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작은 술 집.
서 너 개 정도의 테이블은 주인 없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구석의 2인용 테이블에 중년의 남성이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실 비가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우산을 쓴 사람이 반, 쓰지 않은 사람이 반.....
술집 문이 열리고 우산을 쓰지 않아 외투 어깨가 조금 젖은 다른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구석에서 술을 먹고 있는 친구를 보고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그에게 다가갔다.
“기다리라니까. 벌써 마시고 있어.”
그는 자신의 앞자리에 앉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고 다시 술잔으로 시선을 향했다.
“이제 술 좀 줄이지. 몸 생각도 해야지. 벌써 혼자서 두병이나 마셨구만.”
그는 아랑곳 않고 다시 술잔을 채웠다.
할일 없이 작은 TV만 응시하고 있던 주인집 아줌마는 새로 온 손님을 위해 잔을 챙겨주었다.
“소주 한 병도 같이 주소.”
소주를 받은 사내는 어느새 비어버린 친구의 소주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그제야 그의 시선이 앞 사람에게로 향했다.
“비가 오나?”
“조금.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뭐할 정도?” 이번에는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느닷없이 그는 술이 든 잔을 쾅 내려놓으며 성을 냈다.
“에이. 올 거면 좀 시원하게 오지. 저게 뭐야?”
“이봐. 김명훈이. 별걸 잡고 트집이야 트집은..조금만 더 마시고 빨리 들어가.”
두어번 정도 술병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아무런 표정 없이 입에 술만 털어 넣기 바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친구, 인어공주 이야기 알아?”
“알다마다. 우리 공주님 어렸을 때 하루에 몇 번씩은 읽어줬던걸.”
무심코 대답한 사내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다시 술잔을 채웠다. 언뜻 그의 눈가에 물기가 어리는 듯 했다.
2013년 12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이었다.
명훈은 초조함에 손을 만지작거리며 TV를 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찬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명훈은 재밌게 떠들어대는 그들의 목소리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 후에 딸이 방에서 나왔다.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어떻게 됐니?”
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아빠. 합격했어요.”
그러나 명훈은 아직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
“어디에?”
딸은 말이 없었다.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명훈은 그런 딸을 잠시 노려보다 말했다.
“안 돼. 거기는 절대 안 돼.”
딸은 망연자실 한 듯 잠깐 주저앉았다. 그러나 이내 일어나 명훈에게로 다가가서 애원했다.
“아빠....아빠! 제발 제 선택을 허락해주세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저의 인생이잖아요.
저를 숨 쉬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하며 살고 싶어요!”
“안 돼!”
고함과 함께 딸의 얼굴이 돌아갔다.
“절대 안 된다! 요즘 세상에 글쟁이가 어떻게 밥을 벌어먹고 사냐? 너, 나 사는 꼴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나도 그랬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지. 그런데 그 결과가 뭐냐? 하루하루 노가다 신세에,
돈 많은!능력있는! 남자 찾아 떠난 네 어미까지!
이런 시궁창 인생이 따로 없어. 네 꿈이 절대 밥은 먹여주지 않는다.
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니 잘 알아들어.
난 너만은 정말 잘 키우고 싶다.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딸은 말없이 흐느꼈다.
“네가 분명 그랬다. 문예창작과에 지원하는 대신 A대 경영학과는 꼭 쓰겠다고. 지원만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그랬지 않니?
어디 가고 싶으면 가봐. 등록금은 한 푼도 대주지 않을 테니. 이 집에서도 못살게 될 줄 알아라.”
명훈은 딸을 지나쳐 현관 쾅 닫고 나가버렸다.
나가기 전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본 딸의 뒷모습은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렸다.
“참 웃기지.....?”
명훈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사내는 그런 친구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난 그저..... 딸아이가 나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어.. 내 딸 만은.. 멋진 정장을 입고..
예쁘게 단장한 머리로 평범한 회사에 나갔으면..했어....매월 받는 월급으로 화장품도 사고.....
나중엔 내 딸아일 사랑해줄 좋은 남자 만나 시집도 가고..귀여운 자식들도 낳고...
그냥 난 그랬으면 했어.. 딸아이의 글들을 보기 전까진.”
명훈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괴로운 듯 손으로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 잘 썼데. 보니까.. 내 글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삼류 소설에 불과했던 내 글과는 다르게.
아주 재밌데...
그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글들은 처음 읽어봤어..”
“......”
“말해줄걸.. 윤이야. 네 글 정말 재밌더라. 작가가 되면 금방 유명해 지겠다.”
명훈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윤이는 그랬다. 다섯 살 때부터 책을 읽다 책속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기 일쑤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일주일에 이천원 씩 용돈을 주면 쓰지 않고 저금통에 넣어두어 한 달에 한번 책을 사왔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다음 달 다른 책을 살 수 있는 돈이 모일 때까지.....
명훈은 윤이가 책을 읽는게 싫었다. 사실은 두려웠다. 그래서 윤이가 지금껏 사왔던 책들을 모두 팔아버렸다.
책을 판 돈으로 명훈은 피자를 사왔다.
그 때 윤이는 바닥에 엎드려 반나절을 울며 소리를 질렀다. 누구의 손길도 받지 못한 피자는 그대로 식어버렸다.
명훈은 우는 딸아이의 모습에 덩달아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고 딸에게 눈물이 베인 손을 휘둘렀다.
그 날 이후 윤이는 책 사는 것을 멈췄다. 대신 직접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책 표지에 제목을 쓰고 한자 한자 정성스러운 글씨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명훈이 딸의 글을 발견한 것은 그 공책이 5권 째로 넘어가던 날이었다.
아빠가 자는 줄 알고 몰래 방에서 책을 쓰던 윤이는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명훈 역시 딸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명훈은 그냥 문을 닫고 나갔다.
윤이는 생각과는 다른 아빠의 행동에 용기를 얻었는지 공책을 가져와 명훈에게 내밀었다. 수줍게 다가와 공책을 주는
딸아이의 모습은 그 전처럼 겁에 질리거나 주눅이 든 표정이 아니었다.
설렘, 기쁨, 쑥스러움이란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명훈은 말없이 공책을 받았다.
그리곤 10년이 지나도록 그것을 펼쳐보지 않았다.
그가 그것들을 보게 된 건 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였다. 장롱을 열어 딸의 옷을 개던 명훈은 구석에 놓여 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명훈은 상자를 열어보게 된 걸 후회했다. 수 백 권의 공책이 상자에 들어있었다.
각 공책들에는 딸이 담겨있었다.
딸의 웃음이 담겨져 있었고, 눈물이 담겨있었다. 명훈은 밥 먹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앉아 모든 공책을 다 읽었다.
마지막 공책을 덮었을 때, 명훈은 그 공책을 가슴에 껴안고 오열했다. 아니, 딸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재밌어..재밌구나...윤이야.....너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구나!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너무 미안해. 미안하다.
미안해.....”
“좀 더 빨리 읽을걸. 십년 전 네가 처음 나에게 공책을 내밀었을 때, 그때 그걸 읽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넌 지금쯤 행복하게 웃으며 네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있겠지. 내 옆에 있겠지. 웃고 있겠지! 그렇지! 윤이야!”
“아니야. 네가 공책을 내밀었을 때 그것들을 찢고 너에게 손찌검을 했었다면,
그럼 넌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았을까? 그랬을까?”
명훈은 미친 사람처럼 빈 방에서 고함을 질렀다. 끊임없이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윤이야....사랑하는 내 딸아....내가 너를 죽게 했구나....내가 널 거품으로 만들었구나.....
아버지란 이름으로 너의 뒤에 서있었지만, 결국 난 마녀에 불과했구나.... 너의 모든 것을 빼앗고..결국 죽게한....
나쁜놈에 불과했구나.......”
계속 울부짖던 명훈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공책들 위로 쓰러졌다.
감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공책을 적시고 있었다.
명훈의 눈물에 윤이가 젖어들었다. 명훈은 그렇게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꿈 속에서 딸아이가 나왔다.
고된 삶에 찌들었지만 30대라는 젊은 나이 덕분에 힘이 넘쳐 보이는 사내 옆에 귀여운 아이가 앉아 기대고 있었다.
명훈은 벌써 5번째 인어공주 이야기를 읽어주고 있었다. 목이 따갑고 눈이 시렸지만 명훈이 들고 있는 책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는 자식의 모습에 웃음이 나고 힘이 났다.
인어공주 동화책이 갑자기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고 이내 다른 상황으로 이동했다.
딸이 울고 있었다. 찢어진 책들과 덩그라니 놓여져 있는 피자가 보였다.
명훈은 잔인하게 펼쳐진 앞 상황에 고개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명훈이 눈을 뜬건 꼬박 이틀이 지난 후였다.
명훈은 밥 먹는것도, 씻는 것도 잊은 채 윤이의 상자를 들고 일어섰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친구....난 그냥 두려웠어.. 너 알지, 넌 내 마음 알지. 응?”
사내는 말없이 명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내가..... 내가 윤이를 거품으로 만든거야......”
한참을 흐느끼던 명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서는 바람에 테이블이 흔들려 소주잔이 엎어져 액체가 바닥으로 주르륵 흘렀다.
“윤이를 만나러 가야겠어. 가서 얘기해 줘야겠어!” 그리고 그는 뛰쳐나갔다.
어느새 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내리고 있었다. 비에 젖은 사람들은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지만 한 남자는 비에 푹 젖은 채 어딘가로 계속 달렸다.
홀로 남은 사내는 멍하니 친구가 떠난 자리를 응시했다. 이제는 방울방울 테이블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액체도 응시했다. 가만히 술잔을 만지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삼일이 지났다.
넓디넓은 백사장에 한 남자가 외롭게 앉아있다.
그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건 소주 두병과 故김명훈 이라고 적힌 유골함뿐이었다.
그는 말없이 자리를 지키다 힘겹게 일어났다. 그는 뼛가루를 한 움큼 쥐었다.
컴컴한 바다를 향해 뻗은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곧 그의 손에 잡혀있던 친구를 바다를 향해 놓아주었다.
유골함이 바닥을 드러내고, 그는 곧바로 소주 한 병을 열어 바다를 향해 사정없이 뿌려댔다.
그리곤 주저앉아 바다를 응시했다.
“ 난 자넬 이해할 수 있어...그렇고말고....”
명훈이 가지고 있었던 상자는 이제 그에게로 왔다. 남자는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상자를 들고 일어났다.
남자의 주머니에서 명훈의 편지가 떨어졌지만 그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느릿느릿 걸어 백사장을 떠났다.
한 달 뒤, 명훈은 H출판사의 연락을 받고 담당자를 만났다.
윤이의 책을 출판해주기로 했다.
그는 인세료를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출판 담당자의 마음이 더 쉽게 열렸는지는 모르겠다.
“저자의 이름은 당신 이름으로 올리면 되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남자는 바로 대답했다.
“김 명훈, 김 윤이.. 공동저자로 올려주시오.”
시간은 흘렀다. 변화라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이름: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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