땀을 닦으며 올라간 중태는 마침내 한때는 푸른 페인트로 반질하게 칠해져 있었지만 지금은 세월의 흔적으로 붉게 변해버린 낡은 철문 앞에 섰다. 그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문에선 사람이 왔음을 알리듯 시끄러운 끼이익 소리가 났고 그런 소리에 백발의 꾀죄죄한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왜 이리 늦은...“

화를 내려던 노인은 중태의 얼굴을 보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고 중태는 아무 말 없이 택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노인은 어버버 거리며 중태의 앞으로 다가왔고 그는 그런 노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해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여기 싸인 해주세요

노인은 울먹거리며 중태의 어깨를 쳤다

"이놈아!! 왜 연락을 안한겨! 내가..내가 얼마나 널 찾아 다녔는디!!“

중태는 뒤돌아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니 나가려 했다. 노인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기 전에는 노인은 이제 눈물을 흘리며 중태의 옷자락을 마치 생명줄이 되는 것처럼 얼마 되지도 않는 힘으로 꽉 쥐었다.

"이눔아! 내가 잘못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라! 난 이제 술 같은 거 안 먹으니까 제발 돌아와 다오"

중태는 노인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분노에 가득차서 말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술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끊으셨어야죠!“

중태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고, 노인은 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하게 울고만 있었다. 차에 돌아온 중태는 연신 씩씩 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자신과 그의 어머니에게 폭력과 욕설을 서슴지 않던 아버지.. 그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느 흔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알코올 중독자 가장을 둔 집안의 레퍼토리와 똑같은 일이 자신에게는 현실이었다. 보고 싶지 않던 아버지를 만난 것이 그의 마음에 알 수 없는 더러운 감정을 넣은 것일까, 아니면 그에게 싸늘히 말한 것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형편없이 저런 꾀죄죄한 모습으로 사는 아버지의 모습 때문인지 그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알 수 없는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고 왜인지 화가 날 뿐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 비행기 한대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민은 책상에 엎드려서 몽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가 나른한 하품을 하고 눈을 감는 순간 따악! 지민의 머리에 나무 몽둥이가 떨어졌다.

"넌 잠이 오냐 잠이 와? 지금 시험 기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선생님 전 예체능이잖아요~"

"허이구? 예체능은 머리가 비어도 된데? 빨리 책 펴고 공부 해"

지민은 하는 수 없이 가방에서 책을 꺼내었다.

"으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수학"

선생님은 다시 칠판 앞으로 가 학생들에게 적분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민은 잠시 집중 하는 듯 했지만 대체 저게 뭔 말이야 같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수학 책에 낙서를 시작했다. 그림은 어릴 때부터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 지민의 공책과 교재에는 항상 낙서가 있었다. 그림을 얼마 그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쳤고 지민은 그리던 그림에 마침표를 찍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민아~“

그녀의 절친 김다정, 다정은 언제나 체육복을 입고 다닌다. 화장도 안하고 말이다 고등학생 의 여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꾸미기 좋아할 것 같지만 다정은 공부에 묻혀 사는 어쩌면 지민과는 정 반대의 사람이었다. 서로의 반대점이 끌린 것일까, 둘은 언제부터인지 절친한 친구가 되어 늘 함께 다녔다.

~ 어쩐 일이야? 쉬는 시간에 공부도 안하고

다정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지민의 어깨를 툭 쳤다.

체육시간이야

어휴 그럼 그렇지 네가 어쩐지 공부를 안 하고 나한테 오더라.”

에이~ 체육시간이기도 하지만 너 얼굴도 볼 겸 온거지.”

지민은 과장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쇤네의 얼굴도 보러 와주셔서 아주 감사합니다 아가씨

다정은 장난스럽게 지민을 밀치고 말했다.

알았어 미안해~ 내가 빵 살 테니까 화 풀어

자신의 팔에 앵기면서 아양을 떠는 다정의 모습에 지민은 화를 풀고 다정과 함께 매점으로 갔다. 쉬는 시간 매점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과자를 하나 사기위해서는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둘은 하는 수 없이 한참을 서서 기다렸고 마침내 자신들의 차례가 다가왔는데 누군가 갑자기 새치기를 해버렸기에 다정과 지민은 화가 난 얼굴로 앞 사람의 등을 두드렸다.

뭐야?”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사람은 다름 아닌 홍주환 학교 내에 소문난 양아치였고 친구들을 상대로 삥은 물론 폭력까지 행사하는 아주 질 나쁜 녀석이었다.

여기 줄 안보여?”

지민이 자신의 뒤에 있는 무수히 긴 줄을 가리키자 홍주환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뭐 어쩌라고 저 새끼들이야 다 내 밑인데 내가 굳이 줄 서서 기다려야 하냐?”

마치 펀치를 한방 맞은 듯 지민은 잠시 벙쪄서 그를 보는 사이 어느새 그는 계산을 마치고 유유히 떠났다. 뒤늦게 정신 차린 지민은 자신을 말리는 다정의 팔을 뿌리친 채 주환을 쫓아갔고 계단 위를 올라가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지민은 마치 성난 황소처럼 거칠게 주환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 때문에 그가 들고 있던 빵이 바닥으로 떨어져 엉망이 되었다. 그는 잠시 바닥에 떨어진 빵을 바라보다 다짜고짜 지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강력한 일격에 지민은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바닥에 심하게 머리를 부딪쳤고 흐려지는 시야 속 매점에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다정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지민은 기절해버렸다.

 

부아아앙

과속!,과속!,과속!’

네비게이션이 계속해서 과속임을 알려주었지만 중태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계속 달리다 어느 차와 부딪칠 뻔해서야 드디어 속도를 낮추고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나왔다. 그는 한숨 한번을 쉬고는 품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젠장

자신의 다리를 붙잡으며 가지 말라던 노인.. 아니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그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멍하니 하늘로 올라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을 찌르는 담배 연기가 따가워서인지 아니면 아버지 때문인지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엄마!!’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어머니의 모습에 어린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구급요원들은 피를 흘리는 소년의 어머니를 서둘러 구급차에 태웠다.

소년은 어머니를 따라갔고 초록색 술병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증오어린 눈빛을 쏘았다.

차의 문이 닫히고 더 이상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자 소년은 다시 눈물을 쏟아내며 어머니를 부여잡았다.

구급요원은 그런 소년을 계속해서 다독여주었다.

괜찮을거야. 병원은 멀지 않으니 금방 괜찮아 지실거야! 걱정마렴!’

구급요원의 말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안색은 점차 창백해져만 갔다.

골든타임이 다 지나겠어. 대체 왜 이리 못가는 거야!’

누군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치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여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추돌사고가 난 모양이에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달라고 말해야해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응급 환자입니다 비켜주세요!’

운전수가 마이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아도 차들은 좀처럼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응급 환자입니다 비켜주세요!!’

한 두 대의 차가 비켜주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끼어드는 검은 승용차 한 대를 보며 구급요원은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어머니를 보며 울고 있는 중태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차들은 계속해서 몰려왔고 구급차는 주위에 가득한 자동차들 사이에서 홀로 힘겹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구급차의 애절한 소리를 사람들은 차량의 두꺼운 검은 창으로 애써 외면했고 차량들 사이 구급차는 고립되었다.

 

중태는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던지고 다시 차에 탔다.

다음 주소지를 확인하자 지민의 학교 근처였고 그의 복잡했던 얼굴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가족이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늘 한 가지 생각이 박혀 있었는데 아내 말숙과 연애를 할 때도 결혼식장에 수줍은 미소로 자신과 사랑의 입맞춤을 할 때도 언제나 그의 머리 한구석에는 자신도 혹시 아버지처럼 되지는 않을까 혹시 그도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아버지와 달랐다. 술은 혹시나 아버지처럼 될까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아버지처럼 가족을 굶기기 싫어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을 해왔다. 그렇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중태의 굳어진 표정이 조금 펴졌다. 그는 다음 배송지로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동했다. 순조롭게 택배를 전해주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있는데 근처에 사고가 났는지 정체되는 차량들이 보였다. 비가 쏟아질 듯 시커멓던 하늘에선 결국 비가 쏟아져 내려왔고 빗물로 인해 흐릿하게 보이는 백미러에는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차가 막혔지만 사람들은 구급차가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차들을 조금씩 비켜주어 구급차가 지나갈만한 자리가 났다. 이제 중태만 비켜주면 구급차는 환자를 순조롭게 이송할 수 있을 것이다. 백미러에 비친 중태의 표정이 싸늘했다. 주변의 자동차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된 것 같았다. ‘응급환자인데 뭐하는거야. 저 택배트럭은!’ ‘왜 안 비켜주는 거야!’

어떤 차량은 중태를 향해 클락션을 울렸다. 하지만 중태는 비키지 않았다.

 

환자의 심박이 떨어지고 있어요!”

조수석에 있던 안전요원이 소리쳤다.

이런 젠장 저 검은 차는 왜 안 비켜주는 거야!!”

그는 급기야 차에서 내려 검은 차량에 달려가 창을 두드려 뭐라 소리쳤지만 차량의 운전자는 차에 내려 구급 요원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중태의 옆에서 어머니의 상태를 봐주던 구급대원은 중태를 안심시키려는 듯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금방 갈수 있어. 저 차만 비켜주면 금방 병원에 갈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으렴.”

금방이라도 울 듯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중태는 애써 고개를 끄덕이고는 산소 호흡기에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 죽지마.. 엄마 나 버리고 가지마! 알았지? 내가 앞으로 설거지도 열심히 잘 하고 용돈 달라고 떼쓰지도 않을 테니까 죽지마! 엄마, 엄마 죽지...”

 

“6709 비켜주세요!! 6709 트럭 비켜주세요!! 응급환자입니다!”

중태의 눈에 불이 붙었다.

그는 아예 차량의 시동을 꺼버리고 차 문을 잠가 버렸다. 주변 사람들이 중태의 차량을 향해 빵빵 거리기도 했고 몇몇 사람은 중태의 차 앞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시간이 지나자 응급요원이 달려와 차량의 창을 두드리며 호소했다.

아저씨 비켜주세요!! 응급환자라구요!”

중태는 그런 요원의 말을 팔짱을 낀 채 무시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중태의 입이 어렵게 열렸다.

“30..”

?”

그때 그 검은 차량도 30분간 막았었지

응급요원은 알 수 없는 중태의 말에 황당한 듯 되물어 왔지만 중태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무려 30분 동안 길을 막고 있던 중태의 차량을 향해 사람들의 무수한 삿대질과 욕설이 오갔지만 그는 꿋꿋이 버티다 30분이 되자 그제야 차에 시동을 걸고 자신의 다음 배달 지점으로 이동했다.

응급차량을 막으면 그는 수십년간 계속되어 왔던 검은 차량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차량에 대한 분노는 더욱 커질 뿐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핸들을 거칠게 주먹으로 내리친 중태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좋지 않은 기분으로 이동하는 중 그의 핸드폰이 울었다.

번호를 확인하니 자신의 딸 지민이었고 그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지민...”

혹시 지민양 아버지 되십니까?”

전화기속 다급한 목소리와 분주한 주변 소리들이 들려오자 지민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중태는 불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맞습니다만?”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오셔야겠습니다. 따님이 위급한 상태에요!”

자세한 위치를 전해들은 중태는 곧장 핸들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에게도 병원에서 전화가 갔는지 자신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하고 있었지만 중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멀지않은 거리지만 다급한 마음 때문인지 기나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병원에 도착했고 중태는 환자가 있다는 곳으로 곧장 뛰어갔다.

지민아!!”

멀리 침상에 숨 가쁘게 누워있는 지민의 모습이 보이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환자들은 지민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중태를 간신히 부여잡고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사의 어떠한 설명보다도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응급요원들의 속닥거림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젠장 조금 전 미친 택배기사가 막지만 않았어도 저 아이는 괜찮았을텐데

지민의 혈압은 점점 떨어져갔고 의사들은 CPR을 하고 제세동기를 사용해보았지만 지민의 옅은 숨은 꺼져갔고 결국 하얀 이불을 지민의 얼굴에 덮어주었다.

언제 왔는지 중태의 아내 말숙이 죽어가는 지민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고 의사들은 그런 그녀를 막지 않았다.

모두가 침울한 표정으로 중태의 가족을 보았지만 중태 그 자신은 지민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는 멍하니 이제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지민을 바라보다 다리의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졌다.

의사들이 그를 부축해주려 달려왔지만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나는..나는 아버지랑 똑같은 놈이야..’

말숙은 엉엉 울며 중태에게 다가왔다.

여보 어떻게 좀 해봐요 우리 지민이 어떻게 좀..”

그런 말숙과 중태의 앞에 꾀죄죄한 몰골의 노인이 다가왔다.

..이눔아 이..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겨?”

아버지?”

중태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을 멍하니 보았다.

아버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괴물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보며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아버지의 얼굴에 주먹질을 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아버지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그를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떨어지게 끌고 갔다.

중태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눈에 비친 자신을 보았고 그가 아주 기쁜 듯 웃고 있음을 느꼈다.


성명: 한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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