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異蹟)의 날’
석지영
영원히 뜨이지 않을 것 같던 눈두덩이가 어둠의 무게를 겨우 이겨내는 시간이 왔다. 나는 고물상의 수레에 내던져진 찌그러진 깡통마냥, 잔뜩 구겨진 몸을 겨우 일으킨다. 고작 상반신을 일으켰을 뿐인데 벌써 힘겹다. 고철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옆자리의 온기를 찾아 손을 움직인다. 바스락, 사락, 그러나 이불보에 스치는 소리만이 들릴 뿐, 익숙한 숨소리나 체온이닿지 않는 것에 졸음 가득하던 눈 앞 세상이 맑아진다.
‘춘석이, 그 얘기 들었나? 요새 혼자 댕기는 노인네들을 잡아다가 창시를 다 털어가삔다 카더라. 건넛마을 연이 할미도 그리 됐다캐. 세상이 참말로 흉해. 자네도 조심해라.’
‘거 참, 자네는 그 말을 믿나? 짐승도 아니고 사람 창시를 어에 그래 털어간다고 그캐. 그런거 다 따지믄 화장실이라고 무서버서 가겄나?’
언젠가 댐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옆집 김 씨가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장사치들이 힘없고 약한 노인들을 데려다가 간이며 쓸개며 다 팔아버린다는 괴소문. 순간적으로 눈앞이 핑 돌았다. 그러나 이내 그게 무슨 눈 먼 소리냐며 비웃었던 그 날처럼, 우스갯소리라고 치부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 여자가 갓난 애기도 아니고 잠시 어디 볼 일을 보러 나갔으려니 하고 생각한다. 갓난이는 나인 것 같다. 나이를 헛것으로 먹었는가, 자다 깨보니 옆에 없다는 걸로도 이리 별스런 생각을 하다니.
“이 망할 여편네가 아침 댓바람부터 어딜 싸돌아댕기나.”
밤새 그리도 앓더니. 고집스럽게 비죽 올라오려는 염려는 목구멍 안으로 꾹 누르며, 뿔이 난 목소리만 내뱉는다. 받아주는 이 없는 빈 방에서 내뱉은 불퉁한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그 울림이 이상하게 쓸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여자가 어딜 갔나. 잘 걷지도 못하는 것이 나가려면 깨워서 같이 가자고 조르기라도 하지. 게으른 남편이 깰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지겨워서 마실 나갔나. 있다가 돌아오거든 잔뜩 타박이나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무렵, 갑작스럽게 전화소리가 적막을 깬다. 따르릉, 따르릉, 이 여자가 전화를 걸었나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어 올리는 손이 나름 재빠르다.
“여보시오.”
“예, 아버지. 접니다.”
이 여잔가 했더니 아들놈이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전화가 오지 않는 놈인데, 오늘은 무슨 연유로 연락을 하는가.
“그래, 먼일이고?”
“아, 이번 주말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급하게 출장 일정이 잡혀서요. 이번에는 못 내려갈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온다고 했던 것도 같다. 매번 내려온다, 내려온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지, 매번 출장이라느니 회의라느니 못 간다는 말만 여러 번이었다. 이제는 고향에 내려온다는 이놈의 말에 별로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자연스레 기억에서 지워버린 듯하다.
“그래, 바쁘다카이 뭐 별 수 있겠나. 니가 내려와가 확인 안해도 내캉 너거 어무이랑 잘 살고 있으이 염려 마라. 니는 너거 식구한테나 신경써.”
“예, 안 바빠지면 그때 내려갈게요. 죄송해요, 아버지.”
특별할 것도 없는 통화가 끝이 났다. 어릴 때는 아부지요 하고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 다니던 녀석이었는데, 언제 컸다고 이제는 ‘아버지’하며 서울말을 한다. 이제는 직장도 잡아서 일을 곧 잘하고 있고, 제 식구도 꾸렸다.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을 녀석일 텐데, 낡아빠진 부모라고 찾아올 틈이 있겠는가. 굳이 신경써주길 바라지도 않고 말이다. 매번 찾아뵙지 못한다고 할 때마다 녀석은 쓸데없이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긴 홍삼이며 보약을 보내주고는 한다. 그걸 받으면서도 ‘이거 내 자식 놈이 준 것이야’하고 마냥 신나하던 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이 녀석의 얼굴을 못 본지가 얼마나 지났더라.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넷, 세어 보다가 이내 포기한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놀던 손주 놈들은 얼마나 컸을까. 소문난 약방에서 달인 보약보다 자신의, 손주들의 젊음으로 가득 찬 뜨거운 손으로 내 손 한 번 힘껏 잡아주는 그것이 더 큰 힘이라는 걸 모르나. 신경 써주질 않길 바란다면서, 손주들이 뛰놀고 있어야 할 텅 빈 마당이 보이면 못내 섭섭한 마음이 든다. 오지 않는 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운 얼굴을 기대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마음. 우리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승현이 승원이가 제가 만든 국수를 곧 잘 먹더라꼬예. 이번에 아들 온다카는데, 요번에는 고기도 갈아넣고 야채도 많이 썰어가 한 그릇 든든하게 맥여주면 좋을 것 같심더.’
‘어차피 몬 온다 할 거 뻔히 보이는구마 머할라고 그래 분주하게 그캐. 고마 치아라.’
‘그래도 그게 말처럼 되는 줄 압니꺼. 혹시라도 왔는데 묵을 거 없고 그카먼 미안해서 어캐요.’
그 놈이야 못 온다고 말 한마디면 그만이지만, 이 여자는 그 놈이 내려온다는 얘기면 득달같이 시장에 가서 한보따리 장을 봐오고는 했다. 한 쪽 발이 성치 않아 절뚝이는 걸음으로, 오토바이로 타고 가도 십 분은 넘게 걸릴 거리를. 못 온다는 자식 놈의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에 양 손 한 가득 채운 비닐봉지를 든 채 헥헥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녀를 보면 괜스레 울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가가 안 올거라 캤잖아!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을 해, 고생을!’
내가 이렇게 울화를 내지르면 그녀는 힘이 빠진 얼굴로 멋쩍게 웃으며 얘기하곤 했었다.
‘그라먼 우리끼리 보신 합시더. 잘 묵고 잘 지내고 있으야 우리 걱정을 안하지예.’
여러 분의 음식들을 상이 휘도록 올려놓은 그날 밤의 밥상은 유독 초라해보였다. 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을 채우려 꾸역꾸역 밀어 넣다가 속이 더부룩해져 아내에게 탁한 피를 따달라며 손을 내밀곤 했었다. 뱃속은 꽉 차있어도 속 안의 어딘가가 허기진 느낌. 그러나 곁에 있기에 그 기분을 바늘에 뚫린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발열이 나서 끙끙 앓던 중에도 오늘 낮에 자식들 먹일 찬이 없느니 하는 소리를 하긴 했었다. 이 여자가 새벽바람을 맞으며 장터에 나갔을까. 새벽에 나갔더라면 지금쯤 돌아올 때가 됐는데, 어디 엿장수들 공연이라도 보고 있나. 아니, 내가 아는 그 여자는 자식들 굶길 새라 집에 오는 데에 정신이 없을 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갑자기 답답하고도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이 여자가 와이래 안오노.”
괜히 사람 불안하구로. 손으로 벽을 짚은 채 느릿느릿 두 발을 땅에 딛고 선다. 외투를 걸치고 대문까지 걸어 나가자, 코 안을 휘휘 젓는 바람이 제법 차다. 이 여자가 장보러 갈 때의 옷차림은 늘 가벼웠음이 떠오르자, 걸음이 다시 집으로 향한다. 옷걸이에 걸린 그녀가 가진 외투 중 가장 두터운 세타를 집어 들며, 이걸 어떤 식으로 주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괜히 쭈뼛거리면서 주면, 이 여자는 자기 서방 낯붉힌다며 깔깔거리며 놀려댈 것이라. 그녀가 있을 시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한참을 고민 끝에, 날도 쌩한 것이 홑껍데기만 입고 나갔다며 잔뜩 타박을 주며 어깨 위로 툭하니 걸쳐 주어야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는 말해주어야겠지, 오늘도 재환이 그놈은 오지 않았다고. 날도 추운데 빨리 집에 가서 뜨끈한 국물에 밥이나 한 술 말아먹고 속 따끈하게 한 숨 푹 자자고. 아, 이 먼 길을 또 어떻게 돌아올꼬. 그러나 쌍으로 다니는 길은 틀림없이 더 짧을 거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아내의 느린 걸음을 늘 트집 잡았던 지난날들이 무색하게, 나도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장에 도착했다. 숱이 적은 파마머리에 왜소한 몸을 한 여자를 찾아 고개를 이래저래 돌려 본다. 허나 복잡한 시장을 꼼꼼히 둘러보아도 익숙한 얼굴은 커녕 뒷모습마저 보이질 않는다.
“재환이 아부지 아니여?”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가 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여성이 서있다. 누군가 기억을 되짚어보니, 아내가 장에 오면 항상 찾던 야채 도매상이었다.
“재환이 어무이는 같이 안왔는 갑네요? 혼자 왔는교?”
내가 그 ‘재환이 아부지’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반가운 기색을 띄는가 싶더니, 이내 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내의 행방을 물어본다.
“...이 여자가 여게 안왔습니꺼?”
“으이? 내가 여게 새벽부터 와있었는디, 재환이 어무이는 코빼기도 뵌 적이 없는디?”
쿵, 하고 무언가 내려앉는 묵직한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아주 큰 소리였는데, 앞의 도매상과 이 장터의 누구도 동요하질 않는다. 그 전까지는 집으로 함께 돌아올 생각을 하고서 여기까지 왔었는데, 그건 아내가 당연히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 탓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없다니? 도매상이 뭐라 떠드는 말이 들리지 않음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입안이 바짝 마른다. 그 여자에게 주려고 챙겨왔던 여자의 세타도 찬바람 탓인지 내 손만큼이나 차갑다.
‘춘석이 그 얘기 들었는가. 혼자 댕기는 노인네들을 데려다가 창시를 다 털어 가삔다더라. 건너 마을 연이 할미도 그래 됐다 캐. 참 무서운 세상이야.’
‘혼자 댕기는 노인네들 창시를... 연이 할미도...’
‘참 무서운 세상이야.’
참 무서운 세상. 혼자 다니는 노인들. 김 씨가 한 말이 귀에 확성기라도 댄 듯 커다랗게 들려온다. 나는 불안하고도 창백한 기색으로 앞의 도매상의 어깨를 움켜쥔다.
“아 어무이좀 찾아주소. 아무데도 없심다. 여게까지 오는 길에도 안 빗고, 근데 여게도 엄다카고...세상이 얼매나 험한데 아무데도 없니다...”
“아이고 이를 으쩐데예...”
하얗게 질린 나는 말에 경황을 따질 재간도 없다.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은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말을 잇는다.
“아무데도 없디다, 그 여자를 좀 찾아주소, 예? 세상이 얼매나 무서븐데, 날도 추븐데예.. 그 여편네 좀 찾아주이소."
"이, 이, 일단 재환이 아부지, 진정하시고예.. 알겠심니더, 여게 장에 사람들한테도 말해가꼬 같이 찾을 텐게.....“
그녀는 진정하라며 내 어깨를 쥐고 나를 앞뒤로 흔든다. 나는 바람 부는 날의 갈대처럼 도매상이 흔드는 대로 힘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곧, 내 어깨를 힘주어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뿌리친다. 내 힘의 반동으로 몸이 잠시 비틀거렸으나 뒤돌아선다. 머릿속이 아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어디로?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뒤에서 도매상이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저 걷는다. 오랜 시간을 걸어 자꾸만 휘청거리는 다리를 느낄 새도 없이. 중간 중간, 그런 나와 부딪혀 욕지기를 날린 사람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넘어져 몸이 땅에 쓸린 적도 있는 것 같다. 아니, 모든 사물이 내게 아프게 부딪혀왔던 것 같다. 사람도, 땅도, 바람도, 그리고 시선도. 그 중엔 그 여자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 중에 섞여 있었다. 그 모습에 홀린 듯이 다가가 품어 보니, 손 틈사이로 바람이 쌩하니 지나가더라. 허공에 대고 몇 번 헛손질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간절함이 불러온 신기루였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툭 치면 무너질 모래성 같은 얼굴로, 갓난이가 어미를 부르듯 목청껏 그녀를 부른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굽은 허리를 닮은 구불구불한 그 여자의 머리칼 한 올도 보지 못했는데, 욕심 많은 어둠은 내 두 눈을 가리고 주위 모든 것들을 집어 삼켰다.
“이놈아야, 쪼매라도 더 찾아 볼 수 있구로 해주지 고새를 몬참아 득달같이 달려왔나...”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제 귀에도 구슬프게 들렸으나, 배부른 어둠은 대답이 없다. 추운 계절엔 밤이 일찍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쉽사리 납득이 가질 않는다. 세상이 이리 야속해. 평생을 살 맞대고 살아온 사람이 없어졌다는데 눈 감아 주는 법을 모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이곳에서 걸음을 멈춘 채, 흐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어느새 팔과 고개를 휘저으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미친놈처럼 시장을 헤매던 나를 피하던 사람들, 장터의 소음마저 어둠에 잠식되어 있다. 나만이 이 어둠 속에 홀로 있다. 그 생각에 온 몸에 오한이 든다. 나는 그 여자를 사랑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우리가 아닌 삶은 상상 해 본적이 없다. 이처럼 우리가 아닌 현실은 내겐 너무나도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나는, 바로 지금, 당신이 너무나도 그립다. 당신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앞을 향할 줄 밖에 모르던 걸음이 그제야 뒤를 돈다. 혼자 되돌아가기엔 너무나도 먼 길이었으나, 눈앞에 아른거리는 이 여자의 환영보다는 가까울 것이라. 들쥐들이 우글거리는 골목어귀들을 지나, 여름 햇살 아래에서 견뎠던 정자를 지나 터덜터덜 걷는다. 밤에는 혼자 길을 걸었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리 걷다 보니 예전에 재환이 놈을 잃어버렸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마을에서 노는 것이 지겹다고 칭얼대던 놈을 데리고 댐에 나갔었는데, 모든 것을 신기해했던 놈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다 정신을 차리니 그 놈이 사라지고 없었지. 나는 혼비백산이 되어 그 놈을 찾아 다녔고, 논두렁에서 일하던 그 여자도 소식을 듣고 놀라 달려왔다. 날이 새도록 찾아도 없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집에 왔건만 그 놈은 마루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더랬다. 나는 기를 써서 말리는 그 여자의 가슴팍을 밀어내고 그 놈의 등 짝 이며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려쳤었다. 화가 났고, 안심이 되는 복잡한 감정의 비틀린 행동. 그 놈은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고는 펑펑 울었고, 그 여자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이후로 나는 아이를 때리고 아내를 밀친 오른 손을 내내 절었다. 의료원에서는 원인 없는 병이라 했고, 나는 그것을 가장 소중한 것을 잠시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속죄라고 불렀다. 어쩌면 이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
한참을 걸었을까, 이윽고 나는 집 앞까지 왔다. 그 놈이 예전 요 앞에서 졸고 있었던 날과 지금이 겹쳐진다. 대문을 열면 부엌에서 금방 앉힌 밥 냄새가 집안 가득 진동을 하고, 그 놈이 올 줄 알고 잔뜩 준비해둔 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왜 이제 왔느냐며 바가지를 긁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 놈처럼 마루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밖이 서늘하니 집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아니, 그냥 집에만 있었으면 좋겠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문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손잡이를 놓았다 잡았다 반복하기를 여러 번, 이내 나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 젖힌다. 끼이익- 잔뜩 녹이 슨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는 정적. 모든 것은 제자리였다. 이 여자도, 따듯한 국도, 바가지도 없는, 처음 내가 나섰던 그대로. 다만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았을 뿐이다.
그만 잔뜩 힘이 빠진다. 아마도 문을 열기 전에 예상했으리라. 그리운 그 얼굴은 없을 것이라고. 대문 너머가 지나치게 차가웠음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전의를 상실해버린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걸어 마루에 걸터앉는다. 고개를 숙인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울음만을 삼킨 목구멍이 따끔했고, 오랜 시간 쉬지 않고 걸어온 다리는 주저앉은 지금에서야 아파온다. 그러나 그것을 내 감각이 아닌 듯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앙상하게 말라있는 허여멀건 다리, 군데군데 묻은 흙 자국. 시선의 끝은 신발을 잃어 버린 채 검붉은 빛으로 시뻘건 속살을 내 비추고 있는 발바닥에 다다랐다. 고목의 뿌리처럼 볼품없이 갈라져있다. 이 버선발로 잘도 걸어 다녔구나. 흙과 피로 엉망이 된 발을 보니 울컥하고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현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그 치밀어 오름을 소리지른다.
“야, 이년아 당장 나온나! 집에 있는거 다안다!”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온 방 문을 열어 젖힌다. 뒷간이며, 거실이며, 자식이 썼던 방 안 구석구석을 복날에 날 뛰는 개마냥 빙글빙글 돈다. 악에 받혀 여자를 내지르던 목소리는 지치는 듯 헐떡거림으로 바뀌었고, 그 헐떡임은 이내 떨려온다. 방 안 어디에도 그녀가 없음을 알고 나는, 마루에서 뛰듯이 내려 마당을 가로 질러 부엌으로 간다. 그러다 부엌 언저리에 박혀있는 돌을 밟았는지, 순간적인 끔찍한 고통에 그만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내 무게를 이기지 못한 부엌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부엌바닥에 내던져진 나는 발바닥을 움켜쥐고는 허리를 둥글게 만 채로 쇳소리가 섞인 신음을 흘린다. 벌겋게 벌어진 속 살 위로 돌이 박힌 탓이었다. 고통을 줄여보려 온 몸을 웅크려 보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일라 치면 두개골까지 시린 상처가 올라온다. 한참을 그렇게 끙끙거리던 나는, 웅크린 자세 그대로 눈물 방울 방울을 훔쳐낸다. 고통에 찬 시선 사이로, 내 몸뿐만이 아닌 다른 인영 하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부엌 벽과 바닥 사이에 콩벌레마냥 몸을 만 채로 누워있는 낡은 몸을. 그 몸은 익숙한 누군가를 똑 닮아있었고, 안타까울 정도로 깡 말라있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의 뒷모습. 그러나 이미 오래 전에 온기를 잃은 듯 마냥 차가워만 보인다. 그 동안 삼켜왔던 울음이 둑 터지듯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렇게 눈물이 터지는 것이 오랜만이라 어쩔 줄 몰라 할 겨를도 없이 경련하듯이 신음인지 울음인지 모르는 것을 내뱉는다. 그만 모든 것이 서글퍼졌다. 온기 하나 찾을 수 없는 집도, 대문 앞에서 망설이게 했던 불안감도, 돌이 박힌 발바닥도, 잔뜩 내려앉은 어둠도, 오지 않는 자식도,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그녀의 두터운 세타도.
‘사람이말여요, 햇살을 받아 움직이는 것 같지 않는교?’
‘그게 무신 봉창 두드리 패는 소리고?’
신혼 때 이 여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밤이 짙게 깔린 시각, 빛도 소리도 어둠에 파묻힌 듯 숨소리 외에는 바깥 세상의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던 날. 한 이불을 덮고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던 내게, 불현듯 그랬다.
‘그렇잖습니꺼, 햇살 받으먼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밤 되먼 다들 죽은 것처럼 자고예.’
‘니는 대체 어데서 그런 생각이 나오노? 잠이나 자라, 낼 피곤하다 카지 말고.’
햇살을 삶의 원동력으로 받아 움직이고, 햇살이 없는 밤에는 숨도 쉬지 않고 죽은 듯이 잠을 잔다. 그런 그녀의 발상에 봄기운을 닮은 웃음이 나왔으나, 괜히 멋쩍어 부루퉁한 목소리로 받아 쳤었다. 기분 나빠 할 법도 한데 그녀는 햇살같이 웃었다. 아닌 밤중에 발견한 햇살. 동시에 나도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당신의 햇살을 보고 있어 어둠 속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는가 보다고.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을 소매로 대충 찍어내며, 무릎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잠시간 세타를 내 품속에 꼭 품었다 추위에 굳어진 몸에 덮어준다. 차가운 몸에 덮어주려 온종일 꼭 쥐고 있었던 세타가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주인은 말이 없다.
“이 사람아, 얼어 디질라고 이래 입고 부엌에 나왔노.”
자꾸만 눈 앞이 흐려져 몇 번이나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올려다 보며 참아야 했다. 폭신한 세타에 덮인 등허리를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이나 어루만지며 처음 집을 나설 때 이 여자에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을 한다.
“재환이 놈은 안왔다. 내가 안 온다고 했제. 근데 뭘 한다고 지금까지 이카고 있어. 당신 말대로 밤이라서 이래 죽은 것처럼 자고 있나.”
울멍울멍, 추위에 코를 먹은 것 같은 소리를 고치려 잠시간 뜸을 들인다. 그러나 다음 소리는 밖으로 내지 못한다. 잠시간 침묵을 지키다, 그녀의 등을 향한 쪽으로 몸을 눕히며 얼굴을 앙상한 등에 파묻는다. 어린아이가 어미에게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조르듯이 코와 이마를 등에 문지른다. 믿고 싶지 않은 불행한 현실이 바로 내 등뒤에까지 와있음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덮치지 못하게 온 몸으로 막아섰다. 나는 우리가 현실이 아님을 상상해 본적이 없다. 그러니 당신이 했던 말처럼, 햇살이 뜨는 아침에 일어나서 보자. 햇살을 받으면 당신은 일어나리라. 그렇게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어둠이 포근히 우리의 위에 내려앉는다. 이윽고 온세상에 밤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영원히 뜨이지 않을 것 같던 눈두덩이가 어둠의 무게를 겨우 이겨내는 시간이 왔다. 나는 고물상의 수레에 내던져진 찌그러진 깡통마냥, 잔뜩 구겨진 몸을 겨우 일으킨다.
눈 앞에는 어젯밤 그녀에게 덮어주었던 두터운 세타가 보인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타고 낮의 기운이 다가오는 때, 날씨보다 한 결 더운 입김이 하얗게 구름을 피우고 있다. 아내와 함께해서인가. 이만한 날씨에도 용케 다시 눈을 뜨고 숨을 쉴 수 있다니. 조금씩 아침이 어둠을 몰아낸다. 이웃 집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분주한 소리가, 지붕에서는 참새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모든 것은 햇살의 기운을 받아 살아 숨쉬는 건가 보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은 미동이 없다. 덜컹, 온 세상이 휘청거리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아 조심스럽게 흔든다. 이 사람아, 여태 퍼질러 자고 있노. 얼른 일어나라. 그러나 흔들면 흔드는 대로 이 여자의 몸이 빳빳하게 흔들린다. 조심스럽게 흔드는 손길이 다급해진다. 초조함에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얼음기둥 마냥 굳어있는 그녀는 힘없이 정면을 보며 누웠고, 나는 어둠 속에서 분간할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단말마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하얗다 못해 자줏빛, 푸른빛의 기묘한 색으로 물들어 있다.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보다 조금 위쪽을 응시하고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있다. 입가에는 무엇인가가 말라 그녀의 턱 밑에 달라붙어 있다. 그녀에게서 괴로움의 흔적이 하나씩 보일 때마다, 마치 나의 고통인 듯 내표정은 일그러져 갔다. 심장이 머리에서 뛰었던가, 온 머릿속이 쿵쾅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내 내 시선은 가슴께에서 어정쩡하게 굽어있는 양손에 머무른다. 여기가 그리도 아팠던가.나는 그곳에서 시선을 멈추었고, 숨이 멎었다. 양 손에는 어제 새벽부터의, 이 사람의 생명을 꺼트린 무자비한 추위에 굳은 밀가루 반죽이 치덕치덕 달라붙어 있었다.
‘승현이 승원이가 제가 만든 국수를 곧 잘 먹더라꼬예. 혹시라도 왔는데 묵을 거 없고 그카먼 미안해서 어캐요.’
나는 뜻 모를 괴성을 내지른다. 어제 발바닥에 박힌 돌을 빼지 않아 기형적으로 부푼 발의 끔찍한 통증은 내 발임에도 이미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그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미 생명의 기운이 떠난지 오래인 사람의 손을 미친 듯이 얼굴에 문대며 그 손바닥 안을 적신다. 저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며 웃는 듯 우는 듯한 행위를 반복한다. 온기라고는 내 것밖에 찾아 볼 수 없는 집안 가득히 내 울음이 퍼져나간다. 그것은 울음이라기보단 절규에 가깝다. 얼굴에 닿는 그녀의 손바닥이, 잘린 보릿단의 단면보다 거칠었다. 그것이 못내 가슴에 사무친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기어 나왔노, 어쩌자고…….!”
늘 기분 좋을 만큼의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한 날이면 등을 보듬어 주었고, 탈이 난 날에는 배를 어루만져 주었다. 빌어먹을 아들놈이나 나나 그 손의 온기만 있다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그 온기에 취해서, 아내의 손이 추운 날 맨손으로 설거지를 해 부르트는 것도, 이어지는 궂은 일에 못이 박히고 굳은살이 생겨 통나무같이 거칠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곱던 그 손이 내 손처럼 되어가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하던가. 그래야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일 테니. 그처럼 소중한 것을 일찍이 돌아보지 못한 대가는 잔인했다. 나는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고, 짐승처럼 오열한다. ‘영원한 상실’, 그것이 죄인에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한참을 그리 울었을까. 나는 눈물조차 메말라 조용해진 채로 앉아 있다. 울음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간질환자처럼 불현듯 발작하려는 몸을 이따금씩 진정시키며 그녀의 곁에 앉아있다. 뒷주머니에 늘 쟁여 두던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가와 손을 깨끗이 닦아주고는 한 동안을 있다가, 이윽고 희미하게 뜨인 그녀의 눈을 손으로 감겨준다. 푸르스름한 빛마저도 잃어가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또 한 동안을 앉아있는다. 지금까지 매일 그랬듯 함께 했던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나를 품어주고 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다시 울컥 하고 차오르려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온 몸으로 현실을 막아보려는 노력은 이제는 하면 안되었다. 이미 그는 늘 그랬듯이 나를 지나쳐 저만치 가있었고, 이제는 오랜 시간 추위 속에서 견뎌온 이 여자를 보내줄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뒤가 막막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불현듯, 따르릉- 세상과 격리되어 쥐죽은 듯한 침묵에 갇혀 있던 집 안에 요란한 소리가 적막을 깨고 퍼진다. 몇 번 그렇게 울리다 끊기더니 다시 울린다. 나는 그 잠깐 사이의 틈 동안 잠을 자고 있는 파리한 안색의 아내를 바라보다 머리칼을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휘청이며 일어난다. 시뻘겋게 부어오른 발을 디딜 수가 없어 질질 끌다시피 마루에 가 걸터앉아 거실로 향하는 미닫이 문을 열고 요란한 전화소리를 진정시킨다.
“아버지, 저 재환입니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끝이 나서 이번 주에 뵈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나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게 무슨 소리던가.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 놈은 재차 나를 부른다.
“아버지?”
“…….”
중풍이라도 걸린 것 마냥 입술이 발발 떨린다. 그를 향해 '네가 온다고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의미없는 원망이 혓바닥 아래까지 숨어들었다. 그러나 이번 주에 올 수 있다는 그의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도 가슴 뛰어했을 존재를 떠올리며 입술을 입안으로 삼키며 이빨로 짓누른다. 두 눈을 힘주어 감으며 한 동안을 있는다. 아들녀석에게 당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알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조금쯤 담담하게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 그래야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긴 시간 수화기 속에서 침묵을 유지하다가 마음을 다스리며 이윽고 말문을 연다. 오랫동안 울음을 터뜨린 탓에 목소리가 형편없이 쉬어있다.
“너거 어무이…”
너의 엄마가. 여기까지 언급하자, 오랜 시간 마음을 다스린 것이 무색하게 다시 무너져 내린다. 거울을 보지 않으니 알 수 없지만, 터질 것 같은 감정 탓에 표정은 괴상하게 어그러져 있을 터다. 그러나 어느새 두 볼을 타고 메마른 것 같던 강줄기가 줄줄 흘러내린다.
“…세상 떴다…….”
그리고 몸이 사정없이 떨린다. 저릿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소리를 죽이려 애를 쓴다. 전화기 너머 아들놈의 침묵과 함께 나는 다시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적막함 속에서 출렁이는 잔인한 상실감의 파도에 내몰렸다.
현관문에 걸어 놓은 종을 바람이 툭툭 치며 장난을 친다. 딸랑, 맑은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겨울의 끝자락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조금은 풀렸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쌀쌀하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이 마루에 걸터앉는다. 거실과 마루를 이어주는 조금 열린 미닫이 문의 틈새에서는 오래된 라디오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돌이 박혔었던 발바닥에는 혈흔대신 유웃빛깔의 붕대가 감겨있다. 그것을 어루만지며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다. 그 날의 끔찍한 고통이 마치 꿈이었던 마냥 평화로운 풍경. 그러나 여전히 그 여자가 없는 삶은 너무나도 낯선 것이었다.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을 무심결에 내뱉었다가 그것이 허공을 맴돈다는 것을 깨닫고야 입을 다물고야 마는, 이질적인 삶의 느낌. 그런 방 안 가득히 찬 쓸쓸함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하였다. 하늘에 안개가 끼었나, 갑작스레 눈이 흐려와 눈을 재차 감았다 뜨다가, 이내 시선을 하늘 높은 곳에 두며 흘러내리려는 쓸쓸함을 막는다. 이렇듯 적응되어 가는가 싶다가도 불현듯 왈칵하고 감정이 치밀어 올라왔다. 막막함을 가득 담은 한숨이 희뿌옇게 흘러나온다. 보내 주어야 할 때임을 알고 있으나 자꾸만 그 온기를 기억 속에서 놓질 못한다. 나를 두고 어디 갈 데가 있다고 그렇게 급하게 떠났나. 너무나도 그립지만, 그렇기에 더 야속한 사람. 그러다 툭, 무엇인가가 콧잔등을 장난스레 건드린다. 그것은 투박하지만 다정했다. 처음엔 콧잔등인가 싶던 것이 이내 한 방울 두 방울, 내 머리 위며 볼을 두드린다. 툭투둑, 나로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우리 집 마당으로, 대문으로,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겨울의 끝자락에 오는 비. 그것은 봄비였다. 빗발들의 봄을 모셔오는 고귀한 발걸음. 당신인가 보다. 햇살 같던 당신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그립다고 놔주질 않으니 잠시 들렀나 보다. 그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다. 문득, 나는 다음엔, 당신의 남편이 아닌 당신의 발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세상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닐 당신에게 지치지 않는 든든한 버팀목이고 싶다고. 빗소리가 점점 커졌다. 온 세상이 그녀를 닮은 빗발들로 가득하다. 작게 열어놓은 미닫이 문의 틈새에서 몇 일 뒤면 봄비가 그친다는 일기예보가 들려온다. …아아, 나의 햇살.
“이제는 정말로 안녕히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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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석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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