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병원

by 복실이 posted Jan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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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병원



오전 열시부터 시작된 낮병원의 첫 치료 프로그램은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덟 명의 환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좀 막연한 주제라 그런지 환자들은 입을 다물고 발표를 미루는 눈치였다. 그러자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심리치료 상담사가 한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구체적이지 않아도 좋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해보라고 말했다. 첫 발표를 권유받은 환자는 사십대 초반의 남자였다. 남자는 발표를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다른 환자들의 시선은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남자는 다른 환자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든 것은 심호흡을 하고 나서였다. 그리고 심리치료 상담사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환자들은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남자는 정신분열증으로 네 번의 정신병원 입원 경력이 있다고 말했다. 남자에게 정신분열증이 발병한 것은 결혼을 한 후였다. 남자는 정신분열증으로 입원치료와 외래치료를 반복하는 사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다행히 남자의 아내가 맞벌이로 직장을 다녀서 투병으로 인한 생활고는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가 직장도 없이 앓고 있는 정신분열증은 완치가 어렵고 평생 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아내는 결혼생활을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자가 직면한 현재는 아내의 이혼요구였다. 남자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고민 끝에 아내의 미래를 위해서 이혼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남자가 이야기를 끝내고 나자 환자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심리치료 상담사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그만큼 첫 치료 프로그램의 주제는 환자들에게 부담스러운 주제였다. 남자가 자신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 첫 번째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서도 두 번째 발표자가 나오지 않자 심리치료 상담사가 또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이십대 후반의 남자였다. 남자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이십대 초반에 정신분열증을 앓기 시작했다. 남자가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원인은 군대에서 고참들에게 구타와 언어폭력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심한 정신분열증으로 군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심사위원회에서 복무부적합 판정을 받고 의병 전역했다. 남자는 사회로 나왔지만 정신분열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증상이 더 악화되는 날들이 많아서 정신병원에 입원치료를 해야 했다. 남자가 정신분열증으로 의병 전역을 하자 군 입대 전에 사귀던 여자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남자 곁을 떠났다. 그 때문에 남자는 매일 술을 마시다시피 해서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였다. 정신병이 하나 더 더해진 셈이었다. 다행히 남자는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낮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앞날은 막막할 다름이라고 말했다. 남자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환자들의 표정은 대부분 어두웠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발표자의 현실도 우울했고 미래의 희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광수를 포함한 나머지 발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한 환자들은 자신만 힘든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을 받고 있는 환자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일종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첫 치료 프로그램이 끝나자 십분 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담배를 피우는 환자들은 낮병원 복도로 나가서 담배를 피웠고 남은 환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전의 두 번째 치료 프로그램은 점심 만들기였다. 환자들은 첫  치료 프로그램에서의 어두운 표정을 지워버리고 그런대로 밝은 얼굴로 점심 만들기에 참여했다. 점심 만들기는 환자들에게 협동심과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낮병원 안은 버터로 식빵을 굽는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점심 만들기에 필요한 재료들은 낮병원에 나오는 환자들이 준비한 것들이었다. 주방기구들은 낮병원에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토스트와 샐러드였다. 여덟 명의 환자들은 네 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점심을 만들고 있었다. 버터로 식빵 굽는 냄새가 가시고 나자 양파와 당근을 잘게 다져 넣은 계란이 프라이팬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프라이팬에 식빵을 굽는 것과 계란을 익히는 작업은 팀마다 두 사람이 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샐러드를 만들고 있었다. 점심 만들기 프로그램은 이 주일에 한번씩 들어 있었다. 여덟 명의 낮병원 환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지 두 달쯤 지났으니 네 번 정도 점심 만들기를 한 셈이었다. 점심 만들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간단한 메뉴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스파게티나 햄버거 등을 만들어 먹었다. 계란이 다 익자 한 사람이 식빵에 올려놓고 다른 식빵으로 덮었다. 토스트가 그런대로 완성되자 샐러드용 야채와 과일을 마요네즈로 버무린 샐러드도 만들어졌다. 두 팀은 만들어진 토스트와 샐러드를 앞에 두고 앉았다. 그러자 심리치료 상담사가 두 팀이 만든 것들을 보고 말했다.

“자, 이제 점심들 맛있게 드세요.”

심리치료 상담사의 말이 끝나자 두 팀 환자들은 샐러드와 함께 토스트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자 이것으로 오전 프로그램은 끝이 났다. 다른 날 같았으면 점심시간이지만 토스트와 샐러드로 점심을 먹은 환자들은 휴식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다. 그런데 한 환자가 밖에 나가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창밖에 내리는 한 여름의 빗줄기는 기세가 꺾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광수는 커피를 마시러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국 커피를 마시고 싶은 환자들만 우산을 들고 낮병원을 나갔다. 그런데 경아가 나가지 않고 낮병원에 남는 것이었다. 광수는 경아에게 말했다.

“커피 마시러 안 나가?”

경아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비가 와서 나가기 싫어. 너는?”

“나도 비가 와서 나가기가 귀찮아.”

광수는 팔짱을 끼고 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낮병원을 나간 환자들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음악이 들렸다. 경아가 오디오를 틀은 것이었다. 제목을 알 수 없는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클래식에 별로 취미가 없는 광수는 귀가 성가셔 경아에게 말했다.

“그냥 가요 듣자.”

그러자 경아가 말했다.

“낮병원에 있는 CD는 모두 심리치료용 클래식뿐이야.”

“그럼 FM이라도 틀어.”

“심리치료용 클래식이라 듣기 좋은데 꼭 FM을 들어야겠어?”

“좋으면 말고.”

“우리 커피 마시는 대신 짬뽕 시켜 먹을래? 갑자기 짬뽕이 먹고 싶어. 비가 오는 날에는 얼큰한 국물이 제격이잖아. 우리 한 그릇만 시켜서 같이 먹자.”

광수는 토스트와 샐러드를 먹어서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경아가 먹고 싶다는 것을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한 그릇만 시켜서 같이 먹자.”

전에도 점심시간에 환자들과 같이 중국음식이나 피자 같은 것을 주문해서 먹은 적이 있어서 배달 음식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경아는 전화로 중국집에 짬뽕 한 그릇을 주문했다. 귀에 낯선 클래식 음악은 경쾌하고 발랄해서 처음과는 달리 그런대로 들을 만 했다. 경아가 말했다.

“나 이사했어. 원룸으로.”

“원룸으로?”

“그래. 독립심을 키우며 몇 달 동안 혼자 사는 연습을 하고 싶어서 이사했어.”

“몇 달 동안 혼자 사는 연습을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것은 나중에 이야기 해 줄게.”

경아와 탁구 같이 주고받는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 짬뽕이 배달되었다. 광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배달원에게 주었다. 그러자 경아가 말했다.

“네가 사는 거야?”

“그래. 내가 살게.”

배달원이 돌아가자 경아와 광수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짬뽕 한 그릇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경아의 말대로 비가 오는 날에 먹는 짬뽕의 얼큰한 국물이 입맛을 당기고 있었다. 경아와 광수는 짬뽕 국물과 단무지에 양파까지 다 먹었다. 짬뽕을 먹고 나자 경아가 테이블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지 졸려. 요즘 불면증이 심해서 새벽에야 잠이 들어. 잠깐이라도 자게 음악 좀 꺼 줘.”

“그럼 한잠 자.”

광수는 음악을 껐다. 경아가 눈을 감자 광수는 문득 경아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광수가 경아를 처음 본 곳은 낮병원이 아니라 이 정신병원 입원실에서였다. 광수는 육 개월 전에 이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병명은 정신분열증이었다. 직장을 다니던 광수는 언제부터인가 상사인 팀장이 광수를 욕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환청이었다. 사실 팀장과 광수는 업무 때문에 갈등이 있었다. 그것은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상사와 대부분 겪는 갈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수는 업무를 놓고 팀장과 말다툼을 했다. 광수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광수의 업무 능력을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부터 팀장이 광수를 욕하는 환청은 더 자주 들렸다. 광수는 환청이 들리는 것을 팀장과 업무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환청은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수는 근무 중에 뒷자리에서 광수를 욕하는 팀장의 환청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광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팀장에게 다가가 얼굴을 주먹으로 두 번이나 때렸다. 팀원들이 달려와 말리지 않았다면 광수는 팀장을 더 때렸을 것이다. 광수는 극도로 흥분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광수는 사표를 내야 했다. 그리고 이 정신병원에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원장과의 상담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광수의 정신분열증은 심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광수는 원장의 권유대로 이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입원실로 들어서자 광수의 눈에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의 모습이 너무 낯설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래서 광수는 두려움까지 느끼며 입원실로 들어온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광수가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소리치자 두 명의 건장한 보호사가 광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일단 입원한 환자는 자기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광수는 보호사들에게 입원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보호사 둘이 광수의 팔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이었다. 광수가 끌려 들어간 곳은 격리실이었다. 보호사 둘은 광수를 격리실에 가두고 문을 잠갔다. 광수는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격리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격리실 밖에 있는 보호사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격리실 문을 몇 번 더 발로 걷어차다가 광수는 자포자기 상태로 격리실에 있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광수는 불안감에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격리실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삼심 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한 여 환자가 격리실 유리창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광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여 환자를 보았다. 여 환자를 광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광수는 여 환자에게 격리실 문을 열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 환자가 손을 젓는 것이었다. 격리실 문을 열 수 없다는 손짓이었다. 그리고 여 환자는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광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곡으로 감미롭고 부드러운 음악이었다. 여 환자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는 오 분쯤 후에 끝이 났다. 여 환자는 광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나서 사라졌다. 그런데 여 환자가 연주한 음악을 듣고 나니 불안했던 기분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 것이었다. 광수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다는 것이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광수가 잠에서 깬 것은 누군가 광수를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떠보니 광수를 격리실에 가둔 보호사였다. 보호사는 광수를 보고 나오라고 말했다. 광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격리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환자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었다. 광수는 또 다른 낯선 풍경에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배식대 앞에 줄을 선 것이었다. 그리고 보니 배가 고픈 느낌이 들었다. 광수는 줄을 서 있는 환자들 뒤에 서서 배식을 기다렸다. 얼마 후에 순서가 되자 광수는 식판에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받아 돌아섰다. 환자들은 병실로 들어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수는 식사를 어디서 해야 할지 몰랐다. 광수는 아직 병실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누가 뒤에서 광수의 등을 툭 치는 것이었다. 광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격리실 밖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여 환자였다. 여 환자는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고 걸어갔다. 광수는 망설이다가 별 수 없이 여환자의 뒤를 따라갔다. 여 환자가 멈춘 곳은 일반 가정집의 거실과 다를 바 없는 복도의 긴 의자 앞이었고 식판을 의자에 놓고 앉는 것이었다. 광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자 여 환자가 말했다.

“같이 저녁 먹어요.”

결국 광수는 식판을 의자에 놓고 여 환자 옆에 앉았다. 그러자 여 환자가 말하는 것이었다.

“아직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인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여 환자가 먼저 수저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광수도 여 환자를 따라 밥을 먹었다. 여 환자와 광수는 별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밥을 절반 정도 먹고 나서 광수는 여 환자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저에게 왜 바이올린을 연주해 준 거죠?”

그러자 여 환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입원을 하자마자 격리실에 들어간 당신을 보고 안정을 시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격리실에 들어가 봐서 알지만 그곳에 들어간 환자는 심리가 무척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당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연주한 거예요. 왜요? 기분이 안 좋았나요?”

“아니요.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나니 불안했던 기분이 어느 정도 사라지더군요.”

“다행이군요.”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광수는 여 환자를 알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끝낸 환자들이 식판을 배식대에 반납하고 있었다. 여 환자와 광수도 식사를 끝내고 배식대로 가서 식판을 반납했다. 그러자 보호사가 광수에게 따라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광수는 보호사를 따라 삼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삼층에 있는 병실 중에 303호가 광수의 병실이 되었다. 그런데 여 환자의 병실은 304호였다. 병실을 지정받은 광수는 병실에 있지 않고 복도의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여 환자가 광수의 옆에 앉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담배 피워요?”

“네.”

“담배 없죠?”

그리고 보니 환자복으로 갈아입을 때 보호사에게 소지품을 압수라면 압수당하고 말아서 담배가 없었다. 광수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지 여 환자가 담배를 하나 광수에게 주는 것이었다. 광수는 여 환자가 피는 담배로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빨아 내불었다. 그리고 여 환자와 광수는 서로의 이름을 물어 보았다. 채경아.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알고 보니 경아와 광수는 나이가 동갑이었다. 그래서 경아와 광수는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광수는 경아와 가까워진 진 것이었다. 광수는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담배는 어떻게 구했지?”

경아도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아침 식사 후에 보호사들이 하루 열다섯 개피 씩 환자들에게 나눠 줘. 물론 담배 신청을 한 환자들에게만 말이지. 한 시간 마다 흡연시간이 주어지니까 열다섯 개피를 다 피우면 하루가 다 가는 거지.”

“그럼 라이터는?”

“라이터는 소지 할 수 없어. 대신 라이터를 가진 보호사들이 담배 불을 붙여 줘.”

“그렇군.”

경아와 광수는 담배를 다 피웠다. 입원 첫날이 지나고 나서부터 광수는 입원 생활을 별 탈 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경아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입원 생활을 하면서 광수는 경아와 거의 단짝처럼 지내고 있었다. 병실이 바로 옆에 있기도 했지만 경아 말고는 다른 말상대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경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전에 원장의 회진을 받고 나면 자유시간이지만 오후에 환자들은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치료 프로그램 중에 붓글씨 쓰기 시간이었다. 붓글씨를 지도하는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환자들은 나눠준 붓글씨 샘플을 보고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광수는 붓글씨 샘플 중에 일체유심조라는 글을 종이에 크게 썼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다지며 광수가 앓고 있는 정신분열증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광수는 경아가 쓴 붓글씨를 보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작은 글씨로 쓴 글을 보고 광수는 경아에게 말했다.

“제법 인생을 달관한 글을 썼네.”

그러자 경아가 말했다.

“지난주에는 평상심시도를 쓰더니 오늘은 일체유심조야?”

“내가 좋아하는 불교용어이니까.”

“나도 좋아하는 글이니까 쓴 것뿐이야.”

붓글씨 쓰기 시간이 끝나자 곧바로 노래방 시간이 이어졌다. 노래방 시간은 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노래방을 진행하는 선생님이 도착하자 환자들은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나와 노래방 기계에 선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신나는 노래에서 애절한 노래까지 환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다양했다. 그런데 경아가 앞으로 나가더니 선곡을 하는 대신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클래식이라 광수로서는 곡명을 알 수 없었지만 듣고 있는 환자들의 신경을 안정시켜주는 연주였다.

경아의 바이올린 연주가 끝나자 광수는 문득 경아가 무슨 병명으로 입원을 했는지 궁금했다. 광수는 아직까지 그것을 경아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광수의 병명을 묻지 않은 것은 경아도 마찬가지였다. 노래방 시간이 끝내자 광수는 경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광수는 경아에게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무슨 병명 때문에 입원한 거지?”

경아가 말했다.

“조울증 때문이야.”

“조울증 때문이면 감정의 기복이 심한 병 아닌가?”

“대충은 맞아. 나도 이제까지 묻지 않았지만 너는 무슨 병명 때문에 입원한 거지?”

“정신분열증.”

“그렇구나.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자. 괜히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싫어.”

“알았어.”

광수가 병실에서 경아와의 기억을 더듬는 사이에 커피를 마시러 낮병원을 나갔던 환자들이 돌아왔다. 광수는 테이블에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는 경아를 깨웠다. 그러자 경아가 낮잠에서 깨며 말했다.

“너무 피곤해. 불면증이 생긴지 한달이 넘었어. 아무래도 불면증 치료를 받아야겠어.”

경아는 얼굴을 손으로 비비며 정신을 차렸다. 오후의 치료 프로그램은 영화 보기였다. 하지만 그냥 아무 영화나 보는 것이 아니라 낮병원 환자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오늘 보는 영화는 미국영화인 ‘28일 동안’이라는 영화였다. 여주인공이 개방형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었다. 개방형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환자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담배도 마음대로 피울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낮병원 환자들은 모두 정신병원에 입원한 병력이 있는 환자들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개방형 정신병원에 호기심이 있었다. 치료 과정은 다양했다. 동물인 말과 교감을 나누는 치료도 있었고 자연 속에서 군인들의 유격훈련처럼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집단 발표 과정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해피 앤딩도 아니고 새드 앤딩도 아니었다. 영화에 나오는 환자 중에 한 명이 퇴원을 두려워 한 나머지 자살을 하지만 여주인공은 치료를 잘 받고 퇴원을 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여주인공이 개방형 정신병원에서 28일 동안 치료받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린 영화였다. 영화 보기가 끝나자 환자들이 간단하게 영화를 본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환자들은 대부분 개방형 정신병원의 치료과정이 부럽다는 말을 했다. 폐쇄형 정신병원에서 몇 달씩 답답한 입원 생활을 해보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오늘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이 모두 끝이 났다. 심리치료 상담사와 인사를 나누고 환자들은 낮병원을 나왔다. 환자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고 한 여름의 비 오는 거리를 걸어갔다. 그런데 누군가 시원하게 맥주나 한잔씩 하고 헤어지자고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날씨 탓인지 환자들은 낮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에 환자들끼리 가본 적이 있는 가까운 맥주 집을 찾아 들어갔다. 아직 낮이라 맥주 집에는 손님이 환자들뿐이었다. 환자들은 500CC 맥주 한 잔 씩만 마시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안주는 마른안주로 주문했다. 심리치료 상담사가 알면 경을 칠 노릇이지만 환자들도 이 정도의 일탈은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가 나오자 환자들은 건배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한 환자가 경아와 광수를 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두 분이 서로 사귀는 사이에요? 입원했던 병실에서도 무척 가깝게 지냈다면서요?”

광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아가 말하는 것이었다.

“사귀는 것도 아니고 안 사귀는 것도 아니에요.”

경아의 말을 듣고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귀는 것도 아니고 안 사귀는 것도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우리 서로 사귀는 사이입니다.”

그러자 경아가 팔꿈치로 광수의 옆구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맥주잔을 쳐들며 말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하여!”

다시 맥주잔이 부딪쳐졌다. 맥주 한잔을 비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환자들은 약속한 데로 맥주 한 잔씩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리로 나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경아와 광수는 맥주집 앞에 서 있었다. 환자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경아가 말했다.

“맥주 한 잔씩만 더 할래?”

“더 마시고 싶어?”

“나 이래 봐도 술 쌔.”

“그럼 한 잔씩만 더 하자.”

경아와 광수는 맥주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경아와 광수는 과일 안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경아와 광수는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 잔째의 맥주가 비워지자 경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광수는 이상해서 물었다.

“고민 많은 여자처럼 얼굴 표정이 왜 그래?”

그러자 경아가 말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다른 생각이라니. 그게 뭔데?”

“갑자기 헤어진 남자 생각이 나서야.”

“그랬군. 언제 헤어졌는데?”

“한 일년쯤 됐어.”

“왜 헤어졌는데?”

“내가 앓고 있는 조울증 때문이었지. 그 남자 집안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혼을 반대했고 남자는 미적거리기만 했지. 그래서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

“그런 사연이 있었군.”

경아와 광수는 맥주를 한 잔씩만 더 하자고 하고 들어왔지만 결국 한잔을 더 마시게 되었다. 석잔 째의 맥주를 마시며 경아가 말했다.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은 사회적응훈련이잖아.”

“그렇지.”

“그런데 우리가 다시 사회로 잘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래야겠지. 그런데 나는 가끔 정신병원에 다시 입원하는 꿈을 꿔.”

“그래?”

“어, 지난번에 입원한 게 두 번째 입원이었어. 아마도 나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깊게 자리 잡고 있나봐.”

“사실은 나도 그런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병력이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데 장애가 되는 게 현실이니까.” 

맥주 세잔을 다 마시고 나자 취기가 느껴졌다. 경아와 광수는 맥주를 더 이상 마시지 않고 맥주 집을 나왔다. 경아와 광수는 비 내리는 거리를 우산을 쓰고 걸었다. 그런데 십분 쯤 지나자 경아가 말했다.

“내 원룸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실래?”

“경아의 원룸에?”

“응.”

광수는 말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고맙기는. 그럼 지하철 타고 가자.”

경아와 광수는 조금 더 걸어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경아와 광수는 손을 잡고 있었다. 이십분 쯤 지나서 경아와 광수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가까운 마트에 가서 와인과 과일을 샀다. 경아의 원룸에 빈손으로 들어가기 그래서 광수가 산 것이었다. 경아의 원룸은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와인과 과일을 식탁에 올려놓기에 무섭게 경아와 광수는 서로를 원했다. 그래서 서로를 껴안고 키스를 했다. 하지만 키스만으로는 부족했다. 경아와 광수는 서로의 웃옷을 벗기고 침대에 쓰러졌다. 섹스가 끝나자 경아와 광수는 침대에 누워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십 여분쯤 지나서 침묵을 깬 쪽은 경아였다.

“그거 알아?”

“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유전성이 강하다는 사실 말야.”

“조금은 알고 있어.”

“그럼 그것도 알겠네.”

“뭘?”

“너와 나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왜지?”

“너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고 나는 조울증을 앓고 있잖아.”

“그렇지.”

“그런데 정신분열증의 유전율은 50% 이상이고 조울증의 유전율도 50% 이상이야.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거의 100%가 된다는 거지. 설마 아이에게까지 정신질환을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겠지?”

광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만약 그래도 우리가 결혼한다고 하면 집안의 반대에 먼저 부딪치겠지. 주위에서 축하해 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고.”

광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경아가 또 말했다.

“골치 아픈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 와인 마시자.”

경아가 침대에서 일어나 식탁에 있는 와인의 뚜껑을 열고 두 잔에 따라 가져왔다. 광수는 침대에 앉아서 경아가 건네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경아도 와인을 한 모금 마시더니 바이올린을 가져와 침대에 앉아서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경아가 연주하는 것은 영화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주제곡이었다. 영화 음악으로 명곡에 속하는 주제곡 ‘A Love Idea’가 감미롭게 들리고 있었다. 삼분 쯤 지나서 연주가 끝나자 경아가 바이올린을 침대에 내려놓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있을까?”

경아의 물음에 광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경아가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함께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없어.”

“......”

“우리는 사랑을 해도 결혼은 할 수 없는 사이야.”

“.......”

“오전에 있던 발표 시간에 말하지 않았지만 나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을 끝마치면 뉴욕으로 떠나.”

“부르클린이 있는 뉴욕으로?”

“그래. 우리나라는 너와 나같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적대적이야. 무슨 살인이라도 저지를 사이코 패스들로만  취급을 하지. 이해와 배려는 거의 없어. 한때 사랑했던 남자도 마찬가지였지. 그래서 떠나는 거야. 뉴욕에 있는 대학의 대학원에서 서양 음악사를 전공할 생각이야.”

“그렇게 결정했군.”

“나 샤워하고 싶어.”

경아가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광수는 경아가 침대에 내려놓은 바이올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경아가 말이 귀에 다시  들리는 듯 했다.

‘우리가 함께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없어’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주인공들인 동성애자와 창녀가 떠올랐다. 1950년대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의 동성애자와 창녀의 삶을 다룬 영화는 암울하고 불편했다. 그리고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을 받으며 사회적응훈련을 하고 있는 경아와 광수도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이 끝나면 경아는 뉴욕으로 떠난다고 했다. 우리가 아닌 경아는 혼자서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찾은 것이었다. 얼마 후 경아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광수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는 경아에게 말했다.

“A Love Idea를 한 번 더 연주해 줄래?”

“왜? 또 듣고 싶어?”

“그래.”

그러자 경아가 침대에 앉아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광수는 경아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광수는 다시 취업을 하기 위해서 경력사원을 뽑는 회사들에 이력서를 열 번이 넘게 제출했다. 하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회사는 없었다. 경아는 앞으로 살아갈 길을 찾았지만 광수는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이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아의 바이올린 연주는 여전히 감미롭게 들리고 있었다.